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28화 (128/284)

128화

38. 로열 럼블(Royal Rumble)(3)

외사통호국장 정약용이 서두를 떼었다.

“우선 주석 동지의 말씀대로, 지금은 웅크려 때를 기다려야 할 시기이지 용맹을 발휘하여 떨쳐 일어날 시기는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말씀드리고 싶소.”

몇몇 사람들은 갸웃하거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시준과 푸셰, 정약전 등 핵심 인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을 논하기 이전에, 지금 혁명막부가 조선 정부를 때려 엎는다고 하면 청이 좌시할 리 없다.

그것이 중국이며, 천조의 정체성이자 의무이다. 영국과의 전쟁이 어떻게 끝나건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리고 영국이 청조를 멸망시키지 않는 이상에야 나중에라도 반드시 조선의 반역자를 토벌하러 온다.

‘아니, 설사 영국이 자금성을 불태우고 청 황제를 쏘아 죽여 청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다음 왕조가 숨 돌리는 즉시 우리를 깨부수려 할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그냥 명나라가 고려 엎은 조선 승인했듯이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왜냐하면 기존의 왕조 교체와 그에 따라오는 불협화음은, 비록 그런 게 없지 않다 하여도 어디까지나 대의명분과 충신효제의 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준과 그가 이끄는 지배층의 기반이 천하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주원장도 천했으니까. 요체는, 그들이 한고조나 명태조와 달리 ‘그들의 천함을 부정하지 않은 채’ 나라를 세우려 해서였다.

이 당시 유럽의 왕조들이 자신의 신민보다는 외국 왕실과 더 연결이 끈끈했듯, 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기업 총수가 미국의 명사와 한국의 서민 중 누구와 더 친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시준 자신이 직접 봤던 것처럼 국격의 명백한 상하관계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신은 청에서 자주 행패를 부렸는데, 청이 그런 일을 적극 처벌하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청의 지배층과 더 가까운 건 조선의 지배층이었지 청의 신민은 아니다.

결국 봉건 기득권층끼리 해 먹는 게 왕조였던 건 동서양을 물론하고 마찬가지다. 그건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나라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지배자의 동아리 안에만 성공적으로 들어가면, 산 채로 사람 피부 벗기기가 취미인 거지 출신 반란군 도적놈이건 전 왕족 백여 명을 죄다 바다에 수장시킨 함경도 군벌이건 서로 큰 덕이 있다고 칭찬해 주고 양해하는 식의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시준의 경우는 군주가 아니며, 군주와 어떤 혈연관계도 없다. 심지어 지배층이 될 수 있는 고위 신분도 아니다.

그거야 주원장도 마찬가지 아니었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시준은 그가 세운 권력의 출발점을 고려했을 때 절대로 군주가 될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는 게 문제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한 청 황조는 차기 조선왕이 자신과 같은 이해를 공유하는 지배층이라면 그게 누구든 수용할 태세가 완비되어 있었다.

아마 시준이 지금부터 역성혁명을 하겠다고 해도, 그의 목표가 여전히 중국의 번왕이라면 그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준이 이끄는 혁명의 이념대로 백성이 정권을 잡는 전무후무한 일은 청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중국의 수억 백성이 일제히 동쪽으로 눈을 굴리며 ‘어? 되네? 우리도 한번?’ 어쩌고 하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조선의 민중반란이 성공하는 사태를 막는 것은 일종의 자위권 행사에 가깝다.

그러므로 지금 막부가 바라는 최상의 상황은, 영국이 청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내 버린 다음 그런 영국의 뒷배를 업은 ‘뒤에’ 국가를 세워도 세우는 것이다.

청의 혼란을 틈타 슬쩍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건 나중에 반드시 보복당한다.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청의 공식 양해’ 하의 건국이 계획의 요체다.

그리고 그 공식 양해는 영국이 받아 줄 수 있다. 영국이 또 남의 나라에서 허가 받아오는 일이라면 특기다. 강철과 유황으로 작성된 영국의 신청서를 거부할 수 있었던 나라는 많지 않다.

정치국에 모인 사람들에게 있어 그러한 전제는 모두 공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약용도 그 전제 위에서 설명했다.

