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20화 (120/284)

120화

(외전) 제1회 주석기 체육대회

구한말 고종이 테니스를 치고 있는 두 서양인을 보고 “그리 힘든 일은 아랫사람에게 시킬 것이지.”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위도 의심스러울뿐더러 조선 사람이라고 해서 오락으로서의 스포츠개념을 몰랐던 게 아니다.

몸을 움직이는 행위의 즐거움은 강아지나 새끼 고양이도 안다. 상류층의 전유물인 격구(擊毬) 같은 것까지 가지 않더라도, 조선 후기쯤 오면 여러 가지 스포츠가 나름대로 다양하게 발전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류의 스포츠란 본래 모의 투쟁에서 출발한 것이다. 동물들이 그러하듯 사람도 놀이를 통해 사냥과 전쟁을 연습한다.

집단으로서의 전쟁 연습이 단체 구기 종목이라면, 개인으로서의 전쟁 연습은 격투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에서 널리 정착한 것으로 씨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시준은 이 시점에서 씨름 대회에 참가한 것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내가 미쳤지…….’

시준은 도저히 남들 앞에서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차림새로 씨름판 위에 올라갔다.

지금의 씨름에서는 딱히 옷을 벗어야 한다는 규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부녀회가 엿이며 과자를 만들어서 협회의 수입도 올릴 겸 씨름 구경하러 온다는 통지가 떨어지자, 참가한 사내들은 다투어 웃통을 까고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간 엄청난 활동량을 소화하였으며, 실전이 적지 않게 포함된 운동 또한 거르지 않은 시준의 몸 역시 어디 내놔서 부끄럽지는 않다.

21세기라면 그럭저럭 어디 헬스장의 ‘당신도 할 수 있다!’류 광고 사진에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두 명 정도는 시준을 보고 두근두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9세기다. 게다가 시준은 나이에 비해서도 좀 애 같은 얼굴이었다. 수염조차 제대로 덮이지 않은 시준으로서는 남성적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시준은 끌고 싶지도 않았지만.

일부 취향 특이한 두 명을 빼면, 부녀회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건 시준의 앞에 있는 2영대장 홍총각 같은 스타일의 육체다.

“세상에, 저 절굿공이만 한 다리 좀 보게!”

“저 팔뚝은 어떻고. 에휴, 얼마나 힘이 좋을까?”

“우리 남편은 영 비실비실해서 큰일이야. 영길리 약이라도 지어 먹여야 하나…….”

“어디 대장이라더니 풍채가 과연 대장 노릇 할 만하네그려.”

결승에서 시준과 만난 홍총각은 그런 수군거림에 비례해서 힘이 솟아나는 모양이었다. 시준은 일종의 종족적 비애감을 느꼈다.

실제로 홍총각의 체중은 시준의 거의 2배에 육박하고 키는 머리 하나가 더 크다. 방대한 지방에 덮여 있는 엄청난 근육은 우승 상품으로 내걸린 황소의 머리라도 단박에 뽑아 버릴 것 같았다.

홍총각은 기세 좋게 발을 구르며 외쳤다.

“하하! 주석 동지라고 해도 내 봐주지는 않을 셈이니 나중에 탄하지나 마시오!”

시준은 그 말엔 대답하지 않고 아련하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세계 생활은 정말 쉬운 게 아니었다.

시준이 평안도에 생활 체육을 장려하기로 결심한 것은 단순한 근력 운동이나 체격 조건 개선의 목적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상호 규칙의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19세기에도 규정 내용이 기괴하고 야만적이었을 뿐이지 운동에 규정이 있던 것은 같다.

그리고 이런 ‘규칙을 따라 본 경험’은 전쟁과 노동에 모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대유법(代喩法)으로 표현하자면, 시준은 사람들에게 줄 맞춰 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다.

시작은 시준이 도가의 양생법이라며 야학과 혁명군에서 체조를 가르친 것이었다. 이제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정감록도 거리낌 없이 이용하는 시준은 본인만 부정할 뿐 과연 조제프 푸셰의 사상적 후계자였다.

특별히 운동생리학적 원리를 고심한 현대 체조는 아니다. 국민체조와 국군도 수체조의 근본 없는 혼종일 뿐이다.

많은 21세기 한국 남자가 그렇듯 시준도 둘 다 파편적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원리가 뭐냐고 물어보면 어차피 미륵사에서 태극이니 음양이니 붙여서 만들어 줄 테니 골몰할 이유가 없다.

