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65. 하나의 중국(1)
현재 동아시아의 세력 구도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영국이 암허스트 남작을 중심으로 북경에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청은 그 독사가 주입한 독 때문에 빠르게 말라가는 중이며, 거기에 내부에 천리교라는 암덩어리도 있는 상태다.
천리교의 경우 영국과 느슨한 사업상의 관계를 유지한 채 세를 늘리는 중이다.
주도면밀한 와신상담이라고는 하기 힘든 게, 이 시절 반란군이란 게 대개 그렇듯 각지에서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서둘러 봉기하거나 정보가 새나가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암세포를 아무리 잘라내어도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생겨나듯 천리교는 전체적으로 보면 그 세가 늘어만 가는 중이었다.
일본은 특이할 것 없는 상식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영국의 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류큐를 통째로 빼앗기게 생긴 사쓰마 번은 전 일본 총궐기와 영국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허나 번주들이나 정이대장군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기 때문에 호응은 시원찮았다.
그리고 이제 내부를 정리한 고려인민공화국도 바깥에 눈을 돌렸다.
시준이 중국에 밀사를 파견하면서 부여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현재 암허스트의 강짜 때문에 피곤한 동인도 회사와 협력하여 여론을 선동한다. 로드 암허스트가 사세를 눈치채고 고려에 협조해도 좋지만, 최선의 수는 암허스트‘만’ 영국으로 도로 쫓아 보내는 것이다.
극동 주둔 영국군의 해체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당장 청나라의 황룡이 투명한 용으로 바뀌면서 울부짖을 테니까 말이다(시준은 아직 지친왕의 얼음검에 대해서는 모른다).
좀 영국사람 안 같은 인물이 와서 중국 공사를 맡고, 거기에 주 고려인민공화국 영국 공사도 같이 부임하여 서로 견제하는 게 좋다. 애초에 암허스트 혼자서 다 해 처먹으니까 여기의 영국군이 사실상 그의 사병처럼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천리교와의 교우를 재점검하고 시준이 직접 가도 안전할 만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초 이론이랄 게 조악한 천리교는 그간 월간 대혁명을 통해 공화국의 선진적 혁명학(革命學)을 많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임칙서를 필두로 한 청의 반골 지식인들은 그것을 기반으로 대청 반란의 논리를 만들었다. 정약전은 대국의 스승이라 함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며 감탄했다.
정치국 최고 간부인 정약용의 방문에 이은 주석 동지의 친림은 일세의 대사변이다. 이는 혁명은 결코 동지를 버리지 않는다는 공화국의 이념을 실천하는 항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이번 일은 중요했다.
정치국 위원들 사이에서 이 사업은 ‘전 세계 인민 동시 혁명’이라 불리고 있었다.
‘천하’라는 기존의 말은 인민이 하늘이라는 반동적 신 아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적당하지 않다는 정감록파의 의견이 있었고, 그에 따라 결국 공화국에서는 불교계에서 차용한 ‘세계’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업의 선봉을 맡은 자는 공화국 사람이 아니었다.
***
더 타임스 기자 토마스 반스는 시준의 ‘명예로운 환대와 친절한 지원’에 만족하고 있었다.
공화국 국무당 외사통호부장이라는 고관인 정약용이 그를 상하이의 동인도 회사 상관에 떨궈 마음 놓고 향응을 즐기도록 해 주었다는 뜻이다.
동인도 회사는 암허스트의 정책에 불만이 많다 보니 시준과 비슷한 이해관계가 있었고, 그래서 공화국의 ‘홍보비’ 중 일부분을 기꺼이 부담해 주었다. 존 레디와 인연이 깊은 정약용의 활약이 컸다.
그들 역시 조금 더 말이 통하는 중국 공사가 부임했으면 하는 바람은 같았다. 암허스트의 눈이 직접 미치는 톈진이 아니라 상하이로 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상하이에 대기하고 있던 존 레디 소령은 반스를 맞아들여 한 잔 따라 주었다.