“아묵사특남(阿默斯特男, 암허스트 남작)의 목적은 세 가지요. 하나는 실함한 황포(왐포아)와 오문(마카오)을 다시 되찾는 것이고, 둘은 두 번 다시 영길리 장사꾼들을 내쫓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셋은 이제 위태함이 증명된 강남뿐만 아니라 조선에도 그들의 관을 세우는 것이외다. 그중 우리가 특히 주의하는 건 당연히 세 번째요. 저들로 하여금 막부를 저버리지 못하게끔 해야 하오.”

혁명무력국장 차형기가 아는 척을 했다.

“이미 삼화부의 병기 공창은 거의 완성되었지. 저들이 들인 돈이 얼만데 이대로 버려두고 가진 못할 거요.”

“그렇소. 혁명무력국장 동지께서 크게 도와주신 덕에 공창의 영건(營建)이 바로 코앞이오, 그리된다면야 돈이라면 부모도 팔아먹을 저 영길리인들이 평양을 나 몰라라 할 리는 없지요. 저들이 무슨 재주가 있든 땅을 잘라 떠메고 갈 수야 없을 테니.”

차형기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어디 싸우러 나갈 일 없는 혁명군을 대거 투입하자 공창의 건설은 매우 빨라졌다.

시준은 군대를 가지고 작업에 투입한다는 게 꼭 조선인민군 꼬라지 보는 것 같아서 불편했지만 북한이 그렇듯 여기서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 묵인했다.

대신 나중에 포로나 죄수로 청년돌격대 같은 거 만들어서 밀어 넣어 볼까 공상하는 시준이야말로 만악의 근원이긴 했다.

‘그래, 내친김에 화선식(火線式) 선전선동도 한번 해 볼까. 어차피 이 난리 통에 광대며 예인은 다 일자리 잃고 도적이 되거나 떠도는 중인데, 불러 모아서 밥 먹여 주고 현장에 보내면 안 되나? 농땡이나 횡령을 막부가 감시한다는 어필도 될 것 같은데.’

사상이 의심되는 망상 중인 시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잠시 기다리던 정약전은 시준이 해야 할 말을 대신 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전황이겠군. 영길리군이 나아가는 형세와 싸움의 진퇴는 어떠합니까?”

당연하지만 혁명막부는 직접 싸우는 일만 빼고 최대한 영국군에게 협조했다.

보급만이 아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었던 정약용의 정보는 물론, 중국과 밀무역을 하던 만상들이 가진 여러 정보가 성의껏 영국군에게 전달되었다. 그중에는 유럽인이 동아시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놓치기 쉬운 귀중한 조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도움이 어떤 결과를 맺었는지 이제 들을 때였다. 정약용은 형이자 동료 국장의 질문에 진중하게 답했다.

“한마디로 말해 예상외이올시다.”

***

윌리엄 오브라이언 드루리 제독은 그의 옛 기함 이름대로, 군 경력에서 가장 파워풀한 순간을 맛보는 중이었다.

야만스러운 중국 돼지들의 궁전이 불타고 있었다.

연기는 하늘을 가리고 불은 땅을 뒤덮었다. 하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다 꺼내 왔으니까.

직접 나와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드루리는 거의 아편을 했지 않나 싶은 고양감에 취해 두 팔을 뻗어 올렸다.

“참나무의 심장은 우리의 배이고[Heart of Oak are our ships], 졸리 타르(영국 수병의 속어)는 우리의 아이들일세[Jolly Tars are our men]!”

사령관의 체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국 해군의 군가를 부르는 드루리 제독에게 주변의 장교와 수병들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들은 그럴 만큼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항상 준비되어 있다. 침착하라, 제군, 침착하게[We always are ready: Steady, boys, Steady]! 우리는 다시, 또다시 싸우고 정복하리라[We‘ll fight and we‘ll conquer again and again]!”

드루리 제독은 마치 지휘하는 것처럼 팔을 휘저어 내렸다. 21세기 한국인이라면 1년 뒤쯤 잠자리에서 이불을 걷어차겠지만 19세기는 원래 그런 낭만이 좀 있던 시대다.

