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65화 (165/284)

167화

49. 낡은 것과 새로운 것(3)

내명부 가마를 탈취했을 당시, 혁명당원들은 좀 늦게야 김유근을 수습할 수 있었다.

김유근을 쏴버린 김좌근이 엄청난 검술로 당원들을 연달아 베어 넘기며 혈로를 뚫었고, 약간 용기를 얻은 관군도 기세를 올린 탓에 도저히 안정적인 응급처치를 할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관군과 김좌근은 도망쳤지만 김유근은 그때 이미 의식도 없는 상태였다.

홍경래에게 끌려다닐 때도, 평양성 앞에서 칼을 맞았을 때도,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살아남아서 시준으로 하여금 ‘환생자도 있는데 불멸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도록 만든 김유근이었지만 어쨌든 조선은 판타지 세계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인사인 만큼 시준은 겉으로나마 최대한의 의료 지원을 명령했다. 싹 비워진 김조순의 저택이 그의 개인 병실이 되었다. 김유근으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집이었다.

조정과 함께 혁명군의 손에 떨어진 내의원이 실무를 진행하고, 총감독은 시준이 신뢰하는 급양과장 기랑이 맡았다. 혁명 열사에 대한 온당한 예우는 남조선혁명당 한성지부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감독이라고는 해도 기랑이 무슨 의학을 깊이 배운 것은 아니다. 실제 금창약을 가져오거나 수발을 드는 사람은 내의원에서 봉사(奉事) 노릇 하고 있다 하는 이명운(李命運)이라는 젊은이였다.

그가 효명세자를 요절내 버린 인간이라는 사실을 시준이 알았더라도 인사를 재고하지는 못한다. 도미니크 장 라레는 자신의 전문 분야, 즉 전투하다 다친 혁명군의 치료에 전념하고 있어서 뺄 수 없었다.

기랑 역시 이명운의 전과, 아니, 예정된 과오를 알 리는 없다.

그러나 기랑은 이명운의 치료가 더 소용없을 거라 판단했다.

의술은 몰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안색이며 숨 쉬는 꼴도 그렇고 이제 가망 없어. 그냥 가봐.”

이명운은 기랑의 목소리가 왠지 여자 같다는 사실도 떠올리지 못하고 크게 놀랐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두들겨 맞아 끌려가고 있는 김조순파 인사들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는 이 의사로서는, 기랑의 가보라는 말이 저승으로 가보라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지금이 고비올시다. 기운을 다스리면 틀림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과장 나리.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랑은 그 괴상한 호칭에도 웃지 않은 채 그냥 매몰차게 내의원들을 내보냈다.

그렇게 집이 조용해지자 기랑은 김유근의 머리맡에 앉았다.

문득 김유근의 입술이 움직였다.

“이제 좀 조용해졌군.”

기랑은 놀라지 않았다. 그가 의식을 차렸다는 사실은 총 맞은 사람을 많이 본 기랑도 알고 있었다.

“그래. 죽기 전에 할 말 있으면 해 봐.”

“다른 사람을 물린 것은, 정시준을 건너뛰고 그녀에게 내 말을 전해 주기 위해서인가? 고맙다.”

본래 가족에게 남길 유언이라든가 혁명군에게 전할 기밀 같은 것을 예상하던 기랑은, 인생 마지막에 남길 말이 유부녀 상대로 한 사랑 고백이라면 그 인생이 얼마나 품위가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랑은 진실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정도로 잔혹한 성격이 아니었다. 김유근이 힘겹게 말했다.

“내 저고리 안쪽에 유서가 있다.”

김유근이 총 맞았을 때 입고 있었던 옷을 찾아낸 기랑은 곧 손에 뭔가 버석대는 게 잡히는 것을 느꼈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어 놓은 모양이었다.

칼로 옷을 타서 펼쳐 보니 생각대로였다. 아마 시준의 손에 들어갈 것을 염려한 탓인지 명백한 지칭은 없었지만, 그 애절한 서신에서 호명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기랑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최후의 양심은 남아 있는 모양인지, 다른 서신에는 처 민씨에게 보내는 말이 적혀 있었다.

