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59. 건곤일척(2)
주석 동지가 마침 계룡산에 와 있고, 계룡산이 조령에서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에 이곳은 자연스럽게 작전 지휘본부가 되었다.
당연하지만 아직 단전성은 지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땅한 건물이 없기에, 오래전부터 내려온 큰 절인 동학사(東鶴寺)를 비워 그곳에서 모였다.
물론 여기 승려들은 곤란하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정약전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과거 이곳에 그 조카를 죽인 패륜 반동 이유(세조)가 친히 와서 제를 지냈다 하던데 혹시…….”
숙종 시절, 세조가 이 동학사에 거둥하여 사육신의 제를 지냈다고 우기며 그러니 노산군(단종)을 복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노론 신하들의 말이다.
사실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정약전은 사실에 관심이 없다.
언제나 혁명으로 대동단결인 정치국 위원들은 모두 총괄서결부장의 뜻을 알아챘다. 그들은 주지를 둘러싸고 한마디씩 했다.
“허허, 이제 보니 이씨 귀신의 영압이 느껴지는구먼! 속히 화포를 끌어와야겠어.”
“스님 동지. 이거 사상이 의심스럽소 그래!”
승려들은 그냥 이 기회에 다른 곳에서 잠시 수행하는 게 낫다고 여기게 되었다. 말 잘못 하면 왕실에 부역한 반동분자로 몰려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그래도 패고 내쫓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딘가. 주지는 자기도 십인지맹의 일원이니 제발 절 때려 부수거나 불태우지 말라고 강조하고는 짐 싸서 떠났다.
***
그런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조촐하게나마 유막의 대강은 갖춰졌다.
호남 쪽에 더 적이 없어지자 계룡산으로 돌아와 새로운 원정 준비에 착수한 혁명무력부 부부장 남공철이 대략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적은 아마 수군을 장기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대신라국 청해진(통영)에 주둔한 수군은 현재의 한반도에서 가능한 최고의 질을 갖추었다.
숫자는 혁명해군이 더 많겠지만 그들은 이 난리 통에서도 안정적인 조선 관군 체계를 그대로 유지했고 이순신의 경험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제 막 전라도 수군을 접수한 혁명해군으로서는 상대 우위에 있는 전력이 고작 영국 무장상선 2척뿐. 방어라면 모를까 쳐들어가서 어떻게 하기는 어렵다. 주로 육군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로는 전라도의 혁명해군도 만만찮으니 함부로 못 올 테고, 강원도에 상륙한다면…… 미리 알 도리가 없으니 그때 대관령 산줄기에서 쫓아내는 수밖에 없겠군.”
지금 고려인민공화국은 해상 지배에서 북한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동서로 바다가 나눠진 탓에 동해 쪽으로는 전력 투사가 별로 안 되는 것이다. 조슈로 보내는 밀무역선 몇 척은 제주를 통해 멀리멀리 돌아가도 되지만 군함이 그러면 곤란하다.
왜인들이 먼 고대 신라에 상륙하여 금성(경주)을 약탈한 가락이 있으니, 조슈를 움직여 신라 수군을 쳐 보자는 안도 나왔으나 기각되었다.
이제 막 거래 튼 조슈가 그런 (군사적으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위험천만한 일을 해줄 리도 만무하고, 무엇보다 임진왜란 트라우마를 다시 불러일으켰다가는 혁명군이 인심을 얻기 어렵다.
시준은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다만 우리 쪽이 뛰어난 면은 병졸의 숫자가 많다는 점이구려.”
“그리고 혁명 정신에 충만해 있다는 점이지요.”
시준은 혁명무력부장 차형기의 이 말이 그저 추임새인 줄 알고 넘어가려 했다. 정치국 위원들이 숨 쉬듯이 발하는 사상 경쟁은 이미 익숙하다.
그러나 차형기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무슨 신라국이니 칭제건원이니 하며 반동의 놀음을 해서 감추고는 있으나, 아직 경상도 사람들은 김회연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고 있소이다. 정찰총국과 빨치산부대의 보고에 의하면 목숨을 걸고 달아나서 북쪽 태백산이나 서쪽 지리산으로 숨어드는 백성도 많다 합니다.”
