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07화 (107/284)

107화

32. 혁명의 파도(1)

시준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의원들이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감정이라는 물에 돌멩이를 던져 넣어 작은 흙탕물과 파문을 일으켜서, 뒤의 본론을 수용하기 쉽게 하는 기초적 스피치 기술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허나 시준의 예상은 또 빗나갔다. 중앙인민회의의 의원들은 아무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은 채 시준을 쳐다볼 뿐이었다.

‘어라?’

이는 시준과 나머지 의원들이 인식하는 이 행사의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시준도 이 행사에서 자신이 뽑힐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몰랐다고 하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기만이다. 그러나 시준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평안도 민주주의의 대표로서 뽑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통렬하게 틀린 예측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다른 의원들 상당수는 자신들이 군주를 추대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군주로 말하자면, 지금 좀 떨어진 곳 지하에 처박힌 강철군주 이공 역시 즉위 당시에는 11세 나이에도 정조의 훙서(薨逝)에 울부짖으며 왕위를 두차례나 거부했다.

원래 그게 당연한 절차다. 왕위 준다고 했을 때 덥석 받아먹은 녀석은 사서에 기록된 바로는 저 먼 전국시대의 연(燕)나라 난신 자지(子之) 정도였고, 그자는 참 자기 이름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그런 교훈이 있기 때문에 시준이 첫 마디로 자신의 업적을 부정하고 겸손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수사이기까지 하다. 의원들은 잠자코 시준의 말을 경청했다.

시준은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어갔다.

“먼저 지난 일을 말씀드리겠소이다. 이 혁명은 저나 누군가가 정병을 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작년부터 이어진 가뭄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조정과 임금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스스로 이 재앙을 이겨낼 방도를 모색 해야 했습니다. 본 의원은 그것이 서상의 공적이라 자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모인 여러 명망 높은 분들이 힘써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그 사업은 시작도 못 해 보고, 실로 셀 수 없는 사람이 굶어 죽고 얼어 죽었을 것입니다.”

의원들의 얼굴에 뿌듯한 자부심이 떠올랐다. 시준 하나만 빼고.

“그렇다면 어찌하여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임금은 왜 지금 감영 옥에 갇혀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임금이 천명을 잃어 이 기나긴 가뭄이 계속되었다고 말하고, 천명을 잃은 이유를 논하자면 임금이 궁병독무(함부로 군사를 휘두름)하며 백성을 돌보지 않았고 신하들은 좌우에서 힘써 간하지 않았기로 하늘이 명을 거두어 갔다고 말합니다.”

의원 중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준은 그것을 단번에 부정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임금은 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천명 같은 것은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어떤 때에도 없었습니다.”

비록 외지인이었다 하나, 정약용의 이름 덕에 오자마자 삼화부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되어 참관자 자격으로 뒤에 앉아 있는 정약전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저것도 네가 가르친 것이냐?”

“아니라니까요.”

정약용이 투덜거렸다. 그도 마찬가지로 시준의 뒷배를 업어 평양부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참이었다.

이제 본격적이 된 시준의 연설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우리 팔을 뜻대로 움직여 밥 떠넣고 농사지으며, 발을 마음대로 놀려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하늘의 명을 받아 걷거나 세수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자기 몸의 주인입니다. 이제 많은 의원들이 서양인의 사적을 아실 텐데, 이를 일컬어 자유(自由)라 합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오직 자기가 뜻한 바대로만 삽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도적과 교언(巧言)하는 자와 무뢰배를 막을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모여서 현명한 자의 말을 따르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현명한 자는 예(禮)와 도(道)를 만들어 사람들을 제어하였으며, 악(樂)과 무(舞)로써 그것을 널리 가르쳤습니다.”

시준은 연단에 놓인 차를 마셨다.

“결국, 천자며 왕이며 공후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내린 자리에 지나지 않소이다. 다름 아닌 우리가 내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다시 거두는 것도 어찌 우리 민(民)의 뜻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임금에게서 정병을 다시 거두어 왔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랫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이는 하극상(下剋上)이라 부르면 안 됩니다. 조정에서 선비들이 하는 말처럼 반정(反正)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임금을 파면하였을 뿐입니다.”

이 대담한 선언에는 수평도에 동의한 의원들마저도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준의 선언은 단순한 사회 계약설 표절이 아니다(분명 핵심은 그게 맞긴했다).

