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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81화 (181/284)
  • 183화

    55. 삼국쟁패(3)

    조령은 비단 최근 김회연이 김조순의 군대를 막아낸 곳일 뿐 아니라,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명운을 걸고 출진한 신립의 전장으로 검토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신립은 조령을 버리고 물러나 평야지대인 탄금대에서 싸웠으며, 선조는 봉인해 두었던 시간의 권능을 탄식과 함께 해방하여야 했다.

    물론 조령에서 싸웠으면 과연 승리하였을지에 대한 의논은 흥밋거리 이상의 의미가 없다. 조선군이 진 원인이 지형 때문만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런 의논은 한 가지 사실을 방증한다.

    조령, 그러니까 문경새재가 쳐들어오는 입장에서는 저절로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올 만큼 곤란한 지형이라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의 왜군과 같은 진로를 밟아야 하는 신라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을 따라 진군하는 대신라국 천병은 구름 위를 노니는 기분을 맛보았다.

    고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여름이 막 지났을 뿐인데도 헉헉대는 병사들의 주위에 차가운 안개가 떠돌았다.

    본래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서 이번에 특히 대장군(大將軍)에 임명된 이춘영(李春英)은 이 천병 중에서도 선봉인 계금당(罽衿幢)을 위임받았다.

    계금당이 신라 6정 9서당에 속하지 않는 국왕 직속부대였음을 감안하면 이춘영에게 보내는 김회연의 신뢰가 크다 할 것이다.

    과연 그는 계금당의 누른빛 제복을 펄럭이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장졸들은 벌써부터 주리고 지친 빛을 얼굴에 드러내지 마라. 계림 천년의 천명이 우리와 함께한다! 어찌 광영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야 자기는 계금당과 함께 말 타고 있으니(계금당은 기병부대다)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항의 말마따나 내 배가 부르니 종의 배고픔을 모른다[我腹旣飽 不察奴飢]는 진리는 그 자리가 높을수록 잘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감사지(監舍知, 신라군 부대의 감찰 겸 조언자)의 복장을 한 사람이 다가와서 말했다.

    “장군. 이제 주흘관(主屹關)에 도달합니다. 정시준은 제가 어릴 때부터 잘 아는데 그 음험한 수작과 교활한 지모에는 바닥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적도가 아무리 정예군이 아니라 해도 우리 천병을 보면 반드시 유리한 곳을 먼저 차지하려 들 것이니, 주흘관에서 더 나아간 조곡관(鳥谷關)과 그 다음 고갯마루의 조령관(鳥嶺關)까지 발 빠른 병사들을 먼저 보내야 합니다.”

    문경새재에는 요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3개의 관문이 있다. 그냥 걷기도 어려운 곳에 관까지 있으니 박기풍의 군대가 조령을 뚫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왜란 전에 진작 좀 설치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 순서는 감사지가 말한 대로 남쪽에서 올라가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다. 그러니까 조령관을 기준으로 그 북쪽은 충청도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혁명군이 신라의 출진을 눈치챘다면 먼저 조령관 하나라도 차지하려 들 것이다.

    김회연은 마치 이 나라만이 제대로 된 체제를 갖춘 것처럼 대신라국의 덕과 위엄을 선전했으나, 여기도 과거 조선 왕국의 시체 위에 얼기설기 짜 맞춘 군벌 세력인 것은 마찬가지다.

    조령관에도 ‘대신라국의 병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곳의 장졸들은 황제 선포와 천병 출진의 뜬금없는 칙서 한 장밖에 받은 게 없다.

    따라서 기습에는 상당히 취약한 상태다. 듣기로 정시준은 환술로 사람을 속인다 하던데,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대장군 이춘영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그 ‘정시준을 어릴 때부터 잘 아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과연 감사지의 말이 옳다. 스무 기(騎)를 갈라 줄 테니, 선봉으로 급히 나아가 관의 방비를 튼튼히 하라.”

    “대장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춘영은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마침 그대는 평안도 비적들과도 안면이 있다 하였지. 가서 적장의 사람됨을 보고 동태를 탐지해 보라. 공을 세운다면 폐하께 아뢰어 반드시 그대를 크게 쓰도록 하겠다.”

