210화
68. 임기 마지막 해(2)
시준이 여러 사람의 옹위를 받으며 걸어가다가는 금방 신분이 들통난다. 그래서 시준은 철저한 위장을 위해 기랑 한 사람만 데리고 상관으로 향했다.
시준의 오른쪽 뒤쯤에서 걷던 기랑이 물었다.
“고총련이야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지만, 너야말로 주석 일은 어쩌고 온 거야? 그래도 괜찮아?”
평양에서도 사람들이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외치던 그 질문을 기랑에게 다시 받은 시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행히 기랑은 위치상 시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너와 똑같아. 남은 사람들이 요량껏 잘하고 있지.”
“그게 되겠어?”
기랑의 반문은 현실적이다.
일종의 이익단체인 고총련은 기랑이 없더라도 각도의 대표이사(代表理事)들이 논의하면 되는 수준의 문제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인 공화국이 그렇게 똑같이 운영될 수는 없다.
게다가 기랑 역시 과연 시준 없이 이 나라가 돌아갈지 의심하는 점은 같았다.
그녀가 시준의 모든 단점을 알고 있는 천적인 ‘고향 친구’의 위치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공화국 사람들이 시준에게 의지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시준은 돌아서서 기랑을 마주 보았다.
“기랑아. 어차피 나는 내년에 물러날 테고, 수평한 인민들은 다시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해. 내가 있어야만 한다면 그게 옛날과 다를 게 무엇이겠니.”
“그건 알지만…….”
화제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냥 시준과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을 뿐인 기랑은 시준이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자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준은 마치 자기에게 말하듯이 기랑에게 말했다.
“우리는 왕을 뽑는 게 아니잖아? 나도 그렇고, 내 다음 주석도 그렇고 혼자서 권세를 휘두르게 할 수는 없어. 이번에는 사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자리를 비운 거야.”
기랑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두 함께 다스리는 법을 알게 하기 위해?”
“다스린다기보다는 일한다고 해야겠지만, 그래. 네 말이 맞아.”
시준은 엷은 미소를 띠며 다시 돌아서서 걸었다. 기랑도 시준의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하며 그 뒤를 따랐다.
***
일부러 자리를 비웠다는 시준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물론 혁명의 이념상 시준이 상하이에 올 필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준은 이 사업에 자신의 개인적인 포석도 깔아 두었다.
시준이 외면해 왔을 뿐 그도 안다. 시준은 김정은보다 더한 직책 독점을 해먹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제 군주국도 이 정도는 아니다. 전제 군주국에선 형식적으로 군주에게 권력이 독점된 대신 다른 여러 암묵적 분산 수단이 있다.
그래서 지금 전 중국의 여러 고관, 유지, 장수, 상인, 백성 등이 지친왕의 호소에 일제히 부복하며 복종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반동의 잔재를 쓸어내 버린 공화국에는 그게 없었다. 인민 앞에 투명하게 드러난 여러 직책이 정당하게 시준의 소유다.
형식적으로 권력이 인민에게 분산되었으나 인민이 주석에게 명백하게 권력을 위임하였으니 전제 군주국과는 상황이 반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시준이야 별다른 독재 욕심이 없지만, 이런 체제가 계속되면 시준의 ‘다음 주석’도 시준처럼 막강한 권력을 한 몸에 집중시키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게 북한처럼 남의 나라라면 그냥 비웃고 끝나겠는데 내년에 민간인으로 돌아갈 시준으로서는 자기 나라니까 문제다.
그래서 그는 이번 출장을 ‘다음 주석’이 권력을 집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자신조차도.
그래서 시준의 지시는 거침이 없었다.
주석 부재 시의 정부 업무는 총괄서결부장 정약전에게,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서의 직무는 상임위원회 위원인 평준위원장 김창시에게 ‘공식적으로’ 위임한다.
마찬가지로 혁명재판소장은 차석 판관 이서구가 대행하고 혁명군은 혁명무력부장 차형기와 2영대장 홍총각이 각자 군정과 군령권을 나누어 처리한다.
이상 열거한 사람들은 모두 따로 시준의 사전, 사후 승인이 필요 없는 완전한 대행권을 가진다.
서로 의견 차이가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을 조율하기 위해 있는 게 정치국이다.
정치국은 어디까지나 회의체이지, 무슨 조선노동당 정치국처럼 경애하는 주석 동지의 교시를 받드는 지시 하달 자리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체제가 시준이 없는 최장 두어 달 정도 지속된다면, 나라의 입법‧사법‧행정‧군사를 한 사람이 전단하는 게 사실 자연스럽지 않다는 인식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시준이 이 간단한 직무대리 편성을 용인받기 위해 평양에서 겪어야 했던 노고는 말로 다 표현도 못 한다.
