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36. 어긋나는 비탈길(3)
혁명무력국장 차형기는 역사적인 혁명수군의 창설 소식에 크게 고무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현실이라는 시궁창에서 기어 나온 문제가 높은 꿈의 발목을 잡았다.
동인도 회사가 보내준 영국 선원들은 질이 낮았지만 ? 고급 인력이 동인도 회사에 취직할 리가 없다 ? 그래도 배의 운항 자체에는 그럭저럭 숙련자다.
그런데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자가 없었다. 조선에서도 관련자는 이강회 정도를 제외하면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수부의 일은 조선이나 영국이나 천한 직종이었다.
의욕이나 있으면 손짓 발짓이라도 해서 통하겠는데, 영국 선원들은 열등하고 미개한 아시아인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만 가득했다(사람 꼴도 못 갖춘 오랑캐와 상종해야 한다는 인종차별적 불만 자체는 조선 사람들도 가지고 있었다).
“회사가 우리를 버렸다. 본국에 돌아가면 소송이라도 해야겠어!”
“누구한테? 동인도 회사? 글 한 줄 못 쓰는 게 무슨 소송이야. 네가 멀거니 서 있는 사이에 죄란 죄는 전부 뒤집어쓰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끌려갈 거다.”
이 당시 영국 형법의 존재 이유는 대부분 한 가지에 집중되었다. 천한 빈민들이 감히 부유하신 분들의 것을 탐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나머지 부분은 왕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지 못하게 하는 데에 할애된다).
그러니까, 천것들의 권리를 구제할 법 따위는 없다. 그건 법의 목적이 아니다.
21세기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빈민이나 다름없는 하급 선원들이 동인도 회사 같은 글로벌 거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차라리 조선에서 노비가 왕의 행차를 막고 격쟁을 벌여 억울함을 푸는 게 쉽다. 하긴 동방의 예의지국, 도덕국가 조선을 영국 같은 야수의 나라와 비교하면 곤란하기는 하다.
영국인이라는 선천적 이유에다가 배우질 못했다는 후천적 이유까지 겹쳐 이중으로 도덕에서 멀어진 선원들은 곧 일반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강자에게 피를 빨릴 수밖에 없다면, 약자는 자기보다 더 약자를 찾아 다시 뜯어먹으면 된다.
선원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차라리 권총과 칼이라도 들고 쳐들어가서 우리가 이 미개 부족의 왕 노릇을 해 보면 어떠냐?”
“하긴 이제 우리는 파견된 처지라 조선 영내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니…….”
“그렇지? 해볼 만하다니까. 내가 들으니 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웬만한 섬보다는 크다고 하더라고. 야,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여자 구경한 지가 너무 오래됐잖아.”
선원 중 누군가는 눈을 번들거리고, 누군가는 바지춤을 어루만지며, 누군가는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조선 사람들이 더러운 오랑캐라고 싫어할만은 했다.
“일단 저질러 놓으면, 동인도 회사도 못 이기는 척하고 지원해 줄 거야. 원숭이 새끼들하고 무슨 놈의 협상을 하니 거래를 하니 지분대며 앉아 있는 것도 지겨웠을걸? 밤에 성 안에서 몇 군데 불 지르고 덤비는 놈은 닥치는 대로 쏴갈기면 나머지는 도망칠 테니 성공은 틀림없지.”
“아, 그래. 내가 잔지바르에 갔다 온 동네 아저씨에게 들었는데 야만족은 총소리만 나면 신의 벌인 줄 알고 놀라서 흩어진다고 했어!”
남반구 최초의 모스크를 세운 유서 깊은 고장 잔지바르 사람들이 들었으면 화를 냈을 어설픈 편견을 비롯하여, 파편적으로 주워들은 이야기가 얼기설기 맞춰졌다.
그러자 선원들은 조선인이 문명적 도구에 완전히 무지하다고 확신했다. 이들이 대포를 어떻게 쏘는 줄도 모르기 때문에 군함과 함께 선원까지 요청했으리라는 추측은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
기왕 조선인과 어울리게 되었으니 찬찬히 보기만 해도 그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터이지만 오해는 교정되지 않았다.
