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59. 건곤일척(3)
전생의 시준은 그냥 일반인이었다.
초등학생 때 노래로 배웠던 조선 왕조의 계보 순서만 알고 있을 뿐(이 정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모르는 편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왕 한 적도 없는 효명세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병인양요나 강화도 조약 같은 ‘조선 자체의’ 굵직한 사건은 (시험 때문에) 알지만, ‘조선 왕가’에 대해서는 세세히 숙지하고 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굳이 말한다면 백 년 후쯤에 고종이라는 희대의 외교 천재가 즉위한다는 사실밖에 모른다.
‘과거의 조선 왕조’는 시준보다 사대부 출신들이 훨씬 잘 안다. 그리고 ‘미래의 조선 왕조’에 대해서도 시준은 주위 조선 사람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시준은 지금 대충 이씨네 첫째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평안도 부녀회장 김부용이 맡아 기르고 있는 그 아이가 미래의 헌종인 줄 알았다.
정치적 중요성으로 따지면 그리 심각한 오해는 아니다. 어쨌든 푸셰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는 그런 오해로도 충분했다.
‘여전히 옛 왕가와 끈을 만들어 두려는 것인가?’
조제프 푸셰는 자신이 몸담았던 모든 세력을 배신했다.
교회와 왕을 배신했고, 로베스피에르를 배신했으며, 통령정부와 나폴레옹 황제에다가 루이 18세까지 그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은 자는 없다. 그가 죽을 때까지 봉사한 대상은 자기 자신뿐이다.
그리고 배신 중독자 푸셰의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래 역사라면 유럽에 있던 푸셰는 이제 곧 나폴레옹의 몰락과 루이 18세의 복위에 협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가 푸셰를 위한 내각 장관 자리를 준비하지 않자 도로 루이의 퇴위를 획책한다(아마 장관 자리 줬어도 배신했을 것이다).
이런 화려한 이력을 달성하고 천수를 누렸다는 사실은 바로 푸셰라는 인간의 비범함을 유감없이 말해 준다.
그리고 비범한 자는 항상 비범한 준비를 한다. 이는 사전부터 왕당파와 공화파, 나폴레옹파 모두에게 푸셰를 거부할 수 없는 협상 재료나 연줄이 있었다는 뜻이다.
시준이 푸셰의 그런 미래 행적은 모르지만, 과거 행적은 안다. 푸셰 자신이 떠벌였으니까.
따라서 푸셰의 행동은 구 기득권층과 영합하여 습관적 배신의 굴을 파놓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시준이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푸셰는 재빨리 말했다.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는데, 내가 구 왕족 세력과 야합해 복벽이라도 일으킬 생각이었으면 자네에게 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내가 정 공화국을 배신하고 싶었다면 영국인과 손을 잡지, 무엇하러 이제 산산이 분쇄된 조선 왕가를 택하겠나?”
영국 어쩌고는 허세에 가깝다. 푸셰가 나폴레옹에게 숙청된 이유가 당시 총리 스펜서 퍼시발과의 내통인 만큼 그도 영국에 인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긴 사실상 로드 암허스트의 영지고 암허스트는 그런 것을 돌아보지 않는다.
시준은 그런 생각을 말하지는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당신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정확히는 공화국에 이득이 있지. 나를 통해서 복벽파를 감시하게. 내 교우 관계쯤은 정찰총국에서 수집하고 있겠지?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네. 대신 이것으로 나는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니며, 공화국과 운명을 함께하는 혁명 열사라는 점을 확고히 해 두고 싶네.”
“불리해졌다고 영국에 넘기지 말라는 얘기죠?”
푸셰는 시준의 직설적인 물음에 빙긋 웃었다.
“역시 옛날부터 말이 빨리 통해서 좋아. 거기에다 나중에 프랑스로 돌아갈 기회가 있으면 그때 나의 봉사를 잊지 말아 주면 고맙고. 사실 나도 이런 솔직한 대화는 조금 생경하지만,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것보다는 훨씬 상쾌하군. 어떤가, 이 거래가?”
시준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나폴레옹은 푸셰의 영향력 때문에 그를 유배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시준이라면 다르다.
