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22. 홍경래의 난(3)
이공이 배를 빼돌려가면서까지 추진한 ‘영국 멈춰!’ 작전은 사실 나쁘지 않았
다. 홍경래가 거병의 교지를 받기 조금 전 도착한 푸셰는 정부 내부의 갈등으
로 인해 왕에게는 일단 신하들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국왕의 뜻은 수교에 있어. 괜히 원한 사는 것보다는 왐포아로 철수해
서 더 적절한 때에 오는 게 나을걸세.”
물론 암허스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지요. 조선 국왕의 뜻대로, 우리가 조선 수도에 들어가
서 불충한 신하를 전부 목 베고 정부를 장악한 뒤 평화롭게 수교하는 겁니다.”
그 조제프 푸셰마저도 자기가 지금 평화(paix)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푸셰는 곧 정신을 차리고 간단히 말했다.
“그건 확실하게 민중봉기를 부르는 방법이겠지. 억지 쓰지 말게. 전에 우리가
나눈 얘기를 잊었나? 투르크인이 런던을 장악하고 화이트홀에서 영국 왕으로
하여금 술탄의 깃발 앞에 무릎 꿇으라고 강요한다면 과연 귀족원의 영주들은
가만히 있을 거라 보나?”
사실 조선 귀족들은 여진족이 그랬을 때 가만히 있기는 했다. 암허스트가 그
걸 알았다면 멋지게 반박했겠으나 지금은 좀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프랑스인이 혁명에 대해서 하는 말이라면 학문적 권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푸셰가 돌아간 뒤 암허스트 남작은 생각에 잠겼다.
암허스트 입장에서는 힘겹게 허세를 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거 푸셰에게
보급이 어쩌고 했지만 영국이라고 왐포아에 무슨 대규모 병기창을 차려 놓은
건 아니다.
보급의 애로는 시간에 비례하여 증대했다. 이대로 가면 철군이나 돌격 이외에
는 선택이 없다.
허나 돌격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게, 아직 강화도에는 총융청 병사들이 전개한
상태 그대로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왕이 이제 조선군을 군대로 보지도 않는 바람에 명령을
깜박해서 그렇다. 물론 도망칠 자는 벌써 다 도망치고 대어 볼 연줄 있는 자
는 다 대어서 많이 줄긴 했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신하들도 이제 외국 대박이 강화도로 침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지라 철수
의 주청을 올리기 망설이는 사이 2년여가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 실수는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조선을 지나치게 깔보던 암허스트는 강화도 일대의 군 배치에 대한 첩보를 극
히 최근에야 손에 넣은 상태였다. 정예도야 어쨌든 그 숫자는 아무리 암허스
트라도 일단 돌격을 망설이게 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망설이기가 힘들었다. 병사들이 너무 지쳤다. 둘 중 하
나는 선택해야 했다. 암허스트는 그 사실이 분통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철수하면 동인도 회사는 자신을 비웃을 것이다. 결국 군사적 수음 행
위나 하고 돌아왔다는 조롱이 귀에 선했다. 그 후로 왕의 해군이 동아시아에
서 할 수 있는 일은 갑판 청소 정도다.
두 달 가까이에 걸친 무력 시위와 주변 해역의 무단 측정도 성과라면 성과지
만 너무나 빈약하다. 암허스트는 잠깐 동안 조선 왕의 은밀한 내락을 영국으
로 가져가서 공개하는 것으로 이 항해를 마무리할까 하는 유혹에 시달렸다.
그러니까, 동인도 회사에서 갑자기 급보가 날아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중국 놈들이 왕의 깃발을 모독하고 장교를 죽였다고!”
가장 빠른 배로 날아온 로크 선장 – 레디 소령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
의 목소리는 매우 지쳐 있었다.
그는 중국인이 왜 왐포아에 수사한답시고 쳐들어왔는지 간략하게 설명한 뒤에
말했다.
“지금 당장 돌아오셔야 합니다. 자칫하면 왐포아의 영국인이 몰살당할 위기입
니다.”
