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59. 건곤일척(1)
호남 각지에서 반동이 동헌에 끌려나왔다. 마루에는 사또와 육방 관속 대신 인민위원장과 여러 위원들이 자리했다.
다만 아직도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본래 조선에는 그냥 눈치가 없을 뿐인 사람들을 절개가 꼿꼿하다며 포장해 주는 풍습이 있어서 그렇다.
반동의 최후 본거지였던 고창의 현감 서양보(徐良輔)가 대표적이었다.
대표적 김조순파인 서영보의 동렬 형제라서 김조순이 멀쩡하던 시절 역사보다 2, 3년 일찍 배치되었다. 당시는 요충에서 전라 감사 김희순을 보좌하라는 의미 정도였는데 어쩌다 보니 최후까지 저항한 반동 수괴의 꼬리표가 붙었다.
그 서양보의 사람됨을 볼작시면 그야말로 유학 예법의 정수 그 자체. 선비적 칼날의 예리함을 그대로 체화한 자였다.
다시 말해 하민 따위가 고귀한 자신에게 불손할 때 그냥 넘어가 주는 자가 아니었다.
아전이 무례한 말을 하자 나무 몽둥이를 들어 훈도하였는데,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그 아전의 아버지까지 잡아다가 부자를 한꺼번에 때려죽였다.
물론 그때는 혁명이 없었던 조선인만큼 ‘아랫것이 건방지면 죽일 수도 있지’ 정도가 중론이었다.
하민의 목숨이 왜 중요한지 몰랐던 강철군주 역시 별다른 반대 없이 그것을 따랐으며, 그래서 당시는 벌금과 유배로 끝난다. 나중에는 슬그머니 돌아와서 다시 칠곡 부사도 하고 잘 산다.
어쨌든 상하의 지엄함이 굳세게 지켜지던 조선 역사를 통틀어도 서양보처럼 추상같은 선비는 드물다. 역사가 바뀌어도 그 점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혼란스럽던 지금의 고창현에서도 서양보에게 맞아 죽은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민재판의 첫 번째 특등석으로 초대된 것이다.
하민들이야 자기에게 입만 잘못 놀려도 죽어 마땅하거늘, 아예 천지가 뒤집힌 듯한 지금의 광경은 그야말로 서양보의 기경팔맥을 뒤틀리게 했다.
서양보는 묶인 채 격노하여 외쳤다.
“면면이 한심스럽구나. 중놈에 광대패, 심지어 노비에다가 계집까지! 이런 시궁창 쥐 같은 무리들이 감히 대인(大人)을 감처(勘處, 죄에 대한 처벌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냐!”
그렇게 스스로의 행운 수치를 깎아 먹으니 당연히 안 그래도 뽑기 어려운 5성 카드가 더욱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 두근두근 가챠 인민재판 처음 해 보는 백성들이 과금이 두려워 머뭇거릴라치면, 인민위원회 간부들이 앞으로 척척 걸어 나왔다.
빨치산부대 활동 하면서 혁명에 익숙해진 간부들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자신에게 표를 다음에도 줄지 이해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역시 인상적인 것은 퍼포먼스다. 이번에 그 역할을 맡은 전라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김맹억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인민의 호통이 들리지 않소이다! 혁명 인민 동지들, 이 건방진 자를 어떻게 해야 하겠소? 그냥 풀어주어, 자손 대대로 이자의 버선코에 머리를 조아리며 짐승처럼 맞아 죽게 하여야 마땅하겠소?”
김맹억을 비롯한 인민위원회 간부들은 짐짓 몸을 기울인 채 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시준이 보았다면 마치 헐크 호건이 관중들에게 피니시 무브 환호를 종용하는 자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람잡이는 의외로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호응은 WWE가 탐낼 정도로 격렬했다.
