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14화 (114/284)

114화

34. 드러나는 밑그림(2)

정약용과 시준이 자기 이름 팔아서 일본과 작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김조순은 정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툭 건드리면 터질 정도로 혈압이 올라 있었다.

그는 전라 감사 김희순과 병마절도사 서춘보, 전라우수사 서유봉의 연명 장계를 움켜쥐었다.

<삼도 수군통제사 오재광이 함선과 수졸을 멋대로 거두어 거제현(巨濟縣, 현재의 통영)으로 돌아갔습니다. 군량이 떨어졌고 영길리 군사가 흑산도에서 더 이상 나올 낌새를 보이지 않으므로 왜적을 대비해야 한다는 핑계이나, 그 뜻이 적잖게 의심스럽습니다. (……) 그러나 전라좌수영과 우수영도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백성은 충무공 때처럼 이불과 염초를 바치기는커녕 간민(奸民)의 혹세무민에 휘말려 군자창을 들이치고 있으며 (……) 바라건대 조정의 위엄을 세워 이러한 에움을 급히 풀어 주십시오.>

꼴을 보아하니 경상도의 모든 군권은 사실상 김회연의 손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나마 통제사 오재광이 영용한 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충청도와 전라도 수군까지 김조순에게 돌아서는 꼴은 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 장계를 갖고 온 사람인 한성 판윤 김이익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것까지는 과한 걱정인 것 같네. 효운루(曉雲樓, 김회연) 그 친구가 분수넘는 욕심을 부릴 자는 아니야.”

김조순은 김이익이 온다는 소식에 꺼내 놓았던 바둑판을 ? 요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다 ? 손으로 내려치며 으르렁거렸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분수 넘는 짓이올시다. 대체 언제부터 삼도수군통제사가 조정의 영이 아니라 경상 감사의 영을 들었소이까?”

“조정이 있다면 그렇겠지.”

김이익의 조용한 말에 김조순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도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의정부와 육조가 서울에 멀쩡히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한 명의 무사가 있다고 했을 때 칼과 사람 중 무엇이 본질인가? 낭청이며 각 사(各司)란 결국 치국의 도구에 불과하다. 설사 옛날 도주하던 효헌황제처럼 좌우에서 모시는 신하라고는 한 손에 꼽고 옥새를 나무토막에 송곳으로 그려서 찍는다 한들 군주가 있는 곳이 조정이다.

김희순의 장계가 지적하였듯이, 이것은 왕이 하루빨리 세워지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 그것이 자꾸만 방해받고 있었다. 김이익은 돌통을 끌어왔다.

“나도 장계를 보고 알았네. 이건 반은 자네 잘못이고, 반은 내 잘못이야.”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김이익은 백돌을 들었다. 김조순은 자기더러 어서 두라는 소리인가 하다가 곧 그 생각을 뇌리에서 지웠다. 아무리 김이익이 비범한 배짱을 가졌다 해도 이상황에서 한가로이 잡기 놀음이나 하자고 들 리는 없다.

김이익은 천원(天元, 바둑판의 중앙)에서 좌상단으로 좀 떨어진 곳에 백돌을 내려놓았다.

“대비 전하일세.”

“예?”

“대비 전하께서는 사행로를 통해 서울로 올라오셨지. 우리가 황해도까지 군병을 몇 보내기는 했다마는, 고령에 환후 있으신 혜경궁도 모시고 오신 것으로 보아 정시준이라는 자가 일부러 놔준 게 틀림없다고 봐도 될 거야.”

김조순은 자기와 시준 사이에서만 오간 밀약을 김이익이 짐작하고 있다는 것에 침을 삼켰다. 김이익은 그 돌을 반면에 착수한 채 그대로 끌어당겨 천원으로 이끌었다.

“딴에는 급박한 탈출이셨겠지만, 아무도 쫓질 않으니 유람하는 양 한가로이 지나며 자기편 되어줄 여러 인사에게 연통 넣을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정시준은 이것으로 궁을 흔들어 보려는 수작일 게 뻔해. 그런데 자네는 그 심부름꾼들을 어떻게 했지?”

김조순이 그걸 멀거니 두고 보고 있었을 리는 없다. 김조순은 경기도에서 그녀가 보냈던 여러 심부름꾼을 모조리 죽이거나 가두어 대비에게 강경한 위협을 전달함과 동시에 세력의 규합을 차단했다.

그래서 대비가 가만히 창덕궁에 들어앉아 있자 그녀가 별수 없이 굴복했다고 여겼다.