로크 선장은 예상 못 한 괴변이라는 듯이 말하였으나, 어떻게 보면 어이없는
반응이었다. 이것은 당연하기까지 한 수사 단계다. 역적의 손에서 영국 총이
나왔는데 영국인을 수사하지 그럼 누굴 수사하겠는가.
허나 영국인의 생각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건 아무튼 정당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암허스트 남작은 모범적인 영국 귀족이었다.
“이 야만인 놈들이! 당장…… 아니, 잠깐. 이거 혹시?”
암허스트 남작은 조제프 푸셰의 조선왕에 대한 평가를 떠올렸다. 분명 그는
조선왕을 일컬어 국제 감각이 있는 자라고 했다.
조제프 푸셰의 인성은 전혀 믿을 수 없지만 그의 두뇌는 믿을 만하다. 당시
대화 맥락이나 전후 상황을 봐도 다른 말은 거짓말일지언정 그 말이 거짓일
가능성은 낮다.
곧 남작은 레디 소령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조선왕이 중국을 써서 영국에게 퇴거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서 평범한 사람이라면 왐포아로 돌아가서 중국을 막거나, 바로 조선 상
대로 본격적 군사 행동에 돌입하여 조선왕의 치명적 오판을 교정한다는 선택
을 할 것이다.
허나 암허스트는 자기가 그런 범인들보다는 좀 더 현명하다고 여겼다.
‘저들이 예상할 수 있는 행동만을 한다면 끝까지 저열한 아시아인의 손아귀에
서 놀아나게 된다.’
빨리 왐포아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는 로크 선장을 일단 돌려보낸 남작은 메
이틀랜드 소장을 불렀다.
“병사들의 상태는 어떤가?”
다행히 메이틀랜드 소장은 안 되는 일을 된다고 허풍 치는 부류는 아니었다.
“거짓 없이 말씀드리면, 상륙전을 치르기는 어렵습니다. 병사들이 너무 지친
데다 영양 섭취도 불균형합니다. 중국에서 보리를 구해다가 차를 끓여대고는
있습니다만 품종이 다른 탓인지 괴혈병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 보리는 억울하다. 이것은 전적으로 당대 유럽인들의 의학적 무지
탓이다. ‘대충 식물 비슷한 뭔가를 먹으면 괴혈병을 막을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무식한 발상은 ‘대충 신 거 먹으면 되지 않을까’ 정도의 손톱만 한 발전
만 이룬 채 앞으로 120년 뒤까지 계속된다.
어쨌든 지금은 메이틀랜드나 암허스트가 알 리 없다. 암허스트 역시 무지보다
는 불운을 탓했다. 농축 오렌지 주스(끓이는 바람에 비타민 따위 다 없어졌
다)와 보리차(이젠 새콤하지조차 않다)라는 영국 해군 질병 위원회의 정확한
처방이 엇나갈 리는 없으니 말이다.
암허스트가 다시 물었다.
“상륙전이 어렵다면 함대전은 어떤가? 아시아 해군조차 상대할 수 없는 정도
인가? 이 질문은 중요하네. 자네의 답변에 따라 우리 해군이 저 야만족의 비
웃음을 뒤로하고 인도로 철수할지, 아니면 영광된 진격으로 치욕을 씻을지가
결정되니 말이야.”
상사가 답변 다 정해 놓고 물어보는 것은 청이나 조선이나 영국이나 똑같았
다. 결국 메이틀랜드 소장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남작이 원하는 답을 내
놓았다.
“군함과 함포가 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요. 어떻게든 건강한 인원을 추려 배치
하고, 백병전이 어려운 병사는 다른 부서로 돌려 놓겠습니다. 함대전이라면
설마 지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사거리의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니까요.”
“바로 그 답변을 기다렸네.”
메이틀랜드 소장은 차마 싸우고 싶지 않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대신 다른 부
분에서 제동을 걸어 보았다.
“조선 해군을 공격하는 것입니까? 남쪽으로 내려가신다면, 아직 측량이 이루
어지지 않은 복잡한 군도 지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신중한 진격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만.”
