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101화 (101/284)

101화

30. 다시 움직이는 국면(1)

이 시점에서 김조순은 시준이 생각한 것만큼 조선을 쥐고 있지 못했다.

사실 이공이 도망치고 나서 길게 잡아봐야 두 달이 흘렀을 뿐이다. 상식적으로 뭘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같은 시간 동안 평양에 아성을 건설한 시준의 사례도 김조순의 말을 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혁명 분위기에다가 영국과 프랑스의 도움까지 받아 기세를 탄 서상과는 다르다. 김조순은 어디까지나 기성 질서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으며, 따라서 그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뭐든지 할 수 있었던 시준과는 처지가 같다고 할 수 없었다.

김조순의 조정 장악력은 역설적으로 이공이 있을 때보다도 더 떨어졌다.

자신들이 역사의 물굽이에 있다는 것을 알아챈 노론 시파 신료들은 슬그머니 하나둘씩 사라졌다. 물굽이는 흐름을 잘 타 역전할 수도 있지만 급류에 휩쓸려 가라앉을 수도 있는 자리이다.

차라리 폭군이 존재한다면 목숨 걸고 대들어 보련만, 왕 자체가 없는 지금 조정에서 봉사하는 것은 거꾸로 난신(亂臣)의 주구 노릇 한다는 고향 선후배와 사형제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정도(正道)를 지킨 김조순이 왜 난신인가? 새로운 임금을 세우지 않고 홀로 조정을 전단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정(反正)에서 반(反)은 있으되 정(正)이 없는 셈이다.

누구보다 왕을 빨리 세우고 싶지만 내명부와 옥새가 한꺼번에 사라져서 그러지 못할 뿐인 김조순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만한 중상모략이다.

이공이 본격적으로 친위 쿠데타를 준비할 당시 물러났다가 김조순의 간곡한 청으로 조정에 돌아온 전 병조 판서, 현 한성부 판윤 김이익(金履翼)이 반면(盤面)을 들여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 영안부원군이 왕을 내쫓아버리고 무주공산에 살쾡이가 작호(作虎)한다 느니 하는 소릴 떠들어대는 자들이 있지. 하지만 그자들 또한 사정을 알면서 그러는 걸세. 억지로 꾸며대는 게야.”

관청이 아니라 사적인 자리여서, 김조순과 스무 살 넘게 차이나는 연장자인데다 넓게 보면 일문 어른이기도 한 이 노대신은 말을 높이지 않았다.

과거 비변사에서 둘러앉아 나랏일을 논의하던 시절, 박윤수를 면전에서 깔아뭉갰던 김이익의 카랑카랑한 독설이 바둑판 위로 퍼져나갔다.

“고향에서 헛기침하며 소위 정도를 떠들고 있으면 제 한 몸이야 편하거든. 그렇게 냉수 먹고 이나 쑤시다가 만약 부원군께서 패망하여 효수된다면 나는 난 신적자에 알랑대지 않았노라고 청명(淸名) 드높여 슬그머니 출사라도 할 생각 이겠지. 쥐나 까마귀와 같이 얄팍하고 하찮은 무리일세. 큰일을 할 위인들은 못 돼.”

김조순은 한숨을 쉬며 반면에 착수했다. 김이익의 성질머리대로 공격적인 바둑 때문에 그의 형세는 마치 지금의 심정처럼 곤마(困馬)의 우형(愚形)이었다.

“그것뿐만은 아니겠지요. 지금 전복(甸服, 경기)에 웅크리고 있는 도적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김조순이 곤란한 또 한 가지의 이유는 군대 문제였다. 조선 프리드리히 이공의 군사적 유산은 아주 골치 아픈 문제를 남겨 놓았다.

현재의 총융사 이당(李?)은 왕실의 친족이요, 수어사 한용탁(韓用鐸)은 반남박문이 외가, 어영대장 이해우 역시 왕의 총신이다. 강철군주 이공이 주의 깊게 임명한, 나라의 신뢰받는 대장들인 것이다.

이들이 이끄는 3개 군영은 왕이 아직 없음을 들어 움직이지 않았다. 총융청은 북한청(北漢廳, 북한산성 내의 총융청 군영)에, 어영청은 도성을 지키는 임무도 버리고 수어청과 함께 남한산성에 모여 있다.