허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대비는 왕비와 원자를 김조순의 손에서 되찾아오지는 못했지만 왕이 죽었다고 증언하라는 김조순의 압력에도 묵살로 일관했다. 생각해보면 믿는 바가 있지 않고서야 그러기는 힘들다.

“그자들이 서신이야 전하지 못했을지라도 잡혀가거나 죽었다는 말 자체는 막을 수 없네. 그게 사실이니까. 대비 전하께서 거기까지 내다보셨는지는 나도 모르지마는, 이리되면 충의지사를 자칭하는 자들이 대비가 신하에게 핍박받는다 지껄이며 불온한 수작을 부릴 수 있게 되지. 이게 자네의 잘못이네.”

김조순이 황급히 물었다.

“조정 안에서 경상 감사와 밀통하는 자가 생겼다는 것입니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소이다. 그건…….”

그건 김조순이 물샐틈없는 감시망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가 갈가리 찢어지는 이 형국에서 그저 한숨만 쉬고 있었을 만큼 김조순이 용렬한 자였다면, 벌써 강철군주 이공의 손에 몇 번은 죽고도 남았다.

조정의 비 노론계는 김조순이 여론 때문에 살려둔 것이지 그들이 힘이 있어 살아남은 게 아니다. 신료 중 누군가가 허튼짓을 하면 당장 숙청될 것이고, 김조순은 그것을 적발할 만한 감시망을 가지고 있다.

김이익은 말없이 백돌을 들어 우하귀에 내려놓았다. 그 위치에서 김조순은 한단어를 떠올렸다.

‘경상도인가.’

명징한 비유를 드러낸 김이익은 다시 김조순의 흑돌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아까 대비를 표시한 흰 돌 옆에 딱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조정 안은 아니야. 그게 내 잘못일세. 아직도 안 떠오르는가?”

김조순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검은 돌. 드러나지 않은 자. 아직까지도 김이 익이 체포하지 못한 전 수경포도장 이요헌이었다. 김이익은 그 검은 돌을 다시 우하귀 백돌로 이끌었다.

“왜 도성을 아무리 뒤져도 수괴가 나오지 않는지 알 것 같네. 늙은이가 우둔하여서 실기하였구먼. 십중팔구 그자는 지금 서울을 떠나 대비의 사자를 자처하며 경상 감사와 만났을 것이야. 그러니 애써 찾은들 나올 리 없지.”

김조순은 바둑판을 증오스럽게 노려보았다.

전 수경포도장 이요헌은 확실히 역사대로 비범한 사람이었다.

원 역사와는 다르게 군주의 호령 아래 순무군을 이끄는 대신 조선 사상 초유의 도시 레지스탕스로 활약하기는 했지만, 방식이 약간 달랐을 뿐 그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과 그가 군주에게 충정을 바친다는 면은 둘 모두 달라지지 않았다.

그 역량과 의지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부하 몇 명만을 이끌고 주파한 이요헌의 행적에서 드러났다.

아무리 지방 통제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고는 해도, 평안도와 경상도를 제외한 조선 전토의 수령 대부분은 아직 김조순의 지시를 따른다. 들키면 무사히 끝날 리 없다.

그리고 이요헌은 그러한 사세에서 선비의 체모를 따질 만큼 멍청한 자가 아니었다. 허름한 옷을 기꺼이 뒤집어쓰고 피난민으로 변장해 서울을 빠져나온 이 요헌은 때로 밤의 어둠을 능란하게 틈타고 때로 눈치 빠른 자를 잽싸게 묻어버리기도 하면서 대구까지 달려왔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꼿꼿했던 이요헌의 자세는 김회연과 마주 앉고 나서 조금 흐트러졌다. 실망감 때문이었다.

“어째서 즉시 격문을 띄우지 않는다는 것이오이까? 영남은 남명(南冥, 조식) 이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절개의 선비가 많이 난 고장이오. 저 외척 김조순이 대비 전하를 억누르고 종통마저 제멋대로 전횡하니 천지조화가 망가지는 것이 극심합니다. 한성부의 참혹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지경이오이다.”

김회연은 한성부가 그 꼴이 난 건 상당 부분 너의 공적이 아니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앉은 채 붓을 놀릴 뿐이었다.

이요헌이 지금 아무리 무관직에 있다고 해도 그 역시 지방관이며 둘 다 종2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무례에 해당하지만, 김회연은 붓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진작 했을 것이오. 만약 공의 말대로 하면 우리는 역적이 됩니다.”

“역적이라니? 지금 대통을 이을 분이 원자를 제외하면 누가 있소? 여기에서 다른 말을 하는 자가 바로 역적이 아니오! 공이 일문(一門)으로서 핍박받는 대비 전하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헤아리신다면…….”

