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44. 개전 전야(2)
돌아가는 길에, 지유는 기랑이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을 눈치챘다.
“왜?”
“그냥…….”
지유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가서 ‘주석 동지’에게 다 말해도 화를 내지는 않을걸? 내 본뜻은 다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려던 거 아냐.”
기랑은 잠시 입술을 삐죽대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작정으로 그리 말한 거야?”
지유는 김유근과 병조 판서의 문서를 한꺼번에 써서 도성 주위의 부대를 혼란시킨다는 혁명군의 계획을 말해 주지는 않았다.
그게 비밀이라서가 아니다. 기랑이 물은 바는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원수를 갚은 거지.”
“은혜도 있잖아. 아, 그건 아까 밥 줘서 갚은 거야?”
지유는 다시 웃었다. 기랑은 왠지 쟤가 남편 닮아간다고 생각하다가 가슴 어름에서 약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육체적이라기보단 정서적인 종류의 것이었고, 기랑이 그 정체를 헤아리기도 전에 사라질 만큼 미약했다.
지유가 말했다.
“모르겠어. 은혜일까? 아까 감옥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 했거든. 그런데 그 작자 얼굴을 다시 보고 나니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
“무슨 말이야?”
“기랑아. 흉년 들어서 삼순구식(三旬九食)할 때, 높은 관리와 조정에서 우리 불쌍하다며 뒷짐 지고 보리쌀 한 줌씩 나눠 주면서 나라에서 덕행을 하였노라 하면 그건 은혜겠니?”
기랑 역시 혁명막부의 간부 중 하나다.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지. 그건 원래 우리 거니까.”
“그래. 그러면 그자가 자기 마음대로 나를 취하려고 했다가 그게 안 되고 다른 사람이 죽이려 하니까 막아선 일은 어떨까? 김유근이 내 목숨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살리려는 일은 때로 죽이려는 일만큼이나 모독이 될 수 있다. 결국 상대의 생사를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기저의식은 똑같다.
“물론 김유근이 정말 그렇게 이 여자는 내 거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야.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라고 여길 테고, 적어도 그에게는 진심이겠지. 그러나 그건 우리가 맞서 싸우고 있는 왕이나 조정도 마찬가지였어.”
체계로서의 학문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지유에게 이 개념을 짧게 표현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간 시준의 곁에 오래 있었고, 더하여 죽음과 삶을 티 없이 직시하는 경험까지 보유한 지유였기에 그 감각만은 체화하고 있었다.
수평과 함께 혁명의 핵심인 자유라는 것은 삶을 위탁하지 않는 것. 그렇다면 죽음을 위탁하지도 않아야 한다. 삶과 죽음은 표리일체다.
그러므로 김유근은 그녀에게 은혜와 원수를 모두 베푼 것이 아니다. 용납할 수 없는 대적일 뿐이다. 지금까지 인(仁)을 말하며 다른 모든 사람을 속여 왔던, 이 나라의 한줌도 되지 않는 지배층처럼 말이다.
복공의 격문처럼, 독재자의 선의는 그 자체로 참을 수 없는 오만이다. 그것이 진심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나도 같은 것만 돌려줄 거야. 어찌 됐건 김유근이 나를 구했기 때문에 내가 살아서 시준이와 맺어져 복락을 누렸으니 그것에 대해서만 고마워하겠다는 말이야. 김유근은 당연히 그러려는 작정이 아니었겠지? 내 멋대로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작자도 제멋대로였으니 나도 그럴 수 있어. 그래. 기랑이 네 말처럼 밥 한 그릇 갖다 준 것으로 끝낼래.”
기랑은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지유도 기랑이 자기 말을 다 이해했음을 깨닫고 빙긋 웃었다. 오랜만에 친구끼리 하는 산책에서 이런 무거운 얘기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랑아.”
“응?”
“시준이가 말하던데. 네가 요새 포수 모임의 길명이던가? 하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고. 잘 되었다고 말이야. 내 눈치 힐끔힐끔 보면서 열심히 얘기해 주는데 하마터면 웃을 뻔했지 뭐냐.”
“뭐? 아, 그 길명이?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잘 되는데?”
기랑이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을 때 마침 두 사람은 시준의 집 앞에 다다랐다. 지유는 기랑의 손을 잡았다.
“네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걸 보니 역시 내 남편이 틀렸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추운데 조심해서 들어가.”
설명 안 해 주고 사라진 지유 때문에 기랑은 한동안 시준의 집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옛날의 기랑이라면 그런 사소한 일 따위 잊어버리고 잠들었겠으나, 이제 그녀 역시 이제 원숙한 처녀다. 뭔가 찝찝한 기운이 기랑을 휘감았다.
잠시 후, 기랑은 포수 시절에나 쓰던 쌍욕을 뱉으며 자기 집으로 달려갔다.
