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31. 총선거(2)
확실히 홍보는 필요하다. 투표소 열어 놨는데 아무도 소식 듣지 못해서 안 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휴대폰 버리고 산사(山寺)에라도 들어가지 않는 이상에야 선거 소식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집요하게 속삭이는 현대가 아니다. 19세기 조선에는 선거 공보 하나보낼 우편 체계조차 없다.
시준은 왜 자기가 여태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놀랄 지경이었다. 압록강 제지소에서 여분의 종이가 나오면 음란소설이나 찍던 과거를 통렬하게 반성해야 마땅했다.
“삐라…… 가 아니고, 소책자라면 그 「상식(common sense)」 같은 것 말씀이십니까?”
푸셰는 좀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조선에서는 아메리카 혁명이 더 유명한가? 하긴 그쪽이 먼저 일이긴 하지만, 파리 살롱과 카페는 옛날부터 고담준론이 넘쳐나는 지식의 샘이지. 내가 자네의 인식을 바꿔 주겠네. 제목은…… 그 싸움닭, 미라보(Mirabeau)의 백작 오노레(Honore)가 썼던 것처럼 「조선의 인민과 위임자에게 보내는 편지」 정도면 어떨까?”
시준으로서는 미라보 백작이 누군지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그래서 시준은 다른 곳에 집중했다.
“조선이요? 평안도가 아니라?”
“아니야. 물론 실질적으로는 평안도 사람들이 보겠지만, 자네의 정부에는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이 필요하네.”
시준도 여기서 더 걸고넘어질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확실히, 그러지 않으면 정부를 만드는 의미가 없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언사는 주의하셔야겠습니다. ‘저의’ 정부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정부죠. 극단적으로 말해, 저는 선거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잘하고 있어. 바로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걸세. 자네는 어디까지나 인민들의 추대에 못 이겨 선거에 나가는 거야. 두 번 정도 거절하는 게 좋겠군.”
시준은 자신의 순수한 뜻이 왜곡되는 것에 분통이 터졌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정말 다 때려치우고 지유와 요양이나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실은 제삼자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게 마련이다. 지금 평안도 사람들이 시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조제프 푸셰의 말에 훨씬 더 가까웠다.
열 장쯤 되는 팸플릿 형태의 ‘편지’가 발행되자, 총선거 소식에 촉각 곤두세우고 있던 각지 유력자와 향임이며 사족, 수령과 부호들에 의해 초판이 금세동났다.
<조선의 귀족과 천민, 부자와 빈자, 학자와 무학자(無學者), 남자와 여자, 어른과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이 종이를 들고 읽을 수 있는 모든 자에게 서상 검사위원회 위원장 복(福)이 겸손과 존경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
조선에는 왕과 귀족과 장군과 재상의 혈통은 따로 있지 않다[王侯將相 寧有種乎]는 말이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의 신민을 학살하려 자신만만하게 군대를 몰아 도달한 왕이, 서상 회장 정시준의 맹렬한 군사적 영도 앞에 형편없이 패배함으로써 그것은 증명되었습니다. 신[天]이 왕을 가호하였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눈이 있는 자는 누구나 평양성에 와서 감옥에 있는 왕을 보십시오. 옷을 벗겨놓고 머리를 풀어헤치면 그도 한 사람의 지저분하고 지친 죄수일 뿐입니다.
왕의 폭압에 시달리던 인민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를 이겼는데 말입니다!
(……)
조선 땅의 사랑하는 인민들이여,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여! 이미 한 번 그대들을 번영과 영광의 길로 안내한 서상 회장 정시준의 제안을 깊이 숙고하십시오.
나는 아쉽게도 조선 사람이 아니기에 그대들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나, 우리 프랑스의 국시인 겸애(兼愛, Fraternite)로써 그 제안을 열렬히 지지합니다.
