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50화 (150/284)

150화

45. 안과 밖(2)

명목상 황해도의 거진이 있는 황주 읍성 자체는 조선군조차 별로 힘든 방어 거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선군은 산성 아닌 곳에서 적을 맞이하는 만용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싸울 필요도 없었다. 읍성은 혁명군이 다가가자마자 거창하게 열렸다. 시준은 백화점 자동문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애진포(艾陳浦, 현대의 황해남도 안악군 부근) 일대를 휘어잡고 있던 도적 두목 김덕춘(金德春)이 대표로 나아와 비장(裨將)과 군교들의 머리를 내어놓고 절했다.

“이제 우리 당에서 의병을 일으켜 백성의 고혈을 빨던 탐관오리들을 깨끗하게 쓸어버리고, 성문을 열어 장군 각하(將軍閣下)의 혁명군을 삼가 맞아들이는 바이올시다.”

원래 역사에서도 민가 3백 호를 불사르고 4명을 죽인 거대 범죄조직 수장의 기세는 범상치 않았다.

깡패는 깡패를 알아보는 법. 김덕춘의 사적을 모르는 시준조차 이자가 만약 평안도에 있었으면 홍경래에 버금갈 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감탄은, 김덕춘 쪽이 시준에게 몇 배로 느끼고 있었다.

김덕춘은 전직 범죄자답게 시준의 역량을 전통과 다른 관점에서 파악했다. 출신이 미천하다거나 나이가 어리다는 점은 김덕춘의 판단에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한신을 보면 한고조를 알 수 있고 이위공(李衞公, 이정)을 보면 당태종을 알 수 있는 법이다.

단지 이해득실이나 불만 해소 때문에 모였다고 치부하기에는 시준을 따르는 인사들의 개성과 기운이 모두 범상치 않았다. 혁명군의 위용 또한 기회를 노리는 멍청이 집단의 것이 아니었다.

한 무리의 우두머리 노릇 했던 김덕춘은 이 정도로 다종다양한 수하를 결집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다. 시준의 출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자는 만고의 대 패륜아거나, 새 치세를 열 영웅이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사나이가 몸을 의탁할 만했다.

그래서 김덕춘은 가까이 있던 부근 남조선혁명당을 재빨리 흡수했다. 그러고는 의병을 자처하여 황주 읍성에 들어온 뒤 밤을 틈타 불을 질렀다.

황해도에서 자연재해에 필적하는 화재를 일으킨 조선 최고의 방화광 김덕춘이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움직였다. 불 때문에 당황한 읍성의 핵심 인사들이 김덕춘과 친구들의 칼에 비명횡사했다.

그들의 피는 붉은 깃발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아무리 그가 도적이라도 평안도 놈들의 잔학한 습성을 따르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주석 동지’가 최초로 명한 영광스러운 깃발이라고 하니 김덕춘도 분위기를 맞추어 준 것이다.

시준을 실제로 본 김덕춘은 자기 생각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청년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오직 장군의 명을 받들겠소이다. 무엇이든 명해 주십시오. 조선의 인민들은 모두 장군께 큰 은혜를 입었으니 어찌 몸을 사리겠습니까?”

시준이 없었으면 김덕춘은 작년쯤 해서 강철군주 이공과 그의 삼대장 한용탁에게 토벌되었을 자이니 시준의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될 것이었다.

물론 시준은 그런 알지도 못하는 사적 말고 다른 곳에 집중했다. 생각해 보니까 황해도 사람들도 미래의 북한 사람들이다. 인민의 경애하는 장군님이 되고 싶지 않았던 시준은 그 칭호를 원천 차단했다.

“모든 인민은 수평한 동지이고, 나 또한 장군은 아니오. 왕에게 임면되는 장군이 어찌 혁명을 대표한다 할 수 있으리. 동지께서는 몸을 일으켜 우리의 전열에 합류하시오.”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주석 동지!”

