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55. 삼국쟁패(2)
다경포(多慶浦, 전남 무안군 부근) 만호 이수문(李守文)은 일단 전선 5척을 벌려 세워 앞으로 나아갔다.
겁먹은 병사들을 닦달하여 요란하게 북을 치고 피리를 울리며 가끔 화포까지 쏘는 것이, 누가 보면 정말 싸울 수 있는 군대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다경포 함대는 장시경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쯤 해서 훈련 중 큰불이 나는 사고를 겪었다.
백여 명이 죽고 시체도 거의 못 건지는 등 당대의 표현으로 ‘극도로 참혹하고도 민망스러’웠다. 하늘이 막 즉위한 강철군주에게 미래의 실기를 경고함이 이와 같았다.
그래서 이수문이 끌고 나온 전선 5척은 다경포와 그 인근의 전체 전력이었다.
마침 도원수 김좌근도 옥구현의 혁명군을 보자마자 전라우수영의 무게 중심을 북쪽으로 급히 이동시켜서 그나마 3척을 더 지원받은 게 이 정도다.
그런 처지일지라도 기세란 항상 중요하다. 개불이가 포함되었던 장시경의 반란도 인동부(仁同府, 경북 구미시) 관아 이방의 호령 한 소리에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수문은 애써 호령했다.
“옛날 충무공이 말하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하였다. 너희들은 저 전무후무한 반적에 맞서, 상하가 한가지로 저 왜란 때 명량의 수군과 같은 각오를 하라!”
그런데 충무공의 그 말은 정신론이 아니다. 어디의 황군이나 주장할 그런 정신력 만능주의를 충무공에 대입시키는 것은 다시없는 모욕이다.
그것은 지극히 실용적인 양자택일의 강요다. 살려고 도망치는 자는 내 손으로 죽여줄 것이요, 죽기로 싸우는 자는 나의 신묘한 전술로 살려주겠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발화자는 그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적이 무엇이건 간에 병사들의 생사여탈은 오로지 자기 손에 달렸다는 진실을 명량 이전까지 담백하게 입증했다. 그래서 병사들은 모두 그 제안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없었다.
되풀이하여 증명되는 사실이지만 조선군의 힘은 이유 없이 사라지는 만큼 이유 없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전력이 대폭 증강된 조선군은 왜군을 여지없이 격파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말만 똑같이 한다고 이순신이 되는 게 아니다.
병사들은 이수문의 말에서 지금이 명량급의 위기라는 사실만을 감지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이수문은 이순신급의 장수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그들이 남성의 성기가 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래도 이수문의 기개가 당장 퇴색되지는 않았다. 그는 곧 명량의 이순신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수문은 갑자기 자기 배만 앞으로 죽 나아가는 상황을 보고 자기가 첨자찰진(尖字札陣)이라도 지시했나 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5척으로 첨자찰진이라는 것은 농담일 뿐이다. 이수문은 곧 상황을 깨달았다.
“머, 멈춰라! 다른 배는 왜 나아오지 않느냐. 초요기를 뱃전에 걸어라! 서둘러!”
죽기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슬금슬금 달아나다니, 이수문은 분노했다. 그는 가장 먼저 오는 배에게 이순신이 안위를 꾸짖었듯 불호령을 내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호령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꽝!
조선군 기준으로는 도저히 포격 거리가 아닌 곳에서 폭음과 연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조선군 모두가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이수문의 배 바로 ‘뒤쪽’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치솟았다.
퍼펑! 쏴아아……. 병사들은 튀어 오르는 바닷물을 뒤집어썼다. 그것은 그들의 정신에도 같은 효과를 주었다. 잔열밖에 안 남은 그들의 전의는 간단히 차갑게 식었다.
“이런 화포가…… 서양의 화포 같소이다. 장군!”
“말도 안 된다. 저 반적 놈들이 어디에서 서양 화포를 손에 넣었다는 말이냐!”
“정시준이라는 자는 의주 만상의 장사치였다 하던데, 옛날 용천부 통무아문 시절 영길리인과 통하지 않았겠소이까?”
