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79화 (79/284)

79화

23. 열국(列國)은 진창에 발을 빠치고(3)

평안 감사는 평안도 전체의 수령이기도 하지만, 평양의 수령이기도 하다.

관찰사의 직무가 직접 행정이 아닌 감사와 지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평안 감

사가 정말 ‘다스리는’ 곳은 평양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 평안 감사 이만수는 좀 더 멀리 보기 위해 얼굴을 소금에 씻고 목

만 장대 꼭대기에 걸어 둔 채 임지도 아닌 경기도를 순력하고 있는 처지이므

로 평양을 다스리기 곤란하다.

새 평안 감사 임명도 여전히 안 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전임 평안 감사가 왜 그런 꼴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있기 전에 얼렁뚱땅 새 감사를 임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건 노론 시파가 간신 놀이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후임 평안 감사나 평안 병사는 반드시 ‘감사를 해한 도적’을 토벌하거나 적어

도 수사하는 임무를 공식적으로 띤 채 내려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왕이 이

만수를 죽였다고 실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왕은 임명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김조순 입장에서도 평안도가 치안

공백 상태일수록 좋은 일이므로 신하들도 역시 임명을 주청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조선 제2의 도시 평양은 지금 엉뚱하게도 상놈 하나의 손

아귀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서도상고총협동회 회장 정시준은 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에 사람들을 모아 놓

고 말했다.

“지금 평양을 다스려야 할 감사가 악독한 홍경래군의 손에 참살당하였소. 우

선 평양 근문소에서 통(統)이며 면리(面里)마다 범죄를 단속하고 사람들을 안

심시키다가 나라에서 수령을 보내 주면 그때 삼가 아뢰고 물어 처결하도록 합

시다.”

시준은 홍경래군에 잠입시킨 첩자를 통해 지유의 신변 안전을 확인했다. 얘기

를 들어 보니 그들에게만 은근슬쩍 군량이 더 지급되는 등 우대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 무리수이기는 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시준은 그 첩자에게 자기

글도 주어 들여보냈다. 괜히 반항하거나 도망치다가 해를 입지 말고 얌전히

있으면 반드시 구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시준은 초조해하면서도 애써서 자신을 다스릴 수 있었다. 시준은 지유

의 일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했다.

“협동회 무력위원회(武力委員會)의 위원장(委員長)은 여기 계신 만상 차(車)

대방께서 맡아 주실 것이오. 의주와 용천, 가산, 철산 등지의 모든 위원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었다는 것은 여기의 고명하신 어른들 대부분이 아시는 바요.”

대도시에 와서 출세한 차형기는 진중하면서도 거드름이 좀 섞여 있는 동작으

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형기는 이제 깡패집단 두목이 아니라 평양과 평안도 전역의 민병대를 통솔

하는 각 지역 위원들의 대표자이다. 홍총각 역시 오죽당주 대리(烏竹黨主代

理)라는 직함 하나 받아 집에 면을 세웠다.

그 총원은 1,100여 명에 달하며, 장부와 실제 수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관군보

다 훨씬 우월했다. 지금 조선에서는 홍경래군만이 보유한 영국 야포에다가 홍

경래조차 수입에 실패한 전력들도 여러 가지 갖추고 있었다.

시준은 원래 군사위원회(軍事委員會)라고 명하려 했다. 허나 나라의 관군이

아닌 군사는 도적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는 김창시의 건의에 의해 이런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어째 한층 더 도적 같아 보이는 이름이긴 했지만 사람들은 무력위원회도 좋아

했다.

이 무력위원회는 협동회나 근문소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가장 높은 지위라고

는 할 수 없다. 이것저것 떳떳해 보이는 간판 걸었다 한들 이들은 어디까지나

상인이 대부분이었으므로, 협동회의 이익 추구와 물자 공급을 책임지는 평준

위원회(平準委員會)가 가장 수위였다.

그리고 곽산 사람 김창시가 그 평준위원회의 수장이었다. ‘평준’이라는 말을

써 자기들은 어디까지나 민생 안정과 물가 조절을 위해 봉사한다는 인상을 준

것도 그였다.