“자, 반스 씨. 이 극동에서는 ‘올바른’ 신사만 맛볼 자격이 있는 버건디(Burgundy, 부르고뉴) 와인이오. 조선에 있으면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나라 사람들이 더 원하는 걸 잘 알겠지. 이색적인 중국의 여인이라도 보시겠소?”
“황제는 매춘과 접대부를 금지한 것으로 아는데? 아, 물론 황제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도 금하셨지요. 그리고 나는 우리 고향 신부님께 항상 불경한 신도라고 욕을 먹곤 했단 말입니다.”
“하하! 농담을 할 줄 아는 분이시군.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잠깐만 눈을 감으시고, 중국 황제의 눈도 잠시 감겨 주소서.”
그렇게 시작된 자리는 곧 본격적 용건에 들어갔다.
“제물포는 도저히 항구를 건설할 만한 곳이 아니고 공화국 정부도 별로 의욕이 없는데도, 암허스트 남작은 그게 공화국의 허를 찌를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오. 언젠가는 수도를 옮길 거라고 보는 게지. 반스 씨. 당신이 보기엔 어떻소? 정시준은 의장 자리에서 퇴위하고 한양파(派)가 득세할 것 같소?”
반스는 레디 소령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어림도 없을 겁니다. 무슨 큰 스캔들이 없지 않은 이상 의장 정시준의 퇴임은 어려울걸요. 저 반역자 워싱턴처럼.”
“그렇지요. 그런데 로드 암허스트는 막무가내야. 공화국이 이제 한양을 수도 삼지 않으리라는 것이 명백해졌는데도,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는커녕 그러면 더 잘 됐으니 아예 제물포에 추가로 토지를 매입해서 군사 요새도 건설하라는 거야. 수도 옆이 아니니 공화국도 반대할 명분이 없지 않겠느냐고. 젠장, 공화국 정부에서 뭐라고 했을 것 같소?”
“당신을 바보라고 비웃었을 것 같은데.”
“울화통이 터지지만 바로 그거요. 아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조선식 농담이겠지만, 정시준이 인천으로 적군이 상륙할 거라고 예언했다나 뭐라나 떠들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군. 어떻게 외국군을 영구히 들여놓을 수 있느냐면서.”
레디 소령은 자기가 접대하는 자인지 접대받는 자인지도 헷갈릴 정도의 엄청난 기세로 잔을 들이켰다.
하긴 사회적 지위는 동인도 회사의 극동아시아 총책인 존 레디가 훨씬 높으니 이해해 줄 만한 일이다.
포도주 냄새가 담긴 숨을 길게 내쉰 레디 소령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증거는 없고 크게 떠들 이야기는 못 되지만,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그에게는 ‘모종의 동기’가 있는 모양이오.”
반스는 잠시 생각했다.
“부정 수뢰? 아니, 공사 이득을 약취한다면, 소령님. 미안하지만 내게는 당신들 동인도 회사밖에 공범자가 안 떠오르는군요. 조선이나 중국에 무슨 거대 건설업자 조합이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아니, 아니. 그게 아니오. 물론 그런 건 없지만, 우리에게도 이득 되는 일이 아니야. 협조하지 않으면 중국에서 장사하기 어려울 줄 알라며 공사비를 마음대로 후려치는데 누가 이런 걸 하고 싶겠소?
우리가 말하는 동기는 다른 거요. 말하자면 일종의 정부 전복이지. 프랑스인들이 조선에서 시도했던 그것.”
반스는 레디 소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정치가가 실수에 직면했을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드물게 사용되는 첫 번째는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제물포 대신 다른 항구의 개항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공화국에 (원래 영국이 뜯어냈어야 할) 많은 이권을 양보하는 방안이 해당된다.
물론 그러면 암허스트는 확장주의 파벌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게 들리지만 능력이 모자라 강도질을 못 했다면 비난의 대상이 되는 나라가 영국이다.
여기에서 정치가들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두 번째 방법이 필요해진다.
바로 처음부터 실수가 아닌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요체는 공화국이 수도를 다시 옮기면 된다는 건데, 그러려면 정시준이 아니라 한양에 연고가 있는 다른 정치 세력을 집권하게 하는 편이 좋다.