    “이 우(禹) 아무개를 대장군께서 알아주시니 마땅히 뼈를 깎아 신명을 다하겠소이다.”

    그는 놀랍게도 옛날 평양성 전투 때 돌격하는 관군을 피해 달아났던 우군칙 그 사람이었다.

    홍경래의 참모였던 만큼 우물쭈물하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우군칙은 정시준과 멀어져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서북 끝에서 동남 끝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그는 홍경래가 평안 감사 이만수를 참수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조선 땅이라고 해서 그가 편히 쉴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우군칙은 모험을 했다. 마침 북방을 잘 아는 인재가 없었던 김회연은 그를 받아들여 주었고, 김회연이 독립 세력을 구성하자 우군칙 역시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계금당의 감사지라는 요직까지 해먹었으니 모험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외부인이라는 특성상 끊임없이 공을 세워 존재감을 보이지 않으면 언제 숙청될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번의 대북방 전쟁은 좋은 기회였다.

    우군칙은 이춘영이 갈라 준 스무 기를 이끌고 앞으로 달렸다.

    ‘단지 척후의 역할만 한다면 어차피 평안도 사람인 내 공은 잊힐 터이다. 태대각간의 말대로 정시준이 이 조령에 정예병을 보낼 여유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두 사람의 장수 정도야 믿을 만한 자를 두었을 터. 그자는 필경 의주나 평양 사람이겠지.’

    그다지 나무라기도 힘든 추측이었다. 우군칙의 야망은 말발굽 또각대는 소리와 함께 부풀었다. 신라에서 시작하는 두 번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정시준이 데리고 있을 만한 자들 중 무재가 있는 자라면…… 이제초? 양시위? 누구든 나와 옛날에 친했던 자들이니 내가 말 잘 해서 귀순시켜 보자. 그리하면 나의 공을 아무도 시비할 수 없으렷다!’

    그러한 우군칙의 예상은 그다지 틀리지 않았다.

    조령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혁명육군의 지휘관 중에는 우군칙이 아는 자가 있었다.

    ***

    제2관문 조곡관에 도착한 우군칙은 감사지라는 본직에 어울리도록 거드름을 피우며 ‘병사를 점검’하고 앞의 상황을 물었다. 병사 한 명이 대답했다.

    “고갯마루에 있는 조령관에도 별 탈은 없습니다. 방금도 그쪽에서 사람을 보내왔는데, 도적 떼 이삼십 명이 얼쩡거리기는 하였으나 곧 쫓아버렸다고 하오이다.”

    “그렇군. 너희의 노고는 내가 대장군과 폐하께 틀림없이 아뢰도록 하겠다.”

    역시 고려군의 목적은 신라가 조령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인 모양이었다. 우군칙은 더 볼 것 없이 바로 조령관으로 출발했다.

    조령관에서 들은 말도 대체로 비슷했다. 우군칙은 여기에서 기다리다가 고려군의 장수에게 접촉해 보기로 하고, 마찬가지로 관의 무기며 병마를 점고해 보았다.

    그런데 그러던 중 우군칙의 눈에 특이한 자가 띄었다.

    모이라는데 모이지 않고 저편에서 짐짓 꾸물대며 다른 잡일이 바쁜 척하는 병사가 하나 있었다. 우군칙은 그를 불렀다.

    “거기 너는 누구냐? 체구가 매우 장대하구나. 이 문경 고을의 장사인가?”

    그 병사는 연거푸 부르고 나서야 머뭇대며 와서 무릎을 꿇었다.

    벙거지를 푹 눌러써서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복식은 틀림없이 일개 병졸. 우군칙은 신라 황제의 뜻을 받들어 장군들의 용병을 살피는 감사지로서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대인(大人)이 당도하였는데 어찌 인사도 없다는 말이냐. 이름을 밝히지 못할까!”

    벙거지 아래에서 한숨과 함께 대답이 새어 나왔다.

