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42. 궁여지책(3)
남공철은 김조순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우선 그는 김조순의 ‘명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 생각도 없었다.
남공철은 사신 일행을 꾸리는 척하며 자신과 친한 남인 계열이나 실학자 및 백탑파들, 그 외 비 김조순계 인사를 대거 포함했다(김정희도 다시 서장관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자신의 가솔들도 심부름꾼이나 하인으로 위장하여 사신단에 들였다.
원래대로라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러나 김조순이 이공 시대부터 저지른 여러 과도한 정치적 모험 탓에, 지금 조정의 기강은 솔직히 혁명막부의 것보다도 낫다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온 조정이 다 알지만 국왕 이품은 자기만 아는 줄 알고 있는 사신의 진짜 목적 때문에, 그런 검열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청나라 갈 생각도 없는 사신단이라 준비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일반적 여행객 수준이었다.
나폴레옹이 아무래도 러시아를 침공하기로 한 건 좀 잘못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할 때쯤 해서 서울을 떠난 남공철의 ‘사신단’은 얼마 안 가 거침없이 평안도에 들어섰다.
이때 서울에도 간첩을 많이 심어 둔 혁명막부의 주석 정시준은 남공철이 오기 훨씬 전 사신단 출발의 첩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그리고 시준은 대번에 그것이 김조순의 사절임을 짐작했다. 따로 알려 줄 필요도 없었다.
시준의 짐작과는 약간 다르게 왕의 사절에 김조순이 끼어든 형태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크게 틀리지 않았다.
‘병조 판서 남공철이라……. 연행사 갔다 온 녀석을 바로 다음번에 다시 보내는 경우가 있던가?’
시준은 의문 속에서 남공철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남공철은 과거 비눗방울의 추억부터 시작해 북경에서 반란 진압의 모험도 함께하는 등 시준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준은 대의 앞에서 옛정을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와 얽힌 옛정은 다른 모든 사안보다 후순위였다.
시준은 자신이 말한 대로 ‘신의와 믿음’을 주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성난 곰이라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창살이 굵은 감옥 이름을 ‘신의’라고 붙이고, 남공철의 주위를 둘러쌀 살기등등한 주석결사옹위대 병사들을 ‘믿음’이라 불렀다는 의미다.
무슨 수를 써서든 남공철로 하여금 김조순에게 ‘정시준은 절대로 남하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황해도 군세를 빼라’는 서신을 쓰게 해야 했다. 물론 남공철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얼른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남공철과 친하기도 한데다가 입바른 소리 할 게 분명한 정약용은 개항장 좀 보고 오라며 배 태워서 상하이에 보내 버렸다. 그 친형 정약전에게는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으니 조선 시대의 관념상으로 문제는 없다.
그렇게 어떤 애원이든 단호하게 거절해 주겠다며 입술을 핥고 손을 비비던 시준은, 남공철이 자신을 보자마자 취한 행동에 꽤 당황했다.
평양성에 도달한 남공철은 이럴 줄 알았다는 태도로 주석결사옹위대 병사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였다. 뭔가 이상하게 일이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사신단’ 사람들도 서로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남공철은 그런 불안이 어떤 형태로든 터져 나오기 직전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품에 손을 넣었다.
“오랜만이로군. 이거 받게.”
시준은 남공철이 던져 준 달걀을 받아 들고 그때의 남공철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남공철은 슬픈 통쾌함을 느끼며 말했다.
“스스로 암탉을 자처하는 풍고 대감이 준 걸세. 일국의 영중추부사를 범하다니 대단하구먼.”
이번에는 시준의 용돈벌이를 대충 아는 주석결사옹위대 병사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새어 나왔다. 시준은 남공철의 목을 당장 쳐버릴까 고민하다가 참기로 했다.
“대충 뜻은 알겠군요. 그러니까…….”
“그래. 알겠으면 됐네. 더 말할 것 없어. 난 풍고 대감과 자네의 상열지사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 얘기나 좀 했으면 싶은데. 어디 조용한 곳에 들어갈 수는 없겠나?”
