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90화 (90/284)

90화

26. 파국(1)

대동강은 한강만큼 큰 강은 아니다.

바다와 만나는 하구 쪽이 아니라면 보통 넓어도 사백 보(약 500미터) 내외이

며, 지금 정약용처럼 하중도(河中島)를 통해 건너간다면 백오십 보 거리를 두

번 도하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게다가 지금 같은 갈수기에는 더욱 그렇다. 오랜 가뭄에다가 봄이라는 계절,

두로도(豆老島)를 거치는 적절한 위치 선정까지 더해져 정약용은 꽤 지치기만

한 채로 평양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관복 차림이라, 정약용이 평양성 앞에서 총 맞고 비명횡사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약용은 그 비슷할 정도로 황당한 일들을 겪어야 했다.

오죽당 소대장(小隊長)으로 출세한 해주 출신 김개동이 고개를 갸웃했다.

과거 광산에서 시준의 사악한 빚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다가 그대로 오죽당에

편입되었지만, 끝내 영변부 관아 전투에서 공을 세워서 승진한 사람이었다.

“예조 참판? 그게 뭐냐?”

“거 왜 그 있잖소. 소대장 어른. 아니, 소대장 동지. 서울 조정의…….”

시준이 영변부 관아 습격 전에 연설한 이후로, ‘동지’라는 말은 비단 푸셰뿐

만 아니라 협동회 전체에서 널리 쓰였다.

시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으나,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다’

는 언명에서 나온 그 단어는 서로 동지라고 호칭해 주기만 하면 상놈인 자신

들도 선비가 된 기분이 들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주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배타적이라

는 것이다.

강력한 동아리 의식에 힘입어, 특히 무력위원회 소속 민병대원들은 임금을 그

다지 존중하지 않았다. 임금은 동지가 아니니까.

조금 생각하던 개똥이가 손뼉을 쳤다.

“아, 아아! 그거. 하긴 임금인지 뭔지가 사람 보낼 때는 되었다고 위원회에서

얘기하는 건 얻어들었지. 저, 나리. 사절로 오셨소?”

정약용은 ‘내가 혹시 평양성이 아니라 장자도에 왔나? 여기 있는 놈들은 상투

튼 영길리 놈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침착하게 답했다.

“……임금의 명으로 온 것은 아니다. 옛 스승 희만이 정시준을 만나러 왔다고

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의주 사람이 아닌 개똥이는 희만 선생의 높은 이름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말을 즉시 전하지는 않았다.

“거, 아무리 스승이라도 우리 회장 진인의 함자를 그렇게 강아지 이름 부르듯

하지는 마쇼.”

정약용은 대체 시준이 평양성에서 뭐가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개똥이도

본격적으로 대거리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좌우를 돌아보며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어이, 이 말은 저어기 우마국(牛馬局) 마구간에 매어 놔라. 뭐? 농상위원회

(農桑委員會) 것들이 못 들어가게 한다고? 하, 그놈 그거 돌만(乭萬)이 맞지?

야. 그 똘마니 새끼가 계속 지랄하면 내가 무력위원회에 말씀 올려서 그놈의

말 다 전마로 끌어간다고 전해. 걱정 마. 보나 마나 윗분들은 알지도 못하는

데 그놈이 감투 썼답시고 혼자 야료 부리는 게 틀림없으니.

그리고 너는 가서 그 영길리 수건 좀 갖고 와라. 이 양반 물에 빠진 생쥐 꼴

이라 이대로라면 오늘 밤을 못 넘기고 동태가 되시겠다. 아, 내 정신 좀 봐.

넌 지금 달려가서 당주 대리(홍총각) 오시라고 하고. 그분이 아마 의주 출신

이지? 나리는 물 헤치고 와서 시장하실 텐데 감자나 하나 드시구려.”

보들보들한 영국 수건은 신기하게 물을 잘 닦아냈다. 정약용은 몸을 닦으면서

개똥이의 마치 관리처럼 능숙한 일 처리에 대해 생각했다.

입은 험하고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개똥이의 지시는 정확했고 부하들

도 의심 없이 영을 받들었다. 금위영과 비교하고 싶을 정도였다.

‘도저히 글을 배운 것 같지는 않은데. 일개 백성도 가르치면 저렇게 될 수가

있는 것인가…….’

얼마 안 있어 홍총각이 맨발로 달려 나왔다. 옆에는 검사위원회 부위원장 백

윤구도 함께였다.

“아이고! 선생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래, 무슨 일로 여기까지 힘든 걸음

을 하셨습니까?”