혁명무력국 부국장 겸 이번 혁명군의 종사관으로서 따라왔던 남공철은 김덕춘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도적의 종자라 경계는 해야겠으나, 필히 쓸모가 있겠군.’

시준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원래 혁명군이 털어먹으려고 했던 이 부근 군자창 대부분을 김덕춘이 이미 털었으며, 그 일부를 자기 패거리 몫으로 꿍쳐놨다는 사실을 모른 척해 주었다. 물론 김덕춘도 나머지는 양심껏 혁명군에 바쳤다.

규정대로, 법대로 하자는 소리는 따스한 정을 자랑스레 여기는 조선 사람들에게 다소 서운한 말이다.

서로 한마디의 협의나 조율도 없었지만 ‘물처럼 흘러 알아서 이루어지는’ 이런 훈훈함이 바로 조선의 거래다. 수평도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은근슬쩍 혁명군에 끼어 전대장(대대장) 자리까지 하나 받은 김덕춘의 진언 역시 물 흐르듯 했다.

“황주 목사 홍우섭(洪遇燮)은 날래게 달아나는 통에 송구하게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자는 김조순의 주구로서 지금 정방산성(正方山城)에 틀어박혀 있는바, 바라건대 저희에게 총과 포를 내려주시면 마땅히 달려가 성벽을 넘겠습니다.”

그러나 시준은 크게 기뻐하며 그들에게 무장을 지급하고 성을 떨어뜨리라는 호령을 발하지는 않았다. 시준이 아무리 군재가 없어도 상식은 있다.

조선군에게 산성에서 도전할 수는 없다. 어차피 김덕춘도 그냥 해 본 소리라는 것을 알기에 시준은 부담 없이 그 진언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남공철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정면으로 치려면 사람과 시일이 많이 들 것 같소이다.”

남공철 역시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 말씀대로올시다. 주석 동지.”

평야와 샛길이 많은 탓에 평안도처럼 일정 축선에 따른 방어가 잘 안 되는 황해도에서 수비 거점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 고려 끝에 건설된 정방산성은 저 청태종 아이신기오로 홍 타이지로 하여금 친정마저 감행케 한 여진의 대적, 위대한 전쟁군주 인조 이종이 크게 수리한 성이다.

조선군은 어딘가의 귀 큰 이종족과 비슷한 생태 및 전술을 가지고 있다. 평화주의적이며 숲과 산을 사랑하고 원거리 무기를 잘 쓴다는 점이 그것이다(안타깝게도 딱히 수명이 길다거나 생김이 아름답지는 않다).

그러므로 산성에서 방어한다는 기본 전제는 옳은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산성이라도 끼지 않고서야 조선군이 외국군에게 이길 방법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평지의 회전은 말해봐야 비참하니 건너뛰고, 평지성조차도 조선군에게는 좋은 수비 수단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정묘호란 때 평지, 그러니까 의주에서 방어해야 했던 이완(李莞, 이순신의 조카)은 결국 자폭해야 했다. 같은 전쟁에서 산성인 안주성의 남이흥(南以興) 역시 자폭한 탓에 지형 탓인지 군주 탓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분명 평지성이 방어에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정방산성의 축조 자체는 나쁘지 않은 정책이었다. 실제로도 병자호란 때 이완(李浣, 허생전의 이완)은 이 성을 기반으로 공을 세운다.

문제는, 조선뿐만 아니라 인간사의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돈이었다.

군사 주둔지는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격심한 유지비를 소모한다. 이후 정방산성의 유지를 담당할 만큼 부유한 고을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유력한 후보지로 인근의 봉산이 있었지만 바로 그해 뜬금없이 일어난 홍수로 무산되었다.

결국 황해 병영은 여기저기 동가식서가숙한 끝에 최종적으로 (원래 있던) 황주 읍성에 정착했다. 실록에 따르면 정방산성은 영조 초기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수리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대체 지키지도 못할 성을 왜 쌓았느냐며 욕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인조 더 워로드의 선견지명과 조선군의 고차원적 물리학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다.

