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60. 낙동강 전투(3)
시준이 복지 혜택으로 조건을 고를 때의 방식은, 이를테면 보험 설계와 비슷했다.
시준은 ‘분쟁 및 빈곤지역 생존 패키지’를 고른 셈이고, 당시만 해도 안전제일주의적인 자신의 성격에 매우 부합하는 선택이라고 여겼다.
그 선택은 21세기 지구의 어떤 후진국도 따라가지 못할 19세기 조선에서 적절하게 빛을 발했지만 시준이 그것에 대해 고마워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시준이 고마워하건 말건 그 지식은 시준에게 있었다.
그리고 생존의 영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의학과 약학의 기술이다.
물론 그곳은 약재의 대국 조선인만큼 시준이 가진 서바이벌 수준의 능력으로 독보적인 이름을 남길 정도는 안 된다.
그러나 딱 그 정도가 시준이 바라던 바였다. 그는 원래부터 주머니 속의 송곳이 아니라 주머니 속의 먼지 정도로 살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그 먼지에 불이 붙어 조선이라는 바지가 뚫리다 못해 홀랑 타 버렸지만 그거야 시준의 잘못은 아니다. 시준은 그렇게 믿었다.
어쨌든 시준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목표, 그러니까 눈에 띄지 않고 돈 벌기에 그 의학지식을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이제 공화국의 주석이 된 지금, 시준은 그 능력을 공공의 복리에도 활용해야 했다.
조선은 이 시대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기적인 전염병이 도는 나라였으며, 역사보다 더 빠르게 외부와 교류가 이루어지는 지금은 새로운 위협에도 대처해야 했다.
그 위협이란 이번에도 또 영국 놈들이다.
염치도 모르고 아무 데나 군홧발 찍던 영국인들은 끝내 갠지스 강에 봉인된 암흑의 마신을 풀어주고 말았다.
하긴 부주의한 탐험가는 아포칼립스물의 클리셰 중 하나다.
영국 배가 지구 전역에 똥물 뿌리듯 휘갈겨 19세기의 모든 의사들을 좌절하게 했던 질병, 콜레라가 전 세계로 터져나간 것이다.
대개의 전염병이 그렇듯, 건강하고 영양 섭취가 잘 되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큰 위협이 안 된다.
문제는 그런 자가 현재 시대에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나폴레옹 전쟁기에 콜레라가 유럽에 상륙했다면 나폴레옹은 기꺼이 콜레라균을 동맹군 삼았을 것이다.
보나파르트는 러시아를 뚫지 못했지만 콜레라는 러시아 따위 가볍게 짓밟고 수십만의 인명을 살상했다.
조선처럼 우물에 식수를 많이 의지하는 나라는 한번 돌기만 하면 전쟁이 차라리 나을 정도의 대학살이 벌어진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보다 빠르게 콜레라가 동북아시아에 상륙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재앙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았다.
일본은 아직 접촉이 적고, 청나라의 경우 바다에서 물을 바가지로 퍼내나 대독으로 퍼내나 그게 그거라서 얼마가 죽건 표시가 안 났다.
그리고 공화국에는 바로 정시준이 있다.
시준은 현재 지구에서 콜레라의 원인과 대처법을 정확히 아는 유일한 인간이다.
지금의 콜레라는 한양 함락 때쯤부터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시준의 경기에 ‘그깟 설사병 가지고’쯤으로 반응하던 정치국 위원들도 황해도에서 100여 명이 몰살당하자 그제야 허겁지겁 시준의 ‘신묘한 예지’를 따랐다.
***
물을 끓여 먹으라고 선전하는 조치는 사실 처음에 잘 지켜지지 않았다. 장작이 비싸니까. 한 장에 천 원짜리 마스크조차 쓰기 싫어하는 21세기 사람들이 미개하다고 비난할 건 못 된다.
게다가 공화국 전역에 우후죽순 생기는 혁명염초밭은 그 전염병을 더욱 가속화했다.
