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60. 낙동강 전투(1)
낙동강은 전 조선에서도 손꼽힐 만큼 긴 강이다.
따라서 고려군과 신라군 모두 강을 따라 모든 면에 병력을 배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연히 전장은 돌입과 돌파구 확장이 용이한 몇몇 곳으로 압축되며, 그런 지형은 두 나라의 군 수뇌부 모두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계룡산에서 동남으로 상주까지 나온 시준이 바라는 상황, 그러니까 혁명군이 신라군의 공백을 노리고 단숨에 강을 건너 찔러 들어가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양군은 대구와 그 인근의 여러 낙동강 유역에서 부딪치게 되었다. 그쪽이 신라국의 중요 지역이기도 하거니와 강변으로 평지가 넓어 진격하기 좋기 때문이다.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 현대의 구미 인근)는 그중에서도 양국 공히 격전지로 예상한 곳 중 하나였다.
좁은 곳은 폭이 혁명척(미터법)으로 100미터도 안 되는 이 부근의 낙동강은 거듭된 가뭄으로 더욱 말라 있었다.
그리고 그 강물조차 이 처절한 정면돌파전의 기세에 몸을 떨며 움츠리는 것 같았다.
이념적으로 천 년을 사이에 둔 신구(新舊)의 격돌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상극의 충돌이었다.
불에 얼음을 던져 넣으면 수증기가 격렬하게 솟구치듯 사방에서 병장기가 부딪치고 총포탄이 날았다. 고함과 욕설, 비명과 흐느낌이 뒤엉켰다.
옷을 적시고 강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화살과 탄환에 맞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면으로 쓰러졌다. 물 튀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인세의 악다구니를 내켜 하지 않는 강물은 그런 사람들을 차갑게 대했다. 부상자들은 순식간에 체온을 빼앗기고 곧 명을 다했다.
그 선두에서 시석을 무릅쓰며 칼을 휘두르는 자는 십인지맹의 제 일번도(一番刀)를 자처하는 이제초였다.
이제초는 십인지맹 결성 기념으로 새로 맞춘 장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전투라기보다는 무슨 제의에 적합할 동작이지만, 동인도 회사가 동양 맞춤형으로 세심한 장식을 넣어 팔아먹은 영국군 1796년형 중기병도(Pattern 1796 heavy cavalry sword)는 오히려 그런 데에 잘 어울렸다.
“진인은 인도한다! 혁명은 승리한다! 동지들, 용기백배하라!”
이제초는 발포 명령을 마치 주문처럼 외쳤다. 너무 많아져서 아예 1개 영대로 편성해 버린 ‘혁명군 계룡산 영대’는 이제초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정‧시‧준! 결‧사옹위!”
타타탕!
“정‧시‧준! 결‧사옹위!”
타탕! 땅!
하긴 주문을 하나 외울 때마다 즉사기가 수백 개씩 터져나가니, 어떤 고위 마법사라도 겸손해질 만큼 강력한 주문이다. 현재 이 땅에서 이보다 더한 화력 밀집도를 보일 수 있는 군대는, 역시 명문 마법학교가 있다고 전해지는 영국 정도일 것이다.
강폭이 매우 좁은 지점이라 소화기 사격만으로도 충분히 닿았다. 신라군은 녹각과 방책 뒤에서 고개를 내밀지 못한 채 총성이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초가 그렇게 신라군 본진을 붙들어놓는 사이, 다른 혁명군 부대는 약간 상류 쪽에서 도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돌격을 감행했다.
신라군 역시 이 정도의 강폭으로는 지형 장애물의 의미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대장 이하 장수들은 백여 명 정도의 소부대를 여러 개 갈라 보내 강 건너에도 진을 치도록 했다.
물론 전통에 충실한 신라군 대부분은 고대의 병법을 익히 숙지하였으므로 그 부당한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배수진은 모든 병법에서 엄히 금하는 바가 아닌가.
하지만 그들 역시 군관들의 목이 몇 개 날아가고 나자 깨달았다. 병법에는 정석뿐만 아니라 응변도 중요하다. 음란한 고려군을 통렬히 응징할 화랑들이 나서서 머뭇대는 병사들을 인솔했다.
