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72화 (172/284)
  • 174화

    52. 조선의 반격(2)

    전라 감사 김희순은 그냥 어디 산골로 숨어 은둔하고 싶었다.

    지금 전라도 곳곳에서는 예전 격문을 내던져 그를 혼절시킨 김맹억을 중심으로 한 반역도당이 할거하는 중이었다.

    그 수는 고을 수보다 많았다. 이건 이미 체포가 아니라 전쟁이다.

    게다가 ‘영길리 해적’은 도처에서 날뛰고, 별 도움은 안 되지만 심리적 위안은 되었던 제주도와의 연결조차 끊겨 버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 친척 조카의 모습은 세상의 종언을 알리는 포고문 같았다.

    “서, 설마 서울에서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것이냐?”

    김좌근은 말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를 보호하고, 나아가 김좌근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자는 김희순 하나뿐이다.

    그래서 김좌근은 혁명당인지 뭔지 하는 상놈들은 흉내도 못 낼 반가의 예법을 엄숙히 갖추며 말했다.

    “평안도의 대역적, 북방의 도괴(盜魁) 정시준이 서울을 떨어뜨리고 주상 전하와 백관, 공경을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아비를 모시지 못한 죄는 불효요, 사직을 지키지 못한 죄는 불충이라. 그 자리에서 만 번 죽어 마땅하지만 저까지 붙잡히면 부친의 유지를 이을 사람이 없어지는고로 구차한 목숨을 보전하였습니다.”

    형을 총으로 쐈다는 얘기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뺐다. 그 대신, 김좌근은 부친의 유지라는 말을 슬쩍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김조순의 의지 – 다시 말해 장동 김문의 의지를 대표한다는 암시를 주었다.

    어차피 서울이 떨어지기 전 내린 명으로 보아 김조순의 의중도 김좌근에게 있었을 터. 김좌근은 이것이 바로 부친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김희순은 그 암시를 알아들을 틈이 없었다. 김좌근이 전한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김희순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 한성을 실함하였다고!”

    “아직 못 들으셨습니까?”

    “여기도 위태함이 임진년의 왜란보다 심하여 미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실로 천하가 모두 도탄에 빠졌구나. 그나마 영남순무사의 군세가 넘어와서 이제부터 기세를 가다듬어 역적을 다시 토벌하려 하던 참이다. 그런데 조정이 없어졌다니……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

    원자도 없다면 새로 분조를 만들 수도 없다. 이제 그들은 그저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군벌로 전락했다.

    하지만 호남은 ‘그저’라고 할 수 없는 지방이다.

    조선에서 잉여 식량 생산이 가능한 곳은 사실상 삼남뿐. 그중에서도 호남이 압도적이며, 그래서 조정의 세곡은 오로지 여기의 소출에 의지해 왔다.

    그리고 경제적으로서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도 호남은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다.

    김좌근은 그것에 주목했다. 그는 되도록 자신감 있어 보이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말했다.

    “아저씨께서는 모든 것을 이 어리석은 조카에게 맡겨 주십시오. 역적에게 백 년 운수가 있겠습니까. 곧 정도는 돌아오고, 반드시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네게 무슨 좋은 수가 있느냐?”

    “예. 우선……. 온녕군(溫寧君, 태종의 일곱째 아들)의 자손이 전주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조선 왕실의 본관은 전주다. 조선 사람들도 ‘우리 성조의 근본’이라 부르며 전주를 왕조의 고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 혁명군은 이성계가 울루스부르카(이자춘)의 아들 아기바토르라며 몽골족과 여진족의 잡종이라는 흑색선전을 퍼뜨리고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물론 이 안을 입안한 정약전과 실행한 조제프 푸셰는 둘 모두 사실 따위 관심 없다).

    어쨌든 굳이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남방계 출신이다.

    그런데 왜 먼 동북에서 몽골 이름과 다루가치 관직까지 받고 살았느냐 하면, 역시 전주이가의 유전자에 새겨진 질주본능 때문이다.

