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66화 (166/284)
  • 168화

    50. 신은 죽었다(1)

    김조순과의 대담을 마친 이튿날, 시준은 정찰총국에 속한 스케치 담당자는 물론이고 못 도망간 도화서 화원들까지 다 모아서 종묘 앞에 세웠다.

    그들이 외롭지는 않았다. 그 전 혁명군의 포고를 듣고 모인 수많은 한성 부민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으니까.

    혁명군 병사들은 이미 했던 포고를 반복해서 외쳤다.

    “호패는 가져왔겠지? 여기 한성부 인민위원회 장부에 각자 오부(五部) 어디서 나왔는지를 적고 이름과 가솔, 생업을 말하시오! 가족 수에 따라 땔감을 나누어줄 것이오!”

    이 시대 한성부는 이미 땔감을 사서 쓰는 도시였다.

    한양은 여러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기는 하지만 그 산에는 나무가 많지 않다. 요 몇 년간의 혼란으로 금산령이 대놓고 무시되어, 왕가를 수호하는 좌청룡이고 우백호고 다 맨들맨들 빡빡이가 되고 말았다.

    대체 연료는 아직 멀었다. 가장 혁명적인 평안도도 이제 석탄 갖고 난방 좀 해 볼까 하며 중앙인민회의 갱사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구상하는 처지다. 시준이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남겨놓고 오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전쟁에 비하면 후순위 사업이었다.

    이 ‘남조선’에서는 나무 외에 다른 난방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도성 주변에는 이미 나무가 희귀하다. 따라서 그 ‘땔감’이 어디서 나올는지는 자명했다.

    시준의 생각대로 땔감 공급처를 들은 백성들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종묘를 도끼로 찍어가라고요!”

    “아, 안 돼. 난 못 하오. 차라리 찬 방에서 생쌀을 씹고 말지!”

    “저 이만 가볼게요.”

    거부하고 도망가려는 자도 나왔다. 그러나 혁명의 길은 만만하지 않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다!”

    혁명군이 가로막자 백성들은 울상이 되었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는 말이 흔히 알려져 있으나 ‘부정했다’가 아니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유교는 혼백이나 귀신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정한 적이 없다. 그러면 제사를 못 지낸다.

    다른 모든 종교의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유학자도 공부가 깊어지면 그런 불합리한 것을 안 믿게 되지만, 그렇다고 밥줄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사가 교회에서 ‘하하하. 이 녀석.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다고요? 제정신입니까?’라고 말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게 어른의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백성 대부분이 종묘의 연료화를 망설이는 것은 그저 무학자의 소치가 아니다. 군데군데 섞여 있는 사대부 계층도 불안하게 외쳤다.

    “아무리 새 기틀을 개창하였다 하더라도 이왕(二王, 전조와 그 전조의 왕후자손)과 삼각(三恪, 3대 전 왕조까지의 자손)을 손님으로 우대하며 제사를 끊지 않는 일은 옛날의 아름다운 법이오!”

    “전조 왕씨도 아직까지 봉사손(奉祀孫)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여덟 개 전(殿)을 지어 이 땅에 있던 모든 군주의 제사를 받드는 그 뜻을 모르겠소이까!”

    “천륜을 가로막는 자는 하늘의 미움을 받아 명이 길지 못한 법. 어쩌려고 이렇게 풀을 베고 뿌리를 뽑는[斬草除根] 것인가? 흥망성쇠는 누구도 피할 수 없소. 먼 후대에 막부의 장군(시준)은 어찌 후손들에게 제사를 받을 생각이시오?”

    혁명막부는 한양을 점령하자마자 각종 사회단체를 장려했다.

    오부 동리마다 며칠 만에 인민위원회가 꾸려지고 여기저기에서 인위적인 연설과 토론회, 궐기대회가 빗발쳤다.

    물론 남조선혁명당 한성지부가 그 전부터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정대운은 냉큼 조선공장회(朝鮮工匠會)를 만들어 자기가 회장 자리를 꿰찼다.

    그러다 보니 사대부들 역시 눈치를 챘다. 인민의 총의를 대표한다 하는 혁명막부는 인민의 입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말해도 안 죽겠다 싶은 선비들도 제가끔 그렇게 떠들 수 있었다.

