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38. 로열 럼블(Royal Rumble)(1)
상대가 무례에 가까운 장고를 용납하는 너그러운 성미라 하여도, 바둑에는 언젠가 오는 착수의 시간이 있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촉급하게 변하는 사세는 김조순으로 하여금 오래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김조순은 계획대로 시준은 접어둔 채 북한산성에 대한 총공격을 계속하여 재촉했다. 어쨌든 의병 이름 달고 왔으니만큼, 평안도에서 시준이 보낸 사람들도 거기에 포함되게 되었다.
정찰총국 요원들은 충실하게 의병을 연기했다. 자기들이 병사로서 함량 미달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인식시켜 주었다는 의미다.
김조순 역시 총 쏴 본 적도 없다며 해맑게 웃는 백여 명을 굳이 탄하지는 않았다. 시준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가 보낸 사람을 괜히 성벽에 자살 돌격시켜 시준의 원한을 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전쟁보다 정치와 경제에 활용해야 했다. 그래서 의병들은 전투가 아닌 보급, 그러니까 서울 오죽당과 토벌군의 연계에 투입되어 서울 상권을 원활하게 장악했다.
인력이 부족하여 경상을 통한 간접 영향력 행사밖에 하지 못하던 오죽당과 박득출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강철군주 이공이 검계를 토벌하고 염라태수 김이익이 남은 깡패들마저 토사구팽해 버려 무주공산이 되어 버린 서울 암흑가는 이제 오죽당이 완전히 차지하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건 좋은 방향의 부작용 정도다. 흉년과 전쟁의 장기적 영향 때문에 이게 도읍인지 폐촌인지 모르게 되어가고 있는 서울 따위를 장악하려고 시준이 귀한 요원들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
그로부터 얼마 뒤, 될 대로 돼라 식의 전투를 반복하던 총융청과 토벌군 중 누가 더 성의 없었는지 판명이 났다.
북한산성이 떨어진 것이다.
피난민 같은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던 총융청 군사의 사이로 지친 나그네 같은 토벌군이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물론 그 뒤의 상황까지 맥없지는 않았다.
김조순으로서는 반역에 대한 경고는 물론이거니와, 대량학살의 의혹을 받고 있는 평난도원수 이득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비슷한 전례를 하나 더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북한산성은 남한산성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
남한산성 때와 달리 지금은 ‘올바른 종통이 회복’ 되었기 때문에 토벌군은 왕명이란 간판까지 달았다. 장졸들은 죄책감을 전부 군주에게 떠밀고 마음껏 칼을 휘둘렀다. 원래 군주가 하는 역할이 그런 것이긴 하다.
“어명이다! 역적을 살려두지 마라!”
허나 남한산성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대장은 재빠르게 튀었다. 이 북한산성의 총융청을 지휘하던 총융사 이당은 분루를 삼키며 장돌뱅이로 변장한 다음 송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애초에 남한산성이 떨어진 시점에서 북한산성도 오래 못 버틸 것쯤 자명했기 때문에 그의 계획은 빈틈없었고 실행은 신속했다. 총융청의 어떤 인간도 그가 도망칠 줄은 알지 못했다.
이당은, 그와 마찬가지로 강철군주 이공 최후의 삼대장이었던 어영대장 이해우나 수어사 한용탁보다도 한 수 위였다.
그는 바로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岹, 선조의 친부)의 자손으로서, 임진년의 의주대로 최속전설 선조와 조상을 공유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똑같이 덕흥대원군의 자손인 인조의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만큼 역사의 전범도 배웠다.
힘 빠진 조정 토벌군 따위가 이당을 잡을 수 있을 리 없으니, 이로써 선비에게 가문의 근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이당이 무슨 무협지처럼 손쉽게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다.
관군의 포위가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 역시 무슨 절세무공을 익히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간신히 데리고 나올 수 있었던 사람은 군관 2명뿐. 그나마 그중 1명은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미끼로 갈라졌다가 죽었고, 1명은 야밤에 이당의 전대(纏帶)를 들고 튀어 버렸다.
이당은 아무리 무관이라도 양반으로서 평생 하지 않은 고생 끝에 송파에 다다랐다. 그는 예전 같으면 한 마장 밖에서부터 호통 쳐 흩어버렸을 냄새나고 천한 장사꾼들 사이에서 다리를 주무르며 이를 악물었다.
“내 이 굴욕은 반드시……!”
