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22화 (122/284)

122화

(외전) 주석 동지의 혁명적인 하루(2)

이 계절에 내년 예산을 한창 확정하는 것은 백발백중회만이 아니다. 시준은 영유현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중앙인민회의에 보고될 내년 예산안을 검토해야 했다.

‘내가 옛날에 예산자료 만들어서 국회에 보고할 때는 이걸 다 누가 보는 건가 싶었는데, 이제는 다른 생각이 드네. 이걸 다 누가 쓰는 거지?’

총괄서결국장 정약전의 지도와 선전선동국장 조제프 푸셰의 참견 하에, 혁명막부는 가경 17년(1812년)의 예산안을 완성했다.

혁명막부의 주석인 시준이 승인하기만 하면 이는 인민의 대표자 중앙인민회의 앞에 엄숙히 제출될 것이다.

그리고 시준은 거기에서 행정부 수반인 주석으로서 예산안을 보고 및 설명하며, 또한 그게 끝나면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착석해 이 예산안의 승인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렇게 만인 앞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쳐야 하는 시준은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그야 수치를 안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새삼 생각해 보니 21세기 북쪽의 누군가는 정말 견고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스탈린(강철 남자) 역시 걔 별명이 왜 스탈린인지 알 만했다. 낯짝이 강철이라 그런 것이 분명하다.

시준은 조심조심 책장을 넘겼다. 급하게 찍어내는 종이가 너무 하품(下品)이어서 조금만 잘못해도 찢어지거나 글씨가 상했다.

‘그래도 정약전이 생각보다 유능해서 다행이야. 진짜 각 부서마다 돌아다니면서 예산안 작성 실무강의라도 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푸셰는 프랑스식 ‘선진적’ 재무보고서의 방안을 적극 도입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200년은 선진적인 현대 대한민국의 예결산 체계를 정확히 알고 있던 전직 주무관 시준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혁명막부 문서체제의 기초는 서상이요, 서상의 기초는 시준이 만들어 놓았던 만상 문서체계다.

시준뿐만 아니라 막부와 중앙인민회의 의원들 역시 시준의 체계 쪽이 더 편했다. 그것을 굉장히 빠르게 익힌 정약전의 활약은 큰 도움이 되었다.

정약전은 필요 예산의 한 20배쯤이 적혀 있는 예산안에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예산안을 전부 다 잘라버렸다.

초계(견적)에 대한 국장의 질문에 당장 대답하지 못하는 타부서 담당자들은 그간 성질 많이 망가진 정약전의 혁명적 집기 투척을 경험해야 했다.

그 솜씨는 지금 비슷하게 조선 조정을 통괄하는 처지인 김조순과도 자웅을 겨뤄 볼 만했다.

그리고 정약전은 그를 총괄서결국장으로 승인한 정치국 위원들의 생각처럼 공정한 사람이었다. 친동생인 외사통호국장 정약용마저도 얻어맞은 머리를 문지르며 나와 푸념해야만 했다.

“형님께서 예전에는 저토록 우애를 모르시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이리되셨단 말인가?”

조슈 번에 배를 좀 보내야겠다며 혁명해군 1함대에 버금가는 함대 구매 비용을 요구했으니 맞아도 싸다는 점은 혁명의 장량 정약용에게도 고려되지 않았다. 우회적으로 정약용에게 줄 대어서 예산 따보려 했던 다른 국장들도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정약전의 의지는 꼭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

각 부서는 얌전히 예산안을 감축하는 대신, 어떻게든 이 돈이 필요하다고 우기기 위한 별표와 자료를 긁어모았다(시준은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예산안의 내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1세기 서식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최대한 축소 도입했는데도, 한 부서에 최소 책 10권이 나오는 예산안은 결코 만만한 양이 아니었다.

시준이 보고 있는 것은 정약전이 핵심만 정리한 총괄적 요약본인데도 머리가 아팠다.

시준은 여러 군데에서 줄 죽죽 그어 놓고 숫자 고친 흔적을 발견하고 그냥 보고서를 덮었다. 어차피 그는 전체적인 예산 총액과 몇 가지 중점 사업만 알면 된다.

‘계산은…… 뭐 알아서 잘 했겠지. 포기하자. 이걸 어떻게 읽겠냐.’

원래 예산안에서 숫자 틀리는 건 현대라도 피할 수 없는 사고이고, 종이가 현대처럼 넉넉하지 않으니 별수는 없다. 시준은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아, 커피 먹고 싶다. 졸려.”

