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31화 (131/284)

131화

39. 트로이의 목마(2)

아침에 출근한 기랑은 시준의 안색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장가를 간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이제 나이가 나이라, 얼마 전 은행 사건 이후 지유가 틀어 준 외자상투가 살짝 흔들렸다.

“피곤해?”

“아, 어제 밤을 샜더니만. 중요한 사무로 청국에 가야 하잖냐.”

중대한 사무가 있는 것은 맞다. 밤을 샌 것도 맞다. 그러나 시준은 전혀 인과관계 없는 두 일을 마치 유관한 것처럼 말하는 수작을 부렸다. 어쨌든 친구에게 거짓말은 하기 싫었던 시준의 교활한 화법이었다.

하지만 기랑은 별로 캐물을 생각도 없었기에 그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기랑은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안해진 시준은 재빨리 다른 말을 덧붙였다.

“그래, 그러고 보니까 할 말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야 다 준비되어 있었지만 기랑의 경우는 예정에 없었기에, 시준은 아침에 기랑을 만나자마자 급히 말을 꺼내야 했다.

얘기들 들은 기랑이 말했다.

“너 중국 간다 그래서 나 급가(휴가) 내려 했는데.”

시준은 남이 휴가 간다고 했을 때 웃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성격이었다. 전생에서 10년을 했던 직업은 아직도 시준의 뇌 한구석에 강박을 남겨 두었다.

게다가 밤에는 지유의 말이 다 옳아 보였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출과 함께 찾아오는 현자의 시간에 숙고하고 나니 좀 생각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기랑을 데리고 가는 것은 좀 부담스러운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하하. 지유도 참 못 말린다니까. 너 쉬러 간다는 얘기를 못 들었구나. 그러면 다음에…….”

시준은 자기 면피하려고 남의 핑계 대는 버릇을 좀 고쳐야 마땅했다. 기랑이 물었다.

“지유가 나 데려가라고 했어?”

“응? 으응. 그랬지.”

시준은 뭔가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치며 대답했다. 그러자 기랑이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너 거기에 주석이랍시고 가서 청나라 왕한테 여진족 기생 대접받을까 봐 그런 것 같네.”

“야, 인마……. 조선에서도 안 가는 기생집을 내가 왜 천진까지 가서 가냐? 여진족 기생이란 게 있기는 하냐? 그리고 거기에선 내가 주석 칭할 처지가 못 된다니까.”

지유나 기랑이 시준에게 딱히 근거 없거나 과도한 의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준이 미래인이라는 사실은 그 혼자밖에 모른다. 따라서 두 여자도 시준이 일반적인 조선 남자의 행동 원칙대로 살 것이라고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유와 기랑은 시준과 의주 시절부터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시준이 평소에 시간 날 때마다 용돈벌이로 써 대는 책이 뭔지도 알고 있다.

이쯤 되면 의심하지 않는 편이 이상하다.

그래서 기랑은 괴로워하는 시준을 무시하고 말했다.

“그럼 나도 따라갈게.”

“뭐? 야. 이제 와서 준비하기도 오래 걸리지 않겠어? 곧 출발해야 해.”

“곧은 무슨 곧이야. 어차피 선생님(정약용)도 아직 안 왔고, 마차 채비하고 여물 먹이며 너한테 딸려갈 행장 마지막으로 살피는 데에도 한두 시진은 걸려.”

기랑은 휙 나가더니 잠시 후 돌아왔다. 주석보필국장 서유구의 수결(서명)이 들어간 출장 계획서와, 급양과장으로서 주석의 식대 겸 자질구레한 물품 비용으로 받아온 출장비도 함께였다.

요즘 혁명막부 치하 군현에서는 조선 돈이 잘 통하지 않는다. 현물이 아닌 화폐 중에서는 영국인들의 스페인 달러 은화가 가장 인기를 누렸다.

시준은 그 개수를 보고 기랑이 두 사람분의 여비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내 밥은 영길리 사람들이 줄 텐데?”

“그럼 돈 굳는 거지.”

21세기의 박봉 공무원들도 많이들 하는 부수입 창출 방식이다. 조선 시대에 이 정도면 고금을 통틀어 짝을 찾아볼 수 없는 청렴직원 수준에 속한다.

시준은 한숨을 쉬고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체제의 빈틈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체제에 익숙해졌다는 뜻. 혁명막부의 관료제는 시준의 생각보다 빠르고 튼실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기랑은 원래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포수 출신이라 짐 싸는 데에도 능숙했다. 그녀의 말대로, 기랑 한 사람의 준비는 천진으로의 공무여행 계획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곧 외사통호국장 정약용도 도착했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었다.