원래 역사에서 홍경래의 참모로 활약했던 사람답게 김창시는 평안도 장사치들

중 정말 귀한 인텔리 계층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시준의 입장상 고마운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평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한 김창시가 발언했다.

“이제 틀거지가 대강 잡혀 가니 서도의 인민들이 놀란 것도 조금이나마 가라

앉을 듯합니다. 마침 무력위원회 건으로 근문소 정치국(政治局) 위원들을 모

신 김에 본 위원이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정치국이란 협동회나 근문소의 여러 핵심 인물들이 모인 의사 결정기구였다.

협동회에는 상인들밖에 없지만 근문소에는 유생이나 관속, 아전도 들어가 있

기 때문에 시준은 실무적인 일에 협동회를 쓰고 표면적인 일에 근문소를 동원

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겸직해 소속되어 있는 무슨무슨 위원장이며 고위 대표

들이 모여 논의할 기구가 필요했다. 근문소가 반관(半官)기관이라 마음 편하

게 정치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물론 시준이 갑자기 민족의 태양이 되고 싶어진 건 아니다.

시준 역시 고심해 보았다. 그러나 혼란한 사회상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대한민

국의 정치 체제를 조선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무리가 많았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국

가체제는 시민들이 21세기 선진국의 시민윤리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결국 시준은 자기가 알고 있는 정치 체제 내에서 가장 현 조선과 가까운 것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시준이 조선에 처음 와서 생각한 대로, 현대 국가 중

19세기 조선과 가장 가까운 나라는 북한이다.

어쨌든 표면상으로는 인민의 대표로 지역별, 분야별 기구를 구성하며 또 그

대표자들이 모여 의사를 결정하는 체제는 지역과 가업에서 보통 평생 떨어지

지 않는 조선 사람에게 잘 맞았다.

다만 시준의 체제는 공산주의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 그의 지지세력은 상인

부르주아 계층과 하위 인텔리들이지, 농민이라거나 지금 조선에는 있지도 않

은 도시 노동자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프랑스 혁명정부와 더 비슷할 것이다. 그때 지롱드니 자코뱅이

니 하는 것들이 있었듯이, 지금 정치국 내에서도 시준이나 차형기로 대표되는

소위 ‘의주파’와 김창시로 대표되는 ‘신흥파’가 슬슬 꼴을 갖추는 중이었다.

허나 아직 대립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시준도 동료 위원장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 말했다.

“존경하는 위원장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려 하십니까?”

“개성 애들이…… 크흠. 송상에서 사람을 보냈소이다. 본 위원이 관할하는 평준

위원회에 개성 대표를 보내고 싶다고 하오.”

평양 근문소가 생긴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이할 정도로

세련된 제안이었다. 시준은 이 시대 사람들이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를 보고

잠깐 놀랐다가 그 이유를 추론했다.

“홍경래가 경기도까지 넘어간 모양이군요.”

“아마 그것 때문이겠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정일 게요.”

시준으로서는 불감청고소원이었다. 송상이 홍경래군에게 굴복하여 붙어버리는

최악의 경우도 상정은 해 두었지만, 다행히 송상은 장시영 등 여러 명이 평안

도에서 타죽은 원한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장사꾼은 좋은 거래라고 덥석 받아들이면 안 되는 법. 시준은 마땅찮

다는 표정을 과장되게 지어 보이며 물었다.

“대가는 무엇입니까?”

김창시도 자기랑 같은 생각일 것을 알기에 나온 물음이었다. 그 생각대로 서

상(西商, 서도상고총협동회)이 송상과 ‘동맹하여 주는’ 대신 받아올 대가를

미리 협상해 두었던 김창시는 자랑스럽게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

“삼남의 장사꾼들과 인맥을 주선해 주겠다 하오. 대신 각도의 대표는 송상이

추천하는 인사가 위원이 되는 것에 동의해 달라는 말이었소.”

시준을 포함해 몇몇 사세에 민감한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이건 대단한 일이었다.