로드 암허스트의 분석대로 경기 일대의 천년 기득권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복벽주의와는 관계없이, 이득 때문에 공화국의 중심지를 한양으로 끌어오고 싶어 하는 자는 꽤 있을 것이다.
이는 혁명 반대세력이 아니다. 공화국이 내세운 평등주의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시준은 공식적으로 탄압할 수 없으며 로드 암허스트가 지원하기도 편하다.
수도 문제뿐 아니라, 이제 막 수립된 혁명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가진 자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프랑스 혁명기를 생각해 보면 명약관화하다. 그러한 불만분자들 역시 공통의 적인 정시준을 노리고 함께 모이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이 만약 영국군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어떨까?
반스는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는 저편에서 춤을 추고 있는 중국 무희를 힐끗 보고 곧 그녀들에 대해 잊어버렸다.
“괜찮은 생각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머리 쓰는 것보다야 그냥 군대로 밀어 버리고 인도처럼 직접 다스리는 건? 어차피 로드 암허스트는 언젠가 런던으로 돌아갈 테고, 공화국을 병합한다면 그 통치는 동인도 회사가 맡지 않겠습니까. 남작에게 협조하는 방안은 왜 기각된 거죠?”
존 레디는 떠보는 수작 집어치우라는 듯이 잔을 탕 내리쳤다.
“이거 보시오. 내가 요즘 조선인들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바보가 아니야. 인도? 말 잘했소. 델리의 죄수나 다름없는 황제 악바르(악바르 2세)의 얼굴을 왜 금화에 새겨 주었겠소? 번국 동맹(Subsidiary alliance)은 뭣 때문에 했겠냐는 말이오.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똘똘 뭉쳐 반항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지 않소.”
상대방이 말을 더 많이 하게 할수록 기자로서는 유리하다.
원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게 된 반스는 더 말해보라는 몸짓으로 와인 잔을 기울였다.
그래서 레디 소령은 계속 말했다.
“한마디로 나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조선이 더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외다. 로드 암허스트는 류큐 건으로 일본 영주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데다가 최근에는 휘하의 해군이 거기의 사절에 대해 독살 시도까지 – 제기랄, 똥구멍에나 해 대는 부랑배 새끼들이 대체 왜 그런 짓을! - 해서 도저히 관계를 풀기 힘들고, 중국은 지금 보시는 대로요.”
반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영국 해군이라면 사절을 독살하는 게 아니라 사절을 겁탈하는 편이 어울린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의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보는 대로라니요? 여기 개항장의 치안은 안정적으로 보입니다만.”
“대드는 놈들을 다 죽였으니까! 대신에 우리 이득도 아주 안정적으로 처박히게 되었지. 중국 지방관들이 불공정 무역에 대해 불평하거나 심지어 자기 권한을 활용해 방해하는 것은, 그래. 그건 있을 수 있어. 이해해.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해소할 여러 전통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오.
하지만 로드 암허스트는 조약 위반이라는 말 한 마디만 있으면 폭도라거나 지방관의 고용인 따윈 마음대로 죽여도 전혀 원망하지 않을 것처럼 굴고 있지! 그러나 그럴 리가 있겠소? 우리 회사 직원들이 올해 개항장 밖으로 나갔다가 실종된 게 벌써 세 명째요. 나는 중국인들이 영국인을 잡아먹었다는 것에 뭐든지 걸 수 있소. 그만큼 우리를 증오하거든.”
반스는 평양에서 봤던 사형 집행을 떠올렸다.
“그래서 동맹해 줄 곳은 공화국밖에 안 남았다는 겁니까?”
“솔직히 공화국 자체에는 동맹국의 가치까진 없소. 군사는 빈약하고 물산은 가난하지. 그러나 만약 극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영국에 대한 증오라는 공통 가치를 주게 되면 그들은 단결할 거요. 그러면 아주 골치 아프게 되오. 중국과 일본이 조선의 항구를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 하나만 해도 조선과의 우호를 유지할 절실한 이유요.”
“그렇군요.”
너무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얼굴이 벌게진 존 레디는 ‘평안도 담배’를 집어 들었다.
