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201화 (201/284)

202화

64. 싹 틔우는 씨앗(2)

혁명 이후 일제히 외국으로 튀어 버린 프랑스 귀족이나 왕족과 달리 조선 복벽파는 여전히 국내에 많이 남아 있었다.

조선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많은 차이점 중 하나였다. 유럽에 비해 서로 거의 왕래가 없던 동양 삼국이었기에 이번 혁명에도 외국이 별로 연관되지 않았다.

가늘게 유지되던 공적 연관은 시준이 영국을 방패 삼아 조선 독립을 얻어냄으로써 차단했다. 그 후는 공화국과 중국(의 사이비 종교단체), 일본(의 잠매상)이 새로 판을 짠 ‘무역’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구 조선 왕국의 귀족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가서 문 두드릴 만한 친구가 없었다.

영국 가서 자기 나라 침공해 달라고 로비하다가 끝내 돌아와서 왕까지 해 먹은, 혁명가들로서는 산 채로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샤를 10세 같은 사람이 있기 힘든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중국이나 일본은 방법이 있다. 중국 귀족은 재주껏 천라지망을 탈출하여 어디 기연이라도 있을 만한 심산유곡으로 달아나면 되고, 일본 귀족은 그냥 배를 가르면 된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만큼 땅이 넓지 않아서 금방 찾아낼 수 있고, 배를 어쩌고 하는 왜놈의 흉악한 습성은 신체발부를 감히 훼손하지 않는 효의 기풍에 비춰보건대 용납할 수 없는 짓이었다. 아파서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조선의 왕정 복고주의자들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한 채 그냥 숨어 살았다. 이로써 조선군이 왜 양자역학의 달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갈 데가 없으니까.

이는 국내에 불안 요소가 여전히 있다는 단점과 함께, 여차하면 일망타진하기 좋다는 장점도 제공했다. 시준이 김조순을 살려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시준에게 장점이라면 반동에게는 단점이다.

한성에서 살아서 도망친 이후 아직까지 암약 중인 조선 최후의 명장,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파괴자 이득제에게는 조선의 폐쇄성이 상당한 곤란으로 작용했다. 이득제로서는 강철군주의 서구 개방 정책이 실시되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이었다.

본래 세 자릿수를 헤아렸던 이득제의 직속 부하는, 이제 좀 좁게 붙으면 동네 집 마당에 다 모여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김조순이 처형당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이득제는 그것을 적극 알리며 부하들을 고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효과였다.

‘수령인 김조순조차도 용서받았다면, 하잘것없는 종복인 우리들은 더 쉽게 죄를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득제의 동지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정시준의 동지가 되었다.

남쪽의 험지로 지리산이 있다면 북쪽의 험지로는 삼수갑산이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논리로 그곳에 도망쳐 있던 이득제는 추위와 분노 때문에 부들부들 떨며 종이를 움켜쥐었다.

부하가 구해 온 이번 달 월간 대혁명은 가관이었다.

<혁명력 4년(1814년) 가을, 고려인민공화국 주석이시며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시며 혁명군의 총사령이시고 혁명재판소의 소장이신 정시준 동지께서는 반동에게 부화뇌동했던 지난날을 뉘우치고 수평도로 돌아온 새 동지들을 따뜻하게 보듬으시었다>

그 제하 아래의 내용은 간단했지만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득제가 가지고 있던 한양군의 점조직 중 세 개가 밀고로 적발되어 무너지고, 체포한 자들은 전부 처형되었다.

조제프 푸셰가 남조선혁명당을 점조직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때 증명되었듯 은밀한 일이라고 해서 다 점조직이 걸맞은 게 아니다. 지금 이득제처럼 조직의 붕괴를 적의 언론으로 봐야 하는 꼴이 생기니 말이다.

그리고 그 흉측한 혁명작두인지 뭔지 하는 물건 옆에서, 어울리지 않게 해맑은 미소를 짓는 밀고자들이 옆에서 처형을 구경하고 있었다. 공화국이 포상으로 주었다는 영길리포(캘리코)로 지은 옷 한 벌씩을 입은 채였다.

다음 장에는 정시준이 일일이 그 밀고자들의 손을 잡는 그림도 있었다. 딱히 선전선동부가 숨기려고 해서는 아니고, 이 시대의 판화 한계상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묘사하기는 힘들어 그 빌어먹을 배신자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음 장, 그자들이 소고기국밥 같은 물건을 퍼먹고 있는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 쌀밥에 고깃국!>

<주석 동지의 뜨거운 그 사랑에 목메어>

주석 동지의 혁명적 교시에 의해 ‘말주머니(말풍선)’라는 물건을 처음 도입한 이 판화는 알기 쉽고 간결하여 매우 인기가 있었다.

