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63. Judgment Day(3)
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나라는 인민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다. 벼슬아치가 그 자리에 머무르는 연한이 있듯이 인민에게 임명된 나도 인민이 정하는 동안만 일을 대리할 뿐. 앞으로 이태만 있으면 당연히 나도 주석의 자리에서 물러나올 것이다. 그리고 인민은 다른 덕 있는 자를 새로 임명하여 일을 맡기겠지.”
이공이 뭐라고 입을 열려 하였으나 그보다 더 심한 웅성거림이 주위에서 일었기에 그러지 못했다.
시준은 그 모두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권불십년이라고 하였는가. 그 말이 맞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끝나는 권세를 억지로 붙드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공의로써 떠나보내기로 하였다.
때가 되어 떨구는 꽃잎을 아교로 붙여 놓은들 그 무슨 우스운 노릇이겠느냐? 꽃은 떨어지고 그 열매가 다시 싹을 틔워, 또 한 번의 생을 되풀이하는 것이 천지의 큰 이치다.”
시준은 꽤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여기 모인 사람 역시 너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시준의 말을 전해 듣고 있었다.
푸셰의 통역을 들은 반스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턱을 긁적였다.
“이건 매우 흥미롭군요. 논문이 하나 나오겠는데요? 동아시아식 순환론과 임기제 공화제도가 이렇게 결합될 수도 있다니. 중국풍 좋아하는 신사들이 살롱과 카페에서 침 튀기며 토론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지. 실로 그렇지 않은가? 정시준 의장에 대해서 잘 소개해 주리라 믿겠네.”
“저 말대로라면 제가 유럽에 도착할 때쯤에는 퇴위하지 않을까요?”
푸셰는 피식 웃기만 할 뿐이었다. 반스 또한 정말 그러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기에 곧 자신의 말을 잊어버리고 시준을 쳐다보았다.
시준의 목소리는 어느새 엄해져 있었다.
“한성 사람 이공이여. 이 나라를 이씨, 왕씨, 혹은 김씨가 세운 한 집안의 가산과 같이 보지 마라. 햇수를 채울 때마다 인민은 고인 물을 갈 듯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정치로 정당한 권세를 되살리리라.
그것이 수평도다. 그래서 물은 영구하게 흐른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은혜를 배반한 난신도 아니고, 윤리를 망친 적자도 아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대와 완전히 수평한 인민일 뿐, 그대의 신하나 자식은 여기 한 사람도 없다.”
시준은 방금 전 이공에게 배신자라 비난받은 선비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주석 동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준은 그 기대를 채워 주었다.
“화적 무리에서 뛰쳐나와 관에 투항하는 것이 배반인가? 그 이름이 유취만년하겠는가? 그들은 그대 가문의 앞에 개처럼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자신의 도를 스스로 만들어 따랐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말이다. 그대 따위가 감히 도덕을 훈계할 바 아니다.”
사실 시준은 사대부들 방향이 아니라 뒤쪽을 돌아보고 싶었다. 거기엔 기랑과 함께 구경 나온 지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직무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준은 그 그리움을 성량으로 바꿔 더 크게 말했다.
“그대의 죄는 여기 쌓여 있는 고발장에 적힌 바와 같다. 그러나 그대는 오랫동안 옥살이를 하였으면서도 스스로의 죄를 돌아보지 않았구나. 그대는 방금의 언사로써 무엇보다 더 큰 죄를 또 지었다. 나는 혁명재판소의 수좌로서 이 자리에서 그대의 죄 한 가지를 더하여 고발한다.”
왕 목 잘라 본 두 개의 선배 국가 출신들이 먼저, 그리고 선전선동부의 월간 대혁명 담당자들이 두 번째로 깨달았다.
공화국이 영구히 지속되든, 아니면 몇 년도 가지 못해 패망하든 간에 지금부터 시준이 하는 말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시준은 앉은 채 허리를 약간 숙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대 스스로를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같이 높이지 못한 것이 죄다.”
이공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시준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인다더니, 그대는 다른 사람도 실로 그대와 같은 줄 알고 있구나. 다른 인민은 천하고 못 배워서 스스로 높은 뜻을 가지고 일어선다는 일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느냐?
하지만 보는 대로다. 나와 모든 인민은 그대보다 강하다. 그것이 오늘의 일로써 드러나지 않았는가.”
작년까지의 시준이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그 자신도 삶을 예측 못 한 사고의 연속이라 여기고, 도전은 만용에 불과할 뿐이라 믿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지들과 함께 대동강을 건너 달려간 이후, 형제자매들을 해방시킨 이후, 그리고 평양성 안으로 동지들과 걸어 들어간 이후의 시준은 그 전과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시준 역시 변화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방향으로 변하든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영장(靈長)의 가능성이다.
