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96화 (196/284)
  • 197화

    62. 하나의 나라, 하나의 지도자(2)

    시준이 환호를 받는 것은, 단지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으로써 자신을 증거했다.

    그리고 시준은 거의 2천 년을 격하여 그 비슷한 일을 이 땅 위에서 재현해 보였다.

    ***

    우선 첫 번째는 동아시아에 수도 없이 난립했던 사이킥 지도자들이 한 번씩은 과시했던 능력, 바로 예지력이었다.

    김회연이 사쓰마에 보냈던 칙사도 폭사한 탓에 시준은 좀 늦게야 – 그러니까, 거의 충청도쯤 가서야 – 신라가 영국과 실제 동맹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병약수 작전이 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흑산도에서 설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은 영국군과 생물학전을 펼쳤다고 시인하기 싫은 시준의 입장이 합쳐져, 이 일은 시준과 이강회만이 아는 비밀이 되었다.

    이 일을 직접 한 해병대는 시준의 의도를 모른다. 세균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영길리 사람들에게 가벼운 ‘장난’을 쳤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 놈들이 사신을 독살하려 했다고?’

    독은 왜 먹였는지 의아했지만, 그런 사소한 의문은 곧 잊어버렸다.

    설사병의 스트레스 때문에 화풀이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 영국 놈들이라면 그냥 재미로 식사에 독을 타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해적 놈들의 싸이코패스 같은 취향은 굳이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정보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영국인의 사신 독살 시도’ 때문에, 원래 싸우던 중국과 사쓰마는 물론 조슈와 쓰시마 번까지 추가로 영국을 적대하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정리해 둔 것은 외사통호부장 정약용 정도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시준의 날카로운 예지와 드높은 철리(哲理)를 칭송하기에 바빴다.

    지리산 돌파와 인천 상륙작전 주장 때문에 시준의 군사적 식견에 대한 평가는 솔직히 약간 하락한 상태였다.

    일부 배운 선비들은 항우와 유방의 예를 들며 꼭 지도자가 군사적으로 유능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애써 시준을 변호해 주었지만, 시준으로서는 그냥 다 닥치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신라가 영국에 혁명의 심장 평양을 포함한 양계를 감히 떼어 주고 청병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그 소식은 시준의 마차보다 훨씬 빠르게 평양에 전달되었다.

    “김회연 반동이 양계 사람들을 영길리에 팔아먹으려 들었다는군!”

    “내가 사서를 좀 읽었는데, 그야말로 옛일을 그대로 다시 하려 든 꼴일세. 신라라는 나라가 대개 그렇지 않은가?”

    “주석 동지의 예지가 없었다면 어찌할 뻔했는가. 영길리 놈들은 왜구와 다를 게 없다던데, 이 평양이 불바다가 될 뻔했지 않아!”

    그런 공포와 감탄, 신라에 대한 비난 속에서 시준의 예술영도는 재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정약용 등 영길리국 전문가를 보내 성사시킨 것도 아니다.

    분명 유능하지만 주석 동지에 비하면 그 지혜가 모자란 정치국 위원들이 주석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기에, 주석은 수적 출신인 공화국 해병대를 써서 영길리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 점은 신라의 흉계를 예지한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인민이 수평하다고는 하여도, 이 나라는 3년 전까지만 해도 강철군주의 전제하에 다스려지던 왕국이었다.

    공화국 인민들은 물론 수평도를 충실히 추종하고 있었지만 그 시절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신분이 수평해졌다 해서 능력이 수평해지는 것도 아니다.

    농민, 노비 출신 혁명 간부들 중에는 비록 중책을 맡았으나 위원회 문서 하나 제대로 못 읽어서 절절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평양에서 김정희의 비공식 대서소가 날로 번창하는 이유다.

    그리고 사대부 출신들은, 물론 무식자의 주먹이라고 하여 처맞아도 안 아픈 게 아니므로 겉으로는 타박하지 못하였으나, 뒤돌아서서는 출신을 어쩔 수 있겠는가고 은근히 수염을 쓰다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번 일로 급거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적 따위가 조선 기준으로도 관료 커리어의 궁극적 표상인 외교 사절의 역할까지 하였다니, 진실로 주석 동지는 사람의 천품과 재주마저 수평하게 만들었다.