이세계로 떨어진 현대인의 흔한 불가능성 푸념은 아니다. 실제로 영국인이 들여온 커피가 있으니까.

에스프레소 머신까지는 없는지라 아메리카노 따윈 아직 아메리카 사람도 모르지만 어차피 시준 같은 직장인에게 커피는 기호식품이나 음료가 아니다. 포션이다.

시준은 이러한 임무를 전담하는 급양과장, 그러니까 기랑을 부르려다가 문득 오늘 휴가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시 닫았다.

굳이 커피가 먹고 싶다면 급양과장까지 호출하지 않아도 주위 아무나 시키면 된다.

허나 견실한 공무원 출신으로서 휴가를 존중하는 시준의 자기 검열관이 그것을 막았다. 담당자가 휴가 가면 업무는 자동적으로 최소화되는 것이 그 바닥 규칙이다.

그래서 시준은 이럴 때의 많은 공무원처럼, 자기도 기필코 휴가 가리라 다짐하며 커피에 대한 욕구를 참았다.

‘그래. 일주일에 이틀은커녕 하루도 아니고 열흘에 한 번 쉬는 조선 체제에서 휴가 정도는 보장해 줘야지. 가만, 저녁에 영국인들이 온다고 했지? 걔네는 예배 때문에 최소한 일요일은 쉬는데 우리도 교회 좀 세워 볼까? 그 김에 나도 좀 쉬고.’

영국인들은 프랑스와 다르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절대로 조선에 종교를 들여오지 않고 있었다.

시준은 어차피 신의 없는 거 온 세상이 다 숙지하고 있는 영국인들이 왜 이런 부분에서만 약속을 잘 지키는지 원망스러웠다.

예산안 검토 대신 어떻게든 농땡이 칠 생각만 하는 동안, 시준의 마차는 영유현에 도착했다.

시준은 농상진흥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상조농장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았다. 집단농장에 국가의 식량생산을 맡겼던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소련을 보면 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직 집단농장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아직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 첫째요, 두 번째는 상조농장이 기민들에 대한 복지사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소련 집단농장은 농민들이 들어가기 싫어서 몸부림을 치고 가축을 미리 도살해 먹어치우는 등 온갖 막장 행태가 나타났으나, ‘흉년 들어도 굶어 죽지 않게 해 주겠다는데 싫으면 말고’ 식의 혁명막부 상조농장은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사람들이 몰렸다. 원래 밀당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어차피 상조농장이 식량 생산을 담당하라고 만든 데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준이 마약 농장에 상 주러 가는 이유도, 그들이 정말 일심분발하여 혁명의 총궐기정신으로 생산의 동음을 높이 울렸다기보다는 그쪽이 상조농장의 중점 사업이라는 이유가 더 크다.

사실 대마 농장이나 양귀비 농장의 준비 태세가 더 빠르고 확실하게 완료될 수 있었던 사정은 간단하다. 그 두 농작물이 상대적으로 기르기 쉬웠으니까.

양귀비는 물이 많이 들지 않아 이 장기 가뭄에 더 이상 적당할 수 없는 식물이며, 대마도 잡초가 거의 자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재배법 또한 농사직설 편찬 시절이나 현대나 근본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정도로 단순하다.

복잡한 것은 그 뒤의 ‘처리’인데, 그건 어차피 상조농장원이 알 필요 없다.

그쪽 일은 임상옥이나 이강회를 비롯한 몇몇 핵심 간부들만이 소수의 오죽당 시절 고참 인원만 써서 행하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농장원의 노고를 무시할 수는 없다. 지금 주석이 온다고 흥분해서 아나톨리아 사람들처럼 허공에 총을 빵빵 쏘아대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 앞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 반드시 총기 규제를 실현하고 말리라.’

하지만 중앙인민회의에 대표까지 보낸(기랑은 아니다) 백발백중회의 영향력 때문에 그건 요원해 보였다.

이번에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이 아니라 총알이다!’는 그들의 주장대로 미리 주석결사옹위대가 총알을 거둬 놓는 정도가 한계였다.

어쨌든 시준은 서유구가 말한 대로 영유군 인민위원회의 농상위원회 위원들을 모은 다음, 제12화훼농장과 제3마포농장의 여장(閭長)에게 공식적으로 표창을 수여했다.

‘주석 동지의 한 말씀’을 바라는 상조농장원 앞에서 시준은 간단히 연설했다.

