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21. 흔들리는 균형(3)
이공이 홍경래에게 거병 지시를 보내기 전, 북경에서 무한 대기하고 있던 사
신단은 조선 조정의 공식 답신을 받게 되었다.
북경의 괴변을 보고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 훈령이었다. 이는 이공이나 김조
순의 계략과 상관없는 정부 공식 입장이라 먼저 도착한 것이 당연했다.
정약용은 그것을 시준에게 전해 주었다.
“대강 일이 수습되고 황제가 허락하는 대로 급히 돌아오라는구나. 영길리국
대박이 또 내왕했다는 윤음이시다.”
그간 황제가 내려 준 은 천이백 냥과 아라사인과의 친분을 밑천으로 회동관
후시를 쥐락펴락하며, 아마 북경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거부가 되어가던
시준은 의아해서 되물었다.
“아니, 영길리국 배가 한두 번 옵니까? 이제 조정에는 영길리 말 하는 사람도…….”
거기까지 말하던 시준은 입을 다물었다. 정약용이 무슨 말 하는지 깨달아서였
다. 여기서부터는 말하면 안 된다.
어째 너무 일이 잘 풀린다 했다. 조영수호통상장정은 조선 입장에서나 공정한
조약이지 영국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불평등 조약이다. 아마 조약 엎자는
말 하러 군함 끌고 왔으리라.
시준은 놀라지도 않았다. 영국의 앞뒤 논리도 없는 행패야 자연 현상에 가깝
다. 어쨌든 반드시 일어나며, 막을 방도가 제한적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다만 조선 정부가 왜 이 일을 숨기는지에 대해서는 좀 찜찜했다. 하는 짓이
좀 등신 삽질이긴 해도 이공이 꿈꾸는 게 균형 외교라면, 영국이 군대로 협박
했을 때는 즉각 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어차피 가 보면 왕이 부를 테니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제 돈도 충분히 벌었
겠다, 홍경래가 사고 치기 전에 돌아가고 싶었던 시준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
았다.
“그렇겠군요. 아무쪼록 더 다치는 사람 없이 일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이를 말이겠느냐.”
사제는 나란히 동쪽을 돌아보았다. 이제 슬슬 이 북경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
고 있었다.
청의 조사관들은 북경에 와 있던 러시아 사신과 조선 사신 양쪽에서 영국과
연결될 만한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일단 그들이 목숨 걸고 황궁을 지킨
이상 이러한 수사는 근본부터 지속 가능성이 상당히 미비한 것이었다.
담당 관리들은 노골적으로 조선 사람 편을 드는 지친왕이나 그것을 그다지 안
말리는 가경제를 보고 근로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공무원들이 할 일 없는 게 아니다. 결과는
윗분이 먼저 정하고, 아랫것들은 그 과정을 정교한 논리로 짜맞추는 게 상하
의 도리다. 명백히 인과율이 뒤집힌 행정이지만 그거야 21세기에도 마찬가지다.
만주족은 입관 후 한족의 관료제를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여진의 문명 수준
으로는 대륙의 수억 인구를 절대 다스릴 수 없다.
그리고 그 겸허한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는 바로 지금 발휘되고 있었다. 차츰
청 조야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퍼져 갔다.
“조선이나 아라사 사람이 영길리국, 혹은 사교(천리교)와 잠통하였는지는 확
실하지 않다. 허나 그들이 황성에 있는 이상, 만약 잠통한다면 영길리국에게
소식을 빨리 전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차라리 일찍 돌려보냄만 못
하리라.”
결국 ‘뭐 좋은 일도 아닌데 외국 사신들 계속 두어 국제 망신 사지 말고 전부
쫓아낸 다음 우리끼리 얘기해 보자’는 합의가 완성되었다.
예부에서는 겨울이 본격적으로 닥치기 전에 사신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지극
한 황은’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조선 사신단 역시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시준은 떠나기 전 베니그센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간 보여 주신 각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
기를 바랍니다.”
시준을 다시 살아서 보리라 장담하기 어려운 나이의 레온티 베니그센은 아쉬
움을 표했다.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으니 우리는 바로 전우다. 내가 모스크바에 있
는 한 러시아는 언제든 자네와 조선인들을 환영할 걸세.”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낮게 말했다.