정시준은 그 휘하에 강대한 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시한 독정자(獨政者, 독재자)의 길을 밟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허하게 총선거를 제의하여 심지어 그 자신까지도 시험대에 올려놓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설사 그가 왕을 칭한다 하더라도 그에게 감히 반대할 사람이 드문데도 말입니다! 이보다 더 그의 깨끗한 손을 의심할 수 없는 선언은 없습니다.
친구들에게 호소합니다. 이 뜻을 외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공명정대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그대 조선 인민들의 운명을 스스로 만드십시오.>
팸플릿의 나머지 내용은 정치국의 총선거 공지를 거의 그대로 쓴 것이었다.
각 동리마다 선거로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며 위원장을 선출하고, 또 별도로 직업?부문별 대표자를 뽑는다. 다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 기존에 서상 치하의 영역에서 산발적으로 구성된 인민위원회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들이 평양에 모여 대사를 논의하고 총 대표자를 선출한다는 간접선 거의 대강(大綱) 그대로였다.
시준은 장황한 연설문을 보고 이거 아무래도 본말전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가졌다.
“너무 어려워요.”
언서로 적혔다 하나 프랑스어를 한자어로 번역한 것도 많고, 조선 사람에게는 맥락도 다소 난해하여 이것을 그대로 독해할 수 있는 자는 소수일 것 같았다.
그러나 푸셰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혁명 때도 그랬지. 20여 년 전,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에서 의자를 쌓고 그 위에 올라가 떠들던 자들 중 볼테르의 학설을 추종하는 철학당이 몇 명이나 있었을 것 같나? 대부분은 글 한 줄 못 읽는 사람들이었어.
단돈 20수에 고용을 애걸하던 품팔이꾼과 목수, 구두장이며 재단사, 여인네와 병사들의 도당이었지만 그들은 끝내 혁명을 이루고야 말았다네. 걱정하지 말게. 다 나름대로 알아들을 테니.”
역시 경험이란 중요하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야학 학생들과 학교위원회 위원들이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편지’에 해석을 덧붙여 읽어 주는 진풍경이 평안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곧 장터며 논두렁에서 열렬한 토론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러니까 이제 왕은 젖혀 놓고 우리가 수령을 뽑자는 게지? 전세며 이거저거잡물 안 뜯기고 대신 우리끼리 나눠 먹자는 거잖아. 투표인지 뭔지 하려면 넉전씩 내야 된다는 것만 빼고는 참 좋은 얘기일세.”
“정치국에서 나온 말대로이긴 하구먼. 인민대회는 다시 안 한다던가? 그때 한번 잘 얻어먹었는데.”
“이 사람, 인민대회는 한 해에 한 번만 한다고 그때 발표한 말을 못 들었어?
그런 잔치를 툭하면 벌여서야 어디 기둥뿌리가 남아나겠나.”
“이건 뭐야. 열다섯 살을 넘긴 자는 누구나 참예(參詣)하라고? 혼인도 안 한 애송이가 인민위원장 감투 쓸 수도 있다는 거야?”
“자네가 물정을 모르는군. 그 정 진인…… 회장이 장가를 안 갔잖아. 처자 있는 사람만 된다고 한다면 회장이 어떻게 나오겠어? 위원들이 다 알고서 안배한 것이니 나중에 인민위원회에서 괄시받지 않으려면 입 다물고 있게.”
“그도 그렇네그려. 그런데 왜 여태 장가를 안 갔다지? 아무리 애비 없……. 아차, 집안에 돌봐줄 어른 없다 해도 그 정도면 수령이며 여러 지체 높은 집안에서 매파 한 번쯤은 보냈을 법한데.”
“내가 평양에서 얻어듣기로는, 정 진인이 그간 닦아 온 도는 맑고 깨끗함을 중하게 여기는지라 여자를 알아 파계하게 되면 그 공력이 훼상(毁傷)된다고 하더구먼. 그 왜, 상중이나 굿하기 전에도 마누라 앞에 가면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오호, 자네 정말 견문이 넓군! 역시 평양 갔다 온 사람이 다르긴 다르다니까!”
