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76화 (76/284)

76화

22. 일명경인(一鳴驚人)(4)

지유도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 다들 얼굴에 주린 빛이 떠도는 이 상

황에서 홍득주가 이리 점잖게 말한 것만 해도 그의 인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대놓고 보내달라고는 못 해도 군량을 좀 나눠달란 말은 할 수 있으

리라. 고래로 군대가 돈 마다하는 경우는 없었으니 말이다.

적지 않은 돈이라 하지만 시준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

다. 시준을 잘 아는 지유는 시준이 왜 성례 치를 돈을 죄다 써버렸냐고 화내

는 광경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유는 이것을 내어주면 자신과 시준의 연결이 영영 끝나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쳤다.

홍득주는 그런 지유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조용히 말했다.

“일단 살고 봐야 시준도 만나지 않겠느냐. 그 아이가 이 난리 통에 어디서 비

명횡사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아. 반드시 우리를 구하러 올 거다. 그때까지

는 살아 있어야 한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미 포로 중에 노인이나 병자는 쓰러져 죽는 자도 심심

찮게 나오는 판국이다. 무엇보다, 홍득주가 갑자기 중간에 죽어 보호자가 사

라지면 홍경래군이 지유를 비롯한 홍득주 가솔의 여인들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

결국 지유는 주머니를 내어주었다. 주머니가 홍득주의 손에 넘어가자 지유는

몸의 일부가 영영 떠나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홍득주 역시 딸의 눈물을 허투루 쓰지는 않았다. 그는 당장 돈을 뿌려

도망치는 대신, 기회를 보며 체력을 회복하고 그러면서 인맥도 회복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현역으로 복귀한 의주 상인의 화술이 발휘되자, 그러지 않아도 홍

득주와 인연이 없지 않던 홍경래군 간부 몇몇은 없는 군량을 헐어 내어주었다.

홍경래군에서 의심의 눈길을 받던 감영 군사들은 더더욱 굶주리게 되었다. 탈

주자는 더욱 늘어나고 홍경래는 원인을 모른 채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간부들의 선심은 홍득주 일가에게나 돌아갈 수준이었다. 그리고 정말

자기들끼리 밥 지어 먹었다가는 홍경래군 이전에 동료 포로들에게 눈빛으로

살해당할 것 같았다.

어차피 도망치려 할 때 이들이 방해하면 곤란하기도 해서, 홍득주는 그들에게

도 조금씩 선행을 베풀기로 했다. 홍득주 일가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자기들보

다는 조금 묽은 죽을 나눠주자 포로들도 일단 받아 먹었다.

그 일을 돕던 지유는 다른 포로들보다 더 엄중히 감금된 자의 수레 앞에서 멈

춰섰다. 지유는 이 사람에게도 죽을 주는 게 맞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급조된 함거에 홀로 타고 온 덕에 다른 사람들처럼 다리가 수고롭지는 않았으

나, 대신 정신이 그만큼 더 고초를 겪은 듯한 김유근이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근묵자흑이라 했던가. 출신이 고귀해도 상놈들과 같이 처박아 놓으니 관상이

참 상놈 같아졌다. 줄줄 흐르는 땟국물이나 지저분한 수염, 다 빼앗긴 큰갓이

며 비단옷 대신 걸치고 있는 거적때기는 누가 봐도 이 사람이 영안부원군의

아들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순간만큼은 김유근도 지유보다는 그녀가 들고 온 죽사발에 더 열렬한 관심

을 보냈다. 하지만 솔직히 지유는 이 그릇을 그대로 김유근의 면상에다가 엎

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괜히 나타나서 거드럭대던 이자만 아니었다면……!’

지유도 오면서 사정을 들었다. 이자가 괜히 집에 유숙하지만 않았어도 홍경래

의 도당이 습격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홍경래는 되도록 홍득주는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홍득주가 김유근의 목적까진 지유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만, 만약 지유가

그걸 알았다면 지금쯤 김유근은 사발을 갓 대신 뒤집어쓴 채 얼굴에 흐른 조

와 쌀을 핥아 먹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지유가 무슨 상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르는 김유근은 뭔가 말하고 싶은데 적당

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아 말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지유는 그게 무슨 말이든

듣기 싫다고 생각하다가 이 자리를 피할 방도를 떠올렸다.

아무리 내외를 가릴 처지 안 되는 고난의 행군길이라 하더라도, 조선에서 부

부가 아닌 남녀가 마주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지유와 시준처럼 온 동네가 공

인한 사이 정도가 아니면 어렵다.