말하자면 이혼장이었다. 하민들은 손대고 그림을 그리지만 김유근의 글에는 멋들어진 수결도 들어갔다.

조선의 체제에서 김유근 정도 되는 양반이 이혼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민씨가 김유근에게 이혼을 요구하려면 김유근이 현대 기준으로 특집 방송이 찍힐 정도의 대 패륜을 처갓집이나 부인, 혹은 왕에게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김유근이 민씨에게 이혼을 요구하려면 민씨가 욕 한마디만 하면 끝난다. 그러나 평양 감옥에 있던 김유근에게 민씨가 욕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어쨌든 지금의 김유근은 그런 반동의 예법에 맞춰 줄 생각이 없었다.

김유근은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러 가니 넌 너대로 잘 살아라’는 간단한 말을 아주 유려한 장문으로써 구사하여 스페인 달러 은화 서너 개와 함께 봉했다. 아쉽게도 은화가 총알을 막아 주지는 못한 모양이다.

편지에 애비고 동생이고 한 글자도 안 적힌 것을 본 기랑은 김유근에게서 뭔가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묵묵히 있다가 물었다.

“왜 계속 임자 있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거지? 처음에야 지유도 홀몸이었으니 그럴 수 있다 쳐도 그 뒤에는 혼인했잖아.”

김유근이 좀 멀쩡했다면 그 질문이 향하는 방향이 하나가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유근은 자신 외의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일반적이라면 무례거나 부주의지만, 곧 죽을 자에게 그 정도 사치는 허락되어도 될 것이다. 김유근은 눈꺼풀을 반쯤 벌린 채 조용히 말했다.

“서북의 풍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하면 사랑하기를 그만두느냐?”

서북이고 나발이고 원래 그만둬야 사람의 도리다. 시준이 들었다면 제물포 바닷가에 구덩이 파고 처박은 다음 밀물 때까지 내버려뒀을 것이다.

그러나 기랑은 그렇게 타박할 수가 없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에 기랑의 입술이 열렸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던 기랑의 감각에 확신에 가까운 신호가 들어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존재 유무나 주의 여부를 굉장히 민감하게 감지한다. 흔히 말하는 ‘시선이 느껴진다’가 그 일례다.

그 감각이 기랑에게 너는 지금 이 방 안에 혼자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기랑은 김유근의 눈을 감겨 주었다.

그러고는 편지를 챙겨 방을 나섰다.

***

예전 지유는 김유근을 사실상 사지로 내보내면서 자신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은 김유근에 대한 정당한 복수였다.

기랑 역시 그것에 동의했다. 지금 시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해자는 응당한 보복을 받을 때까지 동정받을 자격이 없다. 혁명전쟁은 놀이가 아니며, 세상은 우리 편으로 들어왔다고 어제의 적이 생명의 친구가 되는 – 그리고 왠지 전투력도 약해지는 – 소년만화가 아니다.

시준은 죽은 김유근을 경멸하거나 비웃지는 않았지만 그의 죽음에 특별히 슬픔을 느끼지도 않았다.

다만 개인적 감정과 별개로 고맙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김유근이 실제 시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이 모든 일이 김유근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린다면 시준은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준은 건조하게 확인했다.

“남긴 말은?”

“듣고 싶어?”

“아니, 됐다. 고생했어.”

대충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김유근의 진짜 유언은 이제 시준에게 필요 없다. 김유근의 엄숙한 장례식에서 발표될 혁명 열사의 유언은 시준이 대신 써 줄 것이다.

시준은 부드럽게 웃었다.

“부녀회 일도 바쁠 텐데 이제 가서 쉬어라.”

시준이 임시 부녀회 조직 통괄을 기랑에게 떠넘긴 것은 일손 모자라다는 이유 말고도 더 있었다.