이렇게 그림투성이인 것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한자와 한글 둘 모두 해당된다.

시준은 한문으로 쓰나 한글로 쓰나 그렇게 극적으로 독자층이 확장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예 판화를 주력 삼았다.

한 마을에 한둘은 진서 아는 자가 있고, 세 집에 하나 정도는 언문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야학에서, 논두렁에서, 그리고 공사판이나 갱도에서까지도 월간 대혁명을 큰 소리로 읽는 자원봉사자들을 볼 수 있었다.

글자가 그렇게 많이 없어서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다. 자원봉사자의 목이 쉬기 전에 동네 사람이 소식 모두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반스를 통해 들여올 인쇄기가 더 확충되면 구성을 바꿔 보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득제가 월간 대혁명을 다 읽는 데에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뒤쪽의 식자를 위한 여러 논평 같은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만화책이니까.

이득제는 잠시 후, 그가 연락을 유지해 오던 옛 노론 인사 중 거의 절반이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어렵잖게 알아냈다.

여기 적힌 숫자는 허풍이 많이 섞여 있겠지만 이 정도로 만방에 알려졌다면 추가로 엮여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이득제는 남은 애국지사들이 이 허풍을 믿고 불안해하리라는 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교활한 자가!”

이득제는 성을 내며 잡지를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곧 주워들었다. 모든 것이 곤궁한 지금의 처지에서는 종이쪼가리 하나도 소중하다.

하다못해 불쏘시개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계절이 겨울밖에 없는 것 같은 이 삼수갑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득제는 월간 대혁명을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그의 말은 강철군주의 의지를 잇는 자답게 글로벌하고 해외 지향적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패수(압록강)를 넘어야 한다. 성경부에서는 뭐라던가?”

옆에 있던 전 황해 수사 오문상(吳文常)이 소매에서 주섬주섬 더러운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나중에는 경상우도 병마사까지 해서 이득제보다 그 지위가 낮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이득제의 얼마 안 되는 참모 비슷하게 된 처지였다.

존왕의 기치고 뭐고 추워 죽을 지경이라 그냥 서북에서 혁명모자라 부르는 털모자를 어찌 하나 구해 쓰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꾀죄죄한 차림과 합쳐져서 매우 불쌍해 보였다.

“번국에서 충효인의가 무너져 그 참상이 옛 안사(安史, 안록산과 사사명. 당 말기)의 때와 다르지 않으니, 도망쳐 온 백성들을 간민이라 하여 모두 선례대로 내칠 수는 없다. 이에 천조는…….”

“건너뛰고!”

“오면 밥은 준다고 하네. 영길리국과의 무슨 조약인지 뭔지 때문에 널리 알릴 수는 없으니 강은 알아서 넘어오라고…….”

오문상의 처량한 말은 삼수갑산에 겨울이 한두 달 일찍 찾아든 것 같은 삭풍을 불게 했다.

그러나 이득제는 굴하지 않았다.

“그래. 청국도 영길리국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못할 뿐 정시준을 달갑잖게 여기고 있어. 양추에게 사직을 팔아먹은 정시준에게 천벌을 내리고 싶은 마음은 중국과 번국이 모두 한 가지이니! 조금만 더 참으세. 이제 성경으로 가기만 하면 중국의 군사를 청병할 수 있을 터. 1만의 정병만 있으면 이 웃기는 공화국인지 뭔지는 내 손에 뿌리까지 진멸될 걸세!”

그것은 꽤 가능성 있는 일처럼 보였다.

중국과 조선이 서로 명예로운 고립을 추구했다지만, 이쯤 되면 청으로서도 조선을 내버려 둘 수 없다.

맞고 있는 동생 모른 척하는 것도 일이 년이지, 이대로 가면 ‘천자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 하며 주위 번국이 다 딴생각을 하리라는 것쯤 명약관화했다.

청으로서도 자꾸 영국과 줄타기하는 조선, 아니 공화국이 아니꼬울 터. 이 기회에 진짜 이 구역 대장이 누군지를 가르쳐 주고 싶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의 완전 병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영길리인이 무슨 마술을 부리건 간에 압록강 동부로 넘어오는 천병 십만을 막을 재주는 없다.

그러므로 청으로서는 충분한 동기가 있는 셈이다.