물처럼 흘러 변화무쌍한 것이 수평도이다. 그 자신이 말한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시준은 지금 처음으로 수평도에 동감했다.
“소위 헛된 오색구름이나 지붕을 휘감아 도는 용(龍) 같은 것이 없어도, 모든 사람은 부모 친지의 기쁨과 함께 태어나 땅을 밟고 하늘을 치어다보며 살아가므로 아름답다.
먹고 자며 울고 웃고 의심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끝내 죽는 것까지,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다.
그런데 그대는 지금 사람이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짓밟히기 위해, 누군가에게 순종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로써 그대는 지금 모든 인민을 모독했다. 그들의 한 살이를 괴롭고 욕된 것으로 만들었다. 또한 모든 인민과 같은 그대 자신마저도 그렇게 떨어뜨렸다.”
토마스 반스는, 설마 동양인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반스는 그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푸셰에게 속삭였다.
“계몽주의의 극치로군요. 각하께서 가르친 겁니까?”
푸셰는 히죽 웃었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아닐세. 유럽의 철학과는 다른 사고일 거야. 지금 벌어지는 일을 자네의 인식 안에 집어넣으려고 아무 말이나 다급히 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순간이니 그냥 지켜보세.”
반스는 그렇게 했다.
그에게는 ‘다다다 탁!’ 정도의 발음으로 들리는 동양의 언어가 계속해서 울렸다.
“그대는 남보다 많은 것을 물려받은 자로서 마땅히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더 복되고 귀하게 하는 데에 진력했어야 한다. 그대의 신민들을 우대했다면, 그들은 고귀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그대를 더욱 귀하게 만들어주었을 테지.
하지만 그대는 이전, 그리고 지금도 오로지 다른 사람을 어두운 진창에 밀어 넣음으로써 그냥 땅에 서 있는 스스로를 높이려고만 했다.”
시준은 선거 때 쓰는 붉은 패를 집어 들었다.
유럽이었다면 법봉이 있었겠지만, 그런 전통이 없는 조선에서 무작정 겉치레만 따라 하는 것은 이공의 말마따나 우스꽝스러운 연극일 뿐이다.
그래서 시준은 저놈의 허리를 잘라 버리라고 명령하는 포증(포청천)처럼 패쪽을 던졌다.
“인민의 적, 혁명의 적,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적! 그것이 내가 고발하는 그대의 죄다. 이 혁명재판소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뒷날에 대한 경계로 그대를 참수에 처할 것을 주장한다.”
시준의 현 직무인 혁명재판소장은 여러 재판관의 사회자다.
재판을 주재하기는 하지만 혼자 형을 판단할 권한은 없다. 지금 그의 언명도 재판관의 투표권 하나를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판관들은 모두 그것을 최종 선고로 받아들였다.
이서구를 비롯한 모든 판관이 그 말에 찬성하여 각자의 패쪽을 던졌다.
이공은 뭐라고 입술을 몇 번 달싹거렸다.
그것은 논리적 변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비명을 지르려다가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해 보면 새삼 절망할 이유는 없다. 이공 자신조차도 이 ‘판결’의 결과는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시준은 그가 루이처럼 왕으로서 죽도록 놔두지 않았다.
과거 푸셰가 금군에게 대포를 갈기며 말한 것처럼 군주는 존엄하게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수치스럽게 도망쳐야 마땅했다.
이번에는 평양에서가 아니라 이승에서 말이다.
마지막 순간, 시준은 그런 식으로 이공을 무너뜨렸다. 강철은 깨지는 것이 아니라 녹슬어 버렸다.
그래서 혁명작두의 밧줄을 끊는 병사의 손길 역시 조금 전 홍경래나 그 도당을 처치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
재판이 끝난 지도 며칠이 지나자 혁명의 심장 평양은 원래의 건전한 활기를 되찾았다. 축제가 끝난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기자 토마스 반스도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즉, 기사를 쓰고 있었다.
<……저 프랑스인들의 모함과 달리, 지난날 루이는 추하게 울부짖거나 단두대 앞에서 발버둥 치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 최후의 정당한 왕 이공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루이는 마지막에 그의 권위를 보증하는 하느님 앞에 기도했다. 그는 ‘공연히 나를 적대했던’ 원수들마저 모두 용서했다. 주님께 자신의 영혼을 받아 줄 것을 간청했고, 신민의 번영과 국가의 미래를 축복하였으며, 그로써 적어도 그 자신 안에서는 당당함과 품위를 완결 지었다.
계몽주의자와 프리메이슨이 그 펜으로 뭐라고 모독하든 루이는 적어도 왕으로서 죽었다.
그러나 조선의 왕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흔해 빠진 살인자, 비열한 도둑, 성가신 모독자로서 죽어야 했다.
