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36화 (136/284)

136화

41. 이용후생(1)

현대와 같은 의미의 런던 증권거래소는 약 10년 전, 그러니까 1801년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전통주의자의 나라 영국의 많은 문물이 그렇듯, 기업의 가치에 대한 거래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 엘리자베스 1세 시절까지 소급된다.

주가란 꼭 올라야 맛이 아니다.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 시장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 변화 자체에서 이득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폴레옹 전쟁은 더 시티(The city, 런던 증권가)의 모리배들에게도 더없는 호재였다.

실제로 이 시기 런던에서는 21세기 부럽지 않은 탐욕의 무도회가 펼쳐지고 있었다.

온갖 모략과 속임수, 가짜 정보와 기만책, 야반도주와 멱살잡이가 판을 쳤다. 진실과 신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애초에 무엇이 진실인지도 불명확했다.

고속 정보통신 수단이 없는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일면이라며 점잖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물건인 전화기가 나오자마자 런던 금융가에서는 지방간 시세차익을 이용한 수수료 장사가 판을 쳤으니 인성 외의 다른 데 핑계 돌리기도 힘들다.

어쨌든 정보 격차가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대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워털루 전투의 결과를 먼저 입수한 다음 주식 매도로써 허위 신호를 보내어 20배의 차익을 챙겼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로스차일드 정도로는 이 런던에서 가장 약삭빠르다고 해 주기 힘들다. 어쨌든 전해지는 내용에 따르면 로스차일드는 빠른 마부를 고용한 것이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까.

1814년 증권거래소의 대사기(大詐欺, Great Stock Exchange Fraud of 1814)때 ‘나폴레옹의 사망과 부르봉 왕가의 승리’를 외치고 다닌 프랑스 근위대 코스프레 사기꾼들처럼, 아예 진실조차 아닌 정보를 맨땅에서 날조해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도 많았다.

시준은 그런 자세한 역사까지는 모른다. 사실 몰라도 별 상관은 없었다. 어쨌든 조선에 있는 시준이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그런 식의 단타를 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래서 시준은 모범적인 주식 투자자의 기본을 따라 장투를 계획했다.

시준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연덕스럽게 영국의 채권을 비공식적으로 구매할 수 있느냐고 묻자, 윌리엄 자딘은 (속으로만) 뛸 듯이 기뻐했다.

런던 증권거래소의 설립 이유가 바로 이런 사적 음성 거래의 난립과 투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게 규칙 몇 개 만들어 놓는 것으로 10년 만에 끝나는 문제였으면 시골 양치기도 주식 브로커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문 금융 브로커는 아니지만, 브로커에게 필요한 자질은 대개 비슷하다. 무거운 양심의 제거를 통한 사업적 기동성의 확보가 그것이다. 따라서 같은 자질을 가진 천성적 잠매꾼 윌리엄 자딘에게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시준과 몇 시간 시시덕거린 끝에 그들은 감옥에 있는 ‘존 더 드워프’, 즉 홍경래를 존이라는 이름으로 자딘의 회사에 등록시켰다.

그러고는 그 ‘성실한 중개인’을 보증하는 ‘명예로운 신사’로서 ‘전 조선 국왕이자 현재 평양의 대공’인 이공의 이름을 집어넣었다.

이공의 도장과 홍경래의 지장 모두가 있으니 아무도 의심할 수 없다. 이로써 훌륭한 ‘아시아 지방 증권거래소’가 완성되고 시준은 표면상 합법적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시준의 발상 자체는 단순했다. 그는 영국이 전쟁 중이니 지금 영국 주식이 많이 떨어졌으리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중간의 여러 복잡성이 심각하게 생략되어서 그렇지 결과적으로는 맞았다.

현재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이리저리 동맹국들에게 돈을 꿔 주느라 곡물값은 치솟고 증권가는 침체기인 상태였다.

