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56. 장사하자 먹고살자(1)
삼국이 쟁패기에 들어갔을 때, 윌리엄 암허스트는 영국 본국으로부터 정식 주중 공사 문서와 함께 그 임기 연장의 허가를 받은 참이었다.
얼핏 보기에 영국의 태도는 지금 동아시아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것 같았다.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정상인이라면 당연하다.
지금 유럽의 패왕 나폴레옹의 굴복이 코앞인데 다른 무엇이 눈에 보이겠는가.
그러나 영국은 전 세계에 뻗친 악의를 한순간도 거두지 않기 때문에 영국인 것이다.
이미 영국은 미국과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전시 영국의 특기는 해군을 이용한 전방위적 압박이다.
크림 전쟁 당시, 전화기 하나 없는 것들이 뜬금없이 전선에서 한참 떨어진 캄차카나 아르항겔스크에 나타나는 바람에 러시아는 다중 분신술을 상대하는 경험을 했다.
흔히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일컬어지지만 그 말이 영어로 알려진 것에서 알 수 있듯 그건 영국이 수행하는 두더지 잡기에 가깝다.
러시아가 극동, 아프가니스탄, 흑해, 동유럽 어디에서든 머리 내밀기만 하면 망치로 패버리는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그 게임에서 영국은, 그리고 영국에게 바톤을 이어받은 미국은 러시아와 소련을 상대로 21세기까지 나쁘지 않은 점수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국이 암허스트에게 동아시아를 사실상 영지로 위임해 버린 것은 방기가 아니다.
민간 차원이나마 슬금슬금 동아시아로 기어들어 오고 있는 미국인을 처리하고 나아가 본국의 전쟁을 지원하라는 얘기다.
그러려면 여태까지 암허스트의 일관된 생각처럼 ‘안정된 발판’이 필요하다. 암허스트는 그 발판을 조선으로 삼고 청에서 공격적으로 이득을 거둔다는 전략을 채택했으며 그것을 위해 시준을 지원했다.
그리고 시준의 성공을 보면 지금까지는 그 선택이 들어맞은 것처럼 보였다. 어째 점점 이상한 또라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아직은 약간 미심쩍기만 한 수준이었다.
베이징에서 동아시아 외교관의 특권, 다시 말해 산지 직송 홍차를 즐기던 로드 암허스트는 그러한 믿음을 자신에게 다시 한번 심어주듯이 중얼거렸다.
“People's Republic of Great Korea(대고려인민공화국)라……. 국호 한번 거창하군.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과는 좋은 대구가 되겠는걸. 아무래도 우리를 참조한 것 같아.”
북경의 로드 암허스트는 마치 고려가 영국의 지도하에 생겼다는 것처럼 여유 있게 말했다.
그리고 레디 소령은 뒤틀린 표정으로 그 뻔한 허세를 들어주고 있었다.
핑계 대지 말고 제물포에 어떻게든 항구를 마련하라는 주중 영국 공사의 압력에 맞서, 동인도 회사는 배 째라고 드러누웠다.
장사꾼들 입장에선 이미 시설, 거래처, 군사적 안정이 모두 마련된 삼화부에서 무역을 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레디 소령은 암허스트를 설득했다.
“혁명정부, 아니, 공화국 정부는 한성을 수도로 삼겠다고 공식 발표한 바가 없습니다. 공화국 외교장관(정약용)의 언질만이 있었을 뿐이지요. 의장 정시준의 정치적 입지상 절대로 평양을 포기할 수 없을 겁니다. 수도 외항을 원하신다면, 차라리 평양 옆의 삼화에 더 투자하는 편이 낫습니다.”
하지만 로드 암허스트는 장사꾼이 아니라 정치가다. 그는 레디 소령과 마찬가지로 했던 소리를 다시 반복했다.
“자네들 상인은 역사적 관성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어. 그건 오만하게도 연설 잘하는 놈 몇 명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프랑스인들의 답습이야.”