시준에게 생각이 미치자 지유는 다시 한번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동시에 김유근에게 밥 안 줄 좋은 핑계도 찾아냈다. 김유근은 지금 뭘 입었다

기보다 둘둘 만 모양새라 보기가 좀 민망했다.

지유는 몸에 익은 버릇대로 남자를 피하는 척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이 행동은 김유근에게 굉장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김유근은 지유가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싶었으나 남녀유별의 엄정한 법도

때문에 그리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과연 사대부가의 여인이 될 사람에게 어울

리는 정숙함이었다.

‘군자는 이백(李白, 이태백)의 시를 읊조리기만 해도 절로 취하며, 휘종(徽

宗)의 도구도(桃鳩圖, 복숭아꽃과 비둘기 그림)를 쓰다듬기만 해도 달콤한 향

기를 맡는 법이다. 나는 먹지 않아도 너를 보았으니 벌써 배부른 듯하다.’

역시 배우신 분이 뭐가 달라도 달랐다. 능숙한 수묵화가이자 서예가이기도 한

김유근인 만큼 정신승리도 예술적이었다. 김유근에게 서법과 기예를 가르친

아버지 김조순이 알았으면 그냥 너 거기서 뒈지라고 내버린 뒤 시준과의 동맹

도 파기했을지 몰랐다.

어쨌든 홍경래는 그런저런 사소한 일들을 다 알지도 못했고 신경 쓸 새도 없

었다. 그는 근왕군을 느릿하게나마 다시 움직이게 하는 데에만도 엄청난 노력

을 경주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사신단 인원이 압록강을 넘었다는 첩보도 들어온 상태다.

되도록 왕보다 먼저 그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홍경래는 더욱 서둘러야 했다.

홍경래가 부하들에게 곧 경기도로 넘어간다고 다섯 번째로 허풍을 쳤을 때쯤,

시준은 평양성에 도착했다.

이 며칠간 시준은 홍경래보다도 더 바빴다. 정약용이 남공철을 잘 속여넘겨

의주를 쾌속으로 지나치는 동안 시준은 사신단과 겹치지 않는 동선에서 정력

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장자도의 영국인들과 협상하여, 이 시대에서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인 선박으로

강화도에 차형기를 잠입시켜 박득출을 움직이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준이 경강상인을 전부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세곡 운반에 약간의

불협화음만 일으켜 주면 한성부는 알아서 붕괴한다.

조선 왕국은 육로를 통한 식량 수송 수단을 사실상 가지고 있지 않다. 서울에

살아 봤던 시준은 도성이 얼마나 식량 봉쇄에 취약한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호남의 세곡을 날라 올 훈련도감 대변선 역시 김조순이 뻘짓만 하지

않았다면 아직 그의 손아귀에 있을 터. 시준이 박득출을 시켜 김조순을 빼친

것은 그 세곡 운송로가 이공의 손에 빠르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차형기가 오죽당 청년 몇몇을 데리고 사실 없는 거나 다름없는 총융청 주둔지

를 돌파하는 동안, 시준은 의주 장사꾼들과 살아남은 민병대원들을 전부 오죽

당에 임시 편입시켜 남하했다.

윌리엄 자딘의 말대로라면 지금 청이 당장 조선을 향해 뭔가 행동을 개시할

가능성은 적고 그렇다면 남쪽의 대도시로 가서 평안도를 조율해야 했다.

하지만 평양은 시준을 실망시켰다.

마치 관리처럼 입성한 시준은 건조한 눈으로 평양성의 패잔병들을 둘러보았다.

옆에는 총 든 기랑뿐만 아니라 의주에서 시준을 소소하게 쫓아다니며 심부름

했던 소질개 등 여러 노비 아이까지 대동했으니, 진짜 높으신 분이 병사들을

시찰하는 것 같았다.

시준의 신분으로는 당장 눈이 뽑혀도 할 말이 없는 짓거리였다. 허나 평안도

에서 감사 다음으로 높은 벼슬아치인 의주 부윤의 위임장을 들고 온 지금의

시준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었다.

물론 시준이 자기 이름으로 의주 부윤을 대리한다는 말은 아니다. 의주 부윤

조흥진이 미쳤다고 상놈에게 종이품 수령의 권한을 내어줄 리 만무하다.