“이렇게 셋이 다시 모여서 중국 가니 이태 전 황제 만수절 때가 생각나는구려. 주석 동지. 나와 기랑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일이 비슷하나 주석 동지가 이리 출세할 줄은 누가 알았겠소.”

시준은 그게 2년도 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수십 년은 지난 것처럼 보였다.

정약용의 말마따나 그때 정약용은 하늘 같은 을대인(乙大人, 부사)이고 시준은 그저 시종 장사꾼, 기랑은 견마잡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시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에도 제가 무슨 정사(正使) 같은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지친왕을 도와 통변하고 조언하러 가는 것이니 그 점을 명심해 주십시오. 기랑이 너도.”

그 말에 걸맞게 일행은 단출했다. 과거 북경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던 의기의 조선인 세 사람과, 경애하는 주석을 말 그대로 결사옹위할 각오 가득한 주석결사옹위대 병사들 이십여 명이 전부였다.

이들은 곧 출발했다. 허나 그 방향은 북쪽이 아니었다.

***

중국과 한반도의 외교는 인신공양이 전 세계의 보편종교이던 시절부터 있었다. 장구한 역사에 걸쳐 쌓아 올린 그 복잡한 의전과 예절은 책으로 엮어도 한 권 정도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조공 책봉 외교에서는 천조국이라 하더라도 내키는 대로 막 지를 수는 없다. 지친왕의 편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시준이 올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던 성경 장군 화녕 또한 고민이 많았다.

그가 과거 남공철과 정약용을 상대로 능숙히 보여주었듯이, 항상 오는 조선의 사절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많은 전례와 지침이 쌓여 있다. 성경부는 그런 업무를 처리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조선의 왕은 누군지도 불명확한 상태이며, 평서대원수는 누구의 신하이고 직급은 어느 정도 되는지에 대한 검토도 충분하지 않았다.

여유 있게 검토할 시간은 없다. 게다가 화녕이 미리 짐작했듯 현재는 지친왕 쪽이 아쉬운 상황. 신중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일이 잘못될 경우 모든 책임을 성경 장군에게 뒤집어씌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겉으로는 소환이라 하면서 위엄을 세워 대국의 체면을 보이더라도, 내밀한 부분에서는 ‘우리 마음 알지?’ 정도의 대접으로 시준의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그리고 시준은 화녕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협조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성경 장군 화녕의 고민을 단번에 뿌리부터 해결해 주었다.

시준이 성경부에 가질 않았으니 그런 고민은 다 쓸 데가 없었다.

현재 동아시아 원정 영국 함대의 총기함, HMS 알세스트를 타고 당당히 천진에 상륙한 조선국 평서대원수 정시준은 청나라 협상단에게 일종의 심각한 시스템 오류를 선사했다.

총관 상영귀가 진언하러 나섰다. 원래 이 일과 별로 관련이 없으나, 과거 북경에서 시준을 한번 봤다는 이유만으로 끌려온 처지였다.

상영귀의 판단력은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만수절 당시 황자에게 총 쥐여 주며 네가 쏘라고 강권할 만큼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상영귀는 이번에도 적확한 조언을 올렸다.

“저자가 평서대원수라고 칭하고 있으나 듣기로 이미 조선국 평안도는 영길리의 발 아래 있다 하고, 또 이번에 영길리 군선을 타고 왔으니 그 의도가 매우 수상합니다. 영길리국과 친하다면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틀린 말 하나 없는 지적이다. 그러나 아직 중국 사람들은 선박에 적용되는 국제 규범과 의례에 대한 직관적 이해가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지친왕은 시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리고 시준은 그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변명거리를 준비해 왔다.

지친왕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동안, 시준은 태연히 나아가 절했다. 그러고는 아랫사람을 통해 말을 전했다.

시준의 신분이 낮아서는 아니다. 청에서는 분명 시준의 대원수 직함을 인정했다. 다만 조선의 대원수 정도로는 여전히 지친왕과 직접 대화할 수 없는 신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준은 장문의 글을 쓰지 않았다. 그가 보낸 것은 오직 고전의 한 구절뿐이었다.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을 끌어당겨 구해내니 이것이 권도이다[嫂溺援之以手者 權也, 『맹자』].>

그러니까 사정이 급하다 보니 도의를 어기고 빨리 오는 방도를 택했다는 얘기였다.

시준은 이 말을 폼나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다가 관우의 오관육참장 일화를 언급하려 했다. 그러나 정약용은 자꾸 판타지 소설 인용하는 제자의 얇은 지식을 개탄하며 올바른 고전을 써 주었다.