관찰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지식에 편입시키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의외로 현자만의 특권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우자는 정보를 선택적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래서 선원들의 머릿속에서는, 코에 뼈 장식을 꽂고 창을 든 채 식인 냄비주위에서 원무를 추는 가상의 조선인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런 광경을 실제 본 자는 아무도 없다. 허나 원래 타자화란 게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원대한 목적을 위한 치밀한 인내 같은 것은 없었다.
그들은 곧 반란이 벌써 성공한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조선인과 싸우거나 함부로 위협하며, 단지 눈앞의 누군가가 겁먹는 꼴을 보기 위해 자기들의 계획을 줄줄이 다 떠들어대곤 했다.
이런 ‘불온한 영국인의 움직임’이 전직 비밀경찰 출신 조제프 푸셰에게 걸리지 않을 리가 없다. 여기저기 현장에 나가 생산을 독려하는 선전선동국의 직원들은 모두 그대로 푸셰의 정보원이었다.
푸셰는 ‘과연 해적의 천성을 버리지 못한 영국놈들의 반란 모의’를 즉시 고변했다. 전생에서 시비는 철저히 피하고 큰길과 밝은 곳만 다니던 보신주의 공무원 시준 역시 배알이 뒤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존 레디에게 은근슬쩍 떠본 결과 동인도 회사도 버리는 셈치고 보내 준 자들이었다. 어느 회사든지 해고하려니 부담스럽고 놔두자니 골칫거리인 잉여 인간을 처리하는 장소가 있게 마련인데 동인도 회사의 경우는 그게 조선이었던 셈이다.
존 레디가 파업 노동자를 적군과 동일시하였듯이, 이 시대에 노동 인권이란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동인도 회사는 빌려준 선원들을 무사히 돌려받으리라는 기대조차 크게 없었다. 험하게 대하거나 죽는다고 하더라도 큰일까지는 안 날 것 같았다.
그 외의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시준도 빠른 해결책을 썼다. 그는 평양 주둔 2영대(연대)의 영대장 홍총각을 불렀다.
“이 평양을 지키는 2영대야말로 한성 부민 이공을 사로잡았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혁명의 전위(前衛)요. 나는 오직 2영대를 마음으로 믿고 있소.”
홍총각은 시준의 핵심 측근이라고 할 수 있어서 시준도 돈 안 드는 공치사로 자부심을 먼저 불어넣어 주었다.
단순한 성격의 홍총각이 뿌듯해하자 시준은 은근히 말했다.
“전위대장 동지, 내가 어린 시절 동지의 도움을 많이 받던 때가 생각납니다.
의주감자를 처음 농사지었을 때 말 안 통하는 외국인에 대해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시오?”
“물론 기억하오이다. 주석 동지. 몽둥이 통사가 통사 중 제일이라고 하셨지요. 누구든지 패면 조선말이 잘 나오게 되어 있소이다.”
“바로 현명한 동지의 말씀대로요. 지금 마침 영길리 사람들과 말이 잘 안 통하니 동지께서 가 주셔야겠소.”
홍총각은 오랜만에 옛날 가락 발휘할 생각에 이를 드러내었다.
“맡겨 주십시오.”
홍총각은 시준과 달리 영국인을 패는 것이 어떤 국제적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지 않았다. 영국군과 동인도 회사, 그리고 조선 정부와 혁명막부 간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도 알 바 아니었다.
그런 건 시준이 생각할 일이다. 오랫동안 시준과 호흡을 맞춰 온 홍총각은 둘의 역할 분담과 책임 범위를 명백하게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홍총각은 자기 판단대로 행동해도 시준의 의도를 망치지 않았다.
이래서 오래된 측근은 귀하게 중용되는 것이다. 공자가 ‘나이 칠십에는 마음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거스르지 않았다[七十而 從心所欲不踰矩, 『논어』]’ 하는 경지가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홍총각은 영길리인들에게 대화를 촉구하라는 시준의 지시에 무턱대고 몽둥이부터 잡지는 않았다.
그는 이제 그런 양아치가 아니다. 혁명의 전위대장이다.
홍총각은 무례천만하고 오만불손하며 악취가 나는 영국 선원들을 면밀히 관찰한 뒤, 그들을 대강 친조선파와 반조선파로 나누었다.
그러고는 반란까진 할 거 없지 않느냐는 온건 계파의 우두머리 노릇 하는 자들을 찾아냈다. 홍총각은 우선 그들에게 오만가지 재물과 향응을 안겨주어 다른 자들의 시기를 이끌어 냈다.
