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43. 남조선혁명당(3)
이옥은 집안사람들에게 부부가 씻을 물을 가져다주고 쉬게 했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주인이 부른다는 소식이 왔다.
덕개는 당연히 사내들끼리 무언가 할 얘기가 있을 줄 알고 그대로 앉아 있었으나, 이옥의 초대는 두 사람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덕개는 의아해하며 안채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이 상황에서의 일반적 예법대로 봉달이에게서 비스듬히 뒤로 약간 물러나 고개를 돌리고 앉았다.
이옥은 잠깐 그녀를 건너다보았으나 우선 봉달이에게 말을 건넸다.
“고생이 많았네그려. 그런데 언제 장가를 들었던가?”
“가시버시 인연이 어찌 화촉 밝힌 신방에서만 있겠습니까. 미리 알리지 못해 송구하오이다.”
봉달이가 넉살 좋게 대답하자 이옥도 껄껄 웃었다. 덕개는 도저히 양반과 상놈의 대화라고 볼 수 없는 이 상황을 해석하려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일단 집주인부터가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옥은 덕개로서는 전혀 뜻 모를 말을 하며 손뼉을 쳤다.
“그야말로 ‘혁명적’이군! 그러나 지금은 혼사 축하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지부장 동지’. 실은 제가 반동 놈 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놈을 찾아낸 것 같소이다.”
봉달이가 덕개에게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그가 도부꾼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동시에 열성적인 남조선혁명당원이며 자기 직업을 활용하여 연락책을 맡아 주고 있었을 뿐이다. 원래 조선 사람의 직업이 좀 다양하긴 하다.
봉달이는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유순한 학자였던 이옥은 크게 분개했다.
“이건 사실을 알아볼 필요도 없겠군. 중림 찰방(성석귀)의 패악질이야 온 경기 사람들이 다 알지. 동지가 본디 타지 사람이다 보니 잘 모르고 하필 거기에 걸려 욕봤구먼!”
“예. 위원장 동지께서 잘 아시겠지만 이건 결코 원한 때문에 무함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암. 그렇지. 그런데…….”
이옥은 덕개를 슬쩍 쳐다보았고, 봉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말이 통했는지 이옥은 조금 편하게 말했다.
“이 말이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마침 잘된 일이야. 드디어 ‘지시’가 내려왔다네. 우리가 바로 이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혁명의 불꽃을 크게 터뜨리는 건 어떤가?”
봉달이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저로 말미암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없겠습니다.”
이옥 또한 봉달이의 손을 잡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덕개는 아직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전부 실성한 것 같았다.
정조의 문체반정 시범 케이스가 된 덕분에 조선 왕조에 상당한 유감을 가지고 있었던 선비 이옥 또한 봉달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도 성균관 출신 유생이라는 가면 아래 다른 신분을 감추고 있었다.
남조선혁명당 남양지부장(南陽支部長) 이옥은 ‘반동패거리 처단’의 비밀 지령을 즉시 발령했다.
사발통문 대신 붉은 패쪽이 당원의 증명이 되었다. 혹은 곰방대 빨고 있는 보부상에게 담배 권하는 척하면서, 혹은 장터에서 땔감 지고 온 나무꾼에게 탁주 한잔하고 가라 외치면서 은밀히 ‘지령’이 배포되었다.
“중림역 찰방 성가 놈이 우리 동지를 해코지하고 처를 겁간하려 하였다네.”
“닷새 뒤 삼경(三更)일세.”
들은 사람은 무슨 일이냐고 되묻거나 하지 않았다. 소작농은 짐짓 호미로 땅을 콱 찍으면서 일어나고, 짐꾼은 손바닥에 침을 뱉고서 지게 아래 대어 놓은 작대기를 잡아챘다.
그러고는 홀연히 떠나 다음 사람에게 기별을 전하러 달려갔다.