조선왕을 형식적으로라도 파면하고 임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다. 이 당시세계의 군주, 인세 모두의 수령인 중국 황제뿐이다.

시준은 사실상 중국에게도 독립 선언을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정약전만이 시준의 말에서 선동이 아니라 논리를 잡아내었다.

‘하긴, 애비 없이 자식이 있을 수야 없는 노릇. 하늘을 짓밟아 놓고 그 아들

[天子]은 존숭한다면 어찌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유럽에서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신과 그 신에게 받은 왕권이 한꺼번에 부정되었듯, 시준 역시 조선왕을 부정하려면 하늘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조선에서 이 방면의 계몽주의가 당당히 득세하지 못한 것은, 학자들이 신에게 어떤 오물을 던진다 해도 비난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던 교황과 달리 중국 황제에겐 강력한 군사력이 있기 때문이다.

황제가 자기 부친 안부를 묻는 자를 가만둘 리 없다. 정약전은 그 점에 유의해 보았다.

‘영길리국을 믿고 있는 것인가.’

명나라 천하만 같았어도 안 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양과의 동맹을 추진하기에 나쁘지 않은 시대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차피 이민족 오랑캐니까.

이공도 괜히 개항군주를 꿈꾼 게 아니다.

그러나 서양국이 여기까지 무슨 자선 사업하러 온 것도 아닌데 만만할 리는 절대로 없다. 정약전은 시준이 과연 어설프게 날뛰다가 이공과 같은 꼴을 맞을지, 아니면 제대로 성공하여 대국의 스승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 와중에도 시준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이제 우리는 다시 임해야 합니다. 하지만 임금을 다시 추대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태초에 요순(堯舜)은 인민이 지지하는 사람에게 선양하였는데, 하우(夏禹) 때부터 아들에게 지위를 잇게 하였으므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뒤의 모든 군주는 인민에게 임명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누가 추대되든 간에, 오 년에 한 번 여는 이 총선거에서 우리는 그때마다 그 사람이 수행한 그동안의 잘잘못을 조정 벼슬아치와 같이 고과(告課)하여 임면(任免)을 결정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권세를 탐내어 인민의 동의 없이 그 이상 앉아 있으려 하거나, 자손에게 제멋대로 물려주려 할 때에는 그가 바로 임금과 같은 자이니 모든 사람이 혁명의 이름으로 그 반동을 처단할 것이오!”

시준은 그 말로써 이미 공지되었던 공화주의적 지도자의 임기를 확정했다. 물론 시준이 지금 즉흥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고 미리 합의된 바라서 선언할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핵심부에 있지 못하고 어쩌다 보니 공정해진 투표에 의해 올라온 몇몇 시골 위원장들은 그냥 5년에 한 번 이 행사 나와야 하는 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정 진인설을 진지하게 믿는 일부 인사 사이에서 비밀한 눈짓이 오갔다.

‘진인이 도를 닦는 바람에 자식을 볼 수 없으니, 다른 사람도 애초부터 계사를 막아 버리는 게 현명하겠지!’

시준이 알았다면 연설 때려치우고 길길이 날뛰었을 생각이었지만 시준은 전혀 모르는 채였다.

어차피 그런 데 집중할 새도 없었다. 이제 시준도 자기 얘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 의원은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어린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서기도 부끄럽소이다. 하지만 결자해지라. 작년부터 이어진 사업을 제가 서상의 이름으로 서투르게 벌려 놓았으므로, 이제 와서 감히 모른 척하고 사람들의 명을 받들지 않을 수도 없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정도 거짓말은 양해했다.

“지난겨울 모두 보셨듯이, 아무리 흉년이라도 모두 고루 나누면 다 먹고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고 하였듯, 호랑이보다 무서운 도적들이 위에서 모두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나라에 쌀이 없는 게 아니라 도적이 많았던 것이지요. 저는 물처럼 절로 평평해지는 수평의 도를 주창하여, 여기 모인 의원 동지들은 물론 여러분께 표 던진 인민들과 같은 열(列)에서 일하고자 합니다.”

그런 식으로 표시 덜 나게 지난 공적을 내세운 시준은 일견 엉뚱해 보이는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수평의 도란 단지 모두가 차등 없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처럼 모일 것입니다.”

정약전은 옆에서 열심히 받아 적는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누가 제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의 도적들이 우리를 시기하고 있습니다. 저들 밑에 있는 인민 역시 수평의 도를 깨달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저들은 우리에게 다시 저들이 기르는 마소처럼 고삐 씌우고 코뚜레 끼우려 합니다. 이는 매우 위급한 형세입니다.

