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49. 낡은 것과 새로운 것(2)
시준이 서울을 함락하기 조금 전, 행주산성의 전투 결과는 가장 빠른 파발로 평양에도 전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면서도 조마조마하며 ‘서울 진공’의 성패를 나름대로 점쳐 보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사람들은 서울에 이해관계가 있던 기존 평안도 지방관들이었다.
이제 큰갓 대신 ‘혁명모자’라고 불리는 서상 털모자 차림의 그들은 모여서 조촐한 잔을 나누었다. 인간적인 단결의 자리는 백성만이 아니라 사대부도 필요하다.
의주 인민위원회 위원장이며, 예전에는 의주 부윤이라는 직함도 달았었던 조흥진이 점잖게 입을 열었다.
“혁명군의 기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 별다른 일이 없으면 도성은 떨어질 것이오. 영호남의 반동이 약간 걱정이긴 하나 민심을 잃은 조정을 위해 일어설 근왕군이 많지는 않을 터. 내가 주석 동지께서 의주에 살 때부터 각별히 아끼고 도왔던 이유는 일찍부터 그의 영용함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오.”
일부 의주 출신 인사들은 부윤 시절의 조흥진이 대체 언제 정시준을 그렇게 특별히 우대해 주었던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부윤이 각별히 아끼고 도왔다면 장사치 노릇 하며 돌아다녔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분위기에서 반박할 사람은 없다.
조흥진은 과거를 윤색하는 단계를 넘어 그 조작된 역사를 자기 스스로도 믿어 버리는 경지에 다다랐다.
그래서 그 태도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 정도 성의라면 거짓말인 것을 알면서도 존중해 주는 것이 올바른 사회인의 자세다.
조흥진과 비슷한 시기에 투항했던 옛 선천 부사 김익순이 잔을 들었다.
“실로 그렇소이다.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보궐선거를 제때 치르기는 시일이 촉박하다는 점인데, 삼월 삼짇날에는 진짜 선거를 하기보다 혁명의 일차 승리를 선포하는 날이 되겠지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김조순과 김희순 등 안동 김문 황금세대의 한 사람이지만, 그만은 이례적으로 초창기부터 시준의 편을 들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홍경래에게 즉각 항복하는 등 빠른 항복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이번만은 그 선택이 옳았다. 어린 손자 김병연이 할아버지 창피하다며 삿갓 쓰고 방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서 김익순의 표정은 밝았다.
김익순은 그답게도 여기에서 다른 정치 지형의 변화를 읽어내었다. 그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그렇다면 주석 동지께서는 창덕궁에서 새로운 인민의 나라를 선포하시게 될까요?”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든다는 얼굴로 김익순을 마주 보았다.
김익순은 지금 신정부의 수도 문제를 말하고 있다.
말은 수평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좋게 평가해 준다 하더라도 ‘앞’과 ‘뒤’의 분별은 있었다.
현재의 혁명막부와 중앙인민회의에서는 당연히 시준을 포함한 서상 의주파가 가장 큰 세를 자랑한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서상과 기타 평안도 남부 광산주, 상인들의 연합인 김창시의 신흥파다.
평안도 안에서도 정신 질환의 혐의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열정만은 알아줘야 할 정감록파도 주석의 호의를 얻고 있다.
그들은 무당, 승려 등 종교계를 주로 장악함으로써 시준의 중요한 지지층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사대부 계층이 조금 애매했다.
그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막부의 간부 대부분은 엘리트 선비 계층이며 지금 모인 이들이 맡고 있는 인민위원회 위원장도 결코 낮은 자리라고 할 수 없다.
허나 그들 대부분은 시류에 영합한 것. 말하자면 주체적 혁명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혁명의 동의자이긴 해도 혁명의 발의자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 보니 능력보다는 솔직히 사상이 더 중요한 현재의 혁명막부에서 통일된 주요 정치세력이 되기가 어려웠다.
당장 서로끼리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정약전, 정약용, 서유구, 복공 등 선비 출신 주요 인물은 사족이라기보다는 시준의 동료라고 봐야 한다.
이 상황에서 시준이 어디를 도읍으로 정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변수가 된다.
