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47. 너는 듣고 있는가(3)
뒤엉켜 버린 백성과 관군의 간격은 전투라기보다 생활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사실은 병력의 우위를 거의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훈련도감의 주력은 조총을 든 포수이며, 살수는 애초부터 숫자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많지 않은 살수 대부분은 행주산성에서 잃어버렸고 나머지는 다 포수를 지원하러 서쪽 성벽에 가 있다.
그래서 지금 가마를 호위하는 병사 중에는 살수가 없었다. 거개는 포수고 행차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동원된 마군 일부가 있을 뿐이었는데, 기마병은 이 상황에서 방해만 된다.
그리고 포수들은 지금 화승에 불을 붙이고 총알과 화약 쑤셔 넣는 한가한 짓 따윈 할 틈이 없었다. 그들은 되는 대로 총을 잡고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한마디로, 남조선혁명당 한성지부와 훈련도감은 지금 무장 수준이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훈련도감이 더 안 좋았다. 혁명당은 야장 정대운에게 급히 지원받은 비수며 쇠꼬챙이, 낫 조각 같은 것이라도 있건만 도감군은 그나마 없었다.
뭔가 이상해 보인다면 그 생각이 맞다. 이 시대의 화기는 범용성 있는 무기가 아니다. 포수라도 당연히 개인 무장이 있어야 한다.
삼수병제 하의 포수 역시 규정상 환도를 가지고 있다. 김좌근의 말마따나 빨리 칼을 뽑아서 맞서야 했다.
그런데 조선군은 일반적으로 칼을 잘 차고 다니지 않는다. 무거우니까.
그런 쇳덩이를 항시 매달고 다니는 일은 허리에 대단히 안 좋다. 그리고 조선에는 산재보험이 없다.
김좌근은 조금 후에야 겨우 칼 가진 병사를 발견하고 그것을 빼앗아 들었다. 그러고는 당대 최고 무협 작가의 아들답게 멋진 자세로 환도를 빼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김좌근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칼자루와 칼몸테두리밖에 남지 않은 환도가 수줍게 새로운 검사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대체 이런 게 어떻게 칼집에 고정되어 있었는지조차 불가사의했다.
조선군이 특별히 군기가 빠져서는 아니다. 현대 한국 병사들도 행군 훈련 나갈 때 배낭에 정규 군장 대신 가벼운 모포 채우지 않던가.
군대가 원래 그렇다. 귀하신 집안 자제라 그쪽 경험이 없는 게 김좌근의 문제였다.
아무리 김좌근이 김조순의 아들이라도 여기에서 내공을 분출시켜 빛의 검날을 자아내기에는 수행이 모자랐다.
김좌근은 칼을, 아니, 칼자루를 던지고 다시 조총을 빼앗아 들었다. 이건 그나마 몽둥이라도 되니 아주 조금은 나았다.
그 와중에도 노랫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정말 사교도의 주문이라도 되는지, 그 가락이 쩌렁쩌렁 퍼질 때마다 저 폭도들은 힘이 나는 모양이었다. 벌써 가마를 호위하는 관군의 절반은 도망치거나 사방에서 덮쳐든 백성들에게 깔렸다.
일부 분전하는 관군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자는 백성들에게 뒤에서 찔려 쓰러졌다.
그리고 김좌근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자를 알 것 같았다.
아직까지 우마차 위에 올라가 있는 김유근은 그 붉은 깃발을 장수의 휘(군용 깃발)처럼 펄럭였다.
김유근은 관군 중 특히 머리가 나쁜 자, 그러니까 이 판세에서도 열심히 싸우는 자를 우선 목표로써 지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렸다.
이건 이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분명히 대부분은 그저 분위기에 휩쓸린 오합지졸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분명히 숙련된 자들이 존재했다.
사람의 정신력은 용량이 한정되어 있다. 흥분이 늘어나는 만큼 이성이 줄어든다. 이 상태에서 그들은 판단이 아니라 수용만을 한다.
지금 여기의 백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숙련된 선동자 몇몇의 짧은 고함과 손짓에 전혀 의심 없이 따랐다.
김좌근이야 그들이 혁명군 정찰총국원이라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모두 저자가 아들로서 아비를 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김좌근의 눈이 확 불타올랐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쓰지 않은 호칭으로 나이 차이 꽤 나는 맏형을 불렀다.
“김―유―근! 이 패륜아 새끼야!”