    경지에 이른 고수가 쓰면 나뭇가지로도 칼을 이길 수 있는 법. 천출명장 정시준 주석은 그 손에 쥔 군사가 무엇이건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정 진인의 천리안은 공간만 꿰뚫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시간마저 꿰뚫었다. 하긴 100여 년 뒤 어떤 독일 사람의 말에 따르면 본래 시간과 공간은 하나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과학적인 조선 사람들은 모두 단번에 이해하고 경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환영 행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평양에는 어느덧 노랫말 같은 속삭임이 퍼지기 시작했다.

    “정 진인은 모두 알고 계신대. 누가 혁명 동지인지 누가 반동인지.”

    “(정찰총국이)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인민의 소망과 총의를 체화한 정시준 주석은 사람의 모습을 한 인민 전체이므로 그것은 이상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거느린 처자가 많다거나 삼대독자라거나 배가 좀 아프다거나 하는 이유로 이번 혁명전쟁에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크게 아쉬워하며 뒤늦게 팔뚝을 걷어붙였다.

    “내가 경주에 달려가서 그 김회연 반동 놈의 관을 깨고 시신에 채찍질을 해야겠구먼!”

    그런 얘기만 기다렸던 혁명군 귀환병들은 동지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하하!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린가. 이미 김회연은 뼛조각 하나 남지 않았는걸!”

    “뭐라고? 자네들이 벌써 다 해치웠다는 말인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 하였네. 하지만 정 진인께서 다 조화를 부려 처치하셨지. 자네들이 그걸 봤어야 하는데!”

    시준보다 먼저 도착한 선두 귀환병들은 정 진인의 두 번째 기적, 그러니까 일종의 파이로키네시스를 경쟁적으로 퍼뜨렸다.

    평양의 술집과 공터, 논두렁은 모두 이야기판이 되었다.

    “정말이지 대구성의 그 화포는 지름이 사람 대가리도 드나들 만했고, 수만 군사들의 기세는 마치 그 하나하나가 장판파의 장익덕 같았지 뭔가! 그야말로 반동 최후의 철옹성이라 할 만했네!”

    귀환병 조재복(趙材福)의 거창한 서두가 시작되었다.

    김회연이 들었다면 ‘그럼 내가 자폭했겠냐?’라고 화냈을 정도의 고평가였다. 허나 원래 적이 강해야 스토리 전개의 맛이 있는 법이다.

    재복이의 의도는 먹혔다. 가까이 있던 사람 하나가 긴장하여 물었다.

    “그래서 모두 그 앞에서 오금을 못 펴고 있었다 이건가?”

    “예끼 이 사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우리 혁명군은 모두 신심 드높이 용기백배하여, 전우 동지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기어이 대구성을 함락할 각오 만반이었지!”

    재복이는 절대 자신이 약간 뒷줄로 이동해 숨어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도 가장 전열에서 주석 동지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정치국의 호령만 있었으면 가장 먼저 성벽을 오를 자는 나였을 걸세!”

    그러나 만민의 어버이이자 구원자인 정 진인은 그런 희생이 나는 것을 달갑잖게 여겼다.

    그래서 정 진인은 대구로 친림했다.

    재복이는 그냥 평범하게 마차에서 내리는 시준의 모습을 기억에서 삭제한 채, 하늘에서 부적이 휘몰아치더니 어느새 정 진인이 나타나 있었다고 떠들었다.

    “정 진인께서는 정치국 위원 동지들을 대동한 채, 그윽하게 대구성을 한 바퀴 둘러보셨지. 마치 너희들의 어리석음을 부디 깨달으라는 듯이. 허나 저 반동 놈들은 더러운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앞으로 받을 벌을 더 무겁게만 할 뿐이었어. 그런데 바로 그때였네!”

    조재복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문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그를 채근하였다.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보게.”

    “어흠. 이거 오래 떠들다 보니 좀 목이 마르구먼.”

    눈치 빠른 사람 한 명이 술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것은 탁주나 청주, 소주는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뭇가지 우린 물처럼 생긴 그것은 바로 럼주였다.