더 시티에서는 우울한 신사들이 코트 주머니에 손 찔러 넣은 채 배회했다. 더 이상 나에게 나쁜 소식 알려주면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는 얼굴을 한 채였다.

다시 말해 지금 시준의 구매 제의는, 악성 주식을 호구에게 약간 비싼 값에 처분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다. 윌리엄 자딘은 자기가 동양에서 친구 하나는 잘 사귀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요. 의장 각하. 아무래도 런던까지 갈 수는 없으니 여기서 사는 게 현명하지요. 안정적인 큰 회사의 채권을 택하다니 안목이 있으시군요. 저도 가지고 있지만 더 원하신다면 동인도 회사에 접촉해서 융통해 올 수 있습니다.”

시준이 구매 의사를 타전한 것은 동인도 회사 주식[East India Company stock]과 영국 재무부 증권[Exchequer bills]이었다.

둘 모두 지금은 값이 상당히 떨어졌는데, 시준은 이것을 약간의 수수료를 덧붙여 현금화해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떳떳지 못한 일에 종사할수록 현금이 많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윌리엄 자딘은 기쁘게 대량의 채권을 넘겼다.

자딘이 친구에게 사기 치는 일로 마음이 켕길 인간이었으면 애초에 밀무역 따위 하지도 않았다. 자딘은 이것이 약간의 손해를 대가로 시준의 투자 감각을 길러 주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으므로, 자딘은 시준이 요구하는 대로 요 몇 년간 미-영 사이에 감돌던 전운에 대해 아는 정보를 모두 알려주었다. 영국 해군과 밀접한 자딘은 이것저것 얻어들은 게 많았다.

미영 전쟁의 원인은 이 시대 전쟁이 대개 그렇듯 영국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보자면, 그중 하나는 영국 해군의 기합 넘치는 신병 모집 방식이었다.

사지만 멀쩡하면 외계인도 패서 끌어갈 태세였던 영국 해군이 특히 선호하는 신병은 미국 선원이었다. 경력직인 데다 영어를 할 줄 아니까.

그래서 이때 서인도 제도와 대서양에서는 적국도 아닌 미국 선박이 배째로 납치되는 사태가 횡행했다. 보통은 프랑스와의 통상봉쇄를 어기지 않는지 감시한다는 핑계로 배를 세운 다음, ‘Boy! 영국 해군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가 되는 식이었다.

여러 차례 항의가 이어졌지만, 캐나다 문제로 갈등이 있는 데다 프랑스와 친했던 미국에 대한 범죄는 거의 대부분이 묵인되었다.

게다가 앵글로색슨적 형제애가 충만한 영국인들은 미국을 외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독립한 지 30년도 안 되었는데, 갈라섰다고 그렇게 금방 남남이 되어버리면 섭섭하지 않은가.

따라서 영국의 공식적인 해명은 다음과 같았다.

‘어차피 걔네 태어날 땐 거의 다 영국 사람이었잖아? 한번 영국인은 영원한 영국인이다!’

물론, 전쟁의 원인이 그런 납치 하나뿐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결국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았을 때 영국의 안하무인적 횡포가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대표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현시점 미국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1812년 6월, 그러니까 앞으로 보름도 되지 않아 미국은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결의한다.

윌리엄 자딘도 거기까지는 알 재주가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정보를 종합한 결과 시준은 개전 시기를 상당한 확률로 좁힐 수 있었다.

‘최소한 러시아 원정과 같은 해에 미국과 영국의 전쟁이 터진다.’

이 전쟁은 나폴레옹과 달리 전쟁 당사자 중 한쪽의 몰락을 부르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시준이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시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사들인 채권을 잊어버렸다.

‘어차피 3년은 있어야 팔 수 있다.’

시준의 계획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1815년은 되어야 완전 종료된다. 그리고 시준은 몰랐지만 미영전쟁도 그 해에 끝난다.

