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36. 어긋나는 비탈길(2)
시준의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거대한 제국 대청에서 가장 군사력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인 순천부(順天府, 북경 인근의 행정구역)에서 요동 일대는 현재 텅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영국군을 막으러 몰려갔기 때문이다. 조선을 감시하고 봉금지를 지키는 성경에서도 거의 모든 군대를 보냈다.
그러니 치안 유지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임상옥은 까무러칠 정도로 좋아하며 마약과 무기를 팔아댔다.
임상옥은 외사통호국 부국장으로서 대외 업무 중 대청 무역을 전담하며, 혁명막부에서 수출 업무를 외주 받는 형식으로 상단 역시 이끌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막부 수출이 호황일수록 임상옥도 부자가 된다는 얘기다.
물론 성경 장군 화녕은 대노했다. 그는 조선에 강경하게 경고하는 자문을 여러 차례나 보냈다. 한 여섯 번째부터는 조선에 대한 군사 행동마저 암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같은 아시아인인 조선 사람들은 그게 허세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했다.
거기에 혁명의 장량 정약용의 솜씨로 정성스레 닦인 ‘조선왕의 사죄문’이 이미 상자 단위로 준비되어 있으니 외교적 문제는 없었다.
아무리 봐도 사신을 중간에 살해한 뒤 옷을 강탈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무뢰배 놈들이 재자관(외교문서 수발담당관)을 자처하며 조선왕의 공문을 배달했다. 우리도 청을 위해 영길리와 전쟁 중이라 단속이 미비했다는 절절한 사과문이었다.
그리고 대량의 아편과 총기도 뒤로 몰래 배달했다. 화녕은 절하면서 욕하는 인간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만주는 좀 과장해서 마적 떼가 군대보다 많을 지경이라 당장 조선을 어찌해 볼 수 없는 게 속 터질 노릇이었다.
주석의 혼인 축하를 의주에서 지휘하다가 평양으로 잠깐 따라온 임상옥이 정치국 회의에서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내 다 알아봤지요. 심양은 지금 이미 황제의 땅이 아니올시다. 이놈들은 지금 종이짝 써 갈기는 짓 말고는 당최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그러니 주석 동지와 정치국 위원 동지들께서 꼭 이 공창(工廠) 건립을 승인하여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이외다.”
윌리엄 오브라이언 드루리 제독의 전선 확대는 보급 수요의 증가를 불러왔다.
그러나 처벌이나 징계는 없었다. 어차피 중국이 얌전히 협상하는 대신 엄청난 대군을 동원했기에 장기전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영국 해군은 내친김에 원래 목표였던 왐포아와 마카오 등 강남 해안에도 따로 함대를 보내 맹공을 가했다. 어차피 북경 앞바다의 청군 해상전력은 이제 소멸해서 전투함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거니와, 천진에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을 분산하기 위함이었다.
로드 암허스트도 내분을 일으키는 대신 해결책을 찾았다. 그가 찾아낸 방법은 상식적이었다.
시준은 정치국 위원들과 함께 임상옥의 기획안을 넘겨 보았다.
“삼화부에 공창을 짓고 총과 탄약이며 포탄을 수리하거나 또 만든다……. 영길리국에서 솜씨 있는 공장(工匠)을 보내 준다는 것이겠지요?”
“물론이오이다. 보고 배우면 한두 해 안에 조선 사람들도 할 수 있을 겝니다.”
시준도 그게 그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5세기 조선이라면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19세기 조선이다.
400년 동안 기술이 발달한 건 유럽만이 아니며, 1970년대의 대한민국과 2010년대의 대한민국이 기술적인 면에서 전혀 다른 나라인 것처럼 조선도 그렇다.
군용 무기의 품질을 좌우하는 화학 지식이라든가, 첨단 기술의 결집체인 대형 군함 같은 것이라면 모를까 포환과 총알, 소총 정도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기술이다.
더군다나 조선인이라고 하면 원래 옛날부터 무기에는 진심이었다. 나라 망할 때까지 기계식 시계는 제 손으로 못 만들었어도 다연장 로켓포는 이미 4세기 전에 일찌감치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전근대에 정밀 시계는 장난감 이상의 가치가 없지만 신기전은 원수 놈들을 통쾌하게 박살 낼 수 있으니 어찌 보면 합리적인 조선 사람들다운 일이다. 어쨌든 그래서 총포와 화약은 조선인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지금 조선의 밀무역 공장도 서상 시절부터 시준의 손에 의해 체계적인 분업화과정을 도입했다. 이는 막부 설립 과정에서 공장영선국(工匠營繕局)으로 구체 화되었다.