사람들은 시준의 원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짜 맞추기 시작했다. 시준조차도 그럴싸하다는 면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환장할 중상모략이었다.
어느새 이 선거 자체가 시준의 등극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인식이 퍼져갔다.
“그럼 여기에 노비와 여자까지 다 나올 수 있다는 해괴한 소리도 마찬가지겠구먼?”
“그야 당연하지. 혁명군에 회장이 데려온 노비가 많이 가 있잖아. 그리고 이미 옛날부터 그 의주의 임 아무개라는 장사꾼이 부인네들 모아 의주바지 만든 거 기억나지?
그네들이 의주 장사꾼 덕에 먹고 사는데 회장에게 한 손 들어 주어야지 별수 있어? 회장의 승리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네. 기왕에 그렇다면 모두 다 요란하게 가서, 회장이나 그 아랫사람들에게 나무패 하나 던져야 잘 보이는 일이지 않겠나.”
“우리 조카딸도 그 부녀회인지 뭔지 나간다고 설치던데, 이거 못 나가게 했다가는 동네 소문나서 올겨울에 쌀 한 되도 못 얻어먹을 판이지 않은가? 그냥 마누라 딸려서 같이 보내야겠네.”
유럽 민주주의의 역사를 상세하게는 모르는 시준은 이때 자신이 인류 만년 역사상 최초로 노예와 여성 투표권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지 못했다.
푸셰가 “그래. 파리에서도 부인들이 몽둥이와 횃불을 든 채 저택과 상점에 돌격하여, 불을 지르고 창문을 부수며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왔지.”
운운하며 찬성했을 때는 그저 푸셰가 서양인이기 때문에 보통선거권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면에서는 서양이 오히려 느리다. 미국에서 보통선거권이 보장된 때보다 시준의 부친이 태어난 때가 더 먼저다. 푸셰가 단련된 비밀경찰 경험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도 엄청나게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제프 푸셰가 별말 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 평안도 사람들처럼 그 역시 이것이 시준의 선거 승리를 위한 계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의주파와 긴밀한 연결이 있는 부녀회 조직은 다양한 직업과 이해관계로 갈라져 있는 남자들과 달리 단일 세력에 가까웠고 그래서 숫자도 많았다. 써먹지 않으면 바보라고 할 수 있다. 노비도 마찬가지다.
이 조치가 파격적이기 때문에, 총선거와 관련하여 머리 굴리는 사람들은 시준의 의지가 그만큼 강력하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소리 높여 반대하는 일을 조심했다.
“함부로 떠드는 자는 임금과 홍경래의 옆에 갇힐 것이다. 홍경래는 팔을 잘랐고, 임금은 다리를 잘랐지. 세 번째 녀석은 어디가 잘릴지 알아서 생각해 볼 일이다.”
대강 그런 속삭임이 평양 곳곳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의외로 조선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맹아(萌芽)를 품고 있었다며 감동한 시준 혼자만 착각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천대받는 계층이 시준을 지지하는 상황은 단지 여성과 노비만이 아니었다. 조선 왕조 내내 숨죽이고 있어야 했던 무당과 승려들 또한 삼삼오오 모였다.
“진인의 도는 곧 내세에 다시 오기로 했던 미륵(彌勒)과 통한다고 할 수 있네. 이제 진인이 수평도(水平道)를 선포하였고, 옛날처럼 관이며 사족들이 중 놈 매질하여 끌어가 일 시키지도 못하니 아조(我朝) 사백 년에 처음 있는 일이야.”
“그런 녀석들은 당장에 인민위원회가 붙잡아다 몰매를 칠 걸! 어디 수령이 있어야 상하 도리 어긋났다며 호소라도 하지 지금은 끈 떨어진 두레박 신세일세. 그것참 잘코사니가 아니고 뭔가.”