***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친 혁명가, 김유근에게 동생의 절규 따윈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제 군사 지휘관이라기보다 음악의 지휘자였다.
그의 적기 아래에서, 노래는 울려 퍼진다기보다 가득 차 넘쳤다.
- 너는 듣고 있는가. 성난 인민의 노래.
찌르고 때리는 관군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격노하여 울부짖었다.
눈앞의 관군은 원래 그들에게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다.
배 문지르며 팔자걸음으로 걸어들어와서 제 것처럼 한 상 잘 받아 처먹고, 그것도 모자라 눈에 띄는 것 아무거나 집어가던 순라군과 금례 앞에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포도군관이 공랑세(公廊稅, 정부가 거두던 시전의 자릿세)가 어떠하니 장물이 있는지 의심된다느니 하며 윽박지르면 시비를 따져볼 생각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그저 없는 돈 털어 바치며 잘 봐주십사 굽실거릴 뿐이었다.
그들은 군주에게 위임받은 관리였고, 군주는 곧 나라였다. 나라가 하민을 다스리는 것은 그들이 집에서 처자를 다스리는 것만큼이나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백성들은 지금까지 대체 왜 이런 하찮은 자들을 두려워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 역적 놈들아! 지금 무엇 하는 짓이…… 커억!”
누구나 조건반사적으로 움츠릴 수밖에 없는 ‘역적’이라는 단어로 호통 쳐서 간격을 벌어 보려던 군관의 얼굴 정면에 몽둥이가 틀어박혔다.
이제 그들은 그런 반혁명적인 압제에 대항할 만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닥치거라, 이 반동 놈아!”
유혈과 고함 사이로 다시 김유근의 목청이 하늘을 찢었다.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이전까지 그들은 노예였다.
왜 그런가? 복잡한 설명은 필요 없다. 애초에 그들을 노예라고 규정한 전제 군주 역시, 기꺼이 노예 노릇 자처할 정도로 합리적인 이유를 댄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냥 그들은 예속인이고 군주의 재산이었다.
하민들이 예속되는 이유가 ‘그냥’이라면, 그 주장을 부정하는 데에도 ‘그냥’이면 충분하다.
나는 이제 배알이 꼴려서 네 밑에 못 있겠다. 그것이면 혁명에 차고 넘치는 것이다.
그래서 평양 사람들은 선언했다.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자신뿐이다. 모든 사람은 물처럼 평평하여 높낮이가 없다.’
허나 처음에는 아무도 평안도 불상놈들의 난폭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그러한 반박법은 그다지 참신한 것도 아니었다.
멀리는 진나라의 진승, 오광부터 시작해서 가까이는 고려의 만적(萬積)까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며 창검으로 그것을 증명하려 했던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전부 그 증명에 실패했다. 전제 군주는 항상 그들을 진압하고 승리했다.
따라서 푸셰의 평가대로 실증적인 동아시아 사람들은 그들이 틀렸으며, 왕후장상의 씨가 사실은 따로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랜 기간 증명되지 않은 난제는 드디어 풀렸다.
혁명군과 정시준 주석은 두 명의 왕을 사로잡고 자신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따라서 그들은 노예가 아니다.
노예가 아니라 같은 신분이라고 했을 때는, 당한 만큼 돌려줄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했다.
- 가슴 떨려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은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혁명 동지 모두의 심장 박동은 전고(戰鼓)처럼 일치되어 울렸다. 황홀경에 빠진 김유근은 일부 고도의 수련을 쌓은 수행자들이나 엿볼 수 있었다던 경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올라간 곳은 우마차 위일 뿐이지만, 김유근은 마치 자신이 천상계에 붕 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김유근은 더 이상 눈으로 전장을 살피고 깃발로 방향을 지시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삼라만상과 일체화되었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마 주위에서 싸우는 동지들과 관군은 이제 김유근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도성 전체였다.
김유근이 마음 가는 대로 적기를 휘둘러 가리키는 곳에 연기가 일어나고 혁명의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 동지여, 함께 싸우자. 뉘 있어 나와 함께 하겠나.
사람들은 그 격렬한 전투의 와중에도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목청껏 화답했다.
“내가 함께 가겠소!”
“혁명의 길에 앞장설 이 사람은 광통방 사는 조득출이요!”
