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77화 (77/284)

77화

23. 열국(列國)은 진창에 발을 빠치고(1)

강철군주 이공의 실수는 독보적이거나 경이적인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공은 다른 사람은 멍청하고 자기만 똑똑하다고 생각

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모든 일이 꼬였다.

이공을 위한 변명도 없지는 않다. 왕이라서 문제지, 그 나이에 내가 제일 잘

났다는 사고방식 정도야 전혀 유별나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공이 꿈꾸던 것이 계몽군주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계몽이란 무지함을 깨우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계몽자는 계몽 대

상자보다 현명해야 한다.

신민 전체를 계몽하는 조선의 프리드리히 이공이라면 신민 전체보다 명석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따라서 이공은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쯤 의심을 해 봤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공이 김조순을 쳐내려 했던 이유는 김조순이 권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

신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신하를 말한다.

권력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채롭겠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권력의

표면적 양태는 바로 많은 사람들이 그자의 말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제 이강회는 본격적으로 김조순 옆에 붙어 오죽당의 연락망을 부리기 시작

했다. 그래서 김조순은 자기편 신하들에 대한 영향력을 여전히 보유할 수 있었다.

‘여러분은 함부로 벼슬을 버리고 달아나 위로 군왕을 배반하고 아래로 민생을

피폐케 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직무에 매진하도록 하라.’

혹시 유출될까 봐 정론처럼 써서 보낸 말의 의미는 한 꺼풀 뒤에 숨겨져 있었다.

사표 써 던지고 떠난 노론 시파의 강경파들은 지금 대부분이 왕의 명에 의해

체포되어 옥고를 겪고 있다. 이 시대에 직업 선택의 자유나 노동3권 따위 없

다는 사실을 깜박 한 대가는 컸다.

이건 김조순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김조순의 입장에서는 자기편 신하들

이 어느 정도 정부 권력을 나눠 갖고 있어야 후일을 도모하기 쉽다.

김조순이 극비 지시를 보내기로 택한 자들인 만큼, 이 문서의 수신자들은 김

조순의 뜻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리고 노론 시파 전체에 비밀히 전달했다.

물론 이공에게도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이요헌은 열성적으로 수

경포도청을 지휘해 신하들에 대한 유례없는 감시체제를 갖추었기에 그들은 이

전처럼 어디 모인다거나 하는 일은 꿈도 못 꾸었다.

때로는 숙직 중에 몰래 무협지 읽는 척하며 속삭이고, 때로는 점심 굶는 동료

신하에게 – 흉년이라 선반(宣飯, 관리들의 점심 급식) 끊긴 지 오래였다 – 밥

사주면서, 대부분이 눈짓과 손짓으로 점철된 김조순의 ‘지시’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간 대놓고 태업하던 신하들은 하나둘씩 업무에 복귀하기 시작했다.

이공이 급히 등용한 임용 대기자들은 솔직히 너무 능력이 없었다. 그들은 평

소 무능한 선배들이 자리나 차지한다고 욕하고 있었지만, 원래 게임 니들이

해 보면 잘 안 되는 법이다. 인수인계를 받은 게 하나도 없다는 그들의 항변

은 그야말로 변명일 뿐이었다.

이공 역시 뭔가 찜찜하기는 했으나, 곧 좋은 설명을 찾아냈다.

김조순이 실종된 지도 며칠이나 지났으니 이제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신

하들이 바른길로 복귀한 것이다. 이공은 자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론 이공은 신하들이 이제 와서 돌아와 봐야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당

장 홍경래의 근왕군만 도성에 들어오면 기세와 병력의 우위를 무기로 아예 육

조거리를 피바다로 만들 각오까지 마쳤다.

이공은 우자(愚者)들이 그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며 혼자 희희낙락했다.

마음이 좀 편해지니 일도 잘 되었다. 역시 보람찬 직장 생활을 위해서는 긍정

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이공은 그간 나라의 큰일 때문에 좀 미뤄 두었던 여러 사안을 검토했다. 아직

김조순을 잡아들이라 호령하기에는 이르다는 사실 정도야 이공도 알았고, 훈

련도감에 손대기도 껄끄러웠다.