요즘은 의주에서 평양까지의 신혼여행을 끝낸 시준이 눈물을 머금고 희사한 마차를 역설계하여 제법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총괄서결국장 정약전은 만약 똑같이 만들지 못하면 그 분해된 마차 값만큼의 예산을 국에서 깎겠다고 엄포한 상태였기에 진행은 빨랐다.
이런 기반이 있으니 어차피 통짜 쇠인 솔리드 포탄이라거나 이전부터 익히 본 총기류 정도쯤 못 만들 것은 없다. 야포나 함포 같은 고급 기술도 영국 기술자들이 참여한다면 해볼 만하다.
혁명무력국장 차형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영길리군 만 명이 쓸 만한 화약이 있을까? 혁명군도 모양만 총을 들고 다니는 자가 2할은 되는데.”
“저도 염초가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하였는데, 그건 자기네 땅에 염초로 된 산과 들이 있으니 걱정 말라 하더군요. 우리는 쇠붙이만 만들어 대면 됩니다.”
정치국 위원들은 서양 오랑캐의 말도 안 되는 허풍에 한바탕 껄껄 웃었다. 그게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시준 혼자였다.
시준은 인도의 광활한 초석 지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역사 매니아가 아닌 시준으로서는 전생은 아니고 윌리엄 자딘과의 환담 중 나온 얘기였다. 그리고 전생의 대영제국에 대한 지식은 결코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시준의 머리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러나 시준이 할 만한 생각은 대부분 다른 조선 사람도 할 수 있다. 시준이 하고 싶었던 말을 임상옥이 이어서 꺼냈다.
“여기에서 또 제가 슬몃 찔러 보지 않았겠습니까. 땅 빌리고 사람 쓰며 자재대는 돈 일부를 혹시 염초로 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매우 좋아하더이다.”
“그거 매우 좋은 안이오.”
시준이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찬성했다.
조선에는 어차피 은화가 많이 없는 데다 좁은 지역에서 한정된 자원을 돌리는 현재의 혁명막부로서는 화폐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능인 범용성과 운송 편리성이 모두 의미가 적다. 교환 자체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현물 거래가 훨씬 이득이다.
몇 가지 조정을 거쳐, 영국군이 평안도에 무기 공장을 건립하는 안은 통과되었다.
시준은 협상을 위해 존 레디 ? 윌리엄 자딘은 동인도 회사의 하청이라 이런 공식 업무에서 회사를 대표할 수 없다 ? 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레디 또한 이제 통역관이나 밀무역상이 아니라 주석이 된 시준에게 정중한 결혼 축하 인사를 전했다. 시준도 반갑게 맞아준 후 그와 계약 초안을 논의했다.
핵심은 이렇다. 영국이 기술자를 대고, 자금은 동인도 회사가 출자하며 노동력과 장소는 혁명막부에서 사람을 고용하거나 부지를 임대하는 식이다. 별도로 변경하지 않는 한 대금의 반은 곡식으로, 나머지 반은 초석과 유황으로 치른다.
따라서 공장의 소유권은 영국에 있다. 막부는 영국의 동의 없이 공장을 폐쇄하거나 노동자를 철수시킬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일하는 사람들이 임금이나 대우를 이유로 파업[strike]을 일으키면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니지요?”
“조선…… 아니, 혁명정부 측에서 조장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습니다. 의장 각하
[Mr. president]. 대신 새로운 근로자를 신속하게 충원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파업 중인데 어떻게?”
“예? 그야 해군이 진압하여 다 죽고 나면 말이지요. 일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됐소. 파업이 일어나면 우리에게 알려 주시오. 끌어가더라도 우리가 할 테니.”
현대 시점에서 보면 선진국이 후진국에서 노동력과 원료를 착취하는 전형적 제국주의 계약이다. 손해 안 보는 장사꾼 시준이 이런 계약을 맺어야 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힘이 없다.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 대청 전쟁, 그리고 내년쯤 일어날 확률이 높은 미국과의 전쟁에 정신없다 해도 그건 말 그대로 정신없다는 정도이지 조선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기회까지는 못 된다.
