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32. 혁명의 파도(2)
시준이 혁명막부 대외 사업의 첫 번째 목표를 함경도로 정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황해도로는 갈 수 없다. 서로 더 이상 믿지는 않지만 김조순과 시준은 엄연히 동맹 관계인데, 황해도를 대놓고 침공하면 김조순은 남하한 함경도 병력을 그대로 북으로 돌려 그쪽부터 처리하려 할지도 모른다.
영호남의 일은 아직 시준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준이 가진 정보망은 정부 고위층이 아니라, 주로 송상을 통한 하층민에 집중되어 있었던 까닭에 수뇌부의 결정과 움직임은 자세히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므로 시준으로서는 김조순이 영남과 호남의 병력을 예비대로 두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고, 따라서 정면충돌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어차피 정면충돌을 피한다면 함경도 역시 침공하면 안 된다. 그러나 시준은 그것에 대해서는 수가 있었다.
시준은 ‘공격’이나 ‘토벌’이라고 하지 않았다. ‘진군’이라고 했다. 그는 혼례준비 건으로 정약전을 만났을 때의 대화를 떠올렸다.
시준이 백부를 뵙는 예로 정약전과 마주 앉았다. 정약전은 혼례 자체에는 그다지 큰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담뱃대를 문 채 껄껄 웃었다.
“태어난 해만 겨우 알 뿐 사주(四主)의 나머지는 하나도 모르고, 족보도 모르는데 이래서야 무슨 단자(單子)를 만들겠는가? 신부 쪽의 단자는 이미 받았으니, 내가 합(合, 궁합) 좋은 날짜와 시각으로 맞춰 써 보도록 하겠다. 별로 관계없겠지?”
“물론입니다. 모든 일을 어른께 맡기겠습니다.”
시준도 정약전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기초적인 점복(占卜)이야 선비들 역시 익히는 교양이라고 해도, 그것을 자기 편리한 대로 끼워 맞추는 행동에서 정약전의 사람됨이 드러났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고집을 세우지도 않고 태연히 시준의 사주를 조작했다.
‘흑산도에서도 행동이 빠르고 정확했지. 조선 기준으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보통 사람은 아니다. 하긴, 괜히 국사범으로 몰린 건 아닐 터.’
시준은 정약전이 과거 정약용을 통해 전해 준 정보, 그러니까 이들이 데려온 외국인이 간첩이나 군사일지 모른다는 추측대로 모리 후사아키를 삼화부에 가둬 버린 상태였다.
억측일 뿐이라 투옥하거나 하기는 곤란하다. 후사아키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에 따라(아직 아무도 그가 조슈 번의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향후 외교통로로 쓸 수도 있어서, 일개 어민이라고 강변하는 그의 주장을 딱히 부정하지 않고 막노동 주어 먹여 살리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나이에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새로 배우는 속도는 동생 정약용보다도 빨랐다. 외교 업무에 바쁜 정약용 대신 동생이 쓰다 만 『비어고』를 집필하여 시준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정약용이 의주로 귀양 오면서 완성 보겠노라 다짐했지만 그 후의 일이 워낙 정신없어서 이뤄지지 못했던 그 책인데, 시준은 정약전이 동생 못지않은 군사지식도 있다는 것에 놀랐다.
모든 면에서 정약전의 행동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정약전은 들고 있던 공책을 옆으로 치워 놓았다.
“그래,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리 주석께서 평안도를 모두 석권하셨으니, 다음은 어디인가? 내가 죄인 신세 면하려고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어차피 자네는 남쪽의 영안부원군과는 가는 길이 다를 터이니 준비를 해 둬야 하겠지.”
시준은 모든 반박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조선에는 쓸데없이 똑똑한 자들이 많았다.
“어른의 멀리 보는 눈에는 항상 놀라게 되는군요.”
“이번이 처음 만나는 건데 항상은 무슨 항상인가. 입발린 소리는 그만두게.
아무튼, 그래……. 황해도는 어렵겠고, 아마 함경도겠군.”