각 파벌을 세심하게 고려한 시준의 업무 분장은, 마치 알렉산드로스의 역사상 최고로 무책임한 유언 “가장 강한 자에게” 와 같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인도에서 파업한 병사들 엿 먹어 보라는 소리라고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다만 시준이 죽기 전에 다음 주석을 향한 대권 경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아직 공화국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심한 경우, 그러니까 이제초 같은 사람은 주석이 떠난다는 것에 걱정했지 주석이 필멸자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현재 사람들의 생각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이때 성과를 보이는 자가 바로 2인자다!’
민주주의의 대의로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성과’를 (마치 북한처럼) 자신이 맡은 조직을 사유물로 활용해서 달성하면 안 된다는 점까지 알기에는 19세기 조선인의 민주정치 경험이 너무 일천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특히 무력을 가진 혁명군이 가장 위험했다. 남공철 정도야 설명하면 이해하겠지만 차형기와 홍총각은 애초에 배운 것 없는 밑바닥 깡패 출신이다.
그러나 그게 이 두 사람이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다.
두 사람은 시준이 일개 상단 하나 들고 왕에게 맞섰을 때부터 쾌히 시준과 함께한 가장 충성스러운 동지다. 세에 휩쓸려 합류한 자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시준과 함께 죽을 수 있었다.
바로 그래서 이들이 시준의 목숨줄인 혁명군의 중추를 맡고 있는 것이다.
홍총각이 과거 영국인을 ‘쎄멘’ 해서 처리한 것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라, 논리적 설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다.
시준은 그 두 사람과 옛정을 되새기며 밤새 술잔을 나누었다.
가끔 오가는 중요한 얘기와, 대부분 떠들던 전혀 안 중요한 잡담 끝에 시준은 숙취와 안심을 얻었다. 두 사람도 이제 주석의 제1장군을 자처하며 쿠데타를 일으키는 짓 같은 건 안 할 것이다.
***
그런 개고생을 한 만큼 이 체제를 호락호락 한 번 쓰고 버릴 생각 따윈 없었다.
시준은 돌아와서도 은근슬쩍 업무 환수를 미루고 그 상태를 고착시킬 계획이었다.
절대 탈주를 위한 수작질은 아니다. 모든 것은 그 한 몸 불살라 공화국의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다.
‘워싱턴이 2번 만에 물러나서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그럼 난 한 번 만에 물러난다!’
민주주의의 할애비가 되기 위한 시준의 포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화국 헌법에서 못을 박아야 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던 헌법은 다음 총선거 때 인민에게 승인받겠다는 목표를 세워 놨다.
시준에게 강제 소집된 중앙인민회의 특별법제위원회(特別法制委員會)는 그래도 왜 (정시준의 영도가 아니라) 법이 필요한지는 이해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찬성했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 헌법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겸직 금지 조항을 넣는다. 시준이 개입하면 자구 하나 쑤셔 넣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수단이 독재인데 결과가 독재가 안 되겠느냐는 상식적인 생각을 시준은 아직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처럼 민주화의 열망에 불타는 시준의 진심과 반대로, 이렇게 되면 ‘그럼 적어도 네 임기 끝날 때까지는 혼자 다 해 처먹겠다는 거 아니냐’는 통렬한 지적이 나온다.
사실 여기에 대해선 시준도 흔한 독재자의 변명밖에 할 수 없기는 하다.
‘당장 물러난다고 하면 여러 혼란과 반발이 있을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지금의 누란지위에서 갑자기 분열을 일으키면 나라에 큰 해가……. 약속한 딱 1년만 더…….’
조선노동당원들도 당원증 들어 올리기 망설일 만큼 진부한 대사들이지만 거짓말은 아니라는 점이 더 속 터졌다. 아무도 안 믿어주는 진실이라는 것은 이토록 사람을 주화입마에 들게 한다.
어쩔 수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리라. 그리하면 후대 역사가들도 시준에게 독재의 야망이 있었다고는 평가하지 못할 것이다.
기필코, 내년에는 물러난다.
시준은 이를 악물었다. 기랑은 시준의 입에서 들리는 빠드득 소리에 흠칫했다.
***
“오랜만에 뵙소이다. 주석 동지. 그런데 오면서 어디가 불편하셨소이까? 낯빛이 왜 그러시오?”
동인도 회사 상관에서 마중 나온 정약용이 고개를 갸웃하자 시준은 억지로 얼굴을 폈다.