김익순, 조흥진 등은 당연히 원래 평안도 출신이 아니다. 그들은 서울과 삼남에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고, 김익순 같은 경우는 안동 김문이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주석이 만약 서울에서 새 나라 수립을 선포한다면 이들은 이제 평안도 토호들이 기를 펼 수 없는 한양에서 신정부의 주도 계급을 노려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시준의 서울 함락을 가장 고대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시준이 들었다면 정말로 건전한 욕망이라고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로서는 ‘승리에 취한 혁명군을 뒤에서 치고 왕정을 복고한다’는 모의가 아닌 것만 해도 백번 감사할 처지다.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은 조흥진도 헛기침을 했다.
“어흠. 정치국에서는 아직 얘기가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비록 왕실과 사대부가 없다고 하더라도 한양은 풍수로 보나 이해로 보나 더 이상 적당할 수가 없는 도읍. 결국 마땅히 그리하지 않겠소이까?”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쳤다.
“평양도 기자 이래 오래된 대읍이기는 합니다만, 너무 북쪽에 치우쳐 있어서 되놈들이 다시 쳐들어오면 방도가 없겠지요. 반동의 도읍이라 해도 혁명의 색으로 다시 물들여 써야 하오이다.”
“어차피 보궐선거를 치른다 하면 기존의 대의원들도 참가해야 할 터. 일찌감치 서울 갈 짐을 꾸려놓아야 하겠소이다.”
이 정도만 해도 조선의 기성 사대부로서는 놀랄 만한 적응력이다. 한순간에 혁명적 정치 세력 중 하나가 되어가는 양계 사대부들은 서로를 극찬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
“—해서, 더 늦기 전에 서울로 가야 한다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소이다만.”
외사통호국 부국장 임상옥은 그렇게 말하며 복공을 떠 보았다.
선전선동국장 조제프 푸셰는 이 시점에 평양에 있었다.
아직 치안 기구라고 할 것은 없었지만 조제프 푸셰는 로베스피에르 치하 보안위원회의 기능을 잘 아는 사람이다(그래서 뒤집어엎을 수도 있었다).
다만 일종의 외국 용병인 조제프 푸셰가 직접 조선인을 처벌하는 것은 너무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기에 푸셰는 혁명군의 눈과 귀 노릇을 해 주며 상응하는 권력적 존중을 유지하는 선에서 만족했다.
임상옥의 말에는 그러니 벌써 떡고물 생각하는 사람들을 당신이 어떻게 단속해 보라는 암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푸셰는 쓰던 종이에서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할 뿐이었다.
“바보들은 스스로 깨닫는 과정도 필요하지요. 거기에는 종종 뼈아픈 교훈이 동반되고. 평양과 한양을 오가는 헛된 여비 정도면 싸게 먹히는 것 아니겠소.”
“바보라니요?”
푸셰는 펜을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한양의 수도로서의 적합성? 그런 걸 논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어리석소. 400년간 불변한 수도 아니오. 당연히 적합하겠지. 그리고 우리가 붙잡은 2명의 국왕도 조선의 군주로서 적당히 적합했을 거요. 아직 서울에 버티고 있는 섭정공 김조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말이오.”
푸셰는 팔짱을 끼고 임상옥을 가만히 마주 보았다.
“우리가 혁명을 일으킨 것이 이치에 맞기 때문이오?”
임상옥은 입을 다물었다. 푸셰는 계속해서 말했다.
“고아 장사꾼이었던 주석이 왕후귀족을 제치고 인민을 대표하는 것은 리(理)에 합당하오? 4천 명밖에 안 된 오합지졸 혁명군이 고대부터 내려오는 강력한 요새와 수많은 정부군을 모조리 깨뜨리고 수도의 코앞까지 육박한 것은 말이 됩니까? 수천 년 동안 군주를 섬겼던 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나서서 말재주를 뽐내며 연설하는 저 성벽 아래의 광경은?”
임상옥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마저 느꼈다. 그렇다. 혁명은 이치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분명 정치를 제외하고 본다면 서울 천도에는 합리적 이유가 많다. 하지만 혁명에서 정치는 제외될 수 없는 것. 정치적 관점을 배제할 것이라면 혁명을 왜 했겠는가.
“그, 그렇다면 동지의 말씀은…….”
“주석 동지는 절대로 수도를 옮기지 않을 거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동지께서도 남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지 않은 사람 중 하나이니.”