조선은 단순히 영국군에 맞서기가 어려워서 병선을 내보내지 못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영국은 조선 해군을 파괴해 무력 시위의 목적을 관철한다는 선택지
도 고르기 어려웠다.
암허스트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선인들도 바로 그렇게 생각할 테지. 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가지는
않을 생각이네.”
“그렇다고 하심은? 북쪽의 평양이란 도시를 공격하실 셈입니까? 하지만 상륙
전 없이는 어려울 텐데요.”
“그것도 아냐. 우리가 지금 왜 이 꼴이 되었는가. 바로 중국 때문이지. 그리
고 중국이 없다면 조선도 저렇게 배짱 좋게 나올 수 없어. 저들이 믿고 있는
황제의 위엄이 한낱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지.”
메이틀랜드 소장은 설마 광둥 일대를 치겠다는 건가 하고 미심쩍은 눈빛을 보
냈다. 중국 해군이야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 경우 아시아 최강 베트남 해군이
출동할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
파워풀한 위명을 유지하고 싶었던 드루리 제독은 소문을 숨기려 애썼으나, 동
인도 회사 직원들이 조소와 함께 전 세계에 퍼트린 그 참패 기록은 영국 해군
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만전의 상태가 아닌 지금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역시 틀렸다. 이는 메이틀랜드 소장이 견실한 상식인이
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암허스트 남작은 광기에 찬 태도로 지도의 한 점을 짚었다.
“하늘 나루터[天津]. 중국 원주민의 말로는 톈진이라 하던가. 중국 수도의 외
항이자 내륙 수운의 종착점이다. 이 일대의 지리와 수비 태세는 매카트니 경
이 아주 상세하게 알아 왔지. 우리는 여기를 방비하고 있을 중국 해군을 격멸
하고 타타르 황제에게 뼈저린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 급한 소식이 날아든 때는, 홍경래가 김유근의 불법 월경을 근
왕군답게 저지했을 때쯤이었다.
“강화도의 영길리 배가 물러갔소이다!”
낭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조정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지도 않았다. 왜냐하
면 로드 암허스트의 싸늘한 글도 같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조선 국왕 폐하 만세. 암허스트 남작 윌리엄이 존경과 우정으로 글을 올립니다.
현재 장자도에서 이루어지는 양국의 무역이 근래 더욱 번창함에 저는 영국과
조선 양국의 화호가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에서, 지혜로우신 폐하께서 하느님께서 은총 내리신 우리 국왕 조지 폐하
와 견고하고 영속적이며 더욱 다각적인 우의를 맺을 뜻을 이미 표명하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천진으로 가서 다른 일을 처리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중국이 선량
한 영국 상인들에게 무고한 누명을 씌워 핍박하고, 우리 국왕을 모독하며 심
지어 장교를 살해하였습니다. 저희는 이에 대해 적절한 항의를 표명할 생각이
며, 중국의 태도에 따라서는 약간의 강경한 경고도 불사할 생각이니 국정에
삼가 참고가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성실과 신의를 담아.>
끝에 남작의 서명이 들어간 이 서신은 외국 사신이 주청 올리는 글이라기보다
는 개인의 편지에 가까운 형식이었다.
그야 이런 협박을 공문으로 쓸 수는 없었을 테니 당연하다. ‘약간의 강경한
경고’라는 말은 김조순의 악몽이 되었다.
‘중국 애들 손 좀 봐주고 올 테니, 그사이 프랑스 놈들 시켜 장자도에 허튼짓
을 하거나 수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간 무슨 꼴이 나는지 천진을 잘 지켜보
도록 하라.’
물론 예조와 비변사는 격노하여 이 서신의 접수를 거부하였다. 허나 그건 공
식적으로 접수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왕이 읽지도 않았다는 건 아니다.
이공은 빨리 중국에 고변해야 한다고 거품 무는 김조순 등의 앞에서 여유롭게
웃었다.
“그렇게 하라. 허나 아무리 말을 달린들 배보다 빠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늦
을까 봐 걱정이구나.”
중국은 예상 못 한 타격을 얻어맞을 것이다. 이공은 그게 너무나 즐거웠다.