이때까지의 시준은 군사로 무력 침공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어느 쪽이든 군대를 몰아 쳐들어가면 영안부원군 김조순이 평안도로 창끝을 돌릴 것입니다. 청에 배를 보내 원군을 빌든, 아니면 함경도 군세를 다시 북진시키든지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일단 삐라를 뿌려 볼까 하는 것이 시준의 계획이었다. 황해도의 사례로 보았을 때 민란을 산발적으로 일으키면 일이 좀 더 쉬워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정약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서울에서 새 조정이 그사이 반도(叛徒)를 모두 진압하면 더 이상 손쓸 수 없네. 조선국 호구의 7할이 임진강 남쪽에 살고 있어. 뒤에 중국까지 있는 자네 처지로는 세월을 헛되이 끌수록 불리해.”
“그 말씀도 옳지만 지금도 군세로는 맞서기가 어렵습니다.”
“꼭 싸워야 하는 건 아니잖나? 함경도 군세가 자리를 비운 틈에 변경을 지켜주겠다고 해. 틀림없이 김조순은 허락할 걸세.”
시준은 설마 김조순이 그런 멍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약전의 이어지는 말은 시준의 반박을 단숨에 봉쇄했다.
“내가 천방지축인 아우 놈에게 들은 바가 맞다면, 지금 오군영 중 최소한 세개는 김조순의 것이 아니야. 그들을 진압하려면 한두 달로는 어림도 없어.
김조순은 지금 아마 한 명이라도 더 함경도에서 끌어내고 싶을 테지. 자네 표정을 보니 김조순이 자네의 뭘 믿고 군대를 빼느냐고 묻고 싶은 모양인데, 신의가 없다면 지금부터 주면 돼. 대비와 왕비, 거기에 원자도 석방해서 서울로 보내 버리게.”
“예?”
조선 사람이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시준은 기랑에 이어 두 번째로 현대인 회귀설을 떠올리며 정약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정약전의 표정에서는 그런 기미를 읽어낼 수 없었다.
“왜? 이상한가? 불안하면 김유근 정도는 쥐고 있어도 되겠지. 하지만 왕을 폐서인시킨 마당에 자네에게 그 모친과 처자식까지야 무슨 필요가 있는가? 내명부를 억류하고 있다는 소문은 좋을 게 없을 텐데.”
확실히 그렇다. 평안도가 혁명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렇지, 조선의 대부분은 아직 엄연히 전제 왕국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김유근을 석방하는 게 낫다. 어쨌든 대비와 왕비 쪽이 전통적 신분은 더 높으니까. 하지만 정약전은 그 질문까지 예측한 듯 엷게 웃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야 김조순이 더 정신 못 차리고 허둥대지 않겠나.”
거기까지 가서는 시준도 깨달았다. 그들이 돌아간다면, 현재 불안정하게 유지되는 조선 조정에 커다란 파국을 일으킬 수 있다.
어쩌면 지금 김조순이 세운 수주군 이병원과 거대한 갈등을 일으켜 줄지도 모른다. 대비와 왕비에게는 원자가 있으니까.
“그, 그러나 저희는 이미 대비와 왕비의 옥새를 빼앗고 그들을 서인의 집에 가두었는데, 그 둘이 돌아가게 되면 원한 때문에 김조순을 힘써 돕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수주군 이병원을 왕에 임하라는 교지를 내린다든지…….”
기랑이 (분풀이로) 그들에게 저지른 깡패 같은 짓은 잊기 어려운 것이었다.
정약전도 혀를 찼다.
“쯧쯧.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해가지고.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네. 자네는 출사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왕실과 조정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군.”
솔직히 정약전도 벼슬살이 경력이 길지는 않지만 시준에 비하면 백번 낫다.
시준이 한 가닥 기대를 걸고 물었다.
“그렇다면…….”
“그래. 왕비라면야 김조순의 딸이니 또 모르지만, 어쨌든 왕실의 큰어른은 대비지. 하지만 대비는 절대로 김조순을 돕지 않을 거야.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 목을 쳐도 좋네.”
“서, 설마 제가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그 단호한 자신감에 시준도 더 이상 캐어묻지는 않았다. 자세한 얘기는 정약용에게 들어도 된다. 저토록 장담하니 이유가 있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 못을 박고 싶으면, 왕전(王?)의 예를 본받는 것이 좋아.”