이당의 꼴은 형편없었다. 사방을 흘겨보던 이당은 자기 입성이며 행색이 주위의 하민들과 별다를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다.
변장이 너무 탁월한 데다 며칠간의 풍파가 그 변장의 진실성을 더해주어, 나루세[津稅] 뜯으러 온 이속(吏屬) 또한 도무지 그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평생 그따위 모리배들하고 연관이 있을 리가 없었던 이당 또한 눈뜬장님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속이 내미는 손바닥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자 이속은 내밀었던 손을 그대로 들어 뺨을 올려붙였다. 짝! 대체 몇십 년 만에 맞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호쾌한 따귀였다.
“요 청맹과니야, 이제 이 어른의 손맛을 보니 정신이 좀 나느냐? 어딜 구렁이 기어가듯 빠져나가려 들어?”
이당은 정말 자제하지 못할 뻔했다. 그때 옆에 슬그머니 나타난 사내 한 명이 이당의 팔을 붙들지 않았으면 그는 송파나루 한가운데에서 칼춤을 추다가 그대로 붙들려 갔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이당의 발을 콱 밟았다. 그러고는 이속의 앞에서 허리를 푹 숙였다.
“나리. 이 중늙은이는 저와 작반(作伴, 동행)하여 가던 짐꾼이올시다. 본래 농사꾼으로 흉년 되어 무작정 봇짐 지고 나선 참이라, 워낙 옹춘마니가 되어 가지구 아직 물정을 잘 모릅니다요. 한 번 봐주십쇼.”
그러면서 몇 푼을 이속의 소매에 쑤셔 넣어주니 얘기는 끝났다. 이당은 자기를 흘겨보고 떠나는 저 아전 놈을 단칼에 쳐 죽이고 싶었지만 우선 자기를 도와준 사람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그 사람은 이당을 나루터 소나무 그늘 아래로 끌고 갔다. 그러고는 한가롭게 길 묻는 행인처럼 말했다.
“노형(老兄)은 새재를 넘는 길이시지요?”
경상도로 가느냐는 뜻. 이당은 대답하지 않은 채 긴장한 표정으로 눈앞의 인간을 마주 보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장사치는 절대 아니었다.
그자는 잠깐 기다리다가, 도무지 박자 못 맞추는 이당을 안심시키듯 낮게 말했다.
“마음을 놓으십시오. 저는 지금 평양에 계신 주상 전하와, 저 간악한 김조순에게 해를 입은 수경포도장(이요헌)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이름을 이창록이라 하는 포도군관입지요.”
과거 김조순이 상여에 타서 훈련도감 본영으로 탈출할 때 그것을 막지 못한 바로 그 포도군관 이창록이었다. 그러나 이창록은 모욕에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지 않았다.
이당 역시 그런 일보다는 이창록이 밝힌 신분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이창록의 손을 덥석 잡았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군! 본관은…….”
“쉿. 더 말씀하지 마십시오. 대충 짐작할 만하니까요. 옛 어영대장(이해우)과 수어사(한용탁)도 이미 영남으로 몸을 피하셨다 합니다. 저도 그곳에 의탁하러 가는 길이니, 지금은 조용히 소인을 따라오십시오.”
김조순이 목을 내걸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 그 두 사람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과연 강철군주 이공의 삼대장다웠다.
이당 역시 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둘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조정의 추포령보다 빠르게 내달려 남으로 조령(鳥嶺, 새재)을 넘어야 했다.
***
이 시대, 세계의 군사사상과 전략전술은 단 한 명의 거인에 의해 완전히 새로 쓰이고 있었다.
그게 미래인인 시준이라면 참 바람직한 이세계 생활이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대프랑스 제국 황제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의 진가는 전장에서의 눈부신 지휘만이 아니었다. 그의 재능은 사법과 행정 등 국가경영 전반에 미쳐 있었으며 당연히 전술보다 더 중요한 전략에서도 나폴레옹은 여러 가지 큰 족적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군의 약탈을 적극 체계화하고 장려하는 일이다. 나폴레옹은 몽상가가 아니었으며, 지금 시대의 문명 수준에서 빠른 기동성과 원활한 보급을 동시에 보장하는 길은 물자의 현지 조달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나폴레옹이 누군지 모르는 조선 사람들도 군대의 보급품을 제때 지원해 줄 수 없었던 것은 프랑스군과 똑같았다. 다만 조선군의 경우 보급이 안 되는 물종의 범위가 프랑스군보다 넓어서 약탈도 더 광범위해야 했다는 차이는 있다.