송상은 지금 전국구의 수위를 겸허하게 서상으로 양보하는 대신, 남부의 지배

권은 자기들이 여전히 영유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송상답지 않게 숙이고 들어온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서상이 군대를 가지고 있

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정시준의 무력을 전혀 모를지언정 송상이 모를 수는

없다.

시준은 이 굴러들어온 행운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짐짓 선심

쓰는 척 말했다.

“좋소. 정치국에도 한 자리 비워 두지요. 마침 송상 박광유가 나와 ‘친분’이

있습니다. 선죽교에서 열일곱 명을 때려눕혔다는 호걸이니 다른 사람들의 존

경을 받을 만할 거요.”

옛날에 좀 때려 본 만만한 녀석을 끌어들여 송상을 조종하겠다는 얘기였다.

시준은 지금 송상이 꼭 필요했다.

이 모든 일의 시초인 영국인의 도래는 용천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지

금 사달이 터진 곳은 의주이며, 그것을 일으킨 홍경래의 본거지는 가산이다.

또한 평안 감사가 참수당한 대형 사건이 일어난 곳은 평양이다.

모두 평안도다. 따라서 관계자 모두는 평안도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평안도를 계몽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던 국왕 이공은 물론이고, 김

조순과 조정마저 들끓는 듯한 서도의 난리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들

이 추가로 신경 쓰는 곳은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서울 정도다.

하지만 평안도는 조선의 중심지가 아니다. 이견의 여지 없이 정치적 중심지인

서울 또한 호구와 농업 생산량으로 따지면 핵심부라 할 수 없다.

조선의 부와 인구,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가장 강력한 토호 세력은 북

부가 아니라 남부에 집중되어 있다.

삼남이야말로 농업국가 조선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핵심부는 대자연과 관리

들의 경쟁적 착취로 초토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선동과 날조가 잘 먹히지.’

시준은 이공이 보고 있는 국가 경영 전략은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공무원과 상인의 경험에 힘입어 ‘아랫사람들이 보는’ 국가를 잘 알

고 있다.

지금까지 시준은 홍경래를 반역자로 몰아 평안도를 규합했다. 허나 그건 장기

적으로는 위태로운 방식이다. 왕의 보증이 쉽게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왕의 보증 자체를 거짓말로 만들어 주면 된다.

어차피 이공의 보증은 그게 무엇이건 문서로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여기가

유럽이라면야 군주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친정군을 이끌며 홍경래에게 합류

한다든가 하는 인상적 퍼포먼스를 보여줘 의심을 종식시킬 수 있겠으나, 조선

에서는 어림도 없다.

따라서 송상을 기반으로 한 연락망을 시준이 장악한다면 왕이 삼남에서 다른

근왕병을 소환하는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시준이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차단이 아니라 혼란이었다. 이 시대의 처참한

정보 신뢰성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사건의 진원지인 평양에서도 이 정도인데,

멀리 있는 삼남은 말할 것도 없다.

상인들 전통의 방식대로 – 절대 어느 공화국의 방식이 아니다 – 나무패를 들

어 송방 건에 찬성을 표시한 정치국 위원들은 다음 건으로 넘어갔다.

그 어떤 위원회의 위원장도 맡고 있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이

정치국의 주재자로 인식되는 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래 수령이 비명횡사한 삼화부(三和府, 남포)에도 근문소가 세워졌는데, 그

곳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삼화부사 김영(金煐)이 죽은 이유는 그가 너무 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

다. 김영은 근문소니 서상이니 하는 근본도 모르는 무리가 고을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나라의 일인 진휼을 흐트러뜨리는 것에 대단히 높은 경계심을 가지

고 있었다.

서상은 삼화부에 출입이 금지되고, 몇 명은 끌려가서 매를 맞기도 했다. 안

받겠다는 곳을 굳이 줄 만큼 쌀이 썩어나는 것도 아니라서 시준은 미련 없이

수레를 돌렸다.

그리고 삼화부민 사이에는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흉년에다가 겨울이라 지금 다 굶어 죽게 생겼는데, 의주에서 실어 보낸 쌀과

감자를 수령이 쫓아냈다는구먼!”