    거듭되는 흉년에 막걸리 담글 엄두는 못 내지만 그래도 술은 먹고 싶은 게 조선 사람이다.

    그리고 뭐든지 팔고 싶은 게 영국 사람이다. 물에 럼주 탄 선원용 비상식수에 가깝긴 하여도 없는 것보단 낫기에 싼값에 잘 나갔다.

    물이 많이 섞인 럼주라서 사발에 담아 마셔도 충분했다. 조재복은 그것을 막걸리처럼 벌컥벌컥 들이킨 뒤 소매로 입을 훔쳤다.

    “진인의 화둔법(로켓 스토브)은 다 알지? 그건 정 진인의 힘을 잠깐만 빌리는 것으로서, 진짜에 비하면 말 그대로 새 발의 피였다 이거야. 진인께서 성벽을 가리키며 주문을 외우시니, 놀라지 말게. 그대로 성이 통째로 터져 날아가 버렸다네! 마치 화약 수백 근이, 아니, 수백 킬로그램이 한꺼번에 터진 것처럼 말야!”

    진짜로 화약 수백 근이 터진 거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집집마다 있는 진인 화둔법의 힘을 정 진인이 모두 모아 발사했다면 그리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인민의 총의를 모으는 정 주석은 인민의 화력을 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재복이 손짓발짓을 해 가며 묘사하는 그 참상은 마치 지상에 유성이 떨어진 듯했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옛날 선비 출신 동지 한 명이 주저하며 의견을 내놓았다.

    “그, 그게 도무지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진짜 자네가 본 거야?”

    이래서 옛날부터 절개 높은 사람들은 일찍 죽었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하기 때문이다.

    조재복이 흰자위를 한껏 드러내며 눈을 홉뜨자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반동적인 언행인가? 정 진인이 축지법과 천리안을 쓰고 일흔두 가지 도술에 능통한 거야 모든 사람이 알지 않는가?”

    “내 처조카가 정찰총국에서 심부름을 하는데, 이거 안 되겠군! 주석을 모함하여 깎아내리는 반동이 여기에 있었어!”

    선비는 얼마 전 상조농장에서 일하고 분배받은 감자 예닐곱 개와 소금주머니를 내어 돼지국밥이나마 한 솥 마련하고서야 겨우 비난을 막을 수 있었다.

    재복이는 그래도 얌전한 축이었다. 이야기가 극적일수록 더욱 많은 술을 얻어먹을 수 있기에 귀환병들은 앞다투어 창작에 들어갔다.

    평양에 도착할 때쯤, 시준은 손짓 한 번으로 대구성을 무너뜨리고 눈짓 한 번으로 경주를 함락시킨 신화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

    물론 평양 사람들은 주석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봤다. 시준이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평양에서 모습을 드러낸 주석 정시준이 왜 머리가 하나에 팔이 둘밖에 없는지 의아해했다.

    그 정도 위업을 이룬 화신이라면 삼두육비(三頭六臂, 머리 셋에 팔 여섯. 강력한 힘을 상징한다) 정도는 되어야 체면이 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준은 그렇지 않았다.

    고대부터 신격의 경쟁이 치열한 아시아에서는 신들이 다양한 어필 수단을 강구했다.

    조금이라도 게을렀다가는 원래 존경받는 농경신이었다가 이웃의 어느 얀데레를 컨셉으로 내세운 신에게 패배하여 악마로 떨어져 버린 바알 같은 꼴이 난다.

    그런 수단 중 하계의 인간들에게 딱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외형이다.

    아주 톡톡 튀는 개성이 없이는 금방 묻혀버릴 정도로 신이 많은 인도 같은 곳에서 좀 먹어 준다는 신들이 어떤 모습인지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인파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마차에서 내린 시준의 모습은 평범하게 키 큰 청년이었다.

    이 땅에서 스스로를 신이라고 주장해도 유일하게 지탄받지 않을 한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그럴 생각이 없었다.

    시준은 인민들이 몰려선 사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주석결사옹위대도 군주에게 사열받는 군대라기보다 동료를 보호하는 호위 정도의 모습으로 동행할 뿐이다.