이제 이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를 끝내고 본격적 유흥에 돌입하자는 신호였다.
“우리 명예 회사(동인도 회사)가 인도에서 실패 본 이유가 뭐겠소? 회사는 상업적 매매를 해야 하는데, 통치에 손을 대고 군대를 유지하려니 가외 비용이 계속 빠져나갈 수밖에.
벵골인과 싸우고, 마라타인과 싸우고, 이제는 구르카인과 싸우고 있는데 장부가 멀쩡할 리 없지. 동아시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따위는 머저리의 소치일 뿐이오. 이 점을 꼭 널리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소.”
담배를 건네받은 토마스 반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소령의 고견, 명심하겠습니다.”
동인도 회사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해 가며 이리 평화적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동인도 회사는 강압적 인도 통치 과정에서 많은 재정적 손해를 보았다.
그들과 같은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돈 되는 사업만 가져가고 나머지 노고는 정부에 떠넘긴 뒤 단꿀만 빨아야 제맛인데 이건 도무지 이문이 안 남았다.
다 경제가 아직 ‘기업이 바라는 민영화’를 충족시켜 줄 만큼 현대적으로 발전하지 않아서 그렇다.
전신도, 증기선도 없다 보니 군대와 영리를 분리할 수준이 안 되기에 둘 다 맡을 수밖에 없던 동인도 회사는 인도의 ‘하자 보수’ 때문에 밑 빠진 독 신세였다.
영국 정부도 동인도 회사를 많이 도와주려고는 했다. 꼭 의원과 귀족들이 받아먹은 게 많아서만은 아니고, 아직 궁극의 제국주의를 가동하지 못한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완전히 버릴 수 없었다.
과거 영국이 뜬금없는 인지세에 종이세, 유리세, 차(茶)세 따위를 줄줄이 붙여 아메리카 사람들이 보스턴에서 전례 없는 다도 예절을 시험하게 한 원인이 무엇인가.
전비 충당 목적도 있지만 여기에는 동인도 회사가 인도에서 본 손해를 메워 주기 위한 지분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동인도 회사에 투자한 부자들은 정부 정책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난한 자도 투표할 수 있는 국가는 오직 고려인민공화국뿐이다.
영국 부자들의 선택은 보통선거권이 왜 있어야 하는지만을 여실히 보여주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결과로 거대한 아메리카 식민지가 떨어져 나갔으니 현재 영국 정부가 동인도 회사를 좋게 볼 리가 없다.
동인도 회사를 철폐하고 인도를 직접 지배하자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고, 동인도 회사는 ‘전통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것을 막아 왔다.
이 상황에서 로드 암허스트의 ‘국가식’ 아시아 정복 시도는 동인도 회사의 왕 윌리엄 아스텔에게 민감한 자극을 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동인도 회사가 동아시아에서 다시 인도의 삽질을 반복하기 전에 정부가 미리 지분을 주장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윌리엄 아스텔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동인도 회사의 아시아 독점권을 결코 다른 데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
설사 그것이 모국 정부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동인도 회사도 틈나는 대로 본국에 계속해서 암허스트에 대한 음해를 보내고 있었다.
반스와의 만남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영국의 명예를 훼손하고 동맹을 배반’하려는 암허스트 남작에 대한 특종 기사는, 약간 과장해서 글자를 황금 잉크로 쓰는 만큼의 금액을 지불하고 작성되었다.
의장 정시준과의 우정도 지키고 약간의 부수입도 얻은 반스는 휘파람을 불며 상하이 관광에 나섰다.
레디 소령의 말마따나 영국군이 곧 법인 이 상하이 개항장의 치안은, 영국인에게는 꽤 괜찮아 보였다.
다시 말해 건전한 식견을 가진 보통 인류에게는 끔찍한 참상이었다.
***
영국 신사들의 논의는 그렇게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상남자들의 고장인 동아시아 사람들끼리는 그게 잘 안 되었다.
전직 역관 김시택은 울고 싶었다.
