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56. 장사하자 먹고살자(2)
정약전은 자기가 구상한 조슈 사업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조선 땅 인민의 용맹한 기의(起義)가 성사된 것에 축하를 보내며, 성심을 다하여 물건을 화매하고 우의를 쌓고 싶다고 합니다.”
정약전은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게다가 옛날 왜국과 각별했던 백제국 의자왕의 원수를 갚게 되길 축원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이는 그때 백강(白江)에 원군을 보내었듯 신라국을 뒤에서 쳐 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외사통호부장 정약용도 한 마디 보태었다.
“따라서 그들을 도의로써 어루만져 장차로는 수평도를 통하게 하고, 당장으로는 교린의 이득을 얻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시준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다른 평안도 신디케이트 출신 정치국 위원도 마찬가지였다.
혁명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도를 걷는 사대부였던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당황했다.
정약전이 비록 협잡을 잘 부린다 하여도 그것은 책사(策士), 그러니까 선비의 범위 내였다. 그들은 이를테면 시준이 가진 빛의 동료였다.
그러나 시준에게는 더 오래된 어둠의 동료들이 있다.
그 대표격인 혁명무력부장 차형기가 입을 열었다.
“우리 흥정을 바로 받아들이는 놈들이 있다면 대체로 둘 중 하나요. 우리가 값을 잘못 알고 너무 싸게 불렀거나, 아니면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자객을 숨겨 놓고 몰살시킨 뒤에 전부 도로 빼앗을 생각인 녀석들이거나.”
원래는 선비지만 스승 쪽보다는 사형 쪽에 더 기울어 있는 농상진흥부장 이강회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장주국에 대해서는 본 위원도 거기 갔다 온 혁명해군의 탐보를 받았소이다. 그들이 감히 우리 공화국을 군사로 어떻게 해 볼 만큼은 되지 못하니, 아마 우리가 값을 싸게 부른 듯싶소.”
“그렇다면…….”
시준은 씩 웃었다. 정(丁)씨 형제를 뺀 나머지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더 뜯어내 볼 수 있겠구려.”
정치국 개설 이후 처음으로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린 정약전과 정약용은 그날 밤 쓰디쓴 형제의 술잔을 나누었다.
그래도 담당자가 두 사람이었기에 시준은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에게 후사아키를 최초 공식 접견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렇게 논의가 끝나는 것 같자 조제프 푸셰가 항변했다.
“아니, 나는 어쩌고요? 세계정세를 논할 때는 반드시 내가…….”
시준은 그를 빠른 프랑스어로 제지했다.
“일본인에게 프랑스인을 보여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잊고 계신 모양인데, 선전선동부장 동지는 삼화부에 함부로 발 들여놓았다가는 당장 영국군에 의해 고기밥이 되실 거요. 다 동지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조심하시오.”
맞는 말이라 푸셰도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도 영국군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 처지가 분통이 터졌다.
시준이 그를 ‘공식적으로는 숨기는’ 방식으로 푸셰의 존재를 뻔히 아는 암허스트로부터 보호하고 있었지만 그건 임시방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려인민공화국이 영국에 맞설 정도로 기다리다가는 푸셰가 세 번은 늙어 죽을 것이다. 푸셰는 다른 쪽에 기대를 걸었다.
‘아직 나폴레옹이 퇴위했다거나 하는 소식은 없어. 곧 재기할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리자.’
안 지 오래 되어 표정만 보고 대충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시준만이 푸셰를 불쌍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모리 후사아키는 열심히 떠들었다.
“우리에게 다른 이유 같은 것은 없소. 나는 수평도를 열심히 우리 다이묘께 상언하였으며, 다이묘께서도 감복하여 무릎을 치셨소. 고려국에서 예전의 약속대로 조슈와 화매하며 이기리스(영국)와의 통교를 마련해 준다면 진심[誠]을 다하겠소.”
정약전은 다시는 바보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에서 폭언이 쏟아져 나오기 직전 정약용이 끼어들었다.
“가져온 문서를 보니 자구가 애매하여 명확히 알기 어려운데, 정녕 그대들이 막부 장군의 허락을 받았다면 왜 서신에 관명(官名)과 해조(該曹)의 명문이 들어가 있지 않소? 이것은 마치 장주의 국주(다이묘를 말한다)가 우리 주석 동지께 보내는 안부 서간 같지 않소이까.”
모리 후사아키는 황급히 대답했다.