형식상 의주 부윤의 심부름꾼으로 온 자는 의주에서 흔치 않은 사대부가의 자

손이자 명문 무가 출신인 백윤구였다. 정약용이 신뢰하는 제자이며 그가 서울

오기 전 마지막으로 의주 희만당을 맡겼던 그 사람이다.

자기 휘하의 관속을 보내자니 월권인 데다 나중에 책임질 일이 두렵고, 한편

으로는 의주 상인들과 근문소의 간곡한 부탁도 거절하기 어려워서 내린 결정

이었다.

그래서 시준도 형식상 백윤구에게 질문했다.

“이들이 남아 있는 군졸 전부입니까?”

홍경래가 평안 감영의 군졸을 모두 흡수하지는 못했다. 조선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던 군대는 많아도 조선군의 도주를 막을 수 있던 군대는 없었다.

이만수의 목이 진문 앞에 높이 내걸리자, 대부분은 조선군의 절기를 아낌없이

선보이며 귀신도 못 따라잡을 속도로 흩어져 버렸다.

역사를 참고했을 때 이다음은 산에서 단체로 목을 매는 게 관례다. 어차피 죽

을 거 싸우다 죽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면, 원래 백의민족은 평

화를 사랑하는지라 전사보다는 자결에 더 명예를 두었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경우는 도대체 누가 명분을 가진 쪽인지 몰라서 어디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군사들은 장렬한 순사(殉死)를 유보하고

일단 평양성에 모인 것이다.

물론 조선군 전부가 평화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일부는 군관들의 영웅적 지휘

하에 홍경래군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전원 패주했다.

거기에는 기존 감영군 투항자들의 분투가 한몫했다. 새 주인에게 잘 보여야

하니 힘내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의주 사람들은 그 투항자들이 역적에게 속

아 반역한 자일 것이라고 설파했다.

남아 있는 병사들은 그 의견에 열렬하게 동의했다. 백윤구의 질문을 받은 그

들은 비분강개하여 외쳤다.

“그 밀지인지 뭔지 보고 넘어간 놈들은 필시 본래 역심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

오! 토관(土官)도 아니고 세족도 아닌 자에게 그런 교지를 내렸을 리가 없지!”

“나라에서 장수만 보내주시면 당장 떨쳐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소! 기필코 배

신자 놈들을 이 손으로 처단하리라!”

조선의 법으로, 대장이 죽으면 차장을 참수한다. 감사를 죽게 한 감영 군졸들

역시 그러한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충의절개를 창조하고 있는 것

을 시준이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굳이 지적하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시준은 여기에서 조선의, 아니, 전근대 동아시아의 반란이 대개 왜 지방

단위에서는 성공할 것처럼 보였는지에 대한 이유를 깨달았다.

다름 아닌 정보의 제한 때문이다.

지금 평안도 사람들 대부분은 홍경래의 격문과 믿어 마땅한 상식 사이에서 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행히 서도에는 왕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부

화뇌동한 자도 많지는 않다는 게 다행이었다.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공석이라는 점도 시준에게는 마침 잘된 일이었다. 홍경

래가 평안 병사와 결탁하여 평양과 안주의 북방군을 죄다 이끌고 서울로 남하

하는 환장할 꼴은 보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이 두 가지 점은 시준의 머릿속에서 창의적인 형태로 결합했다. 어쩌면 병사

들이 외치는 말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준은 백윤구에게

말했다.

“먼저 준마를 있는 대로 끌어내야 합니다.”

백윤구는 원래 정약용의 제자 중에서는 시준을 높이 평가하는 축이 아니었다.

시준의 신분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문으로서의 애정은 백윤구에게도 있었으며, 그 사람됨이 시준의 재

주를 직접 보고도 외면할 만큼 편협하진 않았던 데다 이제 시준이 대청국 소

신교위까지 받아오자 매우 협조적으로 되었다.

이것은 시준의 세 번째 행운이다. 이제 깡패 집단이 아니라 군대를 통솔해야

할지도 모르는 시준의 입장에서, 명문이라고까지는 못 해도 평안도의 전통 있

는 무가인 백윤구의 집안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윤구가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라고 이르지. 소위 근왕군을 쫓아가기 위해서인가?”

백윤구 역시 홍경래가 설마 진짜 왕의 친위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역설적

인 일이지만 지금 홍경래 근왕군의 이념을 사실이라고 믿는 자는 여기에서 시

준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시준은 앞으로도 홍경래를 믿는 자는 아무도 없도록 만들어 줄 생각이

었다.