그때가 지나면 영국의 주식은 일제 상승하고, 시준은 지금과 비교도 안 되는 값에 채권을 다시 자딘에게 팔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 한계상 런던 증권거래소에 직접 머물면서 조율하는 것보다는 이득이 훨씬 적다. 지금도 헐값보다 좀 비싸게 샀고, 팔 때도 조금 싸게 팔아야 자딘이 사 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고생 안 하고 돈 버는 것만 해도 어딘가. 시준은 사람이 욕심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고 되뇌며 히죽 웃었다. 지금 돌아서서 웃고 있는 윌리엄 자딘보다 훨씬 깊숙한 웃음이었다.

***

어쨌든 주식이야 3년 뒤의 일이고 지금은 다른 일로 돈벌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현재 조선의 농업 생산량은 장기 흉년 때문에 위험 수준이다. 뭐든지 갖다 중국에 팔고 쌀을 들여와야 했다.

‘민간 상업은 성장시킬 계획이지만, 이 목적을 위해서는 자유 무역은 좀 곤란하지.’

시준은 대(對)중국 무역에 대한 철저한 통제를 기획했다. 정치국에 의한 ‘장악지도’였다.

기랑을 포함하여 원하는 사람은 동인도 회사를 통한 무역에 참가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인도 회사와 혁명막부를 연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준과 그의 위임을 받은 외사통호국이다.

다시 말해, (여러 의사결정 단계를 거치는 척하지만) 사실상 시준의 승인이 없다면 시준이 영업해서 따 온 대중 무역에 숟가락 얹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다.

항의하는 자들에게는 ‘그럼 네가 해 봐.’라고 말해 주면 된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과는 다르게 현재의 혁명막부가 상업 도고 세력이며, 그 구성원 대부분이 가진 권력의 근간은 여전히 상업 자본과 인맥이라는 점에서 가능한 계획이다.

예를 들어 시준이 당장 주석 퇴임하고 새 주석이 선출된다 해도, 영국 해군이나 동인도 회사는 그 정부와 거래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거칠게 말한다면 혁명막부 치하 인민은 그 전체의 생계를 서상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국민이 국가를 지지하는 이유와 완전히 동일하므로, 그런 말은 지나치게 악의적인 조소일 뿐이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눈 밝은 상인들은 괜히 밀수선을 낸다든가 하는 어리석은 짓을 포기하고 막부에 수수료를 지불한 다음 영업권을 얻었다.

임상옥, 김창시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참여한 이 사업의 주요 품목은 홍삼, 금은, 소가죽, 아편, 평안도 담배 등이었다. 뭔가 이상한 게 한두 개 끼어 있기는 한데, 조약에 아편 수입 금지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조선 사람들은 전력으로 모른 척할 생각이었다.

그중에서도 ‘발빠른 행보’와 ‘남다른 총애’를 기반으로 주석에게 일찌감치 한자리 얻어 온 백발백중회 회장 기랑의 선견지명은 높은 평가를 얻었다.

그녀는 이제 바지사장 같은 게 아니었다. 사업에 재미라도 붙였는지, 그날도 기랑은 여러 지역 포수들의 산출물을 정리한 서류를 들고 시준을 찾아왔다.

“선대는 얼마나 해 줄 거야?”

“지금은 일단 이 정도로 하자. 어차피 호표피나 웅담 몇 개 정도 팔자고 내가 뛰어드는 건 아니거든.”

기랑은 생각보다 적은 투자 규모에 실망하는 듯 보였다. 시준은 그런 그녀를 보고 웃다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너, 혁명군이 포수들보다 총을 잘 쏘는 것 같으냐?”

포수들, 특히 길명이의 떠받드는 말에 우쭐해서 내가 주석한테 돈 많이 땡겨 오겠다고 자신했던 기랑은 입술을 비쭉였다.

“그럴 리가 있나. 혁명군 태반은 총 들고 뛰어다니기만 했지 쏴 본 적도 없잖아.”