김조순은 당시 다급한 나머지 악수를 두었다.

그때는 초모한 번상병이 아직 흩어지지 않아서 훈련도감 하나만 쥐고 있는 김조순에게는 심대한 압박이 되었으니 이해할 만도 했다.

김조순이 취한 조치 자체는 상식적이었다. 3개 군영으로 가야 하는 모든 종류의 지원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또한 단견이기도 했다.

번상병 대부분이 흩어지는 성과에 기뻐한 것도 잠시, 조선은 핵심 중앙군 병력이 그대로 산적이 되어버리는 최악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래, 알고 있네.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천여 명의 도적 떼가 웅거한 게지.

돌아갈 자들은 다 돌아갔다고 하지만 원래부터 다른 뜻을 품고 있던 군관들이나, 아니면 위협이나 달래는 데에 못 이겨 남아 있는 병사가 아직 많아. 경기를 마구잡이로 노략질하고 있으니 용렬한 자들이 오금 저릴 만도 해.”

김이익은 김조순이 착수하자마자 그리 장고하지 않고 바둑돌을 내려놓았다.

상대의 어리석은 행마를 크게 키워 잡아먹는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바로 끊어내는 한 수였다.

“그래서 언필칭 선비라는 작자들이 졸예(卒隷) 따위가 두려워 혓바닥으로 이 말 저 말 자아내고 있다는 거야. 웃기는 일이지 뭔가. 지금 기호의 사림이란 다 무덤 속의 뼈다귀나 다를 게 없어. 정도를 말하면서 목숨을 아낀다는 꼴부터가 이미 글러 먹은 걸세.”

“세상 사람 모두가 대감처럼 문정공(文正公, 송시열)의 기풍을 본받을 수야 있겠습니까.”

김이익은 콧방귀를 뀌며 돌 통에 손을 넣은 채 바둑돌을 절그럭거렸다.

“빈말은 그만두게. 나를 굳이 불러서 판윤 자리 주어 앉힌 걸 보니 이제 시작할 속셈일 테지?”

김조순은 돌을 내려놓던 손을 멈추었다.

“아셨습니까?”

“두 산성에 버티고 있는 도적놈들을 쓸어버리려면 훈련도감이 필요하겠지. 어쩌면 기호와 삼남의 속오군도 말이야. 그런데 훈련도감은 지금 도성을 비울 수 없지. 계술(季述, 이요헌) 그 친구가 당장에라도 청계천 어느 수챗구멍에서 뛰쳐나와 육조거리를 요절낼지 모르니까. 아닌가? 이 늙은이가 짐작했다면 한성 부민 절반은 알 걸세.”

김조순은 돌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러면 전(前) 수경포도장 역시 알고 있겠군요.”

“물론이지. 사실 어제도 내 집에 불붙인 기름통과 돌멩이가 날아들었다네. 포도군관이 모두 도적이 되어버렸으니, 원.”

수경포도군은 프랑스식 정치경찰 체제를 전수받은 자들답게 훌륭한 조선판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그들은 이요헌의 지휘하에 서울 곳곳에서 암약하며 적극적인 테러 활동 중이었다. 노론의 대량 낙향에는 사실 김이익의 분석보다 이요헌의 역할이 더 크게 작용했다.

“예? 아니, 그런 흉한 일을 어찌 이제야 말씀하십니까?”

김조순이 놀라서 묻자 김이익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부원군 그대에게 아뢰면 놈들이 잡혀 오기라도 하는가? 놈들이 늙은이라고 깔보는 것이 너무 심했어. 이제 서울은 내게 맡기게. 북쪽은……. 그래. 그 정시준이라는 자는 제대로 덫을 깔았겠지?”

“예.”

왕이 북쪽으로 올라간 이후, 김조순 역시 그쪽에 신경을 집중했다. 사대부 중에 평안도 사람과 벗하는 이가 드물어서 고생은 했지만, 김조순은 서상의 발표에 더해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왕은 심각한 중상을 입고 투옥, 그리고 대비와 왕비는 유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소식이었다. 무슨 혁명군인지 뭔지 하는 것을 만들어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벽하게 김조순이 의도한 바에 들어맞았다.