하지만 앞에서 내가 언명했듯, 이 차이는 그 두 왕의 자질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는 고대부터 내려온 정당한 관습과 신[天]이 내린 운명에 의거하여, 신민이 자신을 재판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찰스와 루이가 목 베일 때 그러했듯이 지금 유럽에서도 그의 말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차이점은 의장 정시준에게 있다. 그는 조선 사람은 물론 나조차도 흥미롭게 들을 수밖에 없는 가치관을 피력했다.
그것은 목적 분명하고 속 보이는 선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신에게 되뇌어 속삭이는 말 같아 보였다.
따라서 무엇보다 강력한 진실성을 내보일 수 있었다.
20년 전 콩코드 광장의 주인공은 의심의 여지 없이 루이였지만, 오늘 이 평양성 앞 광장의 주인공은 조선왕이 아니라 의장 정시준이었다.
……
물론 시준이 그저 연설만으로 그 일을 이루었다는 분석은 유치하다. 지금 조선의 이 사건은 지난 세기끝자락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혼란과 명백히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때, 그런 피상적인 분석은 지양되어야 한다.
시준은 그때의 소꿉장난 같은 혁명정부 따위는 비교도 안 될 권력 집중 체계를 구축했다(그런 면에서, 자기가 고려인민공화국을 건설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오트란토 공의 자기 과시는 코웃음만 나온다고 해 주고 싶다. 그보다 뛰어난 동료들이 많았던 프랑스 혁명정부가 지금의 조선에 있었다면 어떨까? 아마 조선왕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싸우고 있었으리라).
오트란토 공의 말에 의하면, 보통 이다음에 왕위나 제위로 올라가는 것이 동양의 일반적 역사라 한다. 하긴 중국인과 수준이 별다를 것도 없는 프랑스 사람은 그 정도 상상력밖에 없으니 혁명의 피를 시궁창에 버리고 나폴레옹을 기꺼이 다시 섬긴 것이다.
나는 다각도의 관찰에서 알 수 있었다. 시준은 만에 하나라도 전제 군주로 오해받지 않게 – 공화국 사람들이 그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분명해 보였다 – 그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해서 통제했다.
선고를 내릴 때 어디까지나 자신은 한 사람의 재판관으로서 의견을 주장한다고 언명한 것이 그 한 예시다.
이것은 정시준에 관해 몇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그는…….>
토마스 반스는 문득 손아귀가 꽤 아프다는 사실을 느꼈다.
글 쓰는 데 익숙한 그이건만, 이 정도의 장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써 내려가려니 손에 무리가 온 것이다.
반스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고대부터의 의료선진국 조선의 명약’의 기운을 음미하며 펜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러나 쉴 생각은 없었다. 아주 쉬어버리면 더 못 쓴다.
저명한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15년 전 역작 <쿠블라 칸(Kubla Khan, 쿠빌라이 칸)>을 다 마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보통 미완의 명작이라 하면 창작자가 급사하였다는 레퍼토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허나 콜리지는 지금도 멀쩡히 살아 있다.
다만 지금의 토마스 반스처럼 아편 빨고 시 쓰다가 갑자기 열정적인 세일즈맨이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리듬을 다 못 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는 두 번 다시 완성되지 못한다.
아마 지금 유럽에서 가장 자식이 많을 남자인 바이런 남작이 출판을 적극 권유해서 미완이나마 겨우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시는 그렇게 출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논평은 그렇게 안 된다. 토마스 반스는 반드시 이 글을 완결지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반스는 밖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세 번째로 무시하고 펜을 잡았다.
그 순간 동양식 미닫이문이 벌컥 열렸다.
“대체 뭐 하느라 대답도 없는 건가!”
어느새 노크 대신 헛기침을 하는 게 당연해진 푸셰는 조선식 예법에 익숙하지 못한 반스를 꾸짖었다.
그는 방을 한 바퀴 휘 둘러보고 혀를 찼다.
“하여간 영국인 아편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 그렇게 처먹다가 폐인이 되어 못 돌아가도 나는 모르네.”
반스는 여전히 푸셰를 무시했다. 푸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사람을 시켜 꽤 무거워 뵈는 책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알아들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말은 해 두고 가지. 이건 그간 발행된 월간 대혁명이고, 옆에는 내가 몇몇 중요한 부분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놓은 사본일세. 그리고 이 가죽 장정의 책은 내가 지금까지 쓴 정시준 평전의 1권이고…… 나머지도 완성되는 대로 보내 주지.”
푸셰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 나에게 한 번 찾아오게. 나는 자네들이 좋아할 기삿거리도 갖고 있어. 암허스트 남작이 중국에서 벌인 잔학 행위와, 그의 군사적 야심을 의심할 수 없는 증거와 함께 갖춰 놓은 서류이니 필시 쓸모가 있을 걸세.”