“그, 그거야 만국이 수평하다는 귀국의 예법에 맞춘 것이지요. 우리 조슈 역시 공화국과 수평한 사람들 아니겠소이까.”
“오호, 수평하다?”
“그렇습니다. 당연하지만 에도나 다른 영지에는 절대 비밀입니다. 그에 따라 영주의 혈족인 일문가로로서 으뜸가는 사족인 제가 다시 오게 된 것이오이다.”
정약용과 정약전은 껄껄 웃었다. 일이 잘 풀려간다고 생각한 후사아키도 같이 웃었다.
그러다가 정약전이 웃음을 뚝 그쳤다.
“야, 우리가 네 친구냐?”
“예?”
정약전은 후사아키가 뭐라고 반응할 틈도 없이 말했다.
“네가 여전히 사족임을 자처하니 이는 민주(民主)가 아니다. 수평도를 한다 말하면서 장군의 눈치나 살살 살피니 이는 공화(共和)가 아니다. 가신에 불과한 네 주인은 나중에 들키기라도 하면 즉시 무역이고 가문이고 폐하여야 할 테니 이는 나라[國]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을 자처하는 우리가 남의 종놈과 대등하게 말을 나누겠느냐?”
“종놈이라니 거 말씀이 좀 심하신…….”
“차라리 옛 대마도처럼 신종(臣從)한다면 이해하겠다. 그러나 너희가 우리와 이런 무례한 서간으로 통하겠다는 뜻은, 곧 공화국이 너희 장군과 천황의 아래라는 뜻이 아닌가. 수평도가 언제부터 윗사람을 두려워하며 도둑처럼 숨어다니는 도였다는 말이냐! 안 되겠다. 거기 동지가 하나라도 있으면 어서 대독과 쎄멘을 가져오라!”
후사아키는 황급하게 말했다.
“아, 아니. 그만 일로 외국 사신을 죽이려 하시다니요. 정공(丁公, 정약전)과는 제가 흑산도에 떠내려갔을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어찌 이리 매정하시오.”
“선공후사라. 나랏일에 사사로운 친함은 없는 법. 너희가 진정 수평하게 장군이나 천황과 동격이 되기 전에는 결코 다시 그런 말을 꺼내지 말라.”
조슈도 정말 그러고 싶다. 힘이 없어서 못 할 뿐이다. 이 기회에 저들 좋아하는 수평도로 유세하여, 조슈의 격을 일국과 동급으로 올리고 오겠다 큰소리쳤던 후사아키는 풀이 죽었다.
정약용이 달래듯이 말했다.
“그러나 수평도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의 적은 아니오. 우리는 왕을 모시는 영길리국과도 상종하고 있으니까 말이오.
아까 들어보니 영길리국과 통하고도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을 해보시오. 같이 머리를 짜내면 어찌 좋은 계책이 나오지 않으리?”
형제를 같이 보낸 시준의 의도는 당근과 채찍이었지만, 이건 채찍으로 패면서 입에 당근을 쑤셔 넣는 꼴이었다. 21세기 현대인 중에서도 성에 상당히 개방적이라 자부하는 사람조차 약간 주저할 플레이였다.
하지만 후사아키에 대한 조교로는 꽤 성공적이었다.
후사아키는 저번처럼 괜히 수작 부리다가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외교는 성공시켜야 했다. 간첩질도 실패하고 외교도 실패하면 후사아키는 정말 지금 그냥 나를 독에 넣어 삼화 앞바다에 던져 달라고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
후사아키가 털어놓은 사정은 근래 일본 남부의 급격한 정세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
고만고만한 번들이 갑자기 무슨 반세기쯤 빨리 존왕양이를 외치며 일어섰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이번에도 영국 때문이었다.
영국은 홍기방을 전멸시킨 이후 류큐에 손을 뻗었다. 그들은 ‘힘없는 류큐를 압제하여 설탕을 뜯어가는’ 사쓰마에 준엄하게 책임을 물었다.
여기까지는 시준도 일전에 들어서 알고 있다. 그간 시준은 해적 놈 둘이 사이좋게 공멸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무슨 결전인지 하는 것으로 전생에 어디 만화에서 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전령을 쫓아냈던 사쓰마 번도 영국 해군이 큐슈 남쪽에 나타나서 무차별 포격으로 민가에 쑥을 재배하자 그 전통 농법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시마즈 가문은 정중한 답신을 보냈다. 우리가 상전에게 허락받은 일이니 참견하지 말고, 상륙해서 잡아간 백성들을 돌려주면 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우리 뒤에는 일본국 막부가 있다’ 정도다. 미치지 않았다면 일본 전체를 상대로 갑자기 싸움을 걸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영국인은 미친 족속들이었다.