조선이라는 신천지에서 대담한 야망을 꿈꾸던 반란파들은 어느새 자기 밑의 선원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들에게 편을 바꿀까 생각하는 한가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으아악! 이, 이게 뭐야! 왜 갑자기 사람을 때리느냐, 이 야만인 놈들아! 아!
아! 뼈 부러졌다! 아이고!”
“뭐라고 꽥꽥대는 게야? 주둥이 놀릴 때마다 냄새나니까 입을 닥치거라, 양귀자(洋鬼子) 놈!”
(친조선파의 도움으로) 회합 장소를 알아낸 홍총각과 건장한 혁명군이 들이닥쳐 그들을 매우 쳤다.
죄목은 다양했다. 절도부터 횡령, 폭행, 부녀자 겁간, 내란 모의까지 가지각색으로 날조된 죄를 덮어쓴 그들은 흠씬 두들겨 맞고 대부분이 영혼까지 텅비어 돌아왔다.
뒤집어 말하면, 일부는 안 돌아왔다.
홍총각은 일부 중심이 되는 리더격 반란분자를 능숙하게 찾아냈다. 이들은 돌아가선 안 됐다. 그래서 홍총각은 그들을 ‘뱃일하다 발을 헛디뎌 실종’된 것으로 처리했다.
물에 사람 가라앉혀 물고기며 게들에게 공양하여 내세에 공덕 쌓는 일이라면 또 만상의 전문이다. 단지 압록강이 남포 앞바다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기존처럼 돌 같은 것을 매달아 던지면 다양한 사유로 줄이 풀리거나 하여 도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돌을 사람과 일체화할 재주가 없는 이상에야 언젠가는 시체가 뜨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원히 들키면 안 되었다. 그래서 홍총각은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그들을 ‘돌과 일체화’시켜 주기로 결심했다. 과연 그 진취적 자세는 혁명군의 앞장을 서는 전위대장의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주석의 명에 따라 영국에서 요즘 공사용으로 꽤 수입하는 파커 시멘트(parkercement)는 단 1시간 만에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급결성(急結性)이라 이런 일에 아주 적합했다.
파커 시멘트는 화학 지식이나 약품 없이 천연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서 조선에서도 써먹기 좋았다.
이 당시 템즈 강 터널 공사에도 쓰일 만큼 널리 알려지고 신뢰받는 재료이다.
그래서 시준도 영국인들을 통해 어렵잖게 그 지식을 알아낸 참이었다.
지금 홍총각이 쓰는 것도 수입산이 아니라 공장영선국의 시제품이다. 영국 것만은 못하겠으나, 건물엔 아직 의심스러워도 사람 가라앉히는 데는 무리가 없다.
만약 여기에서 응결성이나 견고함에 약점이 발견된다면 이것은 조선산 파커시멘트 개선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원래 유능한 사람은 한 가지 일로 여러 가지 목적을 한꺼번에 이루는 법이다.
드럼통이 없었기 때문에, 홍총각은 큰 독에 한 명씩 묶어 넣은 다음 신중하게 시멘트를 부었다. 다섯에 둘이라는 배합 비율을 잘 지켜야 했다.
어쩌면 조선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몰랐던 야심찬 콩키스타도르 지망생들은 다리부터 점점 차오르는 시멘트에 절규했다.
“끄으으읍!”
“으으읍!”
그러거나 말거나 홍총각과 병사들은 이 신기한 물건을 보고 감탄했다.
“와, 와, 굳는다, 굳어! 히야, 빠르기가 초겨울 시루떡 굳어 터지듯 하네그려.”
“그것참 신통한 문물이오. 이거라면 큰 성을 쌓는 일도 식은 죽 먹기올시다.
대장 동지.”
“그러게 말이다. 아, 그 와치(시계)인지 뭔지 그것 좀 갖고 와라. 시간 재서 영선국에 말해 줘야겠다.”
“그거 본영(本營)에 두었는데요. 오늘은 긴히 나오느라 안 들고 왔습니다.”
회중시계라서 원래 주머니에 넣었어야 한다. 그런데 워낙 비싼 물건이라 조선 사람들은 한 영대에 단 하나 있는 그 귀물을 쇠로 덧댄 함에 보관하고 있었다.