정치국은 방역 조치를 지키지 않는 자를 처벌한다거나 하는 헛된 정책 대신 다른 방향으로 선회했다.
시준이 계룡산에 내려갔을 때쯤 해서, 영국과 주로 접촉하는 서북 지방에서는 각지의 인민위원회가 꽹과리를 치며 돌아다녔다.
공화국의 마약, 아니 의학부서인 강강양생부(康强養生部, 康强은 건강이라는 뜻) 부부장에 은근슬쩍 임명된 정약횡이 바로 그 선두였다.
“함부로 더러운 우물물을 퍼먹다간 설사병이 나오! 수평도는 흐르는 물이라, 고인 물은 반동처럼 썩는 법!”
“저 앞 개천에 정 진인의 영험이 담긴 부적을 던져 넣었으니 그곳에서 물을 떠다 드시오! 옆 고을은 열두 집에서 줄초상이 났다오!”
시준도 세균학을 전파해 볼 생각 따위 하지도 않았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그런 걸 믿게 하느니 21세기 사람들에게 지구가 평평하다는 이론을 믿게 하는 게 쉽다(이건 성공한 사례도 많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처음에 투덜거렸다.
“그 멀리까지 언제 나가라고…….”
“정 귀찮으면 차라리 술을 마셔! 아니면 고깃국이라도 끓여 먹게 여기 쇠뼈다귀를 좀 가져왔소!”
“이건 돼지뼈 같은…….”
“정치국이 쇠뼈라고 하면 쇠뼈인 거요. 동지, 거 사상이 의심스럽소! 혹시 반동?”
“아니, 거 말도 못 하나. 알겠소.”
그것 외에도 강강양생부의 창의력은 끝이 없었다.
남은 감자가루가 ‘끓는 물에 타 먹으면 병마를 퇴치하는 정 진인의 신비한 가루약’이라며 배포되고 좀 이상하게 생긴 도라지나 냉이가 ‘정 진인의 고향 의주에서 캐 온 영험한 약초’라며 사방에 뿌려졌다.
아무튼 끓이는 게 중요하니 뭐가 들어가건 상관없었다. 시준이 어릴 때부터 쏠쏠하게 써먹었던 로켓 스토브도 ‘진인 화둔법(火遁法)’이라는 이름으로 급속 보급되어 장작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했다.
그 와중 여전히 의심스러운 주술사와 삶의 마지막 희망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던 의원들도 급조 대량 발행된 ‘양생위원회 위원’ 패 받고 헛기침 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리는 자는 계속해서 나왔는데, 예방책은 그럭저럭 되어도 치료법은 마땅찮았다.
19세기라서는 아니다. 현대에도 콜레라는 설탕물을 계속 급여하여 자연 치유될 때까지 목숨줄 붙여 놓는 게 정석이다.
따라서 시준도 경구수액의 지식은 안다. 그러나 조선에서 대량생산하기가 어려웠다.
소금값은 이제 많이 내렸지만,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은 평생 설탕 구경도 하기 힘들다. 꿀은 설탕보다야 나을 뿐 거기서 거기다.
시준은 포도당을 쌀가루로 대체하는 방안도 내놓았지만, 조선에서 쌀은 어디 또 흔한가.
아메리카 원주민 방식대로 옥수수를 끓여다가 액상과당을 추출하는 방법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온 동네 의원의 약탕기가 고을 양생위원회로 모였다.
다만 사람 먹을 옥수수조차 부족한 게 공화국의 처지다. 관리 잘못한 감자, 수확 끝난 논밭을 뒤져 그러모은 낱알 등 전분이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삭혀서 조청으로 만드는 필사적 노력이 전개되었다.
그렇게 ‘진인단물’도 부족하게나마 보급되어 드러누운 환자들의 입을 적셔 주었다.
양생위원회와 정치국의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콜레라는 대형 참사로 발전하기 전에 서서히 잡혀 갔다. 솔직히 시준의 입장에서는 풀잎 베듯 밀려버린 조선군보다 이쪽과의 전쟁이 더 힘들었다.