시준은 기랑이 조선에서 상당히 불안정한 방식인 남장여자의 삶 대신 그녀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다른 길을 찾기를 바랐다.

나중에 기랑의 성별이 들키게 되면 시끄러운 일이 좀 있겠지만, 그 전에 기랑이 부녀회에서 입지를 마련하면 시준 말고도 기랑을 보호하고 뒷받침할 조직이 생기는 셈이다(기랑이 사내로서 회장이 되었던 백발백중회는 이 경우 기랑의 편을 들기가 애매모호해진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 오지랖으로 중매해주는 일이라면 중년 여자들보다 적합한 인재는 없지. 19세기에는 더 그럴걸.’

그러나 기랑의 변장이 능숙했는지, 아니면 사회적 편견의 힘이 무서운 것인지 기랑은 같은 여자인 부녀회 사람들에게도 아직까지 들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준의 계교쯤 짐작 못 할 까닭이 없는 기랑은 시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품에는 김유근의 유서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가 들어 있었다.

머리 안 쓰다듬어 줘서 그런가 하는 천인공노할 착각을 시준이 하고 있을 때쯤, 기랑은 여상하게 일어나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시준은 곧 기랑을 잊어버린 채 김유근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추모는 아니었다.

***

잠시 후 시준은 김조순을 만나 아들의 부고를 전했다.

김조순 일가는 지금 수경포도청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강철군주 이공은 푸셰를 기용했을 때 도성의 새로운 치안 설계를 위해 이 엄중한 감옥을 지었고, 현재는 혁명군이 잘 써먹는 중이었다.

봉두난발이 된 채로도 자세는 꼿꼿한 김조순은 시준이 전해 주는 장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침묵할 뿐이었다.

잠시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자 김조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따위 시시껄렁한 이야기 말고 할 말이 있을 텐데. 너희 비적도당이 지금 한가하게 서울에서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도 모르지는 않을 거고.”

그 말이 맞다. 시준은 김유근에 대해 한 조각이나마 남아 있을지도 모를 김조순의 부정(父情)을 이용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만약 풀어준다면 김조순은 김유근을 두 번 죽이러 달려갈 태세였다.

“좋소. 바로 말하지. 투항하시오. 그리고 호남에서 감사 김희순, 그대의 족제(族弟)가 이상한 책동을 일으켜 쓸데없이 인민의 피를 흘리는 일을 막아 주시오. 그래야 세를 완전히 기울게 하여 경상 감사 김회연을 전쟁 없이 무릎꿇릴 수 있소이다.”

지금 급한 것은 남쪽이다. 서울의 보급이 끊긴 만큼 경상도로 내려갔던 관군은 와해될 것이고 김회연은 즉시 북상할 게 분명하다.

시준은 이품의 친정까지 감행한 김조순이 당장 경상도에 나간 군세를 불러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했다. 적어도 그때까지 김조순에게는 시준보다 김회연이 더 강력하고 타협 불가능한 적이었던 것이다.

시준은 이번에도 김회연보다는 자기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어필했다.

“장동 김문의 구명을 꾀해보겠소. 그대들을 증오하는 자가 많지만, 그대의 장자를 추모하는 자도 많소이다. 혁명 열사 김유근 동지의 유가족을 우대한다는 식으로 어떻게 목숨만 살리는 정도라면 해 볼 수 있을 것 같소.”

“거절한다. 죽여라.”

예상하던 답이었지만 시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왜? 김회연도, 그대에게도, 김희순에게도 왕은 없소. 우리는 아마 그 셋에게, 그대 외손자까지 해서 한 사람씩 왕을 나눠줄 수도 있을걸. 대체 뭘 위해 싸우는 거요? 그대들의 꼴이 아주 우습게 되었다는 말이오.”

김조순은 이 무도한 말에 눈썹을 치켜떴다.