게임에서는 흔히 무시되지만, 강은 ‘흐르는 물’이다. 그래서 도하를 하려면 상륙 예상지점보다 약간 상류에서 하는 게 편하다.
그 외에도 대량의 배를 끌어대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면 고려군이 선박에 탑승할 곳은 대충 예상이 된다.
신라군은 바로 그런 곳에서 긴장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나름대로는 뾰족하게 깎아 놓은 통나무를 세우고 참호를 파며 소포(小砲)까지 있어 어지간하면 뚫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혁명의 전위대장 홍총각에게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주체신기전 2호를 재어라!”
“예, 영대장 동지!”
혁명의 완성은 진보의 궁극점이 아니다. 불꽃이란 타고 난 결과가 아니라 빛과 열을 내뿜는 그 과정 자체를 뜻하듯, 혁명은 진보하고 있는 바로 그 상태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주체신기전 또한 언제까지나 콩그리브 로켓 복제 생산품에 부적 붙이는 수준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이 주체신기전 2호는 말 그대로 기존 물건의 혁명적 개량형이다.
물론 혁명 정신과 과학 기술이 비례한다면 파리 코뮌은 양성자 빔으로 정부군을 격퇴했을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가혹하다.
고려에서도 마찬가지다. 공화국의 무기 기술은 여전히 주먹구구식 복제품에 의지했다. 16킬로그램포의 설치에 활약했던, ‘이름 한번 고약한’ 조지 같은 사람이 그나마 도와주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시준의 야망과 달리 명중률을 향상시킨다거나 사거리를 늘린다거나 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그냥 원래의 콩그리브 로켓이 너무 가늘어 보인다고 생각한 공화국 사람들이, 맞으면 많이 아플 것 같은 물건을 이것저것 더 붙여서 크고 아름답게 만들었을 뿐이다.
꼭 불타는 것만은 아니다. 혁명군은 한양군 함락 후 비몽포(飛礞砲)나 찬혈비사신무(鑽穴飛砂神霧) 에 관한 지식을 획득했다.
그래서 몇 개에는 각종 극악한 독초와 석회도 장전되었다. 조선은 약재의 대국이니까.
탄두 무게가 균형조차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격증하고, 따라서 사거리는 격감하며 명중률은 정 진인에게 기도나 해야 하는 수준이 되었지만 그거야 가까운 데서 쏘면 그만이다.
사거리가 줄었다고 해도 조총보다야 훨씬 길다. 어차피 현재 혁명군이 수행하는 보병 전투에서 그보다 장거리를 고려할 일도 많지 않다.
홍총각은 기세 좋게 외쳤다.
“동지들이여, 불을 붙여라! 인민의 주체적 무력이 저 반동 놈들을 여지없이 강타하리라!”
신라군에서도 소포를 급히 쏘아대었지만, 그건 혁명군 몇 명을 쓰러뜨렸을 뿐 2영대를 붕괴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주체신기전은 발사되었다.
불꽃남자 문종이 보았다면 자손을 멸망시킨 것 정도는 용서해 줄 수도 있을 법한 광경이었다.
불안하게 꼬리를 끌며 날아간 신기전은 그대로 병사들의 대열 안에서 폭발했다.
참호에 들어가 있는 자가 많아서 사상자는 크게 많지 않았지만 포대와 조총 방진이 무너져 전투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미친 듯한 연기와 독무(毒霧)는 덤이다.
“으아아악!”
비명은 신라군과 혁명군 모두에서 터져 나왔다.
신기전이 무사히 저쪽으로 다 날아간 건 아니고, 한두 개는 발사대에서 그대로 터져 버려서 그렇다.
바로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혁명군 포병은 대부분 정 진인의 이름이 적힌 주체부적으로 몸을 두르고 있었지만, 부적이란 게 다 그렇듯 ‘정성이 부족하면’ 영 효과가 없다.