    왕가의 화려한 도주 편력은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부터 시작된다.

    그는 관기 하나를 두고 별감(別監)과 삼각관계 치정로맨스를 찍다가 고려 조정에 의해 찍히고 말았다.

    그러나 로맨스 판타지의 국가 고려의 호족은 각자 가진 사병 때문에 치안 시스템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저 기분 나쁘다고 집이고 사람이고 막 썰어대는 소드마스터를 일개 월급쟁이 경비대원이 체포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척준경이 괜히 고려 출신인 게 아니다.

    그래서 이안사 정도 호족을 잡으려면 국가가 작정해야만 가능했다.

    그러나 이안사의 연적은 정말 국가가 작정하게 할 만큼의 뒷배를 가진 상대였고, 이안사는 고려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동북면으로 가솔을 이끌고 도주했다.

    고려 정부는 그 도주 과정에서 이안사를 체포하지 못했다. 수백 년 뒤에는 그 최속의 유전자를 궁극적으로 개화한 자손이 나오게 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그런데 이 시대는 집성촌이 보통이다 보니 전주에는 이안사와 함께한 가솔 말고도 남아 있는 식구가 있었다.

    따라서 왕조 개창 뒤에도 간간이 돌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이성계의 자손이 모두 왕손인 것은 아니라서, 서울에서 정 먹고 살기 힘들면 그나마 일가친척 모여 사는 전주로 돌아오는 선택지도 고려할 만했다.

    원래 역사에서 온녕군파 자손들은 순조 치세에 전주부로 돌아온다. 그래서 현대의 진안군(鎭安郡)에도 전주 이씨의 집성촌이 남아 있다.

    지금은 격화된 혼란 때문에 그 시일이 약간 앞당겨졌다. 현재 이쪽 분파를 이끄는 가독 이경춘(李慶春)은 강철군주가 도성을 떠났을 때쯤 해서 가솔들을 데리고 전주부에 정착했다.

    그 후 도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상당한 선견지명이라 할 것이다.

    김좌근은 그 점에 유의했다.

    그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러나 김조순에게도 실수는 있다는 사실 또한 인정했다.

    김조순은 조종의 편의성 때문에 지나치게 어리석은 사람을 왕으로 앉혀 파멸을 초래했다.

    그러나 이경춘이라면 괜찮을 터이다. 혼란기의 출세를 노리고 서울에 남아 있었던 이병원(이품)과 다르게 잽싸게 가전의 특기를 발휘한 그의 성격은 의심할 바 없이 위험 회피형이었고, 존재하지도 않는 권력에 취해 칼춤 추는 짓은 할 가능성이 적었다.

    애비의 창조자 김조순은 평양에 끌려갔지만 김좌근은 그 자신의 장담대로 김조순의 뜻을 잇는 자. 그의 애비 창조력은 부친에 못지않았다.

    “대충 나이는 맞습니다. 항렬 같은 거야 대강 두드려 맞추고, 행주산성에서 사로잡힌 선대왕(이품)의 양자로 입적시킨 뒤 예를 치르시지요. 나라의 큰 도적 수괴 중 정시준에게는 강성한 기세와 넓은 땅이 있고, 김회연에게는 오래 조련한 관군과 영남의 소출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왕이 있어야 합니다.”

    김희순도 김조순의 편이었지 왕실의 충실한 신하는 아니었다. 그래서 도덕적 거부감은 크게 느끼지 않았다.

    허나 그것을 감안해도 김좌근의 제안은 너무 급진적이고 성급했다. 조선 왕실 입장에서는 이따위로 능욕당하느니 차라리 왕 없애자는 혁명군이 나을 지경이다.

    젊은이의 폭주를 막는 것은 노인의 역할. 그래서 김희순은 조심스럽게 반문해 보았다.