이십여 년 뒤, 이 노래를 부르게 될 파리의 시민들은 정부군에 의해 즉시 처절하게 진압되었다. 국왕 루이필리프는 “들을 것도 없고, 협상할 것도 없다”며 시위대를 비웃었다.
그러나 이제 이 노래는 안타까운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통쾌한 승리의 상징이 될 것이다.
한성 부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쌓아 놓고 뒤에서 힘겹게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러기에 조선 관군은 프랑스 육군에 비해 너무 약했다.
그리고 한성 부민은 파리 시민들에 비해 너무 강했다.
파리 하층민이 비참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조선 하층민에 댈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빈부격차는 조선보다 프랑스가 더 컸으나, 그래도 파리에는 그때까지 아이티, 알제리, 인도차이나를 털어먹은 부가 있었다(물론 식민지에서의 불의에 분노한 혁명 따윈 없었다).
이들은 1832년 봉기를 주도했던 얼굴 하얀 공화주의자 평론가와 학생들이 아니다. 야생의 조선인에게 파리 시민처럼 바리케이드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공격, 오로지 공격만이 있을 뿐이다. 한성 시민들은 혁명의 고지를 타 넘어가 점령할 열의에 차 넘쳐 있었다.
- 저 성벽 너머에 우리가 바라던 세상 있으니!
그 광기의 소용돌이에서 아직 한 대도 안 맞은 사람은 딱 세 명이 있었다.
진작 땅에 떨어뜨린 가마 안에서 벌벌 떨고만 있던 혜경궁, 대비, 그리고 전 왕비이자 김조순의 딸 안동 김씨였다.
세 여자 모두 이미 이런 일을 한 번 당해 봤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김씨의 경우 조금 다른 시선도 가질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이 무도한 도주 행렬을 계획했고, 그녀의 오라비가 미친 것처럼 이 습격을 지휘했으며, 그녀의 남동생이 그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김씨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장동 김문이 저주받은 가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김씨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녀 자신도 아버지를 독살하려 했으니 더욱 그렇다.
김씨는 가마 밖으로 눈만 빼꼼히 내밀어 보았다. 원자가 어디 있는지 찾고 싶었다. 그러나 그 각도에서 보이는 것은 오가는 사내들의 정신없는 다리춤뿐이요, 들리는 것은 욕설과 고함이었다.
그리고 김씨는 그 와중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표독스러운 고함 소리에 질겁했다.
“이 천것들이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로구나!”
김좌근의 목소리였다.
***
김좌근의 나이는 올해로 17세. 조선 시대임을 감안했을 때 육체적 절정기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조선 최고의 무협지 작가 김조순의 아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도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냥 문과 봐서 무난히 합격하고 삼정승 육판서를 해먹을 명문가의 흔한 예비 문반이다.
허나 지금은 ‘별다른 일’의 대표격 재앙이 발생하는 중이었다. 김좌근 역시 특별한 소양을 발휘해야만 했다.
김씨는 문득 김좌근이 그 두꺼운 약탕기를 한 발길질로 가볍게 깨뜨려 버렸던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때린 손발 쪽이 부서져야 마땅했다.
김좌근은 만일을 위해 아껴 두었던 고강한 무예를 뽐냈다.
그는 기어코 제대로 된 칼을 찾아냈다. 관군이 아니라 혁명당원을 조총으로 두드려 패고 빼앗은 것이다.
김좌근은 총을 팽개쳐 놓고 칼을 비틀어 쥐었다.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혁명당원 하나가 김좌근을 노렸다.
김좌근은 세 가지 동작을 한꺼번에 수행했다.
김좌근은 발길질로 당원의 발목을 걷어찼다. 보법이 흐트러지며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김좌근은 칼몸으로 그의 힘 빠진 칼을 살짝 쳐냄과 동시에, 다음 순간 진짜 힘을 실어 자신의 칼날로 당원의 목을 훑었다.
푹 찌르거나 있는 힘껏 내려 베면 칼날이 몸에 박혀 다시 뽑기도, 쓰기도 힘들다. 김좌근은 절제된 동작으로 치명적인 경동맥만을 베었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오늘 이전까지 김좌근은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여 본 일이 없다(남의 손으로는 꽤 있다). 배운 이론을 제대로 수행하는 김좌근의 정신력과 재능은 보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순식간에 서너 명이 목에서 피를 뿜으며 뒹굴었다. 뒤에서 달려드는 자들은 김좌근의 발길질이 박히자 말발굽에 챈 것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고 나자 김좌근의 주위는 한순간 텅 비게 되었다. 그는 떨어뜨렸던 조총을 집어 들었다.