못 오는 사람은 무기와 재물을 대주거나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관청의 연통을 끊어버리는 등 후방에서 도왔다. 찰방 집에 심부름하는 척하고 드나들며 동태를 전해 주는 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닷새 뒤, 옆 사람 얼굴도 분간되지 않는 시커먼 어둠 속에 40여 명의 인간이 모여 있게 되었다.
성석귀의 집에서 채 한 마장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 일의 원인이 된 봉달이도 어디서 조총 한 자루 얻어와 선두에 나섰다.
“아, 아니. 이게 무슨 변고요?”
봉달이의 옆에 붙어 있던 덕개는 벌벌 떨었다. 대체 왜 자기를 끌고 나온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봉달이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임자는 그저 마음을 탁 놓으시오. 저기 보면 부인네들도 많이 나와 있지 않소? 다 우리 당원들이라네.”
당연히 아직은 컴컴했으나, 적잖은 사람들이 화승에 불붙인다고 발화철이며 부싯돌을 그어대고 있었기에 여기저기에서 빛이 번쩍번쩍했다. 한두 명씩 간신히 분간되는 얼굴 중에는 분명 부인네도 있었다.
덕개는 기절초풍했다.
“여, 여인들이 이 야, 야밤에…….”
“사람이 적기도 한데, 혁명의 대의는 인민의 수평이지. 여인이며 노비도 다 마찬가지라오. 게다가 여인이 쏘는 총이라도 맞으면 죽기는 매한가지요.”
“주, 죽어요? 죽는다구요? 사람 죽이러 가는 거요, 지금?”
그 말로써 지금 이들이 뭘 하러 갈는지 파악해 버린 덕개는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든 채 늘어지고 싶었다.
“아이고, 괜한 짓 하지 말고 돌아갑시다. 예? 상놈이 두들겨 맞고 욕보는 거야 팔자소관 아니겠소. 한 번 살아났으면 되었지 무엇 한다고 부득부득 총칼 들고 나선답니까. 관군이 무섭지도 않소?”
그러나 봉달이는 며칠 전 보여주었던 낯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관군은 무섭지 않소. 무서운 것은 다시 한번 남의 종노릇 하는 것이지.”
***
남조선혁명당 남양지부장 이옥은 그 노구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혁명의 열의로 앞에 나섰다. 눈으로 식별되지는 않았으나 모든 사람이 이옥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옥은 보이지 않는 동지들을 향해 말했다.
“경애하는 정시준 주석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다.”
이옥은 경전을 받아 읊듯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모든 인민은 수평하여 아래위가 없다. 단지 앞과 뒤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인민은 스스로 자처하여 제가끔 어디에서는 혁명의 전위를 맡고, 다른 부분에서는 혁명의 후위를 맡는다. 모두가 영광된 혁명의 도이다.”
이옥은 필요하다면 선비에서 쉽사리 혁명가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또한 앞으로의 행동에 필요한 폭력성을 부여하도록 일부러 난폭하게 말했다.
“저 대갓집을 차지한 찰방 놈도 애초에 우리보다 높지 않다. 왜? 무엇이 다른가? 제깟 놈들은 모가지를 쳐도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처럼 새로 돋아난다더냐? 아니다. 모든 사람은 목숨 하나를 똑같이 타고났다. 무서워할 것도 없고 깔볼 것도 없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물처럼 평평하기 때문에 물이 움직이는[動] 것을 방해하는[反] 이런 자를 일컬어 반동이라 한다.”
진보적 역사관이라는 개념이 없는 조선이라, 반동이라는 말의 풀이는 원래 뜻과 꽤나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옥은 그 오용된 개념을 활용하여 그럴싸한 충동을 만들어냈다.
“물을 막고 있는 둑은 속히 터뜨리지 않으면 온통 썩게 된다. 원래는 인민의 것인 권세를 마치 저의 것인 양 하여 하찮게 거드럭대며, 유부녀를 겁략하려 들고 장사 밑천을 다 빼앗아 동댕이쳐 버린 저자가 바로 우리의 물을 악취로 썩게 하는 자다!”