이때 실제 화약으로 일상적 화기 훈련을 하던 군대는 영국군 정도다. 조선 정부군도 못 하는 훈련을 가난한 혁명막부가 제대로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야 조련해야 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안 될걸. 어릴 때부터 산타고 총 쏜 사냥꾼들하고는 댈 게 못 돼.”

기랑의 말에는 포수들의 솜씨에 대한 자부심이 들어 있었다. 시준은 그 자부심에 만족했다.

“하지만 포수는 숫자가 적은 데다 따로따로 놀지. 그래서 호랑이의 3보 앞에서 총을 쏜다거나 하는 위험한 일을 해야 하고. 그러나 수천 명이 일시에 산을 에워싸고 샅샅이 뒤진다면 그 어떤 대호라도 쫓기다가 무력하게 잡힐 것이 아니냐?”

옛날부터 맹수에 대응하는 인간의 무기는 쪽수다. 사실 무기의 우열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 단위가 수천까지 달하게 되면, 설사 인간이 다들 맨손이라도 감히 덤비지 못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기다 잡히게 된다.

기랑도 그것을 잘 알았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그렇다면 혁명군을 풀어서 호랑이며 곰, 멧돼지와 표범 사냥을 하는 건 어떠냐. 차제에 양계에서 아예 맹수의 씨를 말려버리는 게다. 그러면 다른 데에선 잡을 수 없으니 파는 값이 오를 거고, 우리가 얻는 값은 숫자가 많아지니 적어지겠지. 그러면 이문이 훨씬 뛰겠지?”

기랑은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시준의 말은 그럴듯하다.

시준의 말로는 씨를 말린다 했지만, 지금 시대 조선 북부에 호랑이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그건 무리다. 허나 독점이 아니라 과점이라 하더라도 값이 뛰는 것은 같다.

그래서 기랑은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혁명군을 그런 데 써도 돼?”

“그런 데라니, 엄연히 조련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포상을 내걸어야겠지. 잡으면 얼마 하는 식으로. 게다가 내가 널름 먹으려는 것도 아냐. 혁명군은 인민의 것이니, 그걸로 벌어들이는 몫은 막부에게 돌아갈 거야. 나는 무력위원회를 설득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값으로 구문(수수료)이나 좀 떼자는 게지.”

결국 정리하면 시준은 백발백중회의 사업에서 배를 빌리거나 선원을 고용하는 값을 선투자하고 이득을 갈라 가진다.

그리고 그 백발백중회는 혁명군이 잡아 벗긴 호랑이 가죽이나 기타 부산물의 위탁 판매도 맡는다. 왜 백발백중회에 그런 걸 맡기느냐는 공정성 논란은, 혁명군의 ‘조련’ 시켜주는 대가라는 명분으로 막는다.

“너는 되도록 여자인 거 들키지 않게만 조심하면서 백발백중회를 잘 쥐고 있어라. 대신 앞에 나서줄 믿을 만한 측근을 두면 좋을 텐데…….”

기랑은 이 시점에서 왠지 모르게 자기에게 자꾸 친한 척하는 길명이를 떠올렸다.

“아, 그건 적당한 사람이 있어.”

“그래? 그러면 잘 됐구나. 나중에 필히 백발백중회는 유력한 모임이 될 터이니, 그땐 너도 큰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잘 키워 보자.”

“으응.”

시준은 기랑이 나간 다음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실 호랑이 가죽이니 동물성 약재 같은 소규모 사업은 시준이 일부러 나설 일은 아니다.

그러나 포수 집단은 혁명군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무기를 다루는 집단이었으며, 전쟁 끝나고 나서야 가동되기 시작한 삼화부 무기 공창에서 절찬리 총 만들고 있는 공장(工匠)들과의 커넥션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시대는 총기 사용자와 총기 제작자가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기랑을 이용해서라도 이 무력집단은 혁명군과는 별도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 시준의 자본과 기랑의 영향력이라면 충분히 그것을 노려 볼 수 있다.