“자네 프랑스어를 보아하니 조선에 프랑스인이 많이 침투한 모양이네만, 보나
파르트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할 거야. 조선 국왕께 러시아인의 신의를 전해
주길 바라네. 당장은 길이 없어 교류하지 못할지라도 하느님의 인도는 그 오
묘한 방식을 다 알 수 없지. 실제로 우리가 이렇게 만나지 않았는가.”
나폴레옹이 오래 못 갈 거라는 그 말만은 시준도 동감했다. 괜히 어색해질 이
유도 없었으므로 시준은 그저 사람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회동관으로 돌아온 시준은 이제 러시아인 따위 머릿속에서 싹 삭제했다.
여태 시준이 벌어 둔 돈과 임상옥조차 감당 못할 만큼 막대한 중국의 귀물들
을 정리해야 했다. 러시아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운송 수단이 미비하다는 점을 감안해, 절대 다수는 손해 좀 보더라도 금은으
로 바꿔 두었는데도 시준이 요 달포간 북경에서 벌어들인 돈은 의주에 남겨두
고 온 재산 전체보다 훨씬 많았다. 시준은 왜 만상들이 목숨 걸고 중국 밀무
역을 지속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유와의 혼인만 마무리되면, 그리고 홍경래가 제발 좀 찌그러져 있어 준다면
좀 지속적인 루트를 만들어 놓을 가치가 충분했다. 시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럴 경우의 다음 사업을 구상했다.
‘삼각 무역도 좋지만 영국이 중국과 직접 장사하는 이상 한계가 있어. 먼저
영국인들에게 돈 주고 황산이나 염산 같은 것을 실어오게 하는 거야. 그런 다
음 군대에서 빼돌린 구리로 그럴싸한 솥을 많이 찍어내서 잠깐 담가 두면…….’
유리창에서 충분히 눈에 익힌 골동품 위조 방법이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
거래가 한창 유행하던 당시 중국이라면 물정 모르는 자들에게 비싼 값 받고
팔 수 있다.
뭣하면 더 물정 모르는 조선 사람들에게 팔아도 된다. 실제로 유리창의 청동
기는 조선 사신단이 가진 돈을 노리고 만들어진 게 상당히 많았다. 시준이라
면 더 절묘한 사기를 칠 수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주나라의 예법에 따라 만들어진 제기입니다! 진 시황조차 끝내
건져내지 못했던 구정(九鼎)과 같이 사수(泗水)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던 그릇
이오!’
‘사실 진정한 상나라의 법도는 동방에 있었습니다! 희만 정약용 선생이 고증
한 문서가 여기 있소이다!’
그야말로 돈 굴러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준은 벌쭉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은화를 세었다.
옆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기랑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돈 가지고 가면 뭐 할 거야?”
“뭐 하긴, 인마. 타향에다 한 살림 거하게 차려서 일생 아무 걱정 없이 놀고
먹으려는 거지.”
“누구랑? 어디로?”
“어흠. 쓸데없는 거 묻지 말고 이거나 도와 줘라. 아, 그리고 혹시 품팔 데
없을까봐 걱정되거든 따라와도 돼. 다른 동네 가서 살려면 적적할 텐데 동무
하나 있으면 좋은 일 아니겠어?”
그리고 시준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기랑에게 속삭였다.
“타향이라면 굳이 남장하고 살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네가 지금까지 나를 도
와준 일이 많은데 내가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터. 사냥꾼 노릇 계속 할 생각
이 아니라면 어디 괜찮은 혼처라도 알아봐 주마. 양반가는 무리겠지만 그럴듯
한 농사꾼 청년쯤은 쉽게 찾을 게다.”
평퍼짐한 조선 남자 옷과 과묵함을 무기로 여태 능숙하게 감추고 있었다고 하
나, 한창 피어나는 기랑의 나이에서 배어 나오는 매력은 겉모습을 좀 바꾼 정
도로는 막을 수 없었다.
시준이 ‘그 소설’을 쉽게 수입하고 절찬리 팔아먹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조선을 포함한 전근대 동아시아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꽤 올바른 편이었다. 마
음이 동하면 상대방의 성별 같은 건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얘기다.
부사의 시종이라는 위치도 완벽한 방패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19세기 사람들
은 대개 오늘만 산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대체 몇 놈이 껄떡대다가 기랑에
게 얻어맞았는지 세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이런 식의 삶은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언젠간
들킬 텐데, 과수댁이라면 혹 모를까 혼자 사는 처녀라는 것은 조선에서 존재
할 수 없는 가정 형태다. 옛이야기에서 산속의 독신 처녀가 나오면 괜히 100%
요물인 게 아니다.
