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44. 개전 전야(3)
병량에 대한 정치국 회의는 현안의 해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안심과 수습을 위한 모임에 가까웠다. 정약전이 평소 성격에 안 맞게 과격한 제스처를 보인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다.
대책 없다고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 시점에서 혁명군 대다수는 이미 대동강을 건넜다.
출진하는 혁명군의 의기를 북돋아 줄 연설도 그 전에 있었다. 사실 그에 대해서는 시준 역시 그렇게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혁명군은 시준이 단상에 올라가서 ‘오리 꽥꽥 병아리 삐약삐약’ 만 했더라도 눈물을 흘리며 함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과연 시준은 상투적인 몇 마디만으로도 거대한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혁명군은 모두 수평한 조선의 인민들이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연설의 청중 입장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닥치고 밥 좀 먹자는 대원들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방대장(분대장)은 군량을 내려주신 주석 동지의 은혜에 목메어 저만 감동적인 문구를 늘어놓았다. 죽 맞는 대원들끼리 깃발을 만들어 소규모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사방이 주석 동지에 대한 찬양으로 넘쳐나는 와중에 도망을 간다거나 군수품을 횡령하는 일은 아무래도 분위기상 어려웠다.
실질적인 의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은 원래 단독으로 하기 어렵다. 뜻 맞는 동조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병사들은 사방에서 ‘주석 동지의 눈’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준의 생각보다 범죄자가 훨씬 적었던 이유가 이것이다.
예전부터 혁명군에 많이 포진해 있던, 그래서 지금은 고참으로서 다들 어느 정도 지위를 갖게 된 정감록파 미륵사 사람들은 이 면에서 단연 발군이었다.
주석 동지를 혁명의 영수만이 아니라 해도정출한 진인으로서 모시고, 종교적 열정에 기반하여 섬기는 그들은 여기저기 안 끼는 데가 없었다.
연설, 감시, 수사, 조직화 등 종합적으로 볼 때 이들은 시준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정치장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거기 병사 동지. 지금 뭘 하는 건가! 뭘 주머니에 집어넣은 거야!”
“아, 그, 이건 그러니까 말입죠. 헤헤, 배가 좀 고파서…….”
“인민들이 애써 마련한 곡식을 빼돌리다니 자네 반동인가?”
“바, 반동이라니요,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요. 한 번만 봐주시면…….”
푸셰는 정치국에서 말한 대로 횡령범에 대한 재판을 주장했다. 그때 시준은 사법부까지 구성해 놓을 여력이나 시간이 없는 현재의 혁명막부에서 무슨 재판이냐고 반문했다. 푸셰의 답은 간단했다.
‘무슨 소린가? 당연히 인민재판이지. 어차피 아직 형법도 없잖아. 필요한 것은 넓은 광장뿐이야.’
시준은 속으로 ‘역시 전기도 아직 못 만들 때 알아봤다. 이 야만스러운 유럽 백인 새끼들.’ 어쩌고 하면서 욕설을 씹어 삼켰으나, 솔직히 지금 시대에서는 원님재판보다야 인민재판이 공정하다.
인민재판의 묘미는 배심원이나 판관들도 도대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근두근함에 있다.
엄정한 법전을 써서 누구나 결과를 어림할 수 있다면 구경꾼은 지금의 반도 안 될 것이다. 21세기에 가챠 게임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이유와 비슷하다.
리옹의 학살자 푸셰마저도 그 창의력에 감탄할 만큼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몇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찢겨나갔다. 그 이후 병사들은 반동이란 말만 들어도 사색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원해서 혁명군에 들어간 개천군 인민위원장 이제초는 정감록파의 필두로서 병사의 마음을 지금 단숨에 휘어잡을 수 있었다.
“동지의 죄를 방대원들 앞에서 뉘우치고 스스로를 엄중히 비판한다면 내가 정찰총국에 고하지는 않겠네!”
감동적인 자아비판을 들은 방대원들은 모두 동지를 용서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꼭 그런 인심 잃을 짓만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제초는 최근 시준마저도 놀라서 크게 칭찬한 생각을 해내었다.
혁명군은 영국 무기를 많이 쓰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과거 시준이 근왕군을 폭격했던 신기전 진화의 궁극적 표상, 콩그리브 로켓도 있었다. 비대칭 전력이 중요한 지금의 혁명군에서 돈을 아끼지 않고 사들였던 무기다.
