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24. 평양 인민대회(4)
기랑이 쏜 총탄은, 사실만을 말하면 수렵용 강선 머스킷에서 내쏜 하나의 미
니에 탄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아직 클로드 에티엔 미니에(Claude-Étienne Minié)가 어린아이에 불과
하니 정시준 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서는
한 걸음의 발자국도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 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그 총탄은 서상의 평안도 장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시준이 제압한 영변부에는 주변 성에서 데리고 온 부대가 몇 개 있었다. 그들
이 오연상의 목을 들고 가서 설득했다.
“영변 부사는 주상 전하께서 파천하신 틈을 타서 역적과 손잡아 호응하기로
하였네. 여기서 도당을 꾸려가지고 북으로 올라오시는 주상 전하를 도모하려
는 흉심이 있었지. 오연상이 부사의 권세를 넘어서는 군병을 모았던 것이 바
로 증거일세. 근문소와 서상이 아니었으면 자네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역적
이 되었을 뻔하였지 뭔가!”
도대체 그 역적이 김조순인지, 홍경래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는 말할 필
요가 없었다. 상대방이 이미 내게 동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노골적인 애매모
호함은 저들 스스로의 자기합리화를 거쳐 오히려 확실한 무기가 된다.
오랫동안 부서장이 부임하지 않은 사무실이 그렇듯 안주성의 군관과 병졸도
만사 귀찮았다. 서상에서 이런 그럴싸한 명분과 함께 밥과 옷을 준다면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다.
성문은 간단히 열렸다. 정묘호란 당시 남이흥(南以興)처럼 성과 함께 장렬히
폭사하는 건 나라에서 많은 것을 받은 사대부의 의무지, 하민들의 의무가 아
니었다. 조선은 그들의 나라가 아니다.
그렇게 모두 잘 풀렸으면 좋으련만 모두가 바람직하게도 한마음이 되어 주지
는 않았다. 오연상 때문에 안주성과 영변 대도호부의 장병 중 많은 수는 시준
일당을 역적으로 알고 있었고(사실 맞다) 그래서 충신열사다운 장한 각오를
한 자도 없지는 않았다.
시준이 익히 보았듯 19세기 사람들은 뇌물을 마다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부끄
러워하지도 않는다. 자기보다 권세 약한 자에게는 빼앗는 게 당연하다. 눈치
봐서 뒷일 괜찮을 것 같으면 그냥 길거리에서 사람 뺨을 치고 짓밟는 일도 일
상다반사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이 현대인에 비해 도덕이 없는 게 아니다. 도덕이
향하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이를테면 임금에 대한 충의처럼 현대인에게는 희미한 관념도 그중 하나다.
안주성을 함락한 무력위원회가 대도호부의 관사인 철옹관(鐵甕館)에 이르렀을
때, 이름을 양동(梁同)이라 하는 군관 하나는 팔뚝질을 하며 외쳤다.
“내가 갈기갈기 토막이 날지언정 너희 따위 흉적에게 고개를 숙일 것 같으냐!”
원 역사에서는 홍경래군에게 저렇게 말하다가 목이 칼로 세 번 찍히고도 살아
돌아온 비범한 사람이다.
시준이 그런 일까지야 알 도리 없지만, 그런 비범한 녀석과 싸우기 싫기는 마
찬가지였다.
시준은 군인이 아니며, 전사도 아니다. 강대한 서양식 군대를 깃발 아래 두고
위풍당당하게 진격하여 전근대인을 쓸어 버리는 이공의 꿈은 시준의 취향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시준은 무력위원장 차형기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평양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공은 이 시점에서 홍경래와 합류하여 북상하는 중이었다. 송상이 전해 준
소식에 따르면, 거의 약탈에 가까운 수준으로 곡식과 돈을 징발하면서 진군하
는 모양이었다. 하긴 왕이 같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차형기가 긴장하여 물었다.
“임금이 곧 오기 때문인가?”
“예. 장주님은 반드시 거기 계십니다.”