과연 시준은 별로 맞지 않길 바라던 그 예측대로, 미륵사가 대표하는 정감록파는 힘이 났다. 그들은 진인이 자신들을 인정하는 정치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착각했다.

“드디어 정 진인이 승리의 도를 널리 펼치기로 결심하셨다!”

혁명체조(革命體操)는 진인 삼백 살 장수의 비법이라는 이제초의 선전이 열정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시준은 그것을 뒤에서 부채질했다. 조금만 더 하면 임청이 후천조사 자리 양보할 것도 같았다.

체조는 성공적으로 퍼졌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역시 스포츠는 경쟁이 있어야 의욕이 살아나는 법이다. 게다가 왠지 태평도 아류 같다며 꺼리는 선비들을 끌어들일 수단도 필요했다.

‘활쏘기가 아무리 대중적이라도 고급 기술이라 많은 관중을 동원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부자재에 비용이 많이 든다. 석전은 지금 금지령을 내려도 모자랄 판이니 논외다. 어디 그냥 몸으로 때우면서도 모두가 안전하게 경쟁할 만한 게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시준이 농한기를 맞아 평안-함경도를 아우르는 범북방 씨름대회를 제안했을 때, 반응은 열광적이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이 시대의 남부는 서울에나 가 본 게 다인 시준은 몰랐지만, 원래 조선 북부 사람들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조선 사람 중에서도 장대한 체구와 용력을 자랑했다.

그 힘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일제 강점기 당시 1927년 시작해 1941년 폐지된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에서 임진강 남쪽 사람이 우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영양 상태에서 별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혹독한 환경압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제1회 주석기(主席旗) 혁명씨름대회>는 북부 각지 인민의 전폭적 지지와 참여 끝에 성사되었다.

겨울 동안 속속 ‘해방’되어 ‘인민의 것으로 다시 귀속’된 함경도 각지의 군(郡)에서도 선수를 보냈다. 특히 함흥 사람들은 씨름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다.

마침 그들 역시 중앙인민회의에 의원을 뽑아 보내야 했기에 그 편에 씨름 선수들도 같이 왔는데 아무래도 민주주의보단 이쪽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평안도 사람들 또한 안방에서 질 수는 없었다. 이제초 등은 지금이야말로 진인의 도력을 과시할 기회라며 무서운 기세로 출전을 강권했다.

시준은 혹시 주석의 신체적 안위를 걱정하는 충신이 없나 하여 급히 좌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가 수평한 인민들 사이에선 신하 같은 게 없어서 충신도 없었다. 그리고 원래 이 나라는 고려 때만 해도 왕 역시 직접 씨름을 했다.

씨름이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에 선수들 역시 주석이라고 하여 전혀 빼지 않았다. 죽지는 않을 텐데 뭐가 문제냐는 북방 상남자들의 전력이 발휘되었다. 몸에 복지 혜택으로 배어 있는 유도 기술이 아니었으면 시준은 꼴사납게 1회전에서 탈락했을 것이다.

시준은 전생에서 죽었을 당시 되는 대로 주워섬긴 격투기 중 씨름을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하며 모래판 위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평안도의 체면을 세울 자가 시준만은 아니다. 의주 대표선수로 나선(시준의 호적은 평양이다) 홍총각은 각 고을에서 힘 좀 쓴다 하던 장사들을 죄다 모래판에 메다꽂아버렸다.

결국 자신만만하게 평양에 온 다른 동네 선수들은, 부녀회에서 판매하는 냉습포(파스)를 붙이고 엿이나 빨며 의주 출신 장사 2명의 결승전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영길리 사람들 역시 군데군데에 섞여, 신기한 얼굴로 구경하거나 스케치를 하는 자도 있었다.

시준도 그때쯤에는 지위를 이용한 모든 협잡과 협박 계획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러고는 그간 쓸 일이 별로 없었던 정정당당함을 꺼내어 먼지를 좀 털고 장착했다.

‘그래, 이왕 나왔으면 이겨야지.’

꼭 저편에서 지유와 기랑이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진다 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혁명군의 용맹을 과시할 수 있을 테니 정치적으로는 나쁠 게 없었지만, 홍총각에게 전력으로 패대기쳐졌다가는 정치적 이전에 의학적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샅바를 잡고 마주 꿇어앉았다. 시준은 허리를 통해 느껴지는 홍총각의 팔 힘에 전율했다. 시준도 체중 대비 드문 완력을 지닌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체중에 대비하면 그렇다는 의미다.