“그자는 아주 일을 잘해 줬지요. 출신이 천한 게 아까울 지경입니다.”

설명을 들은 김이익도 그렇게 생각했다. 둘 모두 소위 ‘혁명’에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동아시아 3천 년의 정치 투쟁에서 그 정도 신기한 반란의 기치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시준이 아주 노골적이고 명백한 방식으로 왕을 친 죄를 뒤집어써줬다는 사실이다.

역사에 밝은 두 사람에게는, 어차피 시준의 출신이 상놈이라 처음부터 왕후장상을 칭하기 힘드니 그 중간 단계로 어디서 해괴한 논리를 끌어온 것쯤으로 여겨졌다.

그럴 만도 했다. 시준의 소행은 원숙한 대신들에게 치명적인 실수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이익은 가래 끓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허허허! 젊은이가 흔히 범하는 일이니 탓할 것도 못 되네. 너무 혈기방장했구먼. 정인이 화살에 맞아서 싸우기로 했다는 그 얘기는 믿기 힘들지만, 아니야. 그래.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는 법이지. 나는 시준이 딴마음을 먹었다고 해 봐야 폐주를 옹립하여 중국의 군병을 끌어들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 예지도 다 굳었나 보이.”

“지혜 있는 자라면 어찌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허나 이제 그들은 절대로 청에서 군사를 빌려올 수 없습니다. 가장 큰 근심이 덜어진 게지요.”

다친 왕을 협박해서 주문(奏文)을 위조할 수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설프게 협천자 흉내를 내 보아야 청군이 들어오는 순간 왕은 언제든지 시준을 쳐 없애는 게 가능하다.

왜냐하면 청군은 상국의 군대이므로, 시준이 왕 주위에 인의 장막을 치고 정보를 차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개 장군이라 할지라도 제멋대로 걸어가 왕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만사 끝장이다.

게다가 시준은 감정적인 판단인지 몰라도 왕과 싸웠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 버렸다.

이제 김조순은 시준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시준을 죄인으로 만들어 숙청할 수도 있고, 그 용서를 미끼로 시준의 세력을 거세해 버릴 수도 있다.

결국 두 사람에게 있어 시준은 자가당착의 길로 스스로를 몰아넣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잘만 하면 시준의 손아귀에 있는 김조순의 아들딸 역시 큰 고생 하지 않고 되찾을 것 같았다.

김조순은 서둘러 시준에게 파발을 보내 왕을 내놓으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시준처럼 짐덩이밖에 안 되는 그자들을 떠맡을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왕의 무력화가 확실시되는 이상, 국내 한정편법으로라도 이병원을 본격적으로 내세워 전국의 군대를 소환하여 산성에 틀어박혀 있는 도적들을 쓸어버려야 했다.

비변사의 분부 따윈 교지가 아니라서 잘 안 들린다며 버티고 있는 경상 감사김회연이 좀 걱정이긴 하지만 그는 경거망동할 자가 아니다. 김회연이 뭔가 해보려고 할 때쯤에는 모든 일이 끝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다음, 평안도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군세로 위협하여 모든 난리를 평정하는 것이다.

왕이야 그 후에 섬으로 귀양을 보내든 활줄로 목을 졸라 죽이든 하면 된다.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김이익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좋아. 결정됐으면 병귀신속이지. 나도 훈련도감을 대신할 사람들을 어서 모아 볼 테니, 부원군께서는 전국의 군병을 속히 소집하시게. 정시준이 손에 넣은 귀물(貴物)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오랫동안 우왕좌왕했으면 참으로 좋겠군.

하하하!”

그러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조순은 바둑은 어쩌려는 것인가 하고 반면을 들여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을 붙여 볼 수도 없는 불계패(不計敗). 김조순 역시 잡기에 상당한 재능이 있어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김조순은 이 노대신의 날카로운 총명이 아직 쇠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그라면 한양 도성에서 날뛰고 있는 이요헌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김이익이 떠나자, 복기(復棋)도 생략하고 미련 없이 바둑판을 치워버린 김조순은 지필묵을 끌어당겼다.