홍경래를 기다리는 사이 잠깐 나라를 추스른 다음 더욱 명분을 확보하여 쳐야

했다. 어차피 신하들을 쓸어내고 나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나라인 만큼 그

냥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래서 이공은 자못 민생을 살피는 임금인 척하며 지시했다.

“수원(水原)과 광주부(廣州府) 일대의 진휼을 일전에 명하였는데, 어떻게 시

행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피라.”

그리고 노론 시파 신료들은 바로 이때, 김조순을 포함한 누구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모두가 알고 있는 ‘지시’를 실행했다. 김조순에게 서신을 가

장 처음 받은 자인 이시수가 공손히 나와 말했다.

“이미 성상의 용단으로 기내의 남쪽에는 굶주리는 자가 없습니다. 고을에서

아뢰는 바는 한가지로 백성들이 모두 나라의 은혜에 감복하여 노래하고 춤추

었다는 말뿐입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아뢰겠는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단지 노래 가사가

죄다 욕설이고 춤 이름이 죽창무(竹槍舞)일 뿐이다.

허나 기존에 경기도도 관할하던 좌우 포도청을 수경포도청인지 뭔지 만든다고

이미 다 없애버린 왕이 그걸 알 도리는 없었다. 다른 신하들도 여기저기서 이

시수의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특이한 일까지는 아니다. 원래 이 시대 보고체계란 게 그랬다. 한 예

닐곱 사람이 귀 막고 차례대로 다음 사람에게 소리 지른 다음, 마지막 인간더

러 첫 번째 인간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맞히라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내는 몇 안 되는 군주가 성군이라 불린 것이다.

그리고 이공이 성군이었으면 애초에 이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 임금이 성군

이 아닌데 신하가 충신일 수 없는 법. 신하들은 군주의 수준에 맞춰 희대의

간신이 되어 주기로 결심했다.

간신의 장점은 군주를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이공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런가? 아, 그리하다면 조금 여유가 있겠구나. 근래 해관(담당부서)의 관원

들이 게을러서 어영청에 제때 탄약이며 궁시, 선박을 대지 못하였는데 이제

쌀과 포목을 헐어 내리도록 하라. 군비는 한시도 갖추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배불리 먹은 어영청 군사가 언제 도성에 들어와 자기들을 작살 낼

지 모르는데 신하들이 찬성할 리 없었다. 그러나 이시수는 역시 공손히 대답했다.

“과연 만무일실의 하교를 들으니 어리석고 태만한 신등의 눈이 밝게 떠지는

듯합니다. 그대로 시행하라 전명(傳命)하겠습니다.”

터지기 일보 직전인 도성의 상황 때문에 입경하기가 힘들어서 왕을 도통 못

보고 있던 어영대장 이해우는 틀림없이 왕이 내린 포목과 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해우가 받은 포목이란 이제 영길리포가 많은 평안도에선 돈으로 쳐

주지도 않는다는 추포(麤布, 저품질의 화폐용 천)요, 수령한 쌀이란 태반이

겨와 모래가 섞여 있어 쓸데없이 무겁기만 한 쓰레기 자루였다.

이해우는 어영청을 결속시키기는커녕 폭동을 막기 위해 군관을 둘이나 처형해

야 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의혹마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설마 왕이 자기들을 버리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이해우는 정말 도성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지금 군대를 이

끌고 가면 전쟁이 터지고 혼자 갔다간 어느 눈먼 칼에 찔릴지 몰라서 망설여졌다.

허나 이공은 어영청에서 자신의 은혜에 감격할 거라 확신했다. 그는 수경포도

청을 통해 도성의 사창 및 군자창에서 틀림없이 쌀이 실려 나간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수많은 신하들이 알아서 협력해 문서를 잘 만졌기 때문에 나름대로 첩

보망을 가동했다는 이공조차 속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발달된 관료제가 바

로 지금 그 능력을 궁극적으로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성에서 나간 쌀이 어디로 갔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훈련도감 본영에 있던 이강회는 궐련을 입에 물고 으스대었다.