막부와의 협상에서 얻어지는 이득이 없다고 판단되면, 영국은 그냥 테이블 엎은 다음 조선을 통째로 합병하여 전진기지로 쓸 것이다. 시준으로서는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둘째로, 이건 현대인이 보기에나 불공정할 뿐 영국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한 약속이었다.
시준이 조심스럽게 추가한 특약에 따르면 영국은 생산 잉여분을 혁명막부에 저렴하게 공급하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막부가 전적으로 수요를 책임지는 대신 무기를 조선 정부나 청, 일본을 비롯한 다른 곳에 팔지 못한다.
제국주의 영국에 있어, 비유럽인을 상대로 쌍방 공평하게 무언가를 주고받았다는 것은 치욕에 가깝다. 이 정도만 해도 좋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준은 ? 아마 영국도 비슷한 생각이겠지만 ? 신의 성실하게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
‘생산되는 무기는 우선적으로 대청 전쟁에 쓴다는 약속이지만, 평안도에 공장이 있는데 평안도 사람들에게 유출이 안 될 리가 없지.’
조선이 모든 국면에서 후진국인 것은 아니다. 뭔가를 몰래 빼돌리거나 슬쩍하고 휘파람 부는 기술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시대 조선 사람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능력은 얕볼 수 없다. 심지어 이 방면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한 중국인에게도 인정받을 정도여서, 청에서는 ‘동이(東夷) 놈들이 동이질했다’는 관용구가 도적질의 뜻으로 널리 쓰였다.
많은 경우 범죄 의심의 발단은 수치심이나 양심에서 오는 망설임과 어색함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대개의 19세기 인간들에겐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작정하고 파헤치지 않으면 잘 모른다. 시준 자신조차도 어릴 때는 깜박 속은 적이 몇 번 있다.
훔쳐올 것은 비단 물건뿐만이 아니라 영국의 최신 무기 지식도 포함된다. 21세기에는 중국에게 타이틀을 뺏기기는 하였으나, 20세기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설계도 하나 없이 눈썰미와 근성만으로 자동차부터 집적 회로까지 뭐든 불법 복제를 일삼았다.
시준은 그것을 최대한 조장할 생각이었다. 수단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그는 정부의 수장이지만 이제 일가의 가장이기도 하며 가장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존 레디가 돌아가자 시준은 애써 자기를 합리화했다.
‘이때 영국은 뭐…… 추축국 같은 인류의 공적(公敵) 비슷한 거니까 영국에게는 마음대로 나쁜 짓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고는 외사통호국장 정약용을 호출했다. 오랜만에 조선에 상륙한 레디로서는 피곤할 것이나, 바로 그때를 노려 더 우려내야 할 것이 있었다.
시준의 생각대로, 영국이 국가 단위로 결심한다면 청과 전쟁하면서도 조선쯤이야 손가락으로 튕겨서 멸망시킬 수 있다. 이건 강철군주 이공이 보위를 지키고 시준이 존재하지 않는 조선이라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허나 그건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그러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시아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해군은 둘째 치고 동인도 회사부터가 너무 피곤해진다. 영국은 지금 프랑스 영토인 (구)네덜란드령 자바에 대한 사보타주 작업에 들어가 있다.
자바 섬과 청나라, 그리고 조선까지 한꺼번에 상대하려면 진짜 ‘국가적 결심’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더 지원을 요청하면 의회와 정부는 로드 암허스트함대의 무능을 먼저 의심할 것이다.
그러니까 영국의 힘 자체와 상관없이, 동아시아의 영국인들은 조선을 적대하고 싶지 않았다.
정약용은 그 틈을 찌르러 온 것이다. 그러나 신중해야 했다. 영국인들이 ‘씁어쩔 수 없지’ 하며 조선을 없애 버리겠다는 결심까지는 하지 않을 만큼만 찔러야 한다.
정약용 입장에서도 존 레디는 구면이다. 하긴 존 레디가 혁명막부의 주요 인사와 친분이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동인도 회사가 이 사람을 보낸 것이긴 하나, 그 덕에 정약용으로서도 좀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성경부에서는 혁명막부를 수상하게 보고 있소. 만약 이 일이 알려진다면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올 거요. 우리로서는 영길리국과의 오랜 우의 때문에 그만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니, 이는 벗을 위해 목이 잘림을 마다 않는 의리[刎頸之交]라 할 수 있소.”
