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63. Judgment Day(1)
이 시대의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은 현대인의 생각과 사뭇 다르다.
대중도, 국가도, 심지어 언론인 자신들도 그들에게 대단한 역사적 사명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이들은 (주로 투자나 폭동 여부 결정에 도움이 되는) 여러 ‘데이터’를 수집해 펴내는 사람이었지 어떠한 논조를 가지고 ‘기사’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그 데이터에 부가되는 ‘논평’은 이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때 신문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고전적 의미의 문필가에 가까웠다.
지금 평양에서 동방의 신비한 약초를 피워 보고 있는 토마스 반스처럼 말이다.
그는 당대의 우수한 문장가 사이에서 수학한 촉망받는 인재였다. 케임브리지에서 학문과 스포츠 모두에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영국 의회에서 서기 직원으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흠이 있다면 유흥과 폭식을 일삼는 쾌락주의자라는 점인데, 그건 이 시대 지식인에게 드문 특징도 아니거니와 젊고 강건한 지금은 그다지 표시가 안 났다.
그런 만큼 토마스 반스는 지금 자기 손가락에 끼워진 궐련이 얼마나 신묘한 물건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흐음……. 조선의 약이라. 정말 좋군. 이건……. 적어둬야 하겠어.”
하지만 대마 빨고도 그게 생각대로 빠릿빠릿하게 되면 21세기 각국에서 금지할 이유가 없다.
반스는 삼화부 항구의 표석 위에 앉아서 계속 뭔가 써놔야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연기를 내뿜었다.
고려의 약초는 현대의 마리화나에 비교하면 유치한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내성이 없는 반스에게는 충분히 몽환적인 풍경을 제공했다.
끝없이 좌우로 넓어지는 것 같은 시야는 마치 물고기의 것 같았다. 최근에 화가와 연출가들이 말하기 시작한 파노라마(Panorama)가 바로 이것인가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삼화부의 번영이 말 그대로 ‘전부(Pan)’ 담겨 있었다.
영국이라도 시골 항구에서는 드물게밖에 보이지 않을 큰 배가 쉴 새 없이 짐을 부리고 또 실었다. 그 사이에서 도저히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영국인과 조선인이 정신없이 오갔다.
항구 저편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는 청어 비린내는 오감으로 사실감을 더해 주었다. 저기에서 수병이 2펜스 주고 사 먹는 오트밀 죽 같은 물건은 아마 그 생선으로 끓인 어죽일 것이다.
반스는 그림으로밖에 본 적 없는 호랑이 가죽과, 아무래도 캘리코 같은 인도산 면포가 서로 수레를 마주쳐 갔다.
반스는 조금 더 있으면 코끼리나 코뿔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가 잘못해서 바다에 빠질 뻔하고 나서야 겨우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사람들도 이 풍광만큼이나 활발했다.
수병을 상대로 외상값 내놓으라며 악쓰는 여자는 아마도 술집 여주인(mistress, 주모를 말한다)이리라.
그녀를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는 수병을 보고 슬그머니 나타나는 덩치 큰 기둥서방까지 모두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부드러운 인류애에 침잠해 있던 반스는, 다음 순간 그 박애적 감정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찬물이 좍 끼얹어졌다.
반스는 자신의 시선 끝에 매달린 궐련에서 구정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스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흐릿한 시선에 어째 유럽인 같아 보이는 얼굴이 잡혔다.
동시에 느껴지는 이 재수 없는 기운으로 봐서 저건 반드시 프랑스인이다.
반스는 저놈을 한 대 후려치려 복싱 자세를 취하고 가드를 올렸다(실제로는 축 늘어진 오른손이 약간 올라갔을 뿐이다).
비슷한 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면 반드시 끔찍한 일이 일어났겠지만, 대마는 알콜과 달리 특별히 폭력성을 증대시키는 약물은 아니다. 딱히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냥 조건반사적 행동이었다. 그는 영국인이니까.
그러나 반스는 앞의 프랑스인이 오른손을 마주 잡자 그대로 눈을 껌벅일 수밖에 없었다.
‘영국인의 악수 요청’을 받아들인 프랑스인이 쾌활하게 말했다.
“도무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거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군. 내가 바로 오트란토 공…… 이 아니고 혁명정부 선전장관 조제프 푸셰일세. 조선 담배를 과하게 피우면 그렇게 되지. 그에 따른 이 나라 전통의 처방 맛은 어떤가?”