“거 왜 저기 돌밭 건너 득남이 어미 있잖아. 이번에 부녀회 회장으로 뽑혔는 데, 그저께 영길리초 싸 들고 불공드리러 왔지 않겠어. 물어보니 동네마다 부녀회는 물론이고 노비당(奴婢黨)이며 백정수평회(白丁水平會)까지 평안도의 천것이란 천것은 죄다 모임 만들어 깃발 건다 하네.”
영변 약산의 중 현심(懸心)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치 증거를 보여주듯 양초 다 발을 꺼내놓았다. 성황당 앞에서 기다리는 과부 무당을 새벽에 업어와 기둥서 방 노릇 하고 있는 나무꾼 칠성(七星)이가 맞장구를 쳤다.
“아, 그래. 나도 들었네. 우리 마누라가 만신인데 또 무슨 회에서 굿판을 한다고 했어. 그런데 그래 봤자 동네 사람들이 그걸 인민위원회와 같이 봐 주겠느냐 말이야.”
“그럴 것 같지? 허나 그게 아니야. 여기가 아주 기막힌 곡절이지. 잘 들어.
득남이 어미가 어째서 그 귀한 영길리초를 보따리로 싸 올 수 있었겠나? 이제 곧 벌어질 총선거에서 자기에게 나무 패짝 하나 달라며 옛날의 호장, 부자들이 딸이나 아내를 보내어 은근하게 청탁을 한다는 게야.”
“그 말이 정말인가?”
“거짓이면 내 입을 짝 찢어놓게. 신당에서 맨날 빗장거리나 해대는 천벌 받을짓 그만두고 산에서 조금만 나가 보라구. 조정의 분경(인사청탁)은 저리 가라할 만큼 바쁘게들 돌아다닌다 하네! 부탁에 어찌 인정이 없겠어? 그러니까 한 패는 많을수록 좋은 게지. 너도나도 모여서 난리가 아닌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잘만 하면 고려조처럼 도회 한가운데에 절을 지을 수도 있고 ? 예나 지금이나 상권의 접근성은 매우 중요하다 ? 무당집 딸이라고 동네 망나니들 노리개가 되는 신세도 면할 수 있다는 확신이 퍼져갔다.
누굴 지지할지는 이미 명백했다. 아무리 승려와 무격(巫覡)이나 백정들이 고무되었다 한들 조선 사람들은 여전히 천하게 여겼으며, 현 상황에서 지도급 인사 중에 그들의 편을 들어준 자는 시준밖에 없다(시준은 솔직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아야 하는 게 조선의 무당이지만 직업 특성상 발은 매우 넓다. 그들은 굿판이며 치성드릴 때마다 정 진인의 승리는 자기가 모시는 신이 보증했다고 은근슬쩍 떠들기 시작했다.
“대동강에서 임금의 군세를 크게 깨뜨린 그날 밤 뒤주대왕(사도세자)께서 홀연히 나타나셨다네. 자손들의 운세가 다 쇠하여 이제 종묘에서 제삿밥 받아먹기 힘드니, 이 집에 내 몸주인[身主]으로 거해야겠노라고 호통하시는데 거역할 수가 없더구만!”
사도세자의 위패는 종묘에서 모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정도의 지식인이면 자발없이 굿판에 모여 수다나 떨고 있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침을 삼키고 쳐다보는 가운데 약산 무당 앵무(鸚鵡)는 한층 더 열을 올렸다.
“그분께서 나를 하룻밤 만에 평양까지 데리고 가셨는데, 내가 선화당을 이렇게 보니 천신 상제께서 이미 정 진인을 보내셨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어. 골골마다 계신 신장(神將)이 깃발 세워 들고 따르는 통에, 온갖 잡귀들이 틈입하려다가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무릎 꿇은 채 엎드려 떨고 있었지!”