사쓰마에 암군이 없다고 하건만, 시마즈 가문에서 대체 왜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영국의 나가사키 침공을 잊어버렸는지는 영원한 의문이다.
암허스트 남작은 간단히 대응을 결정했다. 존 레디 소령이 제물포 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렇다면 에도라는 도시에 우리의 뜻을 직접 전하지.”
암허스트의 입장에선 그의 숙부가 천연두 이불 보내 학살한 캐나다 인디언이나 여기의 아시아인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고려인민공화국에서 계속 비협조적으로만 나오면 그냥 다 걷어치우고 몰살 루트 타겠다는 그의 말은 허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었다.
그러니 일본이라고 예외가 될 리는 없다.
미국인이 태평양을 건너온다면 당연히 가장 첫 번째로 도착할 나라가 일본이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지금 영국의 영향권 하에 넣어두는 편이 좋았다.
머나먼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제외하고) 되도록 외교와 위협으로 일을 해결하려 했던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영국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의아할 수도 있다.
허나 지금은 그때처럼 통신이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가 아니다.
본국이 훈령을 유연하게 하달할 수도 없거니와 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말로 해결하려면 일단 말이 통해야 한다. 잘못하면 국가 공식 입장과 현장의 입장, 그리고 외국의 오해가 다 같이 꼬여서 대참사가 난다.
유럽이라면 모를까, 이 극동에서까지 문서와 주둥이로 무도회를 펼칠 수 있는 시대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여기에서 정상적인 문명국은 과도한 해외 진출을 지양하는 쪽을 택하나, 이들은 ‘그렇다면 대포로 대화하면 문제가 없겠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국은 대영제국이 되고 나머지는 인간이 된 것이다.
게다가 현재는 빅토리아보다 한참 이전. 아무래도 이미지 너무 나빠진다고 생각한 영국이 급하게 ‘신사’ 전통 창조해내 가면 쓰기도 전이다. 아직 이들은 해적이었다.
뜬금없이 해적에게 에도가 쑥대밭이 될 위기에 처한 도쿠가와 막부는 기겁했다.
에도는 왜 네가 싼 똥을 나한테 던지느냐는 하명을 보냈다. 사쓰마는 이를 북북 갈며 병사들을 모았다.
영길리 해적이 근래 좀 악명을 떨친다 하나, 사쓰마도 예로부터 해적질이라면 꿀리지 않는 곳이다. 굳이 말한다면 전국구 깡패와 지역구 깡패의 차이 정도다.
그렇게 현재 큐슈 남부는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여기에서 조슈가 나선 것이다.
조슈는 마침 돌아온 후사아키의 설명을 듣고, 현재 영국과 유일하게 정상적인 통로를 가진 국가가 고려인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영주 모리 나리히로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선의 그 새로 생겼다는 나라와 먼저 교통을 터서, 무역의 이득도 얻고 영길리국 해적과도 통하여 잘 달랜다면 사쓰마와 막부 양쪽에 중재의 빚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조슈 번 전략의 대강이었다. 대마도의 전례를 따라 ‘막부의 신하’로서 외교를 하면 고려 사람들이 또 막부 장군에게 직접 서신을 보내는 등 산통 다 깰 수가 있기 때문에, 후사아키가 평양을 떠나기 전부터 계속 수평도를 주절댄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정보를 독점한 조슈는 느긋하게 고삐를 풀었다 당겼다 하면서 무역 조건을 유리하게 조절할 수 있다.
동시에 일본 내에서는 유일한 유럽의 제어자로 위명을 드높일 수 있는 것이다.
막부가 자신들을 신뢰하고, 동시에 대형 사고 친 사쓰마를 불신한다면 야마구치에서 서쪽으로 나아가 큐슈에 영향력을 뻗치는 것도 결코 망상이 아니다.
모리 가문에게는 꿈이 있었다. 죠죠[長-朝]동맹의 창설과 그로 인한 죠슈의 굴기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정치국은 후사아키를 한 번 핥는 것만으로도 거짓말의 맛을 느껴버렸다.
***
“심모원려라고 해 줄 수는 있겠으나 욕심을 과하게 부렸구먼. 그렇게 사람을 속이려 들어서야 되겠소?”