그 정확한 지적은 만호를 침묵하게 했다. 상대도 조선 배같이 생겼던지라 당연히 일반적 이 시대 해군 전술의 준비밖에 안 해온 다경포 수군은 모두 크게 놀랐다.
사실 그 정도 놀라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시준이 영국 기준으로도 신형 무기인 이 32파운드 롱 건을 빼돌리기 위해 영국 기술자에게 갖다 바친 아편과 대마초, 스페인 달러의 무게를 다 합하면 아마도 지금 발사된 포탄보다 무거울 것이다. 돈 쓴 만큼의 보람은 있어야 했다.
이수문과 군관들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저 화포의 출처에서 따라오는 정치적 쟁점, 그러니까 소위 고려인민공화국이 서양과 내통하였다는 공박보다 더 긴급한 신호가 이 포격으로 드러난 것 같았다.
정규군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우수영 소속 군관들은 얼마 있지 않아 깨달았다.
착탄이 이 배 뒤쪽에 되었다는 의미는, 곧 저 화포의 사정거리 안쪽에 이미 기함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들은 사람의 구강 구조로 가능한가 싶은 발음 조합의 괴성을 내지르며 배를 빠르게 뒤로 물리라 외쳤다.
물론 조선 수군을 깔보면 곤란하다. 격군들은 전장의 상황을 알아서 관측하고 적시에 판단하는 근대 독일식 임무형 지휘체계를 적극 발휘했다.
알아듣기 어려운 그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 물보라가 솟구쳤을 때부터 이미 기함은 후진 중이었다. 전력으로 젓는 노에 물살이 힘차게 부서지며 배를 뒤로 밀었다.
나머지 배들도 마찬가지였다.
***
조선제 32파운드 롱 건인 ‘16킬로그램 혁명포’는 총 2문이 제작되었다.
하나는 영국인들의 조언과 감독 하에 1함대 기함 하백에 설치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2함대에 주어졌다.
하지만 급조된 2함대에는 서양 배가 없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은 그냥 조선 대전선의 앞갑판 가운데를 뜯어내고 그것을 달았다.
배에 포를 얹는 일은 그냥 끌어다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세심한 무게 배분과 반동 제어를 위한 공학적 계산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자는 주석 정시준을 포함해 아무도 없다.
문순득이 영국에서 몇 년 유학하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영국 해군의 (매수된) 기술자들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이 포를 이 배에 달았다가는 뒤집히거나 선체가 크게 파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바다 사나이들은 하남자스럽기 그지없는 유럽인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배가 부서지면 고치면 그만이고 뒤집히면 재주껏 헤엄쳐서 빠져나오거나 옆 배의 동지들이 구해주면 그만이지, 그런 핑계로 이 강력한 대포를 달지 못한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어, 그러니까 자네 이름이 좆이었던가. 인정이 아쉬워서 뻗대는 거지? 그렇지? 내가 나중에 아편가루 까슬까슬하니 광택 나는 걸로 한 줌 빼돌려 줄 테니까 계집애 같은 소리 그만두고 일단 해 보자고.”
“이 미친 조선 놈들아. 진짜 안 된다니까. 너희 또 그렇게 말하고 나서 사고 나면 우리를 시멘트에 묻어 바다에 던지려고 그러지? 그리고 은근슬쩍 조선말로 욕하면 모를 줄 아냐? 난 조지(George)야! 성 게오르기우스의 이름이라고!”
“허허. 참. 영길리인들은 그런 헛소문을 너무 잘 믿는구먼. 설마 우리가 ‘프렌드’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하겠는가? 이보게 좆. 여러 소리 말고 일단 저쪽 가서 얘기하세. 어차피 자네와 우리의 돈독한 교분이 모함하기 좋아하는 소인들에게 알려지면 자네 이름 따라가는 처지밖에 더 되겠는가.”
이미 영국 해군과 동인도 회사 사람 중 적지 않은 수는 공화국의 주의 깊은 공작에 의해 매수되어 있었다.
절반 정도는 조선의 신묘한 약재를 장복하고 있고, 나머지 반도 그 약재를 중국에 몰래 팔아 얻는 이득 때문에 합류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 와서는 그 커넥션을 까발리겠다는 협박만으로도 어렵잖게 많은 ‘프렌드’를 협조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영국인들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실제로 오면서 대충 해 본 시험 사격에 의하면, 2함대 대장선에 억지로 거치된 함포는 솔직히 말해 무기로서의 가치가 없었다.