결국 선택은 하나다.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기랑으로서는 조선 남자들이 영 거
치적거리겠지만, 그도 언제까지나 산 달리며 짐승 쫓거나 날품팔이 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조선이라고 해서 고분고분하고 모실 부모 없는 – 중요하다 –
총각 하나쯤 찾으면 없겠는가.
하지만 기랑은 여전히 그 툴라 머스킷을 안은 채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무거
운 궤짝 좀 나르려고 기랑을 불렀던 시준은 갑자기 기랑이 벌떡 일어서서 저
쪽으로 총총 가 버리자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수많은 성군들의 근절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았는
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체제 자체의 모순이나 감시 수단의 미비 같은 전통적인 설명이 있고 상당 부
분 들어맞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뇌물 수수를 체제 외적인 것으로 보는 관
점이다.
장구한 역사를 거쳐오며 착복과 횡령에도 지켜야 할 선과 오묘한 기술이 생겼
다. 그리고 이는 다른 ‘법도’처럼 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관념이 되었다.
작문에 있어서 상위의 경지는 ‘어떤 글을 쓰지 않는가’이며, 전쟁에 있어서
명장이 ‘어디를 치지 않는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능숙하고 노련한 관리는 ‘어
떨 때 뇌물 받아 처먹으면 안 되는가’를 깊이 숙지한다.
연장 휘두르는 깡패들의 무협 세계에도 강호의 도의가 있는 것처럼, 부정부패
에도 다 도리가 있다는 얘기다.
시준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근문소 같은 걸 만든 게 아니다. 뇌물에는 명분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도리 중 하나가 바로 ‘윗분의 관심사항에는 장난치지 말 것’이
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바로 괘씸죄이기 때문이다.
왐포아에 있던 존 레디 소령은 평소 뇌물에 일가견이 있다 자부하지만, 아무
래도 근본이 서양 오랑캐다 보니까 그러한 심도 있는 이치에까지는 약간 어두
운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왜 흠차대신 온승혜가 모든 종류의 뇌물을 철벽같이 거부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돼지가 단식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레디 소령은 천신만고 끝에 사정을 직접 설명한다는 명목으로 흠차대신을 만
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레디 소령은 다른 청 관리들에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아마도 남쪽 바다를 왕래하는 밀매꾼들이 총을 팔아넘긴 듯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영국인들이 그런 못된 사교도들에게 도움을 줄 리가 있나요.
번거롭게 여기까지 왕림하셔서 낯선 날씨에 고생하실 까닭이 없지요. 그 일은
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대신께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약소하지만 먼 길 오시는 데 피곤하셨을 테니 약이나 하시라고……. 요즘 광저
우에서는 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 조선 홍삼입니다.”
하지만 반역, 그중에서도 불궤가 얽힌 이 일을 어물어물 넘어갔다가는 삼족이
멸해진다는 사실을 잘 아는 온승혜는 레디 소령이 내민 홍삼 상자를 뒤엎었다.
“영길리국은 일전 오문(마카오)의 일부터 시작해서 그 불손함이 자주 엿보인
지 오래다. 너희 서양인들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푸른 절개와 붉은 충
정은 재물로 꺾을 수 없기에 사람들이 경외하는 것이니라!”
‘더 달라는 소린가?’
레디 소령은 꾹 참고 금은이 담긴 주머니에다가 아편 상자, 비장의 평안도 담
배까지 내어줘 보았지만 온승혜는 막무가내였다.
영국의 군사력이 청에 비해 모자라서 이런 굴욕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니다. 굳
이 이유를 말하자면 사람은 주로 물이 아니라 땅 위에서 산다는 이치 탓이라
고밖에 할 수 없었다.
5만 대군을 동원하여 광저우 구석구석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은 가경제는 황
포의 영국인 지구를 ‘완전히 둘러쌌다.’