    “아무리 허울뿐인 가관이라 해도 갖출 것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비나 황제의 승인이라든가, 그도 안 되면 사대부의 공의를 모으는 추대라든가…….”

    김좌근은 단칼에 숙부의 말을 잘랐다.

    “청국은 조선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내명부는 다 죽었습니다. 그런 것으로 하시지요. 장담컨대 청 황제나 대비가 다시 선비들 앞에 드러나는 일은 없을 겝니다. 그러고 나면 사대부의 공의라는 것도 다 저희 유신(遺臣)들이 하기 나름이올시다.”

    그래도 망설이는 김희순에게, 김좌근은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차라리 이편이 잘 되었습니다. 만약 원자가 살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 필시 경상도의 김회연과 힘을 합쳐야 하는데 그리되면 이 호남은 그대로 김회연의 손에 들어갑니다. 김회연은 필시 호남의 백성들을 추슬러 정시준에게 맞서겠지요. 허나, 그때 과연 숙부님과 제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김조순이면 모를까, 김좌근 정도의 관록으로는 김회연과 맞서기 어렵다(김희순의 경우 원로대신 축에 들기는 하지만 그는 원자와 아무 관련이 없다).

    김좌근이 가진 원자의 외숙부라는 지위는 이 경우 오히려 위험하다. 김회연이 친척도살자 태종을 본받아 화근을 미리 제거할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사서에서 외척이 좋은 의미로 쓰인 적은 없었다.

    김희순은 이 나라 조선이 너무 멀리 왔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미친 것은 혁명군만이 아니었다. 그 광기의 열매가 무엇을 토양 삼아 자라왔겠는가. 돌아버린 건 이 나라 전체였다.

    ***

    전주부의 부호 김맹억은, 과거 백성들을 쥐어짜 대영 전쟁 전비를 마련해 보려던 김희순 앞에 격문을 내던져 관찰사를 혼절하게 만든 그 의인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이후 김맹억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전라 감사의 집요한 추적과 탄압을 받게 되었다.

    몇몇 고을에서는 수령의 목을 치고 관군을 격파하는 위엄을 떨쳤으나, 아무래도 혁명막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기에는 너무 멀었다.

    김조순은 영국과 김회연 때문에 호남의 군사를 본격적으로 동원하지 못했지만, 그건 뒤집어 말하면 호남에는 상당히 많은 병사가 잔존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전라우수영은 여전히 조선 최강의 함대다.

    비록 흑산도의 영국 배 3척 앞에서는 눈 깔고 얌전히 지나가지만, 혁명해군이 실어다 주는 물자를 호남 혁명당이 몰래 바다에서 접선해 받을 때에는 매우 용감해져서 돌진했다.

    혁명해군에 영국 무장상선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두 척의 ‘전함’은 연안에서 조선 수군을 상대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데다 나머지 작은 배는 해적질, 수송, 탐색, 연락 등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전라우수영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집중할 여력이 없었다.

    영국군을 등에 업고 흑산도를 거점 삼으면 안 되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시준은 정말 궁지에 몰리지 않는 이상 영국을 조선 인민 해방전쟁에 관여시키고 싶지 않았다.

    김맹억이 인솔하는 남조선혁명당 전주지부를 비롯해 호남의 사십여 개 혁명당 지부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시점을 빠르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바로 혜성처럼 나타난 어떤 소년이었다.

    김맹억은 피맺힌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망치시오! 동지들!”

    사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요즘 또 반동들이 추대 음모를 꾸민다는 이경춘을 확보하러 진안현(鎭安縣, 현대의 진안군)을 습격한 김맹억은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경춘은 얼핏 보기에 아무런 보호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을로 들어선 당원들은 비어 있는 줄 알았던 골목과 집에서 갑자기 불길이 솟구치며 함성이 일자 혼란에 빠졌다.

    “천위를 범하려 한 역적 놈들은 달아나지 말라!”