***
어쨌든 지금은 혁명막부가 치르는 가장 큰 행사가 목전에 있다. 그런 만큼 길명이가 평양에 백발백중회 태천군 대표이자 자칭 ‘회장의 측근 보좌’로서 머무르며 태천과 평양 사이의 연락관을 자임하는 것 따위는 지금껏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바쁘니까.
같은 맥락에서 길명이의 여러 직함이 회장에 의해 다음 날로 모조리 잘려버린 부당 독직행위 역시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쉽게 얻은 자리는 쉽게 잃는 법이다.
일없이 밥 축내지 말고 고향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고 친구 상돌이가 그 자리 오르는 꼴을 목도한 길명이는 반동분자들의 모함이라며 악쓰고 뒹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반동이면 다 되는 게 지금 사세라고 해도 한도가 있다.
이건 주석의 책상까지 올라갈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귀한 종이를 낭비하지 않는 검소한 평양 사람들은 그냥 길명이를 걷어차거나 쥐어박아 해결했다.
다들 자기 일에 바쁘니 언성을 조금만 낮춤으로써 공중도덕을 지키자는 주위 사람들의 친절한 권고는 길명이로 하여금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게 했다.
다음 날 아침, 시준은 밤새서 추려낸 가지각색 계획서와 보고서, 통계자료를 들고 정치국 회의에 출석했다.
모두가 입 밖으로 꺼내기 싫은 말을 주석 앞에서 해야만 하는 혁명무력국장 차형기가 무겁게 발언했다.
“병량의 여유는…… 아시다시피 한 달입니다.”
조선군이 장기전을 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막부 역시 마찬가지다. 혁명무력국을 비롯한 부서들이 모두 애써보았으나 현실적인 문제는 엄존했다. 특별정령 225호가 전후 정리를 감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급한 기한을 둔 이유다.
모래에서 쌀을 빚어낸다는 정 진인의 소문을 과도하게 들은 사람이라면 왜 이제 와서 먹을 게 모자라다는지 의아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양계의 인민들은 조선왕 치하의 백성들보다 잘 산다. 그러나 그건 부의 생산 증대라기보다 부의 분배체계 개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가 단위로 봤을 때 가난한 것은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정 안 되면 영국이나 청에서 식량 수입량을 급증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수입도 돈이 들기는 매일반이거니와, 시준은 서울 진공을 보류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조선 상황을 자세히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중국도 부수고 홍기방도 짓밟았는데 조선쯤이야 손가락으로 튕겨도 끝난다는,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을 피력할 수 있는 암허스트 남작에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자력갱생하자니 앞날이 또 막막했다.
간신히 상비군 흉내만 내는 수준인 혁명군은 알게 모르게 보급의 상당 부분을 지연과 혈족 네트워크에 의지했다. 물론 (반동분자의 땅이었던) 혁명군 둔전도 거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주둔지를 떠나면 그때처럼 자기 집의 먹거리라든가 둔전의 소출, 반동의 창고에 있던 곡식 같은 것을 안정적 운송로로 쉽게 받을 수 없었다.
그 점은 시준에게 익숙한 어느 나라의 군대를 떠올리게 했다. 벌써부터 완벽한 상비군이 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혁명군의 지금 상태는…….
‘조선인민군이네.’
시준은 전생의 군복무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망원경으로 인민군 밭 가는 모습을 보고 비렁뱅이 군대라며 낄낄대던 과거를 후회했다. 사람이 입찬소리는 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쌀만이 아니다. 원래 짐 싸서 떠나는 데에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유실과 비용이 발생한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취방 이사라도 한 번 자기 손으로 해 보면 충분하다.
차형기가 뒤이어서 힘들게 입을 뗐다.
“이제 대동강 남쪽으로 내려갔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신발이 없다느니 옷이 부족하다느니 화약이 못 쓰게 되었다느니 하는 보고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혹시 반동분자의 책동모략이 아닌가 해서 조사해 보았으나, 아직 서툰 병사들이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는 게 너무 많았던 탓이었소이다.”
조제프 푸셰가 끼어들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 많진 않지만 횡령해서 팔아넘긴 병사도 여남은 명 있기는 하였소. 정찰총국에서 조사 중인데, 출진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주석 동지와 정치국이 주재하는 확고한 재판이 있어야 할 것이외다.”
차형기는 못마땅하다는 듯 푸셰를 노려보았으나 푸셰는 그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그리고 시준은 속이 쓰렸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던 혁명군의 기강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여남은 명 ‘밖에’ 안 된다니 혁명군의 투철한 사상무장을 칭찬해야 할 일이다. 군의 관급장비를 좀 다른 형태의 성과급쯤으로 알던 조선 정부군보다야 훨씬 낫다.