    원래의 한성 부민이라면 선비들이 이렇게 말했을 때 일단 내가 뭘 잘못했나 숙고해 볼 것이다.

    21세기 사람들도 TV에서 ‘몸에 좋다고 박사가 말했다’ 한마디면 오만가지 괴상한 나무열매며 풀떼기를 사다가 갈아먹지 않던가(그리고 사람들의 간과 신장을 알칼로이드로 초토화시켜 놓은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다).

    ‘천문학’ 박사가 고대의 별자리를 고증했다며 사실 신라는 대륙에 있었다고 말해도 일단 박사니까 단숨에 계란부터 날아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대부의 사회적 위치는 현대의 교수와 의사, 변호사를 합친 것 이상이다.

    그들은 단순한 귀족이 아니라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엘리트였고 하민을 이끄는 선도자였으며 정신적 문화를 대표하는 사제였다.

    따라서 하민들은 보통 그들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400년의 가스라이팅은 너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혁명은 그것마저 뽑아낼 만한 장도리였다.

    곧 ‘자유로운 다른 인민’들이 나타났다. 장도리라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닌 게, 그들은 각자 손에 도끼며 톱, 망치와 끌 따위를 들고 있었다.

    정대운의 조선공장회였다. 아직 찬 날씨에도 대장장이들은 웃통을 벗어젖힌 채 불질로 단련된 근육을 과시하며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지금 누가 귀신 소리를 내었는가?”

    “저놈의 머릿속에 반동이 가득하구나!”

    “이 어르신이 톱으로 그 대갈통을 까서 반동의 찌꺼기를 끄집어내 주어야겠다!”

    이전이었다면 어딜 감히 장인바치 따위가 선비들 앞에서 자신을 ‘이 어르신’ 따위로 지칭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혁명의 가치는 충분했다.

    인민은 수평하며, 분명 사대부 역시 자기 하고 싶은 말 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그 자유는 다른 하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있다.

    그리고 이 경우 이두박근의 둘레가 더 큰 쪽의 자유가 존중된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가 힘셀 때만 자유주의자가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선비들은 수평도에 대해 들은 것과 좀 다르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시준을 쳐다보았지만 시준은 워낙 혁명에 바빠서 그쪽을 마주 보지 못했다.

    어차피 시준은 이 백성들을 단숨에 무신론자로 돌려놓을 연설 따윈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총선거 때에는 하늘과 천명 따위 엿 먹으라고 외치면서 사람들을 일으킨 시준이었으나, 시준이 할 수 있는 말은 사실 거기까지다.

    시준은 프랑스 혁명 때의 자코뱅처럼 과격한 무신론이나 이신론을 주장하기 힘들다.

    시준의 중요한 지지층 중 하나가 정감록파 미륵사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십승지 같은 거 다 미신이고 무당도 전부 헛소리 말고 폐업하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자살이다.

    헌데 합리주의와 회의주의를 포기한다면 종묘를 뻐개어 버릴 논리를 완성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시준은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로 했다.

    곧 옛날 천공장군 장각이 위협적 라이벌 의식을 느낄 만큼 무지막지한 부적과 방울로 치장하고 나온 개천군 인민위원장 이제초가 등장했다.

    시준이 마음속으로 혁명군 총정치국장이라 이름 붙인 사람이었다.

    ***

    이제초는 고대부터 영험한 샤먼들만이 경험했다는 트랜스 상태에 빠져 있는 중이었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그의 몸을 타고 밀려왔다. 그전까지 답답하게도 인민의 영적 구원을 이리저리 회피해 오던 정 진인은 드디어 결심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이토록 강력한 반동의 귀신과 맞부딪쳤으니 어찌 그간 아껴두었던 영력을 방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초는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하면 새로운 인민국의 도읍이 이론의 여지없이 영산 계룡산에 정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이제초는 진지했다.

    미륵사 사람들이 요란하게 꽹과리와 징을 쳐대자 와글와글하던 군중도 조금 조용해졌다.

    이 틈을 타서 슬쩍 도망치려는 자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구경 좋아하는 조선인의 종족 특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이제초의 이상한 짓을 지켜보았다.