    “하필 온 게 이 새끼야? 진짜 아직도 살아 있었을 줄은 몰랐네.”

    우군칙의 뇌세포 사이에서 대규모의 치명적 오류가 발생했다. 잠시 동안, 우군칙이 할 수 있었던 생각은 ‘얘는 이름이 왜 이렇게 길어?’ 정도였다.

    우군칙이 그 부조리함에 멍하니 병사를 바라보는 동안 병사는 일어나서 벙거지를 쓱 들어 올렸다.

    “뭘 그렇게 보시오? 나 총각이요!”

    벙거지 아래에서 거친 수염을 드러내며 씩 웃는 자는 과거 행주산성에서 그 위명을 드높인 2영대장 홍총각이었다.

    사실 그건 우군칙이 기대하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상대는 혁명군이었고, 더하여 우군칙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군칙은 이러한 만남을 자기는 성 위에, 상대는 성 아래에 있을 때 가지기를 바랐지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잠재의식 아래 가라앉았던 우군칙의 기억이 정신적 외상을 일으키며 모조리 구체화되었다.

    우군칙은 혁명군의 서울 함락 과정을 보지 못했지만 평양성 앞에서 거의 단신으로 홍경래의 대군을 가로막았던 대동강 장익덕의 모습은 똑똑히 기억했다.

    우군칙은 비명을 질렀다.

    “소, 속았다! 계금당, 계금당!”

    빡! 홍총각의 발길질이 우군칙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주석 빼고 양계 최강의 남자 홍총각의 발길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군칙은 눈을 뒤집은 채 쓰러졌다.

    그리고 동시에 사방에서 달려든 조령관 주둔군, 아니 혁명군 2영대가 스무 기밖에 안 되는 계금당 선봉대를 모조리 사로잡았다.

    김회연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시준과 정치국이 호남을 우선 목표로 잡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말이 곧 전력을 호남에만 투입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시준은 한쪽을 빠르게 정복하고 다른 한쪽으로 군대를 돌리면 된다는 어딘가의 시각표 성애자들 같은 계획 따위 짜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견실하고 여유 있는 공무원이었다.

    그래서 호남에는 신규 영대인 6, 7, 8, 9영대가 내려갔다.

    그들이 금강에서 노래나 부르고 있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소드마스터 김좌근의 대군과 정면으로 부딪치기에는 아직 그 4개 영대의 경험도 믿을 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쪽의 진짜 전력은 목포와 무안으로 상륙한 혁명해군이었다. 5천에 달하는 혁명육군은 말하자면 미끼였던 셈이다.

    조선군을 다룬다는 것은 극히 민감한 입자물리학 실험과 유사하다. 약간의 통제 조건만 상실해도 방사능 동위원소 붕괴하듯 무너진다.

    후방이 어지러워지고 김좌근의 대군이 자연스럽게 해체되면 그때 돌입하면 된다. 그 정도 임무는 신규 영대로도 충분하다.

    그러므로 군사적 측면에서 더 이상의 호남 전선 강화는 낭비다.

    나머지는 영남을 막아야 했다. 정시준은 그 중대한 골목에 허수아비 의병(疑兵)만 배치할 만큼 무모하지 않다.

    김회연이 상놈들이라고 좀 심하게 깔본 모양인데, 고려가 조선을 치면 신라가 그 틈을 노릴 거라는 정도야 동네 골목대장 어린애도 짐작할 기초적 세력 균형 전략이다.

    따라서 혁명군 중 서울을 함락시킨 정예 2, 3영대가 조령을 틀어막게 되었다.

    숫자는 적지만, 그 뒤에서는 이제초의 계룡산 주둔군이(원래 1개 복대 규모인데 왜인지 몰라도 지금 어마무시하게 늘어나 있었다) 뒤를 받쳐 주니 실로 전투력과 사상력 양쪽에서 충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2영대는 혁명의 전위대로서 공화국 최정예를 자부한다.

    당연히 그 대장 홍총각 역시 매우 전위적인 전술을 구상했다.

