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25. 반역자들(1)
지난날, 이공은 그가 모범으로 삼은 프리드리히의 유년기 학대 경험을 듣고
탄식한 적이 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의 아버지 빌헬름과 다르게 이공은 원자
(원 역사의 효명세자)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 살배기 원자가 지옥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상태 자체는 프리드리
히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왕비 김씨는 지금 회임 중인 상궁 박씨가 아들을 낳는 날이 곧 자신과 원자가
한꺼번에 죽는 날임을 절감하고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몸을 떨었다.
허나 매사에 있어 강철 그 자체인 계몽군주 이공이 그런 사소한 일까지 돌아
볼 리는 없다.
이공의 군주관은 확고했다. 군주라면 무릇 병사와 고락을 같이하며 그 자신이
나라에서 가장 계몽된 학자이자 최고로 용맹한 장수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 병사들과 같이 기숙하는 험난한 생활도, 그토록 사랑했던 원자의
얼굴이 마르고 버짐마저 피는 참혹한 상황도 이공에게는 자부심만을 더해 줄
뿐이었다.
지금 관군에 비하면 거지꼴로 뒤따라오는 홍경래군처럼 매 끼니 딱딱한 찐쌀
이나 씹는다면 이공도 약간 생각이 달라졌겠지만, 그저 수라가 조금 간소해졌
을 뿐이라 그는 자부심만을 달게 맛볼 수 있었다.
이공은 큰 유막 아래 그를 위해 특별 제작된 의자에 앉아 시준의 상소를 펼쳤다.
물론 황해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내시 옷을 입고 있는 건 아니고, 그의 평소
사상에 맞게 융복(戎服)을 차려입은 채였다.
여기까지 끌려온 일부 신하들은 무부의 차림을 그만두라느니 하는 간언을 할
기분도 안 들었다. 갑옷을 매어 입든 누더기를 주워 걸치든 네 멋대로 하시라
는 심정이었다.
이공은 만족스럽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유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부를 결정짓는[運籌策邳
帳之中 決勝子 千里之外, 『사기』] 유후(留侯, 장량)의 지모이다. 시준이란
자가 권도를 행해서라도 서도를 위무하고 반적을 처단하여 마당을 비로 쓸 듯
깨끗이 한 채 임금을 맞아들인 사업은 타인의 미칠 바 아니니, 예조 참판이
후진을 기른 덕을 이로써 알 수 있도다.”
정약용은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절연장 써 던지고 떠난 용렬한 제자일 뿐입니다. 상소에도 있지만, 속히 부
로인(포로)을 가려내어 해방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시준은 근본
이 장사하는 자이므로 마땅한 충성의 값을 치러 주신다면 시준은 반드시 재주
를 다해 임금을 모실 것입니다.”
조정이라면 하지 못할 말. 군신의 일을 장사에 빗대는 정약용의 상언은 조롱
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것은 별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공은 개혁개방과 통상장려를 주장하
는 왕이다. 머리가 안 따라주는 게 한이지만 뜻만은 진실했다.
이공은 오히려 다른 부분에 이의가 있었다. 그는 별로 마땅찮은 표정으로 의
자 팔걸이를 딱딱 두드렸다. 전혀 왕답지 못한 동작이었다.
정약용은 자기 자식이었으면 그냥 김조순처럼 옆에 있는 거 아무거나 던졌으
리라고 확신했다. 유막이 조정 대전처럼 엄히 정리된 게 아니라서 저편 구석
에 있는 벼루도 마침 눈에 띄었다.
정약용이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약간 꿈틀했을 때 이공의 말이 나왔다.
“값이라. 그야 영길리인들이 하듯 어떤 물건이든 값을 매겨 이문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은 저 고루한 자들의 말과 달리 떳떳한 산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값을 따질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있으니 바로 충의다.”