“그것을 모르니 너희가 그저 도적 패거리인 것이다. 왕이 제를 모셔 존숭하는 것이 종묘요, 나라가 그 기틀을 삼는 바는 사직이다. 종묘사직이 있는 바에야 왕은 천하 만민의 추대로 덕 있는 사람을 정하면 그만이다. 너희가 어떤 간악한 수작을 부리든 간에, 충의로운 신민은 계속해서 새로운 왕을 모시려 하리라.”

김조순은 지금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 그러니까 피지배층의 지배당하고 싶은 욕구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인민의 총의는 꼭 공화국으로서만 대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착각하기 쉽지만 민주와 공화는 서로 다른 말이다. 사람들이 원한다면, 그들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전제 군주를 섬길 수도 있다.

김조순은 지금 시준과 혁명군이 수천 년간 이 땅을 지배해 온 관념을 그리 쉽게 뿌리 뽑을 수 없으리라 단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이었다.

‘바깥 세계를 알면 북한에서 체제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어떤 사람들의 순진한 믿음과 달리, 북한 사람도 자기 나라가 가난한 독재국가라는 사실쯤 다 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 GDP 1위가 아니라고 하여 5천만 국민이 죄다 탈주해 미국으로 이민 가던가?

그렇지 않다. 사람은 그렇게 기계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하나도 맞는 게 없는 것이다.

김이익의 자결, 거기에 뒤이은 기호 지방 주요 인사들의 무시할 수 없는 반항은 김조순의 단언을 뒷받침했다.

굳이 그런 기득권층까지 가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분명 왕조에서 섭섭한 대우 많이 받은 하민들마저도 모두가 왕조 폐지에 열렬히 찬성한다 보기는 어려웠다. 끝까지 간만 보았던 강상이 대표적이다.

다르게 표현해 본다면 이것이 400년을 이어온 왕조, 그리고 그 수도의 힘이었다.

반동은 눈에 보이는 총칼만이 아니었다. 반동이란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들. 굳게 입 다문 채 일어서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더 완고하고 힘겨운 장애물이었다.

그리고 시준은 그 사실에 이제 답답함을 넘어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몇 년간의 가혹한 스트레스와 과로는 시준이 가진 강력한 정신력을 점점 갉아먹고 있었다. 시준은 대화와 타협에 필요한 인내심 요구량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어차피 서울을 수도로 삼을 이점은 다 사라졌다.’

조제프 푸셰가 예측한 일반적 이유에 더해 영국의 제물포 개항 요구가 결정타였다. 만약 서울을 혁명막부의 수도로 삼는다면 시준은 불안정한 지역 기반을 보충하기 위해 영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국이 믿을 만한 파트너라면야 괴뢰정권이라 욕 좀 먹는 것도 한 번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지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차라리 21세기 한국이 탈레반과 국교를 맺는 게 안전하다. 걔네는 군함이라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기왕 서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 버렸다면 굳이 한성부의 위상을 보전해 줄 이유는 없다.

혁명을 하면 할수록 시준은 깨달아가고 있었다. 어설픈 타협은 후일의 골치만 부른다.

그가 억압적인 왕, 오만한 권력층에 최대한 비위 맞추며 평안한 삶을 얻어내려던 노력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처절한 실패로 돌아갔다.

시준이 주석 된 이후 봉인해 두었던 만상 시절의 깡패가 난폭하게 뛰쳐나왔다.

“좋아, 종묘사직이 있는 한 신민은 왕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으렷다? 그럼 그것을 없애면 되겠군.”

스산해진 시준의 말투에 김조순의 어깨가 움찔했다.

시준은 김조순을 정면으로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반동 놈들이 믿는 바를 하나하나 까부숴 주겠다. 우선 그 귀신부터 시작하지. 왕을 섬기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 앞에서 왕의 모든 것을 능욕해 주겠어. 언제까지 적당히 봐줘 넘어갈 줄 알았느냐. 어디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시준은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김조순은 이 나라의 운세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파멸했기에 저런 최악의 광기가 이 동방예의지국 조선에 강림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500년 왕씨를 진멸했고, 고려 태조 왕건은 천 년 서라벌을 끝장내었다.