동네 소문처럼 남편과 금슬이 좋아서 잠 못 잔 게 아니라 신병 때문에 고단한 것이라는 앵무의 설명은 잘 먹혔다.
순박한 영변 사람들은 앵무의 언변에 넘어가서, 상차림 비용 외에 안 쓰는 뒤 주까지 어디서 끌어내어 들려 보냈다. 이제 약산에서 제일가는 신령이 바뀌었다니 잘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꼭 그런 황당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이 시대쯤 오면 고려조 때 국사(國師) 노릇까지 했던 그 기풍이야 먼지도 안 남았지만 그래도 조선에서 학승의 전통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다.
죄짓고 갈데없어 절로 도망가거나 부모에게 버려져 나무나 패면서, 불공드리러 온 유부녀 간통이나 일삼는 짓은 불도(佛道)에서 한참 멀어진 소행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신부와 주교들이 민중을 이끌었듯, 조선 불교계도 잊혔던 자부심을 되살렸다. 도 좀 닦았다 하는 학승들이 조선 선비들에게도 익숙한 연기론(緣起論)을 주창하며 미륵 선지자 정시준의 수평도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복공의 책자처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면 칠반천인(七般賤人)의 씨도 따로 없다. 낮이 없는데 밤하늘이 어찌 따로 있겠으며, 임금이 없는데 어찌 백성이 따로 있겠으며, 사족이 없는데 어찌 상놈이 따로 있겠는가?”
구미에서 부리고 있는 흑인 노예는 ‘씨가 달랐’다. 남아메리카의 인디오 역시 마찬가지다. 눈으로 보이는 차이는 기존의 범주화와 타자화에 강렬한 응원을 더해 준다.
하지만 조선 노비나 무당, 백정은 그렇지 않다.
조선은 이 시대까지 문화와 언어 및 혈통을 공유하는 자국민을 노예로 부리던 드문 나라 중 하나였고, 그렇기 때문에 관습상의 신분만 깰 수 있다면 그 이상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신분만 빼면 정말 나머지가 다 같기 때문이다.
이익집단과 숫자의 힘을 깨우치기 시작한 사람들의 폭발력은 엄청났다. 민간 정치단체들은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멋진 이름과 깃발, 간판으로 자신을 치장했다.
이제 사람들은 무언가 신분을 증명해야 할 데가 있으면 호패가 아니라 자신의 소속 단체가 적힌 신패(信牌)를 내밀기 시작했다. 신패 없는 자들은 21세기 동창회에서 나눠줄 명함이 없는 사람과 비슷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너도 만들겠다고? 이름이 뭐? 백발백중회(百發百中會)?”
시준은 지유의 침대 옆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눈을 둥그렇게 뜬 지유에게 미음 그릇을 주었다.
이제 혼자 밥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기는 했으나, 대체 어디가 어떻게 상했는지 기운 차리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도미니크를 비롯한 프랑스 의사진과의 토론 끝에 시준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감염성 폐렴이었지만, 맞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자연치유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나마 기침과 객담(喀痰)이라도 멎게 해주기 위해 시준은 모든 수단을 다 썼다. 의주 정약횡 의원집을 통해 우황(牛黃) 같은 비싼 약재를 들여오는 건 물론, 바쁜 와중에 밤을 새워서라도 직접 옛날 솜씨를 발휘하여 표절 용각산을 빻고 걸렀다.
그 와중 열불이 날 정도로 멀쩡해진 김유근은 눈에 거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준마저도 몇 번이나 가서 화풀이로 자근자근 밟아 놓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생각만 했을 뿐이다. 시준은 지금 마음 가는 대로 손발 써도 되는 처지가 아니다. 김유근이 좀 낫자마자 대비와 왕비처럼 유폐된 건 그가 중요한 정치적 인질이었기 때문이지 결코 시준의 사감을 부하들이 알아 모신 건 아니었다. 시준 자신은 그렇게 믿었다.
잠깐 침묵하던 기랑이 대답했다.