반스를 면밀히 관찰하던 푸셰는 그가 움찔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하긴 그러한 스캔들이라면 아편쟁이의 흐릿한 머리도 뚫고 들어갈 만한 소식이다.
영국인이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사적인 취미를 공사에 개입시키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현재는 나폴레옹 전쟁이 마무리되지도 않았고, 미국과도 전쟁 중인 데다가 동인도 회사까지 치면 구르카족과도 싸우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도 열흘 연속 먹으면 물리는 법. 영국인들이 아무리 폭력 의존증이라 해도 전쟁이 지겨울 때가 됐다.
이 상황에서 또 중국 상대로 대포질을 일삼는 암허스트는 여론의, 특히 주식 보유자들의 질타를 맞을 것이다.
기후는 인종을 가리지 않으며 영국도 지금 곡가가 치솟아 골치 아픈 처지다. 윌리엄 자딘을 통해 런던 증권가의 소식을 받는 시준은 푸셰와 함께 이 여론전을 기획했다.
전쟁은 나쁜 짓이다.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전쟁광 암허스트 남작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은 공화국의 향후 미래 설계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래서 푸셰는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나는 바빠서 이제 가 보아야겠네. 정시준이 쓸데없는 관용을 발휘하는 바람에 일거리가 더 생겼거든.”
반스의 집중력이 막 흩어지려 할 때, 푸셰는 그대로 나가 버렸다. 그래서 반스는 아슬아슬하게 다시 펜을 잡을 수 있었다.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 최고 가문의 수장이자, 왕을 포함해도 조선 최고의 권력자였던 영안부원군 김조순은 지금 그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욕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눈앞에서 떠들고 있는 자의 턱주가리를 시원하게 돌려 버리고 싶었다.
정략군주 이품은 그 땟국물 낀 얼굴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쳐든 채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용납할 수 없는 난신적자이나, 그래도 내 덕에 살아난 줄 알아라! 저 피에 굶주린 살인귀들을 감복시킨 나의 논변이 아니었다면 그날 함거에 실린 자들 중 하나라도 목숨을 건졌겠느냐? 내가 나서기 전에는 모두 목이 잘려나갈 뿐 아니었더냐!”
김조순은 그 턱을 올려쳐서 입을 다물게 하지는 못했다. 그의 무공이 얕아서가 아니다.
그의 팔은 지금 이품과 똑같이 묶여 있었고, 그의 다리는 저 붉은 띠 맨 홍건적 병사들이 이끄는 대로 부지런히 놀려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조순의 소망은 근처에 있던 개똥인지 소똥인지 하는 군관이 대신 이루어 주었다.
그자는 이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딱!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석 동지의 은혜로 목숨을 건졌으면 죄를 반성하고 근신할 것이지, 어찌하여 이리 건방지다는 말이냐? 네가 정녕 대독에 들어가고 싶으냐? 삼화부 앞바다의 물고기와 게들이 왜 통통하니 살이 올랐는지 겪어 봐야 알 모양이로구나!”
이품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 자체에는 놀라지 않았다. 행주산성에서 많이 당해 봤으니까. 그래서 이품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김조순은 이런 일에 고소해하는 자신을 저주스러워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는 하늘을 향해 ‘정시준, 나를 살려둔 것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라고 외치지는 않았다.
이품처럼 뒤통수를 맞을까봐서는 아니다.
김조순은 도저히 정시준을 후회하게 해 줄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햇살이 너무나 눈부셨고, 혁명군의 얼굴도 햇살만큼 밝았다.
김조순은 문득 그 때의 그 튀긴 닭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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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시인 바이런은 풍문에 따르면 전 유럽에 자식이 수백 명이나 있었다고 할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습니다. 실제 많은 귀부인들이 목숨을 걸 정도로 집착하기도 했지요(그의 면전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있습니다). 뭐, 결국 바이런도 오래는 못 살긴 했습니다.
초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잘생겼기도 하고... 대체로 한 시대를 풍미한 호색한들이 대개 그렇듯 교양을 갖춘 지식인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다만 당연하게도 아내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끝내 이혼합니다. “굉장한 적을 만났다. 아내다. 너 같은 적은 생전 처음이다.” 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기기도 하지요.
2. 쿠블라 칸이 바이런의 권유에 따라 출판된 것은 1815년으로, 작중 시점이 1814년이므로 아직 이뤄진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건 공식적인 거고 원래 문예계 사람이라 할 수 있는 토마스 반스는 알고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3. 김조순과 이품이 왜 살았는지는 다음 화에 나올 겁니다. 일단 이품의 말은 그다지 틀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