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25. 반역자들(4)
이공을 진감케 한 정체불명의 도적 떼는 공교롭게도 이공의 친위대장인 박종
경과 관련이 있었다.
황해도 곡산 부사(谷山府使) 박종신(朴宗臣)은 왕이 특히 총애하는 가문인 반
남 박씨의 일원이다. 금위대장 박종경과 항렬도 같다.
그 덕에 박종신 역시 형제에게 왕의 이어를 일찍 얻어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종신은 왕이 황해도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별로 얼굴 자주 본 사이는 아니라 하지만, 친척 형제는 왕의 측근이 되어 새
시대를 열고 있는데 자기는 평양 가는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곡산에 박혀 충의
보일 기회를 찾지 못하니 답답할 만도 했다.
평양 가는 왕이 동쪽으로 한참 벗어나 곡산에 올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다.
그러나 역적의 손에서 벗어나 위대한 장정을 시작하는 왕을 충신 박종신이 어
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박종신은 자기가 찾아가기로 했다.
왕을 뵈러 가는 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 박종경은 고을의 돈 있는 장
사꾼이나 향임, 지주에게 충성자금을 바치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그렇듯이, 조선도 이럴 경우에는 더 아랫사람에게 빼앗아다 바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조선 백성들은 뭘 쟁여놓은들 어차피 뺏기는 경험이 벌써 사백 년이
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부터가 비교를 불허했다. 어쨌든 북한의 역사는
백 년도 되지 않는다.
흉년을 맞은 조선 백성의 식량 저축법은 허술하지 않다. 뭔가 먹을 게 생기기
만 하면 죽기 직전까지 뱃속에 우겨넣고 끝내버리는 게 대식국(大食國) 조선
의 방식이다.
어떤 수탈의 달인도 여기에서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향임들은 결국 사또를
들이받고 말았다.
“서울 호조에서 돈 모자란다고 황해도의 모곡(耗穀, 환곡의 이자수익)은 물론
이요, 원곡(元穀, 환곡 원금)도 사정없이 털어간 지가 벌써 오래됐습니다. 이
제 쥐새끼 한 마리조차 창고에 얼씬거리지를 않습지요.”
“그 곡식이 서울에 있을 테고, 임금님도 역시 가지고 나오지 않으셨겠소이까?
왜 어명도 없는데 이 먼 곡산에서 쌀을 실어 날라야 합니까?”
“이번에 창고를 비우시면 진짜 모두 굶어 죽을 겁니다! 임금께서도 설마 백성
들이 다 누렇게 뜨고 배 튀어나와 개골창에 엎드러지기를 원하지는 않으실 테
지요!”
향임들의 말마따나 서울 호조는 이 시기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현대 국가처럼 언론에 보도자료 내기 다소 창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짜
실제로 창고에 뭐가 없어서 몇 번이나 각사나 지방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
다는 의미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19세기 최악의 이 흉년이 겹치면 그럴 수 없게 된다.
1810년을 전후한 조선의 1년 세곡 수입은 약 5만 석. 이는 19세기 전체를 통
틀어 최저량이며, 조선이라는 정부를 지탱하기 위한 최소경비인 10만 석의 반
밖에 되지 않는다. 1811년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건 우연이 아닌 셈이다.
조선 호조는 으레 하던 것처럼 지방 경비를 빨아들여 적자를 메웠다.
피가 돌지 않는 사람의 몸이 손발 끝부터 썩어들어 가듯이, 조선의 재정 부족
사태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지방이었다.
처음에는 경기도 세입을 쓰다가 차츰 황해도와 평안도로 확대되었다. 자연스
럽게 지방 환곡 체계가 무너지고, 모자란 군자창 – 겸사겸사 자기 주머니도 –
채우기 위한 수탈이 심해졌다.
그리고 적자가 가장 심한 해에 그 착취도 가장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향임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형편이 안 좋아 악에 받
친 나머지 너무나 무례한 투로 반박했다는 게 문제였다.
조선의 관념에서 백성이 임금을 언급해도 되는 때는 오로지 찬양할 때뿐이며,
그 외에는 모두 역적이다. 시준이 자의 반 타의 반 펼치고 있는 모 공화국 체
제가 잘 먹히는 이유가 있다.
기회를 잡은 박종신은 불같은 호령을 내렸다.