대동강 이북으로 개새끼 한 마리 건너올 수 없다는 둥 큰소리치기는 했으나,
홍득주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야 차형기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임금은 평양에 들이지 않으면서 장주님만 돌려받을 수 있을까?”
그것이 서도상고총협동회 ‘의주파’의 현재 최고 현안이었다. 그들은 이 서상
의 최초 설립자로서 원조가 가질 수 있는 정통성과 기반이 있었으나, 아무래
도 평안도의 나머지 지역 전부를 압도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평안도 전역에 인덕이 높다 하는 홍득주는 꼭 필요했다.
물론 홍득주가 이제 와서 시준을 대신해 서상의 가장 윗줄을 차지하는 것은
무리다. 잡혀갔든 어쨌든 한 번 자리에서 이탈한 우두머리의 말은 장악력이
없다. 선조가 몇 번이나 양위 파동을 일으켜야 했던 이유다.
허나 지금 공식적으로 비어 있는 만상의 최고 우두머리 자리에 시준의 후견으
로 복귀하는 일까지는 납득할 만하다. 이제 시준과 홍득주의 관계가 거꾸로
되는 셈이다.
아직 시준이 결혼 안 한 미성년자라거나 하는 이유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는 큰 명분이 된다. 시준 역시 지금 맡고 있는 개인 사업이나 서상 전체의
현안에만 집중하고 만상은 홍득주에게 맡길 수 있다.
게다가 시준은 지유와 홍득주에만 집중했지만 차형기는 홍득주와 함께 잡혀간
여러 가솔들 역시 염두에 두었다.
“잡혀간 집사나 서리 중에는 금은갱과 아편에 대한 일을 맡아 보고 있던 자들
도 있네. 반드시 큰 힘이 될 거야.”
사실상 시준 혼자서 간판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만상의 부피가 회복된
다면 ‘의주파’의 세는 내실이 확실하게 다져진다. 여기에 서상 회장 정시준까
지 있으니 이후 서상을 장기간 의주 사람들이 주도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시준은 한숨을 쉬고 싶었다. 과거 평양에서 처음 서상을 꾸릴 때 생각했던 문
제가 드러나고 있었다. 어차피 장사치들을 모아 놓았을 때부터 이런 일이 일
어날 것쯤은 예상했어야 했다.
조선이 왜 상업을 천대하였는가. 그건 장사꾼에게 도덕이란 게 없기 때문이
다. 그런데 조선은 도덕 국가다.
물론 삐딱한 시선으로 본다고 해도 내부 분열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건전
한 경쟁과 이윤 추구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지금처럼 외부의 적이 있을 때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는 장담할 수 없다.
‘이념이 있어야 하겠지. 그리고 지금 조선이 가지고 있는 이념으로는 안 돼.
그게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선점하고 있는 이념을 가져오면 그
이념하에 성장한 기존 기득권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야.’
시준은 결국 자기는 관여하지 않으려던 사업을 더 당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차형기에게 대답했다.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저는 급히 평양으로 돌아가서 정
치국을 소집하겠습니다. 위원장께서도 정치국 위원이시니 같이 가시지요. 여
기는 당주 대리(홍총각)에게 맡기면 될 겁니다.”
차형기도 그제서야 지금 당장 눈앞의 일을 기억해 내었다. 철옹관은 말 그대
로 철옹성 같았고 거기 있는 병사들은 백 명도 안 되는 오죽당원보다는 많아
보였다.
“총각이가……. 아니, 당주 대리가 잘 할 수 있을까?”
“싸울 일은 없소이다. 그저 길을 틀어막고 지키기만 하면 되니까요. 양동이라
는 자가 제법 절개 있는 척하지만, 여태까지 평안도 관군이 누구 쌀을 먹었는
지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어떤 비상한 적개를 불태운다 해도 물 없이 사흘, 밥 없이 열흘이면 누구라도
끝장나는 게 사람이올시다. 도호부 안의 양곡이 몇 됫박이나 남았을까요? 길
어봐야 보름도 안 되어 배 움켜쥐고 나와 항복할 겁니다.”