그는 본래 서울의 역관이었다. 평소 가진 소박한 야망 덕분에 사소한 풍파는 좀 있었지만 대체로 순탄한 중인의 관직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길리 함대가 나타나고, 그때 평안도에서 정약용과 같이 나타난 장사치 어린아이에게 휘말린 뒤 그의 인생 여로는 꽤나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말로 다 표현 못 할 우여곡절을 거쳐, 몇 년 전이었다면 꿈도 못 꿀 왕조 타도 혁명에 참여해 용맹하게 주석불을 던졌다.
그럼으로써 육조거리를 불사르는 위업을 달성하고 소원대로 중인 신분을 극복했다. 포기를 모르는 조선 불꽃남자 김시택의 전성기는 바로 그때였다.
그 공은 합당한 보상을 받았다. 지금 그는 놀랍게도 외사통호부 부부장이라는 고위직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조슈에서 약 팔고 있는 임상옥이 일본 담당 외사통호부 부부장이라면 김시택은 중국 담당인 셈이다.
영어도 이제 꽤나 하지만 원래 그의 전공은 중국어이니 경력을 잘 살렸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평안도 담배를 질겅질겅 씹는 한인 깡패놈을 보며, 김시택은 과연 자기 경력이 얼마나 잘 먹힐지 의심스러웠다.
여기가 약속된 그 술집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후천조사 임청이나 그 대리인을 만나고 싶다는 김시택의 말에 한참 킬킬대던 그 깡패의 대답은 바닥에 침을 탁 뱉는 것이었다.
“미친 새끼 다 보겠네. 난 그게 누군지 모르겠는데? 너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야?”
김시택은 정말 자기가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인지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비밀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임무 자체가 너무 무리였다. 시준의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웬 외국인이 덜렁 와서 반역자의 수괴를 접선하겠다고 하니 황당할 만도 했다. 여기에서 어떤 반역자가 ‘예,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하고 들여보내 줄까.
김시택은 마음을 비웠다. 공화국의 벼슬자리보다는 목숨이 중하다. 그는 돌아가서 주석 동지 앞에 사죄하고 임무 실패를 보고하기로 결심했다.
“그렇소? 그럼 난 이만 가 볼…….”
그렇게 물러나려 한 김시택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고이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깡패는 다시 껄껄 웃었다.
“이거 아주 웃기는 놈일세. 야. 우리가 싸구려 계집으로 보이냐? 네 멋대로 들어와서 들이받고 다시 네 멋대로 빼서 나가게?”
깡패나 폭력배는, 칼잡이가 곧 영주고 군주인 조폭국가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어느 사회건 신분 최하층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보다 약자를 찾는 능력이 비상하게 발달해 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저 깡패의 말에도 약자를 발견한 하위 포식자의 기쁨이 어려 있었다. 중국말을 모르는 김시택의 동행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과연 김시택의 앞에 있던 사내는 매우 흡족했다.
한 명은 평생 글이나 읽었을 것 같은 외국인이고, 나머지 한 명은 남단(男旦, 남자 배우)인가 싶은 호리호리한 미소년이다. 기뻐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호랑이굴에 어슬렁어슬렁 들어온 멍청이들을 일단 흠씬 패서 묶어 놓고, 정말 이들이 중요하다면 모르되 아니라면 말 그대로 골수까지 빨아먹을 생각이었다.
입성도 꽤 비싸 보이거니와, 이 시대 중국인 역시 조선인처럼 정치적으로 올바른 편이라 옆의 예쁘장한 녀석에게도 관심이 갔다.
아마 저 선비 녀석이 잔치에서 가죽 술잔 올리라고[敬皮盃] 데리고 다니는 당자(檔子, 남창)인 것 같았다.
대장은 탐욕을 담아서 호령했다. 곧 그 깡패의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두 사람을 둘러쌌다.
김시택은 주점 천장을 바라보고 탄식했다.
이 상황을 그는 몇 년 전 서대문 근처에서 한 번 본 일이 있었다.
그때는 머리 맞고 기절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시준에게 대강 들어 안다.
김시택은 참으로 두렵다는 눈으로 옆 사람을 돌아보았다.
