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63. Judgment Day(2)
토마스 반스의 말처럼, 이공에 대한 재판을 하는 데에 있어 내부 홍역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지금 이 주위를 둘러싼 채 무서운 살기를 내뿜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감히 반론을 제기하기도 힘들었다.
이공의 관군에 의해 죽은 평안도 사람들의 유족이며 친구들.
수경포도관 이요헌이나 한성 판윤 김이익의 손에 젓갈이 된 한양군 사람의 가족들.
그리고 꽃처럼 떨어져간 혁명열사 심낙화를 기리는 곡산 사람들 등등 그 출신을 다 말하려면 끝도 없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저놈을 죽이라고 대동강 앞에서 거적 깔고 통곡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조선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차이였다.
루이 16세의 처형을 포함한 프랑스 혁명정부의 일 처리가 주정뱅이의 장광설처럼 되어 버린 것은, 그 근저에 워낙 복잡한 사안들이 많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의 질서는 그때의 프랑스만큼 복잡하지 않았다.
이공은 딱히 외국 부인을 맞은 것도 아니고(그럴 뻔하기는 했다) 외국에 대한 부채라든지(이것도 할 뻔했다) 다종다양한 철학의 교차, 신흥 계급의 갈등 같은 사안도 조선에서는 훨씬 간략했다.
이공의 죄는 시준이 일찍이 말 위에서 언명한 바와 같았다.
신민들을 신하로 대우하지 않은 것.
시준의 앞에 쌓인 산더미 같은 고발장을 요약하면 결국 이것이다. 게다가 루이와 달리 이공은 직접 군의 앞장에 서서 신민을 공격했기에 훨씬 알기 쉬웠다.
아주 단순하다. 그리고 그래서 더욱 강렬했다.
이 상황에서 감히 ‘그냥 살려주죠?’라고 할 배짱을 가진 사람은,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혁명 동지들 중에서조차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럴 만큼 용감한 자는 혁명 동지가 아닌 사람 중에 있었다.
원래 품격 있는 식사에는 메인 디시 전에 애피타이저가 나온다.
경기의 흥행을 위해서는 메인 스테이지 이전에 오픈 게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인민의 앞에 끌려 나온 자는 왕이 아니었다.
강철군주의 왼팔로서 이 모든 일의 직접 원인을 제공한 평서대원수 홍경래였다.
텅 빈 한쪽 소매를 흩날리며 밧줄에 묶여 등장한 홍경래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오면서 좀 맞았는지 그 아래로는 피 섞인 침이 뚝뚝 떨어졌다.
공화국 혁명재판소는 주석 동지의 교시에 따라, 죄인에게 재갈을 물리거나 귀에 화살을 꽂지 않았다.
아직 형식적으로는 죽일지 말지 결정되지 않은 데다, 재갈이 있으면 죄인이 자기를 변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민재판에서는 죄인이 떠들면 떠들수록 더 형이 중해지게 마련이니 시준의 배려는 역효과를 냈다고 할 수 있었다.
홍경래 역시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외쳐댔다.
“이 무도한 도적놈들아. 버러지 같은 상한(常漢)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천하의 법은 아직 죽지 않았다. 너희의 눈깔에는 천자가 뵈지 않는 것인가. 여진 팔기에 전부 도륙당하기 전에 군주를 풀어주고 엎드려 용서를 빌면 수괴 정시준의 목 정도에서 끝날 수 있으리라!”
팔기군(시체)의 사령관 지친왕이 들었다면 왜 나를 끌어들이느냐며 화들짝 놀랄 선언이었다.
전쟁 당시 감옥에 있던 홍경래가 시준의 조선 독립 쟁취를 알 리 없으니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주위의 인민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홍경래의 불가피한 무지는 헤아려 주지 않았다.
주석 동지가 이미 조선을 다른 나라와 수평하게 만든 지가 언제인데 저런 광언이라니 확실히 미친 게 분명했다.
더하여 여진족에 대한 조선인의 전통적 경멸과 감히 주석 동지의 모가지가 어떻고 하는 저 건방진 발언까지 합쳐지자 사람들은 첫 재판부터 광분했다.