체중에서 월등히 앞서는 ? 시준은 다음엔 반드시 체급제를 도입해야겠다고 다 짐했다 ? 홍총각이 시준을 상대로 쓸 전법은 보통 그대로 들어 메치거나 밀어버리는 종류일 터다. 시준은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과연 홍총각은 단숨에 시준을 끌어올리려 했다. 녹로(??, 기중기)에도 필적할 기세였다. 그러나 시준은 무게 중심을 철저하게 낮추거나, 딸려 올라가는 척하면서 빙빙 돌아 발을 디디며 홍총각을 방해했다.

“이런!”

괜히 다급해진 홍총각은 시준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겨드랑이에 시준의 팔을 끼우고 온몸을 이용해 오른편으로 꺾어 뒤틀었다. 당연히 팔이 비틀리기 때문에 현대 씨름에서는 금지된 반칙이다.

그러나 그렇게 규칙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시준 역시 씨름의 상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준은 미련 없이 샅바를 놓고 회전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며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결국 시준은 이 좁은 씨름판에서 홍총각에게 매달린 채 공중제비를 돌게 되었다. 물론 바닥에는 무릎 위가 전혀 닿지 않았다.

“어……?”

홍총각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당황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몸은 아까의 동작 때문에 무게 중심이 과도하게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다.

시준은 있는 힘껏 체중을 실어 밀며 홍총각의 다리를 호미처럼 걸어 끌어당겼다. 아무리 장사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 버틸 재주는 없어서 홍총각은 그대로 쓰러졌다.

모래 먼지가 흩날리고, 사람들은 모두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침묵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였다.

홍총각은 주저앉은 채 어이없다는 듯이 자기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석 동지. 어떻게 한 번만 더…….”

“두 번 다시 안 할 거요.”

시준은 홍총각의 부탁을 칼같이 잘라 버리고 그대로 승리를 선언했다. 미루어졌던 함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 주석의 승리다!”

“곱절이나 되는 장사를 거꾸러뜨리다니!”

“주석이 파계해서 내공을 탕진했다고 떠들던 놈이 대체 누구야?”

병중에도 불구하고 기랑과 몇몇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나온 지유도 조그맣게 박수를 쳤다. 시준은 뿌듯했다.

부상으로 받은 황소를 상조농장에 기부하는 모범을 보여 더욱 큰 갈채를 받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준이 따로 사재를 내어 술과 고깃국을 돌리는 것으로 주석기 씨름대회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시준조차도 까먹었지만, 이 대회는 겨루기보다는 사람들의 단합과 놀이가 목적이다. 씨름과는 다른 쪽의 운동에 자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행사도 마련되어 있었다.

어느새 오늘의 진행을 맡고 있는 이제초가 크게 외쳤다.

“이번에 함경도가 승리한 땅이 되어, 인민의 품으로 해방되어 돌아온 올 겨울을 기념하며 평안도에서 함경도 사람들을 따뜻하게 환영할 수 있도록 진인, 아니 주석께서 고안하신 축구(蹴球) 대회를 진행할 것이오! 함경도의 용사 열 한 명은 나와서 서도록 하시오!”

이번에는 시준도 즐겁게 나섰다. 축구라면 그냥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씨름과 달리 축구는 전적으로 시준이 보급한 물건이다. 사람 대비 돈이 가장 적게 들어서 생활체육에 최적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애로는 있었다. 조선 사람들은 ‘공을 차서 그물에 넣는다’는 개념은 쉽게 이해했으나, ‘내 공을 빼앗아간 저 빌어먹을 놈을 가서 쥐어 패고 도로 공을 되찾아오면 왜 안 되는지’는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질서 있게 마주 서 있는 광경을 보니 나름대로 규칙을 다 이해한 것 같았다. 시준이 그렇게 믿고 싶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은 이번에도 곱게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막 경기가 시작되려는 찰나, 갑자기 저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온 자는 놀랍게도 조선인이 아니었다. 뒤에 장대한 영국선원 여남은 명을 달고 온 윌리엄 자딘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팔을 쫙 벌렸다.

“이거, 풋볼(Football)을 하실 양이었으면 저희에게 말씀을 해 주셨어야지요!

이거 섭섭합니다. 의장 각하께서 설마 우리 영국인이 이 경기의 종주(宗主)임을 모르지 않으셨을 텐데!”