물이란 대개 잔잔한 못처럼 논을 적셔 주는 것이거니와, 우리 위에 배처럼 올라서서 우리가 품고 있는 물고기와 게와 조개를 쓸어가려는 자들은 격류가 되어 뒤집어 버려야 할 터입니다.

존경하는 의원 동지들, 아무리 큰 폭우라도 첫 번째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반드시 있습니다. 막힌 물길을 뚫을 때 가장 먼저 달려 나가는 물줄기는 반드시 있습니다. 제가 감히 나서서 그 짐을 걸머지려 합니다. 위가 아니라 앞에서!

동지들의 지지를 삼가 부탁드리겠습니다.”

개천군 인민위원장으로 당선되었던 이제초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본 의원은 경애하는 정시준 회장을 열렬히 지지하겠소!”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모두 따라 했다. 조선 최초의 기립박수를 받은 시준은 천천히 인사하고 자리로 들어갔다.

물론 훌륭한 연극에는 조연의 역할도 주연만큼이나 중요하다. 가산군 인민위원장 김창시를 비롯하여 몇몇 다른 후보들도 나와서 나름대로 준비해 온 공약과 포부를 풀어놓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인식이 제도만큼 빠르게 변할 수는 없는지라 부녀회나 노비당에서 출마한 대표는 없었다. 그러나 의주부 인민위원장으로 당당히 뽑힌 조흥진이나 철산부 대표로 나온 백윤구 같은 경우에는 수평도가 사족들의 권익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게 하겠다고 역설함으로써 시준에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었다.

김창시가 꽤 선전하기는 하였으나 어차피 대세는 결정된 뒤였다. 시준은 예순세 개의 표 중 마흔아홉 개를 받아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사람들은 시준을 위해 외치려 했다. 하지만 선두에 나선 이제초를 비롯해 의원들은 곧 들었던 손을 내려야 했다.

‘그런데 뭐라고 불러야 하지?’

왕호(王號)는 시준이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회장은 신정부와 별도로 남아 있는 서도상고총협동회의 직함이다. 진인 역시 시준의 개인적 칭호이거니와, 그처럼 당치도 않은 도참(圖讖)의 미신은 선비들의 반감을 살 게 뻔하다.

‘좋아, 지금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그때를 기다리던 시준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다.

시준은 연설 중 고의로 명칭을 얘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를 총대 표(總代表)로 뽑아 달라느니, 통수(統帥)하는 데에 한 표 달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맥락상 그것은 일반명사적 의미다.

아직 평안도 인민 전체의 선택을 받은 자가 칭할 호칭은 정해지지 않았다. 적당히 권위가 있어 보이면서도 세습 군주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직함은 꽤 중요하다.

이름 정하는 데에 있어 주도권을 자주 뺏겨서, 무슨 혁명군이니 인민대회니 사상이 불순해 보이는 이름만 자꾸 달아야 했던 시준으로서는 면밀하게 준비한 순서였다.

북한에서 환생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김창시를 명백히 꺾어버린 지금이 기회였다. 시준은 민족의 위대한 수령이라든지 당의 영원한 총비서라든지 그런건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 분수에 맞지 않는 추대를 받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인민들과 같이 수평한 사람이지 그들의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오이다. 일전에 내가 정치국에서 발언하였던바, 서양국에서는 이 선거가 하나의 풍습인데 그로 인해 추거(推擧)된 자를 프레지던트(president)라고 합니다. 이는 통수하여 영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써 조선말로 하면 통령(統領)이오.”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선거에 이긴 기세를 몰아서 확정해 버리면 앞으로도 이상한 이름이 탄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시준은 선거 패배에 아쉬워하면서도 별 이의가 없어 보이는 김창시를 보고 자기 계획이 잘 맞아들어갔다고 확신했다.

저 뒤에서 한 사람이 손을 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자리는 말석이라도 시준이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준은 불길한 예감을 감추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아니, 평양부 인민위원회 부위원장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렇소이다. 이제는 선거가 끝났으니 나무패 없는 이 사람이라도 발언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렇다. 시준은 빈틈이 없는 정약용의 태도에서 그가 많은 것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전 푸셰의 소책자 때문에 선비가 외국인에게 문예(文藝)를 빼앗겼다며 격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발행한 수평도 격문이 그 너무 난해한 철학적 내용 때문에 잘 안 팔려서 의기소침한 게 컸던 모양이었다.