“그도 그렇네. 도호부로 날랐던 곡식 장부도 다 우리 손에 있으니 손바닥 안
이나 다름없지. 다시 찾아보기는 하겠네만 분명 회장 말대로 얼마 안 남았을
거야.”
고개를 끄덕이던 차형기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항복하면 어떻게 할까? 오죽당에 맡겨 짐을 나를까, 아니면 우리 편 군사로
삼을까?”
이런 일은 무력위원장 차형기가 스스로 결정하면 될 수준의 사안이다. 그러나
차형기가 굳이 회장의 의중을 물은 이유는, 말하자면 감이었다.
그는 시준의 연설을 통해 회장이 이번 영변부 관아 전투를 평소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할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차형기의 감은 정확했다. 시준은 우두커니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중상과 모함을 퍼뜨릴 무리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오연상은 역적이며, 저들
은 역적을 끝까지 따르는 흉악한 도당입니다.”
차형기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았다. 서상 무력위원장 정도쯤 되면 오
해하지 않을 지시였다.
“알겠네. 내 어김없이 일러 놓지.”
시준이 평양에 도착해서 다시 정치국을 소집했을 때는 이미 이월이 되었다.
다행히 그 직전 홍총각의 전갈을 받은 무력위원장 차형기는 다른 정치국 위원
앞에서 영변 대도호부를 포함한 안주성 주변 – 그러니까 평안도 중부의 주요
군사 거점들이 모두 항복했다는 보고를 할 수 있었다.
이제 평안도에서 시준을 막을 수 있는 군사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를 보던 시준은 위원들을 둘러보며 질문했다.
“함경도에서 속오군이 이쪽으로 쳐들어올 수는 없겠습니까? 함경도의 군병은
강성하기로 유명하고, 거기에 오연상 같은 자가 또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건 지도 같은 메타 데이터로 형국을 ‘위에서’ 거시적으로 내려다보는 데 익
숙한 21세기 사람인 시준이나 할 발상이다. 좀 더 거칠게 말하면 전쟁 전문가
가 아닌 시준이 현실을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하듯이 상상했다는 말이다.
반대로 ‘아래에서’ 땅에 밀착해 사는 조선 출신 정치국 위원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함경도에서 이쪽으로 오려면 땅으로는 삼수군(三水郡)과 갑산군(甲山郡)을
지나야 하고, 물로는 압록강을 따라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계절의 압록강
은 반쯤 얼어 배도 사람도 다닐 수가 없으며, 대독이 얼어 깨지는 정이월에
삼수갑산을 건너려 들었다가는 열에 한둘도 살아서 평안도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오이다. 회장께서 과한 걱정을 하시는 겁니다.”
21세기 대한민국도 혹독한 기후로 유명하지만, 도시가 별로 없고 난방 수단도
마땅찮은 19세기의 한반도 북방은 ‘추워 죽겠다’라는 말이 관용적 수사가 아
니라 사실적 묘사가 되는 동네다.
조선 왕조가 왜 양계에 죄수를 보냈겠는가. 제정신 박힌 놈들은 아무도 거기
서 안 살려 해서였다. 어디 SF소설처럼 나노머신이라도 박은 초인이 아니라면
겨울 삼수갑산 횡단은 어림도 없다.
“그렇군요. 여러 위원들의 가르침 덕에 부족한 이 사람이 또 한 번 실수를 면
했습니다.”
무안해진 시준은 일단 의주와 운산의 민병대로 하여금 압록강가를 경계하게
하는 정도로 그 논의를 끝냈다.
그렇게 기죽을 것까지는 없었다. 이다음부터가 바로 시준의 전문 분야다.
정치국에서 논의한 끝에, 시준은 역적 오연상을 처치한 앞뒤 사정을 자세히
써서 북으로 올라오고 있는 왕에게 보내기로 했다.