그의 앞에 오죽당이 실어온 엄청난 쌀이 그대로 쌓여 있으니 어찌 뽐내는 마

음이 들지 않을까마는, 김조순이 보기에는 이자가 정말 사대부가의 자제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돈이 임금에게서 나오지 않는데 훈국(訓局, 훈련도감)을 어찌 임금의 군이라

할 수 있으리오. 병법에 적에게서 취하는 곡식 한 석이 그냥 날라 오는 곡식

스무 석에 비견한다[食敵一鍾 當吾二十鍾, 『손자병법(孫子兵法)』] 하였으니

실질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김조순이 당장 이강회를 매질하지 않은 것은 그 말이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아쉬운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겉보기에는 훈련도감 군사에게 둘러싸인 채 이리 말하는 이강회가 죽으

려고 발악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이들을 먹이고 있는 게 이강회와 오죽당인 만큼 김조순은 오히려 상인들에게

훈국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김조순이 아무리 연락망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공개적으로 활동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 거대한 군사를 먹여 살릴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시준과 이강회는 이것을 오히려 거꾸로 이용했다. 훈련도감의 운영은

사실상 국가 예산이 아니라 자체 사업으로 지탱된다.

이 말은 훈련도감의 수입이 공식과 비공식에 걸쳐 수많은 경로로 분화되어 있

다는 의미다.

세곡 운송을 포함한 그 경로에는 기존에도 경강상인 등 여러 장사꾼이 끼어들

어 있었다. 따라서 오죽당을 통해 결탁한 경상 일부와 작당하여, 관료들이 빼

돌려준 쌀과 포목을 여러 군데로 세탁하여 경희궁으로 다시 들여오는 일쯤은

쉬운 것이었다.

다른 나라라고 돈이 썩어나서 군대를 국비로 지탱한 것은 아니다. 이건 비단

이공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리드리히를 본받는다면 최소한 수도 주

둔군더러 너희 월급 너희가 벌어오라고 하는 희대의 머저리 체제는 서둘러 교

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또 옳은 말이 듣기에는 거슬리는 법.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진 상태인

김조순은 수척한 얼굴에 노기를 담아 보였다. 지금 여기서 ‘적’이니 하는 말

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자네 공은 알겠으나 말을 조심하게. 이제 보니 그 사형에 그 사제가 아닌가?”

하지만 이미 바늘도 팔고 마약도 팔며 서양인들과도 손을 섞어 본 이강회에게

장사치와 동렬이라는 비난 정도는 수치도 아니었다. 어째 사람이 많이 변한

것 같은 이강회는 태연히 대답했다.

“내 명심하도록 하겠소이다. 자, 그건 그렇고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지

금 자칭 근왕군이라 하는 폭도의 무리가 황해도를 넘으려 한다 들었는데, 원

컨대 대감의 가르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비밀한 장소라고는 하지만, 김조순은 자신이 어쩌다가 이렇게 반역을

당당히 논하는 처지에 빠졌는지 알 수 없었다. 김조순은 참담한 기분으로 대

답했다.

“훈국이라 하더라도 금위영과 수경포도청,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면 입경할 어

영청과 총융청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네.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야.”

“병귀신속이라. 질질 끌어서 좋을 건 없을 텐데요.”

“철모르는 소리. 결국 다치는 것은 나라의 군세요. 고단해지는 건 백성들이

야. 자네들이야말로 서울이 다 불타면 어디서 장사를 할 생각인가? 자네 사형

이 닭을 천천히 삶으라 한 뜻을 정작 자네는 잊었는가.”

김조순은 그렇게 이강회의 입을 막아 놓고 천천히 말했다.

“이제 진하사가 곧 입경한다. 근왕군이라 칭한 자들이 사신들을 건드릴 수는

없었겠지. 그러면 조정에서 흐름이 바뀔 테니 싸우지 않고 끝날 수도 있어.

자네는 사형 시준에게 전해 그 자칭 근왕군의 뒤나 잘 끊으라 전하게. 고단해

지면 생각을 다시 하겠지.”

김조순에게 훈련도감은 어디까지나 교착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 정부

전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남공철, 정약용 등 영향력 있는 신료들이 다시 입시하면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청의 분위기를 전해 왕을 평화적으로 굴복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가장 상식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개이기도 했다.

홍경래군이 김유근을 포로로 잡고 있다는 사실도 그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

이다. 그러나 김조순은 이강회가 김유근에 대한 얘기를 한 마디라도 꺼내면,

대의 앞에서 어찌 자식 따위를 돌아볼 수 있겠냐며 크게 꾸짖어 기선을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강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빙긋 웃었다.