    사실 홍총각이야 원래 출신이 깡패. 그의 전술안은 신립보다도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많은 전투를 치르는 동안 홍총각의 경험도 쌓였다.

    그는 그냥 산 아래에 있기만 한다면 고갯마루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적의 대군을 막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초와 상의한 홍총각은, 김회연이 이춘영에게 부월 하사하고 있을 때쯤 허름한 유민으로 변장하여 문경새재에 올랐다.

    정시준 비적패에게 쫓겨 안전한 경상도로 간다는 소리에, 조령의 관군은 간단한 무기 검사만 하고 관문을 열어 통과시키려 했다. 김회연은 세력 강화를 위해 유민을 적극 받아들이라는 명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게 실수였다. 제대로 된 출입국 관리시설도 없는 주제에 개방 정책 같은 거 함부로 시행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김회연은 뼈아프게 새겨야 마땅했다.

    홍총각은 원래 무기 같은 게 필요 없는 남자다. 단숨에 관장(關長)을 습격해 목을 부러뜨리고 칼을 빼앗은 홍총각은 김좌근도 감탄할 속도로 병사 서너 명을 베어 넘겼다.

    병사 몇 명이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가자, 홍총각을 따라온 나머지 ‘유민’들도 가세했다. 발뒤꿈치나 옷짐 꾸러미 안에서 날카로운 비수며 손도끼가 튀어나오는 마술이 펼쳐졌다.

    이 시점에서 조령관은 황제가 군대를 출병시킨 줄도 몰랐다. 그래서 대비는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김회연도 조령이 요충인 줄은 알았다. 그러나 조령에 세운 관은 수많은 군대가 주둔하기는 어려운 곳이었고 김회연은 병력의 대부분을 역내 안정에 써야 했다.

    그나마 황제 선포하고 국내가 좀 정리되자마자, 조선을 신속시킨다는 목적과 엮어서 곧바로 조령을 향해 출병시킨 것도 김회연이나 되니까 할 수 있는 실리적 일처리다.

    그러나 혁명군은 그보다 더 빨랐으며, 그래서 일은 간단히 끝났다.

    그렇게 조령관을 점거한 홍총각은 접근하는 신라군의 척후가 적은 것을 보자 아예 모두 생포하겠다는 대담한 작전으로 나왔다.

    그는 2영대원들과 함께 관병(關兵)의 옷을 빼앗아 변장하고 기다렸다.

    뜬금없이 우군칙이 나왔을 때는 다소 긴장하긴 했지만, 홍총각의 임기응변은 전위적으로 발휘되었다.

    그는 신라 군주의 표하기 계금당을 귀한 군마와 함께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주석 동지께서도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실 것이었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우군칙은 얼마 전 2관문 조곡관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분명 그들은 멀쩡한 얼굴로 ‘조령관에서 고려군을 쫓아 보냈다’라고 말했다.

    ‘거기도 이미 적도의 손에 떨어진 후였구나! 내 눈깔이 옹이구멍이었어!’

    옛날 홍경래가 죽이자고 했을 때 그 재앙 덩어리를 죽였어야 했다. 우군칙은 눈물을 흘리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

    2관문 조곡관에서 우군칙을 보내 준 것은 이제초의 군세였다.

    원래 홍경래의 수하였던 이제초는 과거의 친분으로 따졌을 때 우군칙과 가장 가까운 자 중 하나였지만, 홍총각처럼 눈에 뜨이는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주의 깊은 성격이었기에 이제초는 거기에서 우군칙을 때려잡는 게 아니라 뒤편 조령관으로 보내 준 것이다. 그래야 혹시 홍총각 쪽에서 일이 잘못되어 ‘신라군’이 도망치더라도 이제초에게 걸려들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작전은 성공했다.

    생포한 우군칙과 계금당 군사로부터 진격해 오는 적의 군세, 치중, 약점, 지휘관 등등 모든 정보를 뽑아낸 홍총각은 이제초에게 그것을 바로 전달했다.

    그래서 이제초는 형편없이 적은 군세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조흘관을 지나 마주쳐 오는 신라의 대군을 오시(傲視)했다.