잠시 동안 반스가 멍하니 있자, 푸셰는 이자가 런던의 지식인이라면서 설마 프랑스어도 못 알아듣는 것인가 의심했다.
물론 명문 케임브리지 출신이 약 좀 빨았다고 불어가 안 될 리는 없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반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막돼먹은 프랑스인들이란. 이건 흘레붙은 개한테나 하는 짓거리 아니오.”
푸셰가 이런 막말에 질 사람이 아니었다.
“자네 아까 모습을 그대로 그려서 보여 주고 싶군. 차라리 개 한 쌍이 더 고귀하고 품위 있었을걸.”
반스는 여기서 프랑스 놈과 떠들어 봐야 아무 이득이 없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았다.
그래서 아무 대꾸하지 않은 채 푸셰의 수행원이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푸하. 그래. 소개도 없이 이리 만나려니 좀 멋쩍지만, 우선 나폴레옹을 적기에 버린 그 수완은 칭찬하고 넘어가지요. 오트란토 공작 각하. 당신쯤 되는 사람의 소환이니 뭔가 대단한 기사가 있겠지요?”
“신비한 아시아 끄트머리의 기사는 많이 팔릴 거야. 게다가 그게 문명인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혁명이라면 말일세.
이제 대프랑스 전쟁도 끝났으니 신문 부수가 떨어질 것 아닌가. 미리 보고 투자해야지. 어차피 전쟁은 신문사가 좋아할 일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요.”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의아하지만 이때 전쟁은 ‘특종’이 아니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의 입장에서 언론은 성가실 수밖에 없다. 당시 유럽의 언론은 의심스러운 비밀 누설자나 귀찮은 선동꾼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때까지 오직 잠깐의 프랑스 혁명정부 이외에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나라 따윈 없었다.
자유의 국가 아메리카 노예국이 한 150년 뒤쯤 베트남에 자유를 배달하러 갔다가 반품당하고 깨달았듯이, 언론을 자유롭게 풀어두면 전쟁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국가는 언론사에게서 엄청난 액수의 ‘보증금’을 걷고, ‘불법적으로 운반되는 서신’을 전부 압수하여 기자들의 활동을 통제했다. 더 타임스의 사장 월터도 귀족에 대한 모욕으로 벌금과 투옥을 반복해야 했다.
그 짓을 하느라 항구와 성벽마다 지키고 서 있어야 했던 관리와 병사들의 인건비를 고려하면, 그냥 광고를 넣었다 뺐다 하는 것만으로 그 어떤 언론사라도 충실한 개로 만들 수 있는 현대 권력자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할 것이다. 이것을 문명의 발전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래서 (내년에 있을) 워털루 전투 당시, 런던의 언론은 단 한 사람의 기자도 벨기에로 파견하지 못했다.
정부가 막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그럴 의욕이 없었다. 외국 소식은 외국 신문을 사들여서 보도하는 것이었지 가서 직접 보고 쓰는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워털루 전투를 전후한 런던에는 웰링턴이 승리를 정식 보고하기 전까지 오만가지 가짜 소문과 거짓 발표, 그로 인한 ‘고통스러운 긴장’이 난무했다.
로스차일드가 빠른 마부 몇 사람을 고용한 것만으로 큰돈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가 다 있던 셈이다.
“언제까지 우체국 직원들에게 푼돈 주고 외국 기사 떼어와 베껴 쓰는 지루한 일을 반복할 텐가? 이제는 신문사도 변해야 할 때야. 르 모니퇴르 같은 우리나라 일간지는 곧 불어닥칠 정치적 격변에 대응할 수 없겠지. 런던의 후발 주자들이 색다른 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때란 말이야. 요크 공이건 웨일스 공이건 두려워하지 않고 그 펜촉으로 난자해 버렸던 자네들 말고 어떤 적임자가 있겠는가?”
“편지에서 한 말을 또 할 필요는 없습니다. 월터 씨도 그러려고 날 파견한 것이니. 여러 소리 하지 말고 갑시다. 아, 그리고 아까 당신이 망쳐버린 내 담배는 하나 더 내어줘야겠는데.”
푸셰는 이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어린 친구 앞에서 껄껄 웃었다. 푸셰는 서초 한 쌈지를 반스의 손에 쥐여 주고 그를 평양성으로 안내했다.