문제는 차형기의 말 쪽이다. 전시 군 운영에 관한 경험이 없던 시준은 그간 머리로만 알던 비전투 손실이라는 개념을 이제야 체감할 수 있었다.
비전투 손실이라는 말은 전투 손실에 비해 하찮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적지 않은 경우, 그 손실은 전투보다도 혹독하다.
왜냐하면 전투 손실과는 달리 이긴다고 해서 입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군대는 가능하다면 보급품을 인원수보다 훨씬 넉넉히 챙기는 것이다.
시준을 포함해서 현대 한국군 장병 대부분이 겪어 본 상황인 ‘물품감사 나오니까 장부보다 남는 참치 캔 다 파묻어버려’ 지시는 의미 없는 낭비가 아니다. 필요량보다 많은 물건을 비공식적으로 비축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따라서 그건 항시 전투대비 태세의 결과 중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혁명군 4천 명이 평안도를 ‘떠나는’ 데만도 벌써부터 현기증 날 정도의 자금 소모가 예상되었다.
물론 북한군을 떠올린 시점에서 시준도 북한군 같은 현지조달 전략을 생각하기는 했다.
그쪽은 21세기에 그런 짓을 채택하고 있으니 등신 거지 군대 소리를 듣는 거지 지금이 19세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도 다음 순간 폐기되었다. 현지조달이란 것도 현지에 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시준은 약탈 함부로 하다가 남조선혁명당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최악의 상황은 절대 피하고 싶었다.
시준은 (자기 생각에) 아무리 봐도 북한 사람들 같은 동료들을 단속하기 위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어 놓았다.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는 혁명의 대의로 거병한 것이므로 절대 인민을 착취해서는 아니 될 것이외다.”
모두가 감명 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시준은 이자들이 절대 그 말 따를 생각이 없음을 직감했다.
과연 정약전이 지금부터 네 말에 반론하겠다는 듯 궐련을 물고 불을 붙였다.
장죽은 혼자서는 피우기 힘들고 아랫사람이 수발을 들어야 하는 도구다. 그래서 양반들이 주로 쓴 것인데, 한시가 바쁜 혁명과업에는 영 맞지 않는 데다가 수평도에 어긋나 반혁명적이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래서 요즘 막부 사람들은 지금 정약전처럼 거의 궐련을 썼다. 조선 사람에게 담배 끊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시준은 서상의 매출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만족을 찾았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생각을 정리한 정약전은 잠시 후 연기 대신 말을 뱉기 시작했다.
“병귀신속이니 혁명무력국이 계획한 군의 진로에 대해서 이 사람이 더 낼 의견은 없소이다. 허나 이 자리의 위원 동지들께서 염려하시는 치중의 문제도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시준은 약간 기대하며 물어보았다.
“총괄서결국장 동지께서는 무슨 신묘한 계책이 있습니까?”
“그것에 관해서는 정찰총국의 보고를 먼저 받으시지요.”
조제프 푸셰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약전이 자기 뜻을 잘 헤아린 것 같아서였다.
선전선동국과 함께 그가 만든 예술품이라 자처하는 혁명군 정찰총국은 군사 작전에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찰총국은 혁명무력국이나 선전선동국의 지시를 받아서는 안 된다. 물론 총괄서결국도 마찬가지다.
정찰총국은 주석의 직속 기구가 되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자기가 정찰총국의 자료를 취합해서 말하지 않은 정약전의 처사는 현명하다.
‘내가 조선에서 권력을 잡아야 할 동기가 있었다면 절대로 정찰총국을 놓지 않았겠지만 나야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의장 정시준은 나폴레옹이 진다고 추측하는 모양이나, 푸셰의 생각에 그건 영국 놈들의 허풍을 너무 많이 들은 결과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알렉산더 대왕과 카이사르 이후로 유럽이 오랜만에 겪는 전쟁의 천재. 아마 높은 확률로 러시아를 깨뜨릴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런 나폴레옹에게 돌아가서 ‘조선 정계의 성공적 장악’을 주장하려면 이런 식으로 시준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푸셰가 인심 좋은 노인네라서 정찰총국을 시준의 손에 쥐여 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어쨌든 현재 그 정찰총국의 장은 일전 북한산성 일대에서의 혼란 작전을 총지휘한 공으로 임명된 방우준이었다.
방우준은 위원들에게 꾸벅 인사하더니 나무로 조잡하게 짜 맞춘 걸대를 끌고 들어왔다. 그는 괘도를 걸어 놓고 넘겨 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찌푸린 얼굴로 듣던 시준과 정치국 위원들의 얼굴이 차차 밝아졌다.
방우준이 파악해 놓은 것은 우선 황해도의 군자창이었다. 황해도 군세가 경상도로 이동하면서 대부분의 군량을 들고 갔지만, 모두 갖고 갈 수야 없는 노릇이다.