여기는 조금 복잡한 장치가 필요했다. 같은 백성인 홍경래에게 무언가를 보고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므로 어디까지나 왕에게 아뢰어야 했는데, 이공이 도
성에서 튀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이지 공식적 사실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국은 왕에게 올리는 상소를 쓴 다음 ‘서울로’ 출발시켰다. 그들은
가는 길에 ‘우연히’ 홍경래의 근왕군을 마주칠 터요, 상소는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왕에게 들어갈 것이다.
시준은 홍가장 식구들의 방면 요청을 그 상소에 적지 않은 비중으로 삽입했
다. 선량한 정치국 위원들 역시 기꺼이 명패를 들어 동의했다.
김조순이 알면 펄펄 뛰었겠지만 시준과 정치국은 김유근에 대해서는 이제 그
냥 잊어버린 상태였다. 근문소는 사소한 수정만 거친 끝에 시준의 ‘상소문’을
채택했다.
왕을 어떻게 상대할지는 이 상소에 대한 왕의 비답을 보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치국의 결정이었다.
정치국 위원 자신들조차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미 그들은 왕을 협상 상대로
여겼지 복종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시준은 자기가 없었어도 평안도는 결
국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혹시 석방이 제대로 안 될까 초조했던 시준은 같은 상소를 열 개나 베껴서 열
무리의 파발을 내려보냈다. 정치국도 그 정도의 권력 사유화는 융통성 있게
눈 감아 주었다.
파발의 규모는 자연스럽게도 매우 커졌다. 무자비하게 땅을 때리며 달리는 수
십 필의 말은 대동강 남쪽의 백성들로 하여금 혹시 여진족이 또 쳐들어왔나
하고 경기하게 만들었다.
강철군주 이공은 한다면 하는 왕이었다. 물론 거세를 한 건 아니지만, 이공은
기꺼이 내시의 복장을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많은 내관들로 하여금 왕이 그대로 궁궐에 있는 척 수발을 들게 한
뒤 금위영의 정예와 함께 서대문을 돌파했다.
이공은 앞을 막아서는 자는 누구라도 참살하리라 단단히 각오했다. 그러나 김
조순은 호랑이 아가리로 기어들어 가는 왕에게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미끼라서 전력도 사기도 바닥인 금위영 잔존 병력은 훈련도감에게 간
단히 격파되거나 모두 항복했다. 김조순은 홍경래와 금위영을 싸잡아 ‘왕을
납치해 도망친 무리’로 규정하고 한성부를 장악했다.
왕이 희생자처럼 묘사된 것은 아직 이공을 루이처럼 국가에 반역하고 도망친
역적으로 규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에는 왕에게서 유리된 국가라는 개념이 없다. 그건 다른 왕이 나온 뒤여
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조순은 이공이 예상했던 대로 한성부를 뒤져 인평대군 이요
(麟坪大君 李㴭, 인조의 3남)의 5대손인 이병원(李秉源)을 확보했다.
이병원이라 하면 현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그러나 ‘고종 황
제의 생물학적 증조부’라고 하면 그럭저럭 촌수가 짐작될 것이다.
이 이병원의 셋째아들이 은신군 이진(恩信君 李禛, 사도세자의 서자)의 양자
로 입적하게 될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다. 나중에 아들 이하응이 애먼 절
까지 불태워가며 묫자리를 참 잘도 쓰는 바람에 죽고 나서 당한 참사로만 유
명한 그 사람이다.
살아 있을 때는 남연군 이구도 별 볼 일 없는 한량이었다. 그리고 그 아비 이
병원도 마찬가지다. 이구가 입적하기 전이라 왕실 자손으로서의 예우조차 받
지 못했으며, 그저 부득부득 과거 응시해 진사 자격 가진 선비일 뿐이었다.
어쨌든 인조의 자손이고,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지혜롭다고 하기는 힘들어서
장악하기도 적당해 선택되었다.