각도의 군이 제때 모이려면 먼 곳부터 시작해야 함이 당연하다. 그는 전라 감사 김희순에게 보내는 서찰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지금 김조순처럼, 모든 사람이 계획이야 그럴듯하게 가지고 있다. 한 대 시원하게 맞고 턱이 돌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조순은 정승 체면도 잊고 황급하게 달려 들어오는 좌의정 이시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대감께서 무슨 일이시오?”

“저, 전라도에서…… 감사의 급한 치계가 올라왔소이다!”

바로 지금 그 전라도의 속오군을 모으라는 서신을 보내려던 참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시수가 절규하고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영길리국 배 두 척이 쳐들어와, 흑산도가 그대로 실함되었다 하오!”

김조순은 붓을 놓쳐버렸다. 쓰던 서신이 흘린 먹물로 엉망이 되었다.

동인도 회사 함선 에식스(Essex)를 호위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 해군의 군함은 천진에서 공을 세웠던 슬루프함 킹피셔였다.

그러나 예상했던 조선 해군의 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대에는 장보고가 성을 쌓았을 만큼의 요충지였다 하나 현재 이 근방은 조운선이 오가는 곳도 아니고, 조선 수군이 이 먼 절도까지 철통처럼 방비할 만큼 열정적인 군대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조선군을 깔봐서는 안 된다. 엄밀히는 근처 우이도(牛耳島)에 수군진이 있기는 하다. 거기서 나와 봤던 작은 병선 두 척은 과연 조선군다운 절기를 뽐냈다.

영국 해군은 이 거친 바다를 자유자재로 타 넘고 돌파하며 날래게 도망가는 조선 수군의 환상적 조함술에 할 말을 잃었다. 정녕 저것이 갤리선인지 의심될 수준의 민첩함이었다.

그러므로 당장 영국 해군의 상대는 조선 해군이 아니었다. 킹피셔 함장 조지 시모어가 담뱃대를 움켜쥐었다.

“미리 말을 했어야 할 게 아닌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조선 해군이 아니라 조선 바다라는 것 정도는 말이야.”

흑산도가 귀양지인 이유가 있다. 이 부근 바다에 익숙한 문순득 같은 사람은 조각배로도 다니기는 하지만, 그거야 문순득이 표류 전문가라서 그렇고 일반적으로 이 근해는 배가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현대의 내연기관을 장착한 전금속제 선박이라도 일, 이백여 톤 레벨까지는 우습게 해저에 처박아버리는 거친 조류와 풍랑이 섬을 휘돌고 있다.

물론 영국 해군은 훨씬 더 큰 파도가 몰아닥치는 원양 항해에 익숙하다.

그러나 대양의 파도가 강맹하게 내려치는 장검이라면, 이 군도의 풍랑은 작지만 예리하게 찔러 오는 나이프 같았다. 킹피셔와 에식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은 영국 해군의 무수한 경험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

조지 시모어는 조선에 왜 변변한 해군이 없는지 알만하다고 생각했다. 만만찮게 거센 물살이 몰아치는 강화도도 그렇고 조선에는 도무지 제대로 된 항구후보지를 찾기 힘들었다.

시준은 정약전 구출과 길 안내를 위해 상당히 많은 사람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약전의 얼굴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정약용도 당연히 들어 있었다.

어쨌든 엄연히 에식스를 잠시 전세 낸 ‘선주’ 정시준의 대리 입장이라, 정약용은 위축되지 않고 뒷짐을 졌다.

“영길리국 수부(水夫)들의 배 모는 솜씨가 천하제일이라 하니 능숙히 헤쳐 나갈 것으로 믿지 않았겠느냐? 이쯤이야 조선의 어부들은 매일같이 다니는 곳이다.”

“하여간 동양인들의 큰소리란. 가서 빌어먹을 구출인지 뭔지나 해 보시오. 되도록 서두르지는 않았으면 좋겠소. 우리도 좀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정약용은 그 ‘볼일’이 뭔지 알만했다.

“영길리인들은 가는 곳마다 부녀를 겁간하고 재물을 약탈한다고 하는데, 만약 여기에서 도적의 못된 근성을 보인다면 후과가 작지 않을 터이다.”

