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97화 (97/284)
  • 97화

    28. 기호지세(3)

    다리 부러진 왕을 싣고 전력 질주는 고르기 힘든 선택지다. 평양성부터 이공의 본영까지는 서두른다면 하루 거리가 채 안 되는 길이었지만, 이공이 실제로 본영에 돌아올 수 있었던 시점은 자랑스럽게 출진한 때로부터 세어 닷새 가까이 지난 뒤였다.

    소달구지보다 나을 것 없는 급조된 마차에서 흔들리지 않는 침상으로 옮긴 게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었다. 시커멓게 죽은 얼굴의 박윤수가 보고하는 대비 탈출 사건의 전말을 듣고 이공은 펄펄 뛰었다. 물론 다리가 부러졌으니 정신적으로 그랬다는 얘기다.

    “그래서 내가 이 역적의 씨앗을 당장 참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요망한 것이 끝내 대비 전하까지 속였구나. 당장 모두 잡아 오라! 중군(中軍)은 거기 있는가!”

    “예. 전하.”

    금위영 중군 이정회(李鼎會)가 지친 모습으로 왕의 부름에 답했다. 원래 선전관 출신으로 왕과 안면이 있다는 죄 때문에, 전사한 금위대장 대신 이 패군을 급거 떠맡은 처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명부는 그저 구중궁궐의 아녀자 집단이 아니다. 그들마저 임금을 배반했다면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이공도 그 사태의 심각성은 아는지 거침없이 영을 내렸다.

    “그대에게 어검(御劍)을 하사하겠다. 이제부터 중군은 왕명을 대리하는 자이다. 만약 도망한 자들이 돌아오지 않으려 하거든 어명을 능멸한 죄로 다스려도 좋다!”

    그러고 나서 멋지게 검을 풀어 던져 주었다면 그나마 그림이 나왔으련만, 어검 따위는 이미 포격에 낙마하면서 어느 귀신이 가져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진 뒤였다(지금쯤이면 무력위원회 제일의 노획품 중 하나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공은 금군 전부를 향해 무지스러운 욕설을 퍼부었다. 이정회는 그냥 왕 버리고 칼 주워 오는 게 여러모로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칼은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왕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명을 받고 물러난 이정회는 군사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파멸에 가까워진 보급, 보급 상태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병사들의 사기, 이제 쓸 수나 있는지 의심스러운 총포 등을 연속적으로 떠올렸다. 그의 표정은 더욱 우울해졌다.

    이정회가 나가자 박윤수가 왕에게 물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흉참한 적도의 일은 신이 듣고 놀랍고 두려움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어기가 출진한 틈에 신이 실기한 일은 열 번 죽어도 모자라겠으나, 이제 전하의 영단이 계셨으니 신은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왕대비전하의 가마가 돌아온다면 그 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역적 김조순의 딸을 군문효수할 것이라고 외치려 했던 이공은 멈칫했다. 박윤수는 당장 내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물은 게 아니었다.

    예의 차려 돌려 말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박윤수는 직설적으로 간언했다.

    “군사는 피폐하고 사방이 반적입니다. 기호의 민심은 교활한 김조순이 훼상(毁傷)하였을 터요, 그 가형(家兄)이 감사로 있는 호남은 이미 역적과 한통속일 것이고 영남은 너무 멉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왕대비 전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필히 함경도나 강원도로 몽진(蒙塵)하시어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파천이라면 조선 왕실에는 혈통에 잠재된 전문성이 있다. 그 전문성은 논리를 뛰어넘어 직관으로 이공에게 경고했다.

    도주 전문가 가문의 재능을 체화하는 말예로서, 이공은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박윤수의 안에 거부감이 든다고 생각했다.

    이공도 조선왕인 만큼 도망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미 그는 서울을 버리고 몽진한다는 대결단을 내렸기도 했다. 문제는 장소였다.

    이공은 열성조의 빛나는 행적을 잠시 되짚어 보았다.

    선조(宣祖)는 왜군보다도 빠르게 의주로 튀었고, 인조는 여진 기병보다도 빠르게 강화도로 날아갔다(두 번째는 실패했다). 그 두 장소에는 각자 장점이 있었다.