개중 장사꾼들이 특히 분개했다. 이옥은 마무리로 현 상황을 일깨웠다.
“주석 동지께서 머지않아 남진하여 승리의 나라를 세운다 하셨다. 황당한 허풍이 아니다. 바로 정월 보름부터다! 그런데 정 진인이 여기 강림하셨을 때, 저런 반동이 고개 빳빳이 들고 돌아다니는 꼴을 보신다면 과연 이 남양 땅에 혁명이 있다 할 것인가?”
숨죽인 찬동이 메아리쳤다.
“그렇지 않소!”
“우리끼리 속히 반동을 처단해야 하오!”
이옥은 몸을 돌려 성석귀의 집을 가리켰다. 이제 이옥은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았다. 그는 그 체구와 나이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외쳤다.
“동지들, 혁명의 불을 밝혀라! 남조선혁명당의 총궐기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남조선혁명당 총궐기의 첫 시작이자, 조선 혁명전쟁의 첫 전투였다.
이옥이 신호하자마자 사방이 확 하고 밝아졌다. 그 빛에 놀란 덕개를 포함하여 여기 있는 사십여 명의 얼굴과 복색이 드러났다.
동지애에 어찌 관할 구역이 있을쏘냐. 남양지부 외에 옆 수원지부(水原支部)라거나 멀리 광주지부(廣州支部)에서도 마침 볼일 있어 여기 지나던 사람들이 참여해 주었다.
그중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서울에서 여기까지 장사하러 다니다가 소식 듣고 바로 떨쳐 일어난 오죽당 출신 남조선혁명당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경애하는 주석 정시준 동지가 처음 몸을 일으킬 때부터 함께하였다는 오래된 측근이었다. 그래서 평양에서 시준이 몰래몰래 지원하고 있는 여러 ‘신묘한 무구’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 습격에서 가장 앞장을 선 것은 봉달이와 몇몇 남양지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서울 오죽당 사람들이었다.
“반동을 처죽여라!”
“우오오오!”
아무래도 활 같은 고급 무기는 별로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괜히 가소로운 불화살 몇 대 날려 경계하게 하는 건 별로 좋지 못한 계획이다.
그래서 낮은 함성을 지르며 돌격한 제1진이 집 가까이 붙어 한 번에 여남은 개씩 던져 넣은 것은, 요즘 혁명군도 절찬리 쓴다는 화염병(火焰甁)이었다.
이것 또한 주석 정시준의 신묘한 지혜로 고안된 물건이다.
등유나 경유에 불붙여 본 사람은 알지만, 기름이라고 죄다 휘발유처럼 확 타오르는 게 아니다.
정제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전근대의 동식물 기름은 더욱 그렇다. 역사에 나오는 화공은 대량의 기름을 동원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공작이다.
그것을 잘 아는 조선 사람들인 만큼, 지금 당원들이 던지자마자 화염을 폭발시키는 이 도자기 술병은 신이(神異)가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혁명의 불꽃 그 자체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습격받은 찰방 집에서 비명이 일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사실 시준은 어디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보았던 소이탄인 네이팜탄이나 백린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초적인 화학 조성이라도 알아야 시도를 해 보든지 하지, 그건 말 그대로 이름만 아는 쓸모없는 현대 지식의 대표였다.
유럽도 참고가 안 된다. 백린탄의 경우, 지금은 영국인들조차도 성냥이 뭔지 모르는 시대다. 네이팜도 비슷한 것이 석유는커녕 석탄조차 아직 광범위하게 쓰인다고 보기 어려웠다.
시준 역시 화염병 휘두르며 백골단과 맞서던 세대는 아니다. 그러나 그 고대의 지식 자체는 실전되지 않고 각 대학가 동아리방 구석에 먼지 쌓인 화훼 교본 같은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시준은 서울에서 검계 소탕할 당시 썼던 초보적 화염병의 연구를 틈틈이 진행했다.