북한산성에서는 무지스러운 노략질과 학살이 벌어졌다. 그리고 토벌군의 지휘관들은 올해 겨울쯤 모스크바에서 나폴레옹이 마주하게 될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지휘관들이 병사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평난도원수 이득제는 도통 군령이 잇닿지 않는 꼴에 질겁했다. 남한산성 때와 달리 여기에는 그의 직속병력인 훈련도감이 그리 많지 않다.
훈련도감은 김조순의 정권 장악을 위해 (정치깡패가 없어진) 서울에 주로 배치되었고 여기에는 경기도와 함경도의 토병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득제는 휘하 병사들에 대해 장악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조선군은 원래 지휘관 없이도 알아서 잘하는 군대였다.
“어차피 조정에 몰수될 재산이다. 나중에 수고한 우리에게 포상으로 내려 줄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가지면 안 될 게 무어냐?”
“자네 말이 백번 옳네그려. 어이, 저기 저 산 아랫마을 녀석들이 왠지 이쪽 보고 수군수군하는 것이 역적 같지 않나?”
“작당모의는 바로 역적의 일! 자네 눈이 매우 날카롭네. 얘들아, 가자!”
이미 북한산성은 삽시간에 털려서 먹을 것도 없었기에 그들은 활동 범위를 넓혔다. 총융청의 약탈을 간신히 피한 북한산성 주변 민가는 다시 한번 철저하게 털리게 되었다.
“과, 관군이 지금 백성에게 무엇 하는 짓이오!”
“관군이 도달했는데 즉각 나와 향을 사르고 쌀을 바치지 않았으니 네놈들이 바로 역적이다!”
지방군 군관들은 병사를 통제할 의욕이 없거나, 심지어 좀 반대 방향으로 의욕을 발휘했다. 심지어 약탈품을 서로 가로채기 위해 부대 단위로 나뉘어서 총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약탈에 취한 조선군이 한양도성까지 습격할 태세였다. 그리고 지금 전투 의욕이 최고조에 달한 조선군이라면 한양을 함락시키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이득제는 천지신명에 맹세코 지금보다 용맹한 조선군과 능란한 지휘관들을 본 적이 없었다.
조선의 가장 단단하다는 두 산성을 공략한, 현시대 최고의 명장 이득제는 어떤 원정보다도 더 가혹하고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조선군을 다잡아야 했다.
전투라는 말은 수사적 비유가 아니라 사실적 표현이다.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된 불공정한 군율 적용은 반항과 죽기살기식 발악만을 불러왔다.
조선군 전투 역량의 전성기는 언제였는가? 여진과 왜인의 공포 세종대왕 때? 망국 직전에서 근성으로 부활한 임진왜란 때?
아니다. 바로 지금이었다. 평정된 줄 알았던 북한산 일대는 색다른 전투의 소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야습, 교란, 매복, 첩자 등 오만가지 화려한 병법이 펼쳐졌다. 장수는 호령하고 군교는 깃발을 흔들며 병사들은 총칼을 잡은 채 날아오르듯 진격했다. 그들은 옆 진채의 울짱을 부수고 뒤쪽의 치중대를 둘러엎었다.
조선군의 군기가 극단적으로 망가졌다고만 표현할 수는 없다. 세상 다른 일이 그렇듯이 지금의 상황도 벌어질 만하니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경기도다. 왕이 있는 한양도성에서 하루 거리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더욱 기강이 엄정해야 할 상황이나, 왕법(王法)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전 왕은 한양도성에 공성계(空城計)를 펼치고 엉뚱한 평양성을 공격한 다음 여진족 사위 되려다 붙잡혀 다리가 잘렸다. 선전선동국과 그 외주를 받은 송상에 의해 이 사실은 이미 조선 팔도에 다 퍼진 뒤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 폐주를 내쫓고 즉위한 현 왕은 좀 멀쩡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금상 이품이 김조순의 꼭두각시라는 것은 선전선동국보다 당장 한양에 있던 군사들이 더 잘 알았다.
특히 훈련도감은 그 정변 자체에 직접 관여한 자들이다. 왕법의 위엄 따위 눈을 씻고 찾은들 있을 리가 없었다.