정약용이 천천히 걸어 나와 시준의 옆에 섰다.

“이제 선거되셨는데 본인이 이런 말을 해서 송구합니다만, 회장의 말씀은 문(文)의 이치를 숙고하지 못한 것이오.”

몇몇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왕 앞에서도 모가지 내걸고 직언을 해야 하는 것이 조선의 선비. 왕도 아닌 시준에게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의원들이 아무리 시준을 존경해도 그가 정약용보다 학문이 깊다고는 도저히 말하지 못한다. 정약용은 아무 제지도 받지 않은 채 발언했다.

“불랑국과 영길리국의 방언(方言)으로 프레지덩(president), 혹은 프레지던트라 하는 자가 인민의 추대받은 자인 것은 맞소. 그러나 그들의 고문(古文)이라 하는 납정문(拉丁文, 라틴어)으로 깊이 상고하여 보면, 프레(pre)는 앞이라는 뜻이요, 싣(sid)은 앉아 있다는 뜻이요, 언트(ent)는 사람(者)이라는 뜻이니, 곧 맨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외다.”

시준이 라틴어 같은 걸 알 리가 없다. 정약용이 설마 자리에 없는 조제프 푸셰와 짠 것인가 ? 푸셰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서 선거에 나올 수 없었다 ? 생각하며 멍하니 쳐다보는 동안 정약용의 화려한 논리가 펼쳐졌다.

“회장께서는 남의 위에 서는 자가 되지 않겠다 했소. 단지 모두의 앞에 서는 자가 되겠다고 하셨지. 따라서 그 이름이야말로 후대의 선출자들이 본받을 금과옥조(金科玉條)임에는 틀림없소. 그런데 통(統)이라 함은 다스리는 것이요, 령(領)이라 함은 거느리는 것이라 말의 본뜻과 회장의 진의에는 들어맞지 않소이다. 게다가 중국의 낮은 무관 벼슬에 통령이란 자리가 있어 이것도 위엄을 살리기에 적당하다 할 수 없소.”

“역시 희만 선생이야! 고증이 엄밀하기 그지없지!” 하는 따위의 환호는 시준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용기를 얻은 정약용이 마침내 선언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엷은 학문이나마 감히 제안하오. 이번에 모든 인민의 총 의로 뽑힌 평양부 인민위원회 위원장이며 중앙인민의회 의원 정시준은 마땅히 우리의 ‘주석(主席)’으로서 칭해야 하오이다!”

“오오!”

“과연!”

의원들은 인민대회 당시 주석단에 앉아 있던 시준의 모습을 떠올렸다. 위가 아니라 앞에 앉아 있다는 선언에 주석이란 말은 더없이 어울릴 뿐 아니라, 들어보니 정약용의 고증에도 그쪽이 더 맞아 보였다.

이제초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는 정시준 주석을 그 말의 본뜻대로 맨 앞자리에 높이 받들어 모실 것이오!”

사람들의 열광적인 찬성을 보면서, 시준은 혹시 자신이 전후를 착각했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평안도는 현대 북한을 만든 핵심 지역이다. 여기 사람들은 원래부터 이런 거 좋아하는 게 틀림없었다.

지도자의 호칭은 결정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국호’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국호의 선포는 조선 내부는 물론이고 열국, 특히 청의 부정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 이것은 의도된 사항이었다.

그래서 지금 시준의 정부는 누가 처음 말했는지 알 수 없는 ‘혁명막부(革命幕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정부(政府)라는 말은 이 시대에는 대개 조정의 의정부를 일컫는 말이거니와 시준이 여태 꾸린 조직은 군사적 색채가 강한 곳이라 조선 사람에게는 무난한 명칭이기는 했다.

다 포기한 시준이 혹시 이 이름으로 일본의 협조를 얻을 수 없을까 하며 공중을 허핍하게 바라보는 동안, 막부의 구성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서상 휘하에 있던 여러 위원회는 해체되어 권한을 인민회의 휘하의 상임위원회(常任委員會) 및 각 분야별 위원회에 넘기고, 실무진은 막부의 사무 부처로 들어갔다. 서상이 일개 상단 조합으로 돌아간 셈이지만, 어차피 거기 있던 녀석이 여기도 있는 꼴이라 반발은 적었다.