아직 아편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황포는 그냥 영국인이 거주하고 무역하도
록 허락된 곳일 뿐 영국의 영토라거나 치외법권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이곳이
개항장이 된 이유는 황포가 광동의 전통적 군사요새 중 하나여서 감시가 용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은 한번 군사적으로 박살 나기 전까지 영국 상인들에게 세기 단위로
갑질을 일삼았다. 공행(公行)과 관리들의 작당으로 이루어지는 막대한 누규
(陋規, 관세에 추가로 붙는 자의적 부가세) 같은 짓거리를 영국이 지금까지
참아 넘겼던 것은 그만큼 대청 무역에서 막대한 이득이 남아서였지 영국인이
모욕 플레이에서 희열을 느껴서가 아니다.
물론 온승혜가 잘 실천한 뇌물의 도에서 볼 수 있듯, 청 조정과 관리 역시 어
느 정도 선은 지켰다.
외국인 거주구에 함부로 병사를 동원하여 겁박하지 않는 것도 그중 하나였는
데, 이 시대에 ‘병사가 주둔한다’라는 말은 ‘동네에 산적 떼가 새로 생겼다’
와 별로 다르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상당히 정중한 조치다.
하지만 지금 흠차대신 온승혜는 그 불문율을 깨버렸다. 당연하다. 그거 안 깨
면 자기 머리가 깨질 판이니까.
반드시 여기에서 뭔가 건져 돌아가야 했다. 온승혜는 자신의 임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영길리와 전쟁을 해야 할 만큼 큰 건은 아니지만, 영길리의 콧대를 눌러놓을
만큼은 충분한 건수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지금 영국의 보이지 않는 압박 하에 청나라 땅인지 포르투갈 땅인지
애매한 마카오의 귀속 같은 사항을 정리함으로써 서양에 대한 청의 우위를 재
확인하는 정도가 가경제의 희망이었다.
그러려면 증거를 찾아야 했다. 곧 흉포한 팔기병들이 정말 저같이 흉악하게
생긴 병장기들을 걸머진 채 황포 상항(商港)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그건 따지 마시오! 술통이란 말이야! 함부로 깨면 다 버려야 해!”
“에에이! 시끄럽다. 이 오랑캐놈!”
“어억! 이, 이 미개인이 사람을 치네!”
“야, 너 이거 뭐야. 이거 아편 아냐? 금수품인 걸 모르느냐?”
“불 붙여서 연기 나면 다 아편이냐? 그건 조선 담배다! 평안도 담배 못 들어
봤냐? 아편처럼 흉악한 물건은 우리 깨끗한 명예회사(Honorable Company, 동
인도 회사)에서 어림도 없지! 암!”
“사교도를 도운 양추(洋醜) 도적놈이 어디서 잘난 척이야? 이 수상한 물건은
압수다!”
“그, 그게 얼만지나 알고! 이 날강도 같은 놈들!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그런 난장판 속에서 군사며 관리들이 ‘수색’을 명목으로 강도질을 일삼은 거
야 당연했다. 레디 소령은 왜 이자들이 뇌물을 안 받았는지 알겠다고 생각하
며 좌절했다. 다 빼앗으면 되는데 왜 뇌물이 필요하겠는가.
그렇게 동인도 회사의 자산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던 와중, 사건은 일어났다.
과거 윌리엄 드루리 제독의 업적을 누구보다 아니꼽게 바라보았던 동인도 회
사 해군 총지휘관 밀리켄 크레이그 대령은, 원 역사에서도 드루리 제독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사람답게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은 참지 못하
는 성미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될 듯한 동양인 놈들이 메뚜기 같은 숫
자를 무기로 거들먹대는 꼴을 보고 장이 꼬여버릴 지경이었다.
그 와중 어떤 녹영병 하나가 집무실에 크게 걸려 있던 유니언 잭을 잡아 떼는
꼴은 그의 격노를 불러일으켰다.
“이 무지한 야만족이! 당장 그 더러운 손을 신성한 국기에서 떼지 못해!”
물론 그 한족 병사는 영어를 모른다. 알았다고 한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병사에게 있어 그 커다란 깃발은 그저 튼튼해 보이는 천일 뿐이었
으니까. 대량 생산과 글로벌 유통망이 없는 시대에서 천과 옷은 그 자체로 재
물이다.
녹영병은 귀찮다는 듯이 크레이그 대령을 밀쳤다. 대령이 위협적으로 한 걸음
다시 다가들자, 병사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조총을 내밀었다.
그리고 크레이그 대령은 그것을 즉각적인 전투 개시 신호로써 접수했다.