    시준은 모여든 인민들을 둘러보았다.

    주위 사람들은 꿈에도 몰랐지만, 경상도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시준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느끼는 것만큼이나 큰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자기가 걷는 길에 남의 훈육이 필요 없는 자를 완성된 사람이라 하여 성인이라고 부른다.

    3년 전 강철군주를 말에서 내동댕이치고 종묘사직을 불태우면서 이 땅의 인민들은 수천 년간 정체되었던 어린아이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올해, 그 성인은 자신에게 비참하지 않고 자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이번의 전 조선 인민 해방전쟁이다.

    고려인민공화국은 분명히 조선 왕조의 지배를 벗어났고, 청에게서 독립을 얻어냈으며 영국과도 불안정한 동맹이나마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내치에 힘쓰면서 삼남의 인민들을 모른 척할 수도 있었다. 그 거대한 해악으로는 영국 정도나 비견할 만한 장기간의 자연재해에 피폐해진 북부 인민의 상황은 좋은 핑계도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내빼는 자는 공화국에 한 사람도 없었다.

    혁명 동지들은 지금도 강자에게 짓밟히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기꺼이 자기의 피와 바꿔 해방하기로 맹세했다.

    네가 무슨 정의의 사도냐고 냉소하기는 쉽다. 힘을 내세우는 횡포에 맞서, 강약이 부동임을 알면서도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자들을 물정 모른다며 비웃는 일은 사실 전혀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모자란 자들이 쉬이 그 길을 택한다.

    시준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도 전생에서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허나 그런 비루한 자기 합리화로 인생을 누덕누덕 기워 나가는 짓은, 이제 수평하게 고귀해진 인민의 자존심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시준도 이제 안다. 지금까지 그가 한 일은 압도적 지식을 가진 미래인의 유희가 아니다.

    관계는 항상 상호적인 법. 시준이 역사에 영향을 끼친 것만큼이나 이 시대와 사람들 역시 시준을 변화시켰다.

    이제는 그도 위험이나 변화 따위는 질색했던 소시민이 아니다.

    현재 이 행성에서 유일한 민주 공화국의(노예국은 안 쳐준다) 영광스러운 대표이다.

    시준은 긴 연설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세계 용사가 교육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준은 간단히 말했다.

    “저는 동지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기묘한 표정이 번져갔다.

    시준은 한 손을 번쩍 들고 평양성 성문을 가리켰다.

    “같이 갑시다. 동지들.”

    시준과 무수한 환영 인파는, 마치 대규모 여행객처럼 함께 평양성으로 들어갔다.

    나부끼는 부적이나 상서로운 빛줄기는 없었다. 그들은 그저 항상 하던 것처럼 흙먼지를 일으키며 저벅저벅 걸었다.

    ***

    조제프 푸셰는 기지개를 켰다.

    푸셰는 안경을 벗으려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창밖이 그의 예상과 달리 아직 밝은 것을 보고 멈추었다.

    시준의 통일전쟁 완수와 평양 귀환 이후 시간이 꽤 흘렀다는 증거다. 태양은 자신의 영광된 정점, 하지(夏至)를 지나서도 여전히 위세를 과시했다.

    그렇다면 아직 조금 더 작업할 수 있다. 평양에 등불 켤 기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나이가 나이라 그 정도 조명으로는 눈이 침침하다.

    푸셰는 서둘러 펜을 놀렸다.

    <……탄식을 담아 인정하건대, 정시준에게는 유럽의 선진적 정치 지식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누구보다 많은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써서 그것을 제한하려 하는 정시준의 모순적 통치는 의외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

    하지만 어떻든 간에 한 가지는 명백하다.

    그가 황제가 될 생각이 없다면, 시해를 죄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정시준이 이전의 군주들을 살려두는 것은 불필요한 자비이고 위험스러운 관대함이다. 나는 거기에서 손해만을 떠올릴 수 있을 뿐 이득을 짐작할 수 없다.

    이제야말로 그들의 피로 메마른 공화국의 밭을 기름지게 할 때가 다가왔다고 판단한 나는 정시준에게 조언했다.>

    아직 푸셰는 시준에게 이공과 이품의 처형을 건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기록은 날조다.