꼭 서양보에게 직접 피해를 당한 자만이 아니었다. 관속에게 마지막 됫박까지 강탈당해 노모를 굶겨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자, 자식이 나졸에게 맞아 죽은 자, 아전에게 부인을 빼앗긴 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죽여라! 강에 던져 버려라!”
“목을 매달아라!”
“아니, 사지를 산 채로 찢어야 하오!”
과금 많이 해서 연챠를 돌릴수록 원하는 카드가 뽑힐 확률은 늘어난다. 여기에서도 고함을 더욱 크게, 더욱 반복해서 지를수록 자기가 원하는 형벌을 내리기 쉬웠다.
인민재판은 화끈한 단심 재판이다. 조선을 비롯한 여러 반동 국가에서 2심, 3심제를 채택하는 것은 살핌에 실수나 부정이 반드시 있기 때문인데, 인민의 순정한 뜻이라면 그러한 오염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결과는 ‘서양보에게 맞아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각자 몽둥이를 들고 죽을 때까지 패기’ 였다. 잘 나오지 않는 귀한 카드에 인민들은 열광했다.
인민의 의견을 수렴한 위원회의 판결, 서기의 기록, 형장 준비 및 집행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서양보는 붉고 검은 곤죽 비슷한 것이 되어 길바닥에 버려졌다.
***
인구 밀집지대인 호남에서 폭발하는 정치 단체들은 마치 총선거 당시의 평안도를 방불케 했다.
그들은 대부분 자경단을 겸하여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공화국은 그들에게 체계적으로 군수 보급을 제공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조선인, 아니 공화국 인민들은 자력갱생하여 염초나 총알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흐름에 기여한 사람 중 하나는 요즘 다들 살림이 궁핍해서 탁발이 잘 안 되는 승려 계층이었다.
무당들은 주체부적 그려서 팔기나 하지, 불교계는 현재 공화국에 어필할 만한 게 별로 없어서 그냥저냥 정감록파 흐름에 슬쩍 끼어 차별은 안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급하다. 굶어서 머리가 좀 맑아지자 승려들은 불현듯 고대 불교의 원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석가모니 붓다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해 그 앞에 절하는 것을 금했다. 깜박하고 있었는데 불도는 원래 그런 우상에 있지 않다.
하긴 깨달음은 다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므로 각성(覺醒)이라 한다. 번뇌를 떨쳐버린 대덕 고승들은 갑자기 저 속세의 금속 덩어리가 매우 하찮게 보였다.
그래서 승려들은 절의 종을 떼어다가 포신 만들 재료로 팔고 불상의 금박을 벗겨서 호구지책을 마련했다. 각지 인민위원회에서 다투어 곡식을 내어놓고 그것들을 거둬 갔다.
게다가 장사 안되면 업종 변경도 고려할 만한 선택지다. 어차피 이제 시대는 정 진인의 도라서 절 현판을 승리사(勝利寺) 등으로 바꾸는 데도 늘었다.
그러면 불상 대신 정 진인의 초상화를 걸어 두면 된다. 불상은 돈이 많이 들지만 초상화는 선전선동부에서 공짜로 나눠 준다.
다만 월간 대혁명 3년 구독 약정이 조건으로 걸려 있기는 한데 19세기 사람들이 다 파악하기에는 너무 고도의 상술이었다.
그러나 혁명이 이렇게 훈훈하지만은 않다. 조금 더 무시무시한 일도 벌어졌다.
워낙 흉년이 오래되어 이 부유한 호남에도 폐한 전답이 많은지라, 추수하는 볏단보다 베어 떨어뜨리는 반동의 모가지가 더 많다고 할 지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동을 어떻게 써먹을 수 없을까 궁리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정치국 회의에서 일전에 나온 아이디어처럼 각지에서 벌어지는 혁명적 건설전투에 쓰고 있기는 하다. 그들은 ‘인민다리’ 나 ‘인민도로’ 및 ‘인민제방’, 혹은 ‘인민광산’ 등에서 ‘교화(정약용의 표현이다)’되고 있었다.