“나도 들었네. 장사치들이 더럽다 한들 쌀이 더러울 건 무어야. 게다가 지금

나라에서 새로 영이 안 내려왔답시고 창고도 꽁꽁 닫아걸고 있지 않은가?”

“이틈에 자기들이 다 빼돌려 처먹을 속셈인 게지! 아마 근문소 사람들 매질한

것도 수령에게 바치는 게 소홀했다는 죄목이 아니겠는가?”

이때 김영이 마침 미수 환곡의 징수를 다시 시작한 건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환곡이 아무리 중요한 업무라고 하지만 눈치 좀 봐 가며 했어야 했다.

눈독 들이던 집 딸을 환곡 대신 끌고 간다며 들이닥쳤던 호장이, 그 오라비가

휘두른 홍두깨에 머리가 깨져 죽은 사건을 시작으로 삼화부민들은 봉기했다.

직접적 계기는 아전의 수탈이었지만 의외로 삼화부 아전들도 상당수 참여했

다. 꼭 자기 머리도 깨질까 봐 두려워서 동조했던 것만은 아니었고, 그들 역

시 근문소와 결탁해서 잘 먹고 잘사는 다른 동네 향임들이 부러워서였다.

그리고 평안도와 함경도 향임들은 원래 수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온 도적놈’ 삼화부사 김영은 끝까지 동헌에 높이 앉아 백성들을 꾸짖다가 멱

살 잡혀 인두로 노(奴)자 새겨지고 멍석에 말려 짓밟히는 등 온갖 굴욕을 당했다.

보통 조선의 민중봉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조선 사람들이 나라와 관청을 존중

하는 태도는 생각보다 철저하다. 북청도 인두질만 좀 하고 수령을 풀어주었으

며,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황해도 곡산에서도 수령을 흠씬 패고 관모를

빼앗아 옆 고을에 보내는 선에서 그쳤다.

그런데 김영은 정신적 맷집 하나는 강인한 선비였지만 육체적 맷집이 그에 따

라주지를 못했다.

어디를 어떻게 잘못 쳤는지 숨을 안 쉬는 수령을 보고 사람들은 아연실색했

다. 서로 오가던 눈짓은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되고 그건 곧 고성과 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삼화부 사람들은 이것을 아예 없던 일로 만들었다. 아전들의 협의하에,

삼화부사 김영은 들이닥친 사람들에 의해 놀라 기혈이 역류하여 쓰러져 죽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물론 그들이 그리 주장해 봐야 믿어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삼화부민들은 자

기편 들어줄 사람들을 애타게 찾았다.

예전에 프랑스인을 맞이한 양이별장 백인철을 도와 통역을 맡았던 김희용은

여전히 평안도에 머무는 중이었고, 그때는 마침 삼화부에 있었다. 김희용은

그간 삼화부민들이 자신에게 베푼 인정을 생각해서 기꺼이 평양으로 가는 사

절 역할을 자임했다.

그런 전차로 시준은 삼화부민을 근문소의 품 안에 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령의 횡사를 고하는 파발은 중간에서 시준이 전부 차단했다. 딱히 잡아 죽

이기까지 한 건 아니고, 옷을 벗겨다가 닭피 좀 뿌려 산길에 던져 놓으면 만

사 끝이었다.

평안도 호랑이는 원래 속세의 악명이 높아지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고고한 풍모를 갖추었다. 그래서 시준도 안심하고 누명을 덮어씌웠다.

영어에 능통하고 머리 잘 돌아가는 김희용도 근문소 서리 자리 하나 안겨서

정착시켰다. 위원까지는 아니고 서리라서 뒤편에 배석하여 있던 김희용이 일

어나서 말했다.

“회장께서 분부하신 대로 장자도의 영길리국 사람들에게 삼화현으로 오라는

통지를 하였소이다. 아마 지금쯤 출발한 지 꽤 되었을 겁니다.”