프랑스인 같다는 모욕은 레디 소령을 크게 분개하게 했다. 그러나 암허스트는 거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조선 중부지대는 그 나라에서 천 년을 이어간 수도권이다. 믿어지나? 웨식스의 알프레드(Ælfred of Wessex, 알프레드 대왕)가 데인족과 싸우던 시절부터라고. 그 지역에서 오랜 세월 굳건하게 형성된 토착 이권은 어린애조차 떠올릴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해도 엄청나지. 정시준의 고향이나 근거지가 어디이건 간에 그건 바꾸지 못하는 거야.”
“그건 평범한 왕조 교체일 때 얘기입니다. 그의 별명을 모르십니까? 반왕[Anti-King], 다리 절단자[The legcutter]! 그는 왕이 새로 생길 때마다 수확하고 있어요. 마치 만들 테면 얼마든지 만들어보라는 듯이. 천 년보다 더 전부터 이어 온 동아시아의 전제 군주제를 뿌리부터 파괴하는 판에 그까짓 수도 이전이 어렵겠느냐는 말입니다.”
동방의 안티 킹, 그 붉은 대낫을 휘둘러 왕의 다리를 수확하는 자, 페르시아 전제군주의 악몽 정시준의 이름은 이미 런던에도 알려졌다.
딱 봐도 기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문구다. 물론 동아시아로 관심을 돌려 예산을 더 타내려는 암허스트와 레디 소령의 의도적 소문 창출도 없지는 않다.
암허스트는 입술을 뒤틀었다. 레디 소령은 곧 그의 특기인 되지도 않는 궤변이 나올 차례라는 사실을 짐작했다.
“바로 그거야. 그는 군주가 아니라 공화국의 의장이다. 어쩌면 조선 안에서 테르미도르의 반동 같은 것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어차피 공화국 아닌가. 이제 정시준의 임기가 2년 지났지? 3년 더 지나면 다시 선거를 해야 해. 다음 의장이 꼭 평안도 사람이라는 법 있나? 그때 우리가 조금 ‘권유’하면 얘기는 쉬워져.”
레디 소령은 기가 막혀서 소리 질렀다.
“앞으로 3년 뒤까지 혁명정부가 버틴다는 얘기는 조선 전역을 정시준이 제압한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전쟁영웅이 그 뒤에 바로 물러난다고요? 그러면 아마 공화국은 다시 내전을 치러야 할걸요. 정시준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집권하게 될 겁니다! 만약 선거에 영국이 간섭해서 정시준을 일찍 실각시키려 한다면 더한 일이 터질 테고요.”
“나도 그런 협잡질까진 하고 싶지 않아. 그래. 정시준이 연임할 수 있지. 허나 그다음에는 물러날 공산이 더 높네. 30년 전의 그 행운아 반역자, 조지 워싱턴이 그랬듯이 말이야. 시준은 전제 군주제를 혐오해. 자네 말처럼 ‘다리를 자를’ 정도로 혐오하지. 그렇다면 왜 그가 왕과 다름없는 장기 독재를 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앞뒤가 맞지 않잖나.”
레디 소령은 회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나라가 250년 뒤쯤 해서 고려인민공화국 땅에 생긴다는 반박을 할 수는 없었다.
자기 나라에서 실제로 종신 독재한 크롬웰의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크롬웰은 선거로 뽑힌 게 아니니까.
지금 유럽인이 아는 제대로 된 근대 공화국은 미국뿐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워싱턴은 실제로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3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돈도 많고 노예도 많은데 괜히 (자택에 비해) 좁아터진 관저에서 매일 욕이나 처먹는 대통령 자리 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역사적 근거 쪽은 암허스트가 높았다. 레디 소령은 한숨을 쉬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라면 앞으로 8년은 제물포가 별로 쓸모없을 텐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싼값에 자재와 인부를 조달하고 조계지도 조금 넓게 요구해 볼 수 있어. 보고대로라면 제대로 된 항구를 만드는 데 8년이야 긴 세월도 아니겠지. 그다음 공화국이 수도를 남쪽으로 옮기면 모든 일이 잘 되는 걸세.”