“우리 사형에게는 따로 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 반도의 일당은 필시

굶주리고 있겠지요. 남들이 하나를 생각할 때 열을 생각하는 자이니 아마 다

른 계책을 꾸미고 있을 것이오이다. 대감께서도 급히 변화에 응하지 않으시면

나중에는 후회하셔도 소용없을 겝니다.”

김조순은 뭔가 불길한 예감에 오한이 들었다. 이제 사태가 자기 손을 벗어났

음을 느낀 사람의 예감이었다.

홍경래군이 이제 하도 많이 들었다 놨다 해서 너덜너덜해진 교지를 들고 경기

도에 마침내 진입했을 때, 시준은 평안도의 군민을 급히 모아 추격해 내려간

다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는 지금 용천부에 돌아와 있었다.

평양에서의 민병대 조직은 평양 출신 양시위에게 맡겼다. 임상옥의 명도 있는

데다 양시위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치료’해 준 시준의 뜻을

성심성의껏 도왔다. 그 외 서도상고총협동회 산하 여러 소조직들의 구성은 의

주 소상들이 해 주고 있었다.

시준이 한시가 급한 상황에 이렇게 돌아온 이유는 용천부에서 조정에 보낸,

아니, 보내려 했던 급보 때문이었다.

시준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긴 하였지만, 기껏 500명의 폭도와 흉년 정도

로 평안도 전체가 무슨 세기말이 되어버린 건 아니다.

평안도 대부분의 행정 체계는 아직 작동하고 있다. 용천 부사 허명(許溟)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대규모의 영길리 함대가 들어오자 놀라서 조정에 기발을

보냈다.

그리고 그 파발은 홍경래의 격문 살포를 차단하던 시준의 감시망에 걸리게 되

었다.

시준의 눈에야 왕이고 나발이고 뵈는 게 없었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죽인 다음 서류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기

발꾼은 좀 쉬었다 가라며 정중히 평양성 안으로 초대되었다.

평양 인심에 감동한 기발꾼은 사람들이 주는 대로 먹고 마시며 심지어 그 비

싸다는 평안도 담배까지 얻어 피웠다. 조금 후 그는 자신의 임무에 대해 완전

히 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자, 기발꾼이 엄중히 보관하는 서류가 시준의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하룻밤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준은 날이 새자마자 사람들을 닦달하여 업무를 분장한 다음 기랑과

소질개 등 두어 명만 데리고 급히 용천부로 출발했다.

용천 부사는 옛날 영길리와 첫 거래를 텄던 안종후 이후로 근문소 명안에 으

레 이름을 올리는 것이 요사이의 관례가 되었다. 그래서 허명도 어리둥절한

대로 시준을 맞이했다.

얼마 전 의주 부윤 조흥진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시준이 장자도의 영국 대박

들을 해결해 주겠다고 입을 털자 그 맞이는 한층 극진한 것이 되었다. 허명은

마치 지금 생각났다는 듯이 대청국 소신교위에 걸맞은 숙소와 음식을 준비해

주었다.

본래대로라면 장사치에게 외국 배를 문정하는 대사를 맡긴다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겠으나, 시준은 통무아문의 수령 정약용의 측근이고 현재 왕의 시책

은 서양에 대한 개방이다. 그래서 허명도 관속 몇을 딸려 형식상 시준을 수행

원 삼는 것으로 처리하고 안심했다.

이러한 관의 전폭적인 지지 덕에, 시준은 평양성을 떠난 지 사흘도 지나지 않

아 로드 암허스트와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조약 위반급 대함대를 끌고 온 것에 비해 영국의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청군의 대대적 광저우 침공이 시작되자, 암허스트의 패기 있는 선언이 패기

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했음이 증명되었다. 해군이 없는 청이 영국을 상

대할 수 없는 만큼 육군이 없는 영국도 청을 어찌해 볼 수가 없다.

사실 암허스트의 계획은 사실 중국 거점이 털리면 조선에 새살림 차리면 된다

는 수준의 얘기밖에 안 된다.

그래서 동인도 회사와 로드 암허스트는 왐포아의 모든 물자와 사람을 쓸어다

가 야반도주했다. 중간의 베트남 해군이 너무나 위협적이었기에 자바까지 가

지는 못하고 조선으로 온 것이다. 거의 도박이었지만 다행히 ‘프랑스군의 전

열함 함대’는 없었다.