시준은 낯선 경험에 당황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그의 예상보다 똑똑했던 적은 많았지만, 이토록 휘둘려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남공철은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에서 내린 뒤, 그것을 주석결사옹위대 병사에게 떠넘겼다. 그들이 마치 자기 말구종이나 된다는 태도였다.
‘저 정도면 뭔가 믿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짐작한 시준은 태도를 바꿨다. 그는 남공철과 그를 따라온 사람들을 정중히 안내하도록 했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시준은 남공철의 돌출 행동 덕분에 현대인으로서의 자신을 약간 회복할 수 있었다. 수틀리면 다 죽여 버리거나 가두고 협박해서 말 듣게 하겠다는 19세기적 어둠에서 퍼뜩 깨어난 기분이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발상이 너무 과했어. 여기서 유일한 정상인인 나라도 정신 차려야지.’
시준은 평양성을 향해 걷는 동안 잠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남공철은 당에 들어서기 전 고개를 꺾어 위를 쳐다보았다.
“주석당이라. 썩 잘 쓴 편액(扁額)이군. 미용(정약용)의 글씨 같은데?”
“바로 알아보셨습니다.”
“스승이 제자의 아랫사람이라니, 그것참. 요즘 말하는 대로 소위 ‘혁명적’이 아닌가?”
그렇게 중얼거림으로써 시준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남공철은 그대로 주석당에 들어섰다.
푸셰는 다른 일로 자리를 비웠다. 정약전은 시준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아무래도 정약전은 남공철과 같은 선비 사회의 사람이어서, 봉건 사회에서의 관계 때문에 불편할 수도 있기에 취한 배려였다.
그런데 오히려 남공철 쪽에서 봉건 사회와 선비의 덕목을 다 저버린 것 같았다.
남공철은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용건을 꺼냈다.
“자네는 본디 장사꾼이지. 그렇다면 상담(商談)으로서 얘기하겠네.”
“바로 말씀하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그런 분이 아니셨던 것으로 아는데요.”
“선비의 예로 안부를 묻고 시 몇 수 지은 다음 각자 통달한 경전으로 옛사람의 자취를 더듬어 가며 논해 볼까? 이제 평서대원수 인장 차고 나니 그편이 더 나아 보이는가? 연암 선생의 글에도 있지만 기실 그거 많이 귀찮은데.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양반 노릇이 의외로 못 할 노릇일세.”
시준은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남공철이 원래 이렇게 과도하게 화끈하거나 직설적인 자는 아니었다. 성급한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각을 가동시켜 본 끝에, 시준은 아무래도 남공철이 ‘삐져서 막 나간다’고 판단했다.
표현이 좀 품위가 떨어지지만 그보다 적당한 말이 없었다.
“……아뇨, 그냥 말씀하시지요.”
“좋아. 풍고 대감께 얘기는 대충 들었어. 자네가 원하는 대로, 평서대원수 정시준은 설사 황해도가 텅텅 빈다 해도 절대 아까 그 붉은 옷 입은 군사들을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서신을 내가 직접 써 주겠네. 그 대신 나와 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거두어 주게.”
시준은 다시 현대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21세기라면 일반적인 협상안 제시다. 그러나 시준은 20년간 익숙히 체화한 조선인으로서의 감각이 배신감에 아우성치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떻게 이 조선의 복잡한 불문율과 우회법들을 익혔는데!’
대충 그런 심상이었다. 머릿속에서 몇 가지 오류가 나는 느낌에, 시준은 난처할 때 쓰면 조선에서는 대충 통했던 방안을 불쑥 내밀었다.
그건 폭력의 방안이었다. 시준은 아까 받은 계란을 던졌다 받았다 하며 – 아무리 겨울이라도 곯았을 게 분명해서 차마 먹을 순 없었다 – 남공철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만약 여기에서 제가 대감과 가솔들을 모조리 식은 방귀 뀌게 만들어 드린 다음 서신을 위조해서 서울로 보낸다면?”