“네 이놈! 지금 국가의 운수가 누란에 처해 있어 화급한 형세가 배에서 물이
새듯 한다. 천하의 대본(大本)은 임금의 일심(一心)에 달려 있는데 당장 달려
가 엎드리지는 못할망정 그까짓 하찮은 재물 따위에 연연하여 흉참한 말들을
지껄이느냐. 내가 먼저 이 반적들을 다스리고 나서야 뜻한 바를 이룰 수 있겠
구나!”
지금 사또에게 돈을 바치지 않았다가는 당장에 역적으로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다. 몇몇 사람은 엎드려서 그나마 있는 것 박박 긁어 내놓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반항했다. 인민대회는 평안도 사람만 온 게 아니다. 지금 평
안도에 가까운 황해도에는 향임과 유지들이 지배하는 평안도를 부러워하는 사
람들도 있었다.
부사 박종신은 더욱 노하여 그들에게 엄정한 법도를 가르치기로 했다. 여기는
아직 시준이 손을 뻗은 지방이 아니라서 매수되지 않은 나졸들이 향임과 부자
들을 묶어 내렸다.
장이 춤추고 피와 살이 튀었다. 한 대 치면 한 됫박이요, 열 대 치면 한 말이
다. 사이사이 잘 을러대면 뒤주 깊숙이 비장한 금은 패물도 떠오른다. 시준이
보았다면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어떤 게임이 생각났을지도 모른다.
박종신이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박종신과 향임 양쪽 모두에게 곤
혹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죄인’들의 집에서 진짜로 관곡을 빼돌려 서상에 팔아먹은 증거가 발견된 것
이다. 다툼이 일어날 때는 대개 한쪽만 나쁜 놈인 일은 별로 없다는 세상 이
치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었다.
“관곡을 포탈한 것만 하여도 사죄이거늘, 그 수상한 역적도당에게 팔았다는
말이냐!”
시준이 막은 것은 공적 연락뿐이고 거기까지가 한계다. 북한도 완벽한 정보
통제를 하지 못하는데 어디까지나 상인 협동조합인 서상에게 그것이 가능할
리 없다.
어디 내밀 수는 없지만 그 자신들만은 신뢰하는 방식으로 퍼져나간 음습한 소
문은 황해도에도 알려진 상태였다.
인민대회, 수령들의 비명횡사, 안주성의 함락 등 무엇 하나 괴이쩍지 않은 것
이 없었다. ‘증거는 없다’는 한가한 소리는 현대에나 통하는 수작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활만 쏘아도 트집 제대로 잡히면 일족이 멸종하는 사회에서
그 정도면 반역의 충분한 증거다. 나라 걱정하는 선비들에게 있어 서상은 이
미 반쯤 역적이었다.
박종신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동헌을 내려다보았다.
“너, 너희가 진실로…… 저, 정말 미쳤느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돈이 탐나 평안도 놈들에게 쌀을 팔았을
뿐이지, 결단코 무슨 불측한 마음을 품은 것은 없습니다!”
시준의 사업에는 당연히 막대한 곡식이 필요했다. 은화를 씹어먹을 수는 없으
니까.
조선의 빈곤함은 생산 절대량의 부족과 유통의 미비가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
에서 기인하는 게 많았다.
그래서 인민대회 전까지는 좀 넉넉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옮기는 방식을 써
서 해결했으나, 대회 후에는 군대 문제도 있어서 비밀 유출의 위험을 무릅쓰
고 타 지방에 손을 대야 했다.
인도에서 쌀을 실어와 팔겠다는 암허스트의 제안은 시준이 거절했다. 제 먹을
것도 해결 못 해 잇몸에서 피나 줄줄 새던 것들에게 그 능력이 있을지도 의문
이거니와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래서 시준은 그 전부터 확보한 송상의 동맹을 활용해 황해도의 관곡을 많이
빼돌렸다. 어차피 시준이 횡령하지 않으면 고을 수령들이, 이를테면 지금 박
종신 같은 자가 가져갈 텐데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서상이 써 준 영수증이라던가 이런저런 서류들이 발각된 것이다.
“저놈들을 당장 잡아 가두고, 이미 풀려난 놈들도 붙잡아 와라! 평안도 놈들
과 연결하여 곡식 댄 바가 작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흉한 뜻을 품은 것이다!”
포탈이니 횡령이니 그럴싸한 죄목이야 갖다 붙였으나, 사람들은 박종신의 심
산을 알 만 했다.
왕에 대한 선물로 쌀과 금은은 평범하다. 그보다는 역적의 모가지가 더 눈에
띌 것이다.