그리고 그 동작에 맞추기라도 하듯 사방에서 다시 비명이 터졌다. 영국 해군이 저 궁전과 주위 민가에서 끌고 나온 여자들의 비명 소리였다.

암허스트 남작은 유색인종의 목숨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잘 몰랐고, 굳이 말한다면 알고 싶지도 않은 쪽이었다. 윌리엄 드루리 제독 역시 병사들에게 합당한 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국군의 장교들은 징집병에게 가장 좋은 동기 부여가 살인과 강간, 약탈의 쾌감이라는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이때의 영국 해군 수병 대부분은 인신매매와 완벽히 같은 과정을 거쳐 모였다. 이른바 프레스 갱(press gang)이다.

모병관이 건넨 술잔을 별생각 없이 죽 들이킨 뒤, 잔 바닥의 뜬금없는 실링 은화 보고 갸웃한 게 그들의 ‘입대 신청’이다. 그다음은 뒤통수에 몽둥이 맞고 질질 끌려오면 된다.

그나마 이건 졸리 타르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 분명히 돈 받았지 않은가 – 공정하고 모범적인 모병관의 얘기고, 대부분은 그냥 길 가는 사람 패서 끌어가는 게 보통이다.

채찍이 있으면 수병 노릇은 간신히 하게 만들 수 있다. 허나 가장 사나운 장교조차도 그들로 하여금 인간 노릇을 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애초에 영국인과 인성 함양이라는 것도 기괴스럽기 짝이 없는 조합이긴 하다.

영국군 장교들이 양심이 없지 지능이 없지는 않다. 약탈이라는 보상마저 없으면 탈영과 선상 반란이 들불처럼 일어나리라는 것쯤이야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다 보니 나폴레옹과는 좀 다른 이유로 영국군 역시 약탈을 적극 용인했고, 19세기의 영국 해군은 그 활동 범위만큼이나 넓은 지역 모두에서 목불인견의 대참사를 일으켰다.

21세기 제3세계의 군벌들이 소년병을 마약과 성노예로 길들이는 방식과 본질적으로는 같다. 하기야 당시 유럽 군대의 도덕적 수준이란 게 21세기의 ISIS와 자웅을 겨루다 보니 당연히 유지 방식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윌리엄 드루리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적당히 끝나면 병사들을 다시 집결시키게. 조선인들은 이걸 보면 중국인의 기세가 꺾일 것이라 하였지만, 거꾸로 이판사판이 될 수도 있어. 이 불길을 페킹(북경)에서 본다면, 저들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발악을 할지 모르니.”

존 메이틀랜드 소장이 경례를 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건륭제가 서양 선교사들의 지식을 얻어 베이징 서쪽에 건립한 세계구급의 호화로운 별장, 원명원(圓明園)은 역사보다 반세기나 일찍 영국군의 공격을 받아 불타게 되었다.

***

시준과 혁명막부의 예상과 다르게 영국군은 20배가 넘는 청군을 거의 정면에서 분쇄했다.

그 자세한 사정은 약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조순이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떨어뜨리는 동안 영국과 청이 수행한 전쟁은, 조선의 소꿉장난 같았던 내전과는 당연하게도 차원이 달랐다.

초반에는 청이 기세를 올렸다. 세상이 망할 때까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가경제의 대금고가 개방되었고 20만의 군세가 모였다. 두려워하고 싶어도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는 숫자였다.

부찰복장안이 생각한 대로 이 숫자는 그냥 저벅저벅 대열을 이루어 걸어가기만 해도 7천 명의 영국군을 그냥 바다로 밀어버릴 수 있었다. 이것이 섬나라 영국은 상상도 하지 못할 대륙의 기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꼬이는 일이 항상 그렇듯, 고북구제독 부찰복장안과 ‘사교도의 반란 당시 익히 군재를 증명하여’ 이번에도 도망간 황제 대신 북경 수비의 총책을 맡은 지친왕 면녕이 당연하다고 전제했던 사안에서 문제가 터졌다.

간단히 표현하면, 청군은 ‘그냥 저벅저벅 대열을 이루어 걸어가’지를 못했다.