그런데 조선 사람들은 양귀자의 사악한 주술이 걸린 무기라 하여 그것을 꺼려했다. 몇 번 폭발 사고가 있었던 뒤로 그 소문은 정설처럼 굳어져 갔다.
이제초는 거기에 출처 수상한 부적을 붙이고 다녔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콩그리브 로켓은 단숨에 ‘정 진인의 도술 신기전’으로 둔갑했다.
“이것은 영길리 양귀자가 만든 게 아니라네! 동지도 삼화부 공창은 알지? 거기 일전에 강림하셨던 정 진인께서 도술로 빚어내신 인민의 주체적 무력이라는 말이야! 그러니까 여러 소리 말고 어서 끌고 가라구.”
“주체적 무력이란 게 뭔가요?”
“그것도 모르나. 보아하니 병사 동지는 사상교육에 부지런히 나오질 않았구먼! 주인 할 때 그 주체야. 인민의 주인은 누구인가? 바로 인민이지! 따라서 남의 손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을 이름이야!”
미륵사는 일종의 종교결사다. 그래서 예전에 사도세자가 정 진인 때문에 종묘에서 밀려나 자기 몸주신이 되었다고 보증한 영변 약산 무당 앵무를 비롯해 많은 무당이 미륵사 소속이었다.
그들은 지금 삼화부 공창에서 총 찍어내는 듯한 분업 체계를 이루어 부적을 찍어냈다. 야학에서 그 천지신명이 코를 싸쥘 놈의 서양 사학 배워 온 학생들이 많아 요즘 무당 장사가 잘 안 되는데, 부적 백 장이면 쌀 한 말 주겠다는 미륵사와의 거래는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부적 쓰는 주사(朱砂)는 본래 귀한 물건이다. 진짜 전통적 부적을 써 댔다간 백 장에 쌀 한 말 정도로는 수지가 안 맞는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항상 지혜롭다. 어쨌든 빨갛기만 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그리고 붉은 물감은 지금 평안도에 엄청나게 넘쳐난다.
주체(主體) 두 글자가 예스러운 전서체로 적힌 부적은 콩그리브 로켓은 물론이고 영국제 야포와 포탄에까지 오만 곳에 나붙었다.
군량 갖고 배고파서 되겠느냐며, 집에서 따로 챙겨 준 옥수수라거나 호박 따위를 – 상조농장에서 시도했던 세 자매 농법의 결과였다 – 부적과 바꿔서 치렁치렁 옷에 붙여 놓은 병사도 있었다.
그렇게 ‘주석 정시준 동지의 가호’를 입고 난 혁명군은 그야말로 신심 드높이 용기백배했다. 대동강 남쪽으로 행진하는 혁명군이 발걸음 맞춰 외치는 소리는 평양성에 있는 시준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정‧시‧준! 결‧사옹위!”
“정‧시‧준! 결‧사옹위!”
같은 평안도 사람들이라 그런지, 구호의 박자까지 소름 끼칠 만큼 전생 어딘가의 열병식과 일치했다. 물론 발걸음도 척척 맞아들어가 어김이 없었다.
시준의 주위를 지키던 주석결사옹위대는 ‘정예부대’인 자신들의 구호를 빼앗겼다며 분개했다. 시준은 뭐라고 할 기운도 없어서 아예 못 들은 척했다.
4천 혁명군이 황해도 황주(黃州)가 바라다보이는 대동강 남쪽에서 강철의 대오를 갖추었을 때, 시준도 마지막 공식 행사에 참가하러 몸을 일으켰다.
주석 동지가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대동강을 건너오는 즉시 혁명군은 조선 인민해방전쟁(人民解放戰爭)을 개시할 것이었다.
주석당을 떠나기 전, 시준은 왜인지는 모르지만 지유가 자신에게 준 은비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비녀에 입맞추었다.
***
남공철과의 대화에서 드러났듯이, 시준은 전투 자체에는 참견할 능력도 되지 않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었다.
막부의 주석 정시준은 혁명의 영도자이며 인민의 총의에 의해 뽑힌 중앙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다.