총화기가 원시적이고 소방 능력은 더 원시적인 지금 시대에서 ‘불 지르는 능력’은 전술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큰 우세를 점할 수 있다. 시준은 옛날 정약용과 평양 처음 갔을 때를 잊지 않았다.
조선 제2의 대도시이자 충분한 방비도 되어 있었을 평양이 큰불 한 번에 초토화되었다는 말은, 곧 작정하고 저지르는 도시 방화를 막을 방법이 조선에 많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메탄올 원액으로 어떻게 휘발유를 대체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메탄올도 이 시대에는 산업적으로 생산되는 물건이 아니다. 로버트 보일이 메탄올을 분리해 낸 것은 꽤 된 얘기지만 화학적 조성조차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21세기에도 입자 가속기에서라면 반물질을 곧잘 만들어낸다. 정체에 대한 이론적 연구도 되어 있다.
그러나 어딘가의 미래인이 21세기에 와서, ‘아아, 과거인은 역시 모르는 건가—. 반물질을 이용하면 반물질 엔진을 만들 수 있다고?’라는 둥 지껄였다고 해 보자.
CERN의 과학자들은 그놈을 그대로 제네바에 끌어가 가속기에 묶어서 원자 단위로 사출해 버릴 것이다. ‘발견’과 ‘양산’ 사이에는 심연이 몇 개쯤 놓여 있다.
나무에서 메탄올을 건류하는 방법도 있으나 그건 진공 처리가 필요하다. 어차피 시준은 알지도 못한다. 그는 공학자가 아니라 공무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준은 거의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다. 영국에서 수입되는 주정(酒精)을 기반으로 하여 무수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남조선혁명당에도 보내 줄 만한 품질의 화염병이 지난겨울에야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화염병, 이미 혁명당 사람들은 ‘주석불’이라고 부르는 그 흉악한 물건은 삽시간에 조선의 목재 가옥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사람 살려!”
“불이야! 불이다!”
개중에는 꽤 정확한 판단을 한 사람도 있기는 했다. 이를테면 이 집 주인인 성석귀 같은 사람이 그러했다. 그는 어린 첩을 끌어안고 있다가 급하게 옷을 꿰며 달려 나왔다.
“명화적 놈들이 아니냐!”
성석귀가 딱히 똑똑해서는 아니고 저질러 놓은 일이 있어서 찔렸던 탓이었다. 얼마 전에 혼쭐을 내주었던 건방진 장사치 부부가 성석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며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가 정답에 상당히 가까운 말을 외치자 노복이며 가솔들 역시 집주인의 말을 받아 외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화적이다! 도적 떼다!”
“역적들이 관헌의 집을 들이친다!”
어서 관군을 불러 달라는 신호이긴 했으나, 그런 외침에 반응해서 즉각 튀어나올 관군이 조선에 있었으면 애초에 시준이 취향에도 안 맞는 혁명 따위 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고함은 오히려 혁명 투사들의 관심만 끌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을 화적 패거리 취급하는 성석귀의 언행에 매우 분노했다. 지부장 이옥은 마치 장수처럼 검을 휘두르며 호령했다.
“방포하라!”
평화로워야 할 남양도호부에 총소리가 메아리쳤다. 문자 그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혁명당원들이 손에 손에 죽창을 들고 돌진했다.
이옥의 말대로 사대부와 천민은 한 가지 점에서 동등하다. 바로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라는 것이다.
용서 없는 인민의 죽창질에 사람이 픽픽 쓰러지자 덕개는 그대로 혼절할 것 같았다. 지금은 성석귀에 대한 원한이 풀리는 통쾌함보다 눈앞의 참상이 보여주는 끔찍함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이게 무슨 난리…….”
“내 옆에 붙어 있어!”
봉달이도 그렇게 말하면서 조총을 당겼다.
쏘는 법만 간신히 아는 조총이지만 이렇게 몇 걸음 앞에 목표가 있으면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다. 도망가려던 도포짜리 하나 – 아마 이 집 아들인 것 같았다 – 가 등에서 피를 뿜으며 풀썩 엎어졌다.