시준은 왕전이 뭐 하는 놈이냐고 묻지 않음으로써 스승의 체면을 구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가르침에 감사하고 물러났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시준은 일단 김유근은 부상이 심해 움직일 수 없다고 하고, 대비와 왕비를 석방할 수 있다는 연락을 김조순에게 보냈다.
정약전의 충고대로 왕전을 흉내 낸 서한이었다. 거기에는 함경도에 ‘아랫사람 들’을 보내 변경의 근심을 덜고 인질을 해방하는 대신, 평안도와 함경도에서의 자신의 이권은 인정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야심이 적은 보신주의자로 보이는 일은 손쉬웠다. 시준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러고는 진시황 영정처럼 ? 물론 김조순이 시준을 완전히 믿은 건 아니고, 대비 따위 내 알 바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그의 처지 때문이 더 컸다 ? 그 일을 허락한 김조순의 답신이 도착하자마자 정치국을 소집한 것이다.
과거 서상 무력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차형기는 이번 중앙인민회의의 의원이 아니었기 때문에(차형기는 의주 사람이고 그곳 인민위원장은 조흥진이다), 새롭게 꾸려진 무력위원회에서는 일익을 맡지 못했다.
대신 그는 막부의 군정부서라 할 수 있는 혁명무력국의 국장이 되었다. 차형기는 뻣뻣하게 일어나서 보고했다.
“지금 함경도로 갈 수 있는 혁명군은 천오백 명 정도 되오이다. 계절이 이미 한여름이니, 압록강 따라 거슬러 올라가도 무리는 없지요. 일단 들어가면 육진을 떠받치는 요해지인 부령을 타고 앉아서…….”
시준은 한숨을 쉬었다.
국가 체제의 이상(理想)으로 간주되는 능력주의는 인류 어느 정부에서도 실현된 적이 없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동네 폭력단 두목에 불과했던 차형기는 한 개 도를 관할하는 군정을 책임지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여러 미사여구나 억지스러운 변명을 다 떼어놓고 보면, 그는 결국 시준의 핵심 측근이라서 임명된 것뿐이다.
그러나 막 신정부가 수립되어 불안 요소가 많은 지금은 그 핵심 측근이라는 요소야말로 다른 모든 요구능력을 뛰어넘는 자질이다. 시준에게 있어 현재 최악의 군 책임자는 ‘유능한 외부인’이다.
그래서 시준은 절대로 답답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차형기의 말을 끊었다.
“잠시만, 국장…… 동지.”
“예. 주석 동지.”
“지금 말씀하시는 바는 군의 움직임과 싸움에 대한 것인데, 그건 혁명무력국의 일이 아니라 군을 끌고 나간 장수의 일이오. 나와 정치국 위원들이 듣고 싶은 보고는 그 병사를 먹일 방도, 군량과 마초며 화약과 궁시를 보낼 길, 그리고 누구를 임명해 파견할 것인지에 대한 사안이외다.”
군정(軍政)과 군령(軍令)의 개념은 조선 시대에도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차형기도 곧 자기 실수를 깨달았다. 그는 얼굴을 붉혔다.
“그…… 송구하오이다. 사실은 지금 마땅히 삼군(三軍)의 장수 될 만한 자가 많지 않아 부득이 이 사람이 참견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여러 위원들 앞에서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 이 말부터 먼저 한 것이지요.”
시준은 목을 뒤로 젖혀 천장을 쳐다보았다. 가로놓인 서까래가 시준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는 않았다.
“그도 그렇군요.”
외사통호국장으로서 당당히 정치국 위원이 되어 자리에 참석한 정약용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질문했다.
“관군 출신의 장수들은 없소?”
“그렇게 높은 군관은 없습니다. 있다 해도 그들에게 혁명군을 맡기기에는 여러 가지로 거리끼는 점이 많습니다.”
기성 체제를 깨뜨린 혁명 세력이 항상 마주하는 난관에 막부도 봉착한 것이다.
혁명군의 사기는 높다. 병사 대부분이 프랑스 장교들의 훈련도 받았다. 보급과 장비도 아마 지금의 사분오열된 조선군보다야 나을 것이다.