“혁명은 오로지 붉은 깃발을 들고 병사로서 진군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면한 혁명의 과업에 있어서 가장 앞장에 나서는 사안은 바로 내년의 농사차비를 튼실하게 해 두는 것입니다.”

대놓고 어딘가의 공화국을 베낀 듯한 연설은, 그 뻔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주석이 말했기 때문에 갈채를 받았다.

“이 상조농장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다름 아닌 여기 있는 모든 위원과 농장원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혁명의 소하(蕭何)이고 모든 인민들의 어버이입니다. 모두가 상조농장을 부러워하며 다투어 입주하게 하여 줍시다!”

시준의 예상과는 다르게 농장원들은 뜨거운 반응을 돌려주었다. 시준의 얼굴도 뜨거워졌다. 아직 손톱만 한 양심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시준은 집단농장에 항상 부족한 동기부여를 조금 하기 위해 작은 포상을 나누어주도록 지시하고 다른 곳에 들렀다.

마약이 메인이긴 하지만 상조농장이 꼭 그것만 기르는 것은 아니다. (값이 아니라) 무게로 따지면 의주감자가 가장 주력 품목이고, 내년부터 계획되어 있는 옥수수 농사 역시 영국에서 들여온 종자와 농법으로 농상진흥국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것이었다.

“옥수수만이 아니라 이야기했던 콩과 호박도 모두 알차게 준비되어 있군요. 과연 국장 동지께서 세밀하시오이다. 뭔가 힘든 점은 없습니까?”

옥수수와 콩과 호박을 같이 길러 옥수수의 지력 고갈 및 잡초 문제를 보충하는 세 자매[Three Sisters] 농법은 이미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도 전해진 지 오래였다.

다만 이건 노동력을 아끼는 방법이지 식량의 생산 절대량이 우월한 방법은 아니라서(만약 옥수수가 그렇게 좋았다면 북한이 구걸 다닐 필요가 없었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고 소도 부족한 상조농장에서 시험적으로 도입되고 있었다.

당연히 따라왔던 농상진흥국장 이강회가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주석 동지. 어려운 점이라면, 이제 곧 있으면 정월이니 의주감자며 다른 각종 종자가 얼어 터지거나 썩지 않도록 잘 단속하는 게 큰일이지요. 그리고 마포농장(대마 농장)에서는 밭을 깊이 갈아야 하는데 소가 좀…….”

“창고 바닥을 영길리회(英吉利灰, 시멘트)로 돋운 다음 튼튼한 벽돌로 쌓아 쥐나 벌레가 틈입하지 못하게 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소는 어떻게든 명년 봄까지 마련해 보겠소.”

이강회를 비롯한 농상진흥국 국원들은 옆에서 작은 공책을 들고 시준의 말을 연필로 받아 적었다. 서양인들이 가르쳐 준 스케치 기법으로 시준의 모습을 능숙히 그려내는 사람도 있었다.

시준은 어딘가의 현지지도 같은 그 광경에 다시 속이 쓰렸다.

조제프 푸셰가 요즘 잡지 겸 신문 <월간 대혁명(月刊大革命)>을 발행하여 선전선동국의 예산을 충당함과 동시에 막부의 치적을 선전하고 있는데, 여기에 또 시준의 그림이 지금처럼 실려 전파될 것이 분명했다.

<중앙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며 혁명정부의 수반이며 혁명군의 최고사령관인 정시준 주석 동지는 오늘 영유현을 시찰하고 선진 농법을 지도하여 인민의 농업 소출을 결정적으로 앙양(昂揚)할 토대 마련에 기여하였다!>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웠다. 시준은 그런 상상을 떨쳐내기 위해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정약용은 외사통호국장으로 바쁜 와중에도 성실하게 시간을 내어 기랑을 지도했다. 기랑이 주석당에 근무하면서 두 사람이 만나기도 편해졌다.

시준은 이제 제자가 아니거니와, 다른 제자들도 각자 혁명막부의 일익을 맡고 있어 더 이상 정약용에게 매일 가르침을 받기 힘들었다.

게다가 정약용의 자식들은 원래 역사대로 공부엔 별 관심이 없었다. 혁명군을 한다느니 서숙부(정약횡) 따라 인민의원(人民醫院) 들어가 일 배운다느니 하며 아버지 속을 썩이고 있었다.

그래서 정약용의 오갈 데 없는 교수력은 기랑에게 발휘되었다.

그 가르침이 헛되지 않아, 기랑은 백발백중회의 그 누구도 회장이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보고서를 진짜로 읽을 수 있었다.