신라국의 재림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잊고 있었을 뿐, 거기도 사실 몇 달 되지 않은 신규 정권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 하나되지 않은 것쯤이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경주 출신의 최옥이 지리산 영남 빨치산부대의 대장이다.
그리고 차형기는 그 원인을 정확하게 제시했다.
“소위 조정 백관이라는 자들의 면면을 보면 거개가 옛 조선국 조정의 수령이지요. 이들은 영남에 다른 연고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으니 자기들끼리 그렇게 뭉쳐 인민을 압제하고 있는 꼴이오이다. 아래위가 화합하지 못하는 군은 무서울 것이 없소이다.”
조선의 엄격한 상피제 때문에, 영남에도 영남 출신의 고위 관리는 거의 없다. 시준도 차형기의 분석을 듣고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신중해야 하오. 아까 의논한 대로 우리는 저들보다 숫자가 많소. 그리고 모두 사상무장도 튼실하지. 허나 저들은 경상도 관군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반동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반혁명의 악질분자들 역시 많이 받아들였소. 틀린 점이 있으면 누구든 말해주시오.”
남공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주석 동지.”
“그렇다면 이제 어찌하는 게 좋겠소? 무작정 조령으로 혁명군이 밀고 들어가면 희생이 클 터인데.”
군대의 규모는 혁명군이 크지만 그들은 공세적 입장이다. 금강 전투야 김좌근이 조선군 숫자를 잘못 따른 맥주처럼 만들어 놔서 그렇고 본래는 공격하는 쪽이 ‘훨씬’ 더 많아야 하는 게 군사 상식이다.
게다가 혁명군의 사기와 장비 수준은 높아도, 전문성에서 조선 관군보다 높은가 하면 그것은 장담하기 어렵다. 주변 나라 여기저기서 조롱받아서 그렇지 조선군은 엄연히 4백 년 전통의 국가 정규군이었다.
붙잡아 두기가 어려울 뿐, 한번 도망치지 않은 조선군은 위험하다. 반물질이 그렇듯이 말이다.
조선군이 도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 안전제일 평화주의자 조선군마저 그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이쪽이 불리하다는 얘기다.
김회연은 신라가 아직 불안한 나라라는 것을 지금까지 잘 감춰 왔다. 이는 앞으로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그가 ‘대신라국’의 선전을 사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천년 왕국은 다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다. 옛 신라가 대충 이장 몇 명 모여서 만든 나라이듯이 말이다.
따라서 혁명군을 몇 년간 조련하고 다시 붙어본다는 계획은 검토하기 어렵다.
남공철도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상투적인 전술 몇 개를 꺼내놓으려 하자, 시준이 손을 들어 그것을 중지시켰다.
지금까지 시준은 큰 대전략 말고는 군사 작전에 거의 참견할 일이 없었다. 잘 모르니까.
아무리 전근대라 해도 수천 년간 쌓인 방대한 군사 사상과 지식은 군대와 딱 2년만 어울렸던 시준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준이 이세계 용사로서 그에 걸맞은 지식을 뽐낼 때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게 있는데, 저 서양의 패왕 나폴레옹은 지리산의 몇 배나 춥고 험한 백산(白山, 몽블랑(Mont Blanc), 알프스를 말한다)을 넘어 적이 전혀 알지 못하는 때에 기습하여 더할 나위 없는 승리를 거두었소.”
아무리 시준이 역사를 잘 몰라도 이건 어린이 위인전에도 나오는 얘기라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푸셰가 필사적으로 눈을 깜박거렸지만 시준은 보지 못했다.
“김회연이 그리 군세가 많지 않으니, 남은 군은 전부 조령이나 태백산, 혹은 정암진(鼎巖津, 현재의 경남 의령 부근) 쪽에 두었을 거요. 우리가 지리산을 넘어 경주로 진격한다면 그 사이 막을 군세가 없소. 또한 가는 길에 경상도 인민의 호응도 바라볼 수 있을 테지요. 동지들, 어떻소?”
아무리 시준의 자기 절제력이 뛰어나도, 주변 사람들이 몇 년간 그토록 찬양만 바친 대가는 컸다.
사람이 주위에 휩쓸리지 않기가 이토록 어렵다. 세계사의 악명 높은 독재자들도 사실 따져보면 원래는 수줍음 많고 겸손한 사람이 꽤 있었다.