죄 있는 자가 처벌되는 게 아니다. 처벌하고 싶은 자에게 죄가 있는 것. 고을
의 향임과 장사꾼들은 이제 자신들이 절대 살 수 없음을 직감했다.
역사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그러나 원인은 아주 약간 다른 곡산 민란(谷山民
亂)이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야, 이 씨감자는 오죽당 심부름하는 사촌 동생이 평안도에서 간신히 얻어온
거야. 이거 내주고 우리 식구 다 굶어 죽느니 널 단매에 때려죽이고 나도 죽
으련다. 마침 색리 놈들 창자는 얼마나 질긴지 옛날부터 궁금하던 참이렷다.
보자, 이놈의 낫이 어디 처박혀 있는 게야?”
“자, 잠깐. 우리라고 좋아서 이 짓 하겠는가? 수령이 쌀 걷어오지 않으면 우
리를 다 역적으로 몰아 죽인다고 하니 도리가 없지! 제발 좀 봐주게.”
돈 쥐어짜라고 보낸 나졸이나 색리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그렇게 애원하며 수
탈을 구걸로 바꾸었다.
그 신세 한탄은 부민들의 불만을 수령에게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홍두깨 맞
아 죽은 삼화부 호장보다는 머리가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백성들 사이의 불길한 일렁임은 향임과 상인들의 부추김에 힘입어 끝 간 데를
모르고 퍼져나갔다.
“평안도에서는 서상이 쌀을 나눠주어 이 흉년에도 사람이 굶어 죽지 않는다잖
아! 도대체 수령이 한 게 뭔가? 오히려 수령 없는 저 평안도 놈들이 더 잘살
지 않느냐는 말이야!”
“내가 듣자 하니 서상의 두목인 정시준이라는 자는 나이가 삼백 살인데, 도를
닦아갖고 회춘한 진인이라 하더라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진인이 아니라면 어
떻게 석 달 만에 평안도 사람들 먹을 쌀을 만들어냈겠는가? 좌자(左慈)가 쇠
화분에서 생강을 피워낸 것처럼 정시준은 모래에서 쌀을 빚어낸다는 소문일세!”
“게다가 거느리고 있는 무리도 무시무시한 총이며 화포를 가지고 있다고 하
네! 진인이 솔방울을 따다 던지자 그것이 바로 폭탄이 되어 저 큰 안주성이
한 방에 무너졌다고 하더군!”
“가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 북으로 가서 우리도 정 진인에
게 의탁해 보자!”
사람이란 게 원래 뒷배가 있으면 용감해진다. 평안도에 이어 황해도에서도
‘일단 사고 쳐 놓으면 정시준 진인이 어떻게 해결해 주지 않을까?’라는 암묵
적 합의가 퍼져갔다.
며칠 뒤, 박종신은 갑자기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는 동헌 문 뒤에서 공
포에 질려야 했다.
저 가냘픈 빗장은 바깥에서 통나무 공성추가 들이받을 때마다 비명과 함께 몸
을 뒤틀었다.
“폭도가 나타났구나! 이건 분명히 저 평안도 놈들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렷다!
병방, 병방은 어디 있어! 무엇 하느냐. 당장 저놈들을 막아라!”
“예. 사또.”
군사 책임자답게 침착한 병방은 자기 휘하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대문으로 나
갔다. 그 사이에도 밖에서는 축제처럼 용쓰는 고함이 들렸다.
“한 번 더!”
“영차!”
쿵! 어김없이 돌쩌귀가 흔들리며 기왓장이 떨어졌다. 그리고 병방과 군졸 삼
십여 명은 무기를 꼬나쥐고 문으로 달려갔다. 목소리로 봐서 최소한 이삼백
명이 모여 있을 것이건만 전혀 두렵지 않은 듯했다.
곧 병방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증명되었다.
일사불란하게 빗장을 벗겨낸 병방 휘하 군사들은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박종신의 기대처럼 폭도들과 마주쳐 싸워 흩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대로 좌우로 도열하여 벌려 섰다. 당연히 열린 문으로 분노한 곡산
부 민중들이 쇠스랑이며 죽창, 괭이를 들고 쏟아져 들어왔다.
박종신은 평안도 수령들이 왜 기혈이 막혀 죽었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선
채로 핏기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을 맛보던 박종신은 간신히 한 마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너, 너희들이 나라에서 보낸 수령을 범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안 범하면 우리가 살 것 같소?”