적선에는 거의 확실하게 명중을 실패하지만 아군 배에는 거의 확실하게 타격을 주니 이게 장거리 무기인지 근접전 무기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배신자 영길리 놈’들에게 분개하며 돌아가는 대로 대독과 ‘쎄멘’을 준비해야 하겠다고 거품을 물었다.
***
그래서 문순득 또한 빗나간 초탄에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이 시대 조선 사람들처럼 문순득에게도 대포란 파괴 무기라기보다 심리 무기였다.
“저놈들이 우리 혁명포의 위엄에 겁먹고 나아오지를 못하는구나! 동지들, 한 발 더 쏘도록 하라!”
“예, 제독 동지!”
천자총통의 거의 5배에 달하는 장약이 대장군전의 절반 정도 무게에 해당하는 쇳덩어리를 밀어 올리자, 철환은 저 고매한 뉴턴의 운동법칙에 의해 조선인의 상식을 벗어난 이동 거리를 달성했다.
문순득이 타고 있는 혁명제8전선(革命第八戰船)은 원래 경기수영 대전선으로서 꽤 큰 배였지만 역시 뉴턴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대전선은 심하게 흔들리며 결합부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같은 배라도 반동이 몰 때와 혁명이 몰 때는 다른 법이다.
영국 기술자들이 모두 미친 짓이라고 평한 32파운드 롱 건의 대전선 설치에도 불구하고 전선은 버텨냈다.
버텨내지 못한 것은 반동의 배 쪽이었다.
열성적으로 관측에 임하던 개불이가 헛바람 삼키는 소리를 내었다.
“명중하였소이다!”
“뭐? 왜?”
왜 그랬는지는 하늘만이 알겠지만, 어쨌든 그들이 놀라 보라고 발사한 포탄은 정말 놀랍게도 도망치던 다경포 전선 중 하나에 명중했다. 하긴 궁극기 쓰면 꼭 따라가서 처맞는 소환사는 어느 협곡에나 있다.
인류가 제대로 된 작렬탄을 개발하려면 좀 있어야 해서 화려한 불꽃을 일으키며 굉침하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무기는 적을 무력화시킬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옆구리에 큰 구멍이 뚫린 조선군 전선은 사람을 사방으로 던지듯 뿌려대며 – 뛰어내려 탈출하려는 것이다 – 서서히 가라앉았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대장 문순득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제프 푸셰의 정치장교 중 하나였던 정감록파 인사 김국주(金國柱)였다.
김국주는 과연 혁명군 사상의 모범답게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선창했다.
“정 진인이 도력으로써 포탄을 영도하여, 그 길을 따라간 철환이 적선을 대파하였다!”
그러자 다른 장졸들 역시 정신을 차렸다. 이게 바로 정치장교의 역할이다.
“오오오! 이것이 바로 진인의 도술!”
“혁명의 전법! 신묘한 전법! 정 진인 쓰신다!”
혁명해군 2함대는 노래를 부르며 다시 힘차게 노를 저었다. 아군이 피격당하자마자 속도를 2배로 올려 달아난 나머지 4척의 전선이 다시 현실계에서 관측될 일은 없을 것이다.
문순득은 정치장교를 곁에 둔 모든 지휘관의 고민을 느꼈다. 아무래도 김국주가 자기보다 더 주목받는 듯했다.
그래서 문순득은 짐짓 소리 높여 외쳤다.
“지금부터는 특히 주의하라! 물살이 험하고 바위가 많으니 동지들은 나의 인도에 잘 따라오도록!”
지금 혁명해군이 습격한 다경포 인근은 바로 남쪽으로 목포라는 요충이 있고, 그 서쪽으로는 현대의 신안군(新安郡)이 있다.
그러나 신안은 그 이름에서 보듯 새롭게, 그러니까 20세기에 설립된 군이다. 그 모태가 된 지도군(智島郡) 역시 설정 짜기 좋아하던 고종이 잠깐 만든 명칭이다.