의주 사람은 유럽인 같은 하남자와 다르다. 만약 푸셰가 시준을 배반하기로 결심한다면, 시준은 한 번 망설여 보지도 않고 푸셰를 죽일 것이다.
시준이 비정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푸셰의 위험한 능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푸셰는 여기서 외국의 손님이다. 유럽처럼 오랜 세월 쌓인 사교 관계는 없다. 푸셰가 ‘의문의 실종’을 당한다 해도 굳이 파헤쳐 보거나 이를 기화로 주석을 의심하려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준 자신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공화국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는 주석 동지가 정한다. 푸셰는 자기가 사라지면 시준이 선전선동부를 쉽게 장악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푸셰로서는 완전히 영국 편에 투신하지 않는 이상 시준을 배반하기 힘들다.
그러나 영국이 과연 이 악명 높은 배반자를 받아 줄지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문명인으로서 어떻게 해적과 야합할 수 있겠는가. 역사에 그렇게까지 더러운 이름을 남기는 것은 아무리 푸셰라도 꺼려졌다.
그러므로 시준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철저하게 혁명정부의 신뢰를 얻는다는, 참으로 푸셰답지 않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을 이해한 시준은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세례라도 하시겠습니까? 외방전교회 신부 중 하나를 데려올까요?”
시준으로서는 가톨릭 신부를 통해 유럽과의 끈을 하나 더 만들어 볼까 싶어 한 말이었으나, 푸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당분간 공화국에서 기독교가 자리 잡기는 어렵겠군. 됐어. 그냥 이 땅의 신앙인으로서 키우도록 하지.”
시준은 그게 이 땅 사람들이 많이 신봉하는 무속 종교나 불교를 이야기하는 줄 알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푸셰는 이번에도 위기를 잘 넘겼다고 좋아했다.
‘시준은 나를 떠봤을 뿐이야. 만약 내가 그 아이를 ‘정시준 신앙’에 귀속시키지 않고 기독교도로 만들겠다고 하면, 내가 주도적으로 ‘양자’를 이용하려 한다고 판단할 터. 그리고 제거하겠지.’
푸셰가 말한 ‘당분간’ 이란 ‘시준이 죽을 때까지’였다.
조제프 푸셰는 언론과 선동으로 국민을 조종하던 나폴레옹의 왼팔이었으며, 당연히 시준이 의도적으로 이제초를 뒤에서 움직여 ‘정시준교(敎)’를 창설했다고 짐작했다.
종묘에서 처음 이제초를 부추겨 이 사달로까지 발전시킨 게 시준이니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다. 업보라는 것은 이렇게 어김없이 돌아오게 마련이다.
어느새 자기를 사이비 종교의 교조로 못박고 있는 푸셰의 오해를 모른 채, 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하나 말해 두겠는데 김조순의 딸은 포기하시죠. 내가 장담하건대 그녀는 사형을 면하기 위해 유럽인과 결혼하느니 몇 번이라도 죽음을 택할 겁니다. 프랑스 수병들 중 왜 양민과 결혼한 자들이 없는지 아실 텐데요.”
“으음, 하기야 조선 사람들은 선민의식이 상당히 강하기는 하더군. 알겠네.”
어차피 양자 될 아이는 평양에 있으므로 논의는 그쯤에서 끝났다. 시준은 이 엉뚱한 입양에 협조하는 대가로 뭘 받으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제야 현안을 떠올렸다.
“선전선동부가 연락할 수 있는 경상도 내 남조선혁명당은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어. 김회연의 숙청에서 살아남은 백여 명 정도만이 최옥의 인도로 지리산에 들어가 있을 뿐이네.”
대답하던 푸셰는 아차 싶었던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그들이 있기에 김회연은 지리산 쪽에 항상 군사를 나눠 둘 수밖에 없지. 아마 그, 이춘영이던가? 그자가 이끄는 병력이 황제의 군대 거의 전부일 걸세.”
시준은 속 보인다고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경상도 빨치산부대가 귀찮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군이 정면 격돌하는 상황에서 백여 명 정도는(그나마 태반은 부대원의 가족이거나 환자일 것이다) 별로 의미가 없다.
결국 김회연은 후방 걱정을 그다지 하지 않고 병사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시준이 말했다.