허나 그건 당장 필요한 것 같은 총탄과 화약에는 직접 도움이 안 되었다. 산 반동은 거의 전부 정치국에서 통제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죽은 반동에 눈을 돌렸다.
반동 중에서도 특히 악질 반동의 시체는 장사도 치르지 못하고 토막이 났다. 사서에는 최후의 충신열사로 기록되기 바라고 마지막까지 저항한 자들이었다.
그런 놈들은 죽어서도 혼백이 똥밭에서 썩어야 마땅했다.
이때 조선에는 『신전자초방(新傳煮稍方)』 같은 책이 들어온 지 오래다. 분뇨와 흙으로 염초밭을 만드는 방법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거기에 푸셰의 월간 대혁명에서는 유럽에서 예전부터 내려온 방법도 소개했다. 물론 거기서 말한 것은 동물의 사체였는데, 지혜로운 조선 사람들은 사람과 동물의 구성 성분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벌써 알았다. 죽창으로 찔러 보니 다 똑같이 뒈지지 않던가.
정체불명의 염초밭이 호남 곳곳에 생기기 시작했다. 호남뿐만 아니라 이미 인민위원회가 좀 자리를 잡은 호서를 거쳐 북쪽으로도 이 ‘신묘한 반동 재활용법’은 점점 전파되었다.
아무리 동인도 회사가 인도에서 초석을 삽으로 퍼다 준다고 해도, 영국 놈들이 무슨 원가 따져 가며 양심적으로 가격을 책정할 리 만무하다. 그 금액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산 사람을 꽂은 것도 아니고 시체 꽂은 것 가지고 막 통합된 인민들의 사기를 꺾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정치국은 이 잔학 행위를 묵인했다.
다만 시준의 경우 처음에는 반대했다. 어쨌든 그는 이 어둠의 시대에서 유일한 양심의 빛, 21세기 이세계 용사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늘의 아래 있기를 폐하고 오직 사람을 근본으로 하여 혁명을 일으켰는데, 어찌 이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겠소? 가벼운 처벌이라도 해야 합니다.”
주석이 공화국 기준에서 이상한 소리 할 때마다 전담 마크하는 담당 정약용이 또 나섰다.
“서학(西學)의 교리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말세까지 천주에게 귀의하거나 심판받기를 기다린다 하였을 뿐, 시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예기(禮記)』에도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땅으로 꺼진다 하였는데, 용재(慵齋, 성현), 성호(星湖, 이익) 등 선학들의 논변에서도 하늘로 올라가 흩어지는 양기의 정령, 그러니까 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보면 동서의 현인들 모두가 땅에 남아 썩어갈 뿐인 시신 지키는 일을 어리석다 한 것이오이다.”
시준은 학문적 근거를 들이대는 정약용에 맞서 현실적 우려를 들고 왔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시체도 토막 날까 봐 불안해하면 어쩌시겠소? 불효라며 공화국 내의 선비들이 들고일어날 수도 있을 텐데.”
“반동이 아니고서야 그런 걱정을 왜 하겠소이까? 게다가 불효보다 더한 죄는 반동이라. 이미 반동인 이상 충효인의를 따질 계제조차 못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성과 배움이 있어야 사람이므로, 그것이 없는 시신의 경우 그저 고깃덩어리일 뿐이외다.”
말하던 중 둘 모두 위화감을 강하게 느꼈다.
정약용의 경우 종묘사직도 불태운 시준이 왜 이제 와서 효성과 인본의 도리를 말하는지 몰라서 그 숨은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고, 시준은 자기가 왜 21세기식 극단적 합리주의를 19세기 조선인의 입에서 – 그것도 정약용에게서 – 듣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그 많은 사제 염초밭을 다 적발할 여유는 없었다. 아직 신라는 건재하다.
그래서 시준도 타협했다. 되도록 사람 시체를 똥밭에 던져 넣어 전염병의 온상을 만들지는 말라는 수준에서 권고가 떨어졌다.