하지만 김조순의 이어지는 다음 말에 왕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리고 지금 자칭 남작 아묵사특(阿默斯特, 암허스트)이 경망하게 아뢴 바로
‘우의를 맺을 뜻을 이미 표명’이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이는 전하께오서 내리
시지도 않은 명을 멋대로 꾸며낸 것으로써 이 일 또한 황제에게 함께 고하여
바로잡아야 마땅합니다.”
사실 암허스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공이 실제로 수교 약속을 했으니까.
그리고 김조순 역시 이미 왕이 무슨 짓을 했는지 눈치챘다. 그의 신분이 신하
이기 때문에 저렇게 돌려 말한 것이다.
더 일 커지기 전에 난 국교 얘기 안 했다고 황제 앞에서 구르라는 소리에 이
공은 역정을 냈다.
“접수하지도 않은 서계에 무슨 변명을 하라는 말이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청국이 과연 저들 떠드는 대로 번국을 아끼는 의리가 있었다면 영길리국 배가
제집처럼 빈해(瀕海, 해안)에 드나들 때 어찌하여 수군 한번 보내 주지 않았
다는 말인가. 설사 내가 정말 국교를 허하였다 해도 황제는 감히 꾸짖을 깜냥
이 되지 못할 것이오!”
이공은 신하들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시대는 바뀌고 있다.
영국 하나로는 이 지역에서 청에 맞설 수 없다는 것쯤 이공도 안다. 조선이나
불랑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 나라가 힘을 합치면 어떨까?
그 상상은 이공의 가장 깊은 야심을 자극되게 만들었다. 게다가 사신단의 보
고에 의하면 아라사 사람도 조선과 의기투합하여 장삿길을 열어달라 청했다
하니, 중국의 북쪽에 있는 거대한 나선까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희발(姬發, 주 무왕)이 변경의 백구지국(伯舅之國)으로서 만방
의 제후를 모아 불의한 소위 천조를 뒤집어엎고 의리를 바로세운 통쾌한 일과
같다.
이공의 머릿속에서는 벌써부터 대중국 포위망이 완성되고 있었다. 먼저 강대
한 병력을 갖춘 영길리가 중국의 콧대를 꺾어 놓으면, 그다음은 자신이 여러
나라와 연결하여 중국이 함부로 병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어차피 서양국은 여기서 십이만 리나 된다. 영길리든 불랑국이든 아라사든 조
선을 맹주로 하지 않고서는 청에 손잡고 맞서기 어렵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그러려면 먼저 집안일부터 다스려야겠지.’
그리고 어질러진 집안을 깨끗이 청소할 수단은 벌써 이공이 예비해 두었다.
일은 마치 그 시계라는 물건의 톱니바퀴처럼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영국이 천
진을 강습하는 일은 며칠 내로 이루어질 터. 그리고 청이 대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이공은 조정의 강기숙정을 마칠 것이다.
편전으로 돌아온 이공은 박씨가 드디어 회임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제 그녀
가 아들만 낳아 주면 저 김조순의 딸은 필요 없다.
이공은 편전에 앉아 문서를 보다가, 김조순 일파가 올린 상소문이며 사직서를
와락 끌어안아 구겼다. 그러고는 그것을 전부 화로에 던져 버렸다.
평안 감사 이만수는 이제나저제나 사행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평안 감사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중국과 조선의 사신단 관리
인데, 관리라는 말의 범주에는 갈 때뿐만 아니라 올 때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혹독한 흉년 사이에 사신단 뒷바라지까지 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평
안도가 전세를 자체 소모하는 잉류지역(仍留地域)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곧
중앙 관청에서 내려오는 도움이 별달리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만수는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었다.
그런 소망이 빚어낸 착각 때문에, 북쪽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질풍처럼 달려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만수는 아랫것들이 사신행을 잘못 보고 과
장했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파악한 이만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승천할 뻔했다.
지금은 평안 병사도 공석이다. 기존 병사 이해우(李海愚)를 왕이 어영대장 삼
는다고 불러들이면서 후임자는 아직 내정되지 않았다.