***
콜레라균은 날씨가 추우면 잘 힘을 쓰지 못한다(없어진다는 건 아니다. 러시아도 콜레라를 피하지는 못했다).
혁명군이 신라국 공략을 시작한 겨울에 접어들자 역병은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정 진인의 신묘한 도술을 칭송했다.
강강양생부처럼 ‘도술’의 원리를 잘 아는 부서에서는 그간의 질병 기록과 양태를 세심하게 정리해 두었다.
그래서 콜레라와의 투쟁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지금, 시준은 콜레라를 다른 방향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시준은 호남 몇몇 곳에서 콜레라 환자가 생긴 고을을 골라내어 그곳의 우물물을 길어다가 – 정치국 회의록에는 기록할 수 없는 어떤 성분도 티 안 날 만큼 섞어서 – 영국 해군에게 보급하라고 명했다.
중국 주둔 영국군은 줄일 수 없을 터. 대만 쪽도 사쓰마와 으르렁거리느라 뺄 수 없다.
지금 신라를 도와 고려를 친다면 영국이 활용할 수 있는 부대는 흑산도 주둔군뿐이다. 그곳만 잠시 무력화시키고 그 틈에 신라를 멸해 버리면 된다.
아직 아무 짓도 안 한 흑산도의 영국군을 생물병기로 선제 타격한다는 데 대해 양심의 가책 따위는 전혀 없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이토록 어울리는 경우도 드물다. 암허스트가 이것에 대해 비난하려면 일단 천연두 이불가게 운영한 제 삼촌 무덤에 침부터 뱉고 와야 할 것이다.
다만 영국인과 달리 윤리가 뭔지 아는 선비 출신 이강회는 한탄했다.
먼 데서 배 타고 온 손님을 항상 잘 먹이고 구휼하여 보내 주던 유교국가 조선의 도는, 먼 데서 배 타고 온 사람에게 똥물을 먹이는 혁명의 도로 바뀌고 있었다.
공화국 해병대는 듣기만 해도 신나는 그 임무에 열광하여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얼굴 근육만으로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흑산도의 영국군에게 ‘해병약수(海兵藥水)’를 공급했다.
신라국과 쓰시마의 사절이 도착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콜레라의 잠복기가 길어야 사흘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실로 아슬아슬했던 셈이다.
실제로 쓰러지는 병사들 자체는 헨리 호프가 신라의 구원 요청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주둔군에게 전투 준비를 시키고 나서야 관찰되기 시작했다.
인과응보의 정의로 보면 용납하지 못할 일이지만, 원래 역사에서 영국에 콜레라가 본격 상륙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죽어 나가고 난 뒤인 1830년대다.
하지만 지금 영국인은 더 빠른 정의 집행을 당하게 되었다.
조선인의 흉계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콜레라의 원인이 물이라는 사실을 인류가 깨닫는 것은 앞으로 약 40년 뒤다.
대충 통조림 이후 통조림 따개가 발명되기까지의 시간과 비슷하다(통조림은 얼마 전에 나왔다). 19세기 초에는 이처럼 인류의 지성을 나폴레옹이 다 죽여 버렸나 의심되는 사례가 몇몇 있었다.
“페킹의 로드 암허스트에게 보고해야 하겠습니다. 병사들의 설사 증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헨리 호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도 가벼운 콜레라 증상으로 고생 중이어서 신경이 날카로웠다.
“야, 이 악마의 설사똥 같은 새끼야. 여기에 수병들을 모아 둔 명분이 질환자 구호였는데 그따위 보고는 해서 뭘 해! 페킹에서는 원래 거기는 환자 수용소 아니었냐고 반문할걸?”
“어, 어쨌든 약이라도 보급해 와야…….”
“약? 약이라고 했냐? 지금 로드 암허스트는 제물포인지 똥밭인지에다가 삽을 쑤셔 박고 싶어 안달이 나 있어. 그런 데 쓸 예산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갑자기 비전투 손실을 내면 나중에, 윽, 으윽! 젠장, 자꾸 똥 얘기하니까 또! 너 잠깐 이따 와서 보자!”