글 자체는 기랑 역시 의주에서 감자 캐던 시절부터 알았다. 허나 단지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그걸 문해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기랑은 새로운 지식과 현상을 맞추어 가는 즐거움을 느끼며 올 한해의 사업 보고와 내년 계획을 검토했다.

그리고 지금 간부들의 심정을 말하자면, 언제나와 같이 사무실 비품 구매 기안에 자기 좋아하는 과자 몇 개 끼워 넣어 올린 품의를 부장이 평소처럼 보지도 않고 결재하는 대신 꼼꼼히 읽기 시작하는 서무직원의 감정에 가장 가까웠다.

기랑은 말없이 보고서 위에다가 세필로 이것저것 끄적여서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은 백발백중회의 간부들은 당혹했다.

<회비를 화약값으로 배분하는 데에 의주와 안주, 태천군 세 곳에만 너무 치우쳐 있다.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

<함경도 여러 군의 포수 역시 새로 입회시켜 위원 자리를 주어야 하는데 여전히 평안도 포수들만이 백발백중회의 의견을 결정하고 있다. 함경도에서 내다 파는 호피며 사슴뿔을 운임이라는 명목으로 평안도 것보다 비싸게 책정하면 어떻게 장사가 되겠는가?>

<포수가 쓸데도 없는 대포를 탐내서는 안 된다. 혁명군은 총까지는 보아 넘겼더라도 포와 군함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 비용은 횡간(예산)에서 없애고 삼가는 태도를 보여야 마땅하다.>

라는 둥, 기존에 기랑 없는 사이 회장 이름 팔아 재정을 좌지우지했던 간부들의 심기에 거슬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간부들은 바지사장 주제에 나서지 말라고 면박 줄 수가 없었다.

확실히 기랑은 백발백중회 안에서는 별다른 권력이 없다. 하지만 혁명막부 내에서는 그 크기와 위치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기에 함부로 얕볼 수 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길명이의 은행 건을 모르는 간부들은 갑자기 회장이 백발백중회에 나타나 이것저것 참견하기 시작하는 것에 중대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착각했다.

그들이 남몰래 주고받은 눈짓을 인간의 말로 번역하면 대강 이렇다.

‘부녀회와 노비당에 이어, 주석이 드디어 백발백중회에도 미리 심었던 자기 사람을 써서 세를 넓혀 보려는 것인가? 이는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인가?’

기랑이 말하는 여러 지시는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공평무사한 사항이다 보니, 어쩌면 이게 주석의 지시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결국 기랑의 지적 사항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벌써부터 기득권 행세하는 평안도 포수들에게 항의 차 눈치 보며 방문했던 함경도 포수들 역시 ‘주석의 널리 미치는 눈’에 기뻐하며 찬동했다.

혁명막부 흉내 낸다고 해도 포수들의 모임이 그렇게 체계적인 건 아니었다. 회의 자체는 금방 끝났다.

그리고 길명이는 약속했던 대로 기랑을 불러내 종이에 싼 은행 꾸러미를 주었다.

“회장 동지. 제 마음을 부디 꼭 알아주십시오. 주석 동지께도 안부 전해 주시고요.”

절절한 심경을 고백하는 마음을 표현함과 동시에, 시준에게 이만 너를 놓아 달라 전해주십사 하는 이야기까지 넌지시 전달한 멋진 문구였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길명이 혼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길명이 저놈이 회장에게 뇌물을 바치고 주석에게 줄 대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쪽이 더 합리적이기는 하다.

그래서 기랑이 그 꾸러미를 받으며 얼굴을 붉힌 것은 길명이에게만 보였다.

길명이는 자신의 혜안이 맞았음에 기뻐하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 채로 밤을 기다렸다.

또다시 그 축구인지 패싸움인지 모를 짓거리에 휘말린 다음, 윌리엄 자딘과 자바 섬으로의 밀무역 계약을 체결하는 것까지가 오늘 시준의 공식 일정이었다.

자딘의 밀수함대를 통해 혁명막부는 물론 전 조선에 지금 가장 절실히 필요한 물건인 곡물을 수입하는 대신 – 인디카 쌀이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 자바 섬에 ‘의료대국 조선의 특산 의약품’을 팔기로 했다.

조건은 영국 놈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후했다. 그래서 시준은 자딘이 이중계약을 체결한 낌새를 눈치챘다.