그러고는 작은 배는 장자도에 정박, 큰 배는 근해에 뜬 채 대규모의 식량 거

래를 요구하는 상태였다.

게다가 돈이 그다지 충분하지 못했는지 물과 곡식 같은 몇 가지 생필품은 표

류한 배를 구휼하는 조약에 따라서 무상으로 줄 것을 요청했다. 과연 영국 놈

들은 명불허전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시준은 장자도의 상관에서 로드 암허스트를 만났다.

역사 매니아가 아닌 현대 일반 한국인에게 로드 암허스트라는 이름을 말해 주

면 ‘어? 어디서 들어 봤는데.’ 정도 이상의 대답은 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배 이름인지 사람 이름인지조차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시준도 마찬가지였다. 시준은 자기가 이름을 어디서 들어 봤다는 것, 그리고

배고파서 구걸하러 온 주제에 저리 당당한 것을 보아 뭔가 비범한 자일 거라

는 몇 가지 추측을 새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조선은 청의 속국입니다.”

사실 암허스트가 당당한 이유는 그가 비범해서라기보다 전례 때문이었다. 2년

전 나가사키에서 돼지를 약탈해 간 이후로 영국은 아시아에서 먹을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겠다는 경험칙을 체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시준이 공명첩을 내보이며 조정의 고관이라고 자기를 소개했기 때문에

– 거짓말은 아니었다 - 로드 암허스트도 젊은 시준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영

국식으로.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요?”

“청과 전쟁하는 당신들을 조선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조선이 청 대신 영국과 전쟁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할걸. 당신네 아시아

관리들의 성질은 내가 알지. 정 추궁받을 일이 두렵거든 표류한 함대를 구조

했다고 하면 되잖소.”

원래 조선이 도와주면 안 되는데 도와주는 거라고 생색 좀 내어 이용해 먹으

려던 시준은 암허스트의 태도에 거부감이 치밀었다. 시준은 비꼬듯이 말했다.

“그러면 성의를 좀 보이셔야겠는데요.”

암허스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연 아시아 관리들은 그의 예측을 벗어나

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지. 얼마면 되겠소? 멕시코 은화는 조선에서 안 쓰지? 조선에서

도 아편이 많이 팔리던가? 그게 아니면 사들이고 나서 실어 가지 못한 도자기

며 중국 차도 있지요. 말만 하시오.”

시준은 차갑게 대답했다.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지금 끌고 오신 영국 전투함 전부라면 적당하겠군

요. 물론 무장과 선원도 고스란히 둔 채.”

암허스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거요?”

시준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책상에 팔꿈치를 괴어 턱을 받쳤다.

“장난하는 것은 당신들이지. 한 나라의 정부가 그런 얄팍한 수에 전부 속을

만큼 만만해 보였나? 영국과 전쟁이라. 마음대로 해. 당신들이 상륙해 싸울

군대가 있었다면 중국에서 도망치지도 않았겠지. 결국 가진 건 배와 함포뿐인

데, 조선은 원래 해안가에 중요 시설을 두지 않고 해군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야. 싸워서 뭘 얻을 수 있을지 한번 보자고.”

“조약에 따라 표류한 함선은 구조해야 하잖소!”

“조약에 따르면 전투함을 장자도에 끌고 오지 않기로도 되어 있소.”

“저들은 이미 전투함이라고 할 수 없소. 우리가 다급하게 식량을 요구한 것으

로도 알 수 있겠지만 보급이 여의치 않아 이미 전투 능력을 상실…….”

말하던 암허스트는 자기 입을 때리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투에 연이은

탈출로 정신이 없는 와중 상실한 건 전투 능력이 아니라 판단력인 모양이었다.

아까 암허스트가 지었던 회심의 미소를 이번에는 시준이 지었다.

“과연, 지금 로드의 잇새에서마저 붉은 기가 비치는 것을 보니 알만 하군요.

괴혈병과 굶주림으로 상태가 말이 아니지요?”

암허스트는 이번엔 진짜 자기 입을 손바닥으로 철썩 때렸다. 물론 이번에는

피 흐르는 잇몸을 가리기 위함이었지만, 그 제스처는 거꾸로 적극적 인정밖에

되지 않았다.