당주 대리가 존경을 표하는 모습을 보자 개똥이는 아까의 일이 살짝 마음에

걸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약용이 개똥이의 무례를 고발할 정도로 자존

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그런 사소한 일은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다만, 정약용은 자신의 짐작이 옳았다고 판단했다. 바로 그래서 여기로 온 것

이긴 하지만, 평양은 이제 왕의 신하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역설적으로 한참 동안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시준의 경우에는 ‘왕을 배반하고 저에게 온 것입니까?’라는 뻔한 질문을 하기

싫어서였고, 정약용의 경우에는 시준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영길리 차(커피)를 멍하니 바라보던 정약용은 잠시 고민

하다가 한마디를 꺼내놓았다.

“위세가 대단하더구나.”

시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본래 그는 위세 따위 필요 없었다. 가능하다면 지유

와 함께, 평화로운 생활 속에서 잘 먹고 잘살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서도상고총협동회 회장 및 근문소 정치국 위원이자 (사실

상)의장이며 오죽당주에다가 3백 살 먹은 진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마 높은 확률로 조선조 최대의 역적이 될 것이다.

“결단코 제가 바란 일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요.”

“과연 그 말이 진실이냐?”

“선생님께서는 제가 왕이 되고 싶어 한다 여기십니까?”

“이 평안 감영은 예로부터 서쪽의 또 다른 조정이라 불렸다. 이 땅의 다른 이

름이 서경(西京)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느니라. 평양은 묘청(妙淸)이 그러했

듯이 실로 일세의 효웅이 웅크릴 만한 기자의 도읍이다.

게다가 지금 여기는 선화당이요, 네가 앉아 있는 자리가 바로 감사의 좌(座)

아니더냐. 지금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너 외에 있느냐?”

평안도에서라면 시준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정약용이 말한 ‘너 외에’라

는 표현에 해당하는 범위는 조선 전체였다.

국왕 이공도 포함해서.

“자손이 끊어지는 것은 무덤에 산 사람을 묻는 자나 받을 대죄이므로 옛날부

터 어진 현인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봉사(奉祀, 제사를 받듦)를 보살필 수 있

게 했다. 송 태조가 시씨(柴氏) 황실에 단서철권(丹書鐵券)을 내린 것은 실로

아름다운 옛일이다. 내가 너를 가르친 시일이 짧으나, 총명한 네가 경전과 사

서의 요체를 그사이 충분히 얻었기 바랄 뿐이다.”

시준은 그 속뜻을 알아듣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정약용은 왕에 대한 충의나 피 흘리지 않는 항복을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왕

의 목숨은 살려 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게, 이미 진채를 나온 순간 정약용은 왕을 버린 것이다.

정약용은 답이 안 나오는 왕 대신 왕가, 그러니까 국가를 선택했다.

시준은 이 대학자에 비하면 하찮은 지식으로나마 한바탕 논쟁할 각오까지 해

둔 상태였기에 김새는 기분마저 들었다.

‘내 편……. 아니, 정확히는 김조순의 편인가?’

시준에게는 그 방면의 명백한 보증이 필요했다. 시준은 조금 전 정약용의 질

문을 흉내 내어, 다소 공격적인 방식으로 물었다.

“대동강 물을 뒤집어써 가며 종놈 하나 딸리지 않고 오셨다니 필시 주상 전하

의 사절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지금 그 자리에 제 신하가 되

고 싶은 자로서 앉아 계십니까?”

정약용의 미간에서 그의 천연두 흉터가 살짝 움직였다. 시준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맞잡아 깍지를 꼈다.

“이미 보셨을 테니 허심탄회하게 말하겠습니다. 송 태조의 이야기를 하셨지

요. 여기의 많은 사람들처럼, 제가 술에 취한 틈에 황포(黃袍)를 입히시려는

것입니까? 저는 선생님의 옛 가르침을 받들어, 술은 반 잔 이상 먹지 않고 있

습니다.”

정약용은 당황하거나 꾸짖지 않았다. 그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내가 진교(陳橋)에 거란 사람이 쳐들어왔다는 방울을 울리고 짐짓 네게

술을 많이 먹일 양이라면, 너는 마땅히 장막 뒤 어른어른하는 ‘잘해라!’ 한

소리 고함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조광의(趙匡義)는 동생으로서 형의 침실에

도끼를 두었는데 내가 아비로서 자식의 신하 노릇을 참겠느냐?”

시준과 정약용은 서로의 군주와 신하가 될 뜻이 없음을 이해했다. 시준은 만

족했다. 특히 정약용의 마지막 말은 시준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 사제가 아니다. 군신 역시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가족이며, 친구이다.