임상옥은 자기 생각을 들여다본 듯한 푸셰의 발언에 찔끔했다.
그 말이 맞았다. 임상옥은 시준을 가장 오래 전부터 봐 온 사람 중 하나이며, 시준이 사실은 급진적인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어렴풋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을 가장 처음부터 열렬히 지지해온 평안도 토착 세력과 평양의 인맥을 전부 버리고, 얼마 전까지 반동의 소혈이었던 서울을 택할 만큼 정시준은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만약 시준이 신왕조의 개조가 될 생각이라면 서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양에서 오랜 기간 국가를 위해 봉사한 여러 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고 사대부들에게 역성혁명론을 설득하여 협조시킬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 경우에도 시준에게는 선택지가 서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준의 강력한 지지세력 중 하나인 정감록 신앙인들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계룡산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편이 압도적으로 낫다. 이성계가 조선의 수도로 가장 처음 검토한 곳이 계룡산이었을 만큼 그곳의 입지도 수도 후보지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여러모로 서울은 혁명막부가 매달릴 땅은 아니었다. 매달린다면 시준에게 협조한 서울 토호나 강상들이 거꾸로 매달려야 마땅했다.
임상옥이 밝은 표정으로 나가자, 푸셰는 말도 안 되는 서울 천도론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그는 지금 다른 일로 바빴다. 푸셰는 쓰다 만 종이를 힐끗 쳐다보고 서안에 팔꿈치를 괴었다.
‘왜 영국인들은 아시아를 떠나지 않는 거지?’
지금은 양력으로 1813년 3월이다. 나폴레옹이 작년 여름쯤 러시아에 쳐들어갔으니, 지금은 임페라토르의 목을 쳤어야 한다.
조제프 푸셰는 설마 나폴레옹이 겨울까지 러시아에 남아 있는 머저리 짓을 했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필시 그 전에 전쟁은 끝났을 터요, 아무리 관대하게 봐 줘도 11월이라고 치면 4개월 뒤인 지금은 극동아시아까지 소식이 전달되었을 시점이다.
따라서, 푸셰의 생각에 영국인들은 지금 중국에 최소한의 전력만 남기고 아시아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조선은 프랑스의 도움이 매우 절실해진다.
동아시아에는 국제 조약에 대한 신용 유지라는 개념이 없다(사실 유럽에도 없다). 한숨 돌린 청은 조선 독립이니 하는 ‘건방진’ 조항은 즉시 파기하고 조선에 대해 더욱 신경질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할 것이다.
영국이 없다면 그 침공을 막아 줄 나라는 프랑스뿐이다. 안남-조선으로 이어지는 극동아시아 프랑스 영향력의 원대한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푸셰 또한 조선 혁명정부의 유일한 동맹국으로 프랑스 제국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된다. 나폴레옹이 아무리 그를 좌천했어도 이러한 푸셰의 공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모를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영국 놈들은 여전히 삼화부 항구에서 기운차게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푸셰가 정보 통제에 애쓰기는 했지만 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대전을 숨긴다는 망상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다.
조선 인민해방전쟁은 선전해야 하고 영국에는 숨겨야 한다는 모순적 계획은 처음부터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암허스트 남작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의 암허스트는 중국 내의 민중봉기와 비협조적인 청 정부를 상대하느라 조선까지 적대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이었다.
적어도 현재, 암허스트는 조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난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과 평안도 사람들은 날로 돈독한 우호를 쌓아 가는 중이었다.
푸셰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미 삼화부에는 영국인 거리 비슷한 게 생겼다.
가장 용기 있고 혁명적인 조선인들이 양귀자 상대로 영업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술집과 사창가는 물론이요, 조선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진품 ‘조선산 완전판 연애소설’도 특히 잘 팔렸다.
이건 상당히 곤란한 신호다.
음란소설이 야기할 도덕 파탄이 곤란하다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한 정부다.
외방전교회에 문의한 결과 프랑스의 패배 소식은 전달되지 않은 것 같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승리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전쟁을 오래 끌고 있다면 그만큼 패배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길게 끌 수 없다. 보급이니 그런 것은 차치하고라도, 조금이라도 패색 비슷한 게 보이면 전 유럽의 원한을 산 나폴레옹은 반드시 등에 칼을 맞는다.
‘나폴레옹이 패배한다고……?’