말하던 암허스트는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아, 내 예측이 모조리 틀려 이도 저도 안 되면 어쩌느냐고 묻고 싶은 표정인데, 그러면 또 어떤가? 그때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전쟁도 다 끝났을 테니, 심심한 본국 함대를 불러다가 밀고 들어가 걸리적거리는 것들 다 죽여 버리고 조선을 점령하면 그만이야. 우리 인생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레디 소령은 아무래도 개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암허스트는 그 생각이 레디 소령의 머릿속에서 구체화되기 전에 지시를 내렸다.
“일단 가서 제물포의 효율적인 항구 개척 방안이나 만들어 와. 돈은 어떻게든 최대한 지원하지. 런던에 이야기를 잘 하면 대중 무역의 관세와 이득을 상당 부분 동아시아에서 전용할 수 있을 거야. 우리 무기를 사 준다는 친구들이 최근에 있었지 않나. 그 누구더라?”
“그 사교도 집단 말씀이십니까? 그들은 예전에 한 번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은화만 굴러들어온다면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 되는 돼지들 따위 얼마가 죽건 알 바 아니야. 만사 그렇게 소극적이어서야 뭘 하겠나. 그리고 청국이 안정을 찾으면 그것도 공화국 입장에서는 골치 아니겠는가? 내 친구 시준이 조선에서 바쁜 동안 우리는 다른 곳을 정리해 주도록 하지.”
사실 청이 안정을 찾기는 어려워 보였다.
영국은 분명 조약에서 무기를 팔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편 금수에 대해서는 조약에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따라서 영국은 개항장 전부에서 노점상 꼬치 팔 듯 마약을 뿌렸고, 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 때문에 급속도로 쇠락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되면 쌀값이 치솟고 기민이 늘어난다. 특히 강남의 불만은 이제 정부에서도 위험 수위라고 판단할 지경이었다.
당장 황제가 선조들처럼 강남을 순행하지 않은 것은, 지금 열하에 있는 가경제는 태상황 준비 작업 중이라 뜬금없이 그런 황제 업무를 수행하기 싫었고 지친왕은 황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순행하기만 하면 철퇴로 머리를 뻐개어 버리겠노라 다짐하고 쇳덩이 주문해 놓았던 19세기판 창해 역사(滄海力士)들은 아쉬운 탄식밖에 할 수 없었다.
집에 금이 가면 버러지와 금수들이 들어오듯, 통치력의 균열은 당연히 임청 같은 반란분자의 독무대가 된다.
임청은 임칙서를 비롯한 여러 지식인 계층을 포섭했다. 그들은 천리교에 그간 부족했던 실무적 지식과 지배층과의 연줄 및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천리교 세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임청은 다시 윌리엄 자딘에게 접촉했고 이번엔 틀림없이 선금을 지불하겠다 큰소리쳤다.
자신이 감당할 물량이 아니라 판단한 자딘은 동인도 회사에 이 일을 털어놓았다. 동인도 회사는 인도군의 물량을 윌리엄 자딘에게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인은 타고난 해적이고, 이 말은 타고난 장사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장사에는 신용이 중요한 법. 신의에 목숨 거는 영국인은 조약대로 절대 중국에 무기를 팔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자딘 조선 메디컬 컴퍼니에 팔았을 뿐이다.
윌리엄 자딘이 그 물량을 어떻게 처리하건 영국은 모른다. 이를테면 윌리엄 자딘이 광동 어딘가에서 그 화물을 분실하고 낙담하다가 근처 어딘가에서 대규모의 은화를 발견하는 행운을 겪을 수도 있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예측불허의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레디 소령이 불만스러운 대로 나가고 나자 암허스트는 웃으며 다시 찻잔을 들어 올렸다.
논쟁에서 이긴 기쁨은 식은 찻잔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 주는 듯했다. 동아시아의 가축 같은 백성들이건, 목동 수준밖에 안 되는 군주들이건, 심지어 동인도 회사라 할지라도 모두 자기 손안에 있었다.
***
친구끼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거문고 소리에 담긴 뜻을 아는 법이니 이를 일컬어 지음(知音)이라 한다.