장자도는, 바로 그래서 조선이 개항한 것이긴 하지만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항구가 아니다. 범죄자의 도피처로 오래 사용되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

듯이 사람이 모여 살기에는 여러모로 부적당하고 큰 시설도 설치하기 힘들었다.

그런 건 평양의 외항인 삼화부가 적당하다. 지금 시준 세력의 중심지가 의주

에서 평양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중이기도 했고, 영국 해적놈들은 국경지대에

놔두면 반드시 청과 마찰을 일으킬 것이었기 때문에 이는 일석삼조의 계책이었다.

항만 시설 같은 건 아쉬운 처지인 영국인들이 알아서 얼기설기 만들어 줄 것

이다. 모든 안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혹시 영국 해적놈들이 평양성을 탈취할까 봐 걱정된 시준이 무력위원장 차형

기에게 평양성의 성가퀴와 포를 점검하라 지시하는 것으로 정치국 회의는 끝났다.

회의를 해산하고 다른 여러 사무에 착수한 시준은 고민에 빠졌다. 어떤 시점

에 어떤 수작을 부려 삼화부 항만, 더 나아가 영국 해군을 날로 빼앗을 수 있

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영국 해군이 장자도에서 남포로 이동했다고 해서 장자도가 버려진 게 아니다.

장자도에는 여전히 상관이 있었으며, 제한적이지만 무역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장자도에 남아 있던 윌리엄 자딘은 조선 배가 다가오자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장자도는 미관 첨사의 관할로 조선 수군의 순찰 영역이므로 있어도 이상하지

않기는 하다. 그러나 그건 개항 이전까지만 그렇고, 조약에 따라 여기는 군대

가 주둔할 수 없으므로 조선 수군이 올 수 없다.

바로 어제까지 여기에 영국 해군 함대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윌리엄 자딘 역시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원래 사람은 자기 일에는 관대하고 자딘 역시 사

람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정부가 해군 없는 틈에 여기를 탈취하려는 건 아니겠지?”

“중국 황제의 명령으로?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군대로는 보이지 않는군. 대포

가 있는 건 기함뿐이고 뒤따라오는 배는 둘 다 비무장 같은데, 조선 정부가

상선을 써서 무역하기로 결정했나?”

“그럴지도 모르지. 하긴 그 섬…… 강화도에서 여기로 오려면 배가 제일 빠르지

않겠어?”

동인도 회사 상인들은 상식적으로 타당한 예측을 주고받으며 그 배가 들어오

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기가 아무리 조선이라도 그 상식은 맞았다. 확실

히, 그 배에 타고 있는 것은 조선 수군이 아니었다.

그것은 프랑스 해군이었다.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300명 가까운 대부대가 검을 차고 질

서정연하게 도열하는 광경은 장자도의 평화로운 상인들을 얼어붙게 했다.

동인도 회사 직원들은 너네가 왜 거기서 나오냐는 간단한 질문을 장황하고도

다양한 수단으로 표현했다. 고함치고 악쓰고 욕하는 소리가 장자도에 들끓었

다. 심지어 재빨리 뒤로 돌아 도망치는 자도 나왔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할리버튼 선장이 윌리엄 자딘에게 물었다.

“당신 프랑스어 할 줄 아시오?”

자딘은 할리버튼의 눈을 쳐다보고 그의 진의를 이해했다. 앞으로도 너희 클라

이언트인 동인도 회사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으면 네가 좀 나서 달라는 소

리였다. 자딘은 하청업체의 서러움을 눈물로 삼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지휘자가 누군지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자딘은 가장 화려한 옷차

림의 노인을 향해 걸어가서, 그의 호위병들이 칼을 뽑아 들지는 않을 거리에

멈춰 선 다음 조심스레 말했다.

“어, 저…… 저는 영국 동인도 회사와 일하는 상인 윌리엄 자딘입니다. 귀하

[Monsieur]께서는 대체 무슨 용건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 중이라고 하지만 이곳은 비무장 상인들만 있는 합법 개항장입니다.”