전제 군주국으로서의 조선은 폐주 이공이 도성을 버린 그 순간 사실상 끝났다.
따라서 그런 사소한 것보다는, 이곳이 도성 지척이고 내륙이라 조선군이 왕보다 두려워하는 외국군 – 특히 영길리 양귀자들이 여기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다시 말해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사세에서 엉뚱하게 군 전체의 기강이나 국가의 대의를 걱정하는 일은 쓸모없을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물색 모르는 우국지사는 잘못하면 재물 얻을 기회를 동료들에게 다 뺏기고 멍청히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갈 뿐이다.
군관을 포함한다 해도 조선군 대부분에게 있어 군인이란 건 그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직업 – 어물전 장수라거나, 날품팔이 짐꾼이라거나 –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게다가 군인이란 그중 수익성 면에서 최악이다. 흉년이라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안 할 수만 있다면 안 했을 것이다.
얼간이 군주와 인형놀이에 급급한 권신밖에 없는 지금 그들이 돈 벌 기회를 놓칠 리는 없었다.
시준도 지금까지의 두 번째 인생에서 숱하게 느낀 것이지만, 조선 사람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그들은 가장 합리적인 길을 재빠르게 택했다.
***
아랫것들이야 그렇게 각자도생하면 그만이라 하여도, 그 난장판을 제어해야 하는 윗사람들은 고민이 많았다.
특히 멀리 나온 함경도 남북 병마절도사 이신경과 김희는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둘 다 부하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안다. 그들의 고민은 바치는 떡고물을 먹고 입을 다물지, 아니면 부하들을 꾸짖어 기강을 세우다가 야밤에 칼 맞아 장렬히 순사할지의 여부였다.
그나마 망설이기라도 하니, 이 두 사람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벼슬아치임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고관에게 합당한 존경을 담아 ‘평안도 의병’들이 밤에 두 사람을 방문하는 것도 신기하지 않은 일이었다.
정찰총국 요원들은 영락없는 잡부 몰골을 하고 황망한 표정을 내보인 채 절도사 앞에 엎드렸다.
“영감. 소인들이 짐꾼 노릇 하다가 얻어듣기로, 속오군 삼백여 명이 작변하고자 쑥덕대고 있소이다. 표하병(標下兵)이나 친기위(親騎衛)보다 재물 떨어지는 게 없다 하여 앙심을 품고 오늘 대장의 막사를 범할 작정이라 하오이다!”
“게다가 이 일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경상도로 진격한다는 소문이 이미 퍼져, 병사들의 불만은 예사롭지 않소이다!”
“저희는 애초에 먼 고을 사람으로서, 함경도나 서울에 친한 사람이 없고 충의 하나만 보고 여기 온 자들이기로 특히 고변해 드리는 것입니다.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표하병과 친기위는 모두 병마절도사가 직접 거느리거나 뽑는 정예병이다. 신분도 높고, 무장도 좋으며 그 우위는 이 약탈 행렬에서도 이어졌다.
그들이 가진 정보와 힘은 다른 조선군에게 돈을 갈취하는 데에도 적당했다. 그런 만큼 속오군이 불만 가질 만도 했다.
의병들이 고해바친 일이 이처럼 개연성 충실하기는 했지만, 두 병마절도사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의병의 말을 듣자마자 질겁하여 달아나기보다 일단 급히 밖으로 나가 상황을 좀 알아보고자 했다.
그러니까, 그들이 유막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뒤통수에 몽둥이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그랬을 것이라는 의미다.
정찰총국원들은 유막에 있던 절도사의 측근을 한 사람씩 맡아 찔러 죽였다. 평소대로라면 이 뒤는 몰려든 주변 병사들에게 참살당하는 결말이겠지만, 지금 조선군은 통제가 전혀 되지 않는 판국이라 절도사가 죽었든 탈영했든 관심 갖는 자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절도사를 업거나 말에 태워서 진채를 벗어났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군대고, 지금은 밤이니만큼 가로막는 군사가 하나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병들은 만나는 조선군마다 혼절한 절도사를 내보이며 떠들었다.
“절도사 영감께서 급환이 나셔서 가료(加療)하셔야 되오. 어서 비키지 못할까!”
“너희는 평안도 놈들이 아니냐. 그런데 급환이라고?”