***
물론 푸셰도 이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다.
일전 시준이 청나라에서 조선 독립 얻어내고 왔을 때의 경고처럼 시준 역시 푸셰를 감시하고 있었다. 푸셰조차도 자기 경력을 아니까 수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감시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푸셰는 더 타임스와의 협업을 미리 보고했다.
시준은 영국 언론에 주석 동지의 위업을 널리 알린다는 그 아무래도 상관없는 계획보다는 그 협업의 ‘전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왕의 모가지를 치는 모습을 전 세계에 광고하자고? 미쳤습니까? 당신 대프랑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모릅니까?”
“미안하지만 프랑스의 역사를 내게 가르쳐 줄 필요는 없네. 객관적으로 봐서 대프랑스 전쟁은 프랑스 혁명군이 이웃 나라를 침공했기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야.”
푸셰는 이제 대놓고 자기 국가 정체성을 부정했다. 하긴 그는 필요하다면 자기 부모도 부정할 남자다.
“영국인들이 찰스의 목을 쳤을 때 다른 나라가 그 죄를 물으러 침략하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정말 유럽인들이 조선왕에 대한 우애가 넘쳐서 여기까지 함대를 끌고 올 거라고 믿는 거야?”
“젠장, 유럽이 아니라 중국 말입니다. 그자들이 언제까지 독립 조약을 지킬 거라고 생각합니까? 기회만 보이면 바로 그것을 명분으로 침략할 겁니다.”
“왕의 다리를 자른 것만 해도 충분한 명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설마 페킹에서 그걸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시준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도 이공과 이품을 계속 살려둘 수 없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인정했다. 갇힌 왕족을 빌미 삼아 일으킨 반란이 조선만 따져도 어디 한둘이었던가 말이다.
처음부터 정중히 유폐했다면 모르되 이리된 이상 그냥 죽여야 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소식은 다리건 목이건 어차피 숨길 수 없다. 지친왕도 시준이 왕 다리 잘랐다는 것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어딜 잘랐건 일단 자른 순간, 전통적 관점에서 시준의 목 천 개로도 보상할 수 없는 대역죄임은 분명했다.
지친왕이 영국 문제를 해결 – 성공만 한다면 그는 중국사 최고의 명군이 되겠지만 – 하고 나면 시준이 이공을 살려뒀다 하더라도 반드시 죄를 물으러 온다.
어차피 상대는 인류의 대적 영국. 약속 안 지켰다고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리고 어느 문명권이든 협박으로 맺은 계약은 대개 무효로 한다.
늦든 빠르든 여진족은 조선을 다시 예속시키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푸셰의 말대로 아예 널리 보도하여, 이 동아시아에 유럽식 공화국이 세워졌다는 것을 알리고 중국에 대항할 끈을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민은 왕의 피를 원해. 조선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왕의 참수형은 고려인민공화국이 이제까지의 그저 그런 군벌 국가와 확고하게 다르다는 증거가 될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에서 이긴 지금이 아니면 반드시 반대자가 나올 걸세. 우리도 그랬지.”
루이 16세의 처형은 인민의 절대적 찬성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없는 반대, 폭동, 쿠데타 위협, 금권 투표가 오가는 개막장 속에 아슬아슬하게 죽여 버렸다는 쪽에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 그건 암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준은 한숨을 쉬며 푸셰가 내미는 서류를 바라보았다.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 푸셰가 지금껏 기회만 있으면 노래를 부르던 내용이었으니까.
‘한성 부민 이공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아들을 인망 있는 선비인 복요섭(福堯燮, 조제프 푸셰)에게 맡기며 이에 대해 딴말하지 않겠다’는 조선식 계약서다.
왕비 김씨의 경우 자꾸 희롱하면 자살하겠다고 난리를 쳐서, 푸셰도 그쪽은 일단 접어둔 채 아들 건만 진행했다.
시준은 거기에 이공의 도장을 날인했다. 동인도 회사 주식 살 때 파 둔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게 효명세자는 프랑스인의 아들이 되었다.
그런 전차로, 시준과 정치국은 이미 유럽 언론인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마스 반스는 이 ‘의장’이 깃털 모자를 쓰고 나타나 하품을 하며 담배를 권하리라 생각하고 부드러운 응대를 준비했지만, 의외로 세련된 유럽식 환영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공화국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내가 의장 정시준이오.”