이공으로서는 어영청을 장악함과 동시에, 지휘 체계만 잠깐 비워 놓으면 국경
의 허실은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홍경래를 표시 안 나게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환상적 일거양득이었다. 어차피 조선의 전통적 평안도 방어 전략은 내
부 결전이지 국경 사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평안 감사가 아무리 김조순파라도 귀띔 정돈 했어야 했다.
시시각각 덮쳐오는 국왕 이공의 천재적인 계책에 이만수의 늙은 가슴 속에서
마저 혁명의 불꽃이 용솟음쳤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만수는 어찌어찌 긁어모은 평안 감영의 군졸들을 이끌
고 홍경래를 막아섰다.
홍경래군은 명분 있는 군사답게 다투어 고함을 질러 기세를 드높였다. 그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평안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잔여 인원을 싹 흡수하여 ‘근
왕병’을 더 확보한 상태였다.
이 정도면 무기의 우열을 앞세운다고 했을 때 평안 감영과도 해 볼 만하다.
허나 홍경래는 얼마 있지도 않은 병력과 탄약, 무기를 평양에서 모조리 산화
시킬 생각은 없었다.
영국에서 군함과 대포를 먼저 사들인 다음이라면 좋았을 것이다. 허나 바로
그 무기 거래 건을 트집 잡아 로드 암허스트가 내항한 이상 할리버튼 선장도
눈치 없이 싱글벙글 군함 구해다가 팔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시지탄은 항상 소용없는 법. 반드시 이길 준비가 된 연후라만 드높은 뜻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다. 홍경래는 자신들의 무기는 기계가
아닌 의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김사룡이 당장 돌격의 호령을 내려 달라고 진언했을 때, 홍경래는 차
분하게 그 요구를 거절했다.
“우리의 뜻은 애먼 군졸들을 살상하는 데에 있지 않다. 저들이 아직 몰라서
뛰쳐나온 것일 뿐, 평안 감사에게 도리를 설유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사자를
보내라.”
곧 백기를 든 단기필마가 평안도 군사 쪽으로 출발했다. 고래의 거성 평양성
에 의지했다면 홍경래의 군대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 있었겠느냐마는, 지금
이만수는 홍경래를 요격해야 하는 처지였기에 똑같이 야지에 진을 치고 있었다.
글월을 받은 이만수는 눈썹을 꿈틀했다.
“나보고 와서 교지를 받들라고? 이 도적놈들이 지금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사절로 간 우군칙은 사방에 창검이 가득한 가운데에서도 대담하게 말했다.
“못하는 소리가 없는 사람은 바로 감사또 나리시오. 이미 청천강 북쪽은 모두
주상 전하의 의대조 앞에 모조리 평정되었소. 병사들이 들고 있는 서양 총과
끌고 나온 영길리 대포가 보이지 않으시오? 지존의 뜻이 아니라면 저것을 어
떻게 배비할 수 있었겠소?”
이만수는 청천강 이북이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무시했다.
“영길리국 사람들이 강화도에 와서 잠상들이 무기를 사들였다며 추궁했다고
들었다. 그게 바로 네놈들이 아니더냐.”
우군칙은 얼른 넘어오지 않는 이만수를 보고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만수가 대노하여 저놈을 어육으로 만들어 버리라 명하기 직전, 우군칙은 최후
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이공이 처음 보냈던 허리띠 속의 비단이었다.
“이것은 지난날 주상 전하께서 통무아문으로 보내어 하사하신 것이오. 그리고
우리 진중에는 역적 김조순이 드디어 발톱을 드러냈을 때 전하께서 급히 내리
신, 기의(起義)를 명하는 교지가 또 따로 있소. 이걸 보고도 받들지 않는다면
곧 역적이니 쳐서 없앨 수밖에!”
도대체 반박이 불가능한 협박이라 이만수는 힘겹게 다른 말꼬리를 잡아 보았다.
“네가 지금 영안부원군을 일컬어 그리 지껄인 것이냐?”
김유근에게서 문서와 진술을 확보한 우군칙은 그 시도를 비웃었다.