    하지만 진지한 규탄 거리는 못 된다. 21세기에도 SNS에 운동했다고 써 놓은 다음 3시간쯤 뒤에 헬스장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그리고 푸셰는 반드시 시준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나폴레옹의 엘바 대공 임명 소식이 도착하고 나서 푸셰는 더욱 조선 정착에 적극적 자세를 취했다.

    이공의 아들을 그의 양자로 만드는 계획은 아직 보류 상태이나 – 시준이 미룬 건 아니고, 푸셰가 자꾸 전 왕비 김씨를 어떻게든 유혹해 보려던 탓이 컸다 – 이공이 ‘독자를 믿을 만한 신사에게 맡기고’ 죽는다면 푸셰의 새 가정 계획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단지 사적인 용무 때문만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도 현재의 공화국에서는 왕의 존재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국의 신묘한 장악지도 때문에 공화국에서 복벽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면 그들은 자부심을 느끼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그건 단지 그럴 만한 불씨, 즉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은 토지 개혁과 곡식 분배로 인민들의 인심을 얻고 있다. 그럭저럭 입에 들어가는 것이 보장되면 반란 같은 것은 인기가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개혁은 둘 모두 불완전하다. 정작 경제난의 원인인 흉년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응은 고식지계의 반복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현재의 안정은 그저 기분상의 문제일 뿐이다.

    이 ‘기분’이 흐려지는 순간 공화국은 위기에 봉착한다. 그 전에 반란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옛 복벽파를 전부 처단해야 한다.

    하나의 인민과 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지도자 외에는 필요치 않다.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복벽파의 윤곽은 국왕의 처형으로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이제 나폴레옹이라는 쇠사슬을 끊어버린 영국이 움직인다. 영국 놈들이라면 피땀 흘려 이룩한 공화국의 성과를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파괴한 뒤 입 싹 씻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그러겠지.’

    푸셰는 그렇게 확신했다. 따라서 그 전에 고려인민공화국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푸셰는 다른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는 처음 정시준 평전의 집필을 시작할 때부터 외방전교회와 연결된 끈을 당겨 놓았다.

    거리가 멀고 중간의 난관이 만만치 않아 이제야 그 흔들림을 유럽에서도 본 모양이지만, 다행히 거기서는 즉각 응답해 주었다.

    ‘영국의 언론이라면 그 해적 놈들도 별말을 할 수 없으렷다.’

    푸셰는 프랑스나 미국이 아니라 영국의 연줄을 동원했다.

    공정성을 선전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영국인이 아니면 보나 마나 오다가 살해, 혹은 억류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 타임스(The Times)>라는 간판을 내건 런던의 신흥 언론사. 그곳의 야심만만한 사주인 존 월터(John Walter)는 그의 신뢰하는 집필자를 보내 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젊은 준재 토마스 반스(Thomas Barnes)는 자바에서 ‘평양의 친애하는 영국인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선전선동부에 매수된 영국 선원의 손에 안착한 편지는 몇 단계를 거쳐 푸셰에게도 전해졌다.

    편지의 도착 시간을 고려했을 때 그는 이미 천진까지 와 있을 터였다.

    조제프 푸셰는 안경을 벗어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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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오늘은 좀 길군요.

    1. 이스라엘의 신 야훼는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라고 말했습니다(출애굽기). 바알을 포함하여 유대교-그리스도교의 전승에 포함된 많은 악마는 원래 그 주변 다른 종교의 신들이었습니다.

    2. 더 타임스는 1785년 창간되었고, 처음에는 ‘더 데일리 유니버설 레지스터’ 라는 이름을 내걸었으나 3년 뒤 ‘더 타임스’로 바꿉니다. 아직 ‘가디언’이나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창간되기 전입니다. 존 월터는 이름이 같은 그의 아들과 함께 더 타임스의 초기 사장입니다.

    토마스 반스도 실존 인물로서 이때 더 타임스에 근무했으며, 후에는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됩니다. 다만 이 시대에 ‘현장 취재’는 기자나 편집자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나오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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