“아닙니다. 패군으로 기세 탄 군사를 추격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나누어,

경기나 황해에서 평안도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켜야 합니다. 홍경래는 필시 자

신의 허황된 대의를 계속 주장하기 위해 남쪽으로 간 연후에도 그 참람한 격

문을 북으로 뿌리고 있을 겁니다. 보는 족족 붙잡아서 글은 뺏고, 사람은 주

리를 틀어 모든 것을 실토하게 하십시오.”

지금 시준의 말은 그냥 정약용 제자들끼리의 논의 같은 게 아니었다. 시준이

백윤구와 상의한 일들은, 표면적으로는 의주 부윤의 조언을 들어 평양 향임과

유지들이 결정한 것으로 공표되고 집행될 것이다.

그러한 일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기반은 평양 도착과 동시에 건설을 개시했다.

요 몇 년 사이 의주 근문소 방식을 익숙히 한 상인과 향임 출신 유지들은 벌

써 흩어져서 평양에도 만상 식 소조직을 세울 기초를 닦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이 사람. 자네 나장 선덕(先德)이 아닌가. 평양에 있다는 얘긴 들었는데 이

게 얼마 만이야. 어이, 다들 이리 와 봐! 이 선덕이는 내 처조카의 사촌의 죽

마고우인데 모두 각별히 돌봐줘야 하네. 이봐, 선덕이. 통주(統主, 5호의 장)

와 이정(里正, 5통의 장)들을 어서 불러 모으게. 산 사람은 살아야지.”

“다 큰 총각이 아무리 토색질에 뺏겼다 한들 그리 반쯤 벌거벗고 돌아다니면

동네 처녀들 경기하지 않겠는가. 자, 이거 의주바지일세. 자네 한 덩치 하는

거 보니 오죽당에 와서 힘 좀 쓰면 금방 간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네 이름이 봉팔이라고? 혹시 의주 사는 김가라고 아는가. 뭐, 안다고? 역

시! 내 얘기 많이 들었지. 그 어른이 평소에……. 뭐? 어린아이라고? 자네가 뭘

잘못 알았구먼. 수염 허연 노인인데. 이제부터 그렇게 알고 나만 믿게.”

“이보오, 형씨. 그렇게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은들 진 싸움이 이긴 싸움 되오?

어허. 그렇게 화내지 말라니까. 자, 우선 이 서초 한 번만 잡숴 보시오. 그

래. 그렇게 그냥 손에 들고 피우면 돼. 아직도 의주 서초 얘길 못 들었어? 근

심 걱정이 싹 사라진다니까.”

“저런, 행상하러 왔다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져서 얼마나 힘들었는가. 하지만

지금 여기 감자며 메밀, 순무를 많이 실어 왔으니 올겨울은 전혀 걱정할 것

없어. 이게 모두 서도상고총협동회(西道商賈總協同會) 회장 정 영감(정시준)

의 덕인데, 자네도 여기에 입회(入會)하지 않으려나?”

수작질 중에 나온 서도상고총협동회는 평양 사람 아무도 못 들어 본 뜬금없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뜬금없이 생긴 게 맞다. 며칠 전 시준이 의주에서

출발하기 전에 선언한 조직이니까.

상(商)이란 떠돌아다니면서 물건 파는 사람, 고(賈)란 점방을 가지고 장사하

는 사람을 말한다. 서도상고총협동회는 말 그대로 평안도의 상인에게 모두 열

려 있는 협회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리고 이 협동회는 흉년으로 피폐해지고 홍경래에게 놀란 평안도를 잘 어루

만져 원통하게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 나오지 않게 하자는 참으로 바람직

한 목적을 표방하고 있었다.

물론 사실이라고 믿을 순진한 자는 평안도 장사치들 중에 아무도 없다. 하지

만 이 조직이 흉년이나 홍경래 때문에 붕괴된 일부 정부 조직을 근문소처럼

대체하여, 차후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 줄 좋은 발판이라는 점은 모

두가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탁상공론처럼도 보이는 시준의 사업이 빠르게 힘을 얻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시준이 제시한 비전이 전례가 있으면서도 혁신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송상이나 경상 등의 범지역, 범국가 상인 연합체 조직은 이미 있다. ‘불가능

하지 않다’는 아주 확실한 당위성을 제공하기에 전례라는 것은 항상 중요하다.