“내 필적을 아나?”
남공철의 기를 꺾어버릴 생각이었던 시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응에 다시 한번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남공철은 느긋하게 몸을 젖혔다. 그는 김조순과의 대화를 거의 첨삭 없이 시준에게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거기에 자기 해설을 덧붙였다.
“풍고 대감이 왜 야밤에 헐레벌떡 찾아와서 달걀 쥐여주었겠나.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그럴 리 없지.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가야 소식의 진위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개 조야에 이름이 알려졌으니 이도 저도 못 하다가 마침 전하께서 날 보낸다니 덥석 달려든 게야. 위험하다고 문객 중 얼굴도 가물가물한 어설픈 놈 보냈다가는, 자네가 돈으로 구슬리거나 목을 쳐버린 다음 다른 녀석에게 가짜 서신 들려 보낼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
시준은 자신의 인격이 그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는 사실이 슬펐다. 게다가 실제로도 아까 전까지 남공철 상대로 비슷한 짓을 기획하고 있었기에 그 슬픔은 두 배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조촐한 사신단이라지만 사람은 쉰이 넘어. 지금쯤 여기저기 민가에 묵거나 밥 얻어먹고 있을 텐데, 그 많은 사람들을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장사 치러준다고? 뭐, 성 안이니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자네는 인심을 잃을걸.”
물론 남공철의 생각과는 달리 혁명적인 평안도 사람들은 이미 그 수십 배나 되는 반동을 기꺼이 묻어 왔다.
시준이 저건 해로운 반동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남공철 일당은 이 자리에서 끝장이다.
그러나 시준은 굳이 그런 야만성을 과시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충족시킬 생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황해도 군세가 빠지는 게 제게 무슨 이득이 된다는 거죠?”
다음 순간 남공철의 표정 변화를 본 시준은 그를 존중하기로 했다. 시준은 편안하게 말투를 바꾸면서 솔직하게 사과했다.
“……예. 미안합니다. 그렇게 참 뻔뻔한 새끼 다 보겠다는 듯이 쳐다보지 마시고요. 아니,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대체 조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감 같은 분이 체면이고 뭐고 이리 다 내팽개칠 지경까지 몰리셨습니까?”
남공철은 뭔가 말하려다가 진저리를 쳤다.
“그 얘긴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될 걸세. 우선은 내 궁여지책이 통해서 다행이군.”
“여기도 꽤나 궁한 처지라, 자리를 잘 고르셨는지 모르겠소이다.”
“아마 맞을 거야. 우선 자네가 나를 막료(幕僚)로 받아들인다면 말이지만.”
역시 거두어 달라는 건 일자리 달라는 소리였다. 돈 때문이라기보단 안전 보장 때문이리라.
남공철이란 자는 조제프 푸셰나 정약전과는 다른 의미로 현대인을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었다.
시준은 긴장이 풀린 나머지 어깨를 으쓱하는 현대적 제스처를 취했다.
“아시겠지만 저는 군주가 아닙니다. 정치국 회의에서 논해 봐야지요. 그러나 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대감께서 우리 혁명…….”
혁명막부라고 말할 뻔한 시준은 얼른 정식 명칭으로 바꿨다.
“인민의 총의를 대표하는 중앙인민회의에 어떤 도움이 될지 사람들은 궁금해할 것이오이다.”
남공철은 중앙인민회의가 뭐냐고 묻지 않음으로써 시준을 실망시켰다. 대신 그는 엉뚱한 질문을 꺼냈다.
“지금 소위 혁명군은 얼마나 되는가? 내가 들은 소문 중 가장 많은 수는 10만이었네.”
“어림없다는 건 잘 알고 계시지요? 한 오천 명 될 겁니다.”
병조 판서인 남공철은 조선군의 파동함수를 익숙히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 과도한 격차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래. 내가 어떤 값이 있는 사람이냐고 물었지. 혁명이라더니 정말 모든 게 거꾸로 되었구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나는 이 나라의 병조 판서야.”