황주 읍성이 함락된 지금, 양자 얽힘이 풀려 파동함수가 붕괴된 정방산성은 드디어 거시적 물질계에 현현했다. 실제 위치와 운동량을 관측 가능한 존재로 바뀌어 혁명군을 가로막은 것이다.

황주 목사 홍우섭은 살아남은 병사와 백성을 끌어모아 산성에 틀어박혀서 결사 항전을 외치고 있었다. 확률 구름 속을 오래 떠돌아다니느라 많이 훼손되었기는 해도 성은 성이다.

산성이라는 물건의 지형 특성상 당연히 청군처럼 그냥 지나쳐도 진격 자체에는 지장이 없다.

허나 그러면 혹시 조선군이 뒤에서 튀어나와 보급을 끊을 경우 상당히 곤란해진다. 애초에 산성에 처박히는 이유가 그런 부담을 적군에게 주고 공격을 강요하기 위해서다.

혁명군의 조촐한 군세로는 들이받을 엄두가 안 났다. 꼭 진다기보다는 시간의 문제 때문이다. 눈치 보던 김덕춘이 다시 뭔가 말하려 하자 남공철은 그것을 가로막듯이 입을 열었다.

“홍우섭은 저도 안면이 있는 자올시다. 무슨 수를 내어 보도록 하지요.”

“그러면 동지께서 세객 노릇을 해 주시겠소?”

반색하며 묻는 혁명무력국장 차형기에게, 남공철은 상관을 보는 시선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눈빛을 보내었다.

“지금 정찰총국에서 누구의 부절과 인수를 가지고 내려갔습니까? 제가 나선다면 성공한다 하더라도 제가 어디 몸담고 있는지 대번에 들키겠지요.”

“아, 그, 그렇지. 미안하오.”

시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선비들을 떼로 죽이고 있는 남조선혁명당도 문제지만, 수평도가 무색하게도 사족 출신들에게 주눅 드는 원조 혁명동지들 역시 문제였다. 이건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시준은 점잖게 물었다.

“그래. 혁명무력국 부국장 동지께서는 무슨 복안을 가지고 있소?”

남공철도 일부러 직함을 부른 시준의 배려를 알아듣고 다시 겸손하게 말했다.

“홍우섭은 지난날 감제(柑製, 성균관의 특별 시험)에서 으뜸을 차지하여 바로 입격한 수재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공부를 오래 하지 않은 탓인지, 남의 말에 쉽게 휩쓸리고 음사(淫祀, 미신)에 혹하는 흠이 있습니다. 이를 써서 그를 흔들 것인바, 그러려면 여기 같이 오신 격립특자(그레테 자작) 각하의 조력이 꼭 필요합니다.”

그레테 자작이 통역을 듣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는 푸셰에 비해서는 조선 혁명정부에 별다른 애정이나 집착이 없었고 그래서 조선말도 그리 깊이 배워 두지 않았다.

서울 입성을 꼭 지켜보고 가능하면 부정할 수 없는 군공을 세우라는 오트란토 공 푸셰의 명령으로, 내키지 않지만 프랑스군 수병 50여 명을 이끌고 따라왔을 뿐이다. 그레테 자작은 자기를 가리켰다.

“나 말이오?”

“그렇소이다. 어차피 이야기를 듣자 하니 정방산성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아홉 개 진은 거의 텅텅 비었다고 하오이다. 따라서 산성만 깨버리면 진격에 저어될 것은 없습니다. 한시가 급하므로 주석 동지께서는 전위 2영대를 먼저 나아가게 하시지요. 그사이 이 사람이 계책을 써 보겠습니다.”

시준은 얌전히 그 말을 따랐다. 남공철은 정방산성 공략에서 배제된 김덕춘의 마뜩잖은 표정을 보고 빙긋 웃었다.