이래서 사람이 거짓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호프 부함장은 이제야말로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참으로 본받을 만한 그리스도교적 윤리였다.
화장실에 갔다 온 호프 부함장은 신라-영국 동맹의 꿈에 부풀어 있는 칙사를 불러 말했다.
“나는 여기에서 내 마음대로 함대를 출격시킬 권한이 없소. 정 절박하거든 천진에 가보시오.”
같이 따라온 신라 칙사는 중국어 통역을 듣고서야 안색이 새파래졌다.
여기에서 왜 갑자기 말이 바뀌었느냐고 따지는 짓은 소용이 없다. 지혜로운 칙사는 대신 제발 천진 갈 배편을 마련해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호프 부함장은 그것을 거절했다.
혹시 천진에 전염병이 퍼지면 자신이 책임 추궁을 받을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
지금 병사들이 픽픽 쓰러지면 공화국 외에는 가까이에 구원해 줄 곳이 없다. 흑산도가 조선 본토에서 아무리 먼 섬이라 해도 중국이나 일본, 대만보다는 훨씬 가깝다.
이 상황에서 고려를 습격하는 것은 자해 행위밖에 안 된다.
헨리 호프도 시준과 마찬가지로 암허스트가 신라의 제안을 받으면 신나서 고려 공격을 명령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용맹한 군인 호프이지만 바지 뒤쪽이 찝찝하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이 상태로는 좀 곤란하다.
그러나 헨리 호프는 그런 공의롭지 못한 사유를 대지 않았다.
“공화국은 동아시아에서 영국과 가장 먼저 수교한 신뢰하는 동맹이오. 공화국을 적대하는 자는 바로 영국을 적대하는 것! 당신들이 모르나 본데 영국은 원래부터 야만스러운 침략 전쟁을 단호하게 부정하며, 그것이 동맹을 상대로 하는 파렴치한 배신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소.
복장이나 경로가 심히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사절이라고 하니 이 자리에서 간첩으로 처형하지는 않겠소. 내가 명예로운 신사인 것에나 감사하시지. 당장 떠나는 게 몸에 좋을 거요!”
정말이지 지금 영국군 변소만큼이나 파렴치한 연설이었지만 신라의 칙사는 그 흉흉한 양귀자의 기세에 움츠러들었다.
어쨌든 헨리 호프의 말이 하나는 맞았다. 실제로 당장 떠나는 게 좋기는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어날 기운도 없어 간이침대를 그대로 화장실처럼 쓰고 있는 영국군의 대열에 합류할 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영국인이 아무리 해적도배라 하여도, 북유럽의 어떤 야만국도 아닌데 먼 길 온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먹여 보내지 않을 정도로 매정하지는 않았다.
헨리 호프는 본인 주장대로 명예로운 신사였던 것이다.
흑산도에서 밥이나 얻어먹고 다음 날 출발한 신라와 쓰시마의 사절들은 갑자기 배 위에서 무지막지한 복통을 경험했다.
“그, 그 밥! 그 밥에 영길리 놈들이 독을 탄 게 틀림없소!”
“어, 어쩐지, 으윽! 끔찍하게도, 맛이 없더라니!”
“이 천하의 사악한 양추 같으니라고! 헉, 헉!”
안 그래도 물이 귀한 배 위에서 탈수 증세가 일어나자 그건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쓰시마 번주가 나름대로 차출해 보낸 노련한 뱃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죽었다.
간신히 살아남아 도착한 사절단이 전한 소식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쓰시마 번주 소 요시타카는 크게 놀라고 실망했다.
‘이 기회에 이기리스와 끈을 좀 만들어 두려 했더니만, 도대체 처음 보는 사신단에 무슨 원한이 있다고 독을 쓴다는 말인가?’
사쓰마 녀석들이 이기리스 사람을 일컬어 최악의 패륜무도한 해적이라고 떠드는 말은 요시타카 역시 들었다.