“아닙니다. 외사통호부장 동지. 앞으로의 일에 근심했던 것이지, 오는 길은 여러 동지들의 도움으로 아주 편안하였습니다.”
시준이 생각한 ‘앞으로의 일’은 아니지만 정약용은 자기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쪽도 시간이 급하고 해서 정약용은 바로 용건에 들어갔다.
“주석 동지의 말씀이 바로 제 생각과도 같습니다. 이 강남의 혁명은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으니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로에 고단하지 않으시다면…….”
“난 괜찮소.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요.”
정약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일종의 브리핑을 시작했다.
“강남의 수억 인민들은 오랫동안 호강(豪强)한 애신각라씨의 압제에 시달려 왔고, 많은 호걸들이 분개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북벌을 외치며 저 옛날 주원장과 같은 깃발을 든다면 청국이 어찌 나올지는 자명합니다.”
전생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애신각라가 뭔데?’ 정도로 답했겠지만 지금은 시준도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겪었다.
그래서 정약용의 ‘자명한 사실’은 시준마저도 예상할 수 있었다.
“여진족은 물론이고 몽고, 회흘(위구르), 토번 사람들까지 다 강남 한인에게 죽는다고 부추겨 막겠구려. 강북에서 만주인에게 허리 굽혀 영화를 누리던 한인도 거기 들어가겠지.
그렇게 이간질하면서 한편으로는 족속이 다른 북방의 병사를 파견하여, 옛날 신강(新疆, 여기서는 준가르)을 평정했을 때처럼 젖먹이부터 노인까지 하나 남기지 않고 죽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 것이오.”
청나라는 상고시대부터 21세기의 하나가 되고 싶은 두 중국까지 전부 따져도 가장 큰 영토를 보유했던 나라다.
각자 지역, 문화, 언어, 인종이 판이하게 다른 광대한 영역을 2백여 년이나 통치했던 것이다.
그 사유가 청 황제들의 신묘한 지도력이라면 참 좋았겠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의외로 답은 더 단순했다.
청은 반항하면 그냥 다 죽였다. 사람이 없으니 문제가 일어날 까닭이 없다.
청은 원에 비해 인류 문명의 후반기를 영위한 국가라 일반적으로 잘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여진족이 몽골족과 무슨 수준 차이가 있을 거라 여기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
방금 시준이 언급한 신강, 그러니까 준가르 오이라트인의 경우 현대에 어떻게 조사할 자료도 마땅찮다. 살아서 후세에 지식을 전할 인간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륭제에게는 가스실도, 철도도, 발달된 행정 체계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히틀러도 못 한 일을 해내었다. 화약 무기도 변변찮은 여진족이 명을 무너뜨렸던 일과 같이,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근성이지 기술이 아니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집착적인 살인 욕구로 죽이고 또 죽이자 준가르라는 한 종족 집단은 지구상에서 영구히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마오쩌둥이 티베트를 강제 병합할 때 바로 이 치적을 참고한다. 둘 다 적게 잡아도 수십만에 달하는 사람을 살해하고 나서 ‘빈 땅’을 차지했다.
누차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대륙은 원래 단위부터가 다르다. 만약 조선이 저 짓거리 중 하나라도 당했으면 그냥 국가 소멸이다. 전쟁군주 인조의 위업은 절대 과소평가되어선 안 된다.
어째 청이 얻어맞았다는 이미지가 있는 태평천국의 난도 마찬가지다.
점령과 전수 학살이 같은 단어로 취급되는 피바다 끝에 결과적으로는 분명히 진압했다. 태평천국은 패배했다.
다만 한족은 건륭제도 포기했을 만큼 만만찮은 종족이라, 1명 죽이면 10명을 낳는 크릴새우 작전으로 대항하여 다 죽진 않았을 뿐이다.
영국만 제외하면 19세기 후반처럼 외세의 활발한 간섭이 아직 없는 청나라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하나의 중국’ 수평 혁명도 그런 식으로 짓밟힐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약용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족이 북벌을 한다는 식으로 들고일어나서는 안 되오이다.”
“어떤 복안이 있으시오?”
“인민의 적은 북경에 있는 소위 황제와 그를 따르는 권귀(權貴)들입니다. 얼마 안 되는 여진인이 권세와 재물을 거의 오로지하고 있는바, 이는 마치 예전 우리가 삼남을 평정할 때의 지주와 같지요. 그러므로 여진을 제한 다섯 가지 족속은 수평도 아래 일치단결한 동지가 되어야 합니다.”
“다섯 가지 족속?”