정약용의 총평이었다. 후사아키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고려의 인민들과 달리 힘이 없으니까 그렇지요. 이왕에 목을 내걸었으니 차제에 다 말씀드리자면, 장군은 2백 년 전의 일로 우리를 사사건건 미워하고 있소이다. 수평도가 통했다는 말도 아주 거짓은 아니오이다. 한 가문이 이토록 오랫동안 천하의 국병을 쥐고 있는 것은 또 어찌 온당하겠소이까?”
정약용은 마치 등이라도 토닥일 것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그 억울하고 분한 심정은 충분히 동감하오. 일단 이렇게 합시다. 나라 간에 문서가 오갔다는 말이 혹시 새어나가면 막부의 장군이 대노할 테니, 영길리인들이 잘 하는 수를 한 번 써 보지요.”
정약용이 제안한 것은, 그러니까 일종의 하청이었다. 영국인들이 온갖 더러운 짓을 자딘 조선 메디컬 컴퍼니에 하청 주는 것을 보고 떠올린 발상이었다.
“서상에는 주석 동지를 비롯한 정치국 간부와 여러 동지들이 참가하고 있으니 서상의 말은 공화국의 말이나 다를 바가 없소.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상계(商契)이지 나라가 아니오. 장주국에서도 비슷한 것을 만들어 통하면 이것은 나라 간의 일이 아니라 장사꾼끼리의 일이 되오.”
후일의 해원대는 도사 번의 기관이지만, 조슈가 해원대와 많이 거래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조슈 사람들도 밀무역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조슈의 격을 높이지 못한 것은 아쉬워도, 차선책으로는 나쁘잖은 제안이었다.
후사아키는 벌써부터 정약용의 흉계에 말려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거 매우 좋은 방도 같습니다.”
“다시 이를 말이겠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응당 군주가 감독해야 할 병기를 빼놓고는 무역에 관헌이나 병사가 자주 와서 참견하지는 않도록 합시다. 그러면 대번에 이것이 나랏일이라고 소문 퍼질 테니 말이오.”
어차피 대량의 총기는 민간 시장에 팔 데도 없다. 일본인은 사냥을 그리 많이 하지도 않고, 공화국으로서도 쓸데없이 일본에 내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전쟁이라면 일본 민간인보다 조슈의 모리 가문이 훨씬 더 전문가다.
모리 후사아키는 감동해서 정약용의 손을 잡았다.
“선생이 이토록 세세하게 살펴 주시는 은혜는 잊지 않겠소. 꼭 그렇게 전하리다.”
“잘 부탁드리겠소.”
***
시준이 이 호구에 대한 진심 어린 환영 행사를 열어 정치국에서 정중히 모리 후사아키를 맞이하고 나자, 대(對)조선 전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금강이 병사들을 녹여버렸나 싶은 속도로 줄어드는 군세 때문에 당황하던 김좌근은 급보를 받게 되었다.
“적도가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의 배와 뗏목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이제까지의 시위와는 명백히 달랐다. 그때야 김좌근도 공화국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다.
김좌근은 대노해서 칼을 뽑았다.
“아직 우리 군은 저들의 갑절이 된다! 동요하지 말라! 병법에 이르기를 적이 물을 반쯤 건넜을 때 치라 하였으니, 즉시 군세를 정돈하렷다!”
물론 도하 시의 기습은 고래로 항상 효과적이다.
적에게 장거리 포병과 지원 사격이 없다면 말이다.
어쨌든 고대의 병법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의 시대에는 금강만한 강을 건너 사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김좌근의 지시에 따라 강안에 모였던 조선군은 곧 주체신기전과 3킬로그램포의 맹렬한 사격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김좌근도 바보가 아니다. 이 정도야 요즘 많이 겪어 본 포격이다.
그래서 그는 병사로 하여금 참호를 파거나 엎드려 있게 했다. 계산대로라면 이 마구잡이 포격에 피해를 입는 군사는 거의 없어야 했다.
그러나 연기가 걷히고 나자, 김좌근은 자기 병사의 태반 이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꼴을 목도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호통을 칠 필요도 없었다. 김좌근의 눈에도 잘 보였다.
금강 주변의 드넓은 평야 양쪽으로 집 부서진 개미처럼 흩어지는 병사들은 김좌근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이길 수 있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어리석은 놈들!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모두 참수하겠다!”