시준이 유창한 영어와 함께 손을 내밀자 반스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그 손을 맞잡았다.
“의장 각하의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준은 뭐라고 말을 해 줄까 하다가, 만국 공통인 학연 친밀감을 떠올렸다. 시준이 케임브리지 출신인 건 아니지만 그도 런던에 있을 때 몇 파운드 내고 관광 가 본 적은 있다.
“케임브리지는 나도 잘 아는 지식의 보고지요.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유령은 여전히 있소?”
반스는 눈썹을 약간 치켜올렸다. 그의 풍성한 구레나룻이 밀려올라가는 입술을 따라 움직였다.
“아무래도 무덤이 많으니까요. 벌써 오래 전 저명한 교수들이 총을 쏘아 쫓아 버렸답니다.”
“여기에서도 유령은 총포로 퇴마하는 관습이 있소.”
“이거 재미있는 일치로군요.”
반스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유령은 재학생들이나 아는 일인데, 각하께서는 런던에 와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런 일이 다 그렇듯 쓸데없이 더 아는 척하면 망신당한다. 시준은 적절하게 끊었다.
“그렇지는 않소. 들은 얘기지.”
일국의 장이 일개 기자를 오래 상대하는 것은 시간뿐만 아니라 위신의 문제도 있다. 그래서 시준은 적당히 우호적으로 자리를 끝냈다.
그리고 반스는 시준의 암시를 이해해 보려 애썼다.
‘오트란토 공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건…… 의장 정시준이 런던에 프랑스와 별개의 끈이 있다는 암시로군.’
원래 왕의 처형을 기록하러 온 참이지만, 반스는 이 의장이라는 인물에게도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석답게, 시준은 대동문 앞에 시끌벅적 설치되고 있는 저 구조물도 용인했다.
그러나 이 일을 정확히 모르고 있던 지유는 그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저게 대체 뭐야? 무슨 통나무라도 썰려고 저런 큰 작두를 만드는 거니?”
시준은 뭐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그냥 있는 대로 말해 주었다.
“사람 목을 베려는 거야. 저 줄을 풀면 무거운 칼날이 떨어지면서 달리 힘쓸 필요도 없이 한 번에 목이 떨어지지.”
지유는 놀란 표정으로 시준을 바라보고는 다시 광장에서 거의 완성되어 가는 단두대를 쳐다보았다.
더 말하고 싶지 않았던 시준도 그냥 같이 그쪽을 보았다.
시준이 옛날 만화책에서 본 그림과는 좀 달랐다.
현재 아시아에서 조제프 푸셰를 빼고는 그 누구도 단두대 마스터라 자칭할 수 없다. 그의 지휘하에 설계된 단두대의 칼날은 쇠로 된 사선형 칼날 위쪽에 무거워 뵈는 목재가 덧붙여진 모습이었다.
시준이 아는 것처럼 통짜 사람 몸통만 한 쇠로 만들기는 힘들었다. 금속도 귀하거니와 그 정도의 대형 강재를 만들어낼 기술도 마땅찮았다. 그럴 자원이 있으면 대포에 써야 한다.
거기에서 누구의 목이 떨어질지 짐작하는 것은 지유에게도 어렵지 않았다.
“원래 왕의 신분이라 저런 어마어마한 데에서 정법하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정말 신분을 생각했으면 비단 끈이라도 줘야지. 아마 왕도 그걸 기대하고 있을 테지만…….”
조선은 재판의 전통이 유럽과 다르다.
공화국 사람들은 유럽인처럼 사람 잡아먹은 돼지도 기어이 피고석에 앉혀 재판 하고 죽일 만큼 설정과 격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왕에게까지 보고 올려 사형 재가 받는 비효율적 관료제의 개선을 위해, 그냥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하고 곤장으로 패 죽이던 조선 수령들의 적극행정이 한 예다.
그래서 대량의 귀족을 빠르게 ‘정식 처형’하기 위한 용도의 단두대는 필요 없었다. 지금까지는 보통 인민재판 후 가지각색 방법으로 사형(私刑)되었을 뿐 균일한 형을 결정한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평민과 똑같은 방식’으로 목을 떨어뜨리는 일이 귀족에게 모욕적인 것은 조선이나 프랑스나 똑같았다. 신체 훼손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래저래 단두대는 여기에서도 쓸모가 있었다.
