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36. 어긋나는 비탈길(1)
조정에서 사도세자의 시호가 논의되고 있을 때, 김조순의 딸이며 조선의 전 왕비인 안동 김씨는 ‘공정한 처사’에 의해 궁이 아니라 김조순의 집에 있었다.
그녀는 폐주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원자였던 자신의 아들, 아직 이름도 받지 못한 그 어린 것을 감싸 안고 흐느꼈다.
“네 외조부가 우리를 죽이려 하는구나!”
김조순이 이병원을 왕위에 올리면 원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반드시 원자를 추대하는 반란 세력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김조순은 역적의 가족으로 실각한다.
김조순이라면 그러기 전에 능히 외손주를 없애 버릴 위인이다. 어차피 폐주의 아들이 살아남은 전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난 지 만 2년도 되지 않은 아들이 그런 이치를 알 리 없다. 그저 어미가 우니 같이 울 뿐이었다.
이 아이의 증조부인 사도세자는 딱 이 정도 나이에 천자문 수십 자를 써 내려 갔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그냥 평범한 아기에 불과한 원자가 과연 그 현명하기로 유명한 효명세자가 맞는지 의심할 수도 있다.
허나 그 일화가 사실이면 김정은의 3살 사격 6살 승마도 사실이다. 전제 군주의 유년기 천재 열전이란 게 다 그렇고 그런 법. 원래 왕자 태어나는 날에는 날씨가 궂으면 용의 승천이요 맑으면 휘황한 서광이다.
그날의 구름은 그게 뭐든지 간에 아무튼 상서로운 오색구름이다. 대전을 감싸는 고아한 향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것을 감지해내는 초감각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러니까 출세를 못 하는 것이다.
김씨도 왕실의 일원으로서 그런 과장쯤이야 알고 있었기에 아들에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김씨가 아들에게 느낀 것은 동정뿐이었다.
그녀는 불과 한 해도 지나지 않아 일국의 후계자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죄인 신세로 전락한 아들이 너무나 불쌍했다. 자신이야 죽는다고 쳐도, 이 아이는 이제 동서남북도 분간하지 못하는데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김씨는 아들의 눈물 자국을 지워 주었다. 왕자라서가 아니라, 이 무구한 어린 것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무슨 짓이든 해야 했다.
그런 결심을 다지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김씨는 아까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녀가 신뢰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나인 현완(玄婉)입니다. 마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귀 때문에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현완의 마음이 가장 찢어질 것임을 알기에, 김씨는 그 호칭을 탓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평안도까지 끌려갔다 오면서도 배신하지 않은 충직한 나인을 안으로 들였다.
“그래, 무슨 일인가?”
현완은 아이를 어르는 척하며 김씨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짧고 빠르게 속삭였다.
“제 친정 쪽 당숙 한 분이 조문(趙門, 여기서는 풍양 조문)의 식객이었는데, 고(故) 지중추부사의 아들이 긴히 의논하고자 한다는 상언입니다.”
고 지중추부사란 이조 판서를 역임하였으며 3년 전 졸한 조진관(趙鎭寬)을 말한다. 그리고 그 집 아들은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아직도 문과 급제를 못했다고 들은 조만영(趙萬永)이었다.
(과거의 최고 채점자인) 왕이고 뭐고 다 날아가 과거 대신 김조순 엽관제로 돌아가는 조정에서는 볼장 다 봤지만, 역사대로라면 2년 뒤에 당당히 급제하여 청요 엘리트 코스를 밟으니 조금 억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사항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조만영이 방금 김씨가 끌어안고 있던 아들의 아내가 될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나중에 효유대왕대비(孝裕大王大妃)라고도 불리며 고종을 즉위시키고 조선 최후의 수렴청정을 담당할 그 신정왕후 조씨다. 물론 부친 조만영 역시 풍은부 원군(?恩府院君)에 봉해져 풍양 조문 세도 시대를 풍미한다.