시준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굳은 군인 출신들은 할 수 없는 기발한 발상’을 해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래도 시준은 어딘가의 콧수염쟁이(중유럽과 동유럽에 둘 다 있다) 같은 사람과는 달랐다. 인류는 역사를 거치며 진보한다.
그는 푸셰가 눈을 감아버린 것을 보고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선전선동부장 동지, 뭔가 잘못된 점이라도 있소?”
조제프 푸셰의 표정은 시준이 전생에서 보았던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미대 떨어진 충격이 노년에 한꺼번에 왔는지 맛이 가버린 히틀러가, 있지도 않은 부대를 써서 베를린으로 쳐들어오는 소련군을 막으면 된다고 하자 그 앞에서 한참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그딴 건 없다고 말하는 부하 장군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주석 동지.”
시준에게는 그 말이 어째 ‘마인 퓌러’처럼 들렸다.
시준은 침을 삼켰다. 푸셰는 조금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전투는……. 프랑스군이 졌습니다.”
시준은 급양과장 기랑을 부르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홍차에 아편이라도 타서 나눠 먹인 다음 모두 없던 일로 하는 안이 꽤 유혹적이었다.
***
우선 시준을 위해 변호하자면 마렝고 전투는 프랑스군이 이긴 게 맞다. 푸셰의 말은 엄밀히 말해 틀렸다(푸셰도 주석 동지의 체면을 위해 곧 그렇게 부연하기는 했다. 시준은 더 비참해졌다).
그러나 알프스를 돌파한다는, 병사들에 의해 수명이 3배쯤 늘어날 그 계획의 의미는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의 도착보다 앞서 제노바를 떨어뜨린 순간 반은 상실했다.
게다가 이탈리아로 진입하고 나서도 나폴레옹은 떡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구원군이 와서 간신히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쳤을 뿐이다.
결국 오스트리아군이 후퇴했으니 승패의 정의상 이긴 것이기는 한데, 그렇게 말한다면 나폴레옹 따위는 발밑에도 못 미칠 전격전의 명수 선조 이연은 상당히 억울할 것이다.
선조도 어쨌든 전쟁 끝에 가선 일본군을 후퇴시키지 않았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를 승리의 군주라고 하지 않는다. 속도의 군주라고 할 뿐이다. 푸셰도 그런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임팩트 있는 교훈을 주기 위해 다소의 과감한 편집도 서슴지 않은 위인전이 잘못했다. 시준은 현대 출판사들의 상업주의를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교훈이 아니라도 지리산 진격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그동안 공화국 빨치산부대가 왜 괴멸당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그만큼 지리산에 군대가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자연조건은 물론 알프스보다야 낫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넘었던 그랑 생 베르나르(Grand St-Bernard) 고개처럼 ‘여기만 뼈 빠지게 오르면 넘을 수 있음’ 이라 할 만한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으면 왜란 당시 일본군이 전라도 점령을 위해 한편은 경상도 남쪽으로 돌아 들어오고 한편은 북쪽에서 웅치와 이치로 들어오는 분산 진격을 하다가 박살 났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랑 생 베르나르에는 로마인들이 고대에 도로를 깔아 놨지만 지리산에는 신라인도 백제인도 도로를 깔지 않았다.
푸셰를 포함한 정치국 위원들이 최대한 조심스러운 어조로 그러한 지식을 설명할 때마다 시준은 문득문득 ‘저 그냥 퇴임할게요’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
그러나 다 아프면서 성숙하는 법. 밤마다 이불을 걷어찰 정도의 개망신이 있어야 중2병도 치유되는 것이다.
시준은 이 기회에 조금 더 성장했다. 지도자는 역시 전문가의 말을 겸허하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시준의 말이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혁명군 사령부가 결론을 내리는 데에 시준의 실패는 한 참고가 된 것이다.
신라의 허를 찌르려는 작전은, (시준의 지리산 보나파르트 작전은 논외로 하더라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들이는 수고에 비해 얻는 게 적다.
예를 들어, 시준의 말에서 영감을 얻은 야심찬 경주 상륙 작전도 꽤 높은 비율의 찬성을 얻었다. 그러나 경상도 수군과 대마도 뱃사람들에게 전혀 들키지 않고 거기까지 돌아들어가는 것은 탁상공론이라는 이강회의 반대에 폐기되었다.