“내가 만들겠다고 한 게 아냐. 고향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그러는걸.”
옛날에 기랑을 용병으로 잘 써먹다가 팔아넘기다시피 했던 동네 포수들이 가죽과 고기의 판로를 고민하다가 기랑을 떠올린 것이었다. 시준은 살짝 짜증을냈다.
“무슨 은혜를 입었다고 그런 데에 왜 귀를 기울이냐? 여자인 거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내가 뭘 하는 건 아니야. 이름만 빌려주면 저들이 알아서 하겠다던데.”
“야. 그거 네 이름 써서 사람 많이 모아 보려는 거야. 곗돈이니 뭐니 걷어다가 저희들끼리 배 채울걸. 그냥 집어치우는 게……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냐?”
기랑은 또 한참 머뭇대다가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잘 부탁한다고 받은 거야. 이거 들고 가면 네가 지지해 줄 거라고 하더라고.”
시준은 기랑에게 주머니를 받아 코에 들이대 보았다. 장사꾼이던 시준에게는 코에 익은 향기였다.
“사향(麝香)? 비싼 물건인 건 맞다마는 그런다고 내가 누구 편을 들거나 하기에는…….”
“이거 차고 밤에 가서 안기래.”
시준은 놀랄 틈도 없었다. 지유가 요란하게 기침하며 먹던 죽을 뱉어냈기 때문이다. 한바탕 소란을 겨우 진정시킨 시준은 붉으락푸르락하며 화를 냈다.
“그, 그 내가 비역질한다는 헛소문이 아직도 있어?”
“비역질이 뭔데?”
“아니다. 아니야.”
시준은 손을 내저으며 지유를 다급하게 쳐다보았다. 지유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손을 입에 대고 있었다. 단지 기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시준은 지유에게 변명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과 단어를 소모해야 했다. 그 백발백중회인지 나발인지가 정말 만들어지면 정치국의 이름을 걸고 요절내 주겠다고 으르렁거리던 시준은 기랑에게도 투덜댔다.
“너도 너다. 입발림 곧이곧대로 듣고 이런 것까지 받아 오면 어떡하냐?”
한참 듣고 있던 기랑이 우두커니 말했다.
“회가 생기면, 네게 패 던지겠노라고 공언하는 인민위원을 포수들이 뽑아 줄테잖아. 그래야 네가 이기는 거 아냐?”
시준은 멈칫했다. 기랑은 그저 남의 말만 순진하게 믿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기 이름이 이용당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승낙하여 향주머니 받아 온 것은 ? 물론 그 뜻은 세수하고 가라는 의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 그것이 시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아까 기랑이 사향 차고 가서 안긴다느니 어쩐다느니 떠들었을 때보다 훨씬 어색한 침묵이 방 안을 떠돌았다. 시준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네가 어쩌는지 보겠다는 지유의 시선이었다.
시준은 결국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상투적인 해결책을 선택했다. 그는 여기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나,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허락하고 말고 할 것도 아니니 네가 알아서 하고, 그네들 하는 얘기 너무 믿지는 마라. 알겠지? 난 이만 좀 볼일이 있어서 나가 볼게. 지유 몸조리 잘 시켜 주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번 총선거에서는 서상의 직함과는 별개로 시준 역시 표다툼에 뛰어들어야 했다.
시준은 서운해하는 의주 부윤 조흥진에게 만상의 몰표를 약속하고 평양으로 호적을 옮겼으며, 그 목적은 평양 인민위원회의 위원 출마다. 그래서 눈코 뜰새가 없었다. 게다가 함경도 군세의 대규모 남진이 관측되어 혁명군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무력위원들은 아무래도 서울로 향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조선 도로 특성상 대병을 평안도로 진군시키려면 남쪽으로 가다가 서울 부근에서 방향 바꿔북진하는 것도 고려할 만한 선택지였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
총선거로 정부가 구성되기 전까지는 정치국도 기존 업무를 지속해야만 했다.