시준의 ‘투자’라는 말은 당장의 돈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혁명정부의 장구지계를 위한 포석이었다.

시준은 서글픈 느낌에 오랜만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제 4년 정도 남았나. 임기가 끝나면 절대로 다시 출마하지 말자. 그리고 지유와 함께 요양이나 하면서 살자. 그러면 되는 거야. 젊을 때 잠깐 바빴을 뿐이지.’

시준이 내뿜는 담배 연기는 그러한 생각을 비웃는 것처럼 까불대며 공중으로 사라져 갔다.

**

눈 깜짝할 새 몇 달이 지나 그 해 가을, 이른바 해수구제사업(害獸驅除事業)을 보고받은 정치국에서도 대체로 긍정적 반응이었다.

조선이 호랑이 살기 참 좋은 동네인지 몰라도, 한반도는 기이하게도 많은 범이 우글댔다. 수컷 호랑이 한 마리에 필요한 이상적인 영역이 거의 서울특별시 크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반도의 호랑이들은 아파트 생활을 했다고 말해도 좋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인구가 많아지면 한 사람은 가난해진다. 호랑이 사회도 마찬가지여서, 좀 쉽게 먹고살고 싶은 호랑이들은 자주 인간의 민가를 습격했다.

따라서 조선인들은 중국인들의 과장처럼 일 년의 반은 호랑이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반은 호환 당한 사람 문상 다녀야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호랑이 보호니 생태계 보존이니 하는 말은, 조선인들이 그 말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즉시 몰매를 맞을 소리였다.

혁명무력국장 차형기가 말했다.

“주석 동지의 신묘한 지혜는 매번 감탄하게 됩니다. 이로써 첫째로 악한 짐승을 없애고, 둘째로 혁명군을 정예하게 조련하며, 셋째로 이득까지 얻으니 어찌 좋은 일이라 아니하겠소. 화약값이 좀 저어되기는 하는데…… 그건 호피 판 돈에서 쓰면 되겠지요. 요즈음에는 영길리 사람들이 염초를 퍼다 싸게 대어주고 있기도 하고.”

“과찬이시오.”

시준은 짧게 대답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럼 다른 정치국 위원들의 이의가 없다면 이것을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무력위원회, 그리고 평준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하겠소.”

이의가 있을 리가 없다. 요 몇 달 진행된 중국 무역에서 겉보기보다 많은 비합법 이문이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정치국에 포진해 있는 많은 상인들은 시준에게 대중국 무역 자리를 하나라도 더 따보려고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차형기가 살짝 운을 띄운 화약값 어쩌고 하는 소리도 의주 만상들에게 배를 좀 더 할당해 달라는 우회 표현이다. 그리고 시준은 감정을 최대한 싣지 않고 대답함으로써 역시 우회적으로 거절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상업과 별로 관련이 없는 사람도 앉아 있었다. 중앙인민회의 의원은 아니지만, 정치국 위원으로서 그 입김이 가볍지 않은 총괄서결국장 정약전이 손을 들었다.

“주석 동지의 이용후생(利用厚生)하는 도가 진실로 지극하나,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는 듯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시준은 정약전이 그 동생과 함께 실학자였음을 떠올리고 – 요즘에는 실학자라기보다 마피아 책사 같아서 잘 상기하지 못했다 – 기대와 함께 물었다. 정약전이 대답했다.

“이롭게 쓴다[利用]고 함은 곧 낭비가 없다는 뜻이요, 살림을 넉넉히 한다[厚生]는 것은 곧 이문을 남긴다는 뜻입니다. 작금 주석 동지의 자주독립 업적 이후로 중국에 더 이상 무기를 팔 수 없게 되었는데…….”

그 말이 되도록 안 나오게 애쓰고 있었던 시준은 식은땀을 흘렸다.