김씨가 그러한 미래는 몰라도 풍양 조문이 일대의 명문가라는 것은 잘 알기에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김씨는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중얼대듯 작은 소리로 물었다.
“대비 전하께서 조문을……?”
“아니오. 수주군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곧 앞뒤를 깨달았다. 그녀 역시 일국의 왕비였던 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수주군 이병원은 지금 그녀와 대척점에 있다. 현재 상황이 아무리 우호적으로 풀린다 한들 결국 둘 중 하나밖에 살지 못하며, 이병원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시호를 바치는 논의가 공개적으로 나온 지금 죽는 것은 김씨와 원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애당초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영안부원군 김조순이 왕을 압박해 쫓아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차기 왕을 세우고자 저울질하고 있어서이다.
왕실이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이유는 김조순 때문이다.
논리적 귀결상, 그렇다면 김조순을 없애는 것으로써 일이 해결될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해낸 김씨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다행히 아이는 이미 현완이 넘겨받았기에 아들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다.
‘부친을 치라는 것인가!’
이미 부친이 아들과 딸에 사위며 외손주까지 다 기꺼이 죽여 버릴 태세인데 왜 망설이느냐고 묻는 것은 현대인의 발상이다.
조선 시대의 관념으로는 부친이 자식을 죽인다 할지라도 자식은 항거나 보복은커녕 불평조차 할 수 없다. 그런 것은 불효이며 불효에는 죽음뿐이다.
부친은 필요하다면 ?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사소한 불편을 이유로도 ? 언제든지, 얼마든지 처자식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건 김조순이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김조순이 특별히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신민의 모범이 되는 왕실에서도 영조가 가족을 어떻게 분류해서 죽여야 하는지 기준을 세운 바 있으니, 이는 국가의 권장 사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조에게는 한시바삐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인간이 둘 있었다.
동생을 왕위계승자로 세워 반역자들의 좋은 떡밥으로 만든 형 경종과, 왕자신분 믿고 아무나 손에 걸리는 대로 때려죽이고 찔러죽이던 ? 그리고 부친도 그 대상에 넣으리라 공언했던 ? 아들 사도세자다.
경종은 영조보다 윗사람이고 사도세자는 반대다. 현명한 임금 영조는 존장(尊丈)을 우대하는 예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형의 경우에는 평생토록 부정하며 게장대왕의 왕관을 거부했다.
그러나 아들의 경우는 폐서인하여 왕과 세자가 아닌 부자 관계로 한정 지은 다음, 칭기즈 칸도 주저할 방식으로 대놓고 죽여 버렸다.
동생이 형을 해치는 것은 천지간에 용납할 데가 없는 패륜이나,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것은 살인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경종은 특별히 잘못이 없고 사도 세자는 죽어도 싼 연쇄살인마였다는 사실보다는 이쪽이 더 중요한 이유다.
이것이 왕실에서 선도하여 제시한 조선의 윤리다. 다시 말해 김조순은 이 시대의 도리, 그중에서도 가장 첫 줄에 세워지는 효(孝)를 어긴 적이 없다.
허나 김씨는 이제부터 그것을 어겨야 한다. 살아남고 싶다면 말이다.
영조가 국왕이었음에도 사도세자를 공법으로 처벌하지 못하고(논죄하면 뻔한 반대 때문에 죽일 수가 없다) 사적 형벌을 집행했듯이, 매우 높은 신분이 되면 매우 낮은 신분과 마찬가지로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법은 소시민의 자기 통제 수단이고 장동 김문과 왕족은 소시민이 아니다. 그러므로 김씨가 해야 하는 일은 법적 의미의 파출이나 세력 약화 따위가 아니라 신화적 의미의 부친 살해다.
현완이 짐짓 큰 소리로 ‘아녀자들이 할 법한’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가자, 김씨는 현완이 원자의 옷자락 속에 살짝 넣어 준 과자 봉지를 꺼냈다. 이 어려운 때에 어디서 용케 구한 당과(중국 과자)였다.