시준의 역할은 여전히 막중했다. 시준의 체력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시간 만들어 지유를 간호하러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기랑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지유 ? 기랑도 지유 앞에서는 마음놓고 말할 수 있었다 ? 역시 그런 사정을 알았다.
‘어릴 때부터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해도 여전히 바보 같구나. 그 많은 사람 목숨 달린 일을 하면서 나한테 그렇게 매번 찾아오다니.’
시준이 나가고 나자 지유는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기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작가의 말
1. 미라보 백작 오노레는 익히 아시는 그 국민의회의 의장입니다. '프랑스의 위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팜플렛은 혁명을 촉발시킨 여러 문건 중 하나죠.
2. '복'이란 푸셰가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며, '겸애' 나 '독정자'는 일본식 번역 '박애' '독재자'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작중 조선에서 푸셰가 해당 개념을 한자로 번역한 것입니다. 작중의 창작 개념인 '수평'과 마찬가지입니다.
3. 팔레 루아얄은 영어로 하자면 팔레스 로얄. 그러니까 왕의 궁전입니다. 혁명 당시 자코뱅파의 정치인이며 언론인이었던 카미유 데물랭이 여기에서 연설하였습니다.
4. 흑인이나 여성 투표권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논의되었고 부분적으로 부여되기도 했습니다만, 미국에서 투표에 일체의 자격을 규정할 수 없도록 완전히 확립된 때는 1968년입니다. 진짜 얼마 안 됐죠.
5. 사실 뒤주대왕은 서울과 경기에서 모셔진 신으로(지방 사람들까지 사도세자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기에는 이 시대에 아직 매스 미디어가 없습니다) 평안도에서는 낯선 신격입니다만, 작중에는 더 활발히 진행된 정치적 정보 교류를 반영하여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6. 앵무는 효종 때 귀인 조씨의 저주 사건에 연루되어 처벌받은 무당의 이름으로, 작중의 앵무는 당연히 동명이인입니다. 무당은 같은 이름을 돌려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종의 브랜드랄까요... '빗장거리' 라고 함은 남녀가 빗장 지른 것처럼 +모양의 체위로 하는 성관계를 말합니다.
7. 당시 과부처럼 결혼이 불법이거나 무당의 딸처럼 어디서 혼처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성황당 앞에 신새벽에 나가 있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첫 번째 남자는 의무적으로 그 여자를 데려다가 부양해야 했지요. 짐작하셨다시피 보통은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습니다.
8. 액막이의 원리는 다양합니다만, 대개 더 '높은 신'이나 관청의 이름을 빌려 '잡귀'들을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5, 60년대까지도 이어진 풍습으로, 결혼하기 전 점을 치면 신랑 첫날밤 급살할 수라는 결과가 종종 나왔는데 이때 옷깃이나 동정에 산신과 신장의 가호를 적어 주(고 돈 받)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급살 일으키는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 형국이라 설명하지요.
9. 전근대에는 어느 문화권이나 여성의 성욕을 억압하고 싶어 했습니다마는 남자들은 마음대로 놀면서 여자는 하지 말라고 하면 될 리가 없는지라;; 나름대로 다들 빠져나갈 데가 있었는데요, 조선의 경우 애용되었던 수단 중 하나는 절이었습니다. 절은 불공 핑계로 여자가 출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고, 승려들도 대놓고 결혼하기 힘든 몸이니 수요와 공급이 맞았던 셈이죠.
10.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하고 공식적인 노비제 - 특히 "노비 세습제"는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법적으로, 일본에서는 전국시대를 거치며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물론 점진적인 것입니다.) 명에서는 특수 계급만이 제한적으로 노비를 소유할 수 있었죠. 노예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데 개인적인 채무관계나 특수한 사례 정도고, 공식적으로는 조선만이 계속 유지했습니다.
31. 총선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