그러면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청이 명목상 조선의 대표로 내세울 이득제에게 승산이 있느냐인데, 그것은 더더욱 쉬워 보였다.

그들이 보기에 실제로 정시준은 지금까지 투항, 내분 등으로 손쉽게 전쟁에서 이겨 온 것에 불과했다(정시준이 대구성을 도술로 폭발시켰다는 이상한 소문은 일단 뇌리에서 치워 두었다).

그러나 이득제는 정예 훈련도감군을 이끌고 조선에서 가장 단단한 요새라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정면으로 공격해 무너뜨렸다.

그중에서도 남한산성은 천하 최강의 나라인 청국조차 함락시키지 못하고 물러난 요새다(이득제는 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따라서 이득제는 홍 타이지보다 강하다.

누가 봐도 이득제에게 군사 1만, 그것도 정예 팔기가 있으면 정시준은 속절없이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그다음에는, 잠깐 몇 년의 혼란을 극복한 전주 이씨 왕조가 다시 펼쳐질 것이다.

아직 조선은 죽지 않았다. 임진년에도 병자년에도 이 정도 위기는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엄찬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조선의 명 군주들은 그때마다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이득제는 우선 선조 이연을 본받기로 했다. 지금은 선조 때와 달리 중국 망명을 말릴 신하도 없다.

그다음에는 인조 이종을 본받으면 된다. 병사만 준다면야 삼궤구고두례가 아니라 구궤이십칠고두례도 해 줄 자신이 있었다. 그의 허리는 아직 강건하다.

이득제는 성경부의 답신을 받자마자 부하들과 함께 죽을 고생을 해 가며 산을 내려와 압록강가에 다다랐다. 곧 천하 정세에 불꽃을 일으킬 자신들의 존재를 정시준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

시준이 모르는지 아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이득제의 망명을 꿈에도 몰랐던 사람은 꽤 가까이에 있었다.

지금 사실상 대청국의 정병을 쥐고 있는 지친왕, 애신각라 면녕이었다.

뭔가 이상하게 보인다면 그 생각이 맞다. 지친왕은 지금 이 사실을 몰라서는 안 된다. 성경부가 요즘 유행대로 혁명이라도 일으켜 독립국을 세울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고려국의 의민’들이 압록강을 곧 건널 것 같다는 보고를 뒤늦게 들은 지친왕은 잠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조선국의, 아니, 고려국의 역도를 우리가 받아들인다고! 성경 장군은 대체 무엇이기에 감히 그런 사안을 위에 아뢰지도 않고 결단하였느냐?”

신하들은 너 갑자기 대가리에 총 맞았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왕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으니 그런 표정도 맘대로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잠시의 침묵 후에, 지친왕은 자기가 너무 멍청한 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그럴 수 있는 자는 하나뿐이다. 바로 그의 아버지, 청의 정당하고도 유일한 황제 가경제다.

성경 장군은 당연히 열하에서 직통으로 내려온 황제의 명을 받고 그것을 결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조선에 개입하겠다는 말이며, 다시 말해 더 이상 영국을 참아 주지 않겠다는 가경제의 의사 표시다. 지난날 작은 공이 있다 해도, 가경제는 충실한 번국 조선을 타락시킨 정시준이라는 오염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엄숙하고 위엄 가득한 하늘의 뜻이 지친왕에게 유발한 것은 주화입마였다.

지금까지 자기가 청의 인민들을 위해 자존심도 굽혀 가며 영국과 ‘교섭’ - 이 자체가 목숨을 끊어야 할 굴욕이다 – 한 여러 섬세한 조치는 다 말도 못 한다.

그런데 지금 가경제는 지친왕에게 정책을 변화시키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이는 그 모든 일을 존재해서는 안 될 치부로 만들자는 것. 지친왕이 그간의 모든 ‘실책’을 뒤집어쓰고 사라지라는 의미다.

김조순이 그러했듯, 가경제 역시 아들이 자기를 원망하리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으리라.

그것이 이 땅의 부친이며 주군이다. 가솔과 신하는 원칙적으로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이 고귀한 왕일지라도 말이다.

가부장과 전제 군주란 그런 것이다.

장엄한 예식,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권위, 정돈된 서열에서 오는 안정감 등 부차적 요인을 빼고 나면 결국 신분제에서 남는 것은 로드 암허스트의 말마따나 한 사람의 주인과 나머지 전부의 노예다. 전 세계를 노예 삼은 영국인의 말이니만큼 틀림없다.