아이는 반색하며 손을 내밀었다. 김씨는 그것을 무시한 채 봉지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가락을 몇 번 휘젓자 과자와는 다른 감촉이 잡혔다.
얇고 작은 종이쪽은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사이에서 와삭와삭 떨렸다. 김씨는 표면상 조만영의 서신으로 위장된 수주군의 전갈을 읽었다.
조제프 푸셰는 원래 프랑스 제국의 오트란토 공이지만 요즘은 혁명막부 선전선동국장으로 부업을 뛰고 있다. 부단한 노력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인생 이모작을 영위하는 푸셰는 뭇 노인의 귀감이라 할 것이다.
푸셰는 아직까지 건강한 눈에 감사해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사람들이 혁명군부(막부)라 칭하는 이 조선 혁명정부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중 혁명을 실제 경험한 우리 프랑스 사람들의 도움이 가장 큰 요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 외의 여러 정치적?외교적 요인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빈틈없이 맞아들어간 것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왕의 군대를 깨뜨리고 다리를 잘랐음에도 반년이 넘게 이 평안도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수도의 정치 상황이 혼란하기 때문이다. 조선을 속국으로 두고 있는 청이 간섭하지 못했던 이유는 영국인들의 침탈 때문이다.
게다가 이 두 가지는 서로 얽혀 있다. 말하자면 (……) 이런 이유로 이 두 가지 요인은 근시일 내에 해소될 것 같지 않으며, 만약 그렇게 될 때쯤이면 혁명정부는 이미 그러한 외부 요인이 없어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 놓았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평안도 사람들의 드높은 혁명열의와 함께하는 의장
[president] 정시준의 존재 때문이다. (……) 단언하건대 이 젊은이는 내가 여태까지 만난 모든 황제와 왕, 독재자와 장군, 귀족과 성직자, 연설가와 학자를 통틀어도 가장 경이로운 영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그 나이 때 리세 루이르그랑(lycee Louis-le-Grand, 루이 왕립 중고등학교)에서 비 쫄딱 맞으며 왕은 듣지도 않는 연설을 중얼거렸을 뿐이다. 보나파르트는 허름한 하숙집에서 근근이 먹고사는 초임 장교에 불과했다.
이 땅에는 프랑스 같은 문명국만큼의 사회 체계가 없기에 출세도 더욱 전격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여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린 나이에 후원자의 위광이 아닌 스스로의 힘만으로 한 정부의 수반이 되어 자리를 굳힌 예는 내가 알기로 위대한 알렉산드르[Alexandre le Grand, 알렉산더 대왕] 뿐이다.
게다가 시준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스승이나 왕궁의 유복한 환경이 없었다. (……) 그는 고아였고, 경멸받는 장사꾼이며 피해야 할 폭력배였다. 잠깐을 두고 배운 관리 출신 학자(정약용) 하나와 영국과의 밀무역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서적 정도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 왜소한 경험의 폭에서 어떻게 그러한 지식과 예지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프로이센 사람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말처럼 선험적(a priori)인 지식이 정말 있으며, 문명과 이성은 경험에 관계없이 인류 공통의 배경인 것일까? 그래서 아시아에서도 이러한 사람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인가? 나는 알수 없다.
(……)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조선에 머물며 이 혁명 과업을 완수하고, 동시에 정시준이라는 한 인간을 면밀하게 관찰해 보고 싶다.
어차피 조국에서 배를 보내지 않는 한 ? 외방전교회에는 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유럽에 연락하는 데에 실패했거나 보나파르트가 나를 버렸거나 둘중 하나다 ? 내가 돌아가는 날은 아마 이 혁명정부가 프랑스에 정식으로 사절을 파견할 만큼 발달하는 날이 될 것이니 말이다.
아니면 ? 혁명정부가 파멸하고 내가 비장하게 도주해야 하는 날이거나.>
거기까지 적던 푸셰는 밖에서 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노크를 하기 힘든 조선식 문과 그에 맞춘 ‘인기척’이란 예절은 이제 푸셰에게도 익숙해져 있었다.