“저놈은 바로 의주에서 오죽당 동지를 많이 죽인 그 홍경래가 아닌가!”
“당장 저놈을 죽여라!”
“정 진인의 벼락이 네놈을 칠 것이다, 이 패역한 놈아!”
인민들은 앞을 다투어 가챠에 과금했다. 홍경래를 별모양으로 귀엽게 잘라 주겠다는 저주가 아우성쳤다.
여기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혁명재판소장을 하고 있는 –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때와 같다. 이 역시 김정은도 안 하는 짓이다 – 시준이 듣기에도 인상적인 카드가 몇몇 있었다.
“저 혁명작두(단두대)에 저놈을 거꾸로 꽂은 다음, 양 다리를 짝 찢어 놓고 칼을 내려쳐라! 사타구니가 두 쪽이 나고도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지 보자!”
단두대를 인권 평등에 앞장세우고자 했던 기요탱 박사가 들었으면 인생에 회의를 느꼈을 독창적 활용법이었다.
시준은 인간에게 공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저주했다.
차마 그 엄숙한 자리에서 바지춤을 움켜쥘 수는 없었던 시준은, 절대 여기서 참수형 외의 다른 카드를 내어주지는 않으리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며 재빨리 말했다.
“인민의 뜻이 간과할 수 없이 중하나, 동지들은 굳이 재판소를 세운 뜻을 다시 한번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죄 있는 자 열 명을 일없이 방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죄 없는 자 한 명이 억울하게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인의를 잊지 마시오.”
습관적으로 ‘참 좋은 생각이니 홍경래를 거꾸로 꽂아 봅시다’라고 말할 뻔했던 ‘혁명판관’들은 의아한 눈으로 주석 동지를 돌아보았다.
“저 반동의 발톱 홍경래를 살려두자는 말씀이십니까, 주석 동지?”
“그런 게 아니고…….”
시준은 좌절을 참고 꿋꿋하게 현대 법원칙을 설파했다.
“여러 문건과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앞뒤를 명명백백하게 판단하여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죄상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오. 누구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소.”
‘그 근평 최하점 받아 마땅한 저승사자 새끼들만 빼고 말이지.’ 시준이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는 동안, 시준의 오른쪽 세 번째쯤에 앉아 있던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지금 저자는 방금 떠든 방자한 말로써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자신의 죄를 증거하지 않았소이까?”
시준이 돌아보니 그자는 옛날 시준이 처음 치킨을 튀겨 줬던 전 평안 감사 이서구였다.
혁명 이전에 소원대로 평안 감사 그만두고 고향 한양에 가 있던 이서구는 시준의 한양 함락 과정에서 정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조선인들이 워낙 족보를 중히 여기는지라 당시에는 전주 이씨나 안동 김씨라는 그 이유만으로 죽은 사람도 꽤 있다. 그리고 이서구는 전주 이씨였다.
미리 정약용의 부탁을 받고 이서구의 고향을 알아 둔 시준이 특별히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시준은 혁명정부 임관을 권유했지만 이서구는 거절했다.
딱히 혁명사상이 마음에 안 들어서는 아니다.
그는 원래 역사에서도 평생토록 벼슬한 것을 후회하던 사람이다. 조정이 통째로 날아가서 우의정까지는 안 했으니 잘 됐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평안도에서 좋아하는 복어 요리나 해다가 자기도 먹고 친구들도 먹이면서 – 21세기라면 살인미수다 – 살았는데, 그렇게 끝났으면 청풍명월을 즐기는 선비의 삶이련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거듭된 흉년으로 다들 형편이 좋지 않은 처지다. 지금 아무 권력도 없는데다 가솔은 보존했지만 재산 상당 부분을 잃은 이서구에게는 더더욱 생업이 마땅찮았던 것이다.
이럴 때 선비가 보통 택하는 것이 훈장 노릇이다.
허나 이제는 곳곳에 있는 야학 때문에 훈장질도 쉽지가 않다. 이서구는 곧 복어는커녕 쌀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선인이든 한국인이든 여기까지 들었으면 같은 질문이 나온다.