    이제초는 붉은 천을 감아 놓은 지팡이를 좌우로 휙 휘둘렀다. 저것은 바로 순절한 혁명 열사 김유근의 것이었다.

    “생지당권은 이름 그대로 산 자의 권리. 죽은 자의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종묘란, 사당에 매달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가련한 귀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이제초는 시준이 어제 몰래 불러서 가르쳐주며,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라고 단단히 다짐받은 축사를 읊었다. 조선의 문장 구조와는 조금 달랐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제초는 이 말이 진인의 축사라고 믿었다.

    “저런 잡다한 귀신은 그저 정 진인의 영력으로 짓뭉개버리면 그만인 것을!”

    시준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모든 사람에게 그 자세는 무시무시한 영압으로 귀신을 다 짜부라뜨리는 준비 동작처럼 보였다.

    “이 혹독한 가뭄을 보지 못했느냐. 처음부터 종묘엔…… 그 어떤 영험도 깃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견디기 힘든 공백도 이제 끝이다.”

    왠지 모르게 몇몇 사람들은 감동한 것 같았다. 역시 그만한 인기를 얻은 작품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제초는 눈을 부릅뜨며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이제 경애하는 주석 동지, 정시준 진인께서 하늘에 서리라!”

    엄청난 함성과 함께 꽹과리와 징이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선비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에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전쟁을 빨리 끝낼 수만 있다면 사이비 교주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시준의 각오는 보통이 아니었다.

    시준은 자기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정약전과 남공철에게 모든 것은 이제초의 독단이라는 꼬리 자르기식 표정을 돌려주었다. 혁명막부 정치국은 누가 더 낯짝에 철판 깔았는지 겨루는 대결의 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철판 밑에는 수치심이 아직 남아 있다. 시준은 더 부끄러워 죽기 전에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시준은 말보다 설득력 있는 것을 준비했다.

    혁명군이 의주천(캔버스 천)을 벗기자 곧 녹이려고 했던 16리브르 함포가 그 거체를 드러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조선 사람은 저놈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단숨에 알아챘다.

    대포는 본래 왕실과 조정도 애용했던 조선의 유서 깊은 퇴마 도구다. 일반적으로 크고 시끄러울수록 더 귀신을 잘 쫓는다.

    대포가 나왔다면 속세의 일. 혁명무력국장 차형기가 나서서 선언했다.

    “이 포에 불을 댕기는 자에게는 백미 한 섬을 주겠소! 위대한 혁명의 길에 함께하여 이씨 귀신을 쫓아버릴 붉은 용사는 여기에 없는가!”

    사실 시준은 여기까지 와서도 나설 자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미리 ‘붉은 용사’ 역할 할 바람잡이를 숨겨 두었다. 누가 봐도 용사 같은 전위대장 홍총각은 대본 읊을 준비 만반으로 백성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건 시준의 오산이었다. 홍총각은 배우 데뷔의 기회를 잠시 미뤄야 했다.

    추운 건 어찌 참아도 굶주림은 그게 안 된다. 쌀? 조나 콩도 아니고 흰쌀 한 섬? 진짜야? 하는 수군거림이 오가고 나서 어떤 느릿해 보이는 젊은이가 나섰다.

    “지, 진짜 쌀…… 주는 거지요?”

    광통방 출신 사람들은 그 젊은이를 알아보았다. 이름을 칠득이라 하는 청년이었다. 시준은 그를 잠시 보다가 익숙한 말을 떠올렸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그런 건가?’

    시준도 전생에서는 아주 어릴 때나 보았던, 근대국가는 그 존재 자체를 금지해 버린 금치산자 중 하나였다.

    이 시대에는 흔하게 넘쳐나는 사람이고, 딱히 시대가 지났다고 해서 숫자가 줄어들 이유는 없다. 허나 ‘이성’과 ‘합리’를 깨달은 후대 사람들은 그게 부끄러웠는지 인류의 그림자 취급하며 철저하게 숨기고 말소했다. 그래서 21세기에는 동네 바보 형을 보기가 어렵다.