“황해도의 나머지 군세는 모두 창고를 지키고 있습니다. 남조선혁명당의 봉기에 몇 군데가 벌써 털려서 그것을 대비하기 위함이지요. 거꾸로 말씀드리면 이곳을 깨는 즉시 황해도 군세의 궤산(潰散)이라는 전과와 그들이 지키는 군량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물론 조선 정부의 군자창을 빼앗는다는 그 뻔한 소리 때문에 정치국 위원들의 얼굴에 혈색이 돈 것은 아니다.
적 치중대에 대한 약탈이나 파괴는 전투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방우준이 그 창고가 정확히 몇 개고 곡식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약탈 보급이 성립하지 않는 원인인 그 불확실성을 제거해 준다.
본래 약탈품은 그게 무엇인지, 또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가외 수입으로 취급해야지 그것으로 보급을 지탱해선 안 된다. 기대했던 것보다 적으면 다행이고 보통은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확실하게 안다면 그에 맞추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약탈은 유의미한 전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방우준의 정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제시된 것은 황해도의 여러 부자와 권세가의 저택이었다. 황해도의 여러 혁명당 지부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현시대 조선 최고의 신뢰도를 가진 레퍼런스인 ‘동네 소문’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 흉년에도, 아니, 흉년이기에 쌀값 상승을 기대하고 악착스레 창고에 쌓아 놓은 지주와 부자들의 곡식은 시준의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보고의 의도를 깨달은 시준의 표정이 약간 기괴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시준을 힐끗 본 조제프 푸셰는 시준이 무슨 말을 하기 직전의 절묘한 시점에서 입을 열었다.
“정찰총국장 동지가 조사한 자들은 반동이 틀림없군. 이 흉년에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인민의 고혈을 빨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우리 불랑국의 혁명 때도 그랬소. 귀족과 결탁하여 굶어 죽어가는 인민 앞에서 값을 올려 폭리를 취하려 한 모리배가 많았소이다. 결국 곡식 도매상은 수레에 매달려 찢겨 죽고 빵 공급업자는 산 채로 타 죽었으며 양조장 주인은 술을 가득 채운 지하실에서 익사했소. 그러한 자들이 인민에게 끼친 해악 그대로 돌려준 것이지요.”
현명한 정치국 위원들은 푸셰가 준 선물을 즉시 받아들었다.
“역시 주석 동지의 말씀대로 나라에 쌀이 없는 게 아니라 도적놈들이 많은 것이로군!”
“이런 괘씸한 반동 놈들이라니!”
맞다. 얼굴 한 번 못 본 자들이지만 아무튼 그들은 반동이다. 그래야만 했다.
게다가 문명 대국인 조선은 반동이라 해도 지금 불랑국의 사례처럼 잔인하게 죽이지는 않는다. 그냥 죽이고 쌀만 뺏을, 아니, 인민의 품으로 회수할 뿐이다. 도무지 시비 걸 구석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푸셰는 그 한순간에 실리와 도덕 양쪽의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시준 역시 지금 혼자 반론하는 짓은 무의미할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명분을 능숙하게 요리하여 풍미를 더한 자는 역시 정약전이었다. 과연 정치국 상무위원의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선전선동국장 동지의 말씀이 옳소이다. 정찰총국장 동지가 성심을 다해 조사한 바는 혁명군의 전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외다. 확실히 주석 동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민을 착취할 수는 없지만…….”
정약전은 딱 수염에 불이 붙기 직전까지 타들어 간 궐련을 능숙하게 잡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반동은 인민이 아니니까요.”
그 말과 함께, 정약전은 들었던 궐련을 옆의 타구에 내리눌러 비벼 껐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한 마디쯤 남은 종이와 담뱃잎이 으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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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조선인민군처럼 공적 보급체계가 형해화된 군대는 병사 휴가 보내 집에서 쌀 받아온다거나 군대에서 농사 짓고 장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주둔시에만 성립하고 진격시에는 성립 못 하는' 보급을 충당하게 되지요. 전방부대에서 근무해 보신 분은 시준이처럼 한 번쯤 조선인민농군 모습을 보셨을 수도 있겠군요. 작중 혁명군은 주변 민가 약탈까지 하는 건 아니지만...
2. 입찬 소리라는 말은 표준어로는 '입찬말' 이라고도 하며, "(남의 횡액이나 실수를 함부로 조롱하며) 자신을 지나치게 장담하는 소리" 정도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그런 말을 종종 하셨죠. 활용법은 "얘, 입찬 소리 하지 말어. 너도 똑같이 된단다." 정도.
3. 양조장 지하에 술 채워서 사람 익사시킨 건 프랑스 혁명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사례입니다. 대충 칭기즈 칸이 호라즘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발상이었던 걸로 짐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