주체부적의 진실성을 의심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 정 진인의 영압 가득한 부적이 거짓일 리가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은 정성이 부족해서다. 부적을 둘렀는데도 신기전이 폭발한 녀석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디선가 반혁명적인 짓을 했다는 얘기다.
정 진인의 천리안은 그런 예비 반동에게서 총애를 거두어가게 마련이다. 모두가, 심지어 사고를 당한 당사자들마저도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종교란 그런 것이다.
저 서양인들이 말하듯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논리적 근거가 있어서 신뢰한다면 그건 이미 신앙이 아니라는 소리다.
내가 믿고 싶으니까 믿는 것이 신앙이다. 마치 혁명과 비슷하다. 많이 달라 보이지만 그 둘은 의외로 잘 어울렸다. 비논리적인 광기라는 면에서.
그리고 그 첨단은 지금 전위대장 홍총각이 잘 보여주고 있었다.
혁명군의 포격에 흐트러진 신라군 교두보에 다시 일제 사격을 퍼부은 혁명군은 그대로 달려들어 갔다.
귓가에 총탄이 스치고, 옆에서 동지들이 쓰러지는데도 불구하고 홍총각은 오히려 어깨를 펴고 검을 치켜들었다.
“혁명!”
홍총각은 기성을 지르며 검을 내리쳤다.
“만세!”
이제초의 검처럼 동인도 회사에서 주문한 물건이지만, 이제초의 기병도와는 크게 달랐다.
덩치 큰 양귀자에게도 수월찮은 스코틀랜드 클레이모어가 강맹하고 희끄무레한 궤적을 그리며 반동의 책동모략을 갈라 부쉈다.
1796년형 기병도 역시 한 칼질에 뼈를 자를 수 있을 만큼 묵직한 검이다. 그러나 클레이모어는 그것보다도 한 수 위였다.
홍총각의 바로 앞에 있던 신라군 하나가 투구부터 단전까지 단숨에 쪼개지며 엎어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사쓰마에서 영국 해적에게 돌격하다 장렬히 전사하고 있는 지겐류[示現流] 검사들이 봤다면 격찬을 보내었을 것이다.
물론 신라군은 대부분 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홍총각의 칼이 양손검이라도 조총이 재장전되는 시간보다야 빠르게 모가지를 딸 수 있다.
게다가 아무래도 소문의 화랑 겁탈자 같은 험악한 거한이 웬 서까래 같은 검을 들고 와서 일도양단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데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양계 최강의 남자인 홍총각은 이제 먼 남부에서도 그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양손검을 회초리처럼 휘두르는 홍총각의 칼춤에 누구도 다가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신라군 부대 특유의 오색 복식과 화랑의 모자를 벗어 던진 대신라국의 병사들은 다시 조선군으로 되돌아가 흩어졌다. 다른 혁명군도 합세하여 총검을 내지르자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
그러나 대신라국에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일찍이 『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조선 인재의 반이 영남에서, 그리고 영남 인재의 반이 이 선산 고을에서 난다고 평했다. 조선 시대에 동네 선후배 지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해 주는 일화다.
따라서 여기에도 인재는 있었다. 옛 조선국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였던 신라국 하장군(下將軍) 이회식(李晦植)이 이곳의 총지휘관이었다.
굳이 따지면 정약용과 동향이라 할 수 있어서 딱히 영남 사람도 선산 사람도 아니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면 대인이 될 수 없다.
이회식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것은 오로지 의분 그 자체였다.
“때를 잘 탔을 뿐인 도적놈들이, 언제까지 너희 뜻대로만 일이 풀릴 줄 아느냐!”
이회식은 왕족은 아니지만 전주 이씨였고, 신라국의 천명에 깊이 공감한 이춘영과 달리 아직 조선 군관으로서의 정체성도 간직하고 있었다(그래서 이춘영은 대장군이고 이회식은 하장군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회식은 신라를 지킨다기보다는 고려군을 멸할 각오로 이곳에 왔다. 강 건너에서 괴멸하는 신라군 전진기지를 쏘아보던 이회식은 매섭게 고개를 돌렸다.
“총통은 도달하였느냐!”