시준은 가장 먼저 헤아렸어야 할 사항이 뒤늦게 뒤통수를 때리는 것을 느끼고 입을 벌렸다.
그렇다. 상대는 조선 정부의 군정을 통괄하는 자다. 시준이 나서서라도 회유하거나 제거했어야 할 사람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값을 의심한다면 읊어 주어야지. 내 군정의 해관(담당관원)으로서 말하자면…….”
남공철은 말하다가 뭔가를 어림하는 듯 가만히 서까래를 쳐다보았다. 시준은 그 동작에서 남공철이 허풍을 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시준은 남공철의 다음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석 달만 지나면 자네의 오천 군세는 그대로 남진하여 한양을 떨어뜨릴 수 있어. 그때가 되면 조정과 경상도 근왕당은 병사라고 부를 만한 게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걸세.”
***
현대인인 시준마저도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전격적인 남공철과의 접견이 끝나고 나자, 우선 시준은 남공철을 위한 정치국 회의를 열기로 약속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남공철도 그 후로는 재촉하지 않고 일반적인 조선 선비처럼 지냈다.
시준은 그 후로도 남공철에게 괜히 영어로 웃으며 욕설을 해 보는 등 혹시 그가 자기처럼 현대인 환생자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내비쳤으나 남공철은 조선 사람이었다.
결국 시준은 헛짓거리 그만두고 남공철의 서신을 김조순에게 보내야 했다.
그리고 남공철은 할 일을 철저히 하는 부류였다.
단지 필적이며 수결뿐만 아니라, 진짜 김조순의 편인 것처럼 ‘너만 알고 있어’ 식으로 자세히 기재된 평안도 혁명막부의 창작된 허실은 조제프 푸셰조차 혀를 내두를 날조의 정수였다.
게다가 남공철은 사람을 냉소적으로 보는 김조순의 시선에 딱 맞는 답을 써서 주었다.
<정시준이 원하는 것은 북방의 번리 제후위입니다. 시준은 그가 차지한 양계의 영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차후 주청을 드려 공후의 작위를 내리고 식읍을 크게 하사한다면 뒤탈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날조를 받아든 김조순은 시준을 이해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자수성가하여 한 지역의 패자로까지 굴기한 사람으로서 당연하기까지 한 욕망이다. 누가 자신이 이룬 것을 포기하고 싶겠는가.
문제없다. 나중에 이품을 구슬려서 황제처럼 공후 내려 보라고 꼬드긴 다음 아무거나 작위 던져주면 된다.
어떤 조선왕이라도 ‘나도 황제 할래’ 욕망에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사실 영길리 해적도배에게 능욕이나 당한 황제 따위 엿이나 먹으라는 심정은 김조순도 비슷했다.
결국 천하의 김조순조차 남공철을 믿고 황해도 군세를 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지방에서도 마을을 돌며 장정을 납치하여 병사를 모았다. 이번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김조순은 끝장이다.
그 절박한 기세에, 한때는 정말 ‘종통을 바로잡을’ 기세였던 경상도 근왕군은 일시적으로 장악했던 충청도 여러 군현을 차츰차츰 내주며 밀리기 시작했다.
***
한여름에 출정한 주제에 추워서 졌다고 거짓말하는 나폴레옹이 서쪽으로 도망가고 있을 때쯤, 조선국의 교통 요지인 조령에서도 나름대로는 큰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경상도 근왕당 호왈 7만, 김조순의 정부군 호왈 12만이 격돌한 규모 자체는 나폴레옹 전쟁에 비해서도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실제로 조령에서 관측되는 군세가 양측 합쳐서 5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조선군 전통의 양자역학적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조령을 넘으면 경상도다. 여기에서 정부군을 막지 못하면 낙동강이 나오기 전까지 마땅한 지형 장애물이 없다.