그렇다면 그가 전시에 수행할 직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총사령관이 아니다. 내부 사기의 고조와 명분의 수여 등 정치가로서의 지도자가 맡아야 할 역할이다.
그래서 개최된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는 단지 상임위원회 위원뿐 아니라 마치 중앙인민회의 전체 소집을 방불케 할 정도의 의원이 모였다.
일종의 야당 당수라 할 수 있는 평준위원회 위원장 김창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말로는 삼월 삼짇날까지 이 혁명을 끝내야 하겠으나, 그날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소이다. 4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혁명군의 군세로 속전속결할 수 있겠소이까?”
김창시의 질문이 시비나 정쟁이 아니라 진심으로 앞날을 걱정하는 자의 것임을 알았기에 시준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부터 공적으로 그 질문에 대답하겠다는 듯이 연단으로 올라갔다. 좌중은 시준의 발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시준은 숨을 들이쉬었다.
“존경하는 의원 동지들, 그리고 방청으로 모여 주신 많은 혁명 동지 여러분. 지금 어떤 분은 의혹하고, 어떤 분은 겁내며, 어떤 분은 억지로 용기를 다지고 계실 것입니다.”
여기 있는 의원들은 혁명군의 치기 어린 젊은이들과 달리 이 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의주 부윤이라는 직함은 이제 다 잊어버린 의주부 인민위원회 위원장 조흥진이나, 마찬가지인 용천부 인민위원회 위원장 허명 등 조정 출신들은 깊은 우려와 긴장의 눈길로 시준을 바라보았다.
시준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실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 모두는 본 위원장도 마찬가지로 모두 겪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혁명의 요체는 겁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오이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그것에 맞서 물리치는 데에 혁명의 정수가 있습니다.”
시준은 굳은 결의가 담긴 눈으로 중앙인민회의 의원과 방청자들을 둘러보았다.
열다섯 살에 일찌감치 은퇴해서 게으르게 놀고먹으려는 그의 계획이 여기의 백 명 훨씬 넘는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들이 대표하는 수백만의 사람들도 역시 불러 모았다. 그 모두가 시준에게 명예와 자존심과 삶과 죽음을 맡긴 자들이었다. 수평하지 못한 자들과 달리,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것을 위탁했다.
시준은 그들에게 책임이 있었다. 계획된 인생으로 편안한 삶을 얻으려는 그의 두 번째 생은 예정보다 심하게 엇나갔으나, ‘계획’을 제대로 마무리하려면 자신의 책임 하나 수습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시준은 명쾌한 부담감 속에서 입을 열었다.
“임진년의 왜놈들은 단 한 달 만에 도성을 떨어뜨렸고, 병자년의 되놈들은 여드레 만에 남한산성까지 육박하였지요. 그들은 모두 외구로서 이 나라의 지리를 알지 못하고 백성과 친하지 못한데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조선 왕조가 찬란히 보여준 영광의 전쟁사가 주석의 입에서 설명되자 다른 의원들도 납득했다는 듯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들어보니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원래 한양은 쾌속 함락이 전통이다.
꼭 조선 왕국만의 잘못은 아닌 게, 아무도 몰라서 시준이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미래의 다른 나라에서는 단 사흘 만에 떨어진 적도 있다.
물론 시준에게는 전차가 없다. 그러나 선전선동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실용적 사실’ 따위가 아니다. 지금 시준은 전략가로서가 아니라 지도자로서 사람들에게 안심을 주기 위해 이곳에 있다.
“우리는 더 가까이 있고, 남조선혁명당의 혁명열사 동지들이 있으며, 소위 조정은 그때보다 훨씬 더 인심을 잃었습니다. 병법에서 말하는 ‘도(道)가 모두 갖춰졌다’ 이르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썩어빠진 반동분자들이 퀴퀴한 구중궁궐에 모여 꾸미는 책동모략 따윈 우리 지혜로운 동지들의 신산귀모에 비할 수 없는 것이요, 남의 종노릇하기를 자처한 노비 군대인 관군에게 불타는 열의로 부딪칠 혁명군이 질 리가 없습니다.”
의원들 대부분의 표정이 바뀌었다. 여전히 그들은 흥분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마음 놓고 흥분할 수 있는 자의 얼굴이었다.