“호령만 하시면 방포하겠소이다, 장군!”
마치 이회식처럼 용맹한 직속 병사들의 대답이 들려오자 이회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공화국 혁명해군이 신라 수군과 정면으로 맞붙기 부담스러운 것처럼, 청해진의 오재광도 마찬가지였다.
시준은 ‘반동은 반드시 제물포나 삼화부로 우회 상륙을 노릴 것이다’라며 서해 경계를 지시했지만, 언제나 주석 동지를 경애하는 혁명해군조차 주석이 농담하는 줄 알고 앞에서만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리고 김회연이나 오재광도 그런 정신 나간 작전을 계획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전라도의 혁명해군을 격파하려 시도하는 것만도 상당한 도박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도중의 흑산도에는 영국 해군이라는 자연재해가 있다. 차라리 그 수군으로 대마도를 널름 쳐서 배후지를 확보해 두는 편이 낫다(남포 상륙보다야 현실적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수군은 지금 당장은 방어 외에 할 일이 없으며, 그래서 많은 총통이 낙동강으로 전용되었다.
조선군 총통의 장점은 함포를 육상에서 써도 그럭저럭 밥값은 한다는 점이다. 검소한 조선 사람들은 관직도 겸직을 좋아하고 무기도 만능을 좋아했다.
대형화되어가는 서양 해군의 위협에 맞서, 김회연은 조선에서 잊혀 가던 천자총통을 상당히 많이 제조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회식의 호령 하에 불을 뿜었다.
“방포하라!”
천자총통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소포, 신기전, 화차까지 강 건너편에 닿을 것 같은 모든 화기가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탄환을 토해냈다.
대부분은 낙동강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싶은 사격이었으나 몇 발은 기어코 혁명군 가운데에 떨어졌다.
“크어억!”
총선거 때 태천군에서 노비 상돌이에게 패쪽을 나누어주었던, 포수 길명이의 친구 미동이가 탄환에 맞고 푹 엎드러졌다.
홍총각은 자기 바로 옆에서 동지들이 대포에 맞는 것을 보고 크게 노했다.
“저 건방진 놈들이! 어서 주체신기전을 저쪽으로 돌려라!”
“2호는 저기까지 날아가 명중시키기 어렵소이다, 대장 동지!”
“이제초 동지는 무얼 하는가!”
아무리 이제초의 마법이라도 목책과 녹각 뒤에 숨어 있는 신라군 포대를 직접 타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혁명군에서 발사하는 3킬로그램포의 포환도 신라군의 방어진지를 부숴대고 있었지만, 작렬탄이 아닌 철환만으로는 포대를 침묵시킬 수 없었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더 많은 대포로써 짓뭉개야 했다.
이제초도 분투하고 있음을 알아본 홍총각은 곧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곳은 누구나 지원군이 오리라 짐작할 수 있는 후방이 아니었다.
그건 낙동강의 상류, 즉 북쪽이었다.
신나서 포를 쏘던 이회식은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이 경우엔 경험상 무언가 깜박한 게 있었다. 노련한 장수인 그는 재빨리 자기 실수가 무엇인가를 검토했다.
몇 가지 가설을 헤아려 보던 이회식은 무언가 그럴듯한 의문을 떠올렸다.
‘저놈들의 배는 어디 있지?’
작은 쪽배 몇 개를 제외하면 고려군에게는 배가 없다. 적어도 지금 보기로는 그렇다. 이회식의 포대가 화력을 퍼붓고 있는 고려군이 승선 교두보를 점령하려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부자연스럽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회식은 조선 사람다운 결론을 도출했다.
조선은 수운의 나라다. 강이 있다면 운송은 자연을 이용해서 하는 게 보통이다. 마땅한 강이 없다면? 되도록 운송을 안 한다.
그린피스가 극찬할 환경친화적 국가 조선은 심지어 알프스에까지 도로를 깔아서 공해와 파괴를 즐기는 로마인과는 다르다.
저놈들 역시 배를 짊어지고 오기보다는 다른 방도를 택할 터. 낙동강의 최상류는 이미 조령이 돌파당한 순간 고려에게 넘어간 거나 다름없다.