아까 누군가 던진 주석불이 발치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김좌근은 주저 없이 총째로 그 불에 들이대었다.
화승에 불이 붙자 김좌근은 자세를 한껏 낮추고 비스듬히 위를 향해 조총을 조준했다. 그가 조총을 쏴 본 경험은 적지만 이 거리면 조총 아니라 돌팔매로도 명중시킬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김좌근의 의도를 눈치챈 사람은 낮은 곳을 보고 있던 김씨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 된다고 외칠 수 없었다.
김씨 역시 똑같은 짓을 하려 했으니까. 그녀가 아버지를 죽이려 했듯이, 지금 동생은 형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마차 위에 서 있는 김유근은 그것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김씨는 제발 빗나가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탕!
싸움이 일어난 후 최초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전히 주변은 그런 소리 따위 들리지도 않을 만큼 소란스러웠지만, 김유근은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김유근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탄내였다. 그의 저고리가 거무스름한 자국과 함께 뚫려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김유근은 피 냄새를 맡았다. 상처에서 쏟아진 피 때문만이 아니다. 신기할 정도로 질퍽한 피가 입에 가득 차 넘쳐났기 때문이다.
김유근은 적기보다 붉은 피를 흘리며, 깃대를 지팡이처럼 두 손으로 잡은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에서 깃발이 힘없이 미끄러졌다. 얼굴을 때리는 쌀자루는 기이하게 포근한 감촉이었다.
그런 김유근의 귓가에서 아스라이 먼 곳의 북소리처럼 노래가 메아리쳤다.
***
남공철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말했다.
“주석 동지. 도성 안에 있는 동지들이 잘 해준 모양입니다. 곳곳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시준은 약간 놀랐다. 정찰총국의 작전이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조순이 그런 내란에 당해 줄 위인은 아닌데, 아무래도 정약전의 예측대로 도성을 버리고 달아날 생각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시준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지금은 절호의 기회. 이것을 놓칠 수는 없다.
“이제 영길리 신기전(콩그리브 로켓)은 거의 남은 게 없지요. 그건 아껴둡시다. 불랑국 대포(16리브르 함포)는?”
“조금 전에야 뒤따라 도달했소이다.”
16리브르 함포는 아껴 봐야 무의미하다.
다시 평양으로 옮기는 것도 일이거니와 그럴 가치도 없다. 삼화 공창에서 새로 만드는 게 낫다.
시준은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하여 정든 그 대포를 완전히 떠나보내기로 결정했다.
시준은 혁명군의 총사령으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남공철이나 정약전이 아니라 그가 직접 말해야 할 때다.
모든 영대장이 그를 바라보고 눈을 빛냈다. 시준은 그 시선에 보답해 주었다.
“조선 인민해방전쟁의 가장 큰 고개를 넘을 때가 목전에 다가왔소. 전 혁명군, 전투준비! 오늘 우리는 한양도성을 떨어뜨릴 것이오!”
- 그대 목숨을 바쳐 적기 들고 전진하라!
- 일어나 싸워서 너의 것을 얻어가라!
- 너 열사의 피로써 천하를 물들여라!
- 이 싸움에 따르라, 자유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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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후기의) 조선군이 칼 무거워서 칼자루만 칼집에 넣고 다녔다는 것은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점점 짧아지다가 나중에는 칼날 자체를 없애버리고 무늬만 칼을 만들죠. 조선군은 왕 사냥 모시고 간다거나 하는 '행사 뛸 때'만 복장 제대로 갖추면 되어서 군복도 몇 명이 공유하기도 했고..
2. 김좌근이 무예에 통달했다는 기록은 딱히 없습니다(다만 권력 유지 차원에서 아버지처럼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직책을 일부러 많이 맡긴 합니다). 원 역사의 김좌근은 사실 조선 말아먹기를 제외하면 통달한 분야가 별로 없었습니다.
여러 사극에서는 흥선대원군을 알아보고 우대한 노련한 정치가로 나오지만... 여러 정황상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그가 당시 최고 권세가로서 이하응 '따위'를 굳이 이 갈며 혐오할 이유도 없었기에 일반적 손님 대접에 따라 용돈이나 던져 준 것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베풀어 놓은 것은 확실히 돌아왔고 김좌근은 실정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