동지라고 해도 좋다.

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말씀하신 바는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아부(阿父)께서는 아들에게 계사(繼

祀)의 귀중함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려고 힘든 걸음을 하셨습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렇게 한마디 떼어놓고 잠깐 고민하던 정약용은 에두르지 않고 말하기로 했

다. 에둘러도 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경래가 홍가장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도망쳤다. 발자국으로 봐선 평양성으

로 향하고 있어. 말을 타지 않아서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내가 그

일을 알고 늦게 나온 데다 그들을 피해 샛길을 탔으므로 머지않아 올 것이다.

아마도 금위영 마군이 곧바로 뒤이어 들이닥치겠지. 나는 아비로서 너와 했던

구명의 약속을 지키러 온 것이다.”

시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유는 지친 얼굴로 길가의 쑥과 냉이를 뜯었다. 나무껍질에 풀뿌리까지 남아

나지 않은 이 흉년에 드문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주변은 시준의 지배권이 미치는 곳이라, 길가의 나물까지 눈 부릅뜨고 쓸

어가야 할 정도로 굶주리지는 않은 탓이다.

물론 지유는 그런 구체적인 추론을 할 여유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는 이유로 홍경래 무리는 하루 반나절에 걸친 강행군을

감행했다. 드디어 홍가장 식구 중에도 쓰러지는 사람이 나오자 홍경래도 별수

없이 멈추기는 하였으나,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밥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평양성이다. 봄철 삼순구식(三旬九食)이야 처음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징징대지 말고 움직여! 이대로 창검에 다 죽고 싶으냐!”

그런 호령도 저는 밥을 잘 먹었으니 나오는 것이다. 허나 그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홍경래의 횡포를 수용했다. 어차피 반항할 방법도 없

었다.

지유를 비롯한 홍가장 식구들이 지유처럼 근처에서 어떻게든 먹을 만한 것을

가져오자(그중에는 어떻게 했는지 땅을 뒤져 개구리를 잡아 온 자도 있었다)

지유는 불을 땠다.

어린 시절 시준이 메뚜기를 잡아 오고, 자신은 콩을 가져다가 볶아 나눠 먹던

때가 지유의 머릿속을 채웠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둘만의 별미를 즐겼지만, 그때마다 불자리를 장만했던

건 시준이라 지유는 도저히 그 신묘한 화로를 따라 만들 수가 없었다.

지유에게는 그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상실감으로 다

가왔다.

“흑…….”

시준을 생각하니 눈앞에서 흐리멍덩한 물에 끓고 있는 오만 잡탕이 저절로 일

렁이는 것 같았다. 지유가 흘린 눈물이 방울져서 그릇에 떨어졌다.

홍경래에게 가서 앞일을 의논하고 돌아온 홍득주가 그런 딸을 위로했다.

“듣자 하니 이제 몇 리만 더 가면 평양성이 보인다 한다. 먼저 나아갔던 사람

의 말로는 대동강에 부교도 떠 있다는구나. 아마 임금을 위한 것이겠지만, 설

마 그 아이가 우리보고 건너지 말라 하지는 않을 게다.”

“……그렇군요.”

객관적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 한고비만 넘기면 홍가장 식구

들은 시준의 보호 아래 있을 수 있다. 시준은 지금 영안부원군 김조순과 함

께, 왕이라도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두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지유는 도저히 그 광경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김조순의 생각은 홍득주도 한 모양이다. 잠깐 말을 멈추었던 홍득주가

저편에서 양반 체면이고 뭐고 강아지풀 훑어다가 죽을 쑤는 – 빨리 도망쳐야

해서 함거에서도 꺼내 주었다 – 김유근을 힐끗 보았다.

그러고는 지유에게 낮게 말했다.

“사실, 홍경래의 무리가 쳐들어왔던 그 전날 저 김유근이가 우리 집에 왔던

이유는 너를 얻기 위해서였다. 정실이 사족의 딸이지만, 아들을 못 낳아 곧

돌려보낼 것이라고 하더구나.”

“예?”

지유는 배신감에 찬 눈으로 홍득주를 올려다보았다. 홍득주는 눈을 질끈 감았

다가 다시 떴다. 자신이 그 머저리 김유근의 말을 반복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

지 못했다.

“나도 당연히 거절했다. 그러나 지금 사세를 보아라. 우리는 역적이나 다름없

어. 그러나 지금 조선국에 그런 꼴을 막아 줄 영웅이 단 두 사람 있다면, 그

것은 시준과 영안부원군이다. 시준은 나의 아들이나 다름없으니 서울 영안부

원군의 집안과도 이어지면 더욱 안심할 수 있겠지. 시준에게는 남매가 혼인할

수 없다고 잘 일러둘 테니, 너도 아비의 명을 따르거라. 가문이 멸족할 수는

없지 않느냐. 다행히 저자가 너를 얻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으니…….”