정약용은 엎드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가 고개를 들 수 있었다면,
이공은 ‘지금 네가 그 말 지껄일 주제냐?’라는 정약용의 적나라한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비록 장사꾼으로 리(利)를 찾아 떠돌아다닌다 하나, 참판의 제자라면
논어를 익숙히 읽었을 터. 지혜로운 자는 어짊을 곧 이득으로 여긴다[知者利
仁]는 말쯤이야 모르지 않겠지. 충의는 오롯이 그것만으로도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바지 무언가를 위해 충성하는 게 아니니라.”
나불대는 말 하나는 까무러치게 멋지다. 물론 그렇다. 조선의 전통적인 인식
으로는 충성에 값을 매길 수 없다. 충성은 곧 그 자체로 보답이니까.
그러나 그 ‘전통적인 인식’을 즉위 10년 만에, 아니 사실상 최근 3년 만에 아
주 착착 깎아 해체하고 있는 이공이 할 말은 아니었다.
정약용이 예상한 대로 그것은 이공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말이었다. 시준이
너무 쉽게 가족을 돌려보내 주면 협조하겠다고 숙이고 들자 뭔가 더 뽑아낼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 것이다.
“사실 평안도에 발을 딛자마자 저들 역적을 처단한 다음 그 목을 돌려 위엄을
세우려 하였으나, 시준이 이토록 긴절(緊切)하다면 마땅히 다시 고려하겠다.
다만 지금 보내 줄 수는 없다. 신상필벌은 치도의 모든 것. 돈을 바치고 곡식
을 바쳤다 하여 죄인을 용서한다면 부유한 자들이 국법의 무엇을 두려워하겠
느냐? 내가 평양에 들어가 이들 모두를 국문하여 잘잘못을 가려낼 것이다. 시
준의 상소를 가납하는 것은 그 후다. 비답도 아직은 내리지 마라.”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이공과 달리 정약용은 약속을 중히 여기는 선비였
다. 그는 정말 시준에게 약속한 대로 홍가장 식구들을 구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정약용은 절망했다. 남은 구명 방법은, 사실상 옆에 있는 벼루를
정확히 집어던져 왕을 암살하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온갖 굴욕을 참으며 금위영의 수발을 들던 홍경래는 정약용 등 백탑파 측근들
을 통해 내려온 왕의 지시를 듣고 절망했다.
김유근은 그대로 놔둔 채, 홍가장 식구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히고 배불리 먹
이라는 그 어명은 아무리 봐도 그자들을 시준에게 건네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참새는 대붕의 뜻을 알지 못하는 법. 이공의 복잡한 신산귀모를 모르는 홍경
래의 입장으로 보면 그렇게 판단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홍경래는 반드시 버려진다.
딱히 홍경래가 잘못한 것은 없으니 평서대원수 직함을 거둔다거나 하지는 않
겠지만 권력의 중심에서는 밀려나게 된다.
홍경래의 권력욕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시준이 없었다면 홍경래도 이리 추하
게 굴지는 않았다.
도대체 평양에서 무슨 도술을 부렸는지, 불과 한 계절 사이에 왕이 자기를 새
까맣게 잊고 주목할 정도로 급부상한 시준의 존재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금의
홍경래에게는 권력이 꼭 필요했다.
권력이 없다면, 시준이 홍경래를 살려 둘 리가 없으니까.
시준이 인민대회를 홍보하려 풀어 둔 사람들은 꼭 그 소식만 전한 것은 아니
었다. 게다가 왕이 끌고 가는 것은 엄연히 군대이니만큼 척후들이 여러 가지
정보를 가지고 왔다.
홍경래는 그 자신이 반란군 출신이었기에 반란자의 심리를 잘 알았다. 시준이
쳐 둔 장막도 어느 정도 눈에 보였다.
그런 것들을 걷어내고 보았을 때, 시준은 오히려 자신보다 백 배는 위험한 자
였다.
평안 감영에서의 짧은 전투를 빼면 홍경래군의 업적은 그저 걸어온 것뿐. 군
사 행동이라기보다는 병정놀이에 가까웠다.
그에 비해 시준은 평안도의 유력자나 수령 중 마음에 안 드는 자는 전부 죽이
고 북방 최고의 군사 요충지인 안주성까지 손에 넣었다. 그들이 역적이니, 알
수 없는 이유로 횡사했니 하는 시준의 뻔한 수작은 전혀 믿을 게 못 되었다.