결론적으로, 조선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이 일대는 영광, 무안 등등 인근 여러 군의 소속이 뒤섞여 있는 섬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행정구역의 잡탕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관할 구역을 칼같이 지키는 조선의 수령들은 이 험난하기 짝이 없는 섬과 암초와 격류의 군집에서 얼른 출동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천 년 전 여기를 견훤이 아니라 수달이가 통치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정치국이 지정할 혁명해군의 상륙 장소로 적절하기 짝이 없었다.
청어 잡던 사람과 삼화부 부두 노동자까지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 천 명에 가까워진 혁명해군 수병들은 다경포와 목포에 나누어 내렸다.
문순득은 배를 몰 전력은 남겨 두었다. 곧 분노한 전라우수영이 함대를 끌고 – 영국 해군은 피해서 – 여기로 올라와 상륙 지점을 소탕하려 들리라는 점은 명백했다.
혁명해군 2함대에는 32파운드 롱 건 말고도 영국 함포를 조잡하게 모방한 여러 시험적 함포가 실려 있으나, 아무래도 대부분은 조선 수군과 장비가 대동소이한 데다 훈련도도 높지 않다.
게다가 숫자까지 적으니 정면 대결은 무리다. 문순득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 복잡한 섬에서 조선 수군을 계속해서 괴롭히며 지연전을 펼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상륙한 수병들은 거점을 확보하고 인민을 차근차근 해방시키며 반동 군세의 보급을 하나둘 끊어 놓을 것이다.
***
시준은 자기 동료들만 북한 같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원래 모두 조선인이다.
따라서 정찰총국은 고려인민공화국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조선인의 가슴 속에는 ‘그 조선’도 내재되어 있다.
김회연, 아니, 대신라국 경명황제 또한 여러 군데에 간자를 풀어 두었다.
아름답고 용맹한 화랑들이 특히 그 임무에서 잘 활약했다. 워낙 아름답고 용맹하다 보니 벌써 충청도와 강원도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은 인민위원회의 사상검증에 휘말려 비명횡사하거나, 때로 더 끔찍한 꼴도 당했지만 그 정도 위험도 없으면 간첩이 아니다.
귀환한 간자들이 전한 소식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소위 고려인민공화국의 병력 5천 명이 호남으로 향했다는 소식에 황제는 그 거룩한 천안(天顔)을 찌푸렸다.
정시준도 역시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일단 호남부터 정복하고 그다음에 남은 녀석을 노리겠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경명황제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묘당에서 신하들과 논의했다.
“옛 삼국의 할거를 보건대, 서로 버티어 선 세 둥치 중 하나가 사라지면 결국 가장 무거운 줄기 아래 깔릴 뿐이다. 여기에서는 예전 신라와 백제가 고려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던 일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상기하기만 할 뿐이다.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천자국이 어찌 옛 왕국의 잔당과 ‘동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2차 나제동맹은 약간 다른 형태로 흘러갔다. 김회연은 청해진의 배로 남해를 돌아서 호남에 칙사를 보내, 자신의 대자 대비한 뜻을 알리기로 했다.
고려에 대해 출병함과 동시에, 그 출병의 대가로 조선국의 신속(臣屬) 및 김좌근과 김희순의 실각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그러고 싶지 않겠지만, 당장 호남이 진멸당하게 생겼다면 ‘조선 조정’의 다른 인사들도 압박할 것이다. 김회연은 김좌근과 김희순이 호남에 별다른 지역적 기반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조선 입장에서 고려에 항복하는 것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이 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이웃 나라에 항복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외계인에게 항복하느냐 정도의 차이다.
체제가 유사한 군주국에 투항하면 적어도 조정 고관과 토호의 안전은 보장될 터이지만, 저 미친 ‘혁명당’은 바로 기존 지배계층부터 먼저 죽일 것이 분명하다.
이경춘 역시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조선왕’과 비 장동 김문 신하들은 필사적으로 연합할 것이다.
그렇게 권력을 잃은 장동 김문의 씨앗들을 적당한 핑계로 죽이고 나면 남는 것은 작년까지만 해도 그냥 백성이었던 이경춘 하나뿐. 서두를 것도 없이 김회연의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 이것이 천자의 정치다.