일단 탁군에서 천진으로 진군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부찰복장안이 자기 돈 아니라고 닥치는 대로 퍼부어 메우고는 있었으나, 시간의 부족은 아무래도 큰 문제였다. 도무지 군대의 꼴을 갖추지 못한 청군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은 ‘임금노동자 20만 명’이었다.

청군은 마치 구멍 여러 개 뚫린 자루에 물을 담아 나르는 것과 비슷한 형국으로 사람, 장비, 돈을 질질 흘리며 천진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대륙적인 규모의 탈영병은 입맛을 다시다가 곧 주변의 민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 벌러 왔으니까.

자연스럽게도 직례 사람들은 분노하며 자경단을 조직하여 맞서 싸웠다. 영국군은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베이징 주변은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청의 민병대라면 또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관군보다 시민병이 강한 것은 아무래도 동아시아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2차에 걸친 아편전쟁 당시, 청군 자체는 영국군에게 행군 중의 돌부리만큼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다구 포대의 승리는 형식상 전투보다는 암살에 더 가깝다.

그러나 유럽 연합군의 미친 학살과 강간 때문에 일어선 민병대는 그 전쟁 중 유일무이하게 영국군을 패배시킬 뻔하며 그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함양하게 했다. 청군 따위가 얕봐도 되는 적이 아니다.

부찰복장안은 일단 자기끼리 싸우고 있는 백성과 탈영병을 무시하기로 했다.

“주방팔기와 만몽팔기가 선봉에 서라! 그리고 녹영의 보군은 양익을 지키며 병사들의 탈주를 막아! 영길리 놈들이 팔리교(八里橋)를 건너게 해서는 안 돼!”

그것은 적확한 지시였다. 사실 청은 이때까지만 해도 숫자 외의 몇 가지 유리한 점을 더 가지고 있었다.

우선 태평천국의 난이 아직 없었다. 홍수전이 망가뜨린 청과 그렇지 않은 청은 아예 다른 나라라고 해도 좋다. 그래서 청은 국력 대부분을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군은 2차 아편 전쟁 때와 달리 퍼커션 캡 머스킷도, 작렬 유산탄도 없으며 동맹이 되어줄 프랑스군도 없다.

그리고 청의 유리함은 거기까지였다.

영국 입장에서도 좋은 점이 있었다. 아편 전쟁을 늦추게 했던 원인, 동인도 회사 대몰락의 신호탄인 세포이 반란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당장 드루리 제독의 수병 중에서도 세포이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영국군과 함께 천진에서 신나는 전쟁범죄를 즐기는 중이었다.

살인, 약탈, 방화, 강간은 기꺼이 하지만 소기름과 돼지기름은 절대로 입에 못 넣겠다는 이들의 신성하기 짝이 없는 종교적 신념은 아직 침해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동인도 회사 또한 안정적으로 후방에서 영국군에게 보급을 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국력을 집중한다고는 하나, 영국군도 바보가 아니므로 청을 분산시킬 계획은 짜 두었다.

흑산도에 주둔하던 헨리 호프 함장을 지휘자로, 동인도 회사 배가 중심이 된 2선 해군이 현재 강남 여기저기를 타격 중이었다. 청은 사실상 강북의 전력으로만 영국을 상대해야 했다.

군인은 아니지만 암허스트 남작도 자기 위치에서 맹활약했다. 그는 러시아에 미친 듯이 선을 넣어 러시아와 음지에서 연계된 몽골 반란군을 충동질했다.

청이 다른 반란은 무시할 수 있을지언정 십전노인 건륭 황제조차 두려워했던 몽고 48부의 반란은 그럴 수 없다. 곧 그쪽으로도 군이 분산되었다.

양군은 그러한 준비를 갖추고 대치했다. 청군이 숫자도 많고 기세도 높았기 때문에 원래 역사와는 달리 팔리교를 지키는 게 아니라 그 앞으로 나와서 진을 쳤다.

물을 뒤에 두지 않는 게 병법의 기본이라는 사실쯤 청군 장수들도 안다. 하지만 대청의 장군들은 범용한 병법보다 한 가지를 더 알 정도로 지혜로웠다.