시모어 함장도 영국 해군이 그런 무뢰배가 아니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영국인은 선천적으로 양심을 상실하고 태어나는 유전병을 앓고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후의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안다니까. 물과 ‘김치’ 만 좀 신사적으로 거래하고 싶을 뿐이오. 강간? 제기랄, 저놈들이 그럴 기운이나 있을까? 지금은 이스트엔드의 사창가에 갖다 놓아도 바짓가랑이가 펑퍼짐한 채 그대로일걸.”

정약용은 시모어 함장의 상스러운 말에 대꾸하는 대신 바닷가에 멍하니 둘러 앉아 담배를 피우는 수병들을 둘러보았다.

시모어 함장은 공포 때문에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수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평안도 담배’를 선창에서 끄집어내야 했다. 다행히 천하에서 알아준다는 서 초의 효과가 있어서, 지금 당장은 다들 얌전해 보였다.

흑산도는 작은 섬이 아니다. 몇몇 섬사람이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을 나와 있기는 했지만 정약전은 보이지 않았다. 정약용은 같이 온 조선 사람들을 데리고 서둘러 모래미로 향했다.

오래잖아 사촌서당의 편액이 보이자 정약용의 시야는 극도로 압축되었다. 더 참지 못한 정약용의 걸음이 선비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달음박질로 바뀌었다.

“형님! 그간 무사하셨습니까!”

정약전은 오랜만에 만난 아우를 얼싸안는 대신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아니, 왜 네가 여기에 왔느냐? 임금께서 설마 아우를 시켜 형에게 약이라도 내리셨느냐?”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형님께서는 저와 함께 어서 이곳을 나가시지요!”

정약용의 설명을 들은 정약전은 고심하듯이 고개를 숙였다.

“소문은 얼핏 들었다마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혁명이라. 네가 실로 무서운 자를 키워냈구나. 네 학문이 어느새 나라를 뒤집어엎을 정도까지 도달했을 줄이야. 언제부터 다른 뜻을 품고 있었느냐?”

“그, 제가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정약전은 정약용의 항변을 무시했다.

“괘씸한 녀석. 이제는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너를 따라나서는 것 외에 별도리가 없겠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던 정약용은 곧 그 뜻을 깨달았다.

정약전은 이제 시준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는 것, 그 길에 정약용도 함께한다는 것, 또한 최대의 장애물이 될 것이 분명한 김조순이 이를 파악하면 정약전을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사실까지 한순간에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런데 나만 데리고 오라고 하지는 않았겠지? 그러면 한성부에 있는 네 처자식도 위험할 테니 말이야. 아마 영길리국이 흑산도를 점탈했다는 식으로 일을 꾸미고 그사이 한성부에서 네 가솔을 빼내겠군. 그렇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들도 ‘납치’해야 할 테지.”

“형님에게는 역시 당할 수가 없군요.”

정약용은 항복하고 싶다는 표정이 되었다. 정약전은 툴툴대면서 안경을 벗었다.

“그렇다면 한 사람 데리고 가고 싶은 자가 있다. 외국인이 하나 표착했는데, 유구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더구나. 영길리 사람까지 있다면 고향을 찾아줄 수 있겠지.”

“그러시지요. 지금 조정이 그런 외국인 하나까지 구휼해 줄 형편이 되겠습니까. 차라리 평안도가 나을 겁니다. 중국도 가깝고요.”

별생각 없이 승낙한 정약용은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들을 좀 모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약용은 그간 평안도에서 쉴 새 없이 이루어지는 연설과 정치 토론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변설을 할 때는 흔히 성현의 경구를 우선 인용하고 그에 기반해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선대의 현자들을 부정하지 않으면 반박할 수 없는 방식이라 꽤 효과적이기는 하나, 책을 주면 벽 도배할 생각부터 먼저 하는 백성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그런 지루한 연설을 하는 자는 단 세 마디도 하기 전에 자기 앞을 떠나 더 재미있는 곳으로 가버린 청중들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모인 모래내 사람들에게 정약용이 꺼낸 첫마디는 강렬한 타박이었다.

“내가 여기 오면서 보니, 여름이 목전인데도 논에는 물이 없고 밭두둑에 쌓아 놓은 바람막이는 그 효험을 보기도 전에 심은 것이 다 말라 죽고 있소. 간신히 뭔가 거둔다 하여도 둔장(屯長, 둔전의 마름)이며 별장, 좌수가 다 빼앗아 가겠지.”