결국 조선을 칠 때처럼 빈틈을 찔러 날로 먹으려는 작전은 어려웠다. 김회연은 적어도 김희순과 김좌근보다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이제 정치국의 중의는 결정되었군요. 정면돌파전이올시다.”
이제 나서지 않기로 한 시준은 모든 의견을 종합한 혁명무력부장 차형기가 전면전을 선언할 때까지도 잠자코 있었다.
정치국 위원들이 제출된 안에 대해 표결할 때도 시준은 명패만 들어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창피해도 마무리 발언은 그가 해야 했다.
시준의 마음속이 어떻건 간에, 그의 발언은 정치국 회의록에 기록되어 월간 대혁명에 실린다.
시준은 정치국 서기로 여전히 봉사하고 있는 김희용을 쳐다보았다.
김희용은 뭔가 우물거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희외록인 것 같았다. 아까 조선의 등애가 되겠다는 시준의 발언을 통째로 찢어내어 먹어버린 상태였다.
이제 시준이 멋진 말 한 마디만 해 주면 이번 결정은 또 시준의 예술영도가 된다.
그는 허탈한 기분으로, 하지만 충실히 말을 맺었다.
“혁명무력부장 동지와 혁명군 수뇌의 중의에 따라 인민의 길은 정면돌파전이오. 반동의 사악한 책동을 잔꾀 없이, 지체 없이, 돌이킬 수 없이 짓부셔버리고 전 조선 인민 해방을 이룰 뿐이오이다.”
박수갈채가 솟구치듯 울려 퍼졌다.
그 달 월간 대혁명의 표지는 선전선동부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계룡산 꼭대기에 서서 인민을 영도하는 그 팔을 동남으로 뻗는 주석의 그림이었다.
***
회의가 끝난 후, 선전선동부장 푸셰가 몰래 찾아왔다.
“아까 들어보니 이탈리아에서의 전투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은데, 난관을 돌파하는 용맹하고 웅장한 영웅의 그림이 필요하다면 말하시게. 저 다비드만은 못해도 선전선동부에는 유럽의 화풍을 배운 좋은 화가들이 많으니 말이야.
지리산은 어렵겠지만 오늘 진로로 결정된 새고개(새재. 조령)에서라면 어떤가? 어차피 다 같은 산 풍경일 테니 설명만 지리산이라고 붙여 놓으면 될 거야.”
시준은 버럭 소리질렀다.
“아, 좀! 왜 이러십니까! 당신 대체 프랑스 언제 갑니까?”
시준이 오늘 자기를 우상화하려다가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그에 사과도 할 겸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왔던 푸셰는 놀랐다.
그는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얘기를 들어 보니 드레스덴의 중국관[Chinesischer Pavillon]에서 그 젊은 난봉꾼 메테르니히와 나폴레옹 황제가 크게 언쟁을 벌였다는군.”
조제프 푸셰는 시준이 유럽 정세에 대해 잘 알며 별도의 개인적 첩보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준은 드레스덴이 작센 왕국의 수도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또한 거기의 왕궁 중에 중국인이 보면 이게 왜 중국관이냐고 격분할 짝퉁 중국풍 궁전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따라서 메테르니히가 나폴레옹의 독일 사령부까지 찾아와 폭언을 퍼부을 만큼 나폴레옹 제국이 볼장 다 봤다는 푸셰의 암시도 전달되지 않았다.
다행히 푸셰는 그 암시가 요청하는 바를 직접 말했다. 푸셰 쪽 사정이 급하니 어쩔 수 없다.
“내 솔직히 말함세. 나 좀 도와주게. 아무래도 당분간은 영국 놈들의 세상이 될 것 같아.”
당분간이 아니겠지만, 시준은 일단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
“나폴레옹 황제도 믿는 바가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메테르니히는 나도 본 적이 있어. 나이는 어려도 치기와는 거리가 멀고 보수적이며 완고하지. 결코 대책 없는 용맹을 과시할 사람이 아니야.
그가 감히 황제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면, 그건 대프랑스 동맹군이 반드시 이긴다는 얘기야. 소문에 따르면, 프랑스군의 병력이야 수십만이지만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끌어모은 잡병이라더군. 정예군은 러시아와 독일에서 다 죽었으니 말일세.”