    허나 칠득이는 19세기 조선 사람이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끌려가 갇히거나, 어디 수용소에 꽉꽉 몰아넣어져 있다가 시체가 되어 버려지거나, 요양소에서 존재가 잊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춤발이 아들이 눈먼 노모를 모시고 사는데 살림은 유리걸식이 반이요, 품팔이가 반이었다. 사람이 좀 모자라다 보니 옆집 일 공짜로 해 주거나 뒷집의 빚을 뒤집어쓰거나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평소 따뜻한 이웃의 정을 보여주었던 광통방 사람들은 인정을 이기지 못하고 칠득이를 말렸다.

    줄 리가 있겠느냐, 저놈들이 천벌 받을 짓 하면서 네게 죄 뒤집어씌우고 액땜하려 하는 게다. 너 없으면 노모는 누가 모시냐. 등등의 말이 오갔다.

    그러나 그 이웃 모두는 혁명군이 기다렸다는 듯 들이닥쳐 칠득이의 어깨를 두드리자 겁먹은 눈으로 물러나야 했다. 혁명군은 칠득이를 아예 들어 올릴 기세로 칭찬하며 ‘붉은 용사’를 대포 뒷머구리 쪽으로 모셨다.

    평생 누군가에게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칠득이다. 그는 한껏 고양되어, 혁명군이 가르쳐주는 대로 대포에 불을 가져다 대었다.

    꽝!

    칠득이는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혁명군 한둘이 그를 다독이는 동안, 나머지는 두 손을 치켜들고 외쳤다.

    “이씨 귀신은 속히 물러가라!”

    이건 조선 시대에 축귀용으로 썼던 시시한 공포탄이 아니다. 진짜 실탄이 장전되어 있다. 그 무지막지한 함포를 건물 바로 앞에 대고 직사로 갈겼으니 결과는 자명하다.

    종묘 외삼문(外三門, 종묘 가장 바깥의 정문)은 도끼 따위 쓸 것도 없이 산산조각 나서 누가 집어가길 기다리는 땔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일방적으로만 진행되면 사람들을 몰입시킬 수 없다. 긴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엉망진창이 된 종묘 안쪽에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렸다.

    꾸에에엑! 그 불길한 소리는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누가 봐도 종묘의 신이 이 터무니없는 무례에 노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이런 목청을 가진 자는 대체 누구일까? 사람들은 추측을 교환한 끝에 평소 소리 지르기 좋아하는 데다 비교적 최근에 죽어서 좀 쌩쌩할 영조 아니면 정조라고 추론했다.

    그들의 추론이야 어쨌든 이제초는 역할을 다시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매우 놀란 듯이 외쳤다.

    “저 악귀가 발악을 하는구나! 얘들아. 한 발 더 쏘거라!”

    대포는 두 문 모두 장전되어 있어서 즉시 쏠 수 있었다. 본래는 불발을 대비하여 해 둔 조치였다.

    그런데 그때, 멍청한 줄 알았던 칠득이가 잽싸게 행동했다.

    한 발 쏴서 쌀 한 섬이니, 두 발 쏘면 두 섬이라는 그 명징한 논리는 어디에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노모 봉양 잘 하려는 칠득이의 효심이 다시 한번 종묘를 깨부쉈다.

    꽈광! 꽝!

    다시 한번 아까 그 비명이 울렸으나 조금 덜해진 것 같았다. 쌀 세 섬까지는 좀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남공철이 다급하게 눈짓을 하자 이제초는 즉시 사태를 수습했다.

    “이제 귀신은 맥을 추지 못한다. 더 소란 떨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이제 정 진인께서 납시면 모든 사기(邪氣)가 깨끗이 정화되는 것이다!”

    이제초는 사방을 빗자루로 쓸어내듯이 방울을 흔들며 종묘로 들어갔다. 이제 아무도 저자가 원래는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시준은 정말 나는 이제초의 강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자세와 걸음걸이로 종묘를 따라 들어갔다.

    ***

    사람들은 시준을 따라 들어가지는 않았다. 주석결사옹위대가 막아서기도 했고, 더 현실적인 볼거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혁명군 두 명이 우마차를 끌고 왔다. 외삼문의 잔해를 주워 와서 나뭇짐 하나를 완성한 그들은 쌀 두 섬을 거기 싣고 추가로 칠득이도 실은 채 노래를 부르며 광통방 쪽으로 향했다.