의장 정시준의 친우를 자처하는 암허스트의 분석은 정확했다. 시준은 절대로 연임하고 싶지 않았다.
공화국을 제창한 지도자가 동서양 모두에서 장기 독재를 아름답게 거부하니 실로 앞으로의 역사에 귀감이 될 결심이었다.
물론 시준도 바보가 아니므로, 그 역시 워싱턴처럼 수도 없는 압박에 시달릴 것쯤이야 짐작했다.
그래서 시준의 큰 그림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지금부터 스케치를 시작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요? 그게 뭡니까?”
총괄서결부장 정약전이 어리둥절하게 묻자 시준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세상을 경륜하고 인민의 가난을 구제하는 것을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 하니, 경제는 그것을 줄인 말이오. 개발이라 함은 열어서[開] 울려 퍼지게 한다[發]는 뜻으로, 가난을 구제하려면 황무지를 옥답으로 넓히고 배를 띄우며 공창을 운영하는 것처럼 쉴 새 없이 혁명적으로 앞장서야 함을 말하는 것이외다.”
잘은 모르겠지만 정치국 위원들은 일단 시준을 찬양했다. 주석 동지의 입에서 혁명이란 말이 나왔으면 무조건 다 같이 찬성투표해야 마땅하다.
시준은 위원들이 자기 말을 다 알아들은 줄로 착각하고 기세 좋게 이어갔다.
“내가 분에 넘치는 주석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인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지. 총선거 이후 내 임기는 5년인데 대강 지금까지는 계책대로 되었소.”
공화국 국무당에서 가장 오래된 간부인 차형기조차 그런 게 있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차형기는 나이 때문에 깜박한 것이 아니다. 그런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방금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시준은 의심 따위 용납하지 않는다는 어조로 말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문건을 나눠드리겠소이다만 우선 들어보시오. 총선거가 시작되고 양계에 상조농장을 지으며 중국과 통상하여 부를 쌓는 것이 처음의 1년이요, 그다음 경기를 평정하여 국체를 바로 세우며 인민의 힘을 먹고사는 데 결집하는 것이 그다음의 1년이외다. 이제는 그 3년째, 조선에서 가장 부유한 영호남을 얻는 국면에 들어와 있소.”
정약전은 뭔가 불길한 낌새를 느꼈지만 아직 정확한 반박을 찾지 못해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리고 4년째에는 인민에게 수평하게 토지를 나눠주고 경작하게 하여 다 같이 잘 먹고 잘살게 하며, 5년째에는 그러한 인민의 지지를 얻어 영길리 같은 서양국과 저 청국의 망국팔조 같은 조약 없이 통상하여 장사로 금은을 얻는 것이 대강의 계책이오.”
진짜 대강대강이었다. 누가 봐도 5년이란 시한 때문에 뒤의 2년은 대충 두드려 맞춘 것 같았다. 정치국 위원들은 침묵했다.
시준은 자기가 깔끔하게 공무원식 ‘와꾸’를 맞추었다고 생각했지만, 전생의 결재자들이야 어차피 같은 공무원이라 자기 일 아니니까 통과시켜 준 거고 정책 기획이란 게 원래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정약전은 주석을 정치국 회의에서 어버버거리게 함으로써 망신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2년의 구체적 계획에 대해 묻는 대신 그 이후를 물었다.
“그 뒤는요?”
시준은 정약전이 자기에게 협조한다고 생각하고 더욱 힘을 얻었다.
“그 뒤는 총선거가 다시 한번 있소. 그간 혁명과업에서 공이 크고 인망이 높은 사람들이 국무당 주석이나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출마하겠지. 새로운 5개년 계획도 그때 직조하게 되는 거요.”
시준은 사람들이 반박할까 봐 자기가 은퇴한다는 명시적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임기에 맞추어 일종의 국정과제를 만들어 놓고, 그게 끝나면 내 일도 끝난다는 암시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실수였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정약전을 포함해 모든 사람은 자신이 과하게 걱정했다고 여기고 안심해 버렸다.