    의주 너머에는 조선의 부군(父君)과도 같은 나라인 명이 있었으며, 강화도에는 험한 바다와 포대가 있었다. 둘 모두 근왕군이 사방에서 일어설 때까지 충분히 사직을 보우할 만했다.

    그런데 지금은 박윤수의 말대로 조선의 인구 밀집 지역 거의 전부가 왕을 배신했다. 따라서 근왕군을 기다릴 곳이 별로 없다.

    이 위치에서 도움이 되기 힘든 경상도를 제하면 남은 것은 황해도인데, 황해 병사 안숙이나 감사 홍희신(洪羲臣)의 태도는 박윤수도 짐작하였듯이 미적지 근하다.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 왕을 따라 어떤 군세도 모여들지 않는 것을 보고 뭔가 느꼈을 법하기는 하다.

    이공은 애써서 황해도가 자기를 거부한 게 아니라 자기가 황해도를 거부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왕대비가 황해도로 가려 한 이상 그곳도 안심할 데가 못된다.

    ‘지금 달려오지 않는 자는 모두 역적. 결국 이 나라는 이제 끝난 거나 다름없다. 조선 어디로 도망치든 말라 죽을 뿐이야.’

    사실 이공의 현실 인식은 조금 비관적이었다.

    지금 사방에서 벌떼같이 근왕군이 봉기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왕의 상태를 잘 몰라서이지 그들이 불충해서가 아니다.

    함경도와 강원도의 수령들도 부지런히 상황을 알아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정보는 평안도의 몇몇 고을에서 소요가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서울에서 뭔가 정변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였다. 애초에 이공이 도망친 지 한 달이 간신히 넘은 시점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파발에 대해 김조순은 비변사의 명의로 항상 같은 답을 보냈다.

    ‘어떤 불측한 거짓 소문이나 충동질에도 부화뇌동하지 말고 자리를 엄수할 것.’

    아직 왕의 이름을 쓸 수 없는 이병원과 김조순으로서는 이 정도 대응이 한계였으나, 어차피 지금 조선에서 비변사보다 더 공적인 권위가 있는 곳도 없다.

    그래서 지방 유지며 수령들은 파편화된 개인적 소식통을 그러모으며 사태를 관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전화기가 없는 게 한이었다.

    왕의 격문이라도 한 장 써서 뿌리면 좋으련만 그도 여의치 않았다. 그 전에는 도망치는 처지인 데다가 평양성에서 당당히 반포하면 된다는 생각에 신경 쓰지 못했고, 지금 와서는 그런 짓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저런 사정이 겹쳐, 이공은 역시 강철군주다운 혁신적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중군에게 다시 명을 내려, 지금 나가지는 말고 군을 정돈하게 하라. 우리 모두는 황해도로 내려간다. 내가 직접 가서 왕대비 전하를 모시고, 역적의 씨를 없이 한 뒤 경의 말대로 몽진하겠다.”

    “어, 어디로 가시려는지……. 왕대비 전하께선 한참 남쪽에 계실 텐데, 강원도나 함경도는 여기서 남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는 편이 낫습니다. 산길이 험하기는 하여도, 봉산이나 개성까지 승여(乘輿)가 내려간다면 김조순의 불측한 손길이 닿을 우려가…….”

    “선조대왕께서 행하셨던 그 길을 밟겠다. 다만 지금은 바야흐로 땅 대신 바다를 밟는 자가 이기는 때! 그대는 어찌하여 형세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가?”

    그러면서 이공은 자랑스럽게 턱을 들어 보였다.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는지라 꼴이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박윤수는 골계(滑稽)의 편린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이공의 이어지는 말이 경악할 정도로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황해도 오차포(吾叉浦, 현대의 장연군) 근처에는 옛날부터 청나라 사람들이 몰래 자주 왕래했다. 거기서 쉬이 올 수 있다면 여기서도 쉬이 갈 수 있다는뜻. 황해 병사가 다른 마음을 먹기 전에 어서 파발을 보내어 배를 준비하라 이르라!”

    박윤수는 정말 그대로 했다가는 황해 병사에게 없던 역심이 생겨나리라 확신했다.