지금 조정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이시수나 김재찬은 본래 그 아들 이구, 그러
니까 지금 이름 이채중(李采重)을 제안했다.
나이도 젊고 사람이 경박해 다루기가 더 쉬울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 이병원
은 배짱과 야망이 적어 대원군(大院君) 자리 정도로 만족하리라는 것이 그들
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김조순은 그것을 반대했다. 바로 도망간 왕 이공 때문이었다.
“지금 임금이 바로 연소하고 절조 없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네. 종묘
사직을 받드는 데에 있어서는 오로지 바른 재목을 고를 뿐. 어찌 같은 실수를
다시 하겠는가?”
나이가 많다 뿐이지 이병원이 바른 재목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심스러웠
다. 그러나 노련한 두 대신은 김조순의 뜻을 알아들었다.
김조순은, 어린 꼭두각시를 내세워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의 충의와 절개로 그렇게 하지 않은 충신이 된다. 늙은 꼭두각시는 어린 꼭두
각시에 비해 한 가지 장점이 있는데 사람들이 얼른 보고 바지사장이라는 생각
을 잘 못 한다는 것이다.
권력으로의 유혹이라는 사감을 버리고 왕실을 받들어 도리를 바로 세우는 그
가 아니라면 누구를 충신이라 하겠는가. 충신 김조순 및 그와 뜻을 같이하는
충신 동지들은 그래서 이병원의 집 대문을 들어서는 데에 전혀 부끄러움 없이
당당했다.
이병원은 갑자기 찾아온 김조순과 백관들을 보고 자신이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다.
원래 역사에서도 아들 시켜 뭐 자리 하나만 달라고 계속 청탁했던 – 나중에
귀찮아서 통정대부(通政大夫) 하나 주기는 한다 – 이 소시민에게는 좀 과도한
자극이었다.
거창한 환상이 19세기의 몰락 종친을 사로잡았다. 21세기의 건전했던 정치인
이나 사회 명사들이 신문에서 잠룡(潛龍) 칭호 붙은 자신의 이름 보자마자 빠
져드는 그런 종류의 환상이었다.
이병원은 이 휘몰아치는 난세를 격동적으로 헤쳐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순식
간에 그려냈다. 김조순이 이병원 앞에 절했을 무렵엔 이미 새 조정과 종실의
질서 개편 계획까지 완성되어 있었다.
허나 이를 이병원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잘못은 그를 부추긴 김조순에
게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조순은 이병원에게 공손히 말했다.
“지금 종통(宗統)이 흔들리고 사직이 위태로운 일은 공(公)께서도 아실 것입
니다. 저희가 나라의 신료로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분연히 일어섰는데,
한스럽게도 의기만 가졌을 뿐 천성이 재주 없고 용렬하여 비록 주상 전하는
다시 모시지 못하였으나 역란을 일으킨 폭도들은 진압하였습니다.”
김조순은 그 말로 자신의 뒤에 어떤 군세가 있는지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그
러나 이병원은 그것에 주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본래 종실과 외척이 나라의 일에 간여하면 군주의 근본이 흔들리게 되므로
이 사람은 조용히 글이나 읽으며 지냈던 것인데, 영돈녕부사께서 찾아 주신다
면야 이 한미한 사람도 마땅히 뜻을 받들지 않을 수는 없겠소이다.”
김조순은 벌써부터 김칫국을 독째로 들이마시느냐고 빈정거리지는 않았다. 그
러기에는 지금 그가 너무 분주했고 내외의 압력이 많았다. 이런 잔챙이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지금 악독한 도적들이 감히 내명부에까지 손을 대어, 종실에 어른이 계시지
않고 옥새와 부절이 간 데를 모릅니다. 이런 때에 저희가 무언가 주창하게 되
면 뭇 선비들의 의심을 받게 됩니다.”
“소인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바가 제멋대로이니 실로 그럴 만도 하겠군요. 이
사람이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겠소?”
이병원을 만난 지 일각도 되지 않았지만 김조순은 그의 모든 것을 간파했다.