김회연은 붓을 내려놓고 가만히 이요헌을 바라보았다. 이요헌은 잠시 후 미심쩍게 물었다.

“내가 잘못 헤아린 것이라도 있소이까?”

“어째 모두가 그렇게 여기는 것 같은데, 주상 전하께서는 아직 누구에게 해를 입지 않으셨소. 적어도 나는 듣지 못했지. 혹시 공은 믿을 만한 증좌를 가지고 있소이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주상 전하께서 붕어하신 것도 아닌 지금 감히 사위(嗣位)를 입에 올리는 자 곧 역적이 되오. 저 김조순처럼 말이오.”

이요헌은 흠칫했다.

“그,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이미 주상 전하께서는…….”

그 믿기도 싫은 끔찍한 소문에 따르면 다리가 잘려서 평양에 갇혀 있다. 이 시대 의료 수준을 감안했을 때 다리 잘린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리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죽었다는 말이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은 건 사실이다. 김회연은 그런 사고의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게다가 이것도 지금 잊어버린 모양인데, 원자께서는 물론 주상 전하의 장자이시지만 동시에 김조순의 외손자가 되시기도 하오.

만약 전국에서 원자를 추대하는 의병이 일어난다면 김조순 그자는 틀림없이 표변하여 원자를 올리고 대신 자기의 부귀영화를 보장받을 테지요. 지금까지도 수주군의 등극에 대한 이야기가 거세게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소? 그 교활한 자는 아직까지 저울을 재고 있는 것이오.”

“그런 일을 대비께서 용납하실 리가…….”

“남한산성이 얼마나 갈 것 같소? 성이 깨지고, 원정 나갔던 훈련도감 군사가 들어오면 대비께서도 그 정도에서 양보하셔야 할 게요.”

이요헌은 절망적으로 물었다.

“그럼 평안도를 쳐서 주상 전하를 구출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오. 불충한 말이지만 주상 전하께서는 일이 어떻게 되건 다시 서울로 돌아오시기는 힘듭니다. 김조순과 조정 신하를 하나 남김없이 도륙할 수 있겠소? 그들 역시 필사적으로 대어들 테니, 자칫하면 모든 일이 다 끝나게 돼요.”

이요헌은 김회연이 대비와 같은 일문이라는 사실, 여태 김조순에 대해 반항해 왔다는 사실 두 가지를 믿고 모든 걸 버린 채 날아왔다.

허나 김회연은 이요헌 같은 중앙의 지지세력을 기다리느라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조정의 투사였던 이상겸(李象謙)을 강경하게 탄핵하여 당시 정순왕후 김씨의 진노조차도 사양하지 않았을 만큼 배짱 있는 선비였다.

허나 지금 김회연이 발휘하고 있는 건 그의 또다른 면, 철저한 실리주의자로서의 면모였다. 실제로 김회연은 가는 곳마다 군비를 확충하고 선정을 베풀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요헌은 ‘김조순이 대권을 농단하게 두어선 안 되겠지만 솔직히 이공 역시 답이 없다’고 냉엄하게 말하는 김회연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나마 김회연이 점잖은 사람이니까 ‘사대부 중 누가 만이(蠻夷)와 결탁하고 선비를 핍박하며 옥좌를 스스로 버린 폐주의 편을 들겠냐?’라는 말까지는 안 하고 김조순핑계를 댄 것이다.

이요헌은 김회연의 붓 아래에서 채워지고 있는 종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진서도 아니요 언문도 아니었다. 게다가 희한하게도 세로로 써 내려가는 게 아니라 가로로 늘어놓은 채였다.

반박을 궁리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이요헌은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글은 무엇이오이까?”

김회연도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평안도 사람들이 쓴다는 수문(數文, 숫자)이오. 이재(理財)를 다루는 데에 편리해서 감영에서도 쓰고 있지요. 다만 내가 보니 이 문자는 아무래도 상하보다 종횡으로 적는 게 낫겠더군요.”

“이재라니, 그런 도필의 일을 감사께서…….”

“핫핫. 정도를 위해 수챗구멍과 으슥한 골목을 마다하지 않은 포도장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퍽 이상하오이다. 지금 사세가 사세이니 어쩔 수 없지요.

다행히 일전부터 통신사에 소요될 돈이 없어 창미(倉米)에 이자를 붙이거나 별비전(別備錢, 감영의 별도 예산)을 꾸어 주고 또 이식(利食, 환매)하여 마련하고자 하였는데, 통신사가 없던 일이 되고 말았으니 그게 고스란히 남았지 뭡니까.”