    천위라는 게 있었나 싶은 요즘의 조선에서는 그립기까지 한 외침이다.

    허나 그 외침은 비웃을 수 있을지라도 날아오는 화살과 총탄은 비웃을 수 없다. 무장이라고는 태반이 죽창에 불과한 당원들 수십 명이 피를 뿌리며 땅에 쓰러졌다.

    하지만 같은 죽창이라도 호남의 죽창은 그 격이 다르다. 눈이 쌓여 부러지면 화포 같은 굉음을 낼 만큼 굵은 왕대는 조선에서도 이 호남에서나 자란다.

    전주지부의 행동대장 격이었던 김계호(金啓浩)가 그 죽창을 들었다. 아까 반동의 소리로 호령한 소년 장수가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저놈이 대장이올시다! 지부장 동지. 제 뒤로 물러나십시오!”

    “크윽, 동지의 높은 뜻은 내 잊지 않겠소!”

    김맹억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자 김계호는 벽력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죽창을 뻗었다.

    혁명 열의로써 뜨겁고 빳빳하게 달궈진 그 죽창은 주석 동지의 교시대로 어떤 왕후장상이든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으로 꿰뚫어야 했다.

    그러나 말을 탄 소년 장수, 그러니까 새 왕의 호국도원수(護國都元帥) 김좌근은 차가운 검을 비스듬히 내리쳤다.

    굵고 단단한 죽창이 단숨에 잘려나가며 작고 초라하게 사그라들었다.

    막 도망치려 하던 김맹억은 크게 놀랐다. 왕대를 한 칼에, 그것도 마상에서 자르는 짓은 일반인이 해내기 어렵다.

    “그 어린놈은 고수다! 동지, 어서 피하시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김계호의 얼굴이 흙빛이 되는 것도 잠시, 김좌근의 일검이 다시 한번 흰 궤적을 그리자 김계호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 당원들은 전의를 잃었다. 이때 패잔병 이끌고 김희순에게 의탁하여, 여기에서는 화력 지원을 지휘하고 있던 전 영남순무사 박기풍 역시 신나서 소리쳤다.

    “도원수의 영이다! 적도를 모조리 참하라!”

    조선군도 이기는 싸움에서는 용감하다. 관군은 정신없이 총을 쏘고 창을 내지르며 혁명당원을 포위해 몰아붙였다.

    곧 싸움은 끝났다. 호남 남조선혁명당의 야심찬 습격은 실패했다.

    지부장 김맹억 외 십수 명만이 겨우겨우 탈출했을 뿐이었다. 호남 혁명당에서 가능한 지부의 인원을 전부 모아온 것이라 타격은 심대했다.

    전 영남순무사 박기풍의 경우 강철군주 이공의 삼대장처럼 정치적 야심이 불타오르는 쪽은 아니었다.

    위에 서지 않는 이상, 일단 이편인 김좌근에게 잘 보여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박기풍은 자기 자식뻘도 안 될 김좌근에게 과도한 치하를 안겨주었다.

    “몸소 말을 달리고 칼을 휘둘러 무공을 떨치다니, 도원수의 공이 옛 영웅과 같소이다. 내 처음에는 귀한 자제가 편장 노릇을 자처하시기에 걱정했습니다마는 모두 기우였소그려. 이제 이 호남에서는 감히 도적이 설치지 못하겠지요!”

    피를 닦아낸 김좌근은 경멸 어린 눈으로 시체들을 둘러보았다.

    “대인(大人, 사대부)이 가르치는 대로 얌전히 따랐으면 알아서 그 구차한 목숨이나 잇게 하여 주었을 것을. 분수를 모르고 설치면 저 꼴이 되는 것입니다. 정시준인지 뭔지 하는 그 건방지기 짝이 없는 하민이나, 국론을 분열시켜 이 사달을 만든 김회연도 곧 이렇게 어육으로 만들어 후대에 경계 삼을 것이오이다.”