시준은 저 눈치도 없는 영국놈을 축구공처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 적어도 이 조선에서 축구는 주석이 만든 경기여야 했다. 시준은 자딘 외의 누구도 못알아들을 빠른 프랑스어로 말했다.

“아무래도 외국 사정이 조심스럽다 보니 자기 일에 바쁜 그대들을 참가시키기가 쉽지 않았소. 아직 준비가 안 되었을 테니, 다음에는 꼭…….”

“무슨 말씀이십니까, 의장 각하! 우리 영국인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 신사 제군!”

“우오오오!”

신사[Gentlemen] 계급 근처에도 안 가본 선원들이 포효했다. 시준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유학 시절, 무슨 축구 경기 한 번 할 때마다 내전 비슷한 게 일어나는 런던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사실 사태는 시준이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 당시 영국인도 조선 인과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세기 초중반의 아마추어 축구 룰은 지역도, 리그도 아니고 ‘팀마다’ 달랐기 때문에 영국인도 조선 축구 규칙이 따로 있다는 것 정도야 이해했지만, 그 내용에는 심각한 회의를 표했다.

“공을 들고 달리면 안 된다고? 그럼 손으로 치는 건, 그것도 안 돼? 그럼 어쩌라고? 공을 발로 차면서 뛰라고?”

“해킹(Hacking, 상대방 선수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이 금지? 왜? 뭐? 다친다고? 조선놈들은 신사의 용맹을 표현하는 풋볼을 여자의 스포츠로 만들 셈인가! 적어도 붙잡아 쓰러뜨리는 건 하게 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 갖고 있는 자를 어떻게 막아?”

이 당시 풋볼은 현대 미식축구와 축구의 규칙을 적당히 섞어 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시준도 정통 영국식 축구 룰을 듣고 식겁하여 황급히 말했다.

“아, 아무튼 선장께서는 이해하시겠지만 이는 외교적 친선의 목적도 있으니 절대 다치는 자가 나오지 않기 위한 규칙이오.”

“그렇군요. 하하. 이해했습니다. 아무래도 각하의 정치적 위치상 어쩔 수 없겠지요. 선수들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경기가 되길 바랍니다.”

자딘은 그렇게 시준을 안심시키고 돌아섰다. 말이 통하는 것 같아 시준도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 이런 종합격투기에 가까운 축구를 견지하고 있는 영국이라면, 섬세한 드리블 및 패스 기술이나 발재간은 현대에 비해 발달이 미미했을 터. 시준의 운동 신경이면 혼자서 경기를 이끌 자신도 있었다.

물론 20년에 걸쳐 엿을 먹고도 아직 진정한 19세기의 바닥을 보지 못했던 시준의 착각이었다.

조선과 영국의 ‘친선경기’는 무지막지했다. 함경도와 평안도 측이 연합한 조선과, 선원 이십 명 가까이가 나온 영국은 연이은 부상과 ‘퇴장’으로 후보 선수를 순식간에 모조리 소모해 가며 축구라기보다 난투극 비슷한 경기를 펼쳤다.

“잡아, 잡아!”

“어억! 이 새끼 어딜 깨물어!”

“아이구, 나 죽네!”

영국이 먼저, 그리고 몇 초 뒤에 조선인들도 깨달았다. 쌍방 모두에게 규칙따위 지킬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옷자락을 잡아 팽개치고, 다리가 부러져라 걷어차고, 심지어 상대방을 집어던지는 등 ‘지극히 신사적인’ 경기가 평양에서 전개되었다.

그중에서도 발군은 홍총각이었다. 홍총각은 물론 드리블에 재능이 없었지만, 위태위태하게 공을 몰고 가다가 앞에 영국인이 달려들면 공을 세워 둔 채 그놈을 어깨로 들이받아 날려 버리고 다시 조심조심 공을 몰았다.

시준은 절망했다.

‘이건 축구가 아냐……. 나의 조선 프리미어리그가…….’

시간 규정은 일단 약식으로 정해 놨지만 이대로라면 후반전 따윈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의문이었다. 시준은 그냥 자기도 퇴장당해 나간 다음 도망쳐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도 할 말은 없지만 윌리엄 자딘은 대체 뭘 이해하고 뭘 설득했다는 거야?’

그때 시준에게 공이 왔다. 시준은 여덟 장의 쇠가죽을 기워 만든 축구공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전방을 주시했다. 이제 공을 차려는 건지 인간을 차려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광전사들이 달려들 차례다.