시준은 그들에게 못박았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서 승리의 붉은 깃발을 한양도성에 내걸 것입니다. 존경하는 의원 동지들. 그리고 상임위원회 위원들께서는 조선 인민해방전쟁의 개시와 혁명군 총사령으로서 본 위원장의 출진을 승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아 왔던 시준이지만 이번의 갈채는 또 달랐다.
그것은 엄청난 압력으로 시준을 짓누르면서 동시에 날아 올리는 듯했다. 사람들의 성원은 그야말로 폭풍 같았다.
“오오오!”
“혁명 만세!”
“위대한 주석 정시준 동지 만세!”
이제 혁명막부는 돌이킬 수 없이, 공식적으로, 인민의 총의에 의해 조선 왕국 정부에 대한 개전을 선포했다. 가경 18년(1813년) 정월 보름이었다.
***
공식적인 행사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러나 혁명군의 최선봉 전위대인 홍총각의 2영대가 척후를 황주 깊숙한 곳까지 들여보냈을 저녁 때쯤, 시준은 대동강 남쪽의 유막에서 약간 비공식적인 행사를 하나 더 하게 되었다.
큰갓에 도포를 입은, 그러니까 지금 평안도에서는 상당히 구경하기 힘들어진 차림을 한 젊은 사내가 휘적휘적 걸어와 주석의 앞에 섰다.
현재 평안도에는 갓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 큰갓이 신분의 상징이 되어버린 조선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간편하게 반동의 상징도 되었다.
아무 잘못 안 했는데도 누군가의 손가락질 한 번에 몰려온 청년회나 혁명군에 얻어터지는 일이 부지기수로 발생하자, 양계 사대부 대부분은 갓을 포기했다.
당시 때를 잡았다고 판단한 시준은 정약용을 사주했다.
그러고는 ‘모자의 크기로 사람을 구분하는 일은 태초에 없었으며, 사람 간에 높낮이가 있다는 소리는 수평도에도 어긋난다’는 사설을 유포했다. 희만 선생의 엄정한 고증이 장삿속에 활용되었다.
방한 등 여러 가지 실리적 이유로도 모자 자체는 필요하다. 그래서 그 자리는 시준이 10대 초반 때부터 만들어 팔던 조선산 털모자가 차지하게 되었다. 시준은 주석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개인적으로 서상을 대표하는 대방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사내의 풍모는 상당히 기이한 것이었다. 유막에서 의자를 끌어다 놓은 채 그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준은 희미하게 웃었다.
“너무 눈에 띄는 차림이 아닌가.”
주석결사옹위대 병사들은 눈을 크게 뜨고 수군거렸다. ‘쟤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그…… 걔 아냐? 그 산 너머 돌밭집 아들…….’ ‘멍청아. 그럴 리가 있냐. 감옥에 있던 그놈이잖아!’ 따위의 속삭임이 병사들 사이를 치달렸다.
김유근은 태연하게 그들을 둘러보고는 다시 시준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김유근이라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시준에게 말을 막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남쪽 가면 내 본래의 신분을 찾아야 하지 않겠소.”
“그것도 옳은 말이군.”
김유근의 배신은 현재 알려져서는 안 된다. 시준은 주석결사옹위대 병사들에게 입단속을 명하고 김유근에게 상자 하나를 내주었다.
여기에는 병조 판서의 직인과 부절을 아주 정교하게 복제한 물건이 들어 있다. 왜 원본이 아니라 복제품이냐면, 원본과 다른 복제품 몇 개는 벌써 정찰총국 요원들이 가지고 내려갔기 때문이다.
아무리 김유근의 의욕이 가득해도 시준으로서는 김유근 하나만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었다. 없어져도 아쉽지 않을 정도의 부담만 지울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준이 나직하게 말하는 보상 역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것이었다.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다면 과거의 죄를 묻지 않고 정찰총국 부국장의 지위를 약속하겠다. 그대 부친의 구명도 고려해 보지.”
시준으로서는 김조순의 괴물 같은 정치적 재능이 좀 아깝기도 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김유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요 없소. 불효자가 고개 들고 한성부로 나다닐 수 없으니, 평양에서 조용히 살 거처나 주시기 바라겠소.”
김유근의 ‘필요 없다’는 대답은 부친과 지위 둘 다에 걸쳐 있었다.