“흥, 평안도 놈이라고 하면 다인가. 똑같은 변경 족속 주제에 함경도 놈들은 또 얼마나 잘났느냐? 너희가 표하기(직속군)으로서 절도사를 제대로 모시지 않으니 우리라도 나서야지 않겠느냐. 지금 빨리 서울에서 좋은 의원 찾아 푹 쉬셔야 하는데 이리 꾸물거릴 텐가! 절대로 경상도에 끌려갈까 봐 집에 가는 게 아니라니까! 혹시 재하자(在下者, 아랫사람)로서 주제넘게 윗사람을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거, 누가 뭐랬나. 높으신 어른 앞에 두고 큰소리치지 말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결단코 탈영이 아니야!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실 걸세! 괜히 위에 시끄럽게 고해바치지 말고 단단히 지키고 있어!”
표하병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헛기침을 했다.
“어흠. 장수의 신변은 군영의 중대사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도 좀 모여서 뒷일을 의논해 보지. 자네들은 절도사 영감을 잘 모시게.”
여길 떠나면 동료가 자기 재물 훔쳐갈까 봐 모른 체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 일대에는 이제 더 털 동네도 안 남았다.
대부분의 함경도 군사들은 이 시점에서 오래된 고사를 떠올렸다.
아파서 집에 간 장수는 원래 돌아오지 않는 게 조선군의 전통이다. 저 임진란 때의 배설(裵楔) 이래 그 정도는 군관들도 다 안다. 그때 배설의 상관이 이순신만 아니었어도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이다.
애초에 함경도 군세 대부분이 붕 뜬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민란으로 치안 부재 상태가 된 고향이 걱정되어서였다.
그리고 김조순 등 권력층과 접점이 있다는 의병들의 말을 듣자 하니 이대로 군을 경상도로 돌린다는 미친 계획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모든 ‘의병’이 절도사 모시는 데에만 동원된 것은 아니었다. 남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절도사의 ‘가료’ 소식을 알리며 쑤석거리자, 함경도 군세의 거의 대부분은 지휘관을 끝까지 따르는 충정을 보이기로 결심했다.
갑자기 함경도 군대 사이에서 미친 듯한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된 병사들은 약탈한 물건을 짊어진 채 질서정연하고도 신속하게 무리를 지어 북쪽으로 탈주했다.
“우린 달아나는 게 아니야!”
“장수가 북쪽으로 가셨으니 그 뒤를 따르는 것뿐일세!”
“왜 북으로 갔냐고? 높으신 분들 일을 우리가 어찌 알아. 오라면 오는 거지!”
당연히 평난도원수 이득제가 막아보려 했지만, 함경도 군세는 지금 이득제 휘하 군세의 반이 넘는다. 훈련도감 군대 대부분은 함경도 지방군의 무단 회군을 막으라는 이득제의 명령을 사실상 거부하고 미적거렸다.
이득제는 지금이 자기 경력에서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창 잘나가고 있는 출세 가도에 흠집 남기기 싫었고, 그래서 최대한 자기 선에서 해결해 보려 했다.
그렇게 흔한 직장인의 삽질을 반복한 이득제는 그 작업의 끝에서 자신이 상당히 외로워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했다.
탈주와 전투로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거의 5천 명에 달하던 함경도 군세 중 약 8할이 단 며칠 만에 소멸했다.
이득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서울에 전령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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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오늘은 간단히 지나갔는데, 또 나올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선 시대의 나루터나 객주, 여각에서는 많은 상인들이 모여 거래를 했습니다. 송파나루도 그 대표적인 곳 중 하나죠. 그리고 여기를 '관리'하는 이속들은 배 탈 때 세금, 내릴 때 세금, 나루터에 기웃거려도 세금, 거래를 성사해도 세금, 물건 떼 와도 세금... 하는 식으로 걸음 뗄 때마다 수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큰 규모를 기반으로 윗선에서 뇌물 주고 협의하여, 그런 부대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큰 상단만이 성장이 가능했던 겁니다. 흔히 역사책에 나오는 '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은, 개인이 상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2. 옹춘마니란 소견머리가 좁고 성격이 꼬부라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3. 배설은 사실 상관이 이순신이 아니었어도 나중에 적발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은 군대가 약했던 거지 군대를 감시하는 체계가 약한 건 아니었거든요. 배설은 임란 후 조사에서 잡혀 처형되며, 또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재조사되어 사면 후 관직이 추증됩니다. 작중 서술은 도망가고 싶었던 군사들의 합리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