그러나 김좌근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들은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포격은 신호에 불과했다. 김좌근의 병사들은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앞에서 적군의 앞에 나아가 죽는 것은 종묘사직과 백성을 지키기 위함이라 들었다.
그러나 그 종묘사직은 뒤에서 그들의 친지와 가족을 죽이고 있었다.
지난 400년간 그 노릇이 왜 잘못됐는지 모르던 인민들도 이제는 공화국을 보고 있었다.
호남의 인민들은 그들의 의지에 따라 김좌근을 파면했다.
어떻게 해 볼 새도 없이 5천 혁명육군이 강을 건너 밀려들었다. 할 수 없이 말에 올라 도망치던 김좌근의 뒤로 노호성이 들렸다.
“형을 죽인 패륜아는 달아나지 말라!”
“이 새끼가!”
김좌근은 열일곱 살 소년답게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거기 있는 사람이 혁명군 기병대장 매경은이라는 것은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자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 수 있었다.
김좌근은 급히 대장만 노리고 쫓아온 매경은의 주변 병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천한 주둥이를 닥쳐라! 너희가 륜(倫)을 알기나 하느냐. 그 방자한 혀를 뽑아 주겠다!”
“젊은 놈이 칼을 좀 쓴다고 들었는데 그 하찮은 재주를 믿고 광오(狂傲)하구나.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다. 이 어르신의 삼초(三招)를 버텨내면 목숨만은 살려 주리라!”
매경은은 그렇게 외치면서 들고 있던 기창을 던졌다.
김좌근 정도의 체술을 익혔다면 우스울 뿐이다. 창을 가볍게 피한 김좌근은 무기가 없어진 매경은에게 돌진했다.
“돌아버린 것이냐! 삼합은커녕 일합만에 끝장내어 주겠다!”
아무리 갑옷을 입었다 해도 김좌근의 검술이면 한 칼질에 목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매경은도 마찬가지였다. 매경은은 혁명의 제2초식을 발휘했다.
김좌근은 매경은이 갑자기 허리춤에서 번개같이 뽑아 이쪽으로 겨누는 짧은 총의 총구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 비겁한 새…….”
탕! 아무리 이 시대의 권총이 조악해도 한 발은 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발이면 충분했다.
김좌근은 가슴에서 둔한 충격을 느끼며 나가떨어졌다. 희한하게도 총에 맞은 아픔보다 말에서 떨어지는 고통이 더 심했다.
그리고 곧 둘 다 사라졌다.
매경은은 세상에 자신의 맞수 될 사나이가 이토록 드물다는 것에 탄식하며 김좌근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했다.
대장이 죽었으니 그 뒤는 파죽지세다. 혁명군이 측면 기습이나 후방 절단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전주를 향해 돌진할 때쯤, 삼화부에서는 몇 척의 배가 출발했다.
‘계획대로 고려인민공화국을 완벽하게 설득한’ 동방의 메테르니히 모리 후사아키가 위풍당당하게 고려의 무역선을 이끌고 조슈로 향하는 행렬이었다.
거기에는 역사와 전통에 따라 후한 예물, 그러니까 무역품이 들어 있었다.
공화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두 가지 상품인 무기와 약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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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일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류큐는 이때 사쓰마에 복속된 상태였습니다. 사쓰마는 사실상 류큐 전역을 노예 상태로 만들어 재물, 영토, 인간, 특산품을 뜯어갔지요. 중간에 여러 독립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류큐, 그러니까 오키나와는 여전히 일본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정복 당시 에도의 쇼군에게도 알현을 시켰기 때문에, 사쓰마의 류큐 지배는 막부가 묵인하거나 방조한 게 아니라 '공식 인정' 한 사안입니다.
2. 신사라는 말이나 그에 요구되는 행동 자체는 외전에서 윌리엄 자딘 등이 잠깐 보여준 것처럼 이 시대에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주로 통용되는 '영국 신사'의 이미지는 거의 빅토리아 시기에 그 기초가 만들어진 것이지요.
3. 내용과 별 관계는 없지만, 후사아키의 대사 중 진심[誠, ‘진실’이라는 뜻도 있음]이라는 말은 신센구미(신선조)가 제복에 새겼던 표어이기도 했습니다.
4. 죠죠동맹은 (삿쵸동맹처럼) 쵸쵸동맹, 혹은 초초동맹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정확할 듯합니다만 아무래도 죠죠동맹이 더 강해 보여서 그렇게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