“예. 한인, 몽고인, 회흘인, 토번인, 그리고 이 강남의 월인(越人, 묘족을 말한다)입니다. 월인 또한 예전 백련(白蓮)의 난리 때 마을째로 씨가 마른 고을이 많아 많은 원한을 가지고 있소이다. 이 다섯 족속은 완전히 하나이고 또 수평합니다. 북쪽에 있다 하여 적이 아닌 것입니다.”
정약용은 이에 대해 한참 동안 더 부연했다.
강남이 강북으로 쳐들어온다면 강북인들은 청 정부의 능숙한 편가르기와 위협에 못 이겨 같이 강남과 싸울 것이다. 주원장이 북벌을 할 때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거점은 상하이일지라도 ‘강남만의 혁명’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을 위해 공화국의 지원 세력은 천리교의 연줄을 이용하여 중국 내륙의 수운을 타고 장강 남북의 여러 동지들과 긴밀히 연결한다(바다는 영국 때문에 껄끄럽다). 강북으로 하여금 혁명에서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줘선 안 된다.
특히 북경 인근에는, 임칙서가 임청을 거기서 만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천리교 세력이 꽤 뻗쳐 있고 반심을 가진 한족 지식인들도 많다.
당장 건륭 연간 박지원 같은 외국인도 그냥 아무 집이나 찾아 들어가 필담한 선비들이 대개 그런 사람들이었다.
조선인이나 한인이나 여진족에게 정복당하기는 매한가지인 터라, 그들은 고아하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여진족 정부를 씹어댄 다음 사이좋게 종이를 찢어 화로에 태웠다. 문제는 조선 선비답게 그걸 모조리 외워버린 박지원이 돌아와서 책으로 냈다는 정도일까.
다들 그저 힘에 눌려 있었을 뿐이라, 사실 너 말고 다른 애들도 다 쟤 싫어한다고 적극적으로 알려주면 좋아라 하고 달려올 가능성이 꽤 높았다.
따라서 몽고 48부나 티베트의 판첸 라마 등 기존에 반심이 있던 세력은 물론, 강북의 한족들까지 안심시킬 만한 슬로건이 필요했다.
안심의 핵심은 안전이다. 적을 최대한 축소하고 우리 편을 최대한 과장하여야 아군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정약용은 삼남에서 지주를 쓸어버렸던 그 논리를 그대로 여진족에게 적용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여진족은 없어도 된다. 그들을 공통의 적으로 만들어 말살하거나 고향으로 내쫓는다.
“이 땅은 조선과 다르게 여러 족속이 뒤엉켜 사는데, 반동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하여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주석 동지께서 교시하신 하나의 중국이지요. 모든 족속이 서로 도와가며 조화되는 이 경지를 일컬어 오족공화(五族共和)라고 합니다. 이것을 ‘하나의 중국’에서 제일가는 기치로 내세우지 않고서는 혁명이 달성되기 힘듭니다.”
고려인민‘공화’국에서 따와 이것을 제창한 정약용은 물론, 미래인 시준 역시 오족공화가 중화민국의 캐치프레이즈라는 사실은 모른다.
더하여 이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일제 괴뢰 만주국의 오족협화(五族協和) 역시 알지 못한다. 그저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주 좋소. 그것을 일개중국과 함께 이 혁명의 두 전위대장으로 앞장세우도록 하시오!”
혁명에 펄럭이는 적기를 빼면 시체다.
그리고 이 오족공화의 이념까지 더하면 깃발의 도안은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그냥 적기로는 공화국과 헷갈리기 때문에, 시준은 별 5개가 그려진 붉은 깃발을 창작했다.
시준이 사상적으로 의심스러운 건 아니다. 정약용이 오족공화라고 했지 않은가. 비록 지금은 제자가 아니라도 시준은 언제나 정약용의 말을 존중해 왔다.
그러나 사람의 학습과 편견이란 게 또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어디서 많이 본 깃발을 그린 시준은, 그 순간 시공을 뛰어넘은 강력한 경고가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시준은 별을 하나 더 그렸다. 그러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의 큰 별은 혁명의 빛 그 자체를 말하오. 옆에 둥글게 늘어선 다섯 개의 별은 오족공화의 수평한 다섯 족속을 이름이며, 이 모두를 합하면 별이 여섯이니 바로 남두육성의 개수요.”
정약용은 전 제자에게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 번득이는 학문적 재치에 크게 놀랐다. 오족의 화합과 혁명을 다시 없이 명징하게 드러내는 깃발이 곧 완성되자 임칙서는 눈물을 흘렸다.