그러나 일개 부대 이상의 군을 통솔할 만한 대장이 없었다. 이것은 몇 달의 병사용 속성 제식 교육 정도로는 갖춰지지 않는 소양이다. 홍총각이 그나마 가깝지만, 그는 총대장보다는 돌격대장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물론 존경받는 주석인 시준 역시 본격적 군무에 대한 자질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만화나 소설이라면 여기쯤에서 사관학교 생각을 했겠지만, 내가 사관학교를 문턱이나 밟아 본 적 있냐? 예비군도 끝난 지가 언젠데.’
시준을 굳이 군대에 끼워 넣는다면 가장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병사에 불과하다. 위대한 주석의 군사적 업적으로 연일 선전되고 있는 영변부 습격과 대동강 전투 역시 둘 다 상대가 개전(開戰)이라 여기기도 전에 기습한 것이었다.
환원론적으로 보자면 시준이 만상 모주 시절에 종종 은밀히 지휘했던 일 ? 의주 상권을 노리는 뜨내기 부랑패 두목에게 밤에 몰래 다가들어 등을 한번 푹쑤시고 도망치는 ? 쪽에 더 가깝다.
관군 군관을 승격시킨 다음 정치장교를 붙이는 소련식 해결법도 지금은 쓰기 곤란하다. 일단 시준의 혁명은 공산주의 혁명이 아니고, 특별히 사상무장이 된 정치장교감도 없다. 아니, 일단 그 전에 구체적인 사상조차 없다.
물론 시준에게는 개략적인 세계사의 흐름이라는 큰 재산이 있기 때문에 혁명정부 당시 프랑스처럼 화가를 지휘관으로 삼는다든지 하는 막장 행보를 보이 지는 않았다.
‘푸셰 일행은 결국 표류객. 프랑스는 여기까지 더 무얼 보낼 수는 없어. 조만간 나폴레옹은 끝장날 것이기도 하고……. 결국 언젠가는 영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은 아니야.’
영국은 지금 청과 전쟁 중이다. 그리고 평안도는 그 보급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다. 이것은 시준이 군을 이 이상 불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청에는 또 열심히 위조 국서를 찍어내어 ‘영길리 놈들이 평안도를 침공해 먹을 것을 빼앗아가고 있으나 조선국은 황제폐하 결사옹위의 각오로 용맹분투중’이라는 가짜 소식을 넣고 있었다.
물론 청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외면하는 학생처럼 최선을 다해 번국의 충정을 무시하는 중이다. 그리고 시준의 바라는 바도 그것이었다.
‘결판이 날 때까지는 영국 놈들과 깊이 얽히면 안 돼. 그놈들은 사세가 불리해지면 곧바로 조선을 버리고 튀어버릴 녀석들이다. 그자들에게 이 땅 사람들의 운명은 야만 부족 간의 세력 다툼으로밖에 안 보일 테니까.’
시준은 그쯤에서 생각을 매듭지었다. 여기에 더 빠져 있기에는 시간이 없다.
마침 정약용이 발언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수된 자는 무릇 지혜롭고 신의 있으며 어질면서도 용맹하고 또한 위엄이 있어야[將者 智信仁勇嚴也, 『손자병법』] 하는 법이라.
이 다섯 가지의 소양중 첫 글자는 지(智)요. 일단 서상과 막부에 오래 속해 있던 사족 토관(土官)들로 하여금 임시로 장수를 맡게 하는 게 좋겠소. 작금 함경도로 나아가는 일도 누구와 맞서 싸우기보다는 ‘조정의 군병을 대신하는’ 일이 아니오?”
오랜만에 발휘된 정약용의 기나긴 변설에 주눅 들어 있던 차형기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개가 혁명군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외인을 급히 장수로 올려세운다면 병사들의 사기가 문제 될 것이오이다.”
“어차피 옛날부터 조정에서 대병을 일으킬 때도 반드시 재상을 원수로 임명하였소. 그건 장수의 소명이 활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육진을 개척한 바로 그 김 충익공(忠翼公, 김종서) 또한 군인은 아니었소. 평안도 인민의 총의를 대표하는 중앙인민의회의 무력위원회가 승인하면 어찌 다른 말이 있을 수 있겠소?”