선두에 선 젊은이 하나가 그렇게 으르렁대며 침을 탁 뱉었지만 실수였다. 선
비에게 말로 덤비면 안 된다. 박종신은 더욱 자세를 단정히 하고 꾸짖었다.
“너희가 상한(常漢)으로서 감히 분수를 파괴하고 웃전을 욕보이니 극률(極律)
에 해당한다! 지금이라도 물러가서 뉘우친다면 내 너희들의 억울한 사정을 조
사하여 법대로 밝게 풀어 주리라!”
그러나 주동자 심낙화(沈洛化)는 양반의 무기로 양반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자였다.
그나마 21세기는 하민이 귀족을 고소할 수 있기나 하지(이기진 못한다), 19세
기는 그러한 최소한의 위선적 평등마저도 없는 시대다. 부민은 수령을 고소할
수 없다. 법적으로.
결국 백성에게 있어 택할 수 있는 대화 수단은 언제나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입이 아니라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이놈! 닥치거라!”
뻑! 심낙화의 몽둥이가 박종신의 옆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박종신은 이빨과
피를 우수수 뿌리며 동헌 바닥에 널브러졌다. 박종신이 몇 마디만 더 했으면
넘어갈 뻔했던 백성들도 정신을 차렸다.
“병부(兵符)와 인신(印信)을 거둬 와라! 창고를 열고 감옥을 깨뜨려!”
여기까지는 원래의 곡산 민란과 비슷한 전개다. 박종신 역시 턱이 좀 아프긴
해도 가마니에 담겨 30리 밖에 버려질 뿐 목숨은 건진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이자는 어떻게 할까요?”
사람들이 묻자 심낙화가 제법 아는 척하며 답했다.
“옛날부터 뭐든지 세 가지를 갖춰야 좋은 법이라고 했다. 정 진인에게 바치고
합세를 청할 예물은 병부와 인신이 이제 여기 있으나, 하나가 더 필요하다.
바로 저 도적놈의 목이다!”
“수, 수령을 죽이자고요?”
백성들은 모두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렸다. 그것은 조선 시대의 관념에서 상상
해보지도 못할 정도의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민대회에 갔다 올 정도로 넓은 견문이 있다는 좌수(坐首) 이의소(李
宜素)가 백성들을 깨우쳤다.
“이보게. 어차피 이자를 살려 보냈다가는 우리 다 죽은 목숨이야. 임금과 조
정이 우리를 가만 내버려 둘 턱이 없지! 황주와 봉산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굶
어 죽고 맞아 죽었는지 몰라? 멍청히 있다가 모가지가 장대에 내걸리겠나? 아
니면, 이왕 내친김에 끝까지 가서 살길을 찾아보겠나? 자네들 목숨은 그렇다
치고 처자식은 어쩔 거야!”
공포는 사람들을 단결시켰다. 결국 박종신은 원 역사보다 한 가지를 더 빼앗
긴 채로 시신이 들판에 버려지고 수급은 소금에 절여지게 되었다.
이 산골에서 소금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감안하면 박종신은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가지가 누구 것인지 ‘정 진인’ 앞에 확실하게 증명해야 하는 곡
산 부민들로서도 그 정도 투자할 가치는 있었다.
그렇게 평양으로 진군하던 곡산 부민들은 금위영을 발견했다. 대장 심낙화를
비롯해 모든 사람은 그렇게 큰 규모의 군대를 난생처음 보았다.
토벌군이라고 오인하고 숨어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
어 백성들은 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관군이 이렇게 빨리 출동할 수가 있나?’
그럴 리가 없다. 게다가 관군이라면 그들을 향해 오거나, 하다못해 곡산 쪽으
로 가야 이치에 맞다. 그들의 의문은 관군에서 보낸 파발을 받고 나서야 풀렸다.
스스로 말하기를 초관(哨官) 오재민(吳在敏)이라 하는 그 전령은 거들먹대며
말을 타고 백성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에잉, 냄새나는 놈들. 이 무리의 대장이 누구냐? 어서 나오거라. 너희가 지
금 임금의 행차 뒤에 부지깽이며 작대기를 들고 모였으니 작변(作變)이라도
하자는 것이냐? 속히 무릎을 꿇지 못할까!”
부민들은 오재민의 모욕에도 적절히 반응하지 못한 채 그저 임금이라는 말에
만 얼어붙었다.