“그래. 전부 시준이 한 짓이야. 아마 지금 대동강 북쪽의 백성들은 왕이 뭔지
도 모를걸. 그 꼬맹이가 설마 그런 요괴로 자랐을 줄은 생각도 못 했군. 예전
싹이 보였을 때 자네 말대로 죽였어야 했는데.”
요즘 많이 초췌해진 우군칙도 과거 양시위가 팔에 총 맞았을 때 시준의 제거
를 반대했던 일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우군칙은 미약한 희망을 품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자네가 가서 힘써 아뢰면 되지 않을까? 시준이 무슨 준비를 해 놨건, 여기
있는 금군 천 명과 우리 군세 오백 명을 합치면 평양성도 떨어뜨릴 수 있네.
지금은 역적들의 목을 전부 베고 기세를 높여 들이쳐야 해. 이 짧은 시간에
무슨 큰 군대를 만들 수는 없었을 거 아닌가.”
“작년 가을이었다면 나도 시준이 그 짧은 시간에 평안도를 제 손 아래 놓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을 거야. 그 녀석이라면 진짜 대군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대군이라고 해도 설마 금군에 비하겠는가? 군대는 수가 아니라 정예함일세.
정병이 벼락같이 들이치면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까마귀의 무리일 뿐이야.”
적군이 벼락처럼 들이치자 임진년에는 한 달 만에, 병자년에는 단 여드레 만
에 도성이 털려버린 조선 사람의 말이니만큼 전문가적 당사자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홍경래도 우군칙의 이론 자체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우군칙의 구상이 먹히려면 일단 왕이 홍경래의
말을 들어 줘야 했다. 그런데 지금 우군칙이 초췌해진 이유를 생각하면 영 그
럴 것 같지 않았다.
“사룡이는 더 갇혀 있다가는 그대로 물고가 날 판일세. 하다못해 인정에라도
호소해야…….”
홍경래는 이를 악물었다.
왕은 약속대로 홍경래군 간부들에게 벼슬을 내려 주었다. 조정이 없는데 벼슬
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부하들을 다스리기 위해 홍경래는 그것을 받았다.
홍경래야 평서대원수가 당연하고, 여기의 군사 책임자였던 김사룡도 선략장군
(宣略將軍, 종4품 무신 산계) 벼슬 하나 얻었다. 물론 그때쯤 해서는 홍경래
군 간부들 거의 전부가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김사룡이 거들먹대는 것은 억제하지 못한 자부심이라기보다 자기 위
로 수단이었다. 솔직히 말해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시준이라면 약간 공감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조롱과 동정의 시선을 김사룡은 오래 견딜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술
에 꽤 취해, 나도 장군인데 왜 묘당에 들어가 임금 앞에 시무를 아뢰지 못하
냐며 깽판을 부렸다.
운 없게도, 그때는 이공이 홍경래군 합류 초기라 이 형편없고 냄새나는 천막
안에서 어떻게 하면 위엄을 갖출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무식한 칼잡이가 지금 제나라 민왕(湣王)을 대들보에 걸어 죽인 장군 요치
(淖齒)나 한나라 효헌황제를 핍박하여 조밥이나 보낸 네 도적[四盜寇, 이각‧
곽사‧장제‧번주]을 본받으려 하느냐!”
요치나 이각, 곽사는 군주보다 확실히 강한 군대를 가졌기에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사룡은 그렇지 않았고 왕을 직접 모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범 케이스란 건 원래 좀 억지스러운 법이다.
홍경래가 정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김사룡은 목숨을 건졌다. 금군은 상
하를 엄정히 하라는 왕의 뜻을 받들어, 김사룡이 말 그대로 곤죽이 될 때까지
팼다. 김사룡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것은 그의 강인한 체력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김유근은 자기 바로 옆에 갇힌 김사룡을 보고 허핍한 웃음밖에 나올 게 없었
다. 초봄인데도 허벅지에 재빨리 구더기가 슬고, 거멓게 죽은 피와 똥오줌이
섞여 지푸라기에 문대고 있는 꼴은 별로 조롱할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비
참한 광경이었다.