‘그냥 다시 나와도 다 패쪽 던져 줄 것을, 괜히 그런 말을 해서 못박아 두려 하는군. 주석 동지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그러니까 앞으로 한 번 더 선거해 주면 지금 말한 엉성한 수작보다 더 자세하고 이치에 닿는 것을 들고 오겠다는 얘기지?’
‘5년 계획을 짜서 그것을 만인 앞에 내보여 인민의 패쪽을 얻는다……. 그저 허언을 장담하며 외치는 것보다 훨씬 교묘한 생각이로구먼.’
정치국 위원들은 모두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준의 말이 옳다고 해 주었다.
시준은 누구도 말리지 않는 이 상황에 약간 아쉬우면서도 감동할 것 같았다.
역시 혁명 동지들은 진정한 공화국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지, 유사 전제군주국은 그들의 바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이 나라가 200여년 후의 어느 나라처럼, 절대 금수조치로 쪼들려서가 아니라 사실 과일껍질 졸여 만드는 설탕이 몸에 좋다며 당 기관지 1면에 토법고로식 설탕 생산법이나 내거는 그따위 나라가 되는 길은 막은 것 같았다.
그렇게 원만한 은퇴를 위한 동료들의 내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시준과, 주석 동지가 다음 선거의 포석을 미리 깔기 위해 유력자인 정치국 위원들 상대로 펼친 유세를 잘 들었다고 생각하는 위원들은 모두 만족했다.
그들은 훈훈하게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용맹한 혁명군은 호남과 영남 모두에서 혁명적인 승전보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김회연은 조령에서 도무지 나아오질 못하고 있고 금강 주변에서는 김좌근의 군세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고 있다 합니다.”
정약전이 그렇게 운을 띄웠다. 차형기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 자부심 어린 표정을 유지한 뒤 그는 다시 말했다.
“이제 집안일을 보살필 때가 되었지요. 김좌근의 어리석은 고식지계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전선에 나간 동지들을 뒷바라지해 줄 혁명사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사세입니다.”
“으음. 그도 그렇지요. 여전히 흉년이니……. 이대로 가다가는 한여름에 서리가 내리겠다는 푸념도 나오고 있소.”
“의주감자에 의지하여 버티고는 있는데, 그렇다고 논을 죄다 갈아엎고 감자 심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청에서 들여오는 곡식은 어떻소?”
“있기는 한데 그래봐야 배에 실어오는 정도지요. 게다가 흉년이 뭐 대국이라고 비껴가겠소?”
사실 비껴가는 정도가 아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당장 곡식 수출을 금지해야 마땅하다.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흉년 아닌 곳도 더러 있어서 가경제로 하여금 아무래도 북경에 복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만들 정도까지는 번지지 않았을 뿐이다. 청의 작황도 만만찮게 심각했다.
그러나 당장 사람이 아픈데 별도리가 없다. 청나라 사람들은 영국 것보단 조금 싼 조선의 신묘한 약재를 사기 위해 기꺼이 곡식을 지불했다.
그리고 윌리엄 자딘이 진행하는 무기 밀무역에도 숟가락을 얹었다. 임칙서의 조언에 따라, 임청은 무기 거래처를 다변화하기로 했다.
솔직히 영국 놈들보다야 옆에서 수백 년간 우의를 쌓아 온 조선인들이 더 믿을 만하지 않겠는가. 영국 무기는 품질이야 좋았지만 너무 비쌌다.
싸구려라도 숫자 많이 챙겨 주는 조선 무기는 꽤 잘 팔렸다. 게다가 푸셰의 역작 월간 대혁명을 같이 가져가면 할인해 주기도 했다. 그들이 책을 읽을지 벽에 바를지는 몰랐으나 아무튼 장사는 잘되었다.
원래 영국 무역의 들러리를 서게 할 생각으로 시준의 밀매단을 끼워 주었던 자딘은 다소 당황했다.
그러나 무기란 인간을 효과적으로 살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영국인들의 실수였다. 하여간 밥 먹고 사람 죽일 생각이나 하는 영국인이니까 그런 것이다.