“이제는 부원군이 아니오. 아들을 시켜 주군을 팔아넘기려 한 자가 어찌 부원
군이며 영돈녕부사 따위를 칭할 수 있으리?”
김조순의 계파인 이만수는 격심하게 고민했다. 김조순이 권력자인 이유는 왕
의 장인이기 때문이지 그가 막대한 사병이나 재산, 혹은 다른 방식의 권력을
보유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그 권력의 원천인 왕이 의심하기 힘든 문서로 김조순을 반역자라 지목
하고 있었다. 고위 조신인 이만수는 그 옥새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김조순이 써 준 문서도 진짜였다. 이만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주상 전하의 명을 받들었다는 너희의 말이 진실이라면 병사를 이끌고 경사를
뒤엎어 백성을 다치게 할 턱이 있겠느냐. 잠시 여기에 머무르며 기다려라. 내
가 서울로 기발을 보내어 사정을 아뢰고,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야 즉시 통과
를 허할 뿐 아니라 감영의 군사를 모두 내어주겠다.”
뻔히 그 말 나올 줄 짐작했던 우군칙은 차게 비웃었다.
“조정이 모두 독사와 전갈의 소굴이어서 명이 웃전으로부터 제대로 나오지 못
하니 이는 역적의 오래된 수법이오. 감사또 나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임금의
어명이 막힘없이 통하였다면 우리라고 무엇 하러 이 짓을 하겠소? 그런 속임
수는 소용이 없소이다. 당장 우리 진채 앞에 모신 교지를 엎드려 받들고 우리
를 뒤따라오시오. 아니라면 쳐서 없앨 수밖에!”
그러고는 한술 더 떠 주위를 둘러보며 을러대기까지 했다.
“너희는 일개 비장과 이속으로서 다른 일이라면야 상전의 명을 받았을 뿐이라
피혐할 수 있겠다만, 지금은 너희도 교지를 같이 보았으니 그런 소리가 통하
지 않는다. 자, 어쩔 테냐. 역적이 될 테냐? 아니면 존왕의 기치 아래 합류할
테냐?”
그렇지 않아도 평양의 향임들은 수령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들은 서
울에서 온 상전의 고집 때문에 자기까지 삼족의 모가지가 날아가길 바라지 않
았다.
할 말 다 한 우군칙이 소매를 떨치고 돌아가 버리자, 부하들은 진군 거부와
심하면 반란까지 암시하며 이만수에게 교지를 받들 것을 강권했다.
이만수는 결국 외로운 처지가 되어 ‘교지를 받들’ 수밖에 없었다.
이만수의 유언 같은 탄식이 평양 겨울 하늘에 흩어졌다.
“저들이 떠드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나는 죽을 것이요, 사실이라면 죽는 편
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조정이 인군을 배반하였다는 말은 들어 보았어도, 인
군이 조정을 배반하였다는 말은 고금에 들어보지 못했다. 안타깝구나, 사백
년 사직이여! 선비들이 어리석어 사직을 지키지 못한 것도 아니고, 사직이 일
어나 선비들을 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작가의 말
1. 괴혈병 걱정을 안 하게 된 것과, 괴혈병이 비타민 C 부족 때문임을 밝혀낸 시기는 한참 차이가 납니다. 학문보다 경험이 우월할 때가 많았다는 한 가지 예시죠.
2. 호란 이후 재수립된 조선의 평안도 방어전략은 작중 서술된 대로 안주성, 평양성 등에 군을 집중시켜 평안도 내에서 승부를 보는 식이었습니다. 군벌들이 근대군을 채택해 사실상 공중분해되기 전까지 궁기병을 군의 핵심 병종으로 유지한 청의 특성을 감안하면 불합리하다고 하긴 어렵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압록강변을 내버려뒀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묘호란을 전후해서 압록강변에도 상당한 규모의 연락선과 방어체제가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강변 7읍'이라 하는 방어 중심지가 있었고 시준의 고향인 의주도 그 중 하나였죠. 허나 이는 정묘호란~병자호란 사이 및 그 이후의 청의 감시 때문에 제대로 실행되지를 못합니다.
23. 일명경인(一鳴驚人)(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