이 정도까진 영국에서도 예상한 바다. 레디 선장도 뻔뻔스레 문경지교를 과시하는 정약용에게 크게 놀라지는 않은 채 물었다.
“대가로 무얼 더 원하십니까?”
“전선 두 척과 운선(運船, 수송선) 세 척이오. 물론 전선은 화포까지 있어야 하오. 그래야 청군을 막을 수 있겠지. 마땅히 선원도 함께 보내어 배 모는 법을 숙달시켜 주면 고맙겠소.”
배 5척, 그것도 군함을 양도하라는 말에 레디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청군은 육지로 올 텐데 웬 군함입니까?”
“그럼 당신들이 중국의 군세를 압록강 남쪽으로 한 발짝도 못 들어오게 막아줄 수 있소? 어차피 땅에서는 어느 누구도 중국군보다 많을 수 없소. 그렇다면 다른 길로 위협하는 수밖에 없지.”
“해상 방어라면 영국 해군이 맡아 줄 겁니다. 경험도 없는 조선인들이 군함을 가져봐야 쓸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원도 필요하다 말한 거요. 어차피 남의 나라인데, 그대들이 불리해 지면 다 그만두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소. 게다가 전쟁 끝나고 떠난 뒤에는? 우리도 스스로를 지켜야 하오.”
반박하기 힘든 말이었다. 레디 선장은 영국인은 그렇게 함부로 동맹의 우의를 저버리지 않는다면서 그 자신도 믿지 않는 거짓말을 웅얼거리다가 겨우 한 마디 입을 떼었다.
“중국군은 절대로 조선에 쳐들어올 수 없습니다. 영국 해군이 수도를 들이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전쟁이 끝나면 영국은 확실하게 조선을 보호하는 내용의 조약을…….”
“이보시오. 영길리국이 북경을 들이쳤다는 것은 나도 압니다. 허나 중국은 북경에 백만 대군을 쓰면서도 따로 조선에 20만을 보낼 수 있소. 전쟁 끝난 다음에 무슨 맹서를 하건 이미 조선은 다 잔멸(殘滅)했을 텐데 무슨 소용이오?
영길리군이 아무리 정예해도 겨우 만 명도 안 되는 숫자는 불변. 사람을 콩처럼 불려 낼 수야 없지 않겠소. 한 손이 열 손을 막지 못하는 법이지.”
어쨌든 정약용도 동아시아 사람이었으며, 동아시아에서 7천 명은 전쟁이라기보다 패싸움을 하기에나 적절한 단위다.
게다가 정약용은 영국군이 호왈 7천이니 실제로는 한 천 명쯤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배짱 좋게 못을 박을 수도 있었다.
“정 그리 장담하고 싶거든 다시 가서 영길리 본국의 기보군(騎步軍)을 적어도 십만은 데려오시오.”
영국엔 그런 거 없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과 건곤일척을 치를 때도 영국 단독으로는 10만 대군을 동원하지 못했다.
아직 청을 깨뜨리지 못해 영국군이 실제적 일당백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 동인도 회사 측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약용의 논리정연함 때문에 존 레디가 물러난 건 아니다. 이미 영국도 거기까지는 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회에서 승인한 전쟁예산 중에서는 ‘현지 우호 세력’, 그러니까 조선과의 적당한 협상을 위한 항목이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중고 선박 5척 정도는 로드암허스트가 확인한 부담 범위 내였다.
그러나 그것을 정직하게 쓰느니 간판 내리고 만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호구가 아니다. SF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디스토피아 기업국가 지배를 실제로 실천한 인류 유일의 집단인 것이다.
동인도 회사는 면밀하게 배를 골라내어 무장 상선 2척을 군함이라 사기 치고 상태 안 좋은 화물선 3척을 최신 수송선으로 둔갑시켜 내주었다. 당연히 문서는 신규 함선 5척 기준으로 만들어서 차액을 꿀꺽했다.
하지만 심지어 시준조차 만족스러운 거래라고 착각했다. 영국인이 보기에나 무장 상선이고 중고 화물선이지 조선인이 보기에는 든든한 군함에다가 장대한 수송선이었다.
인류의 대적 영국을 상대로 이득만 챙기기에는 시준의 관록이 아직 약간 모자랐던 셈이다.
시준은 이제 이것으로 지난번에 구상했던 사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우선 전함 1척은 삼화부에 남겨 이강회와 문순득이 그 제도를 충분히 연구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1척과 화물선에 실은 혁명군으로 일을 해 볼 계획이었다.