그리고 그런 ‘비밀한 서신’을 받은 지친왕은 그제야 안심하게 되었다.

“실로 정시준의 말이 옳다. 권도는 바로 이럴 때 행하는 것. 사태가 촉급하므로, 발로 걸어서 소와 말을 끌며 동팔참(東八站)을 지나 성경부에서 유숙하고 또 요동 이백 리 나무길이며 산해관까지 통과하려면 이미 때를 모두 놓친 뒤이다. 어찌 내가 힐책하거나 의심할 수 있겠느냐?”

“허나 그렇다면 조선 배를 타고 올 수도 있었을 터입니다. 게다가 이 짤막한 쪽지는 너무나 예를 모르는 짓입니다.”

상영귀는 의문을 표했으나, 지친왕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총관은 여기에 숨겨진 진의를 모르겠는가?”

“신의 지모는 전하의 터럭 끝에도 미치지 못하옵니다.”

좌우를 돌아보던 면녕은 측근 중 아무도 이 말의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자못 지혜를 뽐냈다.

“저 악독한 영길리인은 반드시 정시준의 근처에 사람을 풀어 놓았을 터. 어떤 서신이건 저들이 미리 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저 양추들이 고전을 한 줄이라도 보았다면 이토록 흉패한 짓을 저질렀겠느냐? 시준은 저 무식쟁이들이 모르는 중화의 문물 한 마디로써 내게 열 마디를 아뢰려 한 것이야.”

그렇게 한 박자 쉰 지친왕은 시준의 의도를 해설해 주었다.

“저 맹자의 말은 그 뒤가 더 중요하다. 형수가 물에 빠진 때는 예를 잠시 잊고 손으로 잡아끌 수 있지만, 천하는 결국 임기응변이나 권도가 아닌 공의로써 구해야 한다[天下溺 援之以道 嫂溺 援之以手]. 비록 지금은 저 강대한 영길리국의 힘에 눌려 응변하였지만 그의 뜻은 정도에 있음을 정시준은 역설한 것이다. 이 어찌 많은 뜻이 담긴 재치라 아니하겠는가? 실로 비범한 자로다!”

영국인과 시준이 들었다면 지친왕의 발랄한 창의력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지혜의 왕이라 그런지, 그 상상력은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었다.

시준은 그렇게 고전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 만큼 서책에 통달하지 못했다. 시준의 의도는 자신이 영국인에게 감시받는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역으로 지친왕이 자신을 믿게 하는 정도였다.

그러니 애초에 문구는 비밀스러운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그나마 정약용이 써 준 것이다.

이번에는 정책 결정자가 아니라 집행자로서 오긴 했으나, 혁명의 장량 희만 선생의 학문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활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붓으로써 천조를 통째로 낚는 대공을 의도치 않게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일행과 함께 중국 진영에 합류하게 된 시준은 청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지친왕은 시준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표명하며 그를 직접 인견하는 이례를 보였다.

“과거 경사에서 용맹을 떨쳤던 조선국 평서대원수가 천조의 위기에 또 한 번 시급히 달려오기를 내가 기다린 지 오래되었다.”

“실로 과분한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분골쇄신할 뿐입니다.”

지친왕은 시준을 크게 칭찬하며 비단이며 금, 산해진미와 좋은 술을 하사하였다. 청나라에 좋은 군대는 없었지만 좋은 재물은 많았다. 하기야 그게 바로 전천후 강탈자 영국을 부른 원인이기도 했다.

청의 고관들에게 기름칠을 하기 위해 닭과 기름을 많이 준비해 왔던 시준은 오히려 자기에게 내려진 훨씬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입맛을 다셨다.

시준은 기랑에게 이거 좀 먹으라고 – 그리고 자꾸 졸졸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 권했지만 기랑은 고개를 저었다.

“난 네가 튀겨 주는 닭이 더 좋아.”

“그건 좀 참아 줘라. 나 이제부터 바쁘다.”

시준은 (영국산) 손거울을 들고 의관에 비틀어진 곳이 없나 바로잡았다. 혁명군복을 입고 올 수는 없었기에 지금 그의 차림은 생전 처음 입어 보는 조선 관복이었다.

“어?”

조선에 재봉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 시대의 수작업 의류는 품질이 당연히 들쭉날쭉했다. 시준은 옷솔기가 터진 것을 발견하고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그걸 보고 있던 기랑이 머뭇대며 반짇고리를 꺼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으나, 시준은 무정하게도 반짇고리만 가져갔다.

시간이 없어서 안 하는 거지, 사실 바느질처럼 손을 야무지고 정밀하게 놀리는 재능이라면 시준이 기랑보다 낫다. 옷을 입은 채 순식간에 바늘을 놀려 터진 곳을 감쪽같이 꿰매는 시준을 기랑은 멀거니 쳐다보았다.