공공연히 수령을 쳐 죽이고 ‘진인’에게 합류하러 가는 길이라 해도 그들이 공
화국 시민처럼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연원을 따질 수 없는 아득한 고대부터 전제 군주국의 신민. 왕에 대한
경외는 차라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할 만한 것이었다.
심낙화는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못 이겨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오재민을 안내했다.
“그, 그러면 이쪽으로…….”
콧방귀를 뀌는 오재민의 눈에, 한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궤짝 하나가 눈에 들
어왔다.
부민들은 나름대로 진인의 눈에 들어 보겠다고 없는 살림에 좋은 궤 하나를
마련하여 왔는데, 하필 그게 오재민의 눈에 걸린 것이었다.
“저건 무엇이냐?”
“그저 옷감이나 보리쌀 따위 나르려 가지고 다니는 것이지요.”
심낙화는 쭈뼛대며 변명했다. 저 안에 곡산 부사의 대가리가 들어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오재민은 좀 다른 방향으로 자기 의심이 옳다 여겼다. 잘하면 한 재물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임금께서 바로 지척에 계신데 네놈들 따위가 어디에서 감히 거짓을 아
뢰느냐. 나는 협련군(挾輦軍, 임금의 가마를 호위하는 군사)으로서 사소한 위
험도 용납할 수 없느니라. 당장 꺼내 보아라!”
직책과 역할이 엄격히 정해지지 않은 그저 백성 패거리였기에 아무도 먼저 나
서지 못했다. 심지어 심낙화마저도 다른 사람과 잠깐 시선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오재민은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오재민은 위협적인 동작으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다가갔다.
그러고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궤짝을 열었다.
“……!”
물론 오재민은 곡산 부사의 얼굴까지는 모른다. 어쨌든 곡산 부민들이 앰버밍
(embalming)의 전문가는 아니어서, 이 모가지 주인의 형제인 금위대장 박종경
에게 갖다 주어도 아마 얼른 알아보지는 못할 꼴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와 소금에 파묻혀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많은 것을 단번에 알려주었다.
오재민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이, 이놈들이 대체……!”
“으아아아!”
궤짝 지고 있던 짐꾼이 자기도 모르게 오재민에게 달려들었다. 오재민은 어어
하다가 칼을 놓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심낙화가 엉겁결에 그 칼을 집어들었을 때와 오재민이 짐꾼을 뿌리치고 일어
났을 때는 거의 동시였다.
오재민은 주위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을 보고, 호통을 칠지 도망칠지 망설이
는 것처럼 보였다.
둘 다 받아들일 수 없다.
심낙화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재민이 목에서 피를 뿜으
며 쓰러지고 나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멍하니 자기 손에 들린 칼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반역도 처음에나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반역을 살
아서 두 차례나 시도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기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뿐이다.
금위대장 박종경이 보내는 파발 셋을 그대로 입 꽉 다문 채 쓱싹해버린 곡산
부민들은 근왕군에게, 정확히는 평양성에 주춤주춤 접근하고 있었다.
이공은 정약용, 홍경래, 그리고 저 뒤 정체불명의 백성 패거리 중 어느 쪽을
우선시할지 결정해야 했다. 일단 박윤수가 능숙하게 상황을 지휘하며 가능성
중 하나를 소거했다.
“정약용의 경우 말[馬]까지 같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쫓아가서 잡기는 힘듭니다.”
이공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정약용에게 베푼 은정이 이런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으음! 내 돌아가기만 하면 일족을 전부 주륙하리라. 그렇다면 병력을 나누어
앞뒤의 도적을 전부 치는 것은 어떠한가?”
“도적들은 모두 오합지졸이므로 깨뜨리는 것이 어려울 이유는 없습니다. 허
나, 홍경래의 도당은 반드시 사로잡아야 하는데 군을 둘로 가르게 되면 그러
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어집니다.”
홍경래 군의 가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질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홍경래
가 부하들만 데리고 도망쳤다면 이공 역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공은 끔찍한 신음을 참으며 생각에 잠겼다.
홍경래는 평양성으로 도망쳤다고 하니 그 뜻을 능히 짐작할 만하다. 자신의
충실한 신하가 될 정시준과 자기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속셈이다.
홍경래 따위 일개 상놈이 세객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문제는
정약용이 홍경래에게 합류해서 그 일을 도울 경우다.
절연장을 썼느니 어쨌느니 해도 스승은 스승이다. 그리고 듣기로 정약용과 정
시준은 부자의 인연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공은 빠르게 물었다.