총사령관이 반쯤 죽은 채 일어서지도 못하는 꼴이 되자 원래도 군대 모양 제
대로 갖추지 못한 홍경래군은 이제 진짜 오합지졸이 되었다.
잠깐 고개를 숙인 채 생각하던 홍경래는 곧 머리를 들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우군칙은 홍경래를 보고 흠칫했다. 이건 왕으로부터 교지를
받은 후로는 볼 수 없었던 눈이다.
홍경래는 마치 옛적, 반역을 꿈꾸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례 없이 탁하고 건조했다.
“어명은 받들어야지. 씻기고 먹이라고 했으렷다. 일단 홍 장주에게로 가 보도
록 하세.”
시준은 지유에 대한 걱정을 억누르고 당면 과제에 매진했다. 왕이 황해도에
접어들었다면 평양은 지척. 그전에 확실하고 통일된 군세를 보여 왕에게 평안
도가 지금 만만하지 않음을 납득시켜야 했다.
시준은 삼화부로의 출장을 잡았다. 이제 슬슬 자리를 잡았을 영국인들을 만나
보기 위해서였다.
로드 암허스트는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협상 상대가 관대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좋은 일이었으나, 영국인이 기분
좋다면 보편적 인류에게는 기분 나쁜 일일 가능성이 높아서 시준은 긴장을 놓
지 않았다.
“삼화부는 장자도보다 훨씬 큰 곳이지요. 이제 지친 수병과 선원들은 대강 기
운을 차렸겠지요? 각하의 좋은 안색을 보니 이제 걱정할 것은 별로 없어 보이
는군요.”
“아, 물론이오. 게다가 내 눈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더욱 기쁘군.”
“옳았다니요?”
로드 암허스트는 시준이 농담을 한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삼화부
영국 상관 – 물론 근문소에서 만든 것이라 조정은커녕 용천부 통무아문도 모
른다 –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가리켰다.
“내가 선택한 조선에서의 파트너가 그 가치를 입증했다는 얘기지.”
시준이 그렇게까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시준이 한 일은, 그간
안부인사 삼아 지친왕 면녕과(실제로는 그 보좌관 누군가일 것이다) 주고받은
서신에 장난을 친 정도밖에 없었다.
그 ‘장난’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끝에 가경제가 영국군은 싱가포르에 있다
고 믿는 결과로 나타났다.
청이 만약 대만 해적이나 베트남 해군을 동원해서 영국 해군을 찾으려 해도
동남아시아에서의 개싸움 말고는 얻을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피폐해진 암허스트의 함대는 그동안 삼화부에서 숨죽인 채로 시준의
호의에 의지해 연명했다.
시준은 자신이 영국에게 이공보다 더 과감한 개항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제스처
를 취했다. 동인도 회사가 용천부의 서구식 개발 계획을 짜는 동안, 영국 해
군 수병은 항구에서 벗어나지 않고 건설노동에 매진했다.
시준 입장에서도 폭탄 같은 영국놈들을 가만히 모아두는 과정은 필요했다. 특
히 평양에는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됐다.
평양을 혁명의 도시로 만들고 있는 푸셰가 영국군에 눈에 띄었다가는 그 자리
에서 전쟁이 난다. 그리고 휘하 프랑스군도 마찬가지다. 무력위원회 휘하 군
세를 훈련시키는 교관으로서도, 최후에 영국을 견제할 패로서도 그들은 필요했다.
시준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언제 각하께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소이까? 이거 서운한데요.”
“하하! 의심해서 미안하오. 우리의 우정은 앞으로 더욱 충실해질 것이오.”
암허스트는 시준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얼간이가 아니오.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줘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는 말이지. 당신이 후에 정권을 잡으면 영국과 본격적인 해상 거
래를 트겠다는 그 뜻은 잘 받았으니, 이젠 내가 무얼 주면 되겠소?”