    누가 보면 정예군 수십만 명을 깨뜨린 상승장군의 대사 같았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봤을 때, 전사에 기록된 어떤 위대한 승리라 할지라도 지금의 승리와 풍경은 비슷하다. 시체와 비명과 참혹함과 몰양심은 모든 전장에 빠짐없이 출연하니까.

    그래서 박기풍도 김좌근의 말에 찬성했다. 호남은 순식간에 군사적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

    한편 대구에 있던 김회연은 이경춘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종친’이 왕으로 옹립되었다는 소식을 곧 듣게 되었다.

    김좌근은 호국도원수 겸 영중추부사에, 그리고 김희순은 원래의 전라도 관찰사에 더해 좌의정 겸 대사헌에 임한다는 교서도 함께였다. 덤으로 김희순에게 의탁한 박기풍 역시 병조 판서 겸 금위대장의 직위를 받았다.

    호국도원수라는 근본도 없는 관직부터 시작해서 조선 조정의 관례와 겸직 서열을 전부 무시한 교서였다.

    김회연은 이 소꿉놀이에 자조적 탄식을 내뱉었다. 자조인 이유는 김회연 역시 팔도순무경차관을 비롯해 소설에도 안 나올 여러 관직을 주렁주렁 자칭했기 때문이다.

    “사백 년 왕조의 불어터진 시체를 이놈저놈 다 잘라 먹고 있구나.”

    이 나라는 끝났다. 900년 전과 똑같다.

    그때 철원에서 애꾸눈 땡중이 할거한 것처럼 북쪽에서는 근본도 모르는 상놈이 역시 무근본한 도적 떼를 세워 천지를 휘젓고 있다.

    서쪽에서는, 견훤처럼 지역 토착 호족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나라의 권신이었던 자가 경순왕 김부(金傅)의 꼴보다도 못한 처지로 왕의 가치를 떨어뜨려 놓고 중흥이니 뭐니 하는 상황이다.

    영남순무사 박기풍의 군세가 와해된 이후 김회연은 조령 북쪽으로 급히 진출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충청도를 장악하기 전에 혁명군이 쳐내려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전투로 전력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서울 함락 이후 김조순이라는 지지대를 잃은 호남을 자신의 세력으로 편입하고 그 두 지방을 발판 삼아 후일을 대비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약간 기세등등한 도적 떼에 불과한 – 혁명막부와 직접 접촉해 본 적이 없는 김회연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평안도 놈들의 손에서 원자 하나 탈출시키지 못할 정도로 김조순 일당이 무능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회연은 아무도 모르는, 어쩌면 자기 자신도 몰랐던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김회연은 경상도 바깥에 대해서는 더 군사를 내지 않았다. 대신 경상도의 남조선혁명당인지 뭔지 하는 반란 호응자를 소탕하는 데에 집중했다.

    강철군주 이공의 두 삼대장, 한만유와 이당은 아직까지 이공에 대한 충정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불행이었다.

    두 사람이 즉시 종통을 회복하러 북진하지 않는 김회연에게 항의하자 김회연은 적당한 구실을 붙여 둘 모두 참수해 버렸다.

    그 참수에 대해 내부 반발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김회연은 바로 그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회연은 이번의 반응으로서 영남 사람들의 인심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여기 사람들도 왕에게는 관심 없다.

    ‘이들이 의지하는 것은 왕실이나 조정이 아니라 나다. 차마 누구도 나서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분위기 미묘한 남녀가 서로 조금씩 제스처를 전진시키며 서로의 마음을 떠보는 것과 같았다.

    최소한 김회연은 이번에 사람들이 ‘확고한 신호’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시준이 있었다면 200년 뒤까지도 같은 생각 하다가 쇠고랑 찬 남자들이 꽤 많았다는 경계를 일러줄 수 있을 터였지만, 지금 김회연에게 간언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만한 사람들은 벌써 김회연이 다 정리했으니까 말이다. 너무 조직 관리에 유능한 것도 탈이었다.