병법이 어쩌고 하며 감히 뒤로 물러나 북경성 코앞까지 오랑캐 군이 들이닥치게 했다가는 배수진보다 더한 위험이 불가피하다. 일선 장군들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

과거 천진의 영국군을 공격했다가 개망신만 당한 청군 기병 지휘관 살툭 칭링이 이번에야말로 설욕을 하리라 벼르며 호령했다.

“저 부끄러움도 모르는 야만인 오랑캐들에게 어찌 천벌이 내리지 않으리! 천자께서 지켜보신다! 양추 놈들을 전부 바다에 쓸어 담아 버려라!”

북이 울리고 깃발이 올라갔다. 2만 명에 달하는 만몽팔기와 주방팔기가 장려하게 돌진을 시작했다. 어쨌든 청군의 눈에는 돌격처럼 보였다.

천하의 파워풀한 드루리 제독이라도 지금은 약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로켓으로 기세를 꺾어라. 그다음엔 포격이다! 후퇴는 생각하지 마. 저기만 건너면 바로 중국의 왕성이다. 너희가 바라는 여자와 금은보화가 바로 지척에 있다! 착검!”

영국 해군 수병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소켓형 총검을 꺼냈다. 아무래도 이들은 유럽 기준에서 군기도 2류, 장비도 2류인지라 절도 있게 꽂는다기보다 낑낑대며 돌리는 꼴이긴 했다.

그러나 다음 장면은 그렇게 웃기지 않았다. 시준이 과거 근왕군을 일격에 절멸시켰던 콩그리브 로켓이 그때보다 훨씬 대규모로 발사되었다.

문종 이향이 살아나서 이 광경을 보았다면 신기전 진화의 궁극적 표상 같은 이 물건을 참 부러워했을 것이다.

말이란 본래 겁이 많은 동물이다. 곧 미쳐버린 군마가 주인을 내팽개치고 뒤따라오는 대열이 거기 걸려 엎드러지며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으아아악!”

창검과 활로 무장한 팔기군은 다른 수도 없었다. 자욱한 로켓의 연기를 뚫고 뛰쳐나온 청군은 돌진이라기보다 대피 비슷한 꼴로 영국군 앞에 나타났고, 영국군은 그들에게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다. 청이 자랑하는 팔기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영국군과 청군 양쪽 모두 인생에서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은 범죄자 군단이라는 건 비슷하다. 그러나 영국군은 청군에 비해 싸움을 잘한다는 점이 차이였다.

팔기 역시 평생 무예로 먹고사는 집단이라고 말할 자가 있을지 모른다. 서류상 사실이기도 하다.

허나 나폴레옹이 언명했듯, 맘루크 1명이 유럽 병사 3명을 해치울 수는 있지만 맘루크 300명이 유럽 병사 100명을 이기지는 못한다. 군대는 조직이며, 숫자가 많아지면 개인의 무예는 별로 의미가 없다.

게다가 지금의 팔기는 맘루크에 비교하기도 부끄럽다. 반세기 뒤 2차 아편 전쟁 당시의, 매끄럽게 관리한 긴 손톱이 상할까 봐 병장기는 절대 잡지 않는 불살군단 팔기와 비교해서 약간 나을 뿐이었다.

드루리 제독은 천성적인 군인이었다. 규모가 얼마 안 돼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고 있던 드루리는 면밀하게 기세의 흐름을 포착했다.

“돌격! 그리고 야포는 뒤의 보병대를 타격해!”

영국 수병들이 뛰쳐나가 우왕좌왕하는 팔기를 쑤셔대는 동안, 8파운드 야포 사격이 쏟아졌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드루리 제독은 적당히 심한 타격을 주고 물러날 생각이었다.

천진이나, 아니면 다른 가까운 마을까지 후퇴해서 기병과 대규모 보병이 전개하기 힘든 지형을 선택해야 했다. 눈앞의 정신 나간 것 같은 떼거리[Swarm]는 그의 파워풀함으로도 정면 대결이 꺼려지는 규모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펼쳐진 광경은 드루리의 계획을 뿌리부터 뒤엎었다.

나쁜 쪽의 반전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드루리 제독은 망원경을 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저것들 뭐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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