그러나 평안도에는 국제 무역에 손대는 의주 사람들만이 만상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을 뿐 대영 무역과 송상의 지체로 막 성장하기 시작한 평안도 상인들

의 이익 단체가 없었다. 많은 상인들은 홍경래의 소란은 제쳐놓고라도 후일을

위해서 여기 가입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사실 더 중요하다. 그것은 의주 돈귀신 정시준의 위명

이 이미 평안도에 잘 알려져 있어서였다.

‘정시준이라면 그 교활하기로 유명한 만상 서장관 아닌가? 조정에도 연줄이

든든하게 있고 하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터이다. 우리도 한 다리 끼어서

재미 좀 보자.’

게다가 시준은 여기에 상투적인 수법을 가미했다.

‘오래된 예법으로 장유와 계서가 있으며, 우의란 어려울 때 더욱 빛나는 법이

오. 먼저 입회한 사람의 등위(等位)를 어찌 뒷사람보다 낮게 할 수 있겠소?

거기에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입회시킨 사람 역시 숫자에 따라 언제든지 그

자리가 승차할 수 있소.’

선착순과 다단계는 알기 쉽기 때문에 항상 효과적이다. 불과 며칠도 안 되어

의주 상인은 말할 것도 없고, 용천부와 가산의 상인들까지 연판장(連判狀)을

보내와 입회하였다.

그리고 시준은 봄이 되어야 뭘 시작해도 하겠지 하는 예상과 함께 미리 투자

하는 기분으로 한가로이 가입했던 상인들을 당황시켰다.

시준이 그간 조직 형성에 관심이 없었던 건 그가 권력이나 명예보다는 한가한

은퇴 생활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지 그럴 능력이나 기반이 없어서가 아니다.

시준이 쌓은 만상의 문서관료제적 전통은 여러 장점이 있다. 정부 부처와 마

찬가지로, 확대하거나 새 조직을 만들고 싶을 때 너무나 손쉽게 가져다 베낄

수 있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야, 시준아. 1시간 뒤에 차관주재 과장회의 들어가야 하는데 예전에 여기 단

체 관련 지원사무소 만들 때 예산 어떻게 들어갔는지 좀 뽑아 봐라.’

어차피 지금 시준이 하려는 일은 근문소의 확장판이다. 좀 과장하면 있던 서

류에서 숫자 자릿수만 바꿔 쓰면 그만이다. 대규모 상인 연합체가 사상 초유

의 속도로 형성되었다.

그 결과로, 협동회는 벌써 용천과 가산 등 인연 가까운 고을부터 식량을 푸는

중이었다.

이 대흉년에 먹을 게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이공의 생각과 달리

감자 같은 게 아니다.

정답은 부자다. 애초에 시준은 곡식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어떤 참혹한 흉년이라도 부자는 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준은 부자들을

가지고 있다.

문서상의 자본량만 가지고 따지면 역사에서 비교도 안 되는 송상이나 경상에

도 크게 꿀리지는 않을 만했다. 김창시, 이희저, 임상옥 등 알아주는 대상부

고들이 협동회의 가장 든든한 창고가 되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고 밥 먹여 준다고 홍보하여 사람을 모으는 식이었지만 그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일자리 얻은 기민 입장에서도, 불안 요소를 남의 손

빌려 치운 수령 입장에서도 그러했다.

중앙에서 진휼에 대한 명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아, 문책 각오하고 열어야 할

지 민란 각오하고 닫아야 할지 관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의주 부윤과 용천 부

사 등은 기뻐하며 돈 안 드는 치하를 잔뜩 내려 주었다.

이 겨울이 지나면 어디의 수령이든 협동회의 힘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이를

테면 근문소의 평안도 확장판인 것이다. 협동회의 평안도 장악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시간이 문제였다. 시준이 지나치게 서두른 이유이기도 했다.

시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홍가장 식구들의 구출이다. 지금 이렇게 회장님 놀

이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홍경래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할 만큼의 세력으로

보이려면 필수적이라는 게 환장할 노릇이었다.

시준은 초조한 시선으로 옆에 있는 감자 수레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있으면 홍경래 친구인 너희들은 그냥 역적이 된다는 협박에 쩔쩔매던 김창시

가 내어준 물건이다(물론 그 대가로 협동회 부회장 명패 하나 파 주었다).

그리고 시준의 모습을 본 기랑은 무언가를 잘못 해석했는지 자기가 갖고 있던

삶은 감자를 건네주었다. 생감자를 씹을 수는 없으니까.