위원 중 장사꾼 출신들은 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어차피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제초 같은 사람은 정약용의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
결국 사족 무관 출신인 백윤구가 중앙인민회의 검사위원회 위원장(푸셰가 빠졌기 때문이다)의 직무에서 잠시 벗어나 군을 이끌기로 얘기가 되었다.
상인들의 기세가 좀 꺾이기는 하였지만, 차형기는 그럭저럭 보고를 잘 마무리하며 체면을 세웠다. 정규군 운용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차형기도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실제로 차형기는 밀무역 경로까지 쥐어짠 끝에 천오백 명의 외부 파견에 대한 보급로를 훌륭히 구상했다. 갑자기 바닷가로 단합대회 가자는 사장 때문에 대규모 여행 기획을 맡아보게 된 사무실 막내라면 이 일이 생각보다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준도 일단은 안심할 수 있었다. 허나 앞으로 ‘진짜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정말 걱정이었다.
정치국 회의가 끝난 이후, 차형기는 시준에게 손짓하여 그를 으슥한 곳으로 이끌었다.
“회장, 아니, 주석 동지. 이대로 괜찮겠소?”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겠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수평도가 널리 알려졌다 하나 평등사상이 그렇게 쉽게 정착되는 것이었으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피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상인들은 원래 아랫사람이었던 자신들이 고생하며 쌓아 올린 결과를 사족들이 널름 집어먹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한 설득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족이 원래 윗사람이었으니까. 봉건 사회에서 이 잔향은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분명히 전역한 자유 시민들이 서로 간에 군대 기수로 신분을 가르는 소꿉장난을 본 적 있는 시준 또한 이해할 수는 있었다.
게다가 규칙상 서로의 지휘자가 아닌데도 상하관계가 수립되는 현대 한국군 병사와 달리 사족은 ‘법적으로 진짜 윗사람’이었다. 군대에서 병사들이 법적 지휘권을 가진 지휘관보다 오히려 선임병을 더 두려워하는 것처럼, 환상 속의 존재 같은 왕보다 생활에 밀착한 상위 신분인 사족이 더 극복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희만 선생은 그런 불순한 마음을 가질 분이 아니시고, 여기에서는 다 같은 동지일 뿐이오.”
“말은 그렇다 하여도…….”
“이미 국장 동지나 막부의 중책들은 물론, 지금 인민위원장의 사 할은 어디서나 뺨 맞고 얻어터지던 상인들이외다. 나머지도 거지반 백성들이며 심지어 전문위원장 중에는 백정이나 중도 있지요. 무엇보다 고아에 장사치였던 내가 있지 않소? 사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 모두가 사족이오.”
차형기는 약간 진정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시준은 준비해 놓았던 말을 꺼냈다.
“그리고 거꾸로 사족이 장사꾼이 될 수도 있소이다.”
“무슨 말씀이오?”
“군관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지금은 일단 외사통호국장(정약용)의 제안대로 합시다. 이제 슬슬 혁명군의 군관, 나중에는 장수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오이다. 그리고 그 일을 맡아 줄 자는 바로 사족에서 장사꾼이 된 수평의 기수, 서울에서 우리를 위해 애써주었던 나의 사제(師弟)요.”
시준은 차형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부분부터는 시준의 전문이었다.
전쟁이 아니라 협잡질이기 때문이다.
이제 평양에서는 혁명군에 편입되어 해산된 지 오래지만 서울에는 아직 오죽당이 남아 있었다. 이들을 이끌고 경상과 서상, 송상과의 연락과 유통을 지휘하던 이강회는 이제 시준의 말대로 훌륭한 장사꾼이었다.
김조순에게 잘 굽실대어 엄청난 이득을 챙겨 먹고 있던 이강회는 서울 정약횡집, 그러니까 정약용의 가솔들이 있는 곳에서 두루마리를 쫙 펼쳤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만약 병조가 이것을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그건 거의 모두 서울 중앙군에 속해 있는 군교의 이름이었다. 심지어 금군 출신도 있었다.
조선군이 모두 김조순과 반(反)김조순파로 일사불란하게 나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개중에는 슬쩍 빠져나가거나, 중립을 지킨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았거나, 혹은 연락 자체가 닿지 않아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사람도 많았다.