그 가능성을 떠올린 순간, 푸셰는 이성이 보내는 조소와 본능이 보내는 경고를 동시에 느꼈다.
머리로는 나폴레옹이 패배할 요인을 떠올릴 수가 없었지만, 동시에 유럽 최고의 생존전문가 푸셰의 감이 심상찮은 조짐을 호소하고 있었다.
원래 그는 평양에서 시준의 조선 전국 제패를 기다리며, 영국인의 철수에 맞추어 대청 전략의 비전을 제시할 생각이었다.
이제 유럽 전쟁이 정리되었으니 떠나야겠다는 말까지 섞어 주면 더욱 좋다. 시준이라면 필시 지금 푸셰가 없으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더욱 높은 대우로 붙잡아 두려 할 터이다.
조선에서의 권력에는 관심 없지만 그 권력으로 혁명정부 안에서 친 프랑스파를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은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만약 나폴레옹이, 그럴 리는 없지만 정말 진다면 그때를 대비하는 한 수도 마련해야 했다.
‘한양 자체는 별로 가치가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지금 정시준이 있을 테지. 이것 참, 그자들을 멍청이라고 비웃을 때가 아니었군. 나도 한번 가봐야겠어.’
조제프 푸셰는 결심하고 일어났다. 조선군에 대해 많은 정보가 있는 푸셰는 행주산성의 승리가 조선 정부군 최후 전력의 소멸이라는 사실도 잘 알았고, 자신이 갈 때쯤 서울은 함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짐작했다.
‘왕국의 수도에는, 그리고 궁정의 깊은 곳에는 내가 정시준보다 오래 살았다. 시준은 이 나라의 기성 권력에 대해 잘 모를 거야. 내 조언이 반드시 필요할 터.’
정부서울청사는 광화문 바로 건너편에 있다. 시준은 옛날에 점심시간마다 아메리카노 쪽쪽 빨며 궁궐을 산책했지만 그 사실을 푸셰가 알 도리는 없다. 하기야 기성 권력에 대해서라면 푸셰의 생각이 맞으니 오류는 아니다.
푸셰는 아직 시준과의 이별을 준비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직은 시준과의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만, 영국이 나폴레옹을 꺾고 그 기세를 타서 평양의 프랑스인을 다 내놓으라고 다그칠 경우 시준이 그를 보호하게 만들어야 했다.
조제프 푸셰는 곧 마차를 준비하도록 선전선동국에 일렀다.
***
이때 베이징에 있던 로드 암허스트는 푸셰에 비해서 한 가지 나은 점이 있었다.
그건 믿을 수 없는 인맥이나 위태로운 간첩질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하는 조제프 푸셰와 다르게, 암허스트의 경우 정식으로 유럽의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암허스트는 작년 10월 이루어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철수를 이 시점에서 상세히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이번 전쟁’에서는 대프랑스 동맹군이 이겨볼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 셈이다.
다만 로드 암허스트로서도 나폴레옹이 이대로 비탈길 구르듯 굴러떨어져 완전히 몰락하리라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동아시아는 패배가 곧 국가 멸망과 구족 몰살인 상남자들의 고장이지만 유럽은 그런 면에서 사내다움이 조금 부족하다.
져도 대충 조약 맺고 살려주니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의 애민군주들이 보았으면 혀를 찼을 것이다.
어쨌든 암허스트의 예측은 조금 더 유럽의 상식에 충실한 것이었다.
암허스트는 아직도 열하에서 파업 중인 가경제가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찻잔을 들었다.
‘아마 프랑스의 폭주를 막아서고 견제하는 형태의 협상이 벌어질 터. 그렇다면 이번의 승전국인 러시아와 물밑에서 협상할 패가 필요하다.’
그 패는 물론 중국 외에 없다. 중국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영국은 유럽에서 러시아의 호의, 또는 증오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중국에 집중하려면 조선의 발판을 더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암허스트는 생각에 잠겼다.
‘해군을 돌려 조선을 쳐서 합병하여야 하나?’
결국 영국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이란 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영국인이라도 그건 조금 찜찜했다.
현재 유럽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하는 영국의 상황상 로드 암허스트는 추가 지원을 얻을 수 없다.