물론 그런 권고 따위 아무도 지킬 리가 없다.
시준은 한숨을 쉬었다. 영국인이 와서 볼까 두려웠다.
그들은 세상에 우리만큼 나쁜 놈도 있었다며 좋아서 손뼉을 칠지도 모르는데 매우 우려되는 일이었다. 영국과 전우애를 과시하다가는 전 인류의 공적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시준 혼자서 막기는 힘든 일이다. 그렇게 민병대는 규모를 속속 늘려갔다.
***
정치국은 만들지도 않은 ‘혁명군 청주영대’ ‘혁명군 나주영대’ 같은 게 멋대로 창설되고 있을 때쯤에는 아침저녁으로 꽤나 더위가 가셨다. 이 계룡산도 제법 시원할 정도였다.
그래서 시준도 기랑이 얼음 넣어서 가져온 커피를 단번에 들이켜지는 않았다.
그렇게 덥지 않기 때문이다. 시준은 그저 그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인가?’
그건 커피에 얼음 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어야 한다. 21세기의 많은 직장인처럼 전생에서 커피를 그저 포션으로만 소비했던 시준이니 모를 만도 하다.
시준이 커피를 그윽이 바라보고 있자 기랑은 잠시 긴장했다. 저 얼음의 정체를 시준이 알아챘나 싶어서였다.
그녀가 보기에 시준은 평소 좀 까탈스러웠다.
시준은 먹는 것의 사소한 더러움이나 작은 상처, 대단찮은 병 따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번에도 가을에 나온 얼음의 출처를 캐물으며 뭐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금강을 따라 호서와 호남을 오가던 빙도고(氷都賈)에게 약탈, 아니 회수한 물건이며, 그 빙도고는 이경춘의 관에 넣은 얼음을 납품한 사람이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위생 기준에서, 왕이 먹는 게 아닌 이상 식용과 보존용의 두 가지 용도를 구별할 리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는데 시준이라면 문제다. 기랑이 질책을 두려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시준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시준은 별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안심한 기랑은 용건을 말했다.
“좀 얘기할 게 있는데.”
시준은 그간 자신이 기랑에게 별로 신경을 못 썼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전쟁이 바쁘기도 했고, 기랑이 워낙 안 보이게 자기 일 잘 처리해 놓는 부류여서기도 했다.
시준은 자세를 바로 하고 기랑을 바라보았다.
“아, 그래. 마침 다른 사람들은 성터 둘러보고 오기로 했으니 괜찮아. 거기 앉아서 얘기해. 백발백중회 쪽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래.”
그냥 안부 인사차 편하게 물어봤던 시준은 깜짝 놀랐다. 백발백중회는 이제 서상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대중 무역에 종사하는 단체다.
“뭔데?”
기랑은 어디부터 말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포수들처럼 사람이 총 들고 모이고 있거든. 전라도만이 아니라 충청도에서도.”
“알아, 민병대 말이지?”
민병대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대강 맥락으로 짐작한 기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준은 그 민병대가 백발백중회의 경쟁자가 되었나 싶어 기랑의 말을 기다렸다.
“맞아. 그리고 이번에 그 길명이가 빨치산 하면서 그 사람들을 많이 백발백중회로 모아 왔나 봐.”
“그 너랑 친한 길명이가?”
“안 친해.”
시준은 기랑의 표정이 굳어지자 고개를 갸웃했다. 기랑은 계속 말했다.
“어쨌든 그래서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졌고, 평안도 포수보다 다른 동네 포수가 더 많을지도 몰라. 그런데 저번에 한성부……. 아니, 한양군에서 조선공장회라는 걸 누가 만들었잖아?”
시준은 기억을 더듬다가, 늙은 대장장이 정대운이 종묘 앞에서 활약했던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분명 이름이 그렇긴 했었다.