사람들은 모두 웅성거렸다. 정약용은 그런 도민들 앞에서 힘주어 말했다.

“평안도에서도 똑같이 흉년이 들었소. 그러나 평안도 사람들은 세간에서 진인이라 하는 정시준 회장의 지도 아래,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따뜻한 집에서 솜옷을 입고 겨울을 났소이다. 물론 다른 고을에서 온 기민(飢民)도 전부 받아주었지.”

육지가 굶주리는데 이 절도는 오죽하겠는가. 지금 모인 사람 중에는 평생 쌀밥이나 고깃국이라는 물건을 구경도 못 해 본 자가 적지 않았다.

정약용은 지금까지 가장 인기를 끌었던 연설자들을 기억해 냈다. 선비 체모에 어울린다 할 수 없었지만 정약용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바다를 가리켰다.

“나는 운명을[命] 뒤바꾸는[革] 길을 말해주러 왔소. 인민 모두가 배불리 먹는 혁명의 고장은 바로 북쪽에 있소. 여기 멍하니 앉아서 굶어 죽을 텐가? 아니면 나를 따라 북으로 가서 잘살아 볼 텐가? 이는 오직 그대들에게만 달려있는 것이오!”

작가의 말

1. 원인은 전혀 다르지만, 이당과 한용탁은 당시 실제로 저 관직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또한 김이익 역시 이때 한성 판윤을 했습니다.

2. 왕이 죽으면 청승습사 등 여러 사신을 중국에 보내어 왕의 부고를 알리고 차기 왕의 승계를 허가받는데, 이 사신은 모두 왕비, 혹은 살아 있을 경우 대비의 명의로 갑니다. 중국 황제가 이에 대해 답을 보낼 때도 "내가 왕비의 글을 보니..." 하는 식으로 위로사 겸 허가를 내주는 것을 볼 수 있죠.

태종처럼 좀 특이한 경우를 빼면, 종신직인 국왕의 특성상 왕이 죽었을 때 왕실 최고위직은 대비나 왕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세자는 당연히 어머니/할머니보다 낮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사극 등에서는 그냥 옥새 셔틀로 나오는 경우가 많죠. 국왕 유고시 내명부의 역할은 장례 지휘부터 승계 외교절차 마무리까지 상당히 넓고 강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작중 김조순은 청에 사태를 알리고 이병원을 새 왕으로 세우기가 상당히 곤란해진 겁니다. 일단 청에 사신 보낼 책임자가 없습니다. 청은 분명히 '그런데 죽은 왕의 모친과 부인은 어디 있니?' 하고 물을 텐데,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는 거죠.

3. 현대에도 접근하기 힘든 섬인 우이도에 수군진이 있다는 것이 의외일 수도 있는데요, 이때 조선 서남부 해안은 외국인 표류가 엄청나게 잦았습니다. 흔히 하멜, 벨테브레 같은 유명인들이 알려져 있긴 한데, 이건 신기한 유럽인이라 그렇고 절대 다수는 중국인이었습니다.

조선은 도덕국가답게 표류한 외국인들은 최대한 잘 대접해서 고향 가는 길 찾아 보내주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비변사등록에는 표류한 외국인을 멋대로 쫓아내 버린 흑산도 둔장(둔전을 관리하는 중간 마름 같은 직위)을 처벌하라는 기록이(정조 10년) 보입니다. 이때도 '너희 표류 한두 번 처리해 보니?' 하는 식의 질책이 있지요.

4. 아시다시피 이 당시의 좌우 개념은 '서울에서 남면하는 군주'를 기준으로 하므로, 전라'우'수영은 전라도 서부를 담당했습니다. 서울에서 남쪽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른쪽이 서쪽이 되죠. 그리고 전라우수영은 이 당시(19세기초) 조선 최대규모의 수영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화에 나올 것 같습니다.

5. 섬은 해풍 때문에 농사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밭고랑을 높게 쌓아 바람을 막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많이 쓰였죠. 정약용의 말은 그 뜻입니다.

30. 다시 움직이는 국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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