이회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북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항상 나쁜 예감은 현실이 된다.
물살을 타고 갑자기 출현한 것처럼 빠르게 내려오는 선단은 그 규모와 크기 모두 그저 상륙용 나룻배 같은 것이 아니었다.
특히 선두에 선 기함은 마치 여기가 바다인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크기로 보건대 아마 저기에는 강 건너의 신라군 진지를 초토화할 화포도 많이 실려 있을 것이다.
조선 평저선은 흘수선이 낮아 강상에서도 상당히 큰 배를 건조 가능하다.
이론은 그러할지라도 조선에서 최대 수십 미터짜리 강상용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집단은 하나뿐이다.
그 배의 선두에 선 자는 바로 전직 한양 식자재상 강씨. 개성 유수 윤서동을 사로잡은 남자이며, 이제는 경강상인을 휘하에 넣고 공화국 해병대 제2영대장의 야망을 불사르는 사내였다.
강씨는 격렬한 포화 한가운데에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동지들, 늦어서 미안하오! 우리가 왔소! 이제 반동의 피로 이 낙동강이 온통 붉어질 것이오!”
붉은 깃발을 본 건너편 강안 혁명군의 함성은 그 소리만으로도 신라군을 튕겨내 버릴 것 같았다.
“저놈들이 어디서!”
이회식은 경악했다. 그는 급히 포대를 돌리려 했으나 대포라는 게 마우스만 클릭한다고 방향이 즉각 바뀌고 즉시 장전되는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 화약도 많이 남지 않았다. 무자비하리만큼 빠르게 다가온 혁명군 함대는, 신라군 앞에서 멈출 새도 없이 곧바로 마구잡이 포격을 개시했다.
고정 사격을 위해 닻을 던지는 것과 점화끈을 당기는 것 중 뭐가 먼저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당연히 맞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포격 앞에서 태연히 서 있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곧 신라군의 포화는 눈에 띄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화랑 한 명의 목을 클레이모어로 쳐 날린 홍총각은 낙동강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동지들, 앞으로!”
강씨가 보내는 나룻배를 기다릴 수도 없다는 듯, 2영대원 거의 전부가 강에 그대로 뛰어들었다. 거대한 노랫소리가 낙동강에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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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1796년형 중기병도는 작중 시점(나폴레옹 전쟁기)까지 널리 쓰이던 군도로서 원래는 오스트리아 군도의 복제판입니다. 투박하고 묵직한 타입으로, 워털루 전투에서의 증언에 따르면 사람의 턱을 한칼에 베어 날리고 다음 사람의 목을 벨 수 있을 만큼 파괴력이 높았습니다.
2. 작중 참호가 몇 번 나왔는데, 대규모 참호전은 기관총의 발명과 함께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참호로 투사무기나 기병을 방어한다는 개념은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장군은 신라에 실제 있었다고 전해지는 직책 중 하나입니다.
3. 비몽포와 찬혈비사신무는 사천당가의 초식 이름이 아니라 조선에 실존했던 군용 병기입니다. 본격적 독병기라고는 못하고... 독을 바른 암기를 대포로 발사하는 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단 몸에 해로운 것 같은 한약재는 전부 때려넣어 만듭니다. 몇몇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유용하게 활용되어 승리를 거두었지만, 작중 이전 편에서도 나왔듯 그 수준의 독병기가 전면전에 기여하기는 약간 어렵긴 하죠.
4.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은 히브리서의 구절입니다.
5. 지겐류는 현대에도 유명한 검술인데, 전국시대 말기쯤 창안되어 이어온 고류 검술입니다. 일격필살을 중시하며 막부 말 일본 동란 당시, 지겐류 검사들은 사람을 '정수리부터 배꼽까지' 한 칼에 쪼개 놓았다고 하지요.
6. 경강상인은 이전에 언급되었던 것처럼 자체 함선 제조기술을 가졌습니다. 큰 것으로는 저판이 조선 대전선에 뒤지지 않는 것도 많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