남공철도 신참이라지만, 이제 막 합류한 신인이 마음대로 설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는 남공철 자신이 공을 세워야 했다.

***

이런 상황에서의 농성이 거의 그렇지만, 홍우섭 역시 병사나 무기는 그리 많이 모을 수가 없었다.

그가 끌고 들어간 것은 대부분 일반 백성들이었다. 남조선혁명당에게 집을 털린 부호나 선비들도 함께했다.

전투에는 나설 수 없다 하여도 팔다리는 멀쩡한 만큼, 그냥 놀려 두면 안 그래도 쪼들리는 살림에 낭비밖에 안 된다.

홍우섭은 혁명군이 황주 읍성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듣자 ‘평안도 반역도당’이 읍성에 며칠 머물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우선 백성들을 내보내 땔감이며 식수, 봄나물 같은 것들을 구해 오게 했다.

병사를 호위로 붙이는 사치는 지금 상황에서 부릴 수 없었다. 한 명이 아쉬운 병졸을 그런 데에 다 흩어놓을 수도 없었거니와, 자칫하면 병사와 백성이 한패거리가 되어 그대로 달아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무기력하게 삭정이 줍던 백성 김계분(金鷄糞)외 5명은, 급작스레 땅에서 솟아난 귀신들을 창 한 자루 없이 마주하게 되었다.

“으아아악!”

세상에는 처음 보아도 그게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진정한 사랑 같은 것이 그렇다.

눈앞의 것은 진정한 공포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계분이는 그것을 지칭하는 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귀신이다! 도깨비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돌아봤던 나머지 백성들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그것들은 정녕 그 외의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은 볏짚 색이요, 온몸에 부숭부숭 돋아난 털은 아무리 봐도 짐승의 일종이다. 움푹 들어간 눈두덩에는 부리부리한 눈깔이 번들거리는데 그 빛은 푸르고 누르니 인간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요사함이다.

걸친 꼬라지도 마치 원숭이가 사람 옷을 주워 입은 것처럼 난잡하다. 심지어 하초를 그대로 드러내놓은 놈도 있었다. 그들은 누렇고 검은 이빨을 드러내더니 함성을 지르며 두 팔을 좍 벌렸다.

덩치도 도깨비같이 덜썩 큰 놈들이 팔을 벌리니 더욱 커 보였다. 백성 다섯 명은 기절초풍하여 엎어진 채 땅바닥만 벅벅 긁었다.

“끄아아아! 요괴다!”

“천지신명님, 제발 살려 줍시오!”

그 요괴, 그러니까 프랑스 수병 세 명은 기괴하게 비틀린 표정을 지으며 – 웃는 것이었다 – 비척비척 조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남공철의 지시에 따라 그레테 자작이 선발한, 수병 중 특히 유머 감각 있고 재치가 빠른 자들이었다. 이들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자기 생각에 ‘매우 야만인 같은’ 차림새를 한 채 숨어 있었다.

꼭 혁명정부에서 스페인 달러를 두둑이 내줘서는 아니고, 본래 문예를 사랑하는 유쾌한 혁명의 친구들에게 이런 장난은 꽤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그들은 묘지의 귀신처럼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걸어갔다.

이번에 파견된 프랑스 수병은 (인질이 있어야 되니까) 모두 조선에서 따로 처자를 얻은 자들이었다. 제정신 박힌 집안에서 양귀자에게 딸을 보낼 리는 없으므로 대부분은 오갈 데 없는 무당집 딸이나 노비 출신들이긴 했다.

그래서 그들은 조선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았으며, 더하여 조선 귀신이 상투적으로 하는 대사를 숙지하고 있기도 했다. 이문화 교류의 정수가 황해도에서 펼쳐졌다.

“술 좀 주시오…….”

“밥도 좀 주시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면밀한 인류학적 관찰과 그에 근거한 효과적 전술은 조선 사람들을 진감케 했다.