역시 모든 국면에서 맛있는 것만 골라 먹기는 힘들었다.

혁명막부의 쏠쏠한 사업이던 대중 무기 밀매가 이번 조약으로 크게 위축된 것이다.

어차피 몰래 하던 건데 계속하면 안 되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이제 조선인들이 중국에 공식적으로 많이 오가게 되면 비밀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해수구제사업을 진행한다 하여도 혁명군의 수가 원래 그리 많지 않고, 또 삼화부 공창이 완성되기도 전에 영길리군의 전쟁도 끝나서 무기가 앞으로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그때 시준이 이득 보겠다고 체결한 특약이 이제는 거꾸로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분명 당시에는 무기가 모자랄 줄 알고 잉여분을 혁명막부에 우선 공급하라는 협상을 맺었지만, 이제 영국군은 희색이 만면하여 재고를 죄다 막부에 떠넘길 기세였다.

시준은 엄중한 자아비판이라도 해야 하나 하며 긴장했다. 그러나 다행히 정약전의 의도는 그 실수를 규탄하고 시준을 불신임하려는 데에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본 위원이 그간 구처(區處, 변통하여 처리)할 방도를 좀 알아보다가, 예전에 쓸만한 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쓸만한 자라니, 그게 누구요?”

정약용은 서리들을 불러 뭐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조금 후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준은 잠깐 동안 고개를 갸웃하다가, 그 사람이 좀 무안해할 때가 되어서야 누군지 기억해 내었다.

“아! 이거 실례하오. 내가 워낙 얼굴 본 지 오래되어서……. 그간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려. 편하게 지내셨소?”

“……주석 각하의 염려 덕에 무탈하였습니다.”

과거 삼화부에서 염탐도 하고 사람도 찔러보는 등 신나는 간첩 영화 찍다가 붙들려서 도게자 신세가 된 조슈 번의 모리 후사아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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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로스차일드 일화는 유명하니 생략하고, 1814년의 사기는 '뒤 부르du Bourg 대령'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부르봉 왕가 근위대의 제복을 입고 런던에 나타나 '나폴레옹은 죽었으며, 부르봉 왕가의 복귀가 이루어졌다' 고 떠들고 다닌 일을 말합니다. 영국의 주가는 수직 상승했고, 작중 나온 침체기에(실제 저 때 영국 증권가 분위기는 별로였습니다) 주식을 사둔 사람들이 많은 이득을 보고 주식을 팔아치웠죠.

물론 곧 헛소문임이 밝혀져 주가는 다시 하락. 이 여파로 이때 이득을 본 사람이 연루를 의심받아 체포되고, 심지어 처형당한 자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날조 시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2. 이때는 주식과 채권이 현대적인 의미로 엄밀히 구분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현대는 증권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상장주식을 거래하는 데에 많은 제한이 따르나, 19세기 초는 그냥 카페에서 주식 거래도 하고 뭐 그러던 시기였습니다. 지방 증권거래소도 당연히 많았으며, 전화기가 나오자마자 이 지방과 수도 간의 정보전달 격차를 이용해 시세 단타가 기승을 부렸는데 이를 shunting이라 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은 20세기 초에 정립되었지요. 다만 시준이 저런 일을 한 이유는 '런던 증권거래소의 인정'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없었을 것 같은 발전상이 또 있는데, 당시 정립된 규정을 보면 현대적 옵션 개념의 정립도 19세기 초에 이미 되어 있는 상태였죠. 당대의 문서에, 옵션 매수자가 그것을 이행하지 않더라도(권리 포기) 프리미엄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의 규정이 언급됩니다.

3. 모리 후사아키 오랜만에 나왔군요. 이제야 활약할 때를 잡은 듯합니다. 다음 화에 자세히 나오긴 할텐데, 사실 정약전의 말과 달리 이때는 일본의 대량 총기 시장의 수요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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