“뒤쪽의 백성 무리가 우리 군의 후미를 들이치려 하던가?”
“아닙니다. 그저 몇 리 바깥에서 멀찍이 따라올 뿐입니다.”
“좋다. 평양성을 손에 넣는다면 그들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 정예한 마군을
추려서 재빨리 반적 홍경래를 쫓아간다. 그들이 대동강에 이르기 전에 사로잡
아야만 한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박윤수는 왕이 사고 치기 전에 재빨리 선수를 치려 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군영에서 장수들의 승전보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 나도 간다.”
금위대장 박종경은 쌍욕을 중얼거리느라 꿈틀대는 입술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공의 입장도 이해해 줘야 한다. 방금 추태를 보여준 금위영에게 그
중요한 임무를 단독으로 맡기라고 한다면 솔직히 박종경이 너무 뻔뻔한 것이다.
“내가 불씨왕(프리드리히)을 본받아 친히 말을 타고 전열에 서겠다. 장졸의
소임을 맡은 자, 머뭇대거나 때를 놓치는 일이 다시 한 번만 더 있으면 용납
하지 않으리라.”
이공은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조신들을 둘러보았다. 계몽 외길을 걷는 그의
눈이 불타고 있었다.
“충의는 오로지 목숨 바쳐 행할 뿐, 장수부터 졸오(卒伍)까지 모든 장병은 불
씨왕이 태만한 병사들을 꾸짖었던 말을 기억하고 몸을 사리지 말라! 그대들은
영원히 살고 싶은 것이냐[wollt ihr denn ewig leben]?”
“망극하옵니다. 전하!”
금위영이 이 상황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왕명은 즉시 실행되었다.
다만 이공이 호령한다고 실무가 다 재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안
타까울 뿐이었다.
애초에 이공은 실무진을 맡을 만한 사람을 많이 데리고 오지 않았다. 게다가
허드렛일을 해주던 홍경래군 역시 이탈해 버린 상태였다. 소탈하고 격식 신경
쓰지 않는 군주를 모시면 이렇게 피곤하다.
그래서 말이 아직 움직일 수 있는 500기를 끌어내고 그들이 허둥지둥 갑옷이
며 무기를 다시 챙기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이공의 혈압이 상당히 치솟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황해도 군세를 버려두고
온 게 후회막급이었다.
결국 보조 인력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군세가 ‘일단은’ 북쪽을 향해 서둘러
출발했을 때는, 정약용이 익숙하지도 않은 수마(水馬)질 하느라 차가운 대동
강 강물에 흠뻑 젖은 채로 평양성 앞까지 도달한 뒤였다.
작가의 말
1. 조선 환곡이나 정부 운영재정에 대해 언급된 부분은 <19세기 환곡(還穀)의 고갈과 고리대적(高利貸的) 운영 강화>(임성수, 2021)를 참조했습니다. 작중에서는 혼동 방지를 위해 쌀 부분만 서술되었는데, 해당 논문에도 나오지만 이 시기 조선은 거의 돈(냥)으로 환산한 재정을 사용했습니다.
2. 곡산 민란은 동기가 시준이와 관련있는 것, 그리고 수령이 죽은 것만 빼면 원 역사와 거의 비슷합니다. 원 역사에서는 조선 백성들이 수령 박종신을 가마니에 담아서 추방하고 병부와 인신을 이웃 고을에 갖다 바쳤습니다. 관속들까지 협조했고요.
이 정도의 저강도 저항만을 하면 조정에서도 항의 정도로 받아들여주리라(북청처럼 약한 처벌만 있으리라) 생각한 데몬스트레이션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생각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조정은 어쨌든 "관도 죄가 있지만 일단 감히 웃전에 대들어 분수를 어긴 상놈들의 죄가 더 우선이다(작중 강철군주 순조가 아니라 당시 오리지널 순조의 말입니다)"며 37명을 처형합니다.
3. 오재민은 실제로 이때 순조의 협련군으로 근무했던 군인입니다. 죄를 범해 처벌받은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있습니다.
4. 이공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프리드리히가 1757년 콜린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에게 대패하고 나서 '용맹하지 못한' 병사들을 꾸짖은 말입니다. 원문은 "Ihr verfluchten Kerls, wollt ihr denn ewig leben?" 로서, 번역하자면 "이 망할 놈들. 너희들은 영원히 살기라도 하려는 것이냐!" 정도가 되겠군요.
26. 파국(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