“빨치산부대에는 지금보다 더 성과를 바라기 어렵겠습니다.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경상도, 특히 경주의 간첩을 움직여 주십시오.”
“군이 전부 조령으로 몰려나갔을 때 안에서 호응하여 내란을 일으키라는 것인가? 확실히 어려운 임무로군.”
“아니, 정보 수집이나, 가능하다면 요인 암살 정도만으로 충분합니다. 그건 당신 특기겠지요?”
“그거야 그렇다만, 그게 무슨 결정적 역할이 되겠는가? 김회연이 멀리 조령까지 출병한 틈에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보네만.”
“그들은 멀리 나가지 않습니다.”
“뭐?”
푸셰는 의아한 표정으로 시준을 바라보았다.
“아마 조령이 승부를 결정지을 전장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김회연도 수천의 군을 가지고 있어요. 그 숫자로 산속에서 제대로 싸우기 어려운 것은 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북동 울진이나 남서 정암진 쪽으로 우회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하고요.”
시준은 남공철과 차형기가 보고한 전략 분석을 마치 자기의 분석처럼 말했다. 프랑스어로 대화하니 오히려 조선에 없는 서구 용어를 쓰기가 편하다는 느낌이었다.
“그에 모두 대응하려면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전선을 뒤로 물려야 합니다. 김회연이 경주를 수도로 삼은 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아직 대구에 정부 기능이 집중되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경상도 방어사령부(경상 감영)가 있던 대구를 사수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리라는 것이 혁명군 수뇌부의 예측입니다.
그렇게 하면 신라군 기동의 폭도 넓어지고, 경주에서 반란이나 소요가 일어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지요. 그들도 군의 정예함에 자신이 있는 만큼, 아마 전장은…….”
거기서 일단 말을 멈춘 시준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일, 혹은 미래의 일이 시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낙동강입니다.”
***
공화국 국무당의 예상대로, 고려 쪽에서 봐서 조령의 마지막 관문인 제1관문 조흘관 자체는 겨울이 매섭게 찾아오기도 전에 함락되었다.
조흘관은 남쪽에서 쳐들어오는 왜적 기준으로 제1관문이다. 그 목적상 조흘관은 남부를 향해 방어 기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되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적군을 포위하듯이 지어져 있는 성벽의 모양이라던가, 해자의 위치와 문루의 배치도 역시 그러하다.
반대로 말하면 북쪽에서 쳐내려오는 혁명군을 상대로는 그 힘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다.
대장군 이춘영은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혁명군의 대포가 문루 지붕을 쪼개놓았을 때 후퇴를 결정했다. 이춘영은 마치 모두 예상한 사태라는 듯 여유 있게 말했다.
“계교대로 낙동강에서 적을 막는다. 전군은 관을 버리고 물러나라!”
물론 진짜 전군이 물러날 수는 없다. 혁명군이 얼씨구나 하고 쫓아올 테니 말이다.
이제초가 주둔한 제2관문 조곡관과 신라군이 주둔한 제1관문 조흘관 사이는 문경새재라고는 하지만 평지에 가깝고, 조선 축성술의 특성상 성벽의 높이도 낮다. 시간을 벌어줄 부대가 필요했다.
다행히 신라에는 예부터 목숨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용사들이 있다. 이춘영은 좌우를 돌아보며 호령했다.
“김관창(金官昌)은 어디 있는가!”
한 젊은이가 머뭇대며 나왔다. 원래 이름은 김쇠똥[金牛糞]이지만 상놈답지 않게 잘생겼다는 이유로 최근에 개명된 참이라 아직 새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원래는 여기에서 쇠똥이, 아니, 관창이 스스로 우리 화랑의 피로 물시계를 채우며 시간을 벌 테니 어서 종묘사직을 수호할 대계를 펼쳐 주십사고 청원해야 한다.
이춘영이 아까운 젊은이를 사지로 내모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리고 만류하는 시늉을 하다가, 관창이 끝내 일어서서 대장을 뿌리치고 단기필마로 달려 나가면 시나리오 완성이다. 아마 황산벌에서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창은 그러할지 몰라도 쇠똥이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방금 뽑아 와서 모자에 꽂은 닭 꼬리 깃털도 마음에 안 들었다. 냄새가 나니까.