그 후 더듬더듬 이어진 기랑의 설명을 종합하자면, 그 별것 아닌 이름은 혁명의 심장 평양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암시를 준 모양이었다.
지금 비록 한양군이 되기는 했어도 한성 사람들의 자부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대운이 별 고민도 안 하고 한성의 장인들이 조선의 장인을 대표한다고 여길 정도로 말이다.
반면 실제로 그때 여전히 평안도가 조선이던 당시에도, 그 많은 단체 중 ‘조선’ 두 글자 붙여서 우리가 이 나라 전체의 대표이노라고 선언한 곳은 없었다.
시준은 어째 21세기에서 지방 친구들도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가정하고 약속 장소를 말하던 녀석들이 생각났다.
그간 사실상 평안도 포수 중심의 모임이었던 백발백중회는 이제 길명이의 활약으로 전국구가 되려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 걸맞은 이름과 조직 구성을 생각해야 했다. 총선거 때 표를 모으려면 각 지역 지부도 필요하다.
“잘되면 호남이나 영남에서 일본으로 가는 장사도 중국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음. 그래. 네 말이 맞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호랑이와 인삼은 평안도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시준은 기랑의 구상이 건설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나도 좀 생각해 봤는데, 우리도 조선이라는 이름을 더할까 했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조선이 아니잖아.”
“그렇지.”
기랑은 말 대신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시준은 그때만큼 나라 이름을 고려로 두드려 맞춘 것에 대해 감격을 느낀 적이 없었다.
기랑이 내민 백발백중회의 새 이름은 ‘고려총포사연결회(高麗銃砲社連結會)’였다.
진짜 한 발짝만 잘못 갔으면 친구라서 숙청도 못 하는 인간의 손에 의해 그대로 조총련이 탄생할 뻔했다. 고총련도 썩 어감이 좋지는 않지만 그것보다야 백번 낫다.
이것은 단순히 포수의 모임이 아니라 총기 제작과 유통에도 한 다리 끼겠다는 의미라든가, 이걸 위해서는 지금처럼 절의 종 뜯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남쪽에도 삼화부 공창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든가 하는 기랑의 장기적 사업 구상은 시준에게 별로 중요하게 접수되지도 않았다.
시준은 기랑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래, 잘했다! 우리 그 이름으로 잘 해보자!”
“으, 응? 뭐?”
기랑은 당황하여 손을 쏙 뺐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후회했다가 곧 이성을 찾았다.
그녀는 시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백발백중회의 확대 개편이라는 단순한 사안이고 별다른 문제도 없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이유 때문에 괜히 긴장했다 괜히 해소된 시준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예전부터 알았지만 네 재주가 매우 뛰어나다. 내가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는 뭐든지 해 줄게. 백발백중회, 아니, 고려총포사연결회와 사업하는 것이야 국무당 일이 아니라 서상의 사업이니 꽤 돈을 끌어올 수 있을 거야.”
기랑은 한참 동안 숨을 고르고 나서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도망치듯이 시준의 방을 빠져나왔다. 반면 시준은 남은 커피를 죽 마시고 상쾌하게 오늘의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그렇게 별 의미 없는 소동인 것은 아니었다.
고려총포사연결회는 실제로 호남과 호서의 통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 영향력이 미치는 방향은 총 든 사람, 다시 말해 무력 집단이다.
본격적인 군대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이는 적어도 고려가 신라를 공격할 때 호남 방어에 많은 병력을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조총련 생각이나 하던 시준도 나중에는 그 사실에 더 큰 만족을 느꼈다.
시준은 동남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제발 이번 일 좀 털자.”
단순한 나태라고는 할 수 없다. 혁명의 힘은 폭발적인 만큼 빠르게 사그라진다. 장기간 전쟁에만 매달려서는 인민이 금세 피로해지고, 피로한 인민은 혁명을 포기하게 된다. 바로 저 나폴레옹이 그렇게 황제가 되지 않았는가.