깡패들은 그 두려움의 눈길이 왜 자기가 아니라 옆의 호리호리한 청년에게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그 미소년이 입을 열었다. 생긴 것답게 목소리도 여자처럼 가늘었다.
“잘 안 됐어?”
“안 됐소. 그런데 급양과장 동지. 아무리 주석 동지의 측근이라도 말이 왜 그렇소? 나이도 젊은 데다가 동지는 과장이고 나는 명색이 부부장 아니오.”
기랑은 김시택의 유교적 항의를 무시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유교 질서에 예속된 조선인이 아니라 혁명의 공화국 시민이기 때문이다.
원래 시준이나 지유 정도가 아니면 기랑에게 무슨 말을 듣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기에 김시택도 큰 실망감까지는 느끼지 않았다. 그냥 작게 투덜거릴 뿐이었다.
그녀는 이번 중국행에 있어 김시택의, 정확히는 정약용의 호위로 따라왔다.
시준은 친구 외국 구경도 시켜줄 겸, 급작스러운 폭력 사태에 익숙한 그녀의 능력도 활용하는 탁월한 선택이라 여기고 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랑은 별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녀는 이 일 때문에 거의 한 계절은 시준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기분을 여기의 깡패들에게 풀기로 결심했다.
김시택이 방금 체험했듯 기랑은 원래 대화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지유와도 수다를 떠는 등의 사교 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을 한 문장 이상 하는 때는 시준의 앞에서밖에 없다.
그래서 기랑은 이번에도 무슨 욕설이나 협박을 늘어놓지 않았다.
기랑은 동전 꺼내는 것처럼 소매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러고는 아무 전조 없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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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버건디(영어), 부르군트(독일어)는 모두 포도주로 유명한 그 부르고뉴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때는 슬슬 음주가 그 전까지의 ‘생활의 일부’가 아닌 ‘방종한 타락’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공장 노동자들이 술 취해 있으면 공장주 돈벌이가 안 되니까요. 19세기 전반부까지만 해도 유럽과 미국에선 임금 대신 술을 주는 일이 잦았는데 이도 차츰 금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찌됐건 술을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19세기 중후반부터는 각종 ‘상류층 예절’의 창조와 함께 음주도 거기 포함되게 됩니다. ‘올바른 자리에서 올바른 술’을 먹는 것이 그 핵심이었죠. 이로써 ‘신사와 숙녀들의 술’을 ‘하층민들의 주정’과는 분리하려는 시도였습니다.
2. 청에서는 남자 배우와 선비 간의 연애가 매우 성행했습니다.
작중 나온 ‘경피배’는 당시에 유행한 유희인데, 말 그대로 가죽 술잔을 올린다는 뜻입니다. 술잔은 술을 담는 그릇이고, 그게 (사람의) 피부이려면 어떻게 잔을 올려야 할지 짐작하실 테니 이하 생략하겠습니다(손에 담아 주는 건 아닙니다). 물론 당대 중국의 잔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여자가 동석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은 최윤주, 2017, <청대 사인과 남단 관계 연구- 『品花宝鉴』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영국의 인도 통치는 다 말하기엔 너무 길고 복잡하죠. 작중 나온 것만 설명하자면, 이때 동인도 회사는 18세기의 벵골 점령과 플라시 전투, 마라타 전쟁 등을 거쳐 무굴 제국을 무력화시키고 황제 악바르 2세를 델리에 사실상 유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를 우대하는 척하며, 다른 편으로는 작중 나온 번국 동맹(직역하면 계열사 동맹. 번국 동맹이라는 말은 창작된 의역입니다)을 통해 인도에서 일종의 조공국(인도 토후국들)–책봉국(동인도 회사)질서를 성립하지요. 영국은 이 토후국들 사이의 분란을 조장하기 위해 애썼는데, 그 중 하나가 예포(살류트)의 개수로 군주들을 엄격히 차별하는 것이었습니다.
4. 동인도 회사는 1800년대 초기부터 작중대로 ‘너네 실적 안 나오는 것 같은데 그냥 해체하지?’ 하는 압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작중 초반에도 한 번 이것 때문에 동인도 회사가 초조해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죠. 실제 해체된 것은 세포이 반란 이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