허나 시준은 경악했다. 그가 공을 몰고 나가자마자 영국 선원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좌우로 갈라져 물러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중에는, 시준에게 닿지조차 않았음에도 장렬하게 몸을 굴려 나가떨어지면서 시대를 한참 앞선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는 자도 있었다. 역시 셰익스피어와 같은 고향 사람들이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리고 윌리엄 자딘은 시준에게 여유롭게 손짓했다.

‘아, 그러니까 저 새끼가 이해했다는 게…….’

윌리엄 자딘의 조직 장악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시준은 뭔가 비참한 기분마저 느끼면서 공을 찼다.

시준의 강력한 슛은, 공의 궤적을 똑똑히 보고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린 골키퍼를 피해 그물을 갈랐다. 삼화부에서 가져온 고기잡이 그물은 생선 뿐만 아니라 공도 잘 잡아냈다.

경기 자체는 당연히 조선의 승리로 끝났다.

조작 경기라도 어쨌든 영국인은 즐거운 모양이었다.

원래 군대에서도 연대장이 끼어든다 해서 축구가 반드시 김새게 되지는 않는다. 암묵적으로 노 카운트 처리하고 나머지끼리 즐겁게 축구할 수 있다. 시준도 민족 전통의 지혜를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깍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어쨌든 이긴 조선인과 진정한 힘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영국인들은 둘 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새 해가 진 평양부 공터에서 큰 화톳불을 피워 놓고 즐겁게 술잔을 나누었다.

조선 사람들은 수적 우월함을 이용하여 곳곳에서 영국인들을 갈궈 브랜디와 럼주를 뜯어내고 있었다. 장독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시준은 못 들은 척했다.

“하하. 이것 참. 각하께서 훌륭한 선수[athlete]이기도 하다는 점을 오늘에야 알았군요. 저는 또 글만 잘 쓰시는 줄 알았지 뭡니까.”

윌리엄 자딘은 ‘의장의 체면’을 세운 자신의 공을 은근히 어필하며 소설 얘기를 꺼냈다. 시준은 흠칫했다. 그러자 자딘은 시준에게 잔을 권하며 말했다.

“거래처가 한 군데여서는 위험에 대비하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휘둘릴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부터 연재될 소설의 간행은 동인도 회사가 아니라 부디 꼭 저희에게 독점적으로 맡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영국 해군에게 납품할 주간연재 음란소설의 계약 얘기였다.

왜 주간연재인가 하면 영국군이 대개는 모이는 예배 시간을 노려 팔기 때문이다. 시준은 왜 저놈들에게 천벌이 안 떨어지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동인도 회사도 이 사업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쪽은 무기 공창 같은 대형 사업이 위주라 그렇게 큰 의욕까지는 없었다. 윌리엄 자딘은 그 틈을 타 좀 사소한 저변에서 입지를 넓히려 했다.

사실 시준은 이제 결혼도 했겠다, 그런 거 관두고 깨끗하게 손 털고 싶었다.

어차피 지금 시준이 음란소설이나 쓸 시간은 없었기에 이것도 사실상 야학 학생들의 (영길리말 지도를 빙자하여 임금도 안 주는) 공장제 협업이지 시준의 작품은 아니다.

허나 무협지에서 금 세숫대야에 손을 아무리 박박 씻어도[金盆洗手] 결국 지저분한 놈들은 지저분한 최후를 맞는다. 한번 어둠에 발 담근 자가 빠져나오는 게 그리 만만할 리는 없다.

지금만 해도, 일껏 일구어낸 좋은 분위기를 망쳐 두면 여러 가지로 곤란하다.

동인도 회사와 시준 사이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바로 그래서 중요한 방면으로 활약하는 윌리엄 자딘을 적대하게 되면 굉장히 피곤해진다.

시준은 헛기침을 했다. 모든 것은 혁명과 혁명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절대로 시준의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다.

“으음. 그건 내가 특별히 고려해보겠소.”

“감사합니다. 의장 각하.”

시준은 더 이상한 얘기 나오기 전에 ? 예를 들어 삼국지 음란물만큼이나 유서 깊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2차 창작을 써 볼 생각은 없느냐라든지 ? 적당히 핑계 대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괜히 그런 건 아니었다. 이 계절에 해가 지면 모닥불이 있어도 환자에게 해로 울 정도로 날씨가 추워진다. 시준은 지유를 이만 집에 데려다주어야 했다.