우선 그는, 대체로 호구이긴 했지만 지유의 부탁이 끝난 다음에도 시준을 위해 일해 줄 만큼의 열성적 호구까지는 아니었다. 정찰총국이라면 이름만 들어봐도 평양 밖으로 나다녀야 할 테니 더 고려할 가치가 없다.
부친의 경우는 약간 저어되기는 했다. 자기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며 버렸으니 현대인 기준에서는 불꽃효도가 거리낄 리 없건만, 여기는 조선이다. 부친이 자기에게 자결을 명하든, 벼루 던져 머리를 깨든 간에 상관없이 자식은 부친을 사랑하고 효심으로 모셔야 한다.
그러나 부친을 확고히 버리겠다는 뜻을 보여주지 않으면 주석은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도 김유근은 애비고 뭐고 오로지 공을 세워 평양으로 돌아올 생각밖에 없었다.
지유를 여전히 먼발치에서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문제가 안 된다.
그때 가장 어려운 과업을 훌륭히 완수했을 김유근의 담대함과 영용함은 눈이 부실 정도일 테니까 말이다. 멀리 있다고 해서 태양이 안 보이겠는가.
적진 깊숙이까지 용맹하게 뚫고 들어감은 저 곽거병과 같고, 그 안에서 세객 노릇 하며 도산검림을 지푸라기 보듯 하는 담대함은 인상여나 소진과 같다.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 후방, 편안한 유막에서 직접 창칼 휘두르지도 않은 채 안전하게 앉아 있는 어린아이와는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진짜 사내란 그런 것이다. 역시 어린 사람은 경모하여 섬길 것이 못 된다.’
김유근은 나중에라도 지유가 성숙한 남자의 매력을 발산하는 자신을 돌아볼 거라고 확신했다.
김유근이 지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남자가 이미 남의 부인이었던 여자를 과거에 관계없이 여전히 바라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찍이 없었던 사내대장부로서의 자신에 너무 취해 있는 바람에, 김유근은 시준이 자신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시준은 헛기침을 했다. 김유근은 상자를 든 채 입을 헤 벌리고 있다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주석결사옹위대 병사들이 킥킥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준은 손을 내저었다.
“아무튼 남의 눈이 많아서 좋을 일은 없지. 급히 떠나게.”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김유근도 좀 창피했다. 게다가 아무리 연적이라 해도 그는 앞으로 주석의 ‘총애’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김유근은 의관을 다시 바로 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럼 가보겠소이다.”
“혁명의 동지로서 앞으로는 내게 무릎까지 꿇을 것 없네.”
김유근은 고개를 들고 시준을 쳐다보았다. 옛날 자기 아버지가 닭튀김을 던졌을 당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준이 지금까지 지껄인 모든 말 중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소리였다.
그래서 김유근은, 마지막 대사만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조선 인민해방전쟁의 승리를 빌겠소. 주석 동지. 혁명 만세.”
시준은 잠시 놀라서 입술을 오므렸다가, 마찬가지로 진중하게 대답해 주었다.
“혁명 만세. 살아서 다시 만나길 바라오, 동지.”
김유근은 일어나서 소매를 떨치고 돌아섰다. 시준은 그 펄럭이는 도포 자락 하나만큼은 좀 폼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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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저 구호의 발음 박자는... 정시준의 이름은 딱딱 끊고, ‘결사’는 엇박자로 발음하며 ‘옹위’는 한 음절처럼 빠르게 외친다고 보면 얼추 비슷합니다. 뭐 제한된 글자를 발 박자 맞춰서 외치려면 선택지가 많이 없기도 하고 같은 평안도 사람들이다 보니 어디까지나 우연입니다.
2. 모자 얘기는, 초중반에 나와 기억이 안 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준이 영국 양모를 수입해서 (순조가 수입금지한 청나라 모자 대신) 만들어 팔았던 그 털모자입니다.
3. 곽거병은 한나라 때 전무후무한 기동전으로(그것도 보병으로!) 흉노 깊숙이 들어가 깽판을 쳤던 장군이며, 인상여는 전국시대 강대한 진나라의 소양왕을 면전에서 두 번이나 혓바닥만으로 엿먹였던 선비이고, 소진 역시 말재주와 담력으로 여섯 나라 승상의 인을 찬 전설적 유세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