“나도 아네. 나도 자네들에게 위해를 끼치거나 이곳을 점령하려고 온 것은 아

니니 안심하게. 자네들 영국인처럼 이곳에 ‘표류’한 자로 간주해 주었으면 좋

겠군.”

공식 문서만 따지면 평안도 근해는 악마의 바다임이 분명했다. 이토록 많은

배가 떠밀려오니 말이다. 하지만 영국인답게 비꼬아 주기는 좀 위험했다.

지금 저 배에서는 아무리 봐도 조선 관리 같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들은 밧줄에 묶이지만 않았다 뿐 포로의 모든 징후를 보여주며 겁에 질려 내

리는 중이었다. 자딘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용건은 무엇입니까?”

노인은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그가 지금 뭐라고 불리는지 모르겠군. 군사정부의 통령? 지역의 후원자?

왕의 비밀 감찰관? 아무튼 이 일대 상인의 대표자이며 조선 외무성 차관(정약

용)의 제자인 시준이라는 청년을 불러와 줬으면 좋겠는데.”

자딘은 물론 평양 근문소의 종횡무진을 모른다. 이 노인이 서울에서 그간 악

착같이 그러모은 사적 및 공적 서류를 통해 조선 조정에서 정약용 다음으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하지만 노인이 누굴 말하는지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자딘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나의 친우입니다. 원하신다면 자리를 마련해 드리죠. 그런데 성함을 아

직 못 들었군요.”

“나는 대프랑스 제국 오트란토 공작 조제프 푸셰다.”

작가의 말

1. 이쯤에서 간단히 북한의 정치체제에 대해 설명해 보죠. 작중에도 언급되었고, 앞으로도 필요한 곳에는 언급될 예정이니 재미로 보시면 됩니다.

북한의 정치는 17촌까지 뒤져서 퓨어한 혈통만을 임명한다는 소문의(공식적 형식은 당 대회 선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약 250명의 귀족 정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당의 직위를 보통 몇 개 겸임으로 차지하는데,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엄연히 다르므로 이들은 정부의 직위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드는 게 빠르겠군요. 군사분야로 말하면, (당연히 당 중앙위원회 위원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본업은 군 총정치국과 인민군 내부의 당 위원회의 관리입니다. 동시에 총정치국장은 당 군사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하며, 대부분의 경우 조선노동당과 북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조선노동당 정치국'의 위원 또는 후보위원입니다. 그리고 당이 아니라 정부분야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 국무위원회'의 위원이 되기도 합니다.

김정은이 남한이나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대화할 때는 '국무위원회(이전에는 국방위원회였죠) 위원장'이고, 중국이나 베트남 공산당과 뭐 주고받을 때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중국 정부와 얘기할 때는 또 국무위원회 위원장이고요.

이런 체제를 취하는 이유는... 북한도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집중제에 대한 설명은 너무 길어지니 넘어가고... 대표들이 모여 또 대표를 선출하는 식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면 이런 각종 '위원회'가 필수죠.

비슷하게, 작중에서 차형기는 의주 만상의 민병대를 통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평안도 전역의 민병대 두령 중 하나로서, 그들 모두의 의견을 대표하는 모임(위원회)의 장(위원장)이 된 것이죠.

그리고 작중에서 시준이 이 비슷한 루트로 가는 건 북한을 따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체제가 어디까지나 백성의 자발적 협동조직이지 정부 내의 또 다른 정부가 아님을 어필하기 위한 것입니다. 삐끗했다가는 토벌군 출동이니까요.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정치 체제에서의 겸직 자체는 딱히 북한이 특수해서가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각의 장관은 기본적으로 국무회의의 당연직 위원이며, 여러 법에 따라 설치되는 위원회 및 협의회(예를 들어 북한 관련이라면,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의 위원장이고 각부처의 차관 및 국장급 인사들이 위원을 겸직합니다.)에 정부 인사가 참여하지요. 다만 그쪽 동네는 정부 분권이 전혀 의미 없을 정도의 집중적 독재정치를 감추려는 수단뿐이라는 게 다르죠.

23. 열국(列國)은 진창에 발을 빠치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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