분명 영국이나 동인도 회사로부터도 돈을 받았으리라. 이렇게 뒤가 구린 일은 원래 19세기나 21세기나 하청 용역업체의 몫이다.

사실 자딘도 별로 비밀로 할 생각까지는 없어 보였다.

이 계약 내용을 들으면 동인도 회사가 영국의 나폴레옹 전쟁 수행을 보조하기 위해 마약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치안을 혼란하게 하리라는 사실을 짐작 못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엄하게 상도덕의 위반을 질책한다 해도 시준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었다. 그래서 시준 역시 입을 다물었다.

‘영화 같은 거 보면 끗발 날리는 브로커입네 하고 이중계약 막 하고 다니는 놈들은 꼭 어딘가에서 칼에 찔리던데. 얘하고도 이제 좀 거리를 둬야 하나? 아냐. 잠깐, 어떻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있다가 혹시 동인도 회사하고 윌리엄 자딘의 사이가 벌어지거든 내가 쓱싹 처치하고 그쪽에 호감을 사 보자.’

그 정도로만 온건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솔직히 더 이상 뭐라고 하기도 피곤했다. 상조농장 갔다가 축구하는 사이에 시준이 검토한 서류만 해도 마차에 다 안 들어갈 지경이다.

“아이고, 오늘도 정말 고생 많았다.”

시준이 그렇게 스스로를 치하하며 어깨를 주무르는 동안, 주석당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타난 사람은 기랑이었다.

“웬일이야? 오늘은 쉰다고 들었는데.”

“야참.”

시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급양과장 일 살뜰히 하는구나. 앞으로는 밤늦거든 그냥 돌아가도 된다.”

기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구니에 소중히 담아 온 은행 여남은 알을 내밀었다.

시준만은 못해도 기랑 역시 손재주가 야무진지라 기름에 알뜰히 볶은 물건이었다.

이 시대에는 뭐든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는 게 상식이고 종이도 한 번만 쓰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기랑 역시 길명이의 편지를 당연히 포장지라고 생각했지 자기에게 보내는 말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결국 편지의 운명은 상돌이의 말처럼 되었다.

시준은 별생각 없이 은행을 집어먹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연애 해 본 시준 역시 머리로는 안다. 누군가 물어본다면 조선에 은행으로 정을 표현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기억이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간이 현대인인 데다 지금 상당히 피곤한 시준에게 직관적으로 그 의미가 떠오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시준은 은행과 자기를 번갈아 힐끔힐끔 쳐다보는 기랑의 시선을 오해하고 말았다.

시준은 바구니를 내밀었다.

“너도 몇 개 먹고 가라.”

“……맛있어?”

“응? 너 볶으면서 안 먹어봤냐? 맛있네.”

“……잘했어?”

시준은 어리둥절하게 기랑을 보다가 말해 주었다.

“잘했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기랑의 굳은 표정에 시준은 잠깐 당황했다. 잠시 후, 기랑은 대단한 결심을 한 듯이 말했다.

“그럼 쓰다듬어 줘.”

반사적으로 거부하려던 시준은 기랑의 눈을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기랑으로서도 시준의 처지와 마음을 생각해 이 정도에서 참은 것이다. 자기 딴에는 많은 배려를 하였음에 틀림없다.

시준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기랑의 댕기머리에 얹었다.

머리에서 뜨거운 기운과 함께 맥박이 느껴졌다. 시준은 그 고동을 애써 무시했다.

“항상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기랑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배시시 웃었다.

기랑의 집은 주석당에서 좀 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때 기랑이 주석당에 갔다는 말을 듣고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한 남자의 목소리 따위는 둘 중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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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조선 시대에는 한 순(상순 하순 할때 그 순)이 생활 단위라 관청의 휴일도 열흘에 하루였습니다(그래서 보통 이때 사람들이 씻음). 관청 기준으로 24절기마다 쉬고, 대신이나 왕족 죽으면 쉬고 해서 휴일 자체는 그 외에도 꽤 많았습니다. 다만 그런 휴일이 10, 20, 30일과 겹치면 현대처럼 휴일 날아가는 거죠. 대체휴일 같은 선진적 제도까진 없었는지라..

2. 작중에서도 나왔지만 세 자매 농법은 19세기에 시도해서 극적인 효과까지는 보기 힘듭니다. 이 시대까지 오면 조선에서 할 수 있는 농법은 거의 전부 개발된 상태이고 화학 비료에 비견하면 어차피 고만고만한 효율이라서...

3. 이제 외전이 끝났군요. 다음편부터는 본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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