‘아니, 자식은 뭐 하는데?’
그런데 이서구에게는 아들이 없다.
결국 얼마 전 이서구는 이웃에게 닭 한 마리 꿔서 들고 머뭇머뭇 시준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선비로서 설사 굶어 죽는다고 해도 나 사정 안 좋으니 일자리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만 해도 이서구가 혁명적 실학자나 되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시준 역시 공화국 시민 이전에는 조선 사람이었다.
시준은 이서구와 닭을 맛나게 나눠 먹은 뒤, 그를 국무당 교양권과부(敎養勸課部, 가르쳐 기르는 일을 힘써 권함) 야학과장(夜學課長)에 임했다.
이서구가 학문으로 명성이 높다느니 하며 둘러대었지만 결국 혁명정부가 대충 그렇듯 코드인사였다.
그리고 이서구는 교육 담당자로서 여기에 판관으로 배석한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도 국무당에서 전쟁에는 나설 기회가 없었던 다종다양한 경제, 문화 분야의 간부들이었다.
시준의 명분대로 각종 학문, 특히 사서에 해박한 이서구는 말을 이었다.
“주석 동지의 뜻은 잔혹한 육형을 금하고 목숨 빼앗기 전에 세 번 살핀 옛 성군의 본을 받은 것이오. 하지만 그건 원래 반동의 정치에서는 암투로 인한 거짓 모함이 잦고, 사람이란 가혹하게 매를 맞으면 없던 말도 지어내게 마련이므로 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소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처럼 중인 환시리에 저리 고개 빳빳이 들고 패악스러운 소리를 지껄이니 이보다 더 명백한 자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지혜로운 야학과장의 말에 칭송을 보내었다. 과연 희만 선생이 추천한 인재가 확실히 달랐다.
시준은 정약용이 어떤 인간인 줄 알면서 그와 친한 사람을 다시 임용한 자기 결정을 후회했다. 벗은 동류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이서구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저렇게 곱게 못 죽을 소리를 일부러 지껄이라고 누가 홍경래에게 칼 들고 협박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별로 살려 주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시준은 홍경래와 관련하여 요 한 달간 제출된 산더미 같은 고발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지혜로우신 야학과장의 말씀이 옳소. 나도 여기에서는 다른 판관 동지들과 같은 한 표만을 가지고 있소. 다만 의견을 내었을 뿐, 끝내는 모두의 중의에 따를 뿐입니다.”
***
당연한 소리지만 조선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단두대가 특별히 다르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한쪽 팔로 거세게 몸부림치던 홍경래의 목이 떨어지고 나자 혁명군 병사는 푸셰에게 배운 대로 그 모가지를 높이 치켜들었다.
인민들의 환호가 홍경래의 경동맥에서 솟구치는 피처럼 울려 퍼졌다.
더 타임스 기자 토마스 반스가 중얼거렸다.
“흠. 프랑스의 고귀한 공작이 이 동방의 미개지까지 와서 전파한 것이 문명의 빛이 아니라 처형 방법이라…… 런던의 호사가들이 좋아하겠군요.”
반스의 영국인다운 빈정거림에 푸셰는 바로 반박했다.
“정말 그렇게 쓰려는 건 아니겠지? 자네가 바로 지난달까지 조선 전역에서 벌어지던 야만적 린치를 봤다면 그런 소린 못할 걸세. 내가 없었다면 조선 혁명도 없었어. 이로써 유럽인이 ‘적절히 개입’한다면, 자네들 영국인처럼 포탄과 총알뿐만 아니라 좀 더 진보한 문명을 부드럽게 선사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네.”
반스는 듣기 싫다는 듯이 귓구멍을 후볐다. 푸셰는 하필 이런 놈이 왔냐고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그럼 다음은 왕의 차례겠죠. 방금 그, 왕의 근위대장이라는 자는 너무 전형적인 패배자의 모습을 보여줘서 조금 싱거웠는데, 조선 왕의 귀족적 품격은 어떤지 한번 봐야겠습니다.”