“무슨 일인가?”
“주석께서 납시면 언제든 지체 말고 고해바치라 하셔서…… 먼저 온 자들이 이르기로 곧 당도하신다는 모양입니다요.”
“오, 그런가. 고맙네.”
푸셰는 기지개를 켰다. 그는 쓰던 비망록을 다시 훑어보았다.
잠깐 생각하던 푸셰는 마지막 줄이 적힌 부분을 얇게 찢어내어 개인용 난로(화로)에 던져 버렸다.
조제프 푸셰는 종이가 타면서 피워 올리는 냄새를 음미하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시준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푸셰가 기다리고 있는 것에 조금 놀랐다. 푸셰는 지유를 조용한 방으로 옮길 때까지 묵묵히 따라오다가 그 일이 끝나고 나서야 시준에게 말을 걸었다.
“우선 결혼 축하하네. 이제 얘기 좀 할까.”
“감사합니다. 그러시죠.”
“그래, 신혼에 미안하네만 바로 용건을 말하지. 정부가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고 있어서 안 되겠어. 역할 분담은 어느 정도 정립되었지만, 업무의 취합과 종합적 수발을 맡을 지원부서가 필요하네. 언제까지 일 있을 때마다 정치국 회의만 열어댈 텐가?”
관료조직에서 총무부서가 맡는 역할은 보기보다 대단히 중요하다.
수뇌가 말 그대로 뇌(腦)로서 결심하고 사업부서가 팔다리로서 행동한다면, 총무부서는 심장과 위장이라 할 수 있다.
팔다리 없이 사는 사람은 많지만 심장 없이 사는 인간은 없다. 총괄부서는 물자와 사람을 분배하고 업무와 조직을 조율하며, 뇌와 사지의 사이에서 보고를 요약하고 지시를 걸러내어 과부하를 방지한다.
실제 사업과는 연관이 적음에도, 대부분의 조직에서 서열상 총괄부서가 첫째인 이유가 그것이다. 조선 육조에서도 이조(吏曹)를 으뜸으로 친다.
물론 그거야 전직 공무원이었던 시준이 더 잘 알았다. 허나 그러지 못하던 이유가 있었다.
혁명막부 정치국 위원은 모두 평안도의 유력자이자 중앙인민회의에서도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자기가 배제된다는 인상을 주어선 안 된다.
그래서 시준은 지금까지는 그들의 자발적 협조를 얻을 수 있도록 일부러 일종의 봉건제 상태를 방치했다.
지금 막부의 각국은 서로 실적을 내기 위해 알아서 보급을 해결하고 자체적 연락망을 구성해 가며 경쟁하는 상태였다. 심지어 국장이 누구냐에 따라 규모와 체계부터 크게 달랐다.
그리고 이 차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접속 오류를 호환시키는 장치가 정치국 회의였다.
이 체제는 물론 비효율적이지만, 각국의 국장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게 하는 장점도 있었다.
실제 자신이 제안한 의견이 통과되거나 자기가 반대한 사업이 무산되면서 통제력을 실감하는 것이다. 권력욕의 충족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날 때가 왔다. 푸셰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해 주었다.
“혁명군과 협동농장(상조농장)이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어. 하지만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야. 국가는 군대와 곡식만으로 굴러갈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말일세. 이 난장판을 자네 혼자 힘으로 수습하려면 자네는 앞으로 10년은 아내 얼굴도 보지 못할걸.”
시준은 푸셰의 과장에 피식 웃었다.
‘저 양반은 이 정부가 10년 이상 갈 거라고 생각하나 보군.’
그만큼 조제프 푸셰도 시준을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시준도 혁명정부를 지유 구출의 과정에서 발생한 사생아쯤으로 여기고 내버릴 생각은 없었다.
시준이 처음 걱정했던 것처럼, 여기에는 이제 너무 많은 사람의 희망과 목숨이 걸려 있다.
시준은 전생의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습니다. 이제 정리를 하죠.”