‘정시준이 궁벽한 동방에서 태어난 것이 아깝구나. 이 중화에 있었다면 반드시 천하를 호령할 일재였을 것을!’
송강부 곳곳에서 사람들이 붉은 깃발에 노란 별을 그려대는 동안 시준은 실무적 준비에 들어갔다.
구호나 깃발은, 꽤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혁명을 달성할 수는 없다.
정약용의 말이 이루어지려면 시준이 강남과 강북 전역에서 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두 사람은 시준처럼 뱃사람이나 상인인 척하고 온 이삼백 명의 사람들을 신중하게 배치했다.
공화국(그리고 일부 영국)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2개의 집단, 혁명군 정찰총국과 공화국 해병대에서 차출되어 편성된 혼성 특작부대(特作部隊)였다.
***
현재는 로드 암허스트의 소환이 런던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암허스트가 예언가가 아닌 이상 그것을 알 리 없었다.
그래서 암허스트는 위화감 없이 중국 공사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가 들고 있던 편지도 영국에서 온 것은 아니었다.
동인도 회사가 로드 암허스트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로드 암허스트가 그리 쉽게 동인도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을 리 없다.
명색이 타향에 멀리 나온 같은 나라 사람들인데, 그런 호조건에서도 자기편을 잠입시키지 못하면 태생부터 정치가와 군인의 의무를 짊어진 유럽 귀족의 자격이 없다.
정약용이 동인도 회사에서 정보를 뽑아간 만큼 동인도 회사에서도 공화국의 움직임을 당연히 눈치챘다. 그리고 그 정보는 오래잖아 북경의 로드 암허스트에게 전달되었다.
암허스트는 편지를 책상에 툭 내던졌다. 그는 입술을 좀 뒤틀고는 손을 들어 눈두덩에 얹었다.
암허스트는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중국식 창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살이 그의 얼굴에 떨어졌다.
“임기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려 했는데 너무 제멋대로 설치는군. 정시준. 이제 그만 폐기 처분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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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티베트의 (현재까지 계속되는) 참상은 중국의 짓이지만, 사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똥 같은 일이 다 그렇듯이 영국의 역할도 지대한데... 모두 늘어놓으려면 너무 길겠군요.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청대 중국에 대해 자연스럽게 청-조선 관계를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청은 조선보다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 더 다이나믹한 대외 관계를 겪었고 티베트는 그 중심지였죠.
2. 알렉산드로스는 원정지에서 병사할 당시 차기 왕을 묻는 장군들에게 “가장 강한 자”라고 대답하고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대충 알아들었지?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정도 되겠군요.
물론 이건 당대 그리스 역사가의 기록이라 신빙성은 의심됩니다만(아틀란티스도 조상 걸고 맹세하던 놈들입니다), 그 후 장군들이 나라를 갈라 먹고 할거한 것은 사실이지요.
다만, 디아도코이 시대는 그저 군벌의 혼란기가 아니라 헬레니즘 문화를 제대로 정착하고 소아시아와 이집트 후계 여러 문명의 근간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현대 들어 생겨나고 있습니다.
3. 오리지널 오족공화는 본문에 나온 다섯 종족에서 묘족이 빠지고 만주인(여진족)이 들어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족, 몽골족, 위구르족, 티베트인은 만주족과 함께 중국을 구성하는 개별 정체성의 민족으로 여겨졌다는 뜻이죠. 참고로 만주국의 오족협화는 일본인, 조선인, 한인, 몽골인, 만주인입니다.
4. HMS 파워풀은 작품 초중반부 자주 모습을 비췄던 윌리엄 오브라이언 드루리 제독의 배입니다. 베트남 해군에 깨졌던 그 함대의 기함 맞습니다. 존 메이틀랜드 소장은 당대 영국 해군의 선상 육박전 전문가로 몇 차례 나왔었지요. 오랜만에 나와서 다시 설명이 들어갔습니다.
5. 반란이나 전쟁 등 극단적인 사태까지 갔을 때는 본문처럼 씨도 안 남기는 일관된 학살로 대응하기는 했으나, 평시 청나라의 이민족 지배는 상당히 정교하고 타협적인 것이었습니다.
역사학자 윌리엄 로우의 말처럼 청 황제는 한으로서 여진족을, 천자로서 한인을, 대칸으로서 몽골인을, 달라이 라마/판첸 라마의 제자이자 전륜성왕으로서 티베트를 다스렸습니다. 이를 명나라의 (외부 야만 문명에 의한 침식을 우려하여) 외부 통치에 관심을 안 가지고 분할 견제만을 추구하던 정책과 대비하여 보는 관점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