“싫어요!”

지유는 배고픔도 전부 잊고 밥그릇을 내팽개치며 일어났다.

김유근도 놀라서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가 일어나서 여기로 오는, 이 상황에

서는 최악으로 멍청한 행동을 하려 하자 홍득주는 무엄하게도 부원군의 아들

에게 손짓하여 물러가라는 뜻을 전했다.

“나는 절대로 싫어요. 만약 끝내 명을 따르라 하신다면 나는 차라리 돌아가서

군인의 창검에 죽거나 목을 매고야 말겠어요. 상한의 딸이라고 깔보는 게 너

무 심하십니다. 사대부만이 절개를 아는 줄 아십니까?”

말뿐만이 아니었다. 지유는 실제로 그대로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몸을 돌렸다.

만약 정말로 여기에서 홍득주가 지유에게 강요하다가 그녀가 진짜로 죽는 일

이 벌어진다면, 시준은 홍경래군과 홍가장 식구들을 구별해야 할 이유를 느끼

지 못할 것이다. 홍득주는 급히 지유를 붙잡았다.

“그, 그래. 내가 경솔하게 말하였다. 위험하니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앉아 있

거라. 시준의 말도 들어 봐야지.”

그러나 지유도, 홍득주도 시준이 그럼 너 김유근에게 시집가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시준의 평안도 정복은 오로지 지

유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홍득주는 근심에 빠졌고 지유는 어느 정도 평정을 회복했다. 저편에서

안달복달하는 김유근 때문에 여러 사람 불편한 식사 자리였다.

그런 불편함을 깨뜨린 것은, 한층 더 불편한 소식이었다. 홍경래군의 후미를

맡고 있던 우군칙이 급히 달려와 사방에 외치고 있었다.

“뒤쪽 십 리쯤 되는 곳에서 마군(馬軍)이 오고 있소! 어서들 일어나시오!”

파발에 쓰는 말이 아닌 이상, 원래 기병대는 행군 시에 전력 질주를 하지 않

는다. 말이 금방 지치기 때문이다. 조선 기병대의 (전세 내서 타고 온) 말 같

지도 않은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달려온 여러 겹의 홍경래군 전령들은 금위영이 도달하기

전 소식을 전할 수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솥이 나동그라지고 재가 튀었다. 사

람들은 비명과 고함 속을 치달리며 각자의 짐을 챙겨 들었다.

지유와 홍득주 역시 더 이야기할 틈도 없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애써 모은

식사 거리를 반도 비우지 못했건만, 체내에서 쏟아지는 아드레날린이 허기를

상쇄하여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릴 수 있었다.

과연 얼마 안 가 저 멀찍이 평양성의 웅장한 자태와 그 앞을 가로막은 대동강

이 나타났다. 척후가 보고 온 대로 그곳에는 왕을 위해 마련된 배다리가 있었

다. 안정성은 좀 떨어져 보여도 그 정도면 대동강 건너기에 무리가 없다.

대부분이 평안도 사람인 홍경래군에게는 평양성의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곧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드, 드디어!”

“왔다. 평양성이다!”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껴안는 동안 흥분하지 않은 것은 홍경래나 우군

칙 같은 지도급 인사들뿐이었다.

홍경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한참 먼 거리라 식별은 안 되었지만 기병대

가 일으키는 먼지구름은 그의 눈에도 잘 보였다. 이미 금위영은 그들을 시야

안에 넣고 달려오고 있다.

“어서! 어서 달려라. 저 다리를 빨리 건넌 다음 배를 흩어 버리면 폭군의 군

대는 우리를 잡지 못한다!”

마치 그 배다리가 자기 것인 양 말하는 홍경래였지만 그것을 지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 그나마 강건한 홍경래군 지도부가 가장 선두에 서서 배

다리 쪽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 순간 발을 멈춰야 했다. 그들의 앞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풀과 돌이 사정없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우르르릉……!

홍경래군은 오죽당과 함께 조선에서 영국제 화포를 쏴 본 단 두 개의 부대 중

하나다.

따라서 그 위력도 잘 알고 있었다. 홍경래군의 분위기에 말 그대로 찬물이 끼

얹어지며 모두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순간, 맞은편에서 족히 이삼백 명은 될 법한 병사들이 달려왔다.