    “며, 명을 거두어 주소서. 전하! 과거 선조대왕께서는 천조(天朝)가 제후를 돕는 의리를 보였기 때문에 의주로 가셨지만, 지금 오랑캐 나라가 된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바다란 물건은 아침저녁으로 파랑을 예측할 수 없어 극히 위험합니다. 한 조각 가랑잎 같은 배 한 척[一葉片舟]에 지존의 몸을 어찌 의지하시겠습니까?”

    예전부터 중국에 배로 사신 보내고 싶어 했던 이공이나 할 법한 발상이었다.

    중국에 무사히 도착한다 쳐도, 아니, 무사히 도착하면 그게 더 문제다. 청 황제는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왕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신하들의 목을 모조리 쳐버린 다음 이공을 꼭두각시로 만들 것이다.

    그다음 수순은 당연히 이공을 내세워 청군이 조선을 침공하는 3차 호란이다.

    서양국 때문에 조선이 껄끄러워진 청으로서는 이 기회에 확실하게 조선을 다져 놓고 싶으리라는 것쯤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이공은 그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관점만 약간 바꾸면 재조지은을 한 번 더 재현할 수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다 헤아려 둔 바가 있다. 내 서양국의 사적을 들으니, 근세에 마려아(瑪麗?, 마리아 테레지아)라는 자는 여인의 몸으로서 섭정이 되었는데 외국영주와 자기 자식들을 혼인시키는 것만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전쟁을 막고 광대한 땅을 병탄하였다 한다.

    이제 역적의 씨를 없앤다면 나라에 국모가 없는지라. 청 황제가 어찌 옛일은 잊고 귀한 혈통의 황녀(皇女)를 주어 제일의 번국과 친목을 도모하지 않겠느냐? 한 번의 굴욕만 참으면 절개도 충의도 없는 무리 대신 단단한 갑주와 날카로운 창의 십만 팔기가 바로 나의 것인데 경은 어찌 다른 말을 하는가?”

    이젠 아예 왕이 나서서 변발하고 여진족 사위 되겠다는 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고 있었다.

    박윤수는 왕이 궁지에 몰렸음을 감안하여 이해해 보려다가 포기했다. 아무리 여진족 앞에 아홉 번 굽실대던 자의 자손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는가 싶었다.

    이공은 할 수만 있다면 일어나서 소매를 떨칠 것 같았다. 그러지 못하기에 그는 그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쪽에서 외척이 흉참한 본성을 드러내어 보위를 전단하고, 북쪽에서 상놈이 분수를 잊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일은 모두 하늘이 정해 준 이치를 거스르는 것으로서 사람과 귀신이 한가지로 용서하지 않을 소치다.

    반드시 천벌이 떨어질 것이나, 작금의 일은 그간 아랫사람의 탈선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에 대해 하늘이 내리는 견고(譴告)일 뿐! 어서 채비하라! 지금에야말로 하늘과 사람의 뜻에 응할 때이니!”

    그때, 기가 막히게도 하늘에서 내리꽂는 듯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일단 그것이 하늘이 감동하여 이공에게 기성(奇聲)으로서 뜻을 비추는 행사가 아님은 명백했다. 사방에서 놀란 말의 울음소리와 인간의 비명이 메아리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다시 한번 천지 뒤집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공은 경험자로서의 확신에 찬 태도로 목 막힌 소리를 질렀다.

    “화포인가!”

    콰당탕! 포격에 휘말린 커다란 교룡기(交龍旗, 국왕용의 큰 깃발)가 유막 한쪽을 완전히 일그러뜨리며 쓰러졌다. 이공은 할 말을 잃었다. 그가 놀라 일어나 도망치지 않은 건 담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저, 전하! 상체(上體) 무사하십니까?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전하를 모셔라!”

    유막 기둥뿌리가 흔들거리는 꼴이 곧 통째로 무너질 듯했다. 몸을 돌보지 않는 내시와 선전관들의 활약이 있어 이공은 그냥 누운 채 밖으로 무사히 옮겨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공은 갑자기 폐허가 되어버린 자신의 마지막 군대를 목도하게 되었다.

    솥이었던 것 같은 물건은 우그러진 채 내용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고, 사람도 비슷한 꼴이 난 채 여기저기 널브러진 상태였다. 사방에서 날뛰는 말과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도 모르는 인간은 사상자를 수습하기는커녕 계속해서 늘리는 상태였다.