시준은 이 단두대 도입이 죄형법정주의를 확립하는 기반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토대에 가장 처음으로 뿌려질 것은 고귀한 왕의 피다.
시준은 입을 벌린 채 단두대를 쳐다보는 지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결정된 건 아니니까. 어쩌면 사죄는 면할 수도 있어.”
지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에서 특별히 증오가 타오르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강철군주가 일으킨 사달 때문에 홍경래에게 납치되고 관군에게 화살을 맞은 일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시준은 반드시 이공을 죽여주겠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용서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지유는 한참 동안 단두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준의 팔을 잡았다.
“이제 들어가자. 처결할 땐 나와 봐도 돼?”
시준은 잠시 뒤에야 적당한 대답을 고를 수 있었다.
“그래. 이제 날씨도 꽤 따뜻하니 괜찮을 거야.”
재판은 중앙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의 공고를 거쳐 한 달 뒤 개최되었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이 행사가 그저 피의 잔치로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시준이 푸셰의 조언을 받아 공화국 사법부의 정식 창립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공화국 혁명재판소’의 첫 번째 재판은 그 중요성에 어울리는 격을 갖추었다. 피고로 상정된 자들 중 무려 두 사람이 왕이었으니 말이다.
이 흉년에다 농번기인데도, 저 멀리 한양군에서 봇짐 짊어지고 구경만을 위해 올라온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시준은 정말 조선 사람들을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단두대의 모습을 스케치하던 토마스 반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조제프 푸셰에게 말했다.
“곧 시작되겠군요. 그간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지만, 왕의 사형을 두고 별달리 시끄러운 일이 없는 것을 보니 여기에는 각하의 친구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같은 혁명 장사꾼이 없나 봅니다.”
“거 말 한번 지랄같이 하는군. 그래.”
푸셰도 투덜거리기밖에 할 수 없었다. 자코뱅의 거두 조르주 자크 당통이 상당히 표리부동한 인물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돈 넣으면 뭐든 누를 수 있는 자판기 같은 그의 태도는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리고 혁명기에 팔자 스텝 밟은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당통 역시 로베스피에르의 손에 죽었다.
푸셰는 자국의 치부를 들춰내는 대신 – 자기도 거기에 적잖은 관련이 있었으므로 – 망원경에 집중했다. 그는 오래잖아 아는 얼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저기 오는군!”
반스 역시 푸셰가 건네준 망원경을 들고 그쪽을 보았다.
반스의 눈에는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아시아인 중, 한쪽 다리가 없는 젊은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반스는 날카롭게 웃었다.
“다리 절단자, 반왕 정시준의 소문은 비유나 과장이 아니었군요.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조선의 23대 국왕, 강철의 군주 이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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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파노라마, 즉 전경이라는 말은 약 18세기 후반부터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2. 일전에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작중의 향정신성 약물 서술은 고의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한 것이 종종 있습니다. 작중의 내용은 가상적으로 즐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약은 삶을 파괴합니다.
3. 루이 16세의 처형은 단 한 표만 모자랐어도 실현되지 않았을 거라고 하지요. 혁명의 뇌물왕 조르주 당통을 비롯하여, 이 투표에 참여한 많은 인사들 사이에서는 수백만 리브르의 뇌물 수수가 이루어졌습니다.
4. 하품 소리를 내며 담배를 권하는 것은 인디언의 예법입니다. 옛날 미국 영화 보면 관련 패러디가 종종 나옵니다.
5. 복싱이 스포츠로 정립된 것은 ‘브로턴 코드’가 제정된 18세기 중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대륙에서는 총칼 등 무기로 하는 결투가 성행한 반면 영국에서는 맨주먹으로 하는 결투가 성행한 면이 있습니다. 아무튼 분쟁이 있으면 싸워서 이긴 놈이 옳다는 유럽의 전통은 둘 다 같았습니다.
6. 세인트 존스 칼리지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가장 오래된 학교 중 하나로서 16세기 초에 건설되었습니다. 이 아래에는 거대한 묘지가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령이 많이 나오기로도 유명했죠. 18세기 초(작중 시점으로부터 1세기 전), 교수들이 총 들고 유령을 쫓아버렸다고 합니다.
케임브리지라는 데가 사실 하나의 학교라기보다는 여러 단과대가 모여 있는 일종의 학원도시입니다. 장소의 이름도 캠 강(Cam river) 위의 다리가 있는 곳이라 해서 케임브리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