반스는 그러면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홍경래의 처형이야 유럽에서는 별로 가치 없는 일이다. 그건 기사 말미에 함께 처형된 사람의 명단 정도로 덧붙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왕이라면 유럽에서도 기삿거리가 된다.
다른 동네가 그렇듯 이 시대 유럽도 인종보다는 신분이 중요하다.
푸셰도 잘 아는 장군인 토마 알렉상드르 뒤마(소설가 뒤마의 아버지)도 모친이 카리브 흑인이다.
하지만 부친이 프랑스군 대령이고 본인의 능력도 출중하여 출세했고, 방데에서 엄청난 수의 ‘고귀한 백인’을 학살하는 위업을 세울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도 오래전부터 흑인 귀족 가문이 유지되고 있다. 거기야 뭐 자기들도 타타르인이니 누가 누굴 차별할 깜냥은 안 된다고 반스는 생각했지만, 어쨌든 열등한 아시아인이라도 왕은 왕인 것이다.
반스의 기대대로, 우군칙을 포함한 몇 명을 더 처형하자 곧 주빈이 도착했다. 이공은 몇 명의 혁명군에 의해 함거에서 끌려 나왔다.
이공은 한쪽 다리가 없으므로 거적에 앉아 인민의 심판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홍경래처럼 산통 다 깨지 않아야 했다. 좌중을 조용히 시킨 시준은 재판소장의 권한으로 이공에게 말했다.
“한성 부민 이공. 그대는 죄 없는 사람을 도륙한 죄, 허락되지 않은 권세를 휘둘러 인민의 것을 빼앗은 죄, 함부로 전쟁을 일으킨 죄 등 스물한 가지 조목으로 고발되었다.”
빨리 죽이라고 울부짖던 사람들은 주석 동지에 대한 존중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공 역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그 각도나 형태로 봐서 그것은 굴복이나 반성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 자세는 차라리 조는 것에 가까웠다. 시준은 초조해하며 질문했다.
“그대를 인민의 적으로서 처벌할 것을 탄원하는, 삼천 사백 팔십육 명의 인민이 제출한 고발장이 여기에 있다. 인민 앞에 죄를 발명할 말이 있는가? 만약 그대가 억울하게 모함을 썼다면 이 자리에서 말하라. 판결은 공명정대할 것이다.”
그때 이공이 고개를 들었다.
유럽인인 반스와 푸셰는 저자가 과연 단두대에서의 루이처럼 문학적인 유언을 남겨 줄지 기대했다.
조국의 인민을 위해 뿌려질 자신의 피가 보람 있기를 바랄 수도 있고, 조선인의 신(반스는 그게 뭔지 모르지만) 앞에 겸손히 경배하며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사랑으로 용서하리라 말할 수도 있다.
뭐가 됐건 조선 최후의 전제군주는 역사에 기록될 가치가 있는 유언을 남겨 줘야 했다.
그리고 이공은 그러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뛰어넘었다.
강철군주 이공은 국민이 내 피를 원하면 받아들이겠다거나, 나는 오로지 신민을 위해 애써왔을 뿐이라거나 하는 연설을 하지 않았다.
그는 쉰 목소리로, 그러나 모두가 분명히 들을 수 있을 만한 성량으로 말했다.
“오호라…….”
이공의 갈라진 입술이 움직였다.
“너희 따위가 감히 내게 ‘판결’을?”
시준은 방청하고 있던 이제초를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다. 그조차도 이공의 영압에 놀란 모습이었다.
갑자기 다 귀찮아진 시준은 그냥 죽이라고 하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주위 사람도 홍경래 때와 달리 침묵하는 것이 더 기분 나빴다.
호의적으로 해석해 준다면 이것이 왕이었던 자의 품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주위에 늘어선 인민들이 침을 삼켰다.
지금 그들은 왕을 재판하고, 왕을 추궁하며, 왕과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이공은 이 뒤에서 순서 기다리고 있는 정략군주 이품이나 전주에서 장렬히 산화한 철퇴군주 이경춘과 근본부터 다르다.