저항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일단 대부분의 국장들은 혁명군이나 상조농장원이 깡패처럼 쳐들어와 이것저것 빼앗아가는 데에 질린 참이었다.
의외로 혁명무력국장 차형기와 농상진흥국장 이강회 또한 적당한 조율을 바랐다. 너무 급격하게 벌여 놓은 사업 때문에 그들은 지금 산사태를 바라보는 이 재민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금 결혼하고 온 새신랑 기분 잡치게 하기 싫었던지라, 주요 국장 및 정치국 위원들은 조금씩 자신의 권한을 양보했다.
이제 타락해 버린 시준은 또 그쪽 공화국에서 이름을 따와서 조직지도국(組織指導局)을 발의했다.
그러나 조선에서 조직이라는 말은 organization의 번역어가 아니라 무언가를(주로 거짓이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조작해서 짜낸다는 뉘앙스에 가까웠다.
행정(行政)이나 총무라는 말도 현대와는 의미가 약간 다르다. 그래서 혁명막부의 인사, 서무, 재정부서는 결국 정약용의 제안을 따라 총괄서결국(摠括署決局)이 되었다.
국을 만들었으면 국장을 임명할 차례였다. 시준이 막부 으뜸 부서의 책임자를 말하자 외사통호국장 정약용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게 추호도 그런 뜻은 없으나, 주석 동지께서 이리 하시면 다른 사람들은 부당한 총애가 있다고 여기게 될 것이오.”
“그분께서 농상진흥국장(이강회)과 함께 삼화부의 어민을 지도한 성과는 작지 않습니다. 문무 양도에서 견문이 넓고 학문을 좋아하며, 정배(定配)를 마다하지 않은 절개의 선비로 공사를 엄단하니 실로 제가 가장 믿고 가까이 둘 수 있는 사람입니다.”
후보자는 다름 아닌 정약전이었다. 시준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인 조제프푸셰 대신 그와 비슷한 어둠의 참모를 갖고 싶었다.
정치국 위원 중 몇 명은 시준의 암시를 알아들었다. 절개의 선비 어쩌고 했지만 그 말은 곧 정약전이 평안도에 연고가 없어 세력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주석의 측근을 한 계파가 장악하는 일은 곤란하니 꽤 그럴싸해 보였다.
이는 시준이 더 이상 친분과 인맥을 기반으로 사람을 쓰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공적 정부의 첫걸음으로서 권장할 만한 일이었다.
정치국 위원들은 정약전의 공정함을 강조하면서 이 인사를 승인했다. 주위 사람이 대부분 시준의 휘하나 영향력 밑에 있어 거절할 수도 없는 정약전은 이 소식을 듣고 씁쓸하게 웃었다.
시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약전은 현재 시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개인 참모만이 아냐. 정약용, 이강회, 그리고 문순득이라는 표류 경력자를 한꺼번에 다스려 묶을 수 있는 자는 정약전뿐이다.’
이강회와 문순득은 현재 시준이 확보할 수 있는 인재 중 최고의 조선술과 항해술 전문가다. 문순득은 영국군과 관군의 충돌, 그 과정에서 발생할 민폐를 예견한 정약전의 설득으로 같이 따라온 상태였다.
정약용 또한 이양선과 일본에 대해 지식을 갖고 있다. 정약용은 현재 막부의 외교 담당자고 조선의 외교는 항해 없이 성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3명은 조선을 정리하는 대로 전개될 혁명막부의 대외 사업에 필수적인 인재들이었다.
그리고 정약전보다 이를 총괄하기에 적절한 사람은 없다.
그는 문순득에게는 존경받는 어른이요, 이강회에게는 스승의 형이며 정약용에게는 그냥 형이다(이게 제일 무섭다).
시준은 이들을 활용해 가까이는 어업과 운송을 활성화하고, 멀리는 조슈 번이나 영국과 주도적 무역을 트기 위해 해양 진출의 초석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장 해양 담당 부서를 만드는 것은 지나친 형식주의다. 강철군주 이 공이 급히 꾸렸던 통무아문이 어떻게 망했는지 보면 잘 알 수 있다. 간판이 중요한 만큼 실질도 중요한 것이다.