감사가 이자놀이를 진두지휘한다니 들어본 적도 없다. 이자 받는 일이 부도덕해서가 아니라(환곡은 이자 기금이다) 돈 다루는 일이 부도덕하기 때문이다.

허나 김회연은 원 역사나 지금이나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도 백성에게 따로 징수하는 비용을 절감하여 민란을 다른 도보다 크게 억제할 수 있었다.

김회연은 장부를 덮었다.

“경상우수영 수군도 돌려서 고기잡이나 곡식 나르는 데에 쓰도록 했소. 영길리 해적도배는 일단 뒷일이오. 그렇게 제법 자랑할 만한 창고를 만들어 놓았으니, 이는 반드시 다른 데에 긴하게 써야 하오이다.”

이요헌은 그 ‘다른 데’가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김회연은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행보를 본 바, 비록 상한이라 하나 정시준은 그리 어리석은 위인이 아니오. 틀림없이 주상 전하를 해하지는 않았을 거요. 형세에 따라서는 난전중에 어쩔 수 없이 다친 주상 전하를 모시고 있다는 핑계를 들이밀겠지. 괘씸하기는 하나, 다른 수가 없소.”

이요헌은 그 뒤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허나 김회연은 냉엄했다.

“소위 혁명막부와 손을 잡아야 하오. 주상 전하를 상왕(上王)으로 올리고 그 추인을 받아 원자를 보위에 추대하는 게 가장 좋소. 김조순의 벼슬은 빼앗되부원군 자리는 그대로 두어야겠지.

정시준이라는 자는 옛 제도를 되살려 번리(藩籬)의 공후(公侯)로 봉하는 방책도 생각을……. 아니, 이건 신하의 도를 넘어선 말이군. 어쨌든 양쪽이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지 않으려면 원자께서 등 극하시는 이외에 다른 무엇이라도 하책이외다.”

김조순의 외손자이며 동시에 이공의 아들인 원자가 즉위해야 위태하게나마 사태를 봉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피로 피를 씻는 내전이 계속될 뿐이다.

이요헌은 이해했지만 납득할 수가 없어서 괴로워했다. 이공은 자기 쫓아낸 장인의 부원군직을 유지시키거나, 자기 다리 자른 상놈을 열후로 봉하는 참사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야’ 할 것이다. 이요헌은 그런 협박을 왕에게 하는 신하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요헌은 다시 눈길을 돌려 회피했다. 그는 지엽적인 부분을 질문했다.

“그러하다면 감사께서 가지신 창고로 근왕군을 결성하는 일은 언제쯤이 되오리까? 평안도 상한의 도당이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게 하려면 이쪽도 그만한 위엄이 있어야겠지요. 이 사람이 부족하나 원래 병무를 보고 있었기로 군사의 일이라면 도울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이요헌이 일신의 영달에 집착하는 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도 살아야 했다. 그래서 경상도에서 새롭게 구성될 근왕당 일파에서 군사 분야의 중책을 달라는 이요헌의 말은 김회연에게도 잘 전달되었다.

그러나 김회연은 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결성은 하겠지만, 아마 포도장께서 생각하시는 군세는 아닐 게요.”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여기와 평안도는 나라의 끝과 끝이오. 대로를 통해 무얼 오가다가는 단숨에 김조순의 손아귀에 떨어지겠지요. 영감께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익히 겪으셔서 누구보다 잘 아실 터이지만.”

이요헌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재차 자신의 경기도 수군절도사경력을 상기시키면 사람이 좀 없어 보이지 않을지 고민했다.

김회연의 말대로 산성에 의지한 반란군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긴 김조순에게도 좋은 소식 하나쯤은 있어야 하늘이 공평하다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북한산성의 총융청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으나, 남한산성은 어영청과 수어청 두 개 군영이 모인 만큼 밥도 빨리 떨어졌다.

포위란 건 군사들이 손에 손잡고 강강수월래처럼 둘러싸는 게 아니다. 그래서 서울 군대가 잘 모르는 샛길로 겨우겨우 먹을 것을 조달하고 있었으나 그것도 평난도원수 이득제의 출세욕 앞에 끝장났다. 동기부여라는 것은 꽤 중요하다.

이득제는 주변의 ‘모든 민가’에 대한 대토벌과 소개 작전을 감행했다. 광주부 전체가 놀라 떨 만큼 일대가 초토화되자 남한산성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말고기를 뜯어 먹고 나무껍질을 벗기며(다행히 남한산성 안에 우물은 많았다), 정말 정축년에 이리 독하게 참았다면 인조가 대가리는 안 박아도 됐지 않았을까 하는 수준까지 버텼지만 상황은 인간을 잡아먹어야 할 수준으로 상승할 기세였다.