그렇기에 이춘영은 모양 빠지게도 결사 항전을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름답지 못한 광경에 이춘영은 역시 상놈들은 어쩔 수 없다며 속으로 투덜대었다.
“그대에게 화약이 든 궤짝 스무 개와 용맹한 화랑부대를 맡기겠다. 여기에서 죽기로 싸워 적을 막되, 여의치 않거든 제갈 무후의 지뢰법(地雷法)을 본받아 저 고려의 도적들에게 교훈을 주도록 하라!”
대충 막다가 안 되면 자폭하라는 소리다. 쇠똥이는 놀라서 되물었다.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어허! 대신라국의 장졸에게 귀감이 되어야 할 화랑으로서 네 말본새가 어찌 그리 상놈 같다는 말이냐! 군령 앞에 망설이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릴 뿐이로다!”
화랑의 마땅한 도리보다는 뒤의 말이 쇠똥이를 움직였다. 삽시간에 30여 명의 ‘화랑부대’ 지휘관이 된 관창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성에 남았다.
이춘영은 혹시 김관창이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할까 봐 단단히 못을 박았다.
“이제껏 잡혀간 화랑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겠지. 저 비적 두목 정시준은 탐욕스럽고 잔인할 뿐만 아니라 음란하기까지 하여, 그 색정(色情)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너도 정시준의 ‘그 책’을 보았지 않느냐.”
나는 그런 음란소설 안 봤다는 쇠똥이의 표정은 너무 거짓말 같아서 곧 그 자신도 포기했다. 이춘영은 계속해서 을러댔다.
“저놈들에게 투항하면 평양성에 끌려가, 정시준과 그 산적 부하들의 노리개가 되어 죽지도 못한다. 그 치욕을 겪느니 어찌 힘껏 싸워 아름다운 이름이나마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공화국의 첩자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시준이 이 중상모략을 들었다면, 다른 사람은 다 살려 줘도 이춘영만은 산 채로 ‘인민염초밭’에 처박으라고 명령할지도 모른다.
모든 화랑부대가 결사의 각오를 다지는 사이 이춘영은 서둘러 군을 수습해 떠났다. 낙동강에는 배를 타고 건널 만한 곳이 많아 미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 놓아야 했다.
이춘영은 나름대로 깃발을 잔뜩 벌여 세워 군세가 아직 있는 척하고 퇴각했지만,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기에는 두 관의 거리가 좀 가까웠다.
산척포수 출신 정찰병과 망원경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혁명군의 눈은 이미 신라군이 조흘관을 버렸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대장군이 떠난 지 이틀도 되지 않아, 관창과 화랑부대는 홍총각과 2영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홍총각은 대담하게도 성 바로 아래까지 나아가서 위쪽을 손가락질했다.
“이 땅 모든 인민의 총의를 대리하는 주석 동지의 깃발 앞에 무릎을 꿇어라. 고이 항복하면 모두 목숨은 건질 수 있으리라!”
“목숨만 건진다는 얘기겠지.”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관창은 침을 삼켰다.
저 선두에 선 장수는 생김새가 우락부락한 것이, 마치 놀부가 박 타자 나온 장익덕 같았다. 그 후에 놀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이춘영의 경고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죽음이냐, 치욕이냐. 둘 중 하나였다.
관창이라면 주저 없이 죽음을 택한다. 그런데 쇠똥이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어차피 쇠똥이의 팔자는 치욕으로 점철되어 있다.
화랑으로 뽑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상주의 소작농이었고, 매번 지주나 마름에게 굽실대며 비위 맞추는 게 일상이었다.
그를 닮아 꽤나 미인이었던 여동생은 지주에게 소작 대신 끌려간 뒤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지주는 쇠똥이가 항의하러 가자, 그 집 마나님을 탐내어 범하려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흠씬 두들겨 팬 뒤 쫓아냈다. 땅이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후로 유리걸식하다가 우연히 벼슬아치에 눈에 띄어 ‘화랑으로 발탁’된 참이다. 이런 처지에 욕을 당한다 해도 더 비참해질 것은 없다.
신라인이 아닌 조선인을 사백 년간 지배한 관념이 관창과 화랑부대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올랐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조선 사람은 대체로 실리적이다. 오늘은 현찰이고 내일은 외상. 사후 세계에는 관심이 없다.