지금 싸우고 있는 군대에 대한 보급도 허덕이는 판에 존재도 불확실한 이들에게 뭘 지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대부분 상당한 생계 곤란에 빠져 있었다.
물론 조선군이 언제부터 나라에서 철마다 임금 또박또박 받았다고 갑자기 웬생계 곤란이냐 묻는다면, 그 의문도 타당하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 중.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역적 토벌전’ 이었다. 무자비하고 날카로운 탄압으로 수경포도청 군관 21명분의 인간 젓갈을 담가버린 한성 판윤 김이익의 서슬 퍼런 칼날 때문에 군인들의 인기 있는 여러 부업도 다 막힌 뒤였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자니 어느 편이 이길지도 모르겠고, 그들의 처지상 절대 다수가 일단 군율로 처벌부터 받고 복귀를 해도 해야 할 판인지라 망설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강회는 총선거가 열리기도 전부터 시준에 의해 전달받은 막대한 거 금을 풀어, 모호한 확률 구름의 세계에서 관측되지 못하고 잊혀 버린 병사며 부료군관(직업군인)들을 매수했다.
무슨 짓 할지 모르는 평안도 군관들과 달리, 이들은 평안도에 기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시준 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충실한 장교단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까지 이강회를 돕고 있던 박득출이 혀를 내둘렀다.
“옛날에 장자도에서 영길리 사람들과 장사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이야 꿈에나 알았겠습니까. 서장관……. 아니, 지금은 그 뭐냐, 주석인가? 주석은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닌 듯하오이다.”
“확실히 그렇지. 제 한 몸만 건사하면 된다고 하면서 이백만 평안도 인민을 아우르고, 일개 상고(商賈)로서 치정(治政)의 큰일은 모른다 하면서 왕을 사로잡아 가두며, 조정에 순종하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발밑을 이렇게 파고들다니 좋게 말하면 노장(老莊)의 허실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위인일세. 핫핫.”
박득출도 따라서 가볍게 웃었다.
“그러면 이제 대강 끝난 것입니까?”
이강회는 지금 앉아서 놀리고 있는 붓을 멈추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아니, 이제 시작이라더군.”
작가의 말
1. 정약전이 언제까지 천주교 신자였는지는 논란이 좀 있습니다. 중간에서 배교했다고도 하고, 단지 그런 척한 것일 뿐이라는 말도 있죠.
2. 왕전은 잘 알려진 대로 천자문에서 <군대를 쓰는 데 있어 가장 정예한 것은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이다[起?頗牧 用軍最精]>라고 표현한 진의 명장입니다.
초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60만 군을 요구하면서, 왕전은 진왕의 의심을(당연히 의심할 만 합니다) 피하기 위해 땅과 재물을 탐하는 소인배로 위장하여 왕을 계속 졸라대지요. 이때문에 진왕(후일의 진시황) 영정은 그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고 합니다.
3. 작중에서는 내용 전개상 생략되었는데, 대비가 김조순을 돕기 껄끄러운 이유는 종통과 연관이 있습니다. 다음 화쯤 나올 것 같군요.
4. 혁명기에 화가가 장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장 프랑수아 카르토(Jean Francois Carteaux)의 일화입니다. 의외로 승전한 적도 있지만 결국 밑천이 드러나서... 그래도 작중 시점에서는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 복권 책임자로 임명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초기의 소비에트 역시 능률보다 사상을 앞세워 모든 계급을 폐지하는 등의 짓을 한 끝에 고생한 전력이 있지요. 다만 이 때 사람들이 다 바보라 그런 건 아닙니다. 시준이 말한 것처럼 신뢰의 이유도 있고... 19~20세기 세계를 덮친 '사상의 파도'는 지금 현대인이 보는 것과 다르게 굉장히 강렬하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5. 조선 시대의 군령과 군정권이 구분되어 있었다는 말은 그 둘이 다르다는 개념을 조선인들도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지 행정적으로 완벽하게 분리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관련하여 조선초에 상당한 논의가 있었고 몇 번 분리되었다가 합쳐졌으나, 병조의 밥그릇 문제도 있고 비변사의 막강한 권한도 있어서 군령권이 현대처럼 독립 행사되었다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32. 혁명의 파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