    천자의 군대답게 ‘선봉 대장군 이춘영’ ‘분충출기합모적의(奮忠出氣合謀迪毅)’ ‘화랑출병 임전무퇴’ 등의 여러 화려한 깃발이 보였다.

    이제초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제초는 코웃음을 쳤다.

    “너무 강한 말을 쓰지는 말아라……. 약해 보이지 않느냐.”

    이제초가 거느린 계룡산 주둔군은 그 전원이 정치장교라고 해도 될 정도다. 사상 투철한 혁명군 군관들 역시 이제초와 같은 심정이었다.

    이제초의 말은 나직했으나, 병사들은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허의 힘이 조곡관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정 진인의 영압인 모양이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설사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정 진인과 함께 걸어가는 한 우리 앞에 적은 없다.”

    그러나 상대도 비상식으로는 만만치 않았다. 어디 당태종이 안시성 공격할 때 썼을 법한 높은 누각이 둔한 소리를 내며 밀려왔다.

    조령에는 끌고 오는 것 자체가 대역사(大役事)인 물건. 김회연도 조령 3관 중 하나 이상이 혁명군에 의해 점거되었을 가능성은 짐작한 모양이었다.

    그 걱정대로, 이미 앞에 와서 문 열라고 외치던 녀석은 총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분노한 신라군은 전력으로 조곡관을 함락시킬 태세였다.

    그러나 거기 탄 것은 군사가 아니었다. 문관의 차림을 한 사람 하나가 그 위에 서서 비단 두루마리를 장엄하게 펼쳐 들었다.

    그는 체구에 비해 우렁찬 목소리로 신라 천년 천명의 정당성을 떠들었다. 정시준과 같이 혹세무민하는 도사의 말에 속지 말고 어서 정도에 투항하라는 권고도 함께였다.

    꽤 먼 거리였기에, 다른 병사들이 그 말을 받아 한꺼번에 외치고 나서야 조곡관에도 내용이 들렸다. 이제초는 피식 웃었다.

    “감히 정 진인을 제쳐 두고 천좌에 앉으려 한다면, 우리가 쏘아 떨어뜨려 주지.”

    공화국에 저격수가 기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공철은 행주산성 전투 이후 저격수를 따로 선별해 우대하였고, 여기에도 몇 명쯤 포수 출신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누각은 조총의 사거리보다 멀찍이 물러나 있었지만 지금 그들이 들고 있는 총은 조총이 아니다.

    조금 후 이 인원에 비해서는 크지 않은 소리가 났다. 누각 위에서 엄숙히 발표되고 있던 천명은 칙사와 함께 땅에서 떨어졌다.

    “그 정도 여력으로 우리를 쳐부순다 하였느냐.”

    혁명군은 흉벽 위에 덮여 있던 의주천을 일제히 벗겼다. 신라군의 눈에는 무수해 보이는 3킬로그램포의 위용이 드러났다.

    신라 군사들은 놀라서 성과 누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제초는 별로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말했다.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거다.”

    혁명군이 줄을 잡아채자,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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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1. 신라에는 9서당 10정으로 대표되는 정규 관군 말고도 여러 부대가 있었습니다. 계금당은 그 중 하나로, 왕 직속 기병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라는 옷차림, 소속 출신국 등 부대별 특색을 강하게 유지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작중에는 육정 구서당이라고 나왔는데, 이는 삼국 쟁패기의 조직이고 통일 신라 후의 조직이 9서당 10정입니다. 혼동될 수 있습니다만 이때의 6정은 9서당(중앙군)의 전신이지 10정(지방군)의 전신이 아닙니다.

    2. 분충출기합모적의는 충성을 떨쳐 기운을 발하여 지모를 모아 굳세게 나아간다는 뜻으로, 왜란 때 전쟁에서 적을 토벌한 1등 공신에게 내려지던 시호였습니다. 2등 공신은 글자를 줄여 '분충출기적의' 3등은 더 줄여 '분충출기'로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합' 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3. 오랫동안 전쟁이 이어졌군요. 워낙 험악한 시대라서. 다음 화부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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