사대부의 경우 사후의 ‘평가’에는 관심이 있지만, 이들은 사대부도 아니었다. 좀 남다른 취향을 가진 몇몇은 이 기회에 도적 두목 정시준의 총애를 얻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하는 모양이었다.
전통 있는 화랑의 법도대로 충만한 이들의 전우애는 벌써 이심전심의 경지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조흘관 화랑부대의 의사는 통일되었다.
결국 관창은 위엄 있게 깃발을 쳐들고 동료들과 함께 혁명군의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만 떼어 놓고 보면 실로 황산벌의 관창과 같은 기백이었다.
하지만 깃발의 색깔이 흰색이었기에 아무도 총을 쏘지는 않았다.
혁명군은 이 이상하게도 바지 쪽만 갑옷을 아주 단단히 둘러메고 나온 수비대의 항복에 크게 기꺼워했다(공짜 화약에도 기뻐했다). 호령 소리 한 번으로 관을 떨어뜨린 전위대장의 위엄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
북쪽은 이제 본격적 겨울에 접어들었다. 그렇다 보니 무쇠 뚜껑에서 치솟는 김도 제법 거창해 보였다.
지유는 가마솥 뚜껑을 잡고 옆으로 밀었다. 예전이라면 조선의 여인답게 쉽게 했던 동작이지만 지금은 꽤나 숨이 찼다.
저쪽에서 쟁반을 가져오던 부녀회장 김부용이 놀라서 지유를 말렸다.
“그런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어찌 하인처럼 회장에게 시킬 수야 있겠소. 여기는 우리 집인걸요.”
지유는 그러면서 기어코 뚜껑을 다시 밀었다. 잠시 숨을 고른 지유의 눈에 안에서 곱게 쪄진 떡 여러 개가 보였다. 김부용은 지유가 뜨거운 데 손 데일까 봐 얼른 쟁반에 그것을 옮겨 담았다.
김부용은 기랑을 제외하면 지유와 가장 친밀한 여자 친구였다.
기적에서는 빠진 지 오래되었지만, 부녀회장이라는 중책에 걸맞은 남자를 아직 찾지 못해 시집가지 않았다. 마침 이공의 아들이 오갈 데 없어지자 그녀가 맡아 기른 것도 사내들의 구애를 뿌리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쟁반을 들고 따뜻한 안으로 들어갔다.
“쌀가루도 아니고 감자를 빻은 가루로도 이렇게 맛있는 떡이 나오는군요.”
“남편이 알려준 거랍니다.”
“정말이지 주석 동지는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듯하오.”
강철군주가 감자의 전파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감자 보관의 어려움과 툭하면 먹고 탈 나는 위험성이었다.
세곡으로 걷을 생각까지는 안 했지만 비슷한 고민이 시준에게도 있었다. 그래서 시준은 가루 형태의 건조식품으로 감자를 유통하기로 했다.
이러면 싹 났거나 맛이 약간 간 감자도 대충 활용이 가능하다. 미국 기업이 반세기 뒤까지도 쓰레기와 개념적으로 차이가 없는 돼지고기를 군에 대량 납품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정도야 양반, 아니 혁명적이다.
하지만 시준이 복지 혜택으로 얻은 녹말 추출 지식을 조선말로 번역하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조선 사람들은 한참 전부터 녹두, 율무, 메밀, 옥수수 등 가지각색 곡물에서 전분을 추출해 국수고 떡이고 잘 해 먹었다.
거의 항상 굶주리던 조선 사람들이 시도해 보지 않은 식량 획득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안 가르쳐 줘도 다들 집집마다 능숙하게 감자를 빻고 체에 걸러 하얀 가루를 얻어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 시준이 지유에게 알려준 것은 요리법 정도다.
그러나 지금 김부용의 말처럼 공화국 사람들은 모두 시준이 그 탁월한 예술영도로 인민의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 감자가루 떡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월간 대혁명의 감자 요리 코너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모두 정확하지는 않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이다.
지유는 남은 감자가루를 손으로 비벼 보았다. 하얗고 포슬포슬한 가루가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떨어졌다.