따라서 조선 인민 해방전쟁이라는 업무를 ‘털어내고’ 다음 혁명과업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준은 바로 그날 혁명군 총사령으로서 군령을 하달했다.
요약하자면, 가용한 모든 혁명육군 영대를 충청도와 강원도 남부에 집중시키라는 지시였다.
그리고 그때쯤 호남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린 대신라국 경명황제 김회연 역시 마찬가지로 건곤일척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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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고창 현감 서양보는 실제로 1816년경 작중 서술된 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작중에서 나온 이유로 사형은 면제되며, 장 맞을 거 벌금 내고 유배만 갔다가 곧 복귀하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때 감사의 보고에 그냥 몽둥이로 때렸다도 아니고 마거목(馬擧木)과 횡강목(橫杠木)으로 팼다면서 구체적 도구를 제시했다는 겁니다. 횡강목은 관짝에 얹는 가느다란 나무이고 마거목은... 불확실하지만 만약 이게 '마가목'을 말하는 거라면 관상용이나 열매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이라 몽둥이 최적화 이미지는 낮습니다(장미목이라 무르진 않을 겁니다).
악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어쩌면 감사가 횡포를 고발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회초리 같은 걸로 팼는데 죽었대요' 라는 식으로 죄를 경감해주라며 암시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거는 없으니 그냥 재미로만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
2. 서양보-서영보도 그렇고, 작중 주석보필국장 서유구의 형제며 장동 김문의 지방관 독점도 그렇고 어째 몇몇 가문 사람들이 관료로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착각이 아닙니다. 세도 정치는 꼭 장동 김문이나 풍양 조문만의 문제가 아니며, 과거제와 건전한 관료경쟁이 형해화된 이 시대에는 시준의 혁명 이전에도 이미 몇몇 가문이 벼슬자리 거의 다 해먹고 있었습니다.
홍경래가 괜히 빡친 게 아닙니다. 덤으로 위에 나온 서양보의 죄를 적발한 사람이 당시 전라 감사 김교근(金敎根)인데 이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랑의 혁명가 김유근이나 소드마스터 김좌근과 동렬 형제입니다. 알려진 대로 장동 김문이 이 짓거리 제일 심해서, 철종 시기 이 항렬 형제 6~7명이 판서 등 고위직을 독점하여 돌아가며 해먹죠. 이 다음 세대에선 유명한 김병기 등 병자 돌림이 또 그렇게 돌려가며 해먹고요.
3. 정약용의 말은 현실적 필요에 이론을 맞춘 것이지, 유교적인 발상이라고는 하기 힘듭니다. 작중 몇 번 나왔지만 유교는 현대인 기준에서의 미신도 광범위하게 수용했습니다. 합리적이라는 게 꼭 근대 서구의 무신론적 합리성과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는 거죠. 시체에 부장품을 사치스럽게 묻거나 미라 부활 신앙 같은 것은 배제했지만 분명히 시신에 대한 훼손은 큰 죄로 여겼습니다.
4. 조선은 화약무기를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역관 김지남이 숙종 시절 신전자초방을 목숨걸고 들여오기 전까지 분뇨로 초석을 만들 수 있다는 지식을 몰라 고생을 엄청 했습니다. 민가 습격해서 담벼락이라든가 부엌 흙이나 긁어가는 눈물의 환장쇼도 하고...
아무리 전근대라도 무기 정보에 대한 보안은 항상 철저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여진족이 거의 17세기까지 화포를 제대로 못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물론 못 써도 명나라는 발렸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 사체에서 질산칼륨을 얻을 수 있다는 지식은 유럽에선 더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5. 억불정책이 강했던 조선 시대의 불상은 통짜 금속이나 금은보다는 값싼 나무나 점토가 기본인 것이 더 일반적이었습니다. 좀 멋지게 꾸민다면 거기에 작중처럼 금박, 은박을 씌우는 정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