보수적이고 완고하다면서 왜 난봉꾼이라고 욕하는지 궁금했지만 시준은 묻지 않았다.
폐쇄적인 성적 관념은 주로 이 시대 이후 부르주아들이 귀족을 흉내내는 과정에서 정립된 게 많으며, 이때까지의 귀족은 그냥 마구마구 씨 뿌리고 다니는 게 전통이고 보수적이었다는 사실은 시준의 지금 대화에서 중점 사항이 아니었다.
“차라리 영국인과 관계를 개선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당신이라면 도로 옛 프랑스 왕가의 편에 서는 것도 어렵잖을 텐데요.”
푸셰는 자신을 사실상 배신 전문가라 칭하는 시준의 말에도 화내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를 멍청한 배신자라 부르는 것은 참을 수 없다. 푸셰는 말했다.
“그러려면 내가 최소한 2년 전부터는 유럽에 있었어야 해. 왕가의 후손과 접촉하고 미리 인맥을 다져놓아야 그 일도 가능한 거지, 맨몸으로 뭘 하겠는가. 내가 조선에 있을 때 나폴레옹이 패배한 순간 나는 더 갈 데가 없는 거야.”
푸셰로서는 드물게 진솔한 토로였다.
“저에게 바라는 것은? 당신의 신변 보호라면 걱정 마십시오. 영국인도 이미 유럽에서의 권력을 잃은 당신 하나 때문에 우리와 전면전쟁을 일으키려 하진 않을 겁니다. 약간 조심하는 성의만 보여 주면 됩니다.”
“그걸로는 부족해. 자네 말대로 내가 그저 한가한 늙은이로 살아갈 거라면 유럽에서도 충분해. 그러나 나는 항상 정력적인 사업가였고, 이 한 몸을 여기의 공화국 혁명사업에 바치기로 결정했네. 그러려면 나도 정식으로 공화국 시민이 되어야지.”
너무나 무례한 일이었기에, 시준은 ‘웃기고 있네’라고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푸셰는 계속 말했다.
“작년 내 아내 잔(Jeanne)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은 참이야. 자식 다섯 명은 친구들이 챙겨 주길 바라는 수밖에. 가능하다면 나중에 고려의 시민으로서 데려올 생각이네.”
그 말에서는 독거노인의 처량함마저 느껴졌다. 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저번의 그 양자 얘깁니까?”
“그래. 내 입양의 대부(代父)가 되어 주게. 조선에 그런 풍습은 없지만 어차피 우리는 혁명의 공화국이니 별 관계는 없을 걸세.”
“전 기독교도도 아니고, 그에 어울리지도 않는데요. 유럽도 그렇지만 조선에서도 그런 역할은 연만하고 주위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맡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자네보다 더 지위가 높은 사람이 어디 있지? 저 농담 같은 황제를 말하지는 않겠지. 자네라면 다 인정할 거야.”
시준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양자는 누굽니까? 당신이 고른 양자니만큼 보통 사람은 아니겠지요.”
시준이 ‘아이’ 대신 ‘사람’이라 한 이유는 푸셰의 연령으로 볼 때 그의 양자가 시준보다도 나이가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셰가 고른 사람은 성인이 아니었다. 다만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맞았다.
푸셰는 누가 들을세라 시준의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였다.
“전 국왕, 아니, 3대 전 국왕이군. 왕이 하도 많이 바뀌어서, 원. 어쨌든 옛 조선의 군주 이공의 독자일세. 아직 어린아이라서 감옥이 아니라 평양 성내에서 키우고 있는 걸로 아는데.”
“예?”
“아, 본인이 원한다면 전 왕비도 아내로 맞을 수 있네. 아무래도 그녀 역시 귀족적 방법의…… 보호책을 원하고 있겠지. 따지고 보면 아버지 김조순과는 적대하는 입장 아니었나? 이대로 목이 떨어지기는 억울할 게야.”
“뭐요?”
시준은 잠깐 동안 앞으로 벌여야 할 거대한 규모의 대(對)신라 전면전쟁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시준은 한순간 참으로 조선 사람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무도한 오랑캐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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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