런던 정계에 화려하게 진출하려면 암허스트가 현재 가진 자원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데 그 자원은 중국을 안정적으로 꽉 잡으면서 조선까지 완전 병탄하기에는 좀 모자라다. 무력 자체가 모자라다기보다는 무력을 다룰 거대한 체제가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에 계속 양보할 수도 없다. 암허스트는 혁명전쟁으로 바쁜 ‘친구’ 시준에게 이쯤 해서 신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조제프 푸셰에 비해 양질의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고, 근소하지만 평양 사람들보다도 먼저 서울 함락을 알 정도였던 로드 암허스트는 한 가지 면에서 푸셰보다 뒤떨어졌다.
암허스트는, 말하자면 혁명정신이 부족했다.
암허스트는 시준이 당연히 서울을 신정부의 수도 삼을 거라고 예측했다. 하긴 혁명의 바깥에 있었던 암허스트로서는 합리적 시선으로 시준의 뜻을 가늠할 수밖에 없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래서 암허스트는 시준에게 혁명전쟁의 승리를 축하함과 동시에, 일전 삼화부에서 그와 직접 대면했을 때 했던 약속의 이행을 요구했다.
당시 시준은 조선 왕국 정부보다 더 전향적인 개방을 약속하며 암허스트를 끌어들였다.
그래서 (한양과 가까운) 제물포(濟物浦)를 개항하여 영국과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자는 암허스트의 제안은 딱히 양심 없는 것이 아니었다.
양심이 없는 건 언제나 그렇듯 시준 쪽이었다.
그 편지를 받은 시준은 기꺼이 약속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잘 협상하면 제물포 개항을 대가로 영국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시준은 한양을 마음속 수도 후보지 목록에서 영원히 삭제했다.
영국 놈들은 틀림없이 제물포에 드나들 수 있겠지만 그 옆의 한양이란 도시는 더 이상 수도가 아닐 것이다.
“자, 그럼 한순간에 똥땅이 된 서울 사람들을 어떻게 납득시킨다……?”
그 고민은 곧 해결되었다. 물론 시준이 바라는 형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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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이성계가 생각했던 수도의 첫 후보지는 계룡산이었습니다. 아무튼 개성은 기존 고려 귀족들이 너무 많아서 수도는 옮겨야 했습니다.
직접 행차할 정도로 진지했고, 기초 공사까지도 진행하지요. 그러나 하륜이 말려서 서울로 결정되고, 2차로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배틀 끝에(진짜 둘이 대면했다는 건 아니고 의견이 갈렸다는 뜻입니다) 정문을 남쪽으로 향하는 한양도성과 왕궁의 윤곽이 완성됩니다.
무학대사는 문을 동쪽으로 하자는 의견... 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신진사대부들이 듣기에는 용납하기 어려웠죠. 그건 (문 자체라기보단) 신왕조가 중국의 제도를 안 쓰고 나아가 유교를 국시로 삼는 것을 견제하겠다는 얘기거든요. 한국으로 치면 갑자기 인류문명의 총화 SI단위를 폐지하고 사특한 야드파운드법을 채용한다 했을 때 아마 비슷한 반응이 나올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륜이 이성계를 설득할 때는 풍수지리설로 얘기해 별로 유식하지 않았던 군벌 이성계의 마음을 돌리지만 정도전이 이성계를 설득할 때는 '나라의 수도를 정하는데 점술이 웬 말이냐?'는 식으로 과격하게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실록을 보면 짜증난다는 뉘앙스마저 느껴집니다;;; 뭐 왕이 기운과 길흉이 어떻고 좌청룡 우백호가 어떻고 하고 있으니 그야 짜증날 만도 하긴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가 잘 드러나죠. 그래서 하륜은 곱게 죽었고 정도전은 곱게 못 죽은 것 같습니다.
정도전은 '술수'를 배척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현대에는 정도전도 풍수와 자꾸 얽힌다는 점이 죽은 사람 뒷목 잡는 얘긴데... 세간에는 정도전이 서울을 위해 마련한 풍수 9책이니 하는 말까지 당당히 신문에 칼럼으로 실렸죠. 이것으로써 14세기나 현대나 알기 쉬운 설명을 더 좋아한다는 면에서는 큰 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 김익순은 일전 시준이 처음 평안도를 접수할 때 이름만 잠깐 비쳤죠. 김삿갓의 할아버지 김익순 맞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처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