로드 암허스트는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괴혈병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홍삼 사가는 당신네들은 이미 알겠지만 조선은 약재의 대국이오. 조선의 책

인 ‘동방 박사의 신이한 거울[東醫寶鑑]’은 중국에서마저 기꺼이 사가는 의학

서적이지. 수백 년 전의 책이지만 거기에는 괴혈병에 대한 대처법마저 정확하

게 기록되어 있소.”

시준이 대충 번역한 신비로워 보이는 제목은 로드 암허스트에게 오리엔탈리즘

적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암허스트는 아시아인과의 협상에서 최초로 굴복하고

말았다.

“그 방도를 내어주고 충분한 식량을 공급한다면, 내 조선의 제안을 열린 마음

으로 듣겠소. 중국에 대한 정보 은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뭣하면 우리가

조선을 습격했다고 북경에 보고해도 좋소. 어차피 그자들은 우리에 대한 중상

모략을 지금도 수십 가지는 꾸며내고 있을 테니 하나 더 얹은들 큰 손해는 아

니니까.”

여기에서 바로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것은 좋은 협상이 아니다. 시준은 잠시 고

민하는 척하며 암허스트를 안달 나게 만든 다음 선심 쓰듯 말했다.

“좋소. 일단 사람은 구하고 봐야겠지.”

시준이 몇 가지 지시를 내리자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수의 항아리가 장

자도로 들어왔다. 모양이나 크기는 가지각색이었으나 굉장한 냄새를 풍긴다는

점은 동일했다. 암허스트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면서 물었다.

“보기에는 게르만인들이 먹는 야채 절임 같은데……. 이 냄새는 뭐지? 난 이걸

선원들에게 먹으라고 할 자신이 없소.”

“괴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음식이오. 여러 소리 하지 말고 일단 잡

숴 보시오.”

“이거 이름이 대체 뭐요?”

사실 이것을 처음 본 외국인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인다. 시준의 시대에는

너무 많이 우려먹어 예능에조차도 잘 나오지 않는 소재다.

그러나 19세기 조선에서는 꽤 신선했다. 그래서 시준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

께 말했다.

“김치라고 아시오[Do you know Kimchi]?”

작가의 말

1. 이 시기의 김치는 배추김치도 아니었고(배추는 18세기경 청에서 들어왔지만 지금처럼 포기김치를 할 정도로 커져서 부수적이 아닌 독자적 김치 재료로 인식된 건 우장춘 박사의 품종개량 이후입니다), 보통은 뻘겋지도 않았습니다. 고추를 안 쓴 건 아닌데 주로 통고추를 넣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김치는 무나 오이 등등을 주재료로 한 백김치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작중 배경인 평안도라면 더욱 그렇죠. 그리고 김치에는 비타민C가 오렌지보다도 많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2. 동의보감에는, 물론 항해 질병으로서의 괴혈병이나 비타민의 언급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잇몸에서 피나는 풍치(치주염) 질환에 대한 치료법이 진짜 있습니다. 그것도 증상에 따라 침을 쓰기도 하고 약을 쓰기도 하는 등 꽤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죠. 간단한 민간요법으로는 시금치가 좋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실제로 시금치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여 효과가 있습니다.

3. 시준의 엉터리 해석을 굳이 풀이하자면 동방(東) 박사(醫, 의사)의 신비로운(寶) 거울(鑑)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 자체를 주창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20세기 사람이지만, 시누와즈리 같은 중국풍의 유행은 17세기 말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4. 돼지 약탈 얘기는 1808년 있었던 페이튼 호 사건입니다. 영국은 네덜란드 국기로 바꿔 달아 선적을 속인 다음 나가사키에 침입하여 네덜란드 상관원을 납치하고(당시 네덜란드는 영국의 적국인 프랑스 소속이었습니다) 먹을 거 내놓으라고 협박했죠. 결과적으로는 전투까진 벌어지지 않았지만 번주가 이 치욕의 책임을 지고 할복하는 등 꽤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나중에는 유럽 배와의 밀무역도 심해지자, 막부는 유럽 배를 보는 대로 쏴버리라는 극단적 쇄국 정책을 채택하게 됩니다.

23. 열국(列國)은 진창에 발을 빠치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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