더 죽일 사람도 없자 당원들은 승리의 함성을 부르짖으며 일제히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때쯤 해서는 멀찌감치 나와 봤던 이웃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도 관군을 부르러 달려가지는 않았다. 작년 송상이 여기저기에서 저지른 이 비슷한 짓 이후, 토벌한답시고 온 관군이 범인은 하나도 못 잡고 애꿎은 현지 백성들만 토벌했다는 사실을 남양 사람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슬금슬금 다가와 기웃거렸다. 성석귀가 이웃에게 그리 인심 얻은 위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여기서 명백해졌다.
그들의 뜻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이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찰방 놈이 인민의 고혈을 빨아 그러모은 재산과 곡식은 누구의 것인가!”
용인에서 유희가 주최했던 암자에서의 행사처럼, 여기의 혁명당원들도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수없이 주입된 사상 교육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흥분해서 집안으로 뛰어들었던 당원들조차 그 질문에는 고개를 돌리고 맞고함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인민의 것이오!”
“그렇다면 누가 되찾아 가야 하겠는가!”
“우리 인민들이오!”
이옥은 알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주며 동네 사람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물론 아무리 불이 있어도 얼굴 표정이 보일 거리는 아니었으나, 조선 사람들은 시준이 지금까지 익히 체감했듯 다들 그 정도 텔레파시 능력은 가지고 있다. 굶주린 백성들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중림 찰방 성석귀의 집은 폐허가 되었다.
가솔은 간신히 도망친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처참하게 죽었고, 가축과 옷가지며 곡식은 물론이고 문짝에다 기와까지 있는 대로 다 들어내 간 저택은 마치 태풍이 쓸고 지나간 듯했다.
그리고 봉달이 역시 빼앗긴 것보다 훨씬 많은 곡식 자루와 돈꿰미를 짊어진 채 돌아왔다.
덕개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벅찼다. 지금 막 떠오르는 태양은 약탈자 봉달이를 영웅처럼 보이게 했다. 사방에 널린 시체와 핏자국은 악덕의 증거가 아니라 명예의 훈장으로 바뀌는 듯했다.
덕개는 꿈꾸듯이 물었다.
“이게…… 혁명인가요?”
“그렇소. 이게 혁명이야.”
“나도 혁명당 하겠소.”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일세.”
봉달이는 부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는 부인과 동지를 한꺼번에 얻었다. 정말이지 혁명은 한번 해볼 만한 일이었다.
***
남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러한 민란, 아니 혁명이 터지고 있을 때는 시준 역시 최후의 점검을 위해 주석당에서 열심히 자료를 보고 있었다.
한참 그러다가 눈이 피곤해진 시준은 주석당 서까래에 좌우로 크게 매달려 있는 현수막을 힐끗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혁명군을 고무시키고 동시에 막부의 목표를 명시하기 위한 선언이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전 조선 동시 인민혁명 만세(全朝鮮同時人民革命萬世)!>
그건 여기에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평양에 나부끼지 않는 곳이 없는 깃발이었다.
시준은 이제 그런 문구에 몸서리치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는 손가락을 꺾으면서 자신을 다잡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정말로 전면전쟁이었다.
시준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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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백린 성냥이 발명된 것은 1830년대입니다.
2. 반동이라는 말은 원래 진보를 향해 움직이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조선에서는 '물'이 중심이 된 수평도의 창안으로 약간 다른 풀이가 되었군요.
3. '서유기'에서의 손오공은 자기 목을 여러 번 자르고 돋아나게 하여 요괴를 놀리는 묘사가 있지요.
4. 메탄올의 경우 대량 산업 생산은 19세기말~20세기초쯤 이루어집니다. 에탄올도 연료로 본격 사용되는 시기는 1820년대로서, 이때 시준이 사용한 주정도 순수한 화학적 에탄올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