시준은 잠깐 헛웃음을 짓고 그것을 받았다. 백윤구가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허. 이제 아랫사람들이 알아 모시고 상전은 부리는 데에 익숙하니 장자의

풍도가 나타는구먼.”

백윤구는 ‘이제 장가만 가면 되겠네.’라는 말 따윈 하지 않았다. 막돼먹은 주

먹잡이 차형기와 달리 그는 점잖은 선비이므로 그런 무례한 말실수를 하지 않

는다.

그런 만큼 백윤구는 두 사람의 반응에 크게 당황했다.

아랫사람이라서 감자 준 게 아닌 기랑은 마뜩잖은 얼굴로 백윤구를 쳐다보았

고, 시준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백윤구를 마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각자 대화 맥락과 대단히 안 어울리는 표정으로 자기에게 시선을

집중하자 백윤구는 머뭇대며 물었다.

“어, 왜? 내가 무슨 말이라도 잘못하였는가?”

“아, 아닙니다. 그냥 원래 상놈이라 그런 말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요.”

서둘러 수습한 시준은 지금의 바쁜 일도 잊어버린 채 그 대화에 대해 생각했다.

‘상전이라고?’

시준은 지금 사상 최초로 평안도 상인들을 대통합하며 전국구의 자리도 넘볼

조직을 만들었다. 비록 간판뿐이라 하나 조직에 간판보다 더 중요한 것도 별

로 없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조직이 탄생하면 거기에 기대 먹고사는 사람이 생긴다.

또한 그것을 적대함으로써 먹고사는 사람도 생긴다. 이것은 우주적 법칙이다.

시준이 이런 위업을 이루어 놓고 그것을 기반으로 홍득주와 지유 등 식구들을

모두 구출한 다음, 이제 난 볼일 다 봤으니 회장 자리 아무나 해 먹으라고 던

지고 은퇴할 수 있을까?

시준은 전생과 현생의 나이를 합하면 이제 오십이 넘는다. 사람에 대해서 웬

만큼 알 연륜이라는 뜻이다.

일단 시준이 협동회의 위세를 업지 못하면, 그동안 협동회에 원한 가진 자가

당장 시준에게 칼잡이라도 한 무리 보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쪽은 오히

려 낫다. 시준이 모든 권력을 포기하면 이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할 자도 있

을 테니까.

더 무서운 것은 그동안 지지하던 사람들이다.

기대가 배반당하고 시준에게 걸었던 희망이 끝장난 사람들은, 그 기대와 희망

이 멋대로 가졌던 것이라 할지라도 시준을 용서할 리 없다. 강권, 유혹, 협

박, 애원. 시준은 아마 죽을 때까지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반역을 각오할 때도 흐르지 않았던 식은땀이 시준의 등줄기에서 미끄러져 내

렸다. 시준이 자기 목표를 이루려고 발버둥 칠수록, 인생은 전혀 시준의 취향

이 아닌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1. 대장이 죽으면 차장을 참수한다는 것은 대명률입니다. 그 외에 성을 못 지키거나, 달아나거나 하는 경우의 여러 가지 율이 있었죠. 이젠 더 말하면 입만 아프지만 반드시 지켜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2. 조선군은 왜란 당시 반 정도 도망치면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군치고 용감했다고 극찬할 만큼 도망병이 많았습니다. 현대전에서 군대의 반이 도망쳤다면 그건 그냥 부대 붕괴죠.

그런데 희한한 게, 기왕 살겠다고 도망쳤으면 살아야지 뒤늦게 부끄러움에 목 매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굳이 유추해 보자면, 작중 서술된 대로 전사는 (패배해서 죽었다는 뜻이므로) 명예가 아니지만 순절은 명예였던 문화적 사유가 크다고 봅니다.

3. 김유근이 시서화에 능했다는 것은 진짜입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4. 통주, 이정은 경국대전에 규정된 오가작통제 상의 명칭입니다. 한 면의 장은 권농(勸農)이라 했습니다. 조선 초기 태종이 세우고 세종이 정립한 오가작통제로는 5호의 장을 비장(比長)이라 하고 30호의 장을 권농이라 하는 등 후기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권농(관)이라는 명칭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결국 목적은 농사... 그러니까 땅에 사람을 묶어두어 함부로 유민이 되지 못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둔 제도였습니다.

23. 열국(列國)은 진창에 발을 빠치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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