그러나 시준은 기자 이후 수천 년을 전부 부정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시준이라면 절대로 망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인 김조순을 진실로 두렵게 만들었다.

김조순은 그답지 않게도 후회에 잠겼다.

시준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닭다리를 던지지 말았어야 했다.

***

조제프 푸셰는 시준을 만날 때 시준이 자기를 반가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으로는 어디 가서 떨어지지 않는 푸셰였지만 그는 동시에 철저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푸셰는 서울로 내려가며 자기 마차 옆자리에 외사통호국장 정약용을 태웠다.

어쨌든 막부의 간부 중 정약용보다 시준과 개인적으로 친밀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정약용 또한 시준이 서울을 곧 함락할 것 같다는 말을 이미 들었기에 기꺼이 따라왔다.

조흥진이나 김익순 같은 생각을 해서는 아니다. 과거 시준의 약속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강철군주 휘하에서 시준에게로 투항할 때 정약용은 왕실의 계사만은 끊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서대문에 도착했을 때, 정약용은 자기도 아는 방향에서 미친 듯이 솟구치는 연기를 보고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곳은 창덕궁…… 아니, 종묘인가! 대체 무슨 일이!”

종묘가 창덕궁 바로 남쪽에 있어서 헷갈리기 쉽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약용의 기억력이 매우 비상하다 할 것이다.

종묘나 창덕궁이나 불타면 다 큰일이 아니냐 하겠지만, 그 둘은 유학자에게 큰 차이가 있다. 아마 창덕궁이 불탔다면 정약용도 탄식 정도만 하고 말았을 것이다.

얼굴이 새파래진 정약용은 허둥지둥 마차에서 내렸다.

반면 푸셰는 시준이 역시 자신이 평전을 써 줄 만한 희대의 혁명가라고 생각했다.

푸셰는 웃는 표정을 정약용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짐짓 수염을 쓰다듬었다.

정약용은 조선어와 프랑스어 둘 모두에 능통하다. 그래서 푸셰는 독일어로 감탄했다.

“Brennt die Königsburg[왕성은 불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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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조선에서 부인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려면 남편이 처가 식구들의 존속을 폭행하거나, (동렬, 비속 포함)살해하거나, 부인을 골절 이상의 중상으로 폭행하거나, 반역자이거나, 실종 3년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반대의 경우, 칠거지악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인이 남편에게 욕을 하거나, 경미하더라도 폭행을 하거나 했을 경우도 남편은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니까 부인 쫓아내는 일은 사실상 마음대로였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작중 초반 김조순이 김유근의 이혼 요구를 막았던 것처럼 집안에서 사적으로 제지하는 수밖에 없었죠).

이 이혼 조건은 반가의 기준이고, 평민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 딱히 사회적 체면도 없고, 예법 알아먹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그리고 부수적으로, 동네 부자나 대갓집 마님이 평민 유부녀를 빼앗고 싶을 때 그 남편을 협박 혹은 매수해서 합법적 이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조건이 법적으로 복잡하면 좀 곤란하거든요. 이 사례로 서른다섯냥 받고 이혼한 최덕현이란 사람이 서명한(손바닥 대고 테두리 그린) 이혼장은 현대에도 남아 있습니다.

2.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때, 파리를 전부 불사르라고 명령하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Brennt Paris)?' 라고 수도 없이 물어봅니다.

당시 파리에 주둔하던 디트리히 폰 콜티츠 중장은 '히틀러를 배신할지언정 인류를 배신할 수는 없다' 며 명을 거부합니다(단지 유대인은 인류가 아니라고 생각한 콜티츠 중장은 본국 시절 유대인 학살에는 적극 참여했습니다).

어쨌든 그때는 히틀러 쪽은 누가 봐도 졌고 인류 쪽이 누가 봐도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갑자기 히틀러를 배신하고 싶어진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콜티츠 중장의 선택은 정확했고, 그는 그 공으로 딱 2년만 복역하고 풀려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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