    게다가 떨어진 것은 포탄만이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길쭉한 무언가가 혜성의 꼬리처럼 재앙을 끌고 날아오는데, 그것이 떨어지는 곳 마다 폭음과 함께 불길이며 연기가 치솟았다.

    포탄보다는 이쪽이 병사들을 괴멸시킨 주원인 같았다. 이공의 상태가 좀 정상이었다면 이게 신기전과 비슷하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조금 무리다.

    이공은 트라우마가 자극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얼어붙었다. 조금 있으면 다시 도망치자고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의 방패는 틀림없이 신하들이 되리라. 박윤수는 그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모진 결심을 했다.

    영변부에서도 그랬지만, 대량의 야전 포병 운용 경험이 없는 조선군에게 기습포격은 잘 먹혀들어 가는 수단이었다.

    홍경래의 난 당시 조선군은 현대의 눈으로 보면 의외일 정도의 대규모 기병 전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정주성 전투에서 나타나듯이 화포 쪽은 제대로 된 공성포 하나 없는 안타까울 지경의 전력이었다. 이게 다 돈이 없어서 그렇다.

    그런데 시준은 돈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변부 습격 때 사용했던 영국제 6파운드 야포 8문과 그때는 안 썼던 콩그리브 로켓을 아낌없이 퍼부을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망원경을 내린 시준은 말없이 손짓으로 전진을 지시했다. 바로 이틀 전 급조한 혁명군의 붉은 깃발이 치켜 올라갔다.

    대동강에서 썼던, 사람 피에 적신 면포의 경우 그 상징성 하나는 의심할 바 없다. 허나 피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말라붙으면서 보기 싫은 흑갈색이 되어 버린다(옷에 코피 흘려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염색한 물건이었다.

    급하게 만드느라 멋들어진 문구 하나 쓸 틈이 없었다. 그러나 병사 열의 하나가 받들고 있는 그 강렬한 붉은색은 그 자체로 경구였으며 웅변이었다.

    그 짧고 격렬한 준비 동안, 시준은 새삼 이들한테 군주에게 맞설 각오를 설파 해야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사실 각오가 안 된 건 오히려 시준 쪽이었다.

    대동강에서의 비열한 수작을 부리다 패배하고, 푸셰의 대포에 의해 쫓겨나간 왕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경외 받을 수 없었다. 사람은 자기보다 열등한 것을 섬기기 어렵다.

    깃발이 앞으로 기울자, 지금 이공이 보유한 관군의 거의 4배에 달하는 병사가 대오를 맞추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는 무력위원회의 거의 총전력이었다. 정치국의 결정에 따라 혁명군 전위대장(前衛大將)으로 임명된 홍총각이 뒤를 힐끗 돌아보고 말했다.

    “병사들이 너무 지쳤소이다. 회장. 너무 서둘러 온 것 아니오이까?”

    “아니, 내가 임금이라면 당장 남쪽으로 내달려 강원도나 함경도로 빠져나갈거요. 함경도의 마군을 전부 이끌고 돌아온다면 감당하기 어렵소. 병은 신속함을 귀하게 여기는 법. 잡을 수 있을 때 속전속결로 끝내고, 이 뒤에 있다는 황해도 사람들과도 연결해야 하오.”

    정약용의 말에 따르면 그 민병대는 아마 황해도에서 뭔가 민란을 일으키고 합류하러 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금군을 치기에는 전력이 너무 약해 미적거리고 있었으리라.

    여기에서 시준이 직접 나가 그들을 마중한다면, 일이 잘 풀렸을 경우 경기로의 통로인 황해도를 서상의 영향력 아래 놓을 수 있다.

    ‘장주님과 지유를 되찾은 이후에는 적당히 협상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이제는 멈출 수 없다. 정약용의 말대로 호랑이 등을 탄 것과 같다. 가족을 되찾아서 일차 목표는 달성했다고 하나, 왕에게 포를 갈겨버린 이상 약점이 하나 더 생겨 버렸다.

    시준은 김조순이 청과 협상하여 ‘왕에게 총구를 겨눈 백성’을 팽해 버리는 꼴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북방 양계와 황해도까지 3개 도는 영향권 아래 두어야 김조순도 처우를 조심할 터였다.