어차피 조선과 시간 체계가 다른 유럽의 시계는 실용적 용도로는 아직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그것을 직관적으로 척척 조선 시간과 맞출 수 있는 인간은 오직 주석뿐이었다.
홍총각은 혀를 차고 조선 사람답게 어림짐작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그가 반시진 정도가 지났다고 생각할 즈음, 혁명군 병사 하나가 시멘트를 나뭇가지로 꾹꾹 찔러 보더니 홍총각에게 돌아섰다.
“영대장(연대장) 동지, 다 된 것 같습니다요.”
“그래? 그럼 더 볼 것 있나. 던져 버려라.”
“예!”
병사들은 용을 썼다. 어두운 삼화부 앞바다에 실팍한 물소리가 몇 차례 울렸다.
남은 영국 선원들은 놀랍게도 딱히 분노하지 않았다.
원래 이들은 어딜 가나 천대받고 두들겨 맞고 함부로 처형당해 바다에 던져지는 파리 목숨이었다. 단지 그럴 자격이 백인 고용주에게만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혁명막부는 관대하고 풍부한 보수로 조선인에게도 그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홍총각에게 맞고 살아 돌아온 선원들이 동포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해 보았지만 모두가 조선인이 그럴 리가 없다며 외면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나 그건 실제 피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자의 사치다. 의리만으로 이익을 내버릴 만큼 고아한 자들이었으면 문명화된 런던에서 떳떳한 시민으로 살지 이런 세상 끝에서 뱃놈 일 따위 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현명한 조직 관리법이 시행되자, 영국인과 조선인은 한마음이 되어 교학상장을 이루었다.
삼화부의 건설 현장이 그럭저럭 공장 짓는다는 것은 알 정도가 되었을 무렵에는, 문순득처럼 영민한 사람의 지도하에 영국인 없이도 배를 띄울 수 있게 되었다.
혁명군에 주목할 만한 해군 장재(將材)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어차피 쌀 가져오는 거 아니냐는 명목으로 농상진흥국장 이강회가 총책을 맡았다.
해적함대, 아니, 혁명군 해군 함대는 조선 왕국의 현재 사실상 유일한 대규모 수입원인 호남 세곡로를 노리고 출정했다.
한성 판윤 김이익의 조언 덕에 이요헌이 경상도로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조순은 비변사의 이름으로 경상 감사 김회연을 파면했다.
지금까지는 적을 늘리기 부담스러워서 김회연을 묵살해 주고 있었지만, 이제 남한산성이 정리된 데다 이요헌이 합류한 이상 보아 넘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김회연은 예상보다 빠른 김조순의 행동에 혀를 찼다. 이요헌은 이 사태가 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과장되게 분개했다.
“김조순이 조정의 권세를 오로지하고 있다는 거야 삼척동자도 알지만, 임금도 아니 계신데 영백(嶺伯, 경상도 관찰사)같은 대관(大官)마저 제멋대로 갈아치울 줄이야! 이야말로 왕망이나 동탁보다 더하지 않은가!”
김회연은 이요헌의 뻔한 수작을 힐끗 보고 고개를 저었다.
“진정하시오. 김조순도 정말 내가 이 분부 받잡고 서울에 도로 올라오길 바라는 건 아닐 것이오.”
“그, 그렇다면?”
“결정하라는 거요. 항복할지, 아니면 항거할지. 항복이라면 서울로 올라갈 사람은 내가 아니라 공이오.”
‘포승에 잘 묶여서 말이지.’라는 군더더기는 붙이지 않아도 잘 들렸다. 이요헌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김회연은 그런 이요헌을 안심시키듯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어찌 역적에게 무릎을 꿇겠소이까? 공은 족히 걱정하지 마시오. 내 이미 통제영에 사람을 보내 놓았소이다.”
이요헌은 퍼뜩 깨달았다. 그가 김회연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것처럼, 경상감사 김회연은 확보한 돈으로 수군을 건설하고 있다.
“그, 그렇다면 강화도의 조운을 틀어막아…….”
수군으로 서울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뿐이다. 김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하지만 아직 전선이나 화포가 다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급하게 그리 하긴 어렵소. 일단은 경상우수영 수군을 전라도를 거쳐 올려 보내되 싸우진 않을 거요. 한편으로 호남과 기호의 물길과 방비를 살피면서 한편으로 평안도에 서신을 보낼 것이외다.”