하는 김에 용천부의 예조 통무아문 관리도 대거 끌어들여 조선 조정은 아예 무시하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막부 외사통호국(外事通好局)의 장이 된 정약용의 입김은 일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뛰어넘었다.

냉소적인 자가 보자면 기존 서도상고총협동회가 총선거를 내세워 간판만 바꿔단 꼴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준은 일에 치여 죽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유의 수락 역시 받으러 올 시간이 있었다.

미리 기랑을 배려하여 적당히 내보낸 지유는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시준의 손을 잡았다.

“장주님께는 네가 말씀드려 줘. 꼴이 이래서야 어여쁜 새색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시준은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너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보다 아름다울 거야. 미안해. 내가 조금 더 똑똑하게 처신했다면…….”

“안아줘.”

시준은 일어나 앉은 지유를 감싸 안았다. 옛날보다 많이 마른 몸이 팔을 통해 느껴졌다. 어째 지유가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시준은 그런 생각을 타고 엄습하는 불길한 느낌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그래서 시준은 있는 힘을 다해 지유를 끌어안지는 못했다.

도저히 장삿일까지 할 시간이 없었기에 시준이 서상 회장 자리를 공식적으로 넘겨준 홍득주 역시 반대가 있을 리 없었다. 몇몇이 정 진인의 공력 훼손을 염려했을 뿐 대체로 사람들은 이 경사에 기뻐했다.

그러나 시준 자신은 그렇게 마음 놓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혼례에 관한 준비야 정약전이 백부의 자격으로(정약용도 많이 바빴다) 맡아 주어서 한숨 돌렸다고 하나 그는 지금 평안도 2백만 인구의 목숨줄을 책임지고 있다.

막부에서 새롭게 창설된 정치국 ? 구성원은 근문소 정치국과 대동소이했다 ?

에 출석한 정시준 ‘주석’은 초조함에 주먹을 꺾으며 의제를 발안했다.

“중앙인민회의 무력위원회의 승인은 떨어졌소. 막부 혁명무력국(革命武力局)은 함경도에 진군할 혁명군의 진용(陣容)을 정치국 앞에 보고하도록 하시오.”

작가의 말

1. 전국시대 연나라 왕 쾌는 <자지에게 선양하면 그는 분명 사양할 테고, 왕이 선양하는 성인의 덕을 보일 수 있다>는 신하의 간언에(안타깝게도 아직 선양 사례가 요순밖에 없었습니다) 덜커덕 선양을 했는데, 당연히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한 자지가 선양을 한큐에 받아 버립니다. 그 후로 연은 혼란에 빠지고... 최종적으로 자지는 태자 세력 등에게 패하여 몸이 젓갈이 되어버립니다.

2.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간략히 설명하자면 각 고을에서 인민위원회 위원을 선발하고, 또 비례대표에 맞추어 전문위원회에 소속될 단체에 표를 주는 것까지가 총선거입니다. (그래서 소제목이 바뀐 거지요. 하하.) 그 이후 인민위원회의 위원장 선발, 전문위원회의 대표 선발, 그리고 그 대표들의 주석 선출은 대표들끼리 하는 간접 선거방식이므로 '총'선거는 아닙니다.

3. 현재 시준 세력의 '행정부' 라고 할 수 있는 혁명막부는 작중 서술된 대로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다만 '막부'라는 말에 바쿠후를 주로 떠올리는 현대인들과 달리 전근대에는 '군벌'을 뜻하는 명칭으로 주로 쓰였습니다.

바쿠후의 유래도 마찬가지죠. 일본에서 최초의 막부가 성립하기도 한참 전에 중국에서도 많이 쓰이던 말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원소도 자신의 세력, 혹은 자기 자신을 일컬어 '막부'라 했습니다.

4. 시준이야 잘 모르기 때문에 주석 얘기 듣고 북한부터 떠올리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사용했던 번역입니다. 통령이 청의 벼슬이라는 이야기를 정약용이 했는데, 대표적으로는 작중 북경의 반란 때 나왔던 구문통령 벼슬 같은 게 있습니다.

5. 납정은 중국어로 발음하면 '라딩'에 가깝습니다. 근현대에 음역된 것이기는 한데, 발음이 19세기에서 크게 바뀐 건 아니므로 작중 정약용이 붙인 말은 그의 중국어 음운지식으로 음역한 것이라는 설정입니다.

32. 혁명의 파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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