    시준은 자기가 거기서 그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얼른 지워 버렸다.

    “병사들이 지쳤다면 조금 천천히 걷게 하고, 별무사(別武士) 사람들을 앞장세우시오. 말 탄 자들이 더 빠르겠지.”

    “그렇게 하겠소이다.”

    곧 왕의 금군씩이나 되는 군대가 왜 혁명군을 전혀 보지 못하고 포격을 허용 했는지에 대한 답이 제시되었다.

    오십여 명에 달하는, 게다가 무장도 꽤 튼실하게 갖춘 기병대가 대열에서 걸어 나왔다.

    이들은 안주성 일대를 손에 넣을 때 들어온 별무사, 그러니까 조선의 선발 기병들이었다. 흩어지거나 혹은 본대로 도망가려는 척후는 이들에 의해 전부 살해당하거나 붙들렸다.

    물론 그냥 달아나 버린 자에 비해 고이 항복한 별무사는 적었고 그중 상놈 밑에서 일하겠다는 자는 더 적었다. 지금 나온 정도가 전력(全力)이었다. 어차피 이 이상이면 부담스러웠을 테니 딱 좋았다.

    그 별무사 무리의 우두머리인 매경은(梅景殷)은 평안도 한량 출신답게 왕보다는 은화를 더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를 드러내었다.

    “회장께서 호령만 하시면 바로 달려나가 자칭 임금을 사로잡아 오겠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매경은이 공을 세울 곳은 여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별로 필요는 없었지만, 무력위원회 혁명군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텅텅 빈 평양성 안에 두기는 의심스러워서 ? 프랑스군을 인솔해 따라오게 된 조제프 푸셰가 망원경을 오른손에 든 채 왼손을 옆으로 뻗어 거칠게 흔들었다.

    “잠깐. 저기 백기를 든 사람이 나오는데. 뭔가 얘기를 하고 싶은 모양일세.”

    시준은 금군 쪽에서 온 대화 요청, 사실상 항복 요청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쪽도 쓸데없이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거니와, 조선군이 도주를 포기하고 항복을 시사한다는 것은 저쪽에 왕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양편은 궁시와 화포를 모두 뒤로 물렸다. 이쪽에서는 시준과 차형기, 홍총각을 비롯한 간부들이 나갔고 저쪽에서는 나름대로 위엄을 갖추려고 노력은 해본 듯한 어가가 나왔다.

    어가에는 한 젊은 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시준은 그 남자가 태연한 척하지만 버선으로 감싼 발 한쪽이 크게 부어 있음을 눈치챘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군. 옷은 왕의 옷이긴 한데…….’

    정약용은 아직 평양성에 있다. 그래서 시준은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뒤에서 지켜보던 조제프 푸셰가 깃발 하나를 올려 그게 조선 국왕 이공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시준에게는 이 길고 긴 악연에 비해 서로 얼굴 보는 게 처음이라는 사실이 퍽 기묘하게 느껴졌다.

    ‘아니, 너무나 많은 일이 있어서 길게 느껴졌을 뿐, 처음 개항했을 때부터 3년도 안 지났던가.’

    시준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시준의 말은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고, 옆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물론, 아무도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위대한 혁명군은 전제 군주에게 몸을 굽히지 않는다. 어가 쪽에서 당장 노성이 터져나왔다.

    “너희가 상한의 무리로서 일이 제 뜻대로 되니 뵈는 게 없느냐. 어서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지 못할까!”

    중군 이정회가 발악하듯이 외쳤다.

    그러나 중군의 엄한 꾸짖음이 이끌어낸 반응은 광대나 흡족해 할 종류의 것이었다. 시준은 말 위에서 몸을 흔들며 껄껄 웃는 홍총각과 다른 간부들을 보고 금군에게 좀 미안한 심정마저 들었다.

    목소리가 무리 없이 들릴 거리다. 시준은 부드럽게 말했다.