천자의 말은 지극히 무거운 법. 김회연은 칙사의 준비와 동시에 약속대로 출병하기 위한 준비도 서둘렀다.
때를 놓치면 호남 전체가 고려의 손아귀에 들어가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이유 외에도 실전적인 이유가 있었다. 태대각간 신서는 황제의 결단을 칭송했다.
“과연 지금 소위 고려국의 군세 중 정예한 무리가 모두 호남에 몰려가 있으니, 다른 곳은 필시 비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천병이 북을 치며 나아가 일거에 삼한을 일통할 때입니다.”
원래 상주 목사 하고 있다가 반강제로 파진찬(波珍湌) 관복 입고 좀 어색해하고 있는 정동교(鄭東敎)가 주저하며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비어 있다고 이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조령 북쪽에는 틀림없이 북쪽의 군사가 출몰하고 있습니다. 반적 정시준의 교활함이 가볍지 않으니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공화국 애들이 바보냐? 조령을 비워 두게?’라는 말을 조금 점잖게 한 셈이었다.
그러나 신서는 천년 역사에서 오직 김유신만이 받았던 태대각간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이미 반박 재료를 갖고 있었다.
“파진찬의 말은 사세를 깊이 살피지 못한 것이오. 그쪽의 고려구(高麗寇)는 삼천 명 정도인데, 벌써 정병 오천이 호남으로 몰려갔으니 이들은 무엇이겠소? 필시 하민에게 당장 총칼이나 쥐여 주고 만든 오합지졸이오. 짐짓 허장성세를 펼쳐 우리로 하여금 망설이도록 하고 있을 뿐이오이다. 어찌 속아 넘어갈 수 있겠소이까?”
김회연이 들어 보니 신서의 말 쪽이 그럴듯했다.
호남 합병이 최우선 과제인 고려로서는 거기에 총력을 집중하고, 신라 쪽은 임시방편으로 막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당장 김회연 자신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니까.
결국 경명황제는 결단했다.
“병귀신속이라 하였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형세는 수습할 수 없게 된다. 즉시 황명으로 조칙을 발하고, 금군을 제외한 모든 천병을 모아 조령을 넘게 하라!”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천병이라고 해 봐야 5천 명 남짓하기 때문이다. 경명황제가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곧 용맹한 대군이 대구에 집결했다. 저 관창의 의기를 오천 배 증폭시켜 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니까 황제가 그렇게 말했다는 뜻이다.
천병의 출진이 어찌 간소할쏘냐. 부월을 내리고 인장을 하사하고 병사들에게 감동적인 조서를 반포하는 행사가 앞다투어 꽃을 피웠다.
워낙 그리 요란하다 보니, 조령을 지키고 있던 혁명육군에게도 곧 그 소식이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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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첨자찰진은 이름 그대로 배가 尖자를 이루어 진격하는 대형인데 주로 대규모 선단의 진격에 쓰였습니다.
2. 32파운드 롱 건은 1800년경 영국 해군이 사용했습니다. 작중 시점으로부터 불과 10여년 전이죠. 들어가는 화약량은 약 5킬로그램으로, 천자총통의 다섯 배쯤 됩니다(통상 그렇다는 거고 전근대 화포는 이런 면에서 그다지 일률적이지는 않았습니다).
3. 화력과 명중률을 중시한 조선군이 대포를 큰 소리 내는 물건으로만 인식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문순득은 군인 출신이 아닌 것을 고려한 서술입니다.
4. 김국주는 원래 역사에서는 홍경래의 난에 참가했던 인물입니다.
5. 충무공의 말은 필사즉생 필생즉사이고, 그 원조가 된 필사즉생 행생즉사는 오자병법에서 나온 말입니다. 안위에게 하듯 꾸짖는다는 말은, 이순신이 명량 해전에서 홀로 나아가며 1대 133의 싸움을 치르고 있을 때(이기고 있었음), 도망쳤던 전선 중 안위의 배가 가장 먼저 복귀하자 이순신이 "안위야,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라고 외친 것을 말합니다. 안위가 그 후 곧장 왜적과 싸운 것을 보면 역시 왜군보다는 충무공이 더 무서웠음이 분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