동인도 회사는 석탄갱 탐광과 면직물 거래를 이 겨울 동안 크게 확대했다. 평
준위원회와 갱사위원회(坑舍委員會) 간부들은 이제 영국 동인도 회사와 돈독
한 우정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조선에는 이런저런 사회적 제약이 많아서, 이공이 개항을 했다고는 하지만 밀
무역이 공무역보다 큰 수준의 쪼잔한 거래였다.
그러나 이제 조선에 팔 것도, 조선에서 살 것도 많았다. 약재의 대국 조선답
게 평안도 상인들은 의약품을 주로 팔았는데, 정 진인의 신약(神藥)이라는 모
르핀이나 용각산, 파스는 유럽인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시준을 지원하면 전제 군주국의 갑갑한 개항보다 더 확실한 ‘자유 무역’을 기
대할 수 있다. 시준은 그 증거를 어떤 문서 약속보다도 확실한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시준은 몸을 조금 뒤로 젖히며 미소를 유지했다.
“얘기가 빨라 좋소이다.”
시준도 아쉬울 것 없었다. 그는 영국군이 절대로 조선을 버릴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진상 부리는 영국군이 겨울 동안 삼화부에
조용히 틀어박혀 있었던 게 그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영국인들이 제정신이라면 중국을 상대하면서 조선까지 적대할 수가 없다. 로
드 암허스트는 조선을 대중국 침공의 전진기지로 쓰기 위해 협력자를 간절히
원했고 시준은 거기에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러한 영국의 목적을 알기 때문에, 시준은 암허스트의 기분이 좋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제는 인도에서 회신이 왔겠지요? 함대의 증원은 언제쯤 될 것 같습니까?”
“당신쯤 되는 사람이라면 알아챘다 해도 놀랄 것은 없겠구려. 숨김없이 말하
겠소. 이제 길어봐야 한 달만 더 있으면, 아시아 전문가인 윌리엄 드루리 제
독과 그 기함 파워풀호가 이끄는 함대가 도착할 거요. 젊지만 유능한 드루리
제독은 의욕에 차 있지. 중국의 파멸을 기대해도 좋소.”
그야 드루리는 아시아에서 겪었던 그 치욕 때문에 밤마다 이불을 걷어차는 신
세이니 의욕 만만일 수밖에 없다.
드루리가 베트남에서 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실망했을지 모르나, 시준이
그 정도로 역사에 밝을 리는 없고 해서 시준 역시 그 창피한 배 이름에 대해
비웃는 것을 삼갔다.
“중국의 파멸 하니까 말인데, 저는 딱히 중국이 어찌 되건 상관은 없습니다만
영국군이 육로까지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그에 대해 다시
확인해 두고 싶은 게 있소.”
“알고 있소. 조선은 어디까지나 영국 해군의 강요에 의해 항구와 물자를 제공
한 것이라는 말씀이지? 틀림없이 그렇게 공표될 거요.”
암허스트의 입장에서도 그 편이 좋았다. 영국은 본래 양심이나 정의 따윈 돈
될 때만 챙긴다는 고상한 국풍(國風)이 오래되었다. 정부건, 의회건, 시민이
건, 교회건 다 마찬가지다.
타국을 무력으로 압제했다는 비난보다는 영국의 국위를 선양했다는 칭송이 훨
씬 높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암허스트는 본국에도 이미 그렇게 보고해 두었다.
이제 로드 암허스트는 프랑스인과 조선인에게 번갈아 농락당하다가 화풀이로
중국 배나 부숴버린 멍청이가 아니라, 중국의 횡포에서 영국인을 구출하고 조
선이라는 교두보를 확보한 영웅이다.
그러한 교두보의 안정을 위해 암허스트는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지금은 이런 시시한 기만책을 쓸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얘기는 달
라집니다. 안정적 항로가 구축되고 나면 조선 각지에 영국군을 주둔시켜, 우
리가 조선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자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있소.”