김계분은 이미 거품을 뿜으며 혼절했다. 나머지 사람들 역시 자기 손에 낫 같은 게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죄다 내던지고 달아나기 바빴다. 쇠 한 토막이 아쉽던 홍우섭 입장에선 피눈물을 흘릴 일이다.

그러한 ‘습격’은 정방산성 근처 곳곳에서 일어났다. 성 안에는 채 사흘도 안 되어 무서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도깨비들이 산에 출몰한다!”

“이 성을 쌓은 역적 김자점(金自點)의 원혼이라더라!”

“아니, 사람의 형상이 아니니 이는 틀림없이 목석(木石)의 요귀(일종의 정령을 말한다)다! 그놈은 한 자나 되는 양물을 꼿꼿이 치켜들고 나를 겁간하려 했다는 말이야!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별의별 흉측한 괴담이 떠돌자 목사 홍우섭은 크게 놀랐다.

홍우섭은 곧 정찰병을 내보내려 하였으나 그것은 무산되었다. 산성의 조선군은 ‘역적에게는 맞서 싸울 수 있으나 귀신에게는 우리가 어쩌겠는가’ 하며 정조의 위협을 철저히 거부했다. 원래 조선 사람들이 좀 유교적이기는 하다.

내보낸 백성의 반은 귀신을 보고 돌아오니 홍우섭도 이쯤 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미래의 일이긴 하나, 홍우섭은 친구가 귀신 봐서 무섭다는 소리 듣고 합세하여 단 쌓고 제사 지내다가 미신 숭배 죄로 유배형을 선고받는다. 남공철이 사람을 잘 본 셈이다.

이번에도 홍우섭은 그나마 믿을 만한 측근, 그러니까 자기 따라 들어온 선비며 유력자들을 불러 모아 비슷한 대책을 논의했다.

“민심이 소란하니, 한번 축문이라도 지어 읽어 요귀를 쫓아내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어떻겠는가?”

목사 하나만 믿고 이 힘든 길에 함께했던 선비들은 그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맥이 탁 풀렸다.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어찌 음귀와 점복에 의지해 대사를 도모하자는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자가 성균관의 수재이자 요충의 목민관이라니 조선의 학문도 알 만했다.

그러한 허탈감은 곧 분노가 되었다.

“그 어리석은 하민들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정귀(正鬼)가 아니라 요물인데, 어찌하여 책 읽은 자로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소이까?”

“이러다가 목사께서 저 왕망처럼 육갑신병이라도 불러 역도를 물리치자 하지나 않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망설이던 홍우섭은 결국 최악의 선택으로 치달았다. 사대부들 몰래 단을 쌓다가 들켜버린 것이다.

격노하여 몽둥이 들고 달려온 부로 자제들에 의해 그것이 깨어지는 꼴까지 백성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백성들이 들고일어났다.

“원귀를 달래는 제단과 차려진 공물을 깨버렸으니 필시 귀신이 노여워할 터! 저자들이 자기는 밖에 노역 안 나간다고 우린 다 죽어도 된다는 것인가!”

저 제단이 귀신을 막을 수 있느냐는 사실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핵심은, 백성들이 진자하게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바를 ‘하찮고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깔보는 신호를 지도층이 대놓고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배알이 꼴려서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줄여서 혁명 정신이라고 해도 좋다.

조금 있으면 그 귀신과 싸워야 할 처지였던 병사들도 합세했다. 그들은 과장된 몸짓으로 거칠게 호패를 뜯어내었다.

“저들이 읽은 책으로 귀신과 역도를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보라! 그저 양반 호패가 성을 지키니, 하민들의 목숨과 총칼이야 무엇에 필요하겠는가?”

백성들은 자기 호패를 벗어다가 성가퀴에 쌓거나 개골창에 던졌다.

정묘호란 때 평안 감사 윤훤(尹暄)이 텅 빈 평양성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가 탈주해야 했던 그때의 사적이 재현되고 있었다.