혁명막부와 손잡는다는 것이야 납득은 못해도 동의는 한 바다. 그래서 이요헌은 목적 대신 수단에 대해 생각하다가 뭔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기왕에 전라도를 거쳐 간다면, 좌우 수영과 일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되오. 갈 때와 올 때 모두 뻔히 보일 텐데 어떻게 싸우지 않고 평안도까지 갈수 있겠소?”
“그것에 관해서는 내 계교가 하나 있소이다.”
김회연은 책을 하나 꺼냈다. 정약용이 과거 개화군주 이공의 명으로 편찬했던 영학해설이었다. 비록 폐주라고 해도 후대 사람들은 한영사전의 업적을 평가 해 줄 테니 억울하진 않은 셈이었다.
그 뒤쪽에는 유니언 잭의 정교한 도안이 부록으로 딸려 있었다.
“흑산도의 영길리 해적도배에게 대패한 이후, 호남의 좌우 수영은 요해를 지킬 뿐 나가 싸우지 말라는 명을 받았소. 모든 배의 돛에 이를 큼직하게 그려 내고 깃발도 새로 만들어 달아 적을 속일 것이외다.”
“아, 아니. 감사께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나는 영길리 배의 그림을 본 적이 있소. 양선은 그 크기부터가 장대하거니와 모양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다르오. 전선이나 귀선, 해골선, 방패선 무엇과도 비슷한 점이 없소이다. 배를 보면 다 들통날 것이오.”
김회연 또한 그 정도도 모를 자는 아니었다. 그는 미소지었다.
“만약 공이 전라 우수사라고 해 봅시다. 저편에서 전선 같은 배가 영길리 깃발을 달고 나타나면 뭐라고 생각하겠소? 경상 감사가 우리를 속이기 위해 가짜 깃발을 달았다 여기겠소? 아니면 영길리 해적이 우리나라의 군선을 빼앗아 탈취했다고 여기겠소? 나 같으면 뒤쪽으로 생각할 거요. 그러고서는 감히 나오지 못하겠지. 근처에 저들의 대박이 있다고 착오하여 겁먹을 테니까.”
이요헌은 그제야 무릎을 탁 쳤다.
“과연 이것이야말로 허허실실(虛虛實實)의 계책! 공의 지혜가 이토록 오묘하니 대의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그렇게 아부를 한 이유가 있었다. 이요헌은 재빨리 진중한 얼굴이 되어 그동안 아껴 두었던 말을 꺼내놓았다.
“나는 예전 경기도 수군절도사를 맡은 적이 있어서 그쪽의 길을 잘 알 뿐만 아니라 배 타는 데에도 약간의 경험이 있소. 그간 감사에게 폐만 많이 끼쳤는 데, 부디 내게 그 일을 맡겨 주시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총책임자가 이요헌이어야 만에 하나 그가 관에 붙들렸을 때 피해가 적다. 그리고 이요헌의 경력을 볼 때 그만한 인재가 따로 없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김회연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허락했다.
김회연의 말은 옳았다. 전라우도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의 병력은 영국 깃발을 단 조선 전선 3척을 보고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관이 요구한 물자를 바치기 위해 허덕대며 나왔던 어선들만이 황급히 도망칠 뿐이었다.
옥구현(沃溝縣, 군산) 인근까지 올라오자 이요헌은 완전히 안심하게 되었다.
한때 수군 장수를 맡았던 자로서 그 사실에 기뻐하기는 어렵지만, 충청수영과 경기수영의 수군은 호남과 영남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과연 감사의 계책이 신묘하구나. 퍽 한심하기는 하다마는, 수군이고 무엇이고 이 그림 하나에 감히 겁먹고 나오지를 못한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다행이 아니겠느냐.”
그렇다. 확실히 조선 수군은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게 나왔다.
마치 지금 이요헌처럼 껄껄 웃던 화용도(華容道)의 조맹덕을 깨우치는 것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앞에 영길리의 양선이 있소이다!”
통제사 오재광의 측근으로서 경상 감사가 특별히 ? 감시역이라는 점은 이요헌과 김회연 둘 다 알았지만 어른답게 서로 모른 척했다 ? 딸려 보낸 조라포 만호(助羅浦萬戶) 김진락(金鎭洛)이었다.