지금까지 김회연의 군대는 충청도 일대에서 관군에 대한 산발적 전투를 치르며 천천히 후퇴했다. 그러나 낙동강 바로 뒤에 경상도군의 본영이라 할 수 있는 대구가 있으므로 더 이상 물러날 수는 없었다.
반면 정부군은 약간 기세를 올리는 중이었다. 아직 황해도 군세가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온다는 소식은 전해졌다.
영남순무사(嶺南巡撫使) 박기풍(朴基豊)이 지휘하는 김조순의 정부군은 전통적인 조선군의 전술대로 북소리에 맞추어 나아가며 총을 쏘았다.
빗발친다고는 말하기 어려워도 어쨌든 탄환은 어지러이 날리고, 섬뜩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워도 나름대로 예리한 창칼은 척척 앞을 향했다.
가경 17년(1812년) 말의 한겨울, 이 길었던 내란도 어느 한 전환점에 접어들었다.
김조순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 경상도 정벌에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정복자 이득제가 없는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니다.
평난도원수 이득제는 자신의 전무후무한 대공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중앙 정계에 머무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김조순으로서도 훈련도감을 더 이상 내돌리기 어려웠다.
훈련도감까지 동원해 정벌을 성공시킨다 한들, 국왕 이품이 이때다 하고 어중이떠중이 끌어모아 김조순의 목을 딴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지금 국왕 이품의 이름으로 관군을 이끄는 자는 박기풍이었다.
그렇다고 박기풍이 2선급 무장이라는 얘긴 아니다.
과거 황해도 병마절도사에 도총부 부총관까지 했으며, 원 역사의 홍경래의 난 때도 총대장 이요헌에 다음가는 순무중군의 역할도 맡았던 만큼 군재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비록 성격이 관대하고 부드러운 편이라 안 그래도 군율을 씹다 버린 개뼈다귀로 아는 조선군의 특성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현재 조선 정부군에서 이만한 무장을 또 찾기도 어려웠다.
그런 박기풍은 의욕적으로 병사들을 독려했다.
“여기만 넘으면 적도의 소혈이다! 전군은 겁먹지 말고 나아가라!”
반면 조령 고갯길에 방벽을 쌓아 놓고 버티는 경상도 근왕군은 침묵하고 있었다.
아직 양군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고, 가장 겁 많은 병사라도 피탄을 걱정할 거리는 아니었다.
조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몇몇 병사가 가지고 있는 영길리 양총도 모래자루나 통나무 방벽을 뚫을 재주까진 없었다.
중초 초관(中哨哨官) 손태영(孫泰永)이 전방을 살피고 돌아와서 보고했다.
“순무사 영감. 적은 둘러친 녹각(鹿角)과 방책 뒤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소이다.”
김조순은 내전 중 완전 와해된 5군영 대신 그 잔당을 끌어모아 옛 훈련별대(訓鍊別隊)를 다시 편성했다.
그 초관 손태영은 박기풍이 눈여겨본 측근 군관으로서, 박기풍과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파견된 사람이었다.
손태영의 더 상세한 추가 보고를 받은 박기풍은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는 곧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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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식은 방귀를 뀐다는 말은 시체 되었다는 소리를 좀 낮잡아 이르던 일종의 관용구입니다.
2. 나폴레옹은 작중에서도 나왔지만 양력 6월에 출정했고, 9월에 모스크바를 점령했으며, 러시아에서 후퇴하며 그곳을 완전히 벗어난 게 12월 초입니다. 나폴레옹의 패인은 지나친 약탈로 인한 통제 와해, 후퇴 과정에서의 전술적 미스, 초겨울 날씨조차 대비가 전혀 안 된 여름 패션 행군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지요.
너무 추워서 패했다는 건 나폴레옹이 당시 과장해서 지어낸 얘기입니다. 작중에서 나폴레옹은 조선 사람들에게 나씨 패왕이라고 주로 지칭되었는데, 사실 패왕 항우도 자기 탓에 진 것을 하늘 때문에 진 것이라며 애먼 데 탓하기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