지친왕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차가웠다. 마치 얼음의 왕좌 같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칼을 집어 들었다.

몇 년 전에는 칼이 아니라 총을 쓰기는 했지만, 상무를 요구받는 만주족의 왕답게 지친왕의 검도 실용적이었다. 지친왕은 그 칼이 아까 만진 의자처럼 얼음장 같다고 생각했다.

지친왕 면녕, 후일의 도광제는 드디어 결심했다.

“나는 아무 조칙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찌 내가 국경의 간민을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당장 마병(馬兵)을 압록강으로 보내라. 결코 속모를 도적들이 근본의 중한 땅[根本重地, 만주 봉금 지역]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아니 된다!”

기존 조정 신하들은 가경제를 따라 열하로 가거나 낙향한 지 오래되었고, 북경의 신하들 중에는 당연히 지친왕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지친왕의 선언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꼴이 나기 쉽기 때문에 모든 왕조에서 아들에게 대리청정 같은 거 시키겠다고 하면 다들 말린 것이다.

황제의 뜻임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지친왕의 선언은 반역죄와 머리카락 하나 정도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가경제도 잘못했다. 가경제가 자기 체면을 위해 아무 잘못 안 한 아들을 숙청하는 거야 집안일이지만, 분조를 세워 명령체계를 혼란시킨 게 문제다. 정식으로 양위를 했어도 논란이 될 판에 이러면 조정 신하를 두 패로 가르는 일밖에 안 된다.

옛날 동쪽에 전쟁 중 비슷한 짓을 한 왕이 있기는 했는데, 그건 최속군주나 되니까 잘 넘어간 것이지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경제의 재주는 중화의 황제답게 정치보다는 검약에 있다.

그래서 지친왕은 북경의 기병대를 성경부로 출동시켰다. 성경부에 명령을 내려 봐야 안 들을 게 뻔하니까 휘하 직속 병력을 동원한 것이다.

여기에서 선수를 쳐서 조선국 잔당을 사로잡으면 가경제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낼 수 있다.

이미 지친왕은 부친을 적으로 인식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상투적 표현이 이토록 어울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도 상대는 구 조선군. 그중에서도 최정예 훈련도감이 주축이 된 병력이었다.

요 몇 년 사이 몇 번이나 증명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누구나 조선군을 격파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구도 조선군을 붙잡을 수는 없다.

혁명군이 부자연스럽게도 전혀 안 보이는 압록강을 쉽사리 넘은 이득제와 도감군은, 곧 지친왕이 보낸 팔기의 시야에 들어왔다.

성경부는 공식적으로 모르는 일이라, 만상과 달리 만주나 북중국에 다른 인맥이 없는 이득제로서는 도강 지점이 뻔했다. 실로 경사를 지키는 정예 팔기다운 판단력이었다.

그러나 그 정예군은 다음 순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해야 했다.

“사, 사라졌다!”

“무슨 헛소리냐.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빨리 찾아! 놓치면 전부 참수다!”

조선군은 일렁이는 수면을 따라 흐르고 우석대는 나뭇가지 그림자에 녹아들었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자유자재로 희롱하며 넘나드는 그 걸음은 가벼우면서 단호했다. 잠깐 눈을 깜박이는 한순간에 그들의 위치와 운동량은 수십 번 바뀌었다.

여기는 분명 그들에게 낯선 땅일 텐데도, 귀신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능숙하게 흩어져 달아나는 기세는 마치 천문과 지리를 공히 꿰뚫은 듯하였다.

조선군의 절초를 마주한 팔기는 당황하여 아무 데나 활을 당기고 총을 쏘았다. 하지만 그런 마구잡이 사격으로 누굴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지친왕의 군대는 조선군을 한 사람도 사로잡지 못했다.

조선군이 다시 실체를 드러낸 것은 한참 북쪽 책문에서였다. 팔기 지휘관은 입술을 짓씹었다. 저곳을 공격하면 정말로 황제에 대한 도전이 된다.

지휘관은 철수를 결정했다.

***

시준은 희미하게 웃었다.

“쓰레기통 작전 성공이로군.”

시준의 앞에 서 있던 전 훈련도감 초관, 현 국가보위총국장(國家保衛總局長) 방우정은 주석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으나(조선에는 쓰레기통이란 게 없다) 우선 동의해 주기로 했다.

훈련도감 조총수를 거느리고 있다가 행주산성 앞에서 항복한 초관 방우정은 용케 교화소 대신 정찰총국에 소속될 수 있었다. 솔직히 동생 방우준이 정찰총국장인 덕이다.