    “옛부터 항복하는 자가 무릎을 꿇는 경우는 있어도, 항복을 받는 자가 무릎을 꿇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소. 청 태종이 그대 선조에게 아홉 번 절을 받을 때 무릎을 꿇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한껏 창백해졌던 이공의 얼굴에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 이 어이없을 정도의 무례함에 피가 거꾸로 솟구쳐서였다. 과연 주화입마의 달인 정시준다웠다.

    설마 저들이 왕을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을 테니, 네 신병을 내주고 부하들을 살리라며 이공을 협박해서 이 자리에 끌어냈던 박윤수마저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공이 다리의 통증도 잊고 힘껏 고함쳤다.

    “이 성(姓) 셋 가진 종놈[三姓家奴]이 어찌 감히 이토록 무도할 수가 있느냐!”

    시준은 내가 방천화극 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곧 자기의 세 부친을 떠올렸다. 딱히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애비가 셋이라는 소리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준은 왈칵 화내려는 홍총각을 제지하고 대답했다.

    “그대는 선왕의 어린 고아[先王之幼沖孤嗣]로서 아버지가 없지만, 나는 셋이나 있으니 이 어찌 효성 세 배로 충실한 자라 아니할 수 있겠소?”

    애비 셋 있는 자와 애비도 없는 자의 싸움은 전자의 승리인 모양이다. 이공이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붉으락푸르락하며 뭔가 다시 험한 말을 퍼부으려 할 때, 시준은 그것을 가로챘다.

    “내가 그대에게 북면(北面)할 일은 없으니 헛수고하지 마시오. 그대가 우리를 신민으로 대우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그대를 어찌 왕으로 대접하리. 그대의 휘하 장졸들에게 모두 갑옷을 벗고 무기를 내어놓게 하시오. 얌전히 있으면 아무도 다치지 않으리다. 이형(李兄)께서는 부디 새겨듣고 생령을 중히 여기시오.”

    이공의 낯빛이 산 사람으로서는 있기 힘든 색채로 바뀌어 갔다.

    청 황제도 그를 저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시준은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의주 부민 정시준이 한성 부민 이공에게 삼가 우애로써 권면하는 바입니다.”

    작가의 말

    97화

    1. 교룡기는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깃발로서, 깃대를 제외한 깃발 크기가 4미터에 달합니다. 원래는 군기였는데, 왕의 깃발로 사용된 것은 영조 대부터입니다. 정조 때의 '화성원행도'에 잘 그려져 있고 실물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지요.

    2. 전위대장은 말 그대로 전위의 대장이라는 뜻으로서 정말로 조선 시대에 있던 직위입니다. 편제상의 직위로서 상설 관직은 아니었지요. 뜻이야 같지만 절대로 '그 전위대'가 아닙니다.

    3. 매경은은 원래 역사에서도 평안도 별무사가 맞으나, 원 역사에서는 홍경래의 난 때 공훈을 세우는 사람 중 하나이고 반역자는 아닙니다.

    4. 눈치채셨겠지만 '선왕의 어린 고아' 부분은 조식의 단성현감 사직소에서 살짝 표현만 수정한 것입니다. 원래 표현은 '殿下幼沖, 只是先王之一孤嗣(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외로운 후계자일 뿐)' 입니다.

    5. 루이는 오스트리아로 도주하려던 사실이 발각된 이후 '시민 루이' 로서 재판을 받았지요. (조선에서 '시민' 이라고 하면 시티즌이 아니라 '시장의 백성', 그러니까 장사꾼 및 시장에 기대어 먹고살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하. 뭐, 지금은 발각된 것도 아닙니다만...

    6. 이제 원 역사의 홍경래의 난에 대응할 만한 '정시준의 난'이 일차 거의 끝났다고 해도 되겠군요. 이쯤에서 밝혀 두자면, 마치 큰 혼란이 있던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그때 조선 정부가 평안도에서 일으킨 대학살을 감안하면 작중에서는 대단히 적은 희생으로 일이 끝난 셈입니다.

    작중 묘사된 것처럼 평안도민은 2등 국민 취급을 받았고, 진압군도 서울 및 타지역 출신 순무군이 대부분이라 홍경래의 난 진압시에는 관군이 가는 곳마다 무차별 학살과 약탈이 만연했습니다. 이게 반란군이 최후까지 항거한 원인 중 하나가 되죠.

    29. 바람은 남쪽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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