그것을 보던 김부용은 문득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탄성을 질렀다.
“밖을 좀 보십시오. 동지. 이 가루처럼 하얀 눈이 내리는군요.”
이 시대 최고의 여류시인다운 표현이었다. 지유도 덩달아 감탄하며 말했다.
“첫눈이로군요. 남쪽에 내려간 병사들은 춥지 않을까요?”
김부용은 여인끼리의 예민한 감각으로 지유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금방 알아챘다.
“백전백승의 천출명장(天出名將) 주석 동지께서는 반드시 반동을 깨뜨리고 건강하게 개선하실 것입니다. 물론 주석 동지를 따르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믿지는 않아도 듣고 싶은 말이 있다.
김부용이 지유에게 베푼 친절은 바로 시준이 이 땅 사람들에게 해 준 것이기도 했다.
살림이 이 전쟁을 감수할 만큼 나아졌느냐 하면 아직은 자신 있게 말 못 한다. 그러나 모든 공화국 사람은 혁명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꼭 선전선동이 교활한 기만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행복이란 기분 문제니까.
지유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김부용이 떡 식는다며 재촉할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공화국의 영혼을 끌어모은 7개 영대, 1만이 넘는 대군은 낙동강을 에워싸는 형태로 포진했다. 이 남부에까지 혹독한 겨울이 닥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했다.
자신의 정치적 본거지인 대구를 사수하기 위해 경주에서 여기까지 친정한 김회연은 가마에 앉아서 그런 혁명군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대신라국 초대 황제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꼭 황제의 거창한 일산(日傘)만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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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뒤에 나오긴 하겠지만, 조선 시대의 관념상 푸셰가 효명세자를 양자로 들인다고 해서 그가 왕족이나 조선의 귀족으로 바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설사 전 왕비 김씨와 결혼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금 조선의 전통 질서가 많이 파괴되고 있으니만큼, 푸셰가 의도하는 것처럼 거짓으로 복벽파와의 연줄을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2. 정암진은 왜란 때 일본군의 전라도 진격 당시 건너려다가 패배한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지리산을 남쪽에서 돌아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갈 수 있었죠.
3. 감자를 가루로 보관하는 방법에는 크게 1. 감자를 조리해서 가루내서 감자가루로 만들거나 2. 생감자를 분쇄해 체에 걸러서 전분을 만들거나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작중에서 나온 것은 2번.
그리고 현재 시중에서 주로 재배되는 감자(한국에서 수미감자라고 부르는 미국 슈페리어 품종)보다는 토종 감자들에 더 전분이 많은 편입니다. 물론 토종이라고 해도 현대 토종감자는 개량을 많이 거쳤습니다.
미국 감자는 요리할 때 예쁘게 나오고(전분이 적어서 수분을 덜 흡수하므로 모양이 덜 망가짐) 관리가 편하며 무엇보다 생산성이 매우 높아서 지배적 종이 되었죠. 슈페리어 품종은 1950년대에 개발되었습니다.
4. 금강산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단경왕후가 중종을 생각하며 치마를 씌웠다는 치마바위에 북한에서 새겨놓은 '천출명장 김정일장군'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남북교류 중 정부 직원이 그 천출을 다른 천출로 해석하여(북한에서는 한자어는 많이 쓰는데 한자 병기를 거의 안합니다) 농담을 던졌다가 큰일날 뻔한 적이 있었죠. 그쪽에서 쓰는 뜻은 '하늘이 낸 (명장)'이라는 뜻입니다. 남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어휘죠.
5. 흥부전 판소리에서 상당히 길게 묘사되는 것이 박 탈 때 장면입니다. 클라이맥스 장면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습니다만.
옛날 얘기인 만큼 여기에서는 당시 재물의 일종으로 취급되던 ‘첩’도 나오는데, 흥부가 박을 탈 때는 가락 맞춰 ‘비요 비요 양귀비’ 가 나옵니다(흥부 아내는 싫어했을 듯 합니다). 그런데 놀부가 박을 탈 때는 ‘비요 비요 장비’가 나오죠. 그 뒤에 놀부는 장비에게 (중략) 당합니다. 조선 후기의 민중에게 삼국지연의가 잘 알려졌다는 한 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