“아, 고마워.”

시준은 반짇고리를 기랑에게 돌려주고 나갔다. 그는 지금부터 청나라의 편에서 일종의 사전 대책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지친왕을 기다리게 할 수야 없는 노릇이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예의상 시준은 그곳에 호위병을 대동할 수 없다. 그래서 혼자 우두커니 서 있던 기랑은 자기 옷을 살폈다.

조선 사람이라면 별 신경 쓰지 않을 흠이 여러 군데 보였다. 기랑은 잠시 그렇게 있다가 곧 자기 옷을 상대로 바느질을 연습해 보기 시작했다.

***

원래 신분으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고관대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자리에서, 시준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한 거짓말을 시전했다.

“신은 ‘내가 영길리 말과 청국 말을 모두 알아 능히 통변하여, 서로 막히고 어려운 곳 없이 뚫어 주어  너희가 원하는 바를 얻게 할 수 있다’라고 호언하여 저들의 수사 아묵사특(암허스트)을 속였습니다. 그야 영길리인 역시 어리석지 않으므로 신을 의심하여 군선에 가두듯이 태워 왔습니다마는 결국 신을 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말이 제대로 안 통하면 답답한 것은 저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그 틈에 그들의 허실을 탐지하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쯤은 지혜의 왕 지친왕이 이미 전부 꿰뚫어 본 바다. 지친왕은 자신의 예지가 맞았음을 강조하는 의미로 좌우를 둘러본 뒤 자비롭게 하문하였다.

“그 허실이 무엇인가?”

시준은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영길리인이 청국에 무엇을 달라 하는지 저들끼리 쑥덕거리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언행 어디에도 대국에 대한 존경이 없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만, 사세가 매우 급하니 바로 아뢰겠습니다. 저들은 지금 그들의 잘못으로 쫓겨난 강남의 여러 상관이며 항구는 물론이고, 더하여 산동(山東)을 얻어내려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술렁였다. 개항장의 회복은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예상하던 조건이다. 그러나 산동 같이 큰 땅을 떼어가려는 짓거리는 너무나 상식 밖이었다.

그리고 조신들의 의심은 타당하다. 실제로 영국인은 산동 반도를 받아갈 생각 따위 전혀 없었으니까. 지금의 영국은 중국 땅을 거저 준다 해도 통치할 수단이 없다.

그러나 자기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깨졌는지 잘 아는 청의 조신들은 시준의 밑그림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생각에 영길리 양추는 마음만 먹으면 북경을 급습할 수도 있었다.

절멸전이 기본인 동아시아의 전쟁 관례로 보면 땅 일부만 얻어가겠다는 이야기는 관대한 쪽에 가까웠다.

게다가 서양 쪽에서 생각해 보려 해도 비슷했는데, 청이 가장 최근에 영토 관련해서 큰 조약을 맺은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땅 넓이에 무슨 성도착증이라도 있는 듯한 그 족속에 영국을 비추어 보자 이런 요구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화를 내야 했다.

중국은 땅을 뺏긴 적은 있어도 스스로 내어준 적은 없다.

그건 중국의 특수한 위치에 기인한다. 중국은 곧 세계 그 자체이므로 중국인의 세계관에서 외적이란 없다. 모두 내란이며 반란군일 뿐이다.

사세가 불리하면 어느 고을이 반군에게 일시적으로 점탈될 수는 있다. 그러나 반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토지를 내어줄 수 있는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국가체제의 부정이니까. 원 역사 아편 전쟁에서 홍콩의 할양이 가장 치열한 접점이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럴 때 지친왕이 친히 격노하게 되면, 혹시 그 격노가 어리석은 일이었을 시에 체면이 깎인다.

그래서 이때는 보통 측근이 대신 그 경솔함을 뒤집어써야 한다. 총관 상영귀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

“남만 오랑캐들이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이제 곧 백만 근왕군이 그들을 터럭 하나 남기지 않고 쓸어버릴 것이거늘!”

“바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빠른 배와 큰 화포를 당해낼 방도가 많지 않으므로, 육지에서 그들을 이길지라도 빈해(해안)의 여러 마을과 백성들은 영길리의 흉악한 노략질에 매우 곤고해질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먼저 조송(趙宋)의 전례를 따르는 것이 합당합니다.”

자기들 여진족도 꽤나 이용했던, 중화 역사상 최고의 오랑캐 전용 단골 맛집 송나라의 이름이 나오자 많은 고관들이 눈을 홉떴다. 그러나 시준은 대국적 안목을 위해 무례를 무릅쓰는 충신의 연기를 해 보였다.