요시타카로서는 그 원숭이인지 인간인지 분간도 안 가는 사쓰마 촌놈들의 허풍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사실에 가까웠던 모양이었다.
쓰시마 번으로서도 이제 더 뭘 해 보기가 부담스러웠다. 막부의 눈을 피해 지금까지 진행한 것만 해도 상당한 도박이다.
결국 소 요시타카는 약속대로 칙서 배달한 대가만을 신라에게 뜯어내고 침묵했다.
딱히 공화국이나 시준이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어째 영국과 통교하려는 다른 아시아의 세력들은 일이 잘 안 되고 있었다.
시준과 공화국을 제외한 아시아 사람들이 정상인이라는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
결국 김회연은 영길리국이 참전을 거부하고 사신에게 독을 먹였다는 괴악하기까지 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게다가 그런 환장할 보고를 받은 곳이 혁명군에게 슬금슬금 둘러싸이기 시작한 대구성 한가운데이니 아무리 냉철함을 자랑하던 김회연이라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는 길길이 날뛰다가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명령을 내렸다.
“여기 대구성에서 적을 격퇴하지 못하거든 통영, 아니 청해진으로 간다. 모든 수군을 거기에 모아라! 옛 대명의 유신(遺臣)이 한 일을 우리는 왜 하지 못하겠느냐?”
그 명령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경주에도 과학군주 영조가 개축한 튼튼한 읍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본래 도호부이자 경상도 방어 중심지였던 대구읍성에 비할 수는 없다. 경주를 도읍으로 정한 지 1년도 안 되었으니 아직 개축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대구성의 낙성은 경주 함락과 같은 의미다. 성의 방비를 논외로 치더라도 연락망과 치중이 집중된 대구가 떨어지면 어차피 경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렇게 혁명군에게 본토를 빼앗기면, 청해진에 모아 놓은 수군을 이끌고 뒤가 없는 대마도 침공을 감행하여 거기에 분조를 세우겠다는 소리다.
실로 혁명정부조차 떠올리지 못할 만큼 혁명적으로 돌아버린 발상이었다.
조선의 침공을 걱정하던 대마도는 약간 이상한 방식으로 자기실현적 예언을 한 셈이었다.
조각배 올라타고 변발을 휘날리며 가경제에게 따님을 주십사고 청하려던 강철군주 이공의 사례까지 합쳐 보면, 누가 감히 조선 사람들이 해양 진출에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신하들은 군주만큼 진취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결사적으로 황제를 뜯어말렸다.
“지금은 전조(前朝, 조선) 세종 때가 아닙니다. 대마도 하나는 요행으로 차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일본국의 예순여섯 개 나라는 한가지로 왜황(倭皇)과 장군의 명을 듣습니다. 곧 둘러싸여 곤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장구지계로도 적당하지 않습니다. 대마도의 왜인 한 줌을 가지고 무얼 도모해 보겠습니까? 정씨(鄭氏, 정성공)가 섬에서 절개를 뽐냈으나 결국 3대도 가지 못하고 망했습니다.”
“대장군 이춘영이 늦어도 내일이면 대구에 당도합니다.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길이 있는 법이니, 벌써 대체를 포기하시면 아니 됩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허나 김회연은 이렇게 일갈할 뿐이었다.
“그럼 누가 나가서 죽기로 싸워 저 고려의 도적들을 격퇴해 보겠느냐?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천심을 어지럽히지 말렷다!”
그저 광기라고 말한다면 김회연에게는 좀 서운한 일이다.
김회연으로서는 합리적인 대안도 내놓지 못하면서 그저 반대만을 연발하는 신하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이건 마치 왜적을 막을 방법도 없는 주제에 최속군주의 순간이동을 방해하던 당시의 어리석은 신하들과 같지 않은가.
그러나 다음 순간 황제는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쭉 끼치는 것을 느꼈다.
선조 대의 신하들은 예의상 임금을 말렸을 뿐, 군주가 결단을 내리기만 하면 충실히 본받아 부스터를 장착할 준비 만반이었다.