결국 수어청 향취수(鄕吹手, 군악병) 한 명이 견디다 못해 방면을 조건으로 몰래 성문을 열겠다는 뜻을 보내 왔다.

그리고 용맹스러운 공적을 과시하고 싶었던 이득제는 훈련도감이 앞장서 돌격하여 성을 뚫고 벽을 넘었다는 장계를 작성했다. 뭔가 좀 이상하지만 전쟁에 이기기도 전에 승전 보고서 미리 써두는 것은 동아시아의 전통이다. 행정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 장계가 조선의 의외로 엄격한 교차검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득제는 성문 안쪽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 향취수를 단칼에 베어 버렸다.

그런 다음 남한산성의 ‘모든 역적들’에 대해 준엄한 판결을 내렸다.

“역적은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훈련도감 군사는 그 명을 충실히 따랐다. 인류사 동안 군대가 전쟁에서 저질러 온 모든 범죄가 남한산성에서 압축적으로 펼쳐졌다. 수어청과 어영청 군사들이 도망치며 데리고 들어온 가족도 예외는 없었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최조악의 충청도 지방군도 수급이 필요했다. 여진족도 안한 무차별 학살이 조선인의 손에서 자행되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사람이라면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득제는 증거 인멸을 위해, ‘역적에 의해 더럽혀진’ 인조의 행궁 수어장대(守禦將臺) 등 남한산성의 주요 건물이며 가옥을 전부 소각하도록 명령했다.

타오르는 불꽃은 산자락 아래에서도 잘 보일 정도였다.

이득제의 조치는 적절한 것이었다. 사실 김조순이나 김재찬 같은 사람들은 여러 교차 보고를 통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대비가 무슨 수작을 더 부리기 전에 무리를 해서라도 이병원 추대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김회연의 말마따나 김조순도 원자를 두 번째 수단으로는 고려 해 두었지만 역시 최선의 방책은 이병원이었다.

김조순은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의혹을 전부 묵살해 버리고 평난대원수 이득제의 공을 치하하며 훈련도감을 다시 서울로 소환했다.

피 맛을 거하게 본 훈련도감 군세가 살기등등한 기세로 도성에 입경했다. 이제 이요헌이 없어 형편없이 찌그러든 근왕 레지스탕스도 숨을 죽였다.

그리고 김조순은 당당하게 창덕궁에 입궐했다.

군사와 함께 대비를 협박하러 간 것은 아니다. 그건 조선의 정치 지형으로 보아 너무나 섬세하지 못한 일이었다. 김조순이 추석 인사를 핑계하여 만나러간 사람은 다름 아닌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였다.

조야는 이제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게 무슨 때인지는 모르나, 어떤 분기 점이 그들 앞에 닥쳐온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동시에, 북쪽에서도 기념할 만한 분기점이 발생했다. 의주에는 경애하는 주석의 혼인을 열렬히 축하하러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장소가 의주인 이유는, 의주가 시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신부 지유의 집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혼인은 대개 신부 집에서 치른다.

그리고 그 집은 의주 으뜸 부자라는 홍득주의 집이니 하객들의 기대가 작을 수 없었다. 게다가 한가위라 인심도 어딜 가나 넉넉하다.

정약전의 의도대로, 이 큰 잔치 분위기 때문에 혁명막부의 첫 추석은 매우 성공적인 것처럼 인식되었다. 사람들은 잔뜩 고양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대비고 차기 왕이고 아무 관심이 없었다. 혁명의 밑그림이 착착 완성되는 이 평안도에서, 그깟 것쯤이야 ‘인민에게 파면된 자들’의 소꿉놀이일 뿐이었다.

이 혼례의 주인공을 포함한 몇몇 사람만 빼고는 다들 그렇게 믿었다.

작가의 말

1. 이요헌이 대구로 간 이유는, 이 시기 경상 감영이 대구에 있기 때문입니다.

2. 동아시아는 유럽이나 이슬람권과 다르게 이자놀이를 죄악시하는 관습이 없었고, 상당수의 정부 수입에 이자를 적용했습니다. 작중 서술된 것처럼 김회연은 경상 감사 시절 원래 역사에서도 재정을 잘 운용하여 따로 백성들에게 징수하는 것 없이 통신사 비용을 훌륭히 마련해 냈습니다.

3. 예전에 작중에서 조선군은 지휘관이 과도하게 많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는 지휘계통의 혼란이라는 폐단도 있었지만 여러 관점에서의 교차 보고로 사실을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단점에 비하면 크지 않은 장점이라 묻히긴 했지만요.

35.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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