“기랑아. 어디 있냐? 집에 가자. 지유 마차에 타는 것 좀 도와다오.”

시준의 영국제 마차를 분해한 보람이 있어서, 공장영선국은 조선 최초의 영국식 마차인 영길리시발차(英吉利始發車)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것은 주석에게 헌정되었다.

기랑은 시준을 보더니 흠칫했다.

“다, 다른 데 일이 좀 있어서…… 내가 나중에 따로 지유 데리고 갈게. 너 먼저 들어가.”

“무슨 소리야?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 빨리 들어가야지.”

시준은 어리둥절해하며 기랑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나 기랑은 얼굴이 확붉어져서 ? 밤이라 시준에게는 잘 안 보였다 ?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시준은 투덜거리며 혼자 지유를 인도했다. 지금 시점에서 씨름판 일을 거의 잊어버린 시준은 왜 지유도 자기를 힐끔힐끔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둘만의 시간은 그것대로 좋다. 시준은 마차 안에서 지유를 보고 미소지었다.

지유가 시준을 올려다본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오늘…… 씨름판에서 굉장히 잘나 보였어.”

“하하……. 두 번 다신 안 할 거다.”

“그런데 기랑이도 봤지?”

“어? 어. 그, 그렇겠지?”

시준의 머릿속에 아까의 일이 스쳐 지나가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지유는 시준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싫어. 나만 한 번 더 볼 거야. 집에 가면.”

시준은 지유의 머리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그는 아내의 어투를 흉내 내어 작게 속삭였다.

“그래.”

유치해도 어쩌겠는가. 원래 사랑은 유치한 법이다. 성숙한 사람들은 그래서 인생이 재미가 없다.

심심한 인생을 절실히 바라던 시준으로서는 환영할 일은 아니었다. 아마 앞으로도 정신 빠질 정도로 역동적인 길을 달려야 하리라.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시준은 다시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작가의 말

1. 작중 나온 대로, 일제 강점기에 꽤 오랫동안 전조선씨름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만 우승자 목록을 보면 함흥, 황주, 평양 등 모두 이북 사람으로 남쪽은 하나도 없습니다. 체격 조건도 있겠고, 당시 기호나 호남의 씨름 규칙과 그 외 지방의 씨름 규칙이 좀 달랐던 것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2. 럭비의 기원이 풋볼 하던 중 웬 학생 하나가 손으로 잡고 달렸던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사실이라 해도 작중 시점에선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짓을 했느냐 하면, 손으로 언제 잡고 얼마나 달리느냐가 문제이지 당시 풋볼에서 손으로 공을 잡는 행위 자체가 모두 반칙은 아니었습니다. 그 학생이 무슨 상상초월 전무후무의 반칙을 한 건 아니라는 거죠. 농구로 치면 농구공을 발로 찬 게 아니라 워킹 룰 위반 정도의 행위랄까요.

또한 작중에서도 나왔듯이, 공을 잡은 자는 골문으로 달릴 수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그자를 막기 위해 어깨를 잡아 쓰러뜨리거나 정강이를 걷어차는 행위는 모두 규칙상 인정되었습니다.(다만 어깨를 움켜잡은 채 정강이를 차면 안 됐습니다) 정강이를 까도 되느냐 안 되느냐는 19세기 후반 근대 축구의 규칙이 대강 정립될 때까지도 최후까지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유는 작중 나온 바대로 '사내답지 못하다' 라는 것이었죠.

3. 베르길리우스는 '신곡'에 나오는 그 천사 등장인물이고, 단테는 작가이면서 또 등장인물 자신인데... 둘 다 남자(베르길리우스가 천사라서 애매하지만 아마도)입니다마는 신곡이 출판되었을 당시 유럽에서는 이 둘을 엮은 BL소설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왜 버렸는지 의문입니다만 장르가 다른 거겠죠. 주요 작가층 겸 수요층으로는 수녀가 대표적이었고, 이 일로 여러 금지령과 처벌이 논의된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선, 특히 교회에서는 더더욱 동성애가 불법이라서...

4. 어제 공지드린 대로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이번 화로 시즌 1(?)을 마무리하고, 10월 14일부터 전편이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됩니다. 그 전날, 10월 13일부로 카카오스테이지의 본작 연재분은 무료 공개분인 25화까지를 제외하고 삭제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독자분들 덕분에 120화,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 했습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뵐 수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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