“양선이, 양선이 세 척! 게, 게다가…… 저 앞에는 아무래도 훈련도감 대변선 같습니다. 지금 영길리 놈들이 조운선을 들이치고 있소이다, 영감!”
그때쯤 해서 선두에 나와 본 이요헌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크기는 강화도에 왔던 그 양선(데이비드 스콧 호)보다는 훨씬 작으나, 위장한 조선 배가 아니라 확실하게 양선이었다. 깃발도 대충 책 보고 조잡하게 그린 이쪽과 달리 제대로 만들어서 당당히 나부끼고 있었다.
“저, 저놈들이 흑산도에서 이 북쪽까지…….”
이요헌은 간이 떨어진다는 진부한 관용구가 무슨 뜻인지 잘 알게 되었다.
다만, 그 ‘양선’에 타고 있던 자들 또한 거의 비슷한 기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조금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
1. 나중에 한 번 더 나오긴 하겠지만, 이때 영국이라고 무슨 질서 있는 문명국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싸움만 잘할 뿐이었죠. 오히려 일반도덕에 대해서는 진짜로 조선이 훨씬 나았습니다.
당시 영국은 아시다시피 빈부격차가 극심했습니다. (빈부격차 자체는 21세기가 19세기보다 훨씬 심하지만, 이건 부의 절대량이 훨씬 커진 탓이 더 큽니다.) 게다가 법을 부자들이 모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입법은 그들을 위해서만 돌아갔습니다.
그렇다 보니 절도죄나 파업, 시설 파괴 같은 일부 '부자들이 보기에 괘씸한' 죄목에는 대부분 사형이 적용되었죠. 빵 몇 개만 훔쳐도 가차없이 교수형이었습니다. 차라리 조선의 '유학적으로 보기에 괘씸한' 죄에 대한 사형이 나아 보일 정도.
이건 당시 영국에 감옥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사정도 한 몫 합니다. 놔줄 순 없고 감옥은 없으니 그냥 막 죽여 대다가,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본 끝에 영국이 짜낸 수단이 바로 유배형, 그 중에서도 오스트레일리아 유배입니다.
딱 대항해시대 노예 무역과 정확히 같은 운송 방식이라 도착하면 절반도 안 남을 정도로 사망자가 엄청났습니다(이는 나중에 운송업자에게 생존자 수대로 돈을 계산해 주면서 극적으로 개선되기는 합니다). 물론 도착해서도 노역에 시달렸죠. 조선에서도 세종이 기획했던 전가사변의 영국 스케일 버전이랄까요.
자연스럽게 동인도 회사 배도 이 하청을 받았습니다. 작중에서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초반부 양털 무역 관련으로 나왔던 파크 선장이 이 일을 했었습니다.
2. 파커 시멘트는 파커라는 사람이 만들어서 파커 시멘트입니다. 이탈리아 포졸란과 비슷한 색깔 때문에 로만 시멘트라고도 불렸습니다.
점토질 석회를 고온에서 소성하면 되는 간단한 제법으로, 여기에 물 비율만 잘 맞춰 주면 작중 설명대로 1시간 안에 응결 경화하는 시멘트입니다.
작중 시점으로부터 10년쯤 뒤에는 근대 화학공정으로 생산되는 포틀랜드 시멘트가 발명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주 광범위하게 쓰이는 인기 있는 자재였습니다.
3. 호남의 막대한 쌀 생산량은 실제 조선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전라 감사가 동렬 형제인 작중 김조순이 여기저기 얻어터지면서도 여전히 현재 조선 제1의 세력인 이유 중 하나이며, 호남의 세곡 운송권을 위임받은 훈련도감이 조선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는 증거죠. "대저 국가의 경상비용을 오로지 호남의 세곡에 의존하고 있으니..."라는 말이 정조 때 세곡 운송법을 논의하면서 나옵니다.
4. 조라포는 거제현에 있는 포구로 통제영의 기지 중 하나입니다. 김진락은 이때쯤 실제 조라포 만호였던 인물인데 작중에서는 부임 시기가 몇 달 정도 빠르게 조정되었습니다.
36. 어긋나는 비탈길(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