그는 여진족으로부터 정정당당하게 임명받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이다. 안동 김문이 제멋대로 세우고 폐한 그런 가왕(假王)들과 같이 보면 곤란하다.
토마스 반스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저것이 아시아 전제 군주의 기개인가! 루이도 왕의 불법을 신하들이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그건 그가 피고로서 묶여 있을 때가 아닌 왕좌에 있을 때였습니다. 흐음. 그런 면에서 보면 저자는 루이보다는 찰스에 가까워 보이는군요.”
“동방의 찰스, 괜찮군. 쓸 건가?”
“그러면 월터 씨는 이번에야말로 뉴게이트 감옥의 기둥을 자기 묘석 삼아야 할 겁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반스의 고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이공은 거기에서 말을 끝내지 않았다.
“관을 쓴 원숭이와 관복 걸친 까마귀들의 회합 같구나. 마치 모자란 귀신이 무덤가에 모이듯 왜각대각 지껄이는 꼴이 조잡하고 괴이하기 그지없다.
이 소위 ‘판결’은 뭐냐? 금수가 뜻도 모르고 울부짖음을 주고받으면 그게 담론이 되는가? 그저 흉내만 내면 너희가 진정 위로 열성(列星, 늘어선 별. 여기서는 국가 관료제)에 대응하고 아래로 지리를 알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이공은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입고도 군주를 배반한 자들 역시 여기에 많구나. 요망한 도사의 세가 스러지고 나면 너희들도 유취만년(遺臭萬年)하여 세세토록 더러운 이름을 전하게 되리라. 권불십년이라. 대족 명신조차 그러했거늘 오만 천것들을 모아 저잣거리 두령 노릇 하는 이자의 명운이 오래 갈 성싶더냐.”
사람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함으로써 이공을 윽박지르기 직전, 시준이 조용히 말했다.
“그대의 마지막 말은 맞다.”
이서구가 놀란 표정으로 시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시준은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여기 있는 부족한 나의 자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판관들은 물론, 좌중 전체에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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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혁명재판소는 프랑스 혁명기에 있었던 재판기구입니다. 별 상관은 없지만 북한에서 이에 대응하는 것은 ‘중앙재판소’인데, 한국의 대법원과는 위격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의외이시겠지만 북한도 검찰과 사법부가 분리되어 있기는 합니다.
2. 이서구는 실제로 복어 요리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은 친구 유득공을(이 양반은 본편엔 안 나오는데 작가의 말에서 벌써 세 번째 등장이로군요) 불러 식사를 대접했는데, 유득공은 복어의 독성을 알고 있어 평생 복어를 먹지 않고 주위에도 먹지 말라고 적극 전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담으로 복어의 독성은 고대부터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또 희한하게도 고대부터 많이 먹기도 했지요. 선사시대 유적에서도 뼈가 발견될 정도니까요.)
이서구는 유득공이 뭔지 모를 생선을 다 먹고 나서야 네가 먹은 게 복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유득공은 그 자리에서 즉시 토악질을 시도합니다.
그러고 나서 왜 자기가 안 죽냐고 묻자, 이서구는 ‘가전의 비법’이라며 절구에서 형체도 안 남길 정도로 빻아 요리하면 독이 없어진다고 말해주지요. (아마 뻥일 겁니다. 당연히 절대로 따라하면 안 됩니다.)
3. 러시아의 흑인 귀족이란 표트르 휘하의 장군이었던 아브람 간니발을 말합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으로, 무공보다는 교양과 지식으로 높이 평가받는 사람입니다. 파리에서 다년간 유학했고 에스토니아의 탈린 총독도 했었지요. 작중 시점에선 고인.
그 외손자가 바로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시의 저자 맞습니다.
하지만 푸시킨은 부인의 추문 때문에 슬퍼하고 노여워한 끝에 소문 유포자와 결투하다 죽습니다.
4.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기요탱(길로틴) 박사는 단두대를 발명하지도 않았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인도주의를 위해 단두대의 활용을 주장했을 뿐입니다. 거의 여든까지 잘 살다가 자연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