지금은 영국이 19세기 말보다 약하고, 청은 19세기 말보다 강하다. 아편전쟁
처럼 무슨 튜토리얼급 전쟁이 아닌 진짜 혈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시준에
게는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았다.
영국이 이긴다고만 장담할 수는 없는 일. 최소한 한 차례 전투의 결과는 봐야
한다.
시준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장담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공처럼 이놈 저놈에게 아무 말이나 다 호언하다가는 결국 신뢰를 잃게 된다.
이공의 실수는 행동은 항상 말보다 무거워야 한다는 원칙을 어긴 것이다. 정
가 10만원 걸어놓고 8만원에 팔면 할인이지만 5만원에 준다고 해 놓고 실제로
는 이것저것 끼워 팔아 8만원이 나온다면 별점 1점을 면하기 힘들다.
그래서 시준은 살짝 다른 말을 흘렸다.
“프랑스도 그걸 원하는 것 같더군요. 뭐, 이제는 안남으로 다 떠났으니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현재 조제프 푸셰의 공식적인 소재지였다. ‘프랑스 전열함 함대’는 약
속대로 베트남까지 철수하였으며, 푸셰도 나가사키에 들렀다 베트남 가라는
왕명을 받들어 떠난 것이다. 인민대회의 검사위원장 복공은 절대로 조제프 푸
셰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다.
과연 암허스트는 단박에 흥분하여 말했다.
“조제프 푸셰, 리옹의 도살자(boucher de Lyon)가 나불댄 감언이설이 또 있었
군! 원래 프랑스인의 허풍은 전연 믿을 게 못 되지요! 그 알량한 선교 한다고
북경이랑 마카오에 가 있는 인간이 몇인데 프랑스가 중국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소?”
푸셰 자신도 사제였지만 동시에 공산주의자이기도 하다. 시준은 푸셰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방전교회를 내팽개칠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을 말
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말씀하신 건은 미래의 일이라 저도 어떻게 장담하기는 힘듭니다. 나
는 왕도, 독재자도 아니니까요. 각하의 호의에는 내 감사하고 있으니, 나는
우리 동료들에게 좋게 말해 두겠소. 우리들의 지방 협의체(근문소)가 합리적
인 결단을 내려 주겠지요.”
“물론이오. 나도 꼭 그러길 바라겠소.”
암허스트의 정중한 배웅과 함께 상관에서 나온 시준은 남쪽을 돌아보았다. 이
제 왕이 지척에 있다.
그리고 지유도 거기 있다.
그 생각을 하자 왕과 홍경래에 대해 복잡하고도 불쾌한 감정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원래 이공과는 달리 허세에는 별로 취미가 없는 시준이었지만, 긴장을 좀 풀
기 위해 담배 한 대를 물고 나니 이공에 대한 날카로운 조롱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외교는, 이렇게 하는 거야.”
작가의 말
1. 삼국지의 네 장군은 다들 아실 테고, 초나라 장군 요치는 제 민왕이 연의 명장 악의에게 털려 70여개 성을 잃고 한 성만 남았을 때 파견된 구원군의 장군입니다. 사실상 제나라에 막타 칠 점령군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만 민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마 권력 갈등이 있었겠지요. 춘추전국시대 사람답게;;; 요치는 민왕의 힘줄(뼈라는 얘기도 있습니다)을 뽑아 들보에 걸어 그대로 죽게 합니다.
2. 모르핀의 제법 자체는 이때 유럽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다만 아편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요.
3. 리옹의 도살자라는 말은 조제프 푸셰가 로베스피에르 밑에 있던 시절의 별명입니다. 푸셰는 리옹에서의 반란을 진압할 때 사람을 한 명, 혹은 여러 명씩 묶어 놓고 대포로 포도탄을 갈기는 방식을 써서 처형했습니다. 그 로베스피에르도 당혹하여 어떻게든 책임전가를 해보려 할 정도의 막장이었지요.
후에 레지스탕스를 잔인하게 진압하여 같은 별명으로 불린 나치 친위대 대위 클라우스 바르비가 있습니다만, 원조는 이쪽입니다.
25. 반역자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