홍경래군의 수가 원래 오백이었고 평안 감영을 거치면서 숫자를 불렸다 하나,

그간 탈주자가 많았고 그것은 왕에게 합류한 뒤에 더욱 심각해졌다.

김사룡이 반죽음이 되고 나서는 홍경래도 매일 수하 점고하는 일을 포기해야

만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홍경래의 마지막 도박에 합류한 사람들은 더 적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달려오는 무력위원회 병사들보다 숫자가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무장과 기세로 따지면 오히려 저쪽이 몇 배는 더 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선두에 선 것은 무력위원회 후보위원이며 오죽당주 대리 홍총각이었다.

“평안도 사농공상(士農工商) 모든 인민의 총의를 대표하는 근문소 정치국의

승인으로, 서도상고총협동회 무력위원회의 전권 위임을 받은 회장 정시준의

명령이다!”

홍경래를 비롯한 간부들은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인가 하며 서로를 쳐다보았

다. 그들이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용어는 간부들을 혼란시켰다. 정 진

인이라더니 어째 주문 같기도 했다.

그 혼란을 뚫고 홍총각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희 도적들이 왜 여기로 오는지는 알고 있으니 말할 필요가 없다. 먼저 너

희들이 납치해 간 홍 장주 댁 식구들을 먼저 보내라! 마지막 사람이 건너온

뒤에야 너희가 올 수 있다. 그전에 단 한 놈이라도 배다리에 발을 디뎠다가는

이 어르신이 하나 남김없이 대동강 바닥에 장사지내 줄 것이다!”

배다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장판파에서 조맹덕의 백만 대군

을 막아섰다는 장익덕이 이 정도였던가 싶었다.

앞의 홍총각과 뒤의 먼지구름을 번갈아 쳐다보던 홍경래는 정신이 아득하게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기랑은 옆에 있는 시준을 바라보았다. 시준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의 세상을 눈에 들이댄 망원경 하나에 압축시켜 놓은 채였다. 기랑은 지금

의 시준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랑은 그냥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작가의 말

1. 정약용과 시준이 나눈 대화에서, 사람을 산 채로 묻는 자가 자손이 끊어지는 벌을 받는다 함은 공자가 저주한 '용(순장 대신 묻는 인형. 병마용 같은 게 있죠.)을 만든 자는 자손이 끊어질 것이다'라는 언명을 말합니다.

2. 조광윤은 자신에게 제위를 선양한 후주 공제에게 붉은 글씨로 쓴 철 기왓장인 단서철권을 내렸습니다. (원조는 한고조입니다만, 이 경우는 공신들에게 하사한 것입니다) 서서철권이라고도 하는 이 물건은 시씨의 종가 자손에게 반역을 제외한 모든 죄를 면책해주는 막강한 물건이지요. 원래 선양하면 가지각색 방법으로 살해당하는 게 당연한 중국사에서 제위를 선양받고도 전 황제를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게 해준 황제는 정말 드문데, 대표적으로 위나라 황제 조비;;; 와 이 조광윤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송조 말엽을 배경으로 하는 '수호지'에서는 이 가문의 자손으로 등장한 소선풍 시진이 이 철권을 아주 물리도록 써먹어서 자기 친구 깡패들을 보호해 줍니다.

3. 시준의 말에서 황포를 입혔다 함은 조광윤의 동생 조광의를 비롯한 측근이 조광윤에게 술을 먹여서 취한 상태에서 억지로 황제의 옷을 입혀 추대했다는 고사입니다. 그러나 당시 진교에는 거란이 쳐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여러 가지 면에서 조광윤이 자기 면피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한 냄새가 나죠.

제갈량이 유비에게 너 우리 황제가 돼라 표문 올린 것이나 이방원이 마누라가 갑옷까지 입혀줬는데 씁 어쩔 수 없지 하며 친족 몰살에 나선 것처럼, 이 당시의 측근은 이런 연극에 동참해서 책임을 분배하는 정도의 눈치와 성의가 있어야 했습니다.

4. 또 정약용의 대답에서 장막 뒤 도끼 이야기는 조광윤이 죽고 조광의가 동생으로서 제위를 승계할 때의 일입니다. 조광윤이 누운 장막에 조광의가 들어갔는데, 촛불빛이 어른어른하더니 조광윤이 도끼를 내던지면서 '잘해라!' 한 마디 하고 죽었다는 게 공식 기록이지만 이건 현대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사람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대충 '누굴 바보로 아냐' 는 게 시대를 초월한 모든 사람들의 반응이었죠. '열하일기' 에도 박지원이 이 문제로 중국 학자와 필담하며 조광의와 사서 기록자를 조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6. 파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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