그래서 시준은 총괄서결국장 정약전과 의논했다. 그런데 역시 시준의 얄팍한 생각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영국군이 북경 일대를 박살 내고 있는 이 기회에 발해만과 요동 바닷가를 좀 털어보자는 시준의 제안에 정약전이 돌려준 반응은, 아쉽게도 경멸이었다.
“내가 뭐 이제 와서 해적질이 도의에 어긋난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겠소만, 주석 동지. 그건 얻을 것도 별로 없으면서 청국의 병사만 불러오는 어리석은 일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소.”
여긴 직장이니만큼 정약전 또한 정약용과 같이 태도를 바꿨다. 그는 조카가 아니라 주석을 대하는 예로 말했다. 하지만 내용은 훨씬 신랄했다.
시준은 사회적으로 수치스러운 실수를 했을 때 갑자기 존댓말을 하며 거리를 두는 친구를 본 기분이었다.
“어, 얻을 게 없다고요?”
“그렇소. 우선, 누구 중국의 뱃길을 아는 사람 있소? 보내준 영길리 선원이란 것도 죄다 천한 부랑패로서 시키는 대로 돛줄이나 당기고 키나 잡는 자들이던데, 제대로 된 길잡이 없이 외해로 잘못 나갔다가 자칫하면 귀중한 양선을 그냥 잃어버리게 되오.
하긴 차라리 그게 낫겠군. 바다에서 굶주려 떠돌다가 청국 배에 붙들려 일이 새어나가게 되면 만사 끝장이오이다. 황해는 풍랑의 변화가 극심한 곳이라는 점을 주석 동지께서는 모르시오? 선전선동국장 동지(푸셰)가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지 잊어버리셨소이까? 그 성채만 한 대선조차 걸레짝이 되어 용천부에 떠내려오지 않았소.”
시준은 입을 벌렸다. 생각해 보니 이건 조선 국내 항해와는 다르다. 자기 나라에서도 툭하면 배가 사고로 침몰하는 조선에서 외국에 배 보내는 일이 만만 할 리 없다. 정약전은 계속해서 시준을 야단쳤다.
“그리고 둘째로 요동과 등주 빈해(해안)의 호구(戶口)며 부유하고 가난한 곳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소? 도대체 어딜 털어올 거요?
설마 그 많은 돈을 쓰며 배를 내어다가 다 쓰러져가는 어촌 민가 몇 개 들어가서 냄새나는 옷가 지나 가져오자는 건 아니겠지. 청국의 병영이나 수영은 어떻게 피할 작정이시고? 도적질이 그렇게 쉬웠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죄다 비적 노릇 하겠지요!”
진실을 가지고 사람을 팰 수 있다면 시준은 전신 골절상으로 사망했다.
그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내치는 공무원의 경험으로, 돈벌이와 협잡질은 상인의 경험으로 어찌어찌 해 나갔지만 본격적 국가 전략이 되니 밑천이 드러난 꼴이었다.
“국장 동지의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크게 실수할 뻔했습니다.”
정약전은 시준의 솔직한 인정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정약전의 나이나 되니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정도 지위에 있는 자가 이 어린 나이에 자기 실수를 이처럼 단번에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성 아래 내려가 강철군주 이공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시준은 자기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착각하기 쉬운 자수성가 부류다.
정약전은 자기 동생이 왜 상한을 수제자로 두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처럼 나를 알되 적을 알지 못하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데[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손자병법』] 우리는 한 번도 질 수가 없소이다.
중국처럼 사람과 물산이 많지 않으니까. 영길리 사람들이 쉬이 오가는 것처럼 보이셨나 본데, 그들은 원래 조상부터 해적이라 이런 항해에 이골이 난 데다가 본국(여기서는 인도)에서 새롭게 보충하거나 수리를 바삐 할 뿐이지 거저 그리하는 게 아니오이다.”
“실로 그렇군요. 그러면 일단은 그 배는 법식을 연구하여 따라 만들거나 움직이는 바를 배우는 데에 쓰고…….”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소이다. 주석 동지의 말씀대로 써먹기는 해야지요.”
정약전은 원래 시준이 어떤 나라 왕처럼 끝까지 자기 말이 옳다고 바득바득우겼으면 결코 가르쳐 주지 않으려 했던 책략을 귀띔해 주었다.
“아까 일러 드린 병법의 구절을 숙고해 보십시오.”