“산동을 얻어 보아야 오래 다스릴 수 없으리라는 점은 영길리인도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저들의 조정에 돌아가 상언할 말이 있어야 하므로 공을 다투는 것인데, 따라서 그들에게 땅 대신 돈을 주겠다며 잘 꼬드기면 틀림없이 넘어올 것입니다. 저들은 세폐(稅弊)의 풍속은 애당초 없으므로 이는 굴욕이 아닙니다. 땅은 인민의 근본이요, 재물은 말류라. 몇 푼 돈으로 재앙을 물러가게 할 수 있다면 어찌 그것을 아깝다 하겠습니까?”

그런데 지친왕의 부친은 몇 푼 돈을 상당히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다른 중국 군주라면 땅 주느니 돈을 주겠지만 가경제는 둘 다 납득하지 않을 군주다. 그래서 지친왕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재물을 요구하면 어찌하는가?”

“과연 만리를 내다보시는 대왕의 헤아림은 감히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하교하신 대로 영길리인은 염치가 없어 어마어마한 값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시준은 상놈 생활 20년으로 갈고닦은 아부의 재주를 선보인 다음 대답했다.

“그럴 때는 값을 되도록 깎되, 동시에 산동이 아닌 다른 궁벽한 곳의 땅을 내어주겠다 약조하시는 것이 제이책(第二策)입니다.”

“다른 곳이라니, 어디를?”

시준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트로이의 목마는 성문에서 꼬리 하나만 남겨두고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되도록 신뢰를 주는 어조로 말했다.

“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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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청은 순치부터 건륭 치세까지 4차례에 걸쳐 내려진 단계적 금령으로 북경과 전국의 관기를 모두 철폐하고 기녀를 해방하며 양인의 신분을 회복시켰습니다. 순장도 없앴고요. 기녀만 그런 건 아니고, 흔히 '악인樂人'이라 불리는 예능인 천민 계층에 대한 조치였습니다. 이것만 보면 사실 한족과 비교해서 누가 오랑캐인지 의심이 갈 지경이죠. 몇 대가 지날 경우 과거 제한도 풀었습니다.

허나 당장 땅을 나눠주는 것도 아니고 호구지책이 없는데 관대하게 신분 올려주어 봤자 그건 해고나 다름없고... 이때도 결국 다시 음지에서 원 직업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진족은 지배계층이었으니 시준의 말마따나 그렇게 많지는 않았겠죠.

2. 상영귀 오랜만에 나왔는데, 북경성 천리교 반란 사건 때 면녕에게 네가 나가서 총 쏘라고 조언했던 그 사람입니다. 환관이고, 실제 역사에서도 그 조언으로 나중에 상 받고 승진하죠.

3. 맹자 이루의 저 말은 흔히 시준이 보낸 부분만 잘라서 유교에서도 임기응변을 말했다는 식으로 많이 인용되는데... 사실 원래 그 문답의 맥락은 순우곤이 '그렇다면 왜 천하의 일에는 (합리적으로 마땅한) 권도를 쓰지 않느냐?'는 물음에 맹자가 '그런 사소한 일을 천하의 대의와 비교하지 말아줄래?'라고 답한 것에 더 가깝습니다. 덕과 정도에 어긋나는 수단을 써서 천하를 평정해 보았자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얘기.

4. 작중에서는 생략되었는데 이때는 아직 현대인이 아는 '은도금 거울'이 발명되기 전입니다. 현대와 같은 공정이 발명된 건 1835년입니다.

다만 유리거울 자체는 있었고, 유리의 대량 생산도 이미 이루어지던 시대입니다. 뒷면에 금속을 도금하는 지식도 로마 시대부터 있었지요. 은의 환원 작용을 이용해 증기를 침착시켜 도금하는 근대화학의 '습식 공정' 기술이 아직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때 뒷면을 귀금속으로 바른 유리 거울을 보면 보이긴 보이는데 뭔가 미묘하게 상이 어둡다고 할까, 현대 거울과는 좀 다르죠.

5. 송이 좀 돈으로 평화를 산 유약한 이미지가 있죠. (그래도 초기에는 군대가 꽤 괜찮았는데...) 연구에 따라서 여진, 거란, 몽골을 막을 군대 유지하는 것보다는 세폐가 훨씬 쌌다는 반론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게 합리적인 길이었다면야 모든 나라에 군대가 없어도 되었겠죠. 빵 달라는 대로 갖다 바친들 일진이 안 때리는 건 아니니까요. 결국 송도 그렇게 망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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