    보나 마나 이웃이 강탈할 것을 염려한 시준의 배려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것이 출세의 증거로 보였다.

    상앙(商鞅)이 남문 앞에 기둥을 세우고 옮기는 자에게 진짜로 금을 줬던 그때의 감정을 지금 조선 백성들이 느끼고 있었다.

    정화하는 척하며 안에 들어가서 뒷정리할 만한 시간은 지났다. 차형기는 무너진 외삼문 기둥에 도끼를 콱 찍으며 소리쳤다.

    “자, 붉은 용사는 한 명만이 아니오, 누가 다음 용사가 될 텐가! 아까 쌀섬을 모두 보았지요? 나뭇짐을 얻었으면 끓일 밥도 있어야지. 오늘 명단에 이름을 적고 땔감을 힘껏 져 가져가는 자에게는 각자 쌀 한 되씩 나누어 주겠소!”

    잠시 후, 그 어떤 마왕도 두려움 없이 마주보지 못할 정도의 대규모 용사 군단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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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1. 주나라는 건국 이후 그 전 3개 왕조의 후손(순의 후손, 하나라의 후손, 은나라의 후손)을 제후에 봉해 신하가 아닌 손님의 예로 대우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삼각'이라 합니다. 또 2대 전까지는 공으로 봉했는데 그때는 천자 바로 밑이 공이었지만 후에는 왕이고, 그래서 전 왕조 2개의 말예는 왕으로 봉한다는 것이 '이왕' 입니다.

    왕조란 게 바뀌고 바뀌는 것이다 보니 그런 안전장치를 해 둬야 후에 다른 역성혁명 워너비도 지금 왕조를 몰살시키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시궁창이고... 저걸 제대로 지킨 왕조는 거의 없습니다.

    조선도 말로는 개성 왕씨의 제사를 지내 주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조선 초의 왕씨 대학살 탓에 이게 지금 고려 왕실의 후손인지도 애매한 혈통으로 선조 대에야 제대로 복권됩니다. 얼마나 원 고려 왕실과 멀어졌던지, 떡고물 노리고(제사를 받들게 해 주겠다는 것은 곧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 얘깁니다. 적긴 하지만 곡식과 노비가 하사되었죠.) 족보 세탁해서 기어들어온 '전주 왕씨'가 두 번이나 적발된 일이 있습니다. 사실상 조선을 위한 제사라고 할 수 있겠군요.

    2. 작중 언급된 여덟 개 전은 팔전이라고도 부르며, 단군조선과 고구려, 금관가야, 기자조선, 백제, 신라 3성, 고려의 8개 가문 군주들을 모시는 전입니다. 현대에도 남아 있기는 한데 별로 볼 건 없습니다.

    근대국가의 개념은 없었고, '왕조'에 제사를 지내는 거라 신라의 박, 석, 김은 다 따로 다른 전에서 모십니다. 단군조선과 고구려가 왜 한통에 묶였냐면... 아마 동명성왕의 아버지 해모수가 자기는 천제의 아들이라고 혼인빙자간음사기를 쳤으니 조선이 그걸 인정해서(고조선의 계승국입니다) 같은 환인의 아들이라는 단군과 형제로 쳐갖고 가족이라고 묶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3. 생지당권은 오랜만에 나오는데, 푸셰가 옛날 격문에서 주장한 말로써 현대어로 번역하자면 '천부 인권' 입니다. 살아 있음으로서 마땅한 권리라는 뜻이죠.

    4. 작중처럼 서럽고 억울한 일은 당할지언정, 옛날에는 현대에서 '금치산자' 혹은 '부적격자'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사회적 역할을 하고 살았습니다. 조그마한 실수로도 평생 장애를 입는 일이 잦았던 때이기도 하고요. '자춤발이'는 '절름발이'를 더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근대국가가 어떻게 금치산자와 정신질환자 및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그들의 위치를 규정하며 <정상인>사이에서 자취를 감추게 하였는지는 얘기가 아주 길어지는데.. 대표적으로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5. 총정치국장은 북한 조선인민군에서 모든 정치장교의 우두머리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전에는 최고사령관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군내 서열 1위였습니다만, 2020년대에는 권력 분산화 흐름에 따라 좀 바뀌는 추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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