우선은 총괄부서에서 전체적인 향방을 보며, 이강회의 농상진흥국이나 정약용의 외사통호국을 통해 자원을 그쪽에 배분하고 준비를 시작하는 게 합리적이다.
결혼 때문에 과도한 도파민이 분비되었는지, 시준은 평소 잘 안 하던 긍정적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단번에 많은 걸 바랄 순 없지. 일단은 동인도 회사한테 어떻게든 사기를 쳐서 배 몇 척 우려내 보자. 그걸 기반으로 지금 보나 마나 개판 되었을 중국북부 해안에서 보호세를 뜯거나…….’
현실성은 둘째치더라도, 아무튼 시준에게 정직하게 돈 벌 생각 따위는 개미뒷다리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시준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만큼 결혼이란 게 중요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괜히 인륜지대사가 아닌 것이다.
시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21세기에도 못 해본 결혼을 해서 조선에 정착한 시준의 영혼은 이제야말로 명실상부 19세기에 있었다.
작가의 말
1. 영조는 왕이니까 그런 거고, 아무리 동생, 자식, 조카 등 비속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조선에서조차 '일단은 죄'였습니다. (패는 건 죄가 아니었음) 허나 비속살해는 법적으로 당시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형이 아우를 죽이고 어머니가 딸을 죽이는 일은 살인으로 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서 사형까진 안 간 기록이 세종 대에 있습니다.(세종 17년 6월 5일 을사 3번째기사) 요지는 법에 처형하라고 안 되어 있으면 처형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적 결론이지만, 조선 초기든 말기든 극단적인 봉건 신분질서는 별로 안 달라졌다는 한 예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자식이 부모를 죽였다거나 하는 경우는 얄짤없이 사형, 집의 연못화, 고을 강등, 수령 파직 등 가차없는 정화조치가 이루어졌죠.
현대 한국에도 (선진국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존속살해에 가중처벌을, 비속살해(영아살해)에 경감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2.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게장과 감을 같이 먹으면 탈난다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다만 당시의 영조는, 아마 경종이 몇 년 정도만 더 살아 있었어도 반역자의 수괴로 몰려 틀림없이 죽었을 위치였습니다. 추리소설의 말마따나 '누가 이득을 보느냐' 지요. 그래서 당대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조가 경종을 죽였다고들 믿었습니다.
3.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전, 학교의 수재로 뽑혀 루이 16세의 방문 시에 혼신의 힘을 다한 대표 연설을 하였지만 루이는 날씨도 비 오고 해서;; 잘 안 듣고 돌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는 나중에 왕공귀족에 대한 판결은 오직 사형뿐이라는 공포정치를 펼치죠. 그리고 푸셰가 칸트 얘기 한 부분은(칸트는 작중 시점에서는 꽤 최근, 1804년 죽었습니다), 밝혀 두자면 푸셰가 칸트의 아 프리오리를 그의 방식대로 이상하게 꼬아 놓은 것입니다. 원래 칸트는 저런 인류 공통의 무의식 어쩌고 하는 얘기를 하기 위해 주장한 게 아니었습니다. (칼 융은 아직 태어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4. 시준이 생각한 그쪽 이름은 정확히는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로서 정부기관은 아니고 당 내부의 기관입니다. 다만 그 나라는 당이 지배하는지라 단일 부서로는 북한 최대의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 조직지도부는 서무행정과는 좀 거리가 있고 인사/감사부서에 가까운데... 사회주의 국가 특징 중 하나인 감시독재를 총괄하는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집니다. 모든 당원은 조직지도부의 "장악지도"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당 조직지도부는 총비서도 감찰하고 지도할 수 있다'는 말까지 있죠.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상 그렇다는 말로, 김정은도 엄연히 조선노동당원 중 하나라서 그렇습니다.
36. 어긋나는 비탈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