이병원의 모든 대답이 그의 예상대로였다.
갑자기 병화에 휘말린 두려움. 뭔가 자신이 차기 왕으로 추대되지 않을까 하
는 기대. 그 와중에 권신이 될 것이 분명한 김조순의 세력을 어떻게 꺾을 것
인가 하는 유치한 계산까지 전부 김조순이 원하던 바였다.
그래서 김조순은 이병원이 알아듣기 쉽게 말했다.
“당장 도적들이 인수와 문서를 겁 없이 위조하여 군영 3개가 서울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공께서 종친의 뜻을 모아 아래위의 명을 한가지로 바뤄
주시면 모든 사람이 안심할 것입니다.”
이병원 역시 시와 문장에는 그럭저럭 능하다는 평을 듣는 자였다. 그는 김조
순이 자신을 일컬어 단 한 번도 신(臣)이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눈치챘다.
김조순이 신이라 칭하며 엎드릴 때는, 지금 서울로 돌진하고 있는 수어, 총
융, 어영청의 3군영을 이병원이 멈추고 나서다.
여기서 이병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전주이씨 성을 타고 태어났다는 그 하나
뿐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이병원이라는 인간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노론 사
림을 보고 각자 삼갈 테니까.
그러나 이병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그리 부정적으로 살면 될
일도 안 된다.
본래 왕실의 어른은커녕 왕실의 일원조차 아닌 이병원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윗줄로 주장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이병원의 항렬이 제일 높아서라기보다는 김조순이 이병원을 찾아왔기 때문이
다. 평민 취급인 종친들 사이에 자기들끼리 항렬을 매긴다 한들, 차기 왕을
승인할 적법한 권한을 가진 대비에 비하면 차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비는 지금 없다.
이병원은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던 정치적 열망이 꿈틀대는 것을 진감했다.
하기야 근간에 얻어듣기로는 평양에서 인민대회인가 뭔가 해서 백성들까지 고
을 정사에 이러쿵저러쿵한다는데 고귀한 혈통의 자신이 가만있어서야 되겠는
가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역시 그냥 평민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떠오르
지 않았다.
인민 누구나 정사에 참여하자는 것이 인민대회의 뜻이었다. 그러한 표어는 엉
뚱하게도 서울에서도 실현되고 있었다.
귀족이라고 딱히 인민 아니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시준과 조제프 푸셰마저도
거기까지는 고려가 미치지 않았다. 시준은 21세기의 ‘그 단어’에 대한 인식
때문이고, 푸셰는 귀족이 살아 있어도 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해서였다.
존엄한 국왕이 내시의 옷을 입는 치욕을 감수했건만 사실 그 효과는 미미했
다. 노론은 그냥 왕 버리고 도성에서 새 정부를 꾸리는 데 열심이었다. 장본
인 이공은 그걸 아직 모른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김조순이 이병원의 이름을 빌려 보낸 격문이 삼군영에 도달하고, 안 그래도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아 반쯤은 억지로 행군하던 장수들이 일단 생각 좀
해 보자며 진격을 멈췄을 때 이공은 근문소의 상소를 받게 되었다.
작가의 말
1. 실제로 영변 대도호부에는 철옹관이라는 관소가 있었습니다. 대도호부의 성격을 드러내 준다고 할까요. 양동이 여기에서는 군관으로 나왔는데, 원래 역사에서는 그냥 병사입니다. 다만 저 근성 가득한 일화는 사실이라 나중에 포상도 받았습니다. 딱히 군공은 없고(오히려 포로로 잡힘) 그냥 칼 맞고서도 절개를 꺾지 않았다는 것뿐이지만, 조선 왕조는 이런 것도 일일이 찾아내어 포폄하는 나라였습니다.
2. 남연군 이구는 그 오페르트가 도굴한 남연군 묘소의 주인 맞습니다. 지금은 김유근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고.. 작중 나온 대로 이구라고 불릴 일은 이제 없어 보이는군요.
25. 반역자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