검이 없는 장교는 없다. 크레이그의 오른팔이 미개한 원주민의 경동맥을 겨냥
하고 한 번 휘둘러지자, 습한 파열음과 함께 녹영병의 아래에 붉은 웅덩이가
‘출현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기세로 뿜어져 나온 피를 녹영
병은 그저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는 뭔가 말할 듯이 손을 뻗었으나, 그 손
에서 조총은 떨어지고 곧바로 그 병사도 실 끊어진 인형 꼴이 되었다.
주변을 들쑤시고 있던 다른 병사들이 그것을 보았을 때, 그 녹영병은 이미 무
릎에 이어 얼굴까지 땅에 처박은 채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청군에 둘러싸인 크레이그 대령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 더러운 도둑놈은 영국의 국기와 국왕 폐하를 모독하였고, 왕의 장교인 나
를 먼저 총기로 공격하려 하였으므로 자위권 차원에서 죽였다!”
여기서 청군이 ‘아, 그러시군요. 우리 동료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하고
물러났으면 크레이그 대령조차 놀랐을 것이다. 벌써 여남은 명이나 모인 청군
은 욕설과 고함을 뿌리며 크레이그 대령에게 손에 쥔 모든 것을 처박았다.
레디 소령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현장에 뛰어 들어왔을 때는, 이미 거기엔 이
상한 고깃덩어리 같은 무언가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옷과 견장, 허리띠
와 신발 등속은 싹 갈취당한 뒤라 누군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 미친놈들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황포에 남아 있던 선원과 영국군이 모두 흉흉한 기세
로 집결했다. 온승혜는 고민에 빠졌다.
기껏 군관 하나 죽은 것 가지고 웬 소란인지 모르겠지만 – 이쪽도 병사가 하
나 죽지 않았는가 – 지금 형식적으로나마 수사에 협조하던 영국인들이 이렇게
나오면 황포를 다 불태우는 수밖에 없다.
그건 전면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경제가 별로 바라지 않는 상황임에 분명했다.
온승혜는 일단 이 ‘사고를 일으킨’ 영국인들을 꾸짖으며 병사를 물렸다. 한
차례 수색으로 장부 같은 것도 꽤 확보했으니, 먼저 여기서 꼬투리 잡을 만한
것을 천천히 캐 볼 생각이었다.
반면 레디 소령은 그렇게 한가한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암허스트 남작을 저주했다. 지금 청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경하게 나
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였다.
‘조선이야. 갑자기 군함이 가니까 놀란 조선이 청에 이 일을 알려 압박을 사
주한 게 분명해! 제기랄. 그냥 가만히 놔두었으면 우리 총으로 반란이 일어난
것쯤이야 수습할 자신이 있었는데!’
약식으로 대령의 장례를 치른 레디 소령은 강화도에 급보를 보내는 한편 모든
배와 병사를 끌어모으고 거주구 골목마다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이젠 더 물러
날 데가 없었다.
강철군주 이공이 강철같이 마련한 아시아의 균형은 흔들리고 있었다.
레디 소령의 생각과 달리, 이공은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여 영국을 막아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생각은 김조순이 한 것이다. 이공은 지금 영국보다는 신하들을 막아보자는
생각에 골몰한 상태였다.
그리고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조선의 군신 관계는, 이를테면 서로의 불륜을 숨기고 있는 부부와 가장
유사했다.
조정은 기가 막힐 정도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갔다. 왕이나 신하나 당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가 자신의 치부가 밝혀지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각지의 흉년 대책이 올라오고, 지방관은 급감하는 환곡 수량이나 헤
아려서 계본 올릴 따름이었다. 경연에서는 언제나와 같이 검약과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이공은 전혀 듣지 않았다.
사실 영국군이 강화도를 침공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마땅히 할 것도 없었다.
조선이 영국 함대에 무슨 무력시위를 할 형편도 안 되었다.
선제 공격에 나선 것은 김조순이었다. 김조순은 이득제를 시켜 일상 업무인
것처럼 훈련도감의 군비를 재점검하게 했고, 거기에서 대변선(待變船) 한 척
이 보고 없이 사라졌다 복귀했던 것을 기록상의 증명으로 찾아내었다.
대변선은 말 그대로 변괴에 대비하는 배다. 여진족이 뭔가 사고 칠 것 같았던
17세기 초부터 조선 왕들은 이 배를 마련해 선조 이연의 절기를 본받아 뽐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 줬는데도 후손 인조가 열성조의
배려를 활용하지 못한 일은 불초라는 두 글자 외에 말할 게 없다.