그것은 민간인인 관리와 궁인을 이끈 채, 기병도 곤란할 속도로 의주대로를 주파한 조선 분조(分朝)의 일심동체적 스피드가 증명해 준다.
임금이 지혜로우면 신하들도 현명한 법. 이미 탄금대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조정의 뜻은 일치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렇게 처음부터 뒤도 안 돌아보고 튀어 버리면 후일의 정부 사업에 애로사항이 생기기 때문에 그런 단막극을 벌인 것이다.
1592년 조선에 방송 시설이 없어서 ‘신민 여러분, 한양은 안전합니다!’라는 포고까지는 못한 게 한이었다.
그런데 지금 김회연의 신하들은 진심이었다.
그들은 배 타고 외국 땅을 점거한다는 대모험을 하면서까지 신라의 두 번째 최후와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
김회연조차도 자기 신하들이 그렇게 충성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조선을 배신한 자가 신라는 배신하지 못하겠는가.
김회연은 문득 자기도 아들을 내세워 베옷 입은 채 금강산으로 들어가면 공화국 정부가 모른 척해줄지 궁금했다.
약 2천 년 전 세워진 신라국은 천 년을 갔다. 학(鶴)의 수명이라 전해지는 세월과 비슷했다.
올해 봄에 세워진 두 번째 신라국은 0.8년 정도를 갔다. 대충 벼의 수명과 비슷했다.
시준이 이 생각을 했다면 뒤틀린 유머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딱 열 배 가격 차이네.’
벼이삭 두 줄기 값이 된 충무공이 대노하리라는 예상이야 어쨌든, 이제 두 개 모두 역사 속 국가가 될 신라의 수명이 바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며칠 뒤 대장군 이춘영의 모가지를 매단 붉은 깃발이 천자총통으로 발사되어 대구성 안에 떨어지자, 김회연은 주섬주섬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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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콜레라는 원래 인도의 풍토병이었습니다. 작중 시점의 원래 역사에는 중동과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상태였고, 그 후 동아시아와 유럽을 휩쓸고 거의 마지막에 영국에 상륙하지요. 작중에서도 바뀐 역사 때문에 조선에 일찍 들어왔습니다만 그간 전쟁에 집중되었던 이야기의 흐름상 이제야 서술되게 되었습니다.
2. 콜레라의 원인이 물에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추적하여 밝혀내려면 무려 1850년대에나 가야 합니다. 그리고 통조림의 발명은 1810년, 통조림 따개의 발명은 1858년입니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좀 바보 같긴 하지만 이게 당시는 '장기 보존용' 이었지 '먹고 버리는 간편식' 개념이 아니라는 이유도 한 몫 합니다. 무언가 한 가지 일을 위한 전용 도구라는 개념도 희박했고요. 무엇보다 통조림이 그렇게까지 초반부터 선풍적 인기를 끈 것도 아니어서..
3. 경구 수액에서 포도당을 쌀가루로 대체하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도 시도된 방법입니다. 포도당은 흡수율을 높이는 거라, 흡수율을 약간 희생하는 대신 칼로리를 보충시킨다는 개념이라 하는데, 아직 완전히 검증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4. 김회연이 금강산 어쩌고 한 것은 마의태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옛날 관용구로 학은 천년, 거북이는 만년을 산다고 하지요.
5. 화둔은 도교에서 말하는 72둔의 하나입니다. 둔갑하다 할 때 그 둔이고.. 도망가다, 피하다라는 뜻도 있지요. 만화에서는 파이어 마법 비슷한 것으로 나옵니다만, 도교는 당연히 전투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는 불을 다룬다기보단 화의 기운을 가진 별과 관련하여 둔법을 펼칠 때 불이 (일종의 부수적 결과물로써) 나타난다는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6. 김회연의 신하들이 말한 일본 66개 나라라는 말은 번의 개수가 아니라 더 전통적인 쿠니[國]의 개수입니다. 세는 방법에 따라서는 68개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