전쟁 때 자기 무기로 적을 죽이는 자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대부분의 무기는 그냥 들고 있는 것으로 그 역할을 끝낸다.
칼은 날카로울 필요가 없다. 번쩍거리면 그만이다. 현명한 중국인과 조선인은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별로 현명하지 못한 유럽인이나 몰랐을 뿐이다.
그렇게 곡식은 조선에 수입되었다. 아직 호서는 장악하는 중이고, 호남과 영남은 차지하지도 못한 고려인민공화국이 여태 인민들을 대량으로 굶겨 죽이지 않은 것은 이 덕이 컸다.
그러나 곡식은 식량임과 동시에 주요 화폐 수단이기도 하다.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거래에 은을 사용한다고 선포했지만 인민 대다수는 은을 평생 본 적도 없다. 거기에 전쟁까지 이어지자 곡식 소모량은 그야말로 폭증했다.
그렇다 보니 또 다른 수입처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조제프 푸셰가 외방전교회를 포섭하려 애쓰는 중이지만 그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는 이제 가톨릭의 시대가 돌아왔다며 자신의 사제 경력을 되살려 역설했지만, 외방전교회는 아무래도 푸셰에 비해 하수인지라 영압 감지력이 다소 떨어졌다.
외방전교회를 통해 베트남의 곡식을 수입하려면 그보다 더욱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실 그쪽도 아시아 최강 대해군 건설의 대가로 오만가지 민란에 시달리는 중이어서(서상이 자딘 메디컬 컴퍼니를 통해 자바에 약 팔고 있는지라 베트남 사정도 대강 알려져 있었다) 정치국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정약전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까지는 전쟁 때문에 자기 존재감이 살짝 옅어진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동생인 외사통호부장 정약용과 손잡고 진행했던 사업으로 그의 역할을 과시할 때였다.
이 자리에는 정약용도 있었다. 그러나 인민이 아무리 수평해도 이 자리에서는 형님이 대표로 말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정약전은 진중하게 말했다.
“장주국(조슈 번)에 갔던 모리방현(毛利房顕, 모리 후사아키)이 돌아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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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페르시아는 유럽에서 오리엔트의 상징, 동방의 대유법으로도 종종 쓰였습니다. 특히 신격을 가진 전제군주를 표현할 때 그런 관용구가 종종 사용되었지요. 영화 '300'의 크세르크세스의 이미지(실제와는 좀 많이 다르지만)에 그런 것이 진하게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2. 창해 역사는 진시황의 천하순행 중에 그 마차에 철퇴를 던졌다는 유명한 암살자입니다. 그와 같이 간 장량이 엉뚱한 마차를 지목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하고, 잡혀서 죽습니다. 장량은 도망쳤다고 합니다;; 다만 사기 유후세가에 기록되어 있다 하여도, 이 인물의 정체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습니다.
3. 경제, 개발 등은 독자분들도 아시다시피 이때 조선에서 쓰던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4. 실제로 북한에서는 노동신문에 저런 생활 토막상식을 자주 싣습니다. 저 과일껍질 설탕 얘기는 6, 70년대가 아니라 2020년경에 실린 것입니다.
저것 말고도 어디 서바이벌 상황에서나 쓸 법한 것들을 '자력갱생' 이라며 국내 자원으로 해결하려고 드는데... 그게 잘 되면 세계가 무역을 할 필요가 없겠죠? 무역제재가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아마 북한 매체를 직접 보신다면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토법고로는 마오쩌둥이 ‘무한한 군세의 중국 인민이라면 숫자로 제철소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개별 철 생산을 시킨 정책이었습니다. 소련과 척져버린 당시 상황에서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던 것도 사실이기는 한데, 아시다시피 망했습니다.
5. 아시다시피 이 시기는 전체적으로 조선이 계속 흉년이었습니다. 중국도 많은 지역이 그랬고요. 그리고 현재 시점으로부터 2년 후,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면서 기후 재해는 더욱 악화일로를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