그 후로는 200여 척까지 늘어나 이번에야말로 조선왕의 도주가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는 각오를 나타내었지만, 아무래도 그럴 만한 사건이 없어서 훈련도감
의 밥줄로 써먹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공이 영국에 푸셰를 보낼 때, 이런저런 이유로 협조 안 하는 신하들
에 진절머리가 나서 슬쩍 동원한 배가 이 대변선 중 하나였다. 대변선은 호남
연해 지역의 세곡 운반을 독점한 훈련도감의 운송 수단이었기 때문에 김조순
에게 들키지 않을 리가 없다.
물론 김조순이 미쳤다고 왕을 바로 공박하지는 않았다. 그는 ‘감히 나라의 군
선을 멋대로 타고 간 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 간자가 누군지 다 아는 상황에서 이공은 김조순이 드디어 반역의 마음을
먹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사마소지심로인개지(司馬昭之心 路人皆知)라. 이토록 드러내놓고 군왕을 깔
보니 이젠 정말 물러날 수 없도다! 이것은 성인의 개화를 위한 고난일 뿐. 나
는 반드시 헤쳐 보이겠다!’
군대가 필요했다. 처음 다짐했던 것과 달리 다소 작고 좀 덜 아름답더라도 당
장 저들을 몰아낼 수 있는 군대가. 이공은 북쪽에서 좋은 소식이 들리기만 손
꼽아 기다렸다.
작가의 말
1. 이때는 선진시대의 청동기가 골동품으로 많이 유행했습니다. 작중 나온 것처럼 조선 사람도 많이 사갔고... 물론 거의 절대 다수는 가짜였죠. 강산을 비롯한 여러 방식의 처리로 오래된 것처럼 꾸며서 팔았습니다.
서구식 고고학은 없었지만 이때 청에서는 청동기~신석기 유물 발굴이 의외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데, 개중에는 석기 유물에 건륭제가(강희제일수도 있는데 제 기억이 부정확합니다.) 친필 싸인;;을 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에 있죠.
2. 주를 멸망시킨 진은 제왕 권위의 상징인 아홉 개 솥을 옮겨오지만 사수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진은 100명 이상의 잠수부를 풀어 찾았으나 결국 실패하지요.
3. 유니언 잭이 영국의 국기로 채택된 것은 작중 시점 기준으로 상당히 최근인 1801년경입니다.
4. 대변선에 대한 작중의 설명은 역사와 바뀐 게 별로 없습니다. 훈련도감은 조선 후기 중앙군을 대표한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처음엔 정부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습니다(!). 선조 시기에 이미 삼수미세를 신설하고 관리들 녹봉을 깎아서 훈련도감에 내주거나;; 쥐톨만한 예산을 지급하는 등 애는 써보지만, 결국 훈련도감도 (다른 많은 조선 관청처럼) 알아서 돈을 마련해야 했죠.
그래서 훈련도감은 다양한 돈벌이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둔전은 기본이고 쌀과 소금 장사에다가 서적 인쇄와 판매업도 했습니다. 전국에 시장을 개설 허가해 주고 운영권을 얻어서 숯이나 염초를 징수하기도 합니다. 훈련도감이 돈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역사를 보면 그야말로 눈물겹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하지만 오천 명이나 되는 훈련도감이 그런 부업으로 지탱될 리가 없고, 훈련도감은 당시 가장 남는 장사 중 하나였던 세곡 운송권을 조정으로부터 넘겨받습니다. 작중 나온 대로 전라도 연해 고을의 세곡 운송권인데, 전통적 곡창지대인 호남의 위상을 봤을 때 이는 꽤 큰 사업이죠. 그리고 변괴에 대비한다는 대변선은 19세기쯤 가면 그 거의 대부분이 여기에 쓰이게 됩니다.
5. '사마소지심로인개지'는 '사마소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다 안다'는 뜻으로서 위나라 황제 조모가 권신 사마소의 공공연한 오만방자를 두고 분개하여 한 말입니다. 조모는 사마소를 응징하기 위해 직접 칼 들고 용맹하게 돌격하다가 일개 군관인 성제와 성쉬(사람 이름 맞습니다) 형제에게 허무하게 죽습니다. 그리고 사마소는 둘은 물론 일족까지 전부 죽여 면피하죠.
22. 홍경래의 난(1)