시준은 정약전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잠깐 생각하던 그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정약전은 적과 나를 모두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잘 모르는 요동이나 등주를 함부로 치면 안 된다.
기왕에 배 가지고 강도질을 하려 마음먹었다면 그런 어려운 상대 말고 더 쉬운 상대, 시준이나 다른 혁명막부 사람들도 아주 잘 아는 상대가 있었다.
‘모르는 외국보다는 잘 아는 아국(俄國), 그러니까…….’
조선은 길도, 말도, 허점도 잘 아는 나라다. 이강회와 함께 올라온 서울 군관들에게 물어보면 군의 배치도 대강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시준은 조선 수군이 방해가 될 만한 힘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한 민가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알짜배기 사냥감이 있다.
“호남에서 올라오는…… 조운선!”
정약전이 처음부터 도의를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미 그런 건 다 내다버렸기 때문이다.
흑산도 유배 경험으로 그 동네를 잘 아는 손암 정약전은 가늘게 미소지었다.
“바로 그거요. 주석 동지.”
작가의 말
1. 조선이 특이했다기보다는, 기계식 시계(특히 태엽)는 원래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라(조립이나 작동 메커니즘의 복잡성 때문도 있는데, 그보다는 '작은 금속 부품'을 만들 원천적 가공기술이 문제였습니다) 훨씬 많은 자원과 발달된 기술이 있었던 중국에서도 독자적으로 만들지를 못했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작동 원리 자체에 관심을 가졌던 건 일본 정도일까요. 일본에서는 이를 연구해 자동인형 등을 만들었지요.
게다가 조선이 기계식 시계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시간 체계가 어차피 서양과 달라 실용적 가치가 없어서였기도 합니다. 청 황실은 돈 많으니까 그냥 장난감 용도로 유럽의 최고급 시계를 사들였으며 사실 일본의 자동인형도 장난감의 일종이지요.
허나 합리의 화신 조선 사람들은 그런 장난감에 비싼 돈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서울의 올림픽대로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이 빚 내서 제로백 5초짜리 슈퍼 스포츠카를 살 이유는 없는 거죠.
정조 대의 고위 조신 서유문은(작중 시점에서도 현역입니다. 등장을 안 했을 뿐...) 북경에 갔다가 이러한 자동인형 겸 시계 도합 수억 냥 어치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왜 기뻐했느냐면, '이런 말도 안 되고 불합리한 사치를 부리니 청은 반드시 곧 망할 것이다' 라는 이유입니다.
흔히 필요 없는 것은 쳐내고 실리에 합치하는 것만 택하는 것이 합리적 방향으로 보이고 실제 조선도 그렇게 행해 왔으나, 기술과 학문의 발전이란 의외로 많은 부분이 비논리적인 사치와 광기, 열정에서 나오곤 하기 때문에.. 오로지 생활/제사/무기 3가지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다 사치로 봤던 엄근진한 조선에서는 뭐가 기상천외하게 발달해 볼 여지가 적었죠.
2. 파업이 스트라이크라고 불리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작중 시점으로부터 약 3, 40년 전) 런던의 파업 때 선원들이 배의 돛줄을 쳐내어(struck) 파업 지지의 뜻을 표하고 배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는 데에서 유래합니다. 다만 이때는 노사 협상 절차 같은 건 없었고, 존 레디의 말처럼 말 그대로 쌍방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3. 20세기 중반 막 건국된 한국에서 별다른 지식인이나 산업이 없을 때는 별 수가 없었습니다. 19세기 미국이, 20세기초 일본이, 그리고 21세기 지금 중국이 그러고 있듯이 선진국의 기술을 뻔뻔하게 베껴와야 했죠. 국가도 이걸 알았기 때문에 역시 위에 열거한 나라가 그때 그랬듯이 한국도 이러한 불법 복제를 국제적 장벽으로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베끼는 것도 뭘 알아야 쉽지, 그때는 진짜 맨땅에서 열혈과 근성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마는 자동차를 설계도 없이 중고차 얻어와서 역설계한 일이나 모 기업에서 외국 전자기업의 프레젠테이션 시 보여주는 회로도를 보고 6명이 담당구역을 나누어서 눈으로 집적회로 회로도를 외워;;; 호텔에서 그려 베낀 다음 그걸로 자체 회로를 만들어냈다는 썰은 유명하죠.
36. 어긋나는 비탈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