    김회연은 그저 다시 탄식했다.

    ‘오로지 종묘사직을 위해 충신 외길을 걸으려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하지만 내가 자리를 내놓거나 김희순, 아니, 김좌근이겠군……. 그 김조순의 아들에게 항복하면 백성은 더욱 도탄에 빠지겠지.’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 역사의 춘추필법 앞에 오명을 쓰더라도 대국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회연은 고개를 돌려 경주 방향을 바라보았다.

    본관을 청풍(현대의 충북 제천)에서 남동쪽으로 살짝 옮겨 경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

    조선의 반격은 꽤나 매서웠다. 시준도 그러한 징후를 계속해서 보고받았지만, 당장 그 일을 처리하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처지는 시준도 영호남의 군벌들과 비슷했다.

    결국 영호남의 움직임은 일종의 교착 상태를 불러왔다.

    험한 고개를 넘을 때는 정상에서 쉬어가는 법. 하나의 계기 마련 정도는 필요했다.

    지유가 언명한 영구혁명은 끊임없이 혁명을 갱신한다는 뜻. 이는 날로 새롭게 한다는 탕왕의 이치와도 상통했다.

    어떤 와인 회사가 매년 술 내놓으며 <역대 최초> <전례가 없는> <금세기 마지막>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듯이, 비록 뻔할지라도 분위기 환기는 항상 효과적이다.

    그래서 이월 스무이렛날이 되었을 때,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중앙인민회의 전원회의 긴급 소집’을 결의했다.

    이미 삼월 삼짇날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 특별정령 225호로써 공고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대의원은 그 전부터 평양에 모여 있었다. 그래서 이는 그 급박한 척하는 결의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도 오늘 보궐선거 투표를 하지 못하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은 보궐선거 자체가 아니었다.

    시준은 자기가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기본적으로 현대인이라 자기 자신까지 속이기는 힘들어하는 시준의 의도 정도야 닳아빠진 조선인들에게는 맑은 물을 들여다보듯 뻔하다.

    그들이 다급하게 속삭이는 단어와 훨씬 빠르게 오가는 눈빛은 다른 것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건 가장 짧은 단어로 표현하자면 ‘건국’이라 불러야 할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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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1. 전주 옆 진안군에는 현재도 전주 이씨 집성촌이 있습니다. 다만 원래 역사에서 온령군파가 이 집성촌을 이룬 때의 가독은 이치환(1794~1858)으로서 작중 내용은 역사 변화에 따른 창작입니다. 딱히 궁지에 몰려서 이사간 것도 아니고요. 이치환은 임진왜란 때 무공을 세운 공신 이천두의 6세손이며, 이치환 본인도 고종 때 승정원 부승지로 증직됩니다.

    2. 김맹억 오랜만에 나왔군요. 작중 초중반에 푸셰의 격문을 감사에게 던져 김희순을 기절시킨 그 사람이죠. 김계호는 원래 역사에서 김맹억의 반란 모의 때 함께했던 동료입니다.

    3. 궁예는 신라의 왕자라고 선전했고, 견훤도 자기가 백제 왕가의 후손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이때는 그런 게 좀 유행이었습니다. 왕건은 굳이 따지자면 고구려계 귀족 가문의 먼 후손으로 추정되는 기록들이 있는데, 아예 격을 다르게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갖다 붙이기에 근거가 좀 부족했는지 그냥 드래곤의 자손으로 퉁쳐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뻥을 치려면 크게 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견훤은 경주를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옹립했지요. 이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하고요.

    4. 김좌근, 김희순, 박기풍이 2차 신정부에서 받은 직위는 보기에도 뭔가 이상하지요. 모두 조선에서 겸직 대상이 아닌 직위였습니다. 조선의 겸직도 일정한 원칙 하에 이루어집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무위원은 당연 겸직이지만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지는 않는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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