그 후 동생보다 낮아질 수 없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뛰어다닌 끝에 국내 전담 정보부서인 국가보위총국의 신설과 함께 그 초대 국장을 맡을 수 있었다. 이 기회를 사소한 의문으로 놓쳐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인민이 수평해도 가내의 종법 질서는 혁명조차 아직 뒤바꾸지 못했다. 그간 동생에게 보고서 갖다 바치며 지내던 굴욕의 세월이 얼마인가. 방우정은 각오를 다졌다.

“실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주석 동지의 신묘한 전법입니다.”

시준은 방우정이 자기 말을 이해한 줄 알고 그에게 동질감 담긴 우호적 시선을 보냈다. 방우정은 주석 동지가 자기에게 남다른 총애를 보낸다고 생각했다.

“동지께서 애써주셨소. 이제 창칼을 들고 일어설 만한 반동은 모두 쫓아버렸으니 큰 공이오.”

의기만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다. 무기와 군량,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폭도를 군대로 만들 수 있는 인적 자원이다.

혁명군에게는 프랑스 수병과 후에 편입된 남공철 등 조선군의 엘리트가 있었다. 그리고 조선의 복벽파에게는 김조순의 영향하에 있던 훈련도감 출신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 대부분은 지금 방씨 형제처럼 시준의 휘하에 들어와 있고, 나머지도 이제 잘 비질하여 모아다가 중국으로 쓸어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보위총국 요원들은 이득제를 둘러싼 포위망을 조절하며 그를 시나브로 삼수갑산에 몰아넣었다. 이득제는 자기가 가느다란 활로를 찾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요 두어 달 동안 시준의 손발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남만주의 비합법 경로는 예전부터 평안도 신디케이트의 구역이었다. 이득제는 자기가 대체 어떻게 성경부와 무사히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는지 잘 확인했어야 마땅했다.

청이 쳐들어올 빌미가 된다는 우려는 별로 두렵지 않았다. 조선 간섭의 필요성이 생기면 그놈들이 없어도 청은 쳐들어온다.

어차피 청을 여태까지 막은 것은 공화국이 가진 명분이 아니라 공화국이 가진 – 남에게 자랑할 수는 없는 – 친교였다. 영국과 천리교가 없었다면 청은 시준이 이공을 처음 격퇴한 시점에서 압록강을 건넜을 것이다.

오히려 이득제를 체포하지 않고 살려 보낸 일은 청에 여러 의견 대립과 분쟁을 일으켜 그 시기를 늦춰 줄 것이다.

시준은 서쪽을 돌아보았다. 그 친교의 싹은 이미 텄다. 물을 줄 때가 왔다.

“그럼 이제 명년 봄에는 내가 직접 중국에 한번 가보겠소. 그 준비를 하는 동안 동지는 반동분자의 단속에 힘써 주시오.”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주석 동지.”

방우정은 의욕에 찬 모습으로 인사하고 나갔다. 시준은 이제 한겨울이라고 해야 할 수준이 되어 있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하고, 영국이 세 군데의 전쟁을 마무리할 1815년은 이제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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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문해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글자가 얼마나 배우기 쉬운가도 있지만 그보다는 보통교육 여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글이 이미 꽤 널리 통용되는 19세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바꾸면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다’ 수준은 아직 아닙니다.

2. 그림에서 등장 인물의 대사를 말풍선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화기의 신문 만평을 보면, 마치 사람이 입에서 뭔가 분수를 뿜어내는 것처럼 선을 그어 놓고 그 선 끝에 말을 쓰는 과도기적 방식도 보이지요.

3. 원 역사에서, 지친왕 아이신기오로 민닝은 이때 다른 황자 중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나이도 많고, 적장자고, 난을 진압한 군공도 있어서.. 가경제가 저위밀건을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었는데도 그가 제위를 이어받는 데에 큰 말썽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죠. 따라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가경제가 도광제를 숙청할 생각을 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말이죠.

4. 아시다시피 선조는 임진왜란 중 자신의 권력 확인을 위해 양위 파동을 수없이 일으켰습니다. 선조 입장에서도 절실한 게, 당시는 ‘백성이’ ‘임금의 퇴위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릴 정도로 권위가 땅끝까지 떨어진 상황이었거든요. 광해군이 폐모살제 해도 이해해 줄 만한 정신병리학적 막장으로 몰아간 끝에 선조는 결국 나라는 못 지켰어도 권력은 지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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