홍우섭은 사대부들을 자기 앞에서 보란 듯이 두들겨 패는 백성들을 보고 공포에 질려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이 꼴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고 있던 혁명무력국 부국장 남공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흘간 시준과 남공철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주석결사옹위대와 1영대만 빼놓고 전부 떠난 3개 영대 대신, 그들은 일부러 매우 적은 군사만을 거느리고 망원경과 깃발을 활용해 초장거리 의병(疑兵, 가짜 군사) 체계를 구축했다.

망원경을 직관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아직 근대문물 경험이 적은 남공철과, 전술을 실제로 활용하기에는 아직 전쟁의 경험이 적은 시준의 보완적 합작이었다.

이제 그 정수가 발휘될 때였다. 남공철은 시준을 힐끗 보더니 소매를 떨치며 왼팔을 확 펼쳤다.

“혁명의 적기(赤旗)를 높이 들어라!”

시준은 그런 남공철을 외면했다. 남공철은 자신을 신뢰하고 군권을 일임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석의 행동에 힘이 났다.

========================

작가의 말

1. 김덕춘은 작중 나온 대로 실존 인물입니다. 3백 호룰 불태우고 4명을 죽였다는 상당히 불균형한 범죄를 저지르고 잡혀 죽는데(아마 실수로 불이 번졌거나, 혹은 사람은 도망치게 하고 재물만 터는 게 목적이었겠죠), 대규모 수적/산적떼 정도로 짐작됩니다. 원 역사에서 김덕춘을 토벌하는 인물이 현재 작중에서는 총융사로서 경상도 근왕군에 도망가 있는 한용탁입니다.

2. 정방산성과 그 동쪽의 9진은 방향 순서대로 산산진, 동리진, 소이진, 선적진, 신당진, 위라진, 문산진, 총령진, 문성진입니다(고승희, 2006, <조선후기 황해도 내지 방어체계> 참조). 황해도 북부를 거의 동서로 횡단하여 서쪽 황주-봉산 라인부터 동쪽 곡산까지 죽 이어집니다.

따라서 평양에서 남하하는 의주대로가 황해도 남부 봉산에서 해주 쪽 서편 길과 개성 쪽 동편 길로 갈라지기 직전의 요충 곳곳을 틀어막는 진이며.. 조선의 군사 체계가 다 그렇듯이 지도나 문서로만 보면 상당히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항상 돈이 없는 게 문제였죠...

3. 감제란 감, 그러니까 귤을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하면서 시제를 내고 그에 맞는 시문을 지어 올리는 일종의 특별 시험입니다. 귤은 제주에서나 진상되는 귀한 물건이어서 이는 특권 학생계층의 상징이었죠. 여기에서 합격하면 직부전시(바로 전시를 볼 수 있는 것. 사실상 과거 합격입니다. 작중에서는 김유근이 아버지 빽으로 이걸 받았었죠.)의 특혜를 통상 받습니다. 실제로 홍우섭은 이 감제에서 장원을 했습니다.

4. 홍우섭이 뒤에 미신 숭배죄로 유배형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벌금으로 대체했죠. 조선에서는 법률적으로 조상이나 국가가 특별히 정하는 바 외에 다른 우상이나 잡신을 섬기면 범죄였는데(천주교 유입과는 관계없는 조선 초부터의 대명률 명기사항입니다), 특이하게도 이는 일반 백성보다는 사대부에게 더 엄격히 적용된 사안 중 하나였습니다. 이때 나눈 얘기들이 재미있는데, 관심있는 분은 순조 12년 1월 28일 임인 3번째기사를 참조하시면 될 듯 합니다.

5. 윤훤은 정묘호란 당시 평양성을 지키고 있다가, 작중 나온 대로 백성들이 호패 벗어 성에 쌓아 놓고 전부 도주하는 바람에 '텅 빈 성에서 혼자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가